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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영조 12) 3월에 김목원(金穆源)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무사히귀가 하였음을 알리고 부탁받은 비자(榧子)를 올리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목원·복원발급자 김목원과 김복원(金福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피봉의 ‘하상(河上) 조부주전(祖父主前)’은 그들의 외할아버지인 류성화를 가리킨다. 먼저, 이들은 접때 인사를 드렸던 일은 차라리 인사를 드리지출처 : 유교넷 -
294252
김목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외손자가 외조부에게 올린 것이다. 먼저, 김목원은 제주(濟州)의 사람이 떠날 때에 안부편지를 써서 올렸는데, 류성화가 그것을 봤는지 물었다. 이어, 가뭄이 극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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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영조 13) 7월에 김목원(金穆源)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어머니의 출발날짜를 뒤로 물리기를 요청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목원·복원김목원과 김복원(金福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피봉의 ‘조부주전(祖父主前)’은 그들의 외할아버지인 류성화를 가리킨다. 먼저, 김목원 등은 돌아온 노비 편에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서, 근일 무더위에 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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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영조 13) 7월에 김목원(金穆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아이가죽었다는 소식과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목원김목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피봉의 ‘하상(河上) 조부주전(祖父主前)’은 그의 외할아버지인 류성화를 가리킨다. 먼저, 김목원은 노비가 떠난 후에 다시 소식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혹심한 더위에 류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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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10월에 김목원(金穆源)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산송(山訟) 등의 일에 관하여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손 김목원·복원김목원과 김복원(金福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이 편지를 작성한 1745년은 김서절이 사망한 해이다. 김목원 등은 이미 부친의 장사 기일이 지났는데 또 산 아래 촌인(村人)이 소송을 제기하여 묘를 쓰지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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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윤3월에 김목원(金穆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5대조 유고(遺稿)의 간행 작업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손 김목원발급자 김목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김목원은 류성화의 외손이다. 김목원 측의 사연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 풍산 류씨(豊山柳氏)의 기력은 그럭저럭 괜찮으시지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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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11월에 김목원(金穆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류성구(柳聖久)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목원발급자 김목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따라서 김목원은 류성화의 외손자이다. 먼저, 김목원은 류성화의 동생인 류성구(柳聖久)의 죽음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또 상사를 당한 류성화가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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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정조 10) 2월에 김낙선(金洛善)이 류 원장(柳院長)에게 《태극도(太極圖)》의 오행(五行) 차서(次序)에 관하여 다시 질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김낙선발급자 김낙선은 본관이 선산(善山)이고, 자가 사호(士浩)이다. 그는 읍취헌(挹翠軒) 김구용(金九用)의 손자이자, 김일태(金一泰)의 아들이다. 김구용은 자신이 작년 12월에 병을 앓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괴롭다고 하였다. 또 오랫동안 류 원장을 뵙지 못하고 공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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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영조 51) 8월에 김상민(金相敏) 등이 외재(畏齋) 류종춘(柳宗春)에게 근황을 주고받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질 김상민·상즙발급자는 김상민과 김상즙(金相楫)이다. 이들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첫째사위인 풍산 김씨(豊山金氏) 김서절(金瑞節)의 손자들이다. 김상민은 김목원(金穆源)의 아들이고, 김상즙은 김현원(金顯源)의 아들이다. 이들이 편지에서 자신들을 종질(從姪)이라고 하였으므로출처 : 유교넷 -
294260
1744년(영조 20) 8월에 김기명(金起溟)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방문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배[梨]를 올리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김기명대필 편지이다. 먼저, 김기명은 근래 소식이 통하지 않아서 그리움이 간절했다고 하면서, 서늘한 기운이 점점 생겨나는 이때에 류성화의 건강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쇠병(衰病)이 날로 심해지고 정신이 어지러워서 조석(朝夕)을 보전하지 못할 듯하다고 심정을 토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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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영조 14) 4월에 송암(松庵) 김경헌(金景瀗)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김상헌(金尙憲) 서원(書院)의 건립을 저지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을 요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경헌·김태겸·김몽하발급자는 김경헌, 김태렴(金泰濂), 김몽하(金夢河)이다. 이들은 당시 안동에 노론계 서원인 이른바 김상헌 서원이 건립될 때 이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데에 앞장 선 인물들이다. 이 서원의 건립 시도 및 안동 사인(士人)들의 저지 운동과 주동자 처벌 등의 전말은 국학진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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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11월에 서파(西坡) 김경철(金景澈)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낙상(落傷) 후의 안부를 묻고 자신들의 누이와 김성탁(金聖鐸)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경철·경필발급자 김경철과 학음(鶴陰) 김경필(金景泌)은 졸암(拙庵) 김여당(金汝鏜)의 아들이고,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손자이다. 류성화의 양자인 류운(柳澐)은 김성구의 외손서(外孫壻)이며, 이들은 풍산 류씨 문중의 옥고(玉皐) 류후광(柳後光)의 외손이다. 또한 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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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8월에 단사도인(丹砂道人) 김경온(金景溫)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병세와 큰조카의 근황 등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복인 김경온김경온은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아들인 수찬(修撰) 김여건(金汝鍵)의 아들이다. 이 편지는 그가 죽던 해에 작성한 것으로, 병세로 인해 대필을 시켰다. 그는 근자에 류성화가 보내준 편지를 받고 건강이 좋음을 알고서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봄 초에 류성화출처 : 유교넷 -
294264
1737년(영조 13) 6월에 김복원(金福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올 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복원발급자인 김복원은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손자이자, 류성화의 사위인 김서절(金瑞節)의 둘째아들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김복원이 자신의 외조부인 류성화에게 보낸 것이다. 근자에 제주(濟州)의 하인이 돌아가는 편에 편지를 부쳤었는데, 류성화가 과연 봤는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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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3월에 김복원(金福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산송의결과 등에 관해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복원발급자 김복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따라서 이는 김복원이 그의 외조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복원이 전한 주요 사연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머니 풍산 류씨(豊山柳氏)가 남편 상을 당한 와중에 근근이 지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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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12월에 김복원(金福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안부를 묻고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 김복원발급자 김복원은 참봉(參奉)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따라서 이는 김복원이 그의 외조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복원은 부친 김서절의 상중에 어머니 풍산 류씨가 근근이 지내고 있다고 했으며, 상기(喪期)가 점점 다가와서 애통한출처 : 유교넷 -
294267
1764년(영조 40) 3월에 김복원(金福源)이 난옹(懶翁) 류운(柳澐)에게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복인 김복원발급자 김복원은 풍산 김씨(豊山金氏) 김서절(金瑞節)의 아들인데, 김서절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첫째사위이므로, 그는 류성화의 외손자가 된다. 수급자인 류운은 류성화의 아들로, 당시 의영고 주부(義盈庫主簿)로 있었다. 먼저, 김복원은 류운이 서울로 올라간출처 : 유교넷 -
294268
1677년(숙종 3) 2월에 김규(金煃)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낙직(落職)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규편지 원본에 기재된 “광정(光庭)”은 김규(金煃)의 자(字)이다. 김규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고, 편지를 받는 류의하는 류원지의 아들이다. 김규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주손으로, 학봉 김성일→애경당(愛景堂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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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정(光庭)이 조카인 류 찰방(柳察訪)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노숙(老叔)이라고 하였다. 조카에게 읍재(邑宰)의 자리를 얻어주기 위한 작전지시(作戰指示)이다. 저번에 갔을 때는 조용히 이야기도 못하여 지금까지도 서운하고 슬펐는데 지금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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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金煃)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 형제에게 자신의 출타 일정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규편지 원본에 기재된 “광정(光庭)”은 김규(金煃)의 자(字)이다. 김규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김규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주손으로, 학봉 김성일→애경당(愛景堂) 김집(金潗)→단곡 김시추로 이어진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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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金煃)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어떤 옥사(獄事)의 진행 과정 등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규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김규는 자신을 외구(外舅)라고 자칭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외구는 장인을 뜻하나, 여기서는 외삼촌의 뜻으로 쓰였다. 수급자는 우눌 류의하이다. 먼저, 김규는 어제 류의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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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외구(外舅) 광정(光庭)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청밀(淸蜜)을 받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농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광정이 편지의 외구(外舅)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장인을 뜻하나, 여기서는 외숙의 뜻으로 쓰였다. 외구(外舅) 광정(光庭)은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피봉의 봉성 아내(鳳城衙內)는 류원지의 아들인 류의하를 가리키는 말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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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김규가 자신을 표숙(表叔)이라고 칭하였으므로, 수급자는 우눌 류의하가 된다. 먼저, 김규는 세기(世基 : 김규의 아들인 여사헌(如斯軒) 김세기)가 왔고, 지금은 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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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광정(光庭)이 류 도사(柳都事)가 서행(西行)하는 것을 송별(送別)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광정광정(光庭)이 류 도사(柳都事)가 서행(西行)하는 것을 송별(送別)하는 편지이다. 서로 만나 조용히 이야기도 못하였는데, 손수 쓴 편지를 받으니 좀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서행(西行)의 출발(出發)을 선포(宣布)하는 것은 4일이냐고 물었다. 당(堂)에 두 노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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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광정(光庭)이 봉화(奉化) 아문(衙門)으로 생질(甥姪)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표숙 광정광정(光庭)이 봉화(奉化) 아문(衙門)으로 생질(甥姪)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표숙(表叔)이라고 하였다. 표숙은 외숙(外叔 : 외삼촌)과 같다. 근래(近來) 소식을 듣지 못하여 매우 답답하다고 하고, 정사(政事)의 상황이 좋으냐고 물었다. 자신(“늙은 아재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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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김광정(金光庭)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면역(免役)에 관한 사항을 문의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광정김광정(金光庭)은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는 우눌 류의하에게 외숙이 되는데, 편지의 숙(叔)이라는 자칭을 볼 때, 수급자는 류의하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문의 정황(政況)이라는 말을 볼 때, 류의하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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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광정(光庭)이 수급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광정광정(光庭)이 수급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러나 관팽(官伻)이 와서 정황(政況)이 좋은 것을 살펴서 기쁘고 위로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상대방이 관원(官員)임을 알 수 있다. 봉화(奉化) 아문(衙門)으로 생질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삼리숙(三里叔)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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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에 외구(外舅) 김광정(金光庭)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자신의 귀가(歸家) 소식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김광정김광정(金光庭)은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는 우눌 류의하에게 외숙이 되는데, 편지의 숙(叔)이라는 자칭을 볼 때, 수급자는 류의하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문의 아황(衙況)이라는 말을 볼 때, 류의하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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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김규(金煃)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류의하 집안에서 정조제(正朝祭)를 지낼 차례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숙 김규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따라서 김규는 우눌 류의하의 외숙이 된다. 류의하는 1671년 3월에 봉화현감으로 임명된 바 있는데, 이 편지는 류의하가 봉화 현감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작성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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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광정(光庭)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광정광정(光庭)이 수급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나[我]”라고 하였다. 모두 모시는 정황(情況)이 좋으냐고 묻고, 자신은 그저께 춘현(春縣)의 권장소(權葬所 : 가매장한 산소)로부터 귀가(歸家)하였는데, 겨우 대단한 병은 면하였다고 하였다. 시호(諡號)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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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에 김광정(金光庭)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돌아가는 길에는 자신을 방문하라고 하명하고 제수(祭需)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광정김광정(金光庭)은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편지의 숙(叔)이라는 자칭으로 볼 때, 이 편지는 김규가 그의 외조카인 우눌 류의하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광정은 그립던 상황에서 류의하의 편지를 받게 되니,출처 : 유교넷 -
294282
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겉봉의 ‘봉화(奉化) 아내(衙內)’라는 말에서, 수급자가 류의하임을 알 수 있다. 김규는 류의하의 외숙이다. 류의하는 1671년(현종 12) 3월에 봉화 현감으로 임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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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자 김규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따라서 김규는 우눌 류의하의 외숙이 된다. 류의하는 1678년(숙종 4) 3월에 송라찰방으로 부임하기 위해 하직하여 재직하던 중에 노모의 병환이 위중하다고 하여 말미를 받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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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에 외숙(外叔) 김광정(金光庭)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서울로 가는 일정을 묻고 서울로 올라가서 편지 등을 전달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숙 김광정김광정(金光庭)은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편지의 외숙(外叔)이라는 자칭으로 볼 때, 이 편지는 김규가 그의 외조카인 우눌 류의하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류의하는 사재감(司宰監), 경기전(慶基殿), 전생서(典牲署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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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정(金光庭)은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편지의 외숙(外叔)이라는 자칭으로 볼 때, 이 편지는 김규가 그의 외조카인 우눌 류의하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광정은 류의하의 증세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으면서출처 : 유교넷 -
294286
9월에 김규(金煃)가 서울로 올라가는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여러 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규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김규는 자신을 외구(外舅)라고 자칭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외구는 장인을 뜻하고 내구(內舅)는 외삼촌을 뜻하나, 여기서는 외삼촌의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수급자는 우눌 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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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다. 김규는 자신을 외구(外舅)라고 자칭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외구는 장인을 뜻하고 내구(內舅)는 외삼촌을 뜻하나, 여기서는 외삼촌의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수급자는 우눌 류출처 : 유교넷 -
294288
이 편지의 외구(外舅)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장인을 뜻하나, 여기서는 외숙의 뜻으로 쓰였다. 발급자 김규(金煃)는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장인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의 아들이고, 류의하는 류원지의 아들이다. 피봉의 류 직장(柳直長)은 류원지의 아들인 류의출처 : 유교넷 -
294289
겉봉의 ‘개중(介仲)’은 서호 류성화의 자(字)이므로, 수급자는 류성화가 된다. 발급자는 구장(九章)이라고 되어 있는데, 편지 가운데 ‘구담(九潭)’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순천 김씨(順天金氏) 문중의 인물로 보인다. 먼저, 구장은 류성화가 전에 방문해출처 : 유교넷 -
294290
1734년(영조 10) 6월에 김기점(金起漸)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서원의 요역(徭役)에 관한 소식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김기점편지의 수급자는 내용을 보건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기점은 궁벽한 집에 병으로 칩거하면서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 깊었는데, 안부편지를 보내주니, 매우 감사하였다고 했다. 또한 이를 통해 상대가 철따라 건승함을 알게 되어, 더욱 위로가출처 : 유교넷 -
294291
1735년(영조 11) 1월에 김기점(金起漸)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도장(都將)에 관한 일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김기점발급자 김기점은 안동(安東) 구담(九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순천 김씨(順天金氏)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인다. 먼저, 김기점은 그리워하던 중에 류성화의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감사했다고 하였다. 또 편지를 통하여 새해를 맞아 류성화가 건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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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5년(영조 11) 1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조위의 뜻을 표하고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정발급자는 영주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인 노봉 김정이다. 그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와 사돈지간인데, 그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이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정은 1월도 반이 지났음에도 소식이 막히니 평소 때보다 더욱 그립다고 하였다. 이어, 류성화의 기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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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년(숙종 34)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하곡(荷谷) 허봉(許篈)의 저서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제 김정먼저, 김정은 류성화에게 부모님을 모시면서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자신은 일찍이 하곡(荷谷) 허봉(許篈 : 1551-1588)이 편찬한 《이산잡록(夷山雜錄)》, 《독역관견(讀易管見)》, 《의례보주(儀禮補註)》 등의 책을 세의(世誼)가 있는 집안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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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 40) 6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기복인 김정이 편지는 음력으로 6월 보름인 유두일(流頭日)에 작성되었다. 김정의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은 바로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김서절은 류성화의 딸인 풍산 류씨(豐山柳氏)와의 사이에 4남 4녀를 두었다. 먼저, 김정은 사모하던 중에 단개(耑价 : 편지 전담 심부름꾼)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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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숙종 40) 10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권 종가(權從家)의 신행(新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김정의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은 바로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김서절은 류성화의 딸인 풍산 류씨(豐山柳氏)와의 사이에 4남 4녀를 두었다. 따라서 김정과 류성화는 서로 사돈지간이다. 먼저, 김정은 류성화가 보내온 편지를 보고서 류성화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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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년(숙종 41) 2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과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축원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김정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은 영주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이다. 그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와 사돈지간인데, 그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이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피봉의 사형(査兄)이라는 말을 볼 때, 류 생원(柳生員)은 류성화인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김정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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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년 10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선산(善山) 수령에게 근처에서 우거하고 있는 황익재(黃翼再)를 잘 돌봐주기를 부탁하고 류성화를 소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발급자는 영주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인 노봉 김정이다. 그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와 사돈지간인데, 그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이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피봉의 매각(梅閣)은 동각관매(東閣官梅)를 뜻하는데, 수령이 정사를 살피는 관아를 의미한다. 당시 선산 수령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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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숙종 43) 9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정김정의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은 바로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김서절은 류성화의 딸인 풍산 류씨(豐山柳氏)와의 사이에 4남 4녀를 두었다. 먼저, 김정은 자신이 부모님을 모시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사돈인 류성화가 돌아간 후에 너무나 무료하다고 하였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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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자 김정의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은 바로 수급자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김서절은 류성화의 딸인 풍산 류씨(豐山柳氏)와의 사이에 4남 4녀를 두었다. 먼저, 김정은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한데 류성화의 행리(行李 : 길 가는데 쓰는 여러 가지 물건이나 행색, 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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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숙종 43) 10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정발급자는 영주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인 노봉 김정이다. 그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와 사돈지간인데, 그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이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겉봉의 사형(査兄)이라는 말을 볼 때, 수급자인 류생원(柳生員)이 류성화인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김정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