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3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94301
먼저, 김정은 뜻하지 않게 사돈인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서 마음이 많이 위로되었다고 하였다. 이어, 삼계(三溪)의 각 댁이 두환(痘患)에 걸린 듯해서 매우 걱정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신은 원임(院任)에서 면직되어 마땅히 되돌아가야 되지만 일가 여러 곳에서 전염병이 걸출처 : 유교넷 -
294302
1724년(경종 4) 12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맡았던 일의 성패가 어떠한지를 묻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정발급자는 영주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인 노봉 김정이다. 그는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와 사돈지간인데, 그 아들인 김서절(金瑞節)이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피봉의 사형(査兄)이라는 말을 볼 때, 수급자인 류 생원(柳生員)이 류성화인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김정은출처 : 유교넷 -
294303
1725년(영조 1) 3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이 목격한 정경과 며느리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정먼저, 김정은 사돈인 류성화가 보내준 편지를 받고 사돈이 잘 지낸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또한 효계(效戒)의 말을 받으니 크게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김정은 오늘 저녁 무렵에 군읍(郡邑)에 도착해서 직접 목격해보니 이전보다 배가 되어 애통한 마음이 심하다. 며출처 : 유교넷 -
294304
1726년(영조 2) 4월에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아들 김서절(金瑞節)의 정목(政目)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김정먼저, 김정은 사돈인 류성화가 건강하신지, 요즘 천연두가 좀 누그러졌는지, 첨손(僉孫 : 상대의 여러 손자들)들은 반피(搬避 :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바깥으로 거처를 옮기는 일)의 고통은 면했는지 등을 묻고, 자신은 병에 걸려 골골거리면서 지낸다고 근황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305
먼저, 김정은 상대가 강녕하시니 다행이나 다만 시공(緦功)의 상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고 하였다. 김정 자신은 병든 손자가 요절한 것에 대해 비통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으며, 아울러 며느리와 손녀 등에 대한 안부도 전하였다. 세모(歲暮출처 : 유교넷 -
294306
병□(丙□) 12월에 지방관으로 있는 면(沔)이 수급자 미상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면발급자 면(沔)은 내용상 당시 어느 고을의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인물이다. 먼저, 그는 상대가 보낸 편지를 받고서 감사하고 위로되었다고 했다. 다만 관무(官務)에 골몰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답장을 보내지 못해 죄송했다고 하였다. 또 류 생(柳生)이 돌아온 편으로 안부출처 : 유교넷 -
294307
1687년(숙종 13) 8월에 조면(趙沔)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이봉익(李鳳翊) 사건의 처리 과정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 조면발급자 조면은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과 류의하는 서로 재종(再從 : 6촌)의 관계가 된다. 당시 조면은 의성 현감(義城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조면은 읍에 살옥(殺獄) 죄인이 4명에 이출처 : 유교넷 -
294308
1691년(숙종 17) 1월에 조면(趙沔)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전약(煎藥)을 올리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조면편지의 발급자 면(沔)은 조면(趙沔)을 가리킨다. 그는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과 류의하는 서로 재종(再從, 6촌)의 관계가 된다. 편지에서 진정(賑政) 운운한 것으로 보아 작성 당시에 조면이출처 : 유교넷 -
294309
1691년(숙종 17) 6월에 조면(趙沔)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자신이 방문하기에 알맞은 날짜를 회시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조면편지의 발급자 면(沔)은 조면(趙沔)을 가리킨다. 그는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 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과 류의하는 서로 재종(再從 : 6촌)의 관계가 된다. 겉봉의 ‘류익찬(柳翊贊)’은 류의하를 가리키는데, 류의하출처 : 유교넷 -
294310
신□(辛□) 6월에 조면(趙沔)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자신의 모임 참석일정 등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조면편지의 발급자 면(沔)은 조면(趙沔)을 가리킨다. 그는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과 류의하는 서로 재종(再從, 6촌)의 관계가 된다. 피봉의 ‘류익찬(柳翊贊)’은 류의하를 가리키는데, 류의하는출처 : 유교넷 -
294311
1691년(숙종 17) 6월에 조면(趙沔)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만남의 일정에 대해 통고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조면편지의 발급자 면(沔)은 조면(趙沔)을 가리킨다. 그는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과 류의하는 서로 재종(再從 : 6촌)의 관계가 된다. 겉봉의 ‘류익찬(柳翊贊)’은 류의하를 가리키는데, 류의하는출처 : 유교넷 -
294312
신□(辛□) 7월에 조면(趙沔)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대곡(大谷)에서의 만남을 위해 하루를 더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조면편지의 발급자 면(沔)은 조면(趙沔)을 가리킨다. 그는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은 류성룡의 외증손이다. 발급자는 시기적으로 우눌 류의하로 볼 수 있다. 먼저, 조면은 무더위가 혹심한 때에 류출처 : 유교넷 -
294313
편지의 발급자 면(沔)은 조면(趙沔)을 가리킨다. 그는 조수익(趙壽益)의 아들인데, 조수익은 서애 류성룡의 둘째 사위인 조직(趙稷)의 아들이다. 따라서 조면과 류의하는 서로 재종(再從 : 6촌)의 관계가 된다. 겉봉에 ‘봉화 아내(奉化衙內)’라고 되어 있는데, 수급자출처 : 유교넷 -
294314
1691년(숙종 17) 4월에 어주(漁洲) 전오륜(全五倫)이 장 생원(張生員)에게 약재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신을 방문했던 류 생원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전오륜어주 전오륜은 본관이 용궁(龍宮)으로, 통사랑(通仕郞) 전상구(全尙耉)의 아들이자, 운계(雲溪) 전이성(全以性)의 손자이다. 그는 증광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특히 탁월한 효행으로 인해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은 인물이었다. 먼저, 전오륜은 장 생원이 보낸 편지와 약출처 : 유교넷 -
294315
1832년(순조 32) 4월에 전희벽(全熙璧)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먼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말을 보내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제 전희벽발급자 전희벽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편지의 ‘대감조중기체후(大監調中氣體候)’라는 말을 통해, 수급자가 고관을 역임했던 류상조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전희벽은 류상조의 편지를 계속해서 받게 되었기에 매우 기뻤다고 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읽고, 초여름에 조섭(調攝)출처 : 유교넷 -
294316
임년(壬年) 5월에 김서절(金瑞節)이 류 수재(柳秀才)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인 김서절발급자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1740년 증광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김서절은 뜻밖에 상대의 안부편지를 받고, 또 어버이를 모시고 있는 류 수재가 건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되고 기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317
1713년(숙종 39) 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마가목(馬價木)을 올리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1740년 증광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먼저, 김서절은 보름이 넘도록 모시다가 갑자기 작별인사하고 물러나 돌아오니, 섭섭한 마음이 간절하였다고 했다. 이어, 류성화의 안부를출처 : 유교넷 -
294318
발급자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1740년 증광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김서절이 편지에서 자신을 ‘식(息)’이라고 칭하였으므로, 수급자는 그의 장인인 류성화이다. 먼저, 김서절은 며칠 사이 류성화 집안의 안출처 : 유교넷 -
294319
1716년(숙종 42) 5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서책을 보내달라고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로, 풍산 류씨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행차하였을 때에 다시 알현하지 못했기에, 죄송하고 아출처 : 유교넷 -
294320
1716년(숙종 42) 10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부탁받은 혼구(婚具)의 확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부인 풍산 류씨(豊山柳氏)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대동했던 노복이 떠난 후 소식출처 : 유교넷 -
294321
1717년(숙종 43)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돌림병이 치성한 상황에서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부인 풍산 류씨(豊山柳氏)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대동했던 노복이 떠난 후 소식출처 : 유교넷 -
294322
1717년(숙종 43)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로, 풍산 류씨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며칠 전 서리(西里)의 인편으로 편지 한 통을 올렸는데, 받아 봤는지 묻고출처 : 유교넷 -
294323
1717년(숙종 43) 7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주재(主材)를 올리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엊그제 사람을 보내 안부를 여쭸는데 류성출처 : 유교넷 -
294324
1717년(숙종 43) 9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무사히 당도하였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부인 풍산 류씨(豊山柳氏)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여행 중에 있는 류성화가 밤사출처 : 유교넷 -
294325
1717년(숙종 43) 10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류성화가 후사를 세운 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로, 풍산 류씨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접때 노비를 통해 류성화의 답장을 받고서 추운 날씨에출처 : 유교넷 -
294326
1718년(숙종 44)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지난달의 편지를 세초(歲初)에 받고, 류성화가 여행 중에 건승하고 별탈이 없이 도착하였다는 것을 알고서출처 : 유교넷 -
294327
1718년(숙종 44) 8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방문 일정을 알리고 이만부(李萬敷) 집안의 근황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인편이 되돌아간 지 한 달이 넘출처 : 유교넷 -
294328
1718년(숙종 44) 10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집사람이 출발하였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가을장마가 매우 심하다고 하면서출처 : 유교넷 -
294329
1719년(숙종 45)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상중에 건강을 해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답장을 드리지 못하출처 : 유교넷 -
294330
1719년(숙종 45) 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가 제사를 치렀으니 효성스러운 마음에 슬픔이 새로울 것인데 망극한 정을 어떻게 감내하느냐고 하였다. 자신은출처 : 유교넷 -
294331
1719년(숙종 45) 10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의 아들이 우회하는 길에 자신을 방출처 : 유교넷 -
294332
1720년(숙종 46) 1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장사(葬事)의 일자가 변경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기복인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의 노복이 이미 일찍 돌아갔다고 했출처 : 유교넷 -
294333
1721년(경종 1)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류성삼(柳聖三) 등에게 자신의 근황과 신행(新行)에 대한 염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기복인 김서절피봉의 인숙주(婣叔主)와 삼댁(三宅)이라는 표현을 볼 때, 이 편지는 류성화의 사위인 김서절이 류성화의 동생들, 즉 류성삼(柳聖三)․류성민(柳聖民)․류성구(柳聖久)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해가 바뀌도록 뵙지 못하던 끝에 며칠 동안 모시게 되었던 것은 진실로 어느출처 : 유교넷 -
294334
1722년(경종 2) 5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기복인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깊은 골짜기에 칩거하고 있는 바람에 류성화가 보낸 사람이 왕래하지 않는다면,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다고출처 : 유교넷 -
294335
1722년(경종 2) 1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부인의순산 소식 등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계원(溪院)에서 헤어지고 나서 섭섭하였는데 한 달에 세 번이나 안동에 갔으면서도 일 때문에 한 번도 인사하지출처 : 유교넷 -
294336
1723년(경종 3) 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3월 중으로 일정을 잡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편지의 전반부에서는 받은 편지로 알게 된 장인 측의 안부출처 : 유교넷 -
294337
1723년(경종 3) 3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집을 짓는 일의 상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노복을 통해서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서, 가족들의 기거가 만복하다는 것을 살피게 되니, 위안이 되었다고출처 : 유교넷 -
294338
1723년(경종 3) 5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집을 수장(修粧)하기 위해 일꾼을 빌려 주기를 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류성화의 딸인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몇 달 동안이나 소식이 막출처 : 유교넷 -
294339
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이 편지에는 옥천 군수(沃川郡守)에게 내린 유서(諭書)의 등서본이 첨부되어 있는데, 이는 김정에게 내려진 것이다. 『승정원일출처 : 유교넷 -
294340
1728년(영조 4)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자신이 심부름꾼을 보내려던 즈음에 류성화출처 : 유교넷 -
294341
1729년(영조 5) 3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가지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당시 류성화는 장릉 참봉(長陵參奉)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서절은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죽음에 애통한 심정을 표했다. 이출처 : 유교넷 -
294342
1730년(영조 6) 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부친 김정의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편지의 죄생(罪甥)이라는 자칭을 볼 때, 김서절이 그의 장인인 류성화에게 보낸 편지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김서절은출처 : 유교넷 -
294343
1730년(영조 6) 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당시 의금부 옥사에 갇혀 있던 부친 김정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며칠씩이나 소식이 막혔다가 편지를 받고서, 온종일 강변에서 지내는 류성화의 기거가 괜찮다는 것과 다리출처 : 유교넷 -
294344
1732년(영조 8) 1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근황과 혼행(婚行)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기복인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근래 류성화의 기체후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혼례의 기일이 이미 임박하였는데, 이를 어떻게출처 : 유교넷 -
294345
1732년(영조 8) 1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여식과 아들의 혼례 일정 등에 대해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기복인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의 답장을 받고서 류성화가 건승함을 알게 되니,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온계(溫溪출처 : 유교넷 -
294346
1733년(영조 9) 1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집안의 우환 소식 등에 관하여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김서절은 본관이 풍산(豐山)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그는 풍산 류씨(豐山柳氏)와 혼인하여 4남 4녀를 두었는데, 그 풍산 류씨는 바로 류성화의 장녀이다. 따라서 이 편지는 김서절이 그의 장인에게 보낸 것이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가 보내준출처 : 유교넷 -
294347
1734년(영조 10) 5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초대를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몇 달 동안이나 소식이 막혀서 답답하였으나 얽매이는 일로 인해 류성화에게 나아가 인사드리지 못했고 또출처 : 유교넷 -
294348
1734년(영조 10) 1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산양(山陽)의 상사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초대를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식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산양(山陽)의 상사에 대하여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더구나 후사(後事)도 쓸쓸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어출처 : 유교넷 -
294349
1736년(영조 12) 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집사람의 출발 일정과 경로를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근자에 심부름꾼이 계속적으로 왕래하여, 류성화가 편치 못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이미 받았다고 하였다. 지금출처 : 유교넷 -
294350
1736년(영조 12) 6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가지 근황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에는, 김정이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김서절도 부친을 모시면서 이곳에 있었던 것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