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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영조 12) 7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그는 풍산 류씨(豊山柳氏)를 아내로 맞아,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몇 달 동안 심부름꾼이 왕래하지 못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352
1740년(영조 16) 5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혼사(婚事)의 경과 등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의 조카가 내방한 편으로,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 류성화가 건승하다는 것과 두기(痘氣)가 없어져서출처 : 유교넷 -
294353
1740년(영조 16) 12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매우 추운 계절에 류성화의 건강이 연이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김서절은 하회(河回)에 의단(疑端출처 : 유교넷 -
294354
1741년(영조 17) 8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류성사(柳聖師)의 사망에 대해 조위의 뜻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류성화에게 잠깐 인사 드렸던 것이 거의 한달 반이 되었기에, 소식이 궁금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출처 : 유교넷 -
294355
1742년(영조 18) 1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아내의 친정나들이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표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로, 풍산 류씨 사이에 아들 김목원(金穆源) 등을 두었다. 먼저, 김서절은 보냈던 노비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심부름꾼이 류성화의출처 : 유교넷 -
294356
1743년(영조 19) 7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고 딸의 혼사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입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직접 찾아뵙거나 사람을 보내어 문안을 드리는 일을 소홀히 하였기에,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어, 올해출처 : 유교넷 -
294357
1743년(영조 19) 9월에 김서절(金瑞節)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근황을 전하고 딸의 혼처를 정하는 문제로 부탁을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여서 김서절발급자인 김서절은 생원시에 합격하고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서호 류성화의 첫째 사위이다. 먼저, 김서절은 중부(仲父)가 와서, 류성화가 감기를 앓다가 이미 좋아졌다고 하였으나 다시 소식을 듣지 못하였기에,출처 : 유교넷 -
294358
을유(乙酉) 1월 10일, 김양현(金良鉉)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양현김양현(金良鉉)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생(生)이라고 하였고, 피봉(皮封)에는 개중(介仲)이라고 썼다. 자신의 자(字)인 것 같다. 작성 일을 원월(元月) 십일(十日)이라고 하였는데, 삼월(三月)로 잘못 보기 쉽다. 지난겨울에 만났다 이별한출처 : 유교넷 -
294359
1741년(영조 17) 8월에 김오응(金五應)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향중(鄕中)의 일에 대하여 동의를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오응김오응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후손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兵曹佐郞)과 함평 현감(咸平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류성화를 피봉에서 척장(戚丈)이라 칭하였는데, 이는 그의 선조인 김광수가 류성룡의 외조부이기 때문인출처 : 유교넷 -
294360
1766년(영조 42) 9월에 김용겸(金用謙) 등이 난옹(懶翁) 류운(柳澐)에게 부조(扶助)를 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용겸·신건 등 13인발급자는 김용겸을 포함하여 모두 13명이다. 피봉의 계방(桂坊)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모두 당시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소속 관원이었다. 피봉의 황간(黃澗)은 당시의 황간현(黃澗縣)을 가리키는 것으로, 난옹 류운이 1764년(영조 40) 12월에 이곳출처 : 유교넷 -
294361
1745년(영조 21) 7월에 김용석(金龍錫)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김서절의 상사 때에 직접 가서 위문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생 김용석먼저, 김용석은 근자에 소산(素山)에서 외재(畏齋) 류종춘(柳宗春)과 여러 일가의 방문과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서, 자신에 대한 후의(厚誼)를 알게 되니, 감사하였다고 했다. 또한, 그때 류성화가 건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위안이 되었다고도 하였다. 이어, 시출처 : 유교넷 -
294362
1830년(순조 30) 10월에 김우찬(金宇燦) 등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경림서원(慶林書院)의 사태와 관련된 단자에 들어갈 명첩을 보내 주기를 요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우찬·김진국 등 6인발급자는 김우찬, 김지찬(金趾燦), 김귀수(金龜壽), 김정수(金靜壽), 김진악(金鎭岳), 김진국(金鎭國)이다. 피봉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모두 금계(金溪)에 있던 의성 김씨(義城金氏) 인물들이다. 이 편지는 진주(晉州)의 경림서원(慶林書院)과 관련된 것인데, 1출처 : 유교넷 -
294363
발급자 김희수는 본관의 의성(義城)이고 자는 이응(以凝)으로, 김계운(金繼運)의 아들이다. 특히 서법(書法)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수급자는 시기적으로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인 것으로 보인다. 병호시비(屛虎是非) 관련 편지이다. 김희수는 집안 조카에게 도착출처 : 유교넷 -
294364
1731년(영조 7) 8월에 김이득(金二得)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지필(紙筆)을 부탁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이득서호 류성화는 당시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김이득은 류성화가 현감으로 부임하러 남쪽으로 내려간 후에 소식이 막혔기 때문에 늘 서글픈 마음이 간절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산음(山陰)의 승려 편으로 수령 정사를 살피고 있는 류성화가 이전출처 : 유교넷 -
294365
1824년(순조 24) 10월에 김이선(金履善)이 수급자 미상에게 비석 개수식(改竪式)에 왕림해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이선발급자 김이선은 본관이 안동(安東), 자가 중호(仲浩)로,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후손이다. 그는 귀와(龜窩) 김굉(金㙆)의 문인이다. 수급자는 본문의 태체(台體)라는 말을 볼 때,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로 보인다. 먼저, 김이선은 묵계서원(默溪書院출처 : 유교넷 -
294366
수급자는 이 편지의 정리(政履)라는 말을 볼 때,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봉화 현감(奉化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던 류의하(柳宜河)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정근은 류의하와 서울에서 서로 만났던 일이 때때로 꿈속에 보일 정도로 그리웠는출처 : 유교넷 -
294367
병오(丙午) 2월 19일, 김정식(金廷烒)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정식김정식(金廷烒)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옛 친분이 이미 도타운데 또 새로운 교분(交分)을 맺으니, 이는 실로 하늘이 그 편의를 제공하여 평일(平日)의 소원을 보상(補償)해 준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가르침을 받은 지가 일천(日淺)한데, 갑자출처 : 유교넷 -
294368
병신(丙申) 10월에 김중재(金重載) 등이 수급자 미상에게 서원에 분배된 돈에 대해서 여유를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김중재발급자는 김중재와 김성존(金性存)이다. 겉봉의 ‘류 고성(柳高城)’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의 증손(曾孫)인 소헌(疎軒) 류철조(柳喆祚)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성군수(高城郡守)를 역임했던 그는 류성화의 아들 난옹(懶翁) 류운(柳澐)의 막내아들인 류사춘(柳출처 : 유교넷 -
294369
1738년(영조 14) 9월에 김좌원(金左源)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좌원김좌원은 본관이 풍산(豊山)으로, 성균 생원(成均生員) 김서천(金敍天)의 아들이다. 그는 1754년 증광 생원시에 입격하게 된다. 먼저, 김좌원은 적막하던 물가에서 오랫동안 류성화의 맑은 가르침을 받게 되니, 지금까지도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이어, 돌아간 류성화가출처 : 유교넷 -
294370
1740년(영조 16) 12월에 김준원(金浚源) 등이 수급자 미상에게 화계(花溪) 류성증(柳聖曾)의 사마시 합격을 축하하고 일정상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김준원·행원 등발급자인 김준원과 오은(梧隱) 김행원(金行源)은 옛 영주의 풍산 김씨 김서붕(金瑞鵬)의 아들이다. 김서붕의 세 아들 김준원·김행원·김익원(金益源)은 모두 영조대에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김행원은 김서응(金瑞應)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준원 등은 서호 류성화의 사위인 김서출처 : 유교넷 -
294371
1724년(경종 4) 5월에 김준하(金浚河)가 류 원장(柳院長)에게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곧바로 전해주기를 요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준하김준하는 류 원장에게 갔던 날에는 마침 일정이 바빴던 것으로 인하여 여유롭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기에 매우 아쉬웠다고 편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류 원장이 멀리서 안부편지를 보내주니, 김준하는 이를 받고 매우 감사하였다고 했다. 또 편지를 보고, 류 원장이출처 : 유교넷 -
294372
1694년(숙종 20) 9월에 김중안(金重安)이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방문계획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교생 김중안김중안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구재(鳩齋) 김계광(金啓光)의 형인 김계상(金啓祥)의 아들이다. 그는 증광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피봉에 익찬(翊贊)이라는 관직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데, 1690년 5월 14일에 류의하가 이 관직에 임명된 바 있다. 먼저, 김중안은출처 : 유교넷 -
294373
김진정은 그저께 가졌던 만남은 어지러운 상황으로 인하여 차분하게 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므로, 아쉬웠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며칠 밤사이에 상대의 여후(旅候 : 여행 중에 있는 상대의 기체후)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374
1830년(순조 30) 8월에 탄와(坦窩) 김진화(金鎭華)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경림서원(慶林書院)의 행사와 관련된 도회(道會)에 꼭 참석해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김진화탄와 김진화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주손(冑孫)이자, 구한말 영남의 대유(大儒)인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부친이다. 그는 음사(蔭仕)로 여러 관직을 거치기도 하였다. 수급자는 편지의 대체후(台體候) 등의 말을 볼 때, 일우 류상조인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294375
1746년(영조 22) 8월에 추암(楸菴) 김하구(金夏九)가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지인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 등을 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김하구김하구는 영덕 출신의 학자 및 관료이다. 그는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한 바 있으며,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문장 동자(文章童子)라 불렸다고 한다. 피봉의 ‘김 해남(金海南)’은 자신을 가리키는 호칭인데, 1730년 10월에 해남 현감(海南縣監)으로 임명된 바 있다출처 : 유교넷 -
294376
1662년(현종 3) 10월에 김헌(金憲)이 수급자 미상에게 노비를 추쇄하는 일로 청도(淸道)로 간 류의하(柳宜河)의 편의를 봐줄 것을 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헌김헌은 편지에서 자신이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의 아들인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의 종숙(從叔)이라고 하였다. 이 편지는 일반적 투식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청탁의 뜻을 담아 보내는 칭념(稱念)에 속하는 것이다. 김헌은 상대방이 서울에서 향리로 내려온 날에 자출처 : 유교넷 -
294377
1673년(현종 14) 1월에 오헌(迂軒) 김총(金𤧚)이 수급자 미상에게 신임 사또 부임 전이라도 보리씨를 나누어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김총김총은 본관이 광산(光山)으로,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고 정언(正言)과 수찬(修撰) 등의 관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1668년에서 1672년까지 옥구 현감(沃溝縣監)으로 재직하다가, 1673년 8월에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으로 임명되었다.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출처 : 유교넷 -
294378
1881년(고종 18) 2월에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이 고종(姑從)인 전원(田園)류도헌(柳道獻)에게 부친 묘소 이장 일의 경과를 알리고 소행(疏行)에 대한 소회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 김흥낙발급자 김흥락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주손으로, 영남학파의 학맥을 이으면서 많은 문도를 길렀던 학자이다. 그는 김종수(金宗壽)의 손자인데,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의 아들 류진익(柳進翼)이 김종수의 둘째사위이므로, 류진익의 자식들과는 고종 사촌간이 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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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년(경종 4) 1월에 김행만(金行萬)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사액(賜額)을 청하는 일로 서울에 올려 보낼 유생들의 노자 마련에 도움을 주기를 요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경제 김행만김행만은 예천에 거주하던 선성 김씨(宣城金氏) 가문의 인물로, 노주(蘆洲) 김태일(金兌一)의 셋째아들이다. 후에 김원일(金元一)의 후사가 되었다. 김행만은 자신을 경제(庚弟)라고 칭하였는데, 그는 1668년생이고 서호 류성화도 1668년생이다. 피봉을 볼 때, 당시출처 : 유교넷 -
294380
1730년(영조 6) 9월에 김용경(金龍慶)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김용경피봉의 류 봉사(柳奉事)는 1729년 7월에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에 임명된 바 있는 서호 류성화를 가리킨다. 발급자인 김용경은 충청도 서산(瑞山) 출신의 관인(官人)으로,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에 홍문관 부응교(弘文館副應敎)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용경은 온건한 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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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甲午) 2월에 김준흠(金駿欽)이 새해 인사를 곧바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양해를 구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생 김준흠편지의 태감 기체후(台監氣體候)라는 말을 볼 때, 수급자는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갑오년은 1834년이 된다. 먼저, 김준흠은 오랜 시간 동안 안부를 묻지 못하였기에 상대가 그리우면서도 죄송하였다고 했다. 이어, 상대의 건강이 어떠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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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류성화는 뜻밖에 도산서원의 중임(重任)을 맡게 되었는데, 마침 멀리 바깥에 나가 있다가 어제 저녁에야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춘향(春享)이 이미 임박한 상황에서 나아갈 방도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단자를 올리지도 않고 이유 없이 물러났으므로, 이미 체모(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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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순조 12) 1월에 효운루(曉雲樓) 김회연(金會淵)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홍경래 난으로 인한 노고를 위로하고 병사(兵使)가 군향미(軍餉米)를 잘 처리하였는지를 묻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회연발급자 김회연은 본관이 청풍(淸風)이고 자가 문통(文通)으로, 이조 판서 김종정(金鍾正)의 아들이다. 그는 사마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에는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편지의 ‘태혜찰(台惠札)’이나‘태기출처 : 유교넷 -
294384
1674년(현종 15) 2월에 김경기(金慶基)가 우눌(愚訥) 류의하(柳宜河)에게 근황을 전하고 잣 등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김경기피봉의 ‘봉화 아(奉化衙)’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이 편지의 수급자는 우눌 류의하이다. 그는 1671년 3월에 봉화 현감으로 임명되어, 1674년 8월 무렵까지 재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편지에 기재된 갑년(甲年)이 1674년인 갑인년(甲寅年)임을 알 수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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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영조 13) 12월에 김경탁(金警鐸)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김성탁(金聖鐸) 부자(父子)에 관한 소식의 출처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경탁발급자인 김경탁은 본관이 의성(義城), 자가 진숙(振叔)으로, 김태중(金泰重)의 아들이다. 그는 바로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의 동생이기도 하다. 먼저, 김경탁은 추운 계절에 류성화의 기거가 만복(萬福)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형(家兄) 곧 김성탁이 올해출처 : 유교넷 -
294386
1737년(영조 13) 2월에 김계탁(金啓鐸)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거접(居接) 실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김계탁《무신창의록(戊申倡義錄)》에 의하면, 발급자 김계탁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승지(承旨)를 지냈던 김영(金瑛)의 6세손이고, 현감을 지냈던 김암(金壧)의 아들이다. 그는 문장(文章)과 기절(氣節)로 추중을 받았다고 한다. 먼저, 김계탁은 봄추위에 류성화의 기거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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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영조 14) 4월에 육인재(六忍齋) 김광국(金光國)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귀가 일정 등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말 김광국발급자 김광국은 본관이 광산(光山), 자가 사능(士能)으로, 권만(權萬) 등과 친밀히 교유하면서,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학자였다. 1705년에는 증광 진사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먼저, 김광국은 류성화와 헤어진 지 하룻밤이 지나서 섭섭함과 그리움이 간절해지고출처 : 유교넷 -
294388
기해(己亥) 1월에 이사성(李師聖) 등이 문집 등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김만중·이사성발급자는 이사성과 김만중(金萬重)이다. 이들은 모두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를 모신 진안(鎭安) 인화사(仁化祠)의 원임(院任)을 맡고 있었다. 류원지는 이 진안의 현감으로 재직한 바 있다. 먼저, 이사성 등은 거리가 멀고 인편이 드물어서 계속하여 인사를 하지 못출처 : 유교넷 -
294389
1823년(순조 23) 10월에 박지열(朴旨說) 등이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경림서원(慶林書院)의 원임으로 선출하였다는 등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박지설·한광리 등 5인발급자는 박지열, 한광리(韓光履), 강수(姜晬), 조희재(趙熙載), 김면운(金勉運)이다. 피봉에는 이들이 ‘경원(慶院)’ 소속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경원은 김성일(金誠一)과 조종도(趙宗道)를 모셨던 진주(晉州)의 경림서원(慶林書院)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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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1월에 김항수(金恒壽)가 하회(河回)에 성주(星州) 정 형(鄭兄)의 편지를 자신에게 보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항수이는 안동(安東) 서후 봄파[春坡]에 거주하는 김항수가 하회의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김항수는 접때 자신의 답장을 상대들이 이미 보았으리라고 하였다. 이어, 상대들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예전대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김항수는 성주(星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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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戊子) 5월 8일, 김상무(金相戊)가 황계정각(黃溪政閣)으로 보낸 편지. 수급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 기록자료>고문서 / 김상무김상무(金相戊)가 황계정각(黃溪政閣)으로 보낸 편지이다. 수급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피봉에 자신의 사는 곳을 대능(大陵)이라고 하였다. 여러 해 안부가 막혀 정녕 우러러 사모하던 차에 뜻밖에 상대방 편지를 받고, 기거(起居)가 편안하다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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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戊子) 3월에 김서각(金瑞珏)이 수급자 미상에게 상사를 위문하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김서각먼저, 김서각은 전에 상대의 편지를 받았으나 아직 답장을 지체하고 있었기에, 항상 아쉬운 마음이 간절하였다고 했다. 이어 화창한 봄날에 정사(政事)를 살피는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김서각은 상대 종숙부(從叔父) 어르신의 상사에 대해서 매우 애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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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10월에 구물당(九勿堂) 김서필(金瑞必) 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김서절의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비통한 심정 등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기복인 김서필·서길발급자 김서필과 김서길(金瑞吉)은 노봉(蘆峯) 김정(金亻+政)의 아들이다. 그들의 형은 김서절(金瑞節)인데, 김서절은 서호 류성화의 첫째사위이다. 김서절은 이해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들은 형님이 석 달 동안 위태롭기는 했으나, 강견(剛堅)하고 인후하였기에, 반드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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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11월에 김서동(金瑞東)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상중(喪中) 근황을 전하고 겸하여 위문을 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자 김서동발급자인 김서동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김경헌(金景瀗)의 장남이다. 그는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의 증손이자, 수찬(修撰)을 역임한 김여건(金汝鍵)의 손자이다. 먼저, 김서동은 가을에 류성화의 편지를 받고 매우 감사하였으나, 아직 답장을 쓰지는 못하였으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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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순조 3) 10월에 김성구(金聖榘)가 일우(逸愚) 류상조(柳相祚)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약방(藥方)을 일러주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말 김성구피봉의 ‘류승지(柳承旨)’라는 말에서, 수급자가 일우 류상조임을 알 수 있다. 이 무렵에 그는 우승지(右承旨)에 임명된 바 있다. 발급자인 김성구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다만, 피봉에 국동(菊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아마도 의성(義城)에 거주하던 의성 김씨(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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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용(金聖鎔)이 존장(尊丈)에게 사람을 추천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성용김성용(金聖鎔)이 존장(尊丈)에게 사람을 추천하는 편지이다. 자신을 시생(侍生)이라고 하였다. 작성일은 쓰지 않고 “즉(卽)”이라고만 하였다. “바로 지금 썼다”는 뜻이다. 어제 뵈었으나 길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서운하고 슬프다고 하였다. 숙직(宿直) 중의 건강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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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甲寅) 7월에 김성원(金聖源)이 류 원장(柳院長)에게 백일장의 개최 날짜를 조금 뒤로 물리는 문제를 품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성원먼저, 김성원은 류 원장이 부(府)로 들어왔을 때에 날씨가 매우 더웠는데, 류 원장이 돌아간 후에 기거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탈 없이 지내고 있으니, 이는 실로 류 원장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 덕분이라고 했다. 김성원은 백일장 날짜가 머지않았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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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5월에 김성렴(金聖濂)이 류 원장(柳院長)에게 서원의 재정 문제로 왕림해 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김성렴김성렴은 먼저 서원의 인편으로 때때로 안부를 살피고 있으므로, 사모하는 마음에 위로가 되지만,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항상 한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류 원장이 먼저 편지를 보내주니, 감사하면서도 자신의 불민함이 죄송하다고 하였다. 이어, 최근의 더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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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년(정조 5) 8월에 만암(晩巖) 김숭묵(金崇黙)이 외재(畏齋) 류종춘(柳宗春)에게 《학봉속집》의 교감에 대한 만족스러움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말 김숭묵발급자 김숭묵은 본관이 의성이고, 자가 사준(士濬)이다. 그는 죽소(竹所) 김양현(金良鉉)의 아들로, 이상정(李象靖)과 최흥원(崔興遠)을 스승의 예로 모시면서, 학문의 요체를 심의(心意)·언동(言動)에 두었다. 수급자는 토계댁(兎溪宅)이라는 택호로 보아, 류종춘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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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영조 6) 9월에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이 서호(西湖)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을 신임 영해 부사에게 미리 소개하여 영해에서의 일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김성탁발급자 김성탁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학맥을 계승한 영남의 명망 있는 대유(大儒)이다. 명의 죄인(名義罪人)의 오명을 쓴 스승 이현일을 신원하는 소를 올렸다가 제주와 광양에서 유배 살 이를 하였고, 배소(配所)에서 운명하였다. 수급자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