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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7월 25일 이정연(李鼎延)과 병연(秉延)이 외조부에게누이 혼사 문제를 알린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이정연전에 인편이 다녀간 뒤로 다시 소식이 막혀 체후(體候)가 편안한지 몰라서 그리운 마음을 견딜 수 없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부모를 모시고 전과 같이 공부하며 다른 질병이 없어 다행이라고 먼저 알렸다. 누이 혼사는 고모가 신신 당부하여 반드시 어그러질 경우가출처 : 유교넷 -
294702
1747년(영조 23) 11월 4일 이정연(李鼎延)이 외조부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이정연인편이 와서 보내준 서찰을 받고 추운 날씨에 복을 입는 동안의 기체(氣體)가 매우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위안이 되었고, 종조부 장례절차가 문득 지나가 비탄한 마음이 더욱 절실할 것 같아 염려가 된다고 걱정하였다. 자신은 어제 혼례를 마쳤는데 신랑이 매우 어질고출처 : 유교넷 -
294703
1748년(영조 24) 12월 입춘일에 생질 이정연(李鼎延)이 외삼촌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정연괴롭게도 소식이 막혀 그리운 마음을 그칠 수 없는데, 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섣달 추위에 체후(體候)를 지탱한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위안이 되나, 세월은 탄환과 같아 문득 연말에 이르니 계절에 따라 지극한 아픔이 어찌 그러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자신은 그저 슬프고출처 : 유교넷 -
294704
1749년(영조 25) 12월 21일에 생질 이정연(李鼎延)이 외삼촌에게 부탁한 새 달력을 보낸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정연지난번 인편에 보내주신 답장은 지금까지 위안이 되나 소식을 들은 뒤 인편이 막혀, 얼마 남지 않은 섣달에 상중의 체후(體候)가 편안한지 몰라 매우 그립다고 보고픈 마음을 전했다. 세월이 흘러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추모하며 따르지 못하는 아픔은 더욱 다시 끝이 없을출처 : 유교넷 -
294705
1749년(영조 25) 10월 23일에 생질 이정연(李鼎延)이 외삼촌에게 오록(梧麓) 조부의 종상(終祥)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정연오록(梧麓) 조부의 종상(終祥)소식이 오래 막혀 그리움을 견딜 수 없는데 첫 추위가 심한 이때 기체(氣體)를 지탱하는지를 먼저 물었다. 세월은 머무르지 않아 계절은 겨울철로 접어들었는데, 추모하며 따르지 못하는 아픔은 더욱 끝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슬프고 그리울 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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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소식이 막혀 매우 그리웠는데 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추운 날씨에 복을 입는 동안의 체후(體候)가 매우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고는 위안이 되고, 막내 할아버지의 장례도 또한 장소가 정해졌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혼례 뒤에 공적 사적인 일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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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6월 2일에 이정국(李楨國)이 군복(君復)을 벌한 문제로 병호시비(屛虎是非)를 다시 논의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자신의 의견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재종제 이정국3년이나 병을 앓아 외삼촌에게 가지 못하여 탄식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삼복더위에 이르러 조리하시는 몸은 늘 강녕하며 집안 식구들 모두 편안한지 궁금해 하였다. 도정(都正 : 조선시대 정3품 벼슬) 삼촌께서 늙바탕에 학질을 앓다가 완쾌되었다고 하니 부럽고출처 : 유교넷 -
294708
1794년(정조 18) 3월 7일에 이정국(李楨國)이 시험에 합격 한 것을 축하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이정국요사이 축하하는 서찰을 보냈는데 보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열흘이 안 되어 갑과(甲科)에 합격한 소식이 뒤따르니 기이하고 훌륭하다고 축하하였다. 또 들으니 세제(賜祭)의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선 확실한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황송하고 감격하게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709
1736년(영조 12) 10월 14일에 이제겸(李濟兼)이 후조당(後凋堂) 김원장이 권한 일에 대하여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제겸수신인의 조카가 돌아가는 편에 겨우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또 내려준 서찰을 받으니 두터이 돌보아 주시는 은혜는 더욱 말할 것이 없고, 요즈음 정양하시는 도체(道體)가 좋다고 하니 아랫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위안을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서찰에서 말한 일은 그가 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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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10월 19일에 이제겸(李濟兼)이 산음 유성화(柳聖和)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제겸오래 동안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계절에 따라 보내는 선물도 일 년이나 막혔으니 어찌 늘 우러르는 사람의 일이겠느냐고 하면서 늘 부끄럽고 죄스러웠는데, 뜻 밖에서 찰을 먼저 보내주니 성의(聖意)를 어찌 감히 감당하겠느냐고 미안해하였다. 서찰을 통해 가을의 이른 추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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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9월 7일에 이제겸(李濟兼)이 산음 유성화(柳聖和)에게 자신의 병과 아들의 사정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제겸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살아가는 형편이 연달아 편안함을 누린다고 하니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고 첫 인사를 했다. 자신은 앓던 다리가 비록 완전한 절름발이는 면했으나 정상을 회복하는 것은 아직도 멀었고, 아이가 우연히 해직되어서 이때 서울의 행차는 쓸데없는 소비가출처 : 유교넷 -
294712
1741년(영조 17) 2월 6일에 이제겸(李濟兼)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죽음을 앞둔 질녀를 대신하여 그의 후사를 세우는 문제를 결정하여 줄 것을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제겸이 때 건강 상태가 더욱 보위되고 복 받으리라 생각하니 매우 위안이 된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천만 뜻밖에 선인(先人)을 특별히 추증하는 명이 황천까지 미치니 매우 슬프고 영광스러워 감격의 눈물이 교대로 흐른다고 기쁨을 전하였다. 질녀의 병이 날로 깊어져 아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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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영조 14) 11월 10일에 이제기(李濟基)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부탁한 일의 처리 계획을 알리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재기상대의 행차는 구성(龜城)으로부터 돌아왔고 자신 또한 상산(商山 상주)으로 가서 오래 만나지 못하여 늘 서글프고 한스러웠는데, 뜻 밖에 먼저 보내준 서찰을 받고 추운 계절에 조용히 수양하는 몸이 계절에 따라 더욱 복을 더한다고 하니 매우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출처 : 유교넷 -
294714
1741년(영조 17) 12월 20일에 이제기(李濟基)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상문을 할 수 없는 사정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재기일전에 서찰을 써서 위문한 것을 받았는데, 집에는 잠깐 머무르게 되어 늦게 뜯어보고 오래 답장을 미루어서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그 후에 여러 날이 지났으나 한가한 가운데 도를 추구하는 생활이 어떠한지 매우 그립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이 근래 당한 일은 실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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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12월 3일에 이제담(李濟聃)이 유참봉(柳參奉)에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시하 이제담어제 찾아가 인사를 드렸는데 몹시 급하고 바빴지만, 반평생 사모하던 마음을 쏟아내고 돌아와서, 기쁘고 다행함은 꿈속에서도 헛소리를 할 정도라고 하였다. 밤이 돌아왔는데 제실에서 조리하는 체후가 더욱 편하리라 생각하니, 도리어 위안이 되고 그리운 마음이 지극하다고 인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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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11월 24일에 이제담(李齊聃)이 유참봉(柳參奉)에게 공제(公除)가 지난 뒤 찾아가서 인사드릴 계획을 알리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이제담학가(鶴駕 : 영조의 장자 효장세자를 가리킴)가 돌아가시어 종사의 근심과 신민(臣民)의 아픔이 끝이 없는데, 근래 정지(政紙 : 인사를 적은 종이)를 보니 상대방이 침재(寢齋)에 와서 숙직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땅은 10리라 가깝고 정의는 5세나 사귀어 두터운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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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영조 6) 6월 23일에 이제담(李齊聃)이 유봉사(柳奉事)에게 읍을 다스리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부채를 보내면서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시하 이제담인사를 하고 헤어진 지 홀연히 몇 년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번거로운 일에 골몰했고, 중간에는 아이의 죽음에 마음 상했으며, 끝에는 질병에 걸려, 서찰로 안부를 여쭙지도 못하여 서글픈 마음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늦더위가 혹심한데 객지에서 벼슬하시는 체후(體候)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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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2월 20일에 이제담(李濟聃)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찾아가서 인사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시 이제담진주에 있을 때 조카가 방문하여 보내준 서찰을 받고는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말할 수 없었는데, 그가 돌아갈 때는 마침 고시관으로 차출한다는 공문을 받아 답장을 쓰지 못하여 마음만 허전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신중하다가 도리어 공손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한스출처 : 유교넷 -
294719
1744년(영조 20) 7월 23일에 이제담(李濟聃)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병풍을 만들어 보낸다는 것을 알리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제담늦더위에 체후(體候)가 어떠한지 그리운 마음이 지극하다고 첫 인사를 한 뒤, 자신은 여덟 달 동안 병이 낫지 않다가 겨우 이 세상에 살려는 생각이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병풍을 만들어 두었으나 심부름꾼을 보내는 것도 폐가 있을 것 같아, 삼가 종이 만출처 : 유교넷 -
294720
1701년(숙종 27) 11월 27일에 이(珆)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앞으로는 진실한 도를 이야기하며 서로 훈계하고 경계하기를 힘쓰자고 하면서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승려 안(鴈)이 이르러 서찰과 시를 받아 두세 번 읊조리니, 상쾌하여 마치 현상과 강설(玄霜과 絳雪 : 선가에서 먹는 단약 이름)이 입에 들어온 것 같아, 적막한 회포를 깨우치기에 충분했다고 좋아했다. 공부하는 생활이 늘 좋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기쁘나, 한 마디 말출처 : 유교넷 -
294721
그립던 가운데 서찰과 시 여러 수를 받아, 시는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즐기고 서찰은 뜯어보고는, 종이가 낡아지고 먹빛이 변하는 줄도 몰랐다고 여러 번 읽었다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하였다. 조용한 가운데 완미하며 궁구하여 날마다 새로 얻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탄식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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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 문안을 드리지 못하여 그리운 생각아 쌓였는데 용(容)씨 집 인편으로 서한을 받으니 버리지 않는 깊은 뜻에 깊이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해가 바뀌는 섣달 추위에 부모님 모시고 공부하는 생활이 좋은 복을 누린다고 하니 매우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출처 : 유교넷 -
294723
먼 길에서 행차가 돌아온 뒤로 즉시 문안을 드리려 했으나 인편이 없어 실행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으니 버리지 않은 깊은 뜻에 먼저 감사함을 표시하였다. 따뜻한 봄날에 부모님 모시고 공부하는 생활이 좋고, 이번 과거에 형이 실패를 면하지 못했다는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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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년(숙종 29) 6월 21일에 이(珆)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상서(尙書)』를 읽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생각하는 공부 방법을 권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마음속에 잊지 않는 두터운 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다만 일찍이 부모님의 환후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미 평안하다 하니 기쁘다고 했다. 정성스럽게 벽경(壁經 : 『상서(尙書)』)을 읽으려 한다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느출처 : 유교넷 -
294725
1680년(숙종 6) 4월 9일에 이유장(李惟樟)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부탁받은 황선생 필적을 보내면서, 막걸리를 보내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이유장어제 손자가 돌아와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는 생활이 좋다는 서찰을 받았고, 또 사람을 보내어 위로의 말을 해 주어서 매우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다만 서찰 가운데 칭찬하여 말한 것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 도리어 매우 부끄럽고 두렵다고 겸손해 하였다. 자출처 : 유교넷 -
294726
1697년(숙종 23) 12월 25일에 이유장(李惟樟)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앞으로는 해물 같은 물건을 보내지 말 것을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기 이유장며칠 사이에 거듭 보내준 서찰을 받으니 말할 수 없이 매우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다만 존당(尊堂 : 상대방의 부모)께서 병을 앓은 지 며칠 되었다고 하는데, 듣고는 놀랍고 염려됨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걱정을 하였다. 자신은 전에 앓던 감기가 여러 날 낫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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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2년(숙종 18) 12월 22일에 이유장(李惟樟)이 전염병에 대한 걱정과보내준 달력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유장돌아가 부모님 모시는 생활이 만복을 누린다는 서찰을 받고 즉시 달려가 막힌 회포를 풀려고 하였으나, 병이 낫지 않은 가운데 기동이 쉽지 않아 한스럽게 여겼다고 하였다. 어제 먼저 베풀어준 문안을 받고 감사한 나머지에 도리어 몹시 무안하다고 했다. 서울에 전염병이 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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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년(숙종 17) 8월 16일에 이유장(李惟樟)이 참봉공(參奉公)이 벼슬에 나아가게 된 것을 축하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유장어제 교관공(敎官公)이 방문하여 보내준 문안을 받아 말할 수 없이 매우 감사하였는데, 며칠 사이의 체후(體候) 동지(動止)가 만복을 누리시는지 구구한 마음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지난날 참봉공(參奉公)이 행실이 몸과 명예에 닦여져서, 조정에 알려져 이미 벼슬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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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숙종 26) 11월 27일에 이유장(李惟樟)이 유원장(柳院長)에게 병의 상태를 알리고, 보내준 쑥을 받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유장노인의 좋은 대화는 전일의 모임 같은 것이 없어, 이별하고는 텅 비고 서글픔을 가누기 어렵다고 헤어진 뒤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전에 시장 인편을 통해 형이 먼저 보내준 문안을 받으니 감사하고 다행함을 그만둘 수 없고, 심한 추위에 한가히 거처하는 생활이 좋다는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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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에 이유장(李惟樟)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아이의 공부를 맡기고 잘 가르쳐 주기를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유장정이 담긴 문안 서찰을 받고 한가한 곳 맑은 재실에서 책을 보는 재미가 있음을 살피니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움을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세상 재미에 한가하지 않아, 평소에 강력한 보필자가 있기를 바랐는데, 지금 들으니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니, 과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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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戊寅) 11월 그믐날 이재연(李宰延)이 수신인 미상에게 신랑이 착용할 초립, 망건 등의 물건을 내려 보내는 문제를 상의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재연일전에 맹희(孟熙)가 나올 때 행차가 이미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염려가 되었는데, 날씨가 차츰 추워지는데 행차가 잘 도착하였으며 여관(旅官)에서의 건강은 좋은지 몰라 그리움만 지극하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편안하나 아이의 병이 보름 사이에 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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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庚戌) 8월 19일 이지형(李之馨)이 유봉사(柳奉事)에게 가까운 일가의 장례를 위하여 목수를 며칠만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복인 이지형근래 서찰을 받고 지금까지 위안이 되었는데, 며칠사이 벼슬하시는 가운데 체후(體候)가 좋으리라고 생각하며, 명삽죽(銘翣竹 : 미상)을 즉시 내려주어서 감사하고 다행함이 실로 많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드릴 말씀은 귀 감영의 목수 김귀익(金貴益)은 아주 가까운 일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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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영조 12) 7월 29일 이증목(李增穆)이 산음(山陰) 류성화(柳聖和)에게 아들의 혼사가 이루어지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증목여러 해 뵙지 못한 나머지 초봄에 고헌(高軒 : 상대방을 지칭)을 직접 찾아갔는데, 존장께서 먼 곳에 나갔기 때문에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돌아와, 이때의 서운함이 지금까지 풀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늦더위가 아직도 심한데 정양하시는 체후(體候)가 매우 편안하다고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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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10월 26일 이재(李載)가 유참봉(柳參奉)에게 보낸 문안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이재일전에 행차가 귀댁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뻤고, 여러 해 막힌 소식을 듣는 것 같았다고 기뻐했다. 계속되는 고민과 근심으로 골몰하느라 한 번도 직접 모시고 조용히 가르침을 받지 못했으며, 땅이 외지고 인편이 드물어 한 통의서찰로 문안을 대신하는 것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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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6월 6일 이재보(李齊寶)가 유참봉(柳參奉)에게 자신과종형의 소식을 전한 문안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하생 이제보지난날 찾아갔을 때에는 어지럽고 바빠서 조용히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지금까지매우 서글펐는데, 뜻밖에 보내준 문안 서찰을 받고 근래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매우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동료 관원이 끝내 체직되고 또 모자라는 인원을 보충하지도 않아서, 제실(齋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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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3월 23일 이제익(李齊翼)·제항(齊恒)·제대(齊岱) 등이 산음(山陰) 류성화(柳聖和)에게 자신들의 대(臺)에서 여는 모임에 참석을 청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제익·제항·제대가까운 거리인데 뵙지 못한 것이 몇 년인지 기억하지 못하는데, 늘 경앙(景仰 : 덕을 사모(思慕)하여 우러러봄)하는 것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고 변명하면서, 늦은 봄철에 조용히 덕을 기르는 체후가 정중(鄭重)한지 몰라 매우 그립다고 하였다. 어제 이대유(李大遊)출처 : 유교넷 -
294737
1744년(영조 20) 4월 1일 이한눌(李漢訥)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부탁받은 일을 이루지 못했음을 알리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한눌지난번에는 몹시 바빠 평온하게 가르침을 받지 못해 지금까지 서운한데, 늦은 봄철에 조용히 정양하는 체후(體候)가 어떠한지 몰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병든 몸으로 일하느라 마음과 몸을 허비하여 무료한 행색인데, 또 말이 병을 앓아 한없이출처 : 유교넷 -
294738
1714년(숙종 40) 12월 2일 이한조(李漢朝)와 한중(漢重)이 산음(山陰)유성화(柳聖和)에게 아버지 상에 보내준 위문에 감사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고자 이한조·한중한조(漢朝) 등은 죄역이 매우 중하지만 스스로 죽어 없어지지 못하고, 화가 선고(先考 :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어져 부여잡고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고 구르며, 오장이 갈라지고 무너져, 땅을 치고 하늘에 부르짖어도 미칠 바가 없다고 했다. 세월은 머무르지 않아 문득출처 : 유교넷 -
294739
1740년(영조 16) 8월 9일 이한진(李漢鎭)이 산음(山陰) 류성화(柳聖和)에게 외삼촌이 당한 화(禍)에 대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이한진한결같이 병으로 해를 보내느라 인사가 없었는데, 왕래하는 인편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안부를 묻지 못하여, 서글프고 죄송함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때 먼저 손수 쓰신 서찰을 받으니 자신을 버리지 않아 깊이 감사하지만, 집안에 상위(喪威)가 겹쳤음을 알고는 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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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辛酉) 12월 8일 이헌교(李憲敎)가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복인 이헌교연속하여 조용히 이야기하여 쌓인 회포를 풀게 되어 매우 위안이 되었으나, 다만 헤어진 뒤의 서글픔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데, 심한 추위에 영감의 일상생활이 편안하고 여러 식구들도 모두 잘 지낸다니 위안이 되고 그립다고 하였다. 자신은 법흥(法興 : 안동시 법흥동)으출처 : 유교넷 -
294741
임인(壬寅) 7월 20일 이현청(李顯淸)이 초상에 위로의 글을 보내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이현정서늘한 가을에 여러분들의 체후가 계절에 따라 편안하리라 생각하니 우러러 위안이 되고 또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해를 넘기도록 관직에 있어 날마다 바쁜 노고를 일삼으니 가련하고 고민됨을 어찌 말하겠느냐고 하소연하였다. 가문의 운이 불행하여 막내 종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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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癸酉) 12월 25일 이홍경(李弘慶)이 유참봉(柳參奉)에게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을 한스러워하며 보낸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이홍경지난번 선존장(先尊丈 : 남의 죽은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을 모시고 새긴 말씀이 마음에 남아있는데, 영남과 서울이 멀리 떨어져 끝내 삼년 안에 조문의 예를 못하여, 부질없이 슬픔만 안고 있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형(수신인)과는 아직도 얼굴을 모르는데 나이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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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8월 13일 이후철(李後哲)이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 이후철여러 해 만나지 못하여 늘 사모하였는데 천만 뜻밖에 심부름꾼을 통해 보내온 서찰을 받고, 가을에 체후가 매우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위안이 된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늘 한 번 가서 만나고자 했으나 쓸데없는 일에 골몰하느라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불민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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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乙未) 11월 25일 이휘석(李彙奭)이 혼례를 앞두고 여러 절차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휘석사이에 잠시 소식이 막혀 늘 우러러 사모했는데, 동짓달 추위에 대감의 조리하는체후가 어떠하며, 혹 읍에 내려가느라 감돈(撼頓 : 흔들흔들하다가 넘어짐)의 해는 없는지, 부모님 모시는 여러 형제들의 체후는 더욱 좋은지, 질녀의 해산 뒤 병은 근래에 좋아졌는지 그리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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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휘양(彙陽)이 안재풍(安在豊)의 일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질 휘양휘양(彙陽)은 지난겨울 서울에 들어왔을 때 수신인의 행차가 반궁을 떠나, 만날 듯하다가 끝내 이야기할 기회를 잃어, 그리움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는다며 아쉬워하였다. 해가 바뀌었는데 정사를 돌보는 상황이 좋고, 아드님도 앓던 병이 나았으며, 자당께서도 근래 편안하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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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錫仁)과 녹인(彔仁)이 직접 방문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석인·록인석인과 녹인은 어제 형의 서찰을 보고는 행차가 11일에 있었는데, 형제가 말을 나란히 타고 친구 집에 이르러 아직도 임시 거처[寓所]에 머무르고 임지에 도착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섭섭함을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시 길을 바꾸어 찾아가서 위로하고자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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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년(숙종 17) 1월 3일에 이담명(李聃命)이 청어, 곶감과 함께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담명참으로 간략한 서찰이다. 내용은 문안(問安) 두 글자뿐이다. 쓴 날짜와발신자의 성명을 기록하고 함께 보내는 물건을 적었다. 그리고 서찰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짤막한 추신을 달았을 뿐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안드립니다. 신미년 1월 초3일 이담명(李聃命)청어 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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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丁酉) 3월 19일에 이능섭(李能燮)이 문희연(聞喜宴)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이능섭험할 때 소식이 막혀 실로 그리움과 울적함을 견딜 수 없었는데, 늦봄에 할아버지 건강이 어떠한지, 부모님 모시는 기체후는 편안한지, 온 가족도 고루 편한지, 마을의 전염병도 성하지는 않은지 몰라 매우 염려되는 마음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갑자기 자신의 형이 보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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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서울에 올라 갈 때는 바빠서 나아가 이별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한스러웠는데, 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으니 마주 대한 것 같이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고 했다. 다만 앓는 종기가 사소하지 않다고 하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더위를 맞아 내려오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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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영조 8) 4월 24일에 이덕부(李德孚)가 산음(山陰) 류성화(柳聖和)에게 서애(西崖) 선생의 필적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이덕부전에 만났을 때에는 조용하지 않아 지금까지 마음에 맺혀 있는데, 뜻 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조용히 생활하는 가운데 매우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는 위안이 된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보내준 서애(西崖) 선생의 필적은 구하던 중에 얻어, 두 번 세 번 완상하고는 감사하기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