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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지금도 꿈속에 나타나는데, 상대의 둘째 아들을 만나 일상생활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는 비할 수 없이 위안이 된다고 첫 인사를 전했다. 자신은 죽지 않고 다만 몸과 뼈만 보존하고 있으니 마땅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4752
1691년(숙종 17) 2월 18일에 민중(敏中)이 산음(山陰) 류성화(柳聖和)에게 부탁 받은 선조 묵적(墨蹟)을 보내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척 민중얼굴을 서로 보지 못한 것은 형세가 그러한 것이고, 서찰을 서로 쓰지 못한 것도 또한 오래되었으니, 부끄럽고 한스러운 나머지 그리움은 배가 된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전에 영감 아우의 행차에 먼저 보내준 서찰을 받아 위안이 되고 마음이 풀렸는데, 하물며 봄 날 부모님출처 : 유교넷 -
294753
1709년(숙종 35) 11월 2일에 이설(李渫)이 산음(山陰) 류성화(柳聖和)에게 낙상했다는 것을 듣고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설수신자가 한 길쯤 되는 곳에 떨어져 다쳐, 기력이 쇠약하여 자리에 있으며, 눕거나 일어나는데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듣고는 천 길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처럼 놀랐다고 했다. 이때 영포(令抱 : 남의 손자의 존칭)가 수신자의 명으로 방문을 하여서, 상처를 잘 조리하여출처 : 유교넷 -
294754
갑신(甲申) 4월 21일에 이영숙(李永肅)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이영숙그리운 생각이 바야흐로 간절한데, 뜻밖에 먼저 서찰로 안부를 물으시니 말할 수 없이 위안이 되고 마음이 트였다고 기뻐했다. 초여름에 부모님을 모시고 몸을 아끼어 잘 지낸다고 하니 매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자신은 겨우겨우 지내니 이밖에 말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근출처 : 유교넷 -
294755
경인(庚寅) 9월 2일에 이의익(李宜翼)이 산소 하인을 군점(軍點)에서 빼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뜻의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의익가을비가 이미 지나가고 서리 바람이 점차 심해져 사람을 그리는 마음이 참으로 깊은데, 형의 서찰을 받고 바삐 손으로 뜯어보고는 위안이 되는 것이 마치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고 기뻐했다. 대감께서 행차한 뒤에 기체가 편안하지 않다고 하니 염려가 되며, 마음속으로출처 : 유교넷 -
294756
임진(壬辰) 2월 8일에 이의익(李宜翼)이 친척의 명문(銘文)을 써 주기를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기복인 이의익이의익(李宜翼)은 찾아가 문안을 드리려던 계획은 미루다가 지금 봄이 되어도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니, 죄송한 마음은 도리어 상례로 하는 말이 되었다고 미안해했다. 이 때 대감의 일상생활이 늘 편안한지 몰라 그리움을 견딜 수 없고, 이의익 자신은 온갖 병에 걸려 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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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乙酉) 6월 28일에 이인복(李仁復)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이인복이인복(李仁復)은 뜻밖에 상대방의 서찰을 받고 장마 더위에 재(齋)에서의 생활이 좋다니 배나 위안이 된다고 첫 인사를 했다. 자신은 기후와 풍토에 몸을 상한 것이 근래에 더욱 심해지니 이 민망함을 어찌하느냐고 스스로 한탄하였다. 사위[玉潤]의 죽음은 참으로 놀랍고 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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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己酉) 4월 그믐날에 이인복(李仁復)이 노친의 병으로 체직할 계획과 전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생 이인복왕세자[聖嗣]께서 돌아가시어 신하와 백성들의 아픔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간절한데, 이때 내려준 서찰을 받으니 맑고 화창한 계절에 재(齋)에서의 생활이 좋다니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이인복 자신은 전비(前妣)의 산소를 옮기기 위하여 이달 초에 서울에 올라왔다가 겨우출처 : 유교넷 -
294759
1741년(영조 17) 8월 9일에 이인지(李麟至)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도산으로 행차할 때 만나기를 기다리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말 이인지초가을에 마침 밖으로부터 돌아오니 서찰이 책상위에 있어 놀랍고 기쁜 마음은 구름을 헤치고 해를 보는 것 같았는데, 그 뒤에 끝내 답장을 하지 못해 죄송하고 한스러운 마음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는다고 미안해했다. 뜻밖에 수신자의 종형(從兄)을 만나 자세한 안부를 묻고,출처 : 유교넷 -
294760
1741년(영조 17) 1월 18일에 이인지(李麟至)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수암(修巖) 문집을 받고 감사의 뜻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말 이인지이인지(李麟至)는 유계(酉溪)에서 한번 만난 후 어느덧 2년이 지났으나 그리움은잠시도 잊지 않았는데, 뜻밖에 유성화의 서찰을 받으니 덕의(德儀)를 가까이하여 가르침을 듣는 것 같아 놀랍고 또 감사하여 말할 바를 모르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이때 새해를 맞아 형제들출처 : 유교넷 -
294761
계미(癸未) 10월 18일에 이천(李梴)과 이재(李栽)가 가친의 필적이 없어 보내지 못한다는 뜻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이천·재이천(李梴)과 이재(李栽)는 해가 넘도록 소식이 막혀 항상 그리웠는데 갑자기 뜻밖에 상대방의 기별을 받고 뜯어서 완상하니 마치 만난 것 같았다고 좋아하였다. 근래 첫 추위에 부모님 모시는 생활이 좋다고 하니 더욱 고민이 풀어진다고 안심하였다. 자신들은 기력이 편안출처 : 유교넷 -
294762
1707년(숙종 33) 12월 2일에 이재(李栽)가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이재이재(李栽) 자신은 몸에 악행을 쌓아 하늘에 죄를 얻어 지금 당한 것이 천고(千古)에 상대가 없으니, 눈물은 마르고 목소리는 꺾여 살고 싶은 마음은 이미 다하니 다시 무엇을 말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무릇 크고 작은 상을 당했을 때에는 수신자께서 곧 위문하고, 애도하고출처 : 유교넷 -
294763
1712년(숙종 38) 8월 11일에 이재(李栽)가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이재이재(李栽)는 한 달 전에 서원 인편을 통해 바쁘게 답장을 붙였는데 그 후 장마로 소식이 막혀 울적한데, 근래 열흘 전 4일에 쓴 위문 서찰을 받고, 재(齋)에서의생활의 기미(氣味)가 좋다는 것을 알고는 위안이 되고 감사함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출처 : 유교넷 -
294764
계해(癸亥) 11월 10일에 이종원(李宗遠)이 부탁한 일은 겸관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말 이종원연말이 되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실한데 보내준 서찰을 받고 이때 조용히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자신은 한 달 전에 우연히 중병을 얻어 거의 죽다가 겨우 소생한 뒤에 말소리가 막혀서 통하지 않는 중풍의 증세를 겪었다고출처 : 유교넷 -
294765
1745년(영조 21) 11월 27일에 이창우(李昌宇)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사위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이창우역촌 위 언덕의 궁벽한 곳에 사니 집 밖의 다른 곳 소식은 듣거나 묻지 못하는데, 이달 초에 우동(芋洞 : 안동시 풍산읍 상리, 속칭 우렁골)에서 수신자의 둘째 형을 만나 좌우(左右 : 상대방을 지칭)가 거듭 악정지액(樂正之厄 : 낙상(落傷))을 입었다는 것을 듣고출처 : 유교넷 -
294766
1735년(영조 11) 5월 1일에 이태화(李泰和)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아들의 도문연(到門宴)에 참석해 주기를 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태화이태화(李泰和)는 근래 서원의 심부름꾼을 통해 답장을 써서 올렸는데 이미 보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른 더위가 혹독한데 한가하게 수양하는 생활이 어떠한지 몰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부모님 모시는 일이 예전 같아 매우 다행이며, 어제 서출처 : 유교넷 -
294767
1741년(영조 17) 1월 19일에 이태화(李泰和)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손자를 얻은 것을 축하하고, 찾아가 안부를 여쭙지 못한 것을 사과하는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태화>병으로 엎드려 있어 오래 만나지 못하여 늘 한 번 서찰로 안부를 물으려 했으나 게을러서 못했는데, 뜻밖에 먼저 보내준 서찰을 받아 읽고는 감사하여 마음이 편안해졌고, 새해에 조용한 가운데의 체도(體度)가 만복을 누린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거듭출처 : 유교넷 -
294768
1746년(영조 22) 12월 22일에 이태화(李泰和)가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종부인(宗夫人) 상을 위문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태화40리를 서로 바라보며 10년 동안 만나지 못하니 늘그막의 인사(人事)가 본래 이와 같지만, 마음속 그리운 생각은 일찍이 옥연(玉淵 : 옥연정사)과 만송(萬松 : 만송정)의 사이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영감님의 동생에게 자세히 물어 여러분들의 건강이 좋다는 것을출처 : 유교넷 -
294769
6월 6일에 이후령(李厚齡)이 수신인 미상에게 문안을 받고 찾아가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이후령전에 아이가 돌아와 형이 사위를 잃는 슬픔을 만났다는 것을 알고는 말할 수 없이 매우 놀랐다고 했다. 천리 먼 곳에서 부고를 받고 어떻게 견뎠는지 정신이 흐리고 혼란했으나, 마침 매우 바쁜 일을 만나 아직도 위문 서찰을 쓰지 못하여 민첩하지 못함을 항상 꾸짖었는데,출처 : 유교넷 -
294770
기유(己酉) 7월 13일에 이후령(李厚齡)이 문안과 함께 닭을 받고 감사를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이후령일전에 나아가 만나 비록 하룻밤을 지냈지만 오히려 가슴에 쌓인 것을 모두 토론하지 못하여 지금껏 서글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미 형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 갑자기 아이를 보내 안부를 물었는데, 이렇게 심부름꾼이 오고 또 문안 서찰을 받아, 재(齋출처 : 유교넷 -
294771
1737년(영조 13) 8월 21일에 이후면(李後冕)이 면내 회문 발송에 관한 일을 의논하기 위해 방문해주기를 청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후면서늘한 가을에 도체(道體)가 많은 복을 받으리라 생각하니 위안이 되고 또 그립다고 했다. 자신은 서원의 일로 어제 저녁때 도착하였으나, 여러 가지 제사음식이 두서가 없고 손에 넣은 수공(收貢)도 십여 꿰미에 불과하여, 지금 막 별도로 독촉했으나 핑계가 매우 심해 고출처 : 유교넷 -
294772
1737년(영조 13) 10월 15일에 이후면(李後冕)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서원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지 못하는 사정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후면어제 재(齋)에 도착했지만 만나지 못하여 매우 한이 되었는데, 곧 인편이 도착하여 겨울철 존장(尊丈)께서 만복을 누린다는 것을 알고는 위안이 되고 또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그저 옛날처럼 지내니 나머지는 번거롭게 말할 것이 없다고 자신의 근황을 전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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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4월 19일 만□(晩□)이 보내준 쌀을 받고 감사함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만□지난번 인편이 왔을 때 서찰을 써서 책상위에 두고는 인편이 돌아간 뒤에 보니 남아 있었으니, 이놈의 불민함은 이미 말할 수 없고 형께서도 반드시 서운하고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니, 더욱 한스럽고 죄송하다고 했다. 인편이 와서 보내준 서찰을 받고 종이 가득한 정겨운 말출처 : 유교넷 -
294774
무자(戊子) 11월 27일 지필(之弼)이 자신의 병든 근황을 전하고, 전에 한 부탁을 다시 깨우치려고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지필전에 여러 날 셋이서 이야기한 것은 10년 동안 감히 도모하지 못한 것인데, 또 길에서 잠시 만나 정성스런 대우를 받으니 돌아와서도 감사함이 아직도 마음에 가득 차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근래 겨울 장마는 옛날부터 없던 것인데, 이때 백성을 다스리는 생활이 어떠한지출처 : 유교넷 -
294775
만나지 못하고 10년이 지나 남쪽하늘을 바라보니 꿈속의 혼만 수고로울 뿐인데, 이때 건강이 어떠한지 몰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첫인사를 했다. 자신은 몇 해 전부터 서쪽, 북쪽으로 가느라 분주함을 면하지 못하여 서찰로 안부를 묻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출처 : 유교넷 -
294776
1745년(영조 21) 1월 10일에 이희원(李熙元)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문안 서찰을 받고 고마움을 전한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희원지난해 서울에 머물면서 항상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갑자기 고향 인편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새해에 체후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는 견딜 수 없이 위안이 된다고 첫인사를 했다. 자신은 요즈음 조카의 초례(醮禮 : 혼례식)가 무사히 지나갔다고 간략하게 근황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294777
선장(仙庄 : 상대방의 집)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하고 돌아와 남은 회포가 있는데, 뜻밖에 영함(令咸 : 상대방의 조카)이 일부러 방문하고 소매 속에서 서찰을 꺼내 전하여, 가을바람이 부는 계절에 조용히 수양하는 몸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지극히 감사하고 위안이 된다출처 : 유교넷 -
294778
병인(丙寅) 3월 3일에 이창의(李昌誼)가 재앙을 당한 봄철의 생활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근황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창의일전에 창소(倉所 : 예산군 임성면 창소리)에서 보내준 서찰을 받고 매우 감사하였으나, 다만 바쁘고 어지러워 답장을 쓰지 못하여 지금까지 매우 서글피 탄식한다고 했다. 봄추위가 아직 매서운데 체도(體度)가 더욱 복되다고 생각하니 위안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294779
해가 바뀐 지 이미 오래이나 소식을 듣지 못해 그리움이 절실했는데, 뜻밖에 먼저 안부를 물어주어 따뜻한 봄에 체리(體履)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은 지난달 당숙모 상을 당했는데, 먼저 다 돌아가시니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출처 : 유교넷 -
294780
경인(庚人) 5월 25일에 이석일(李錫馹)이 옥산서원의 향회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이석일정양하시는 체후(體候)가 늘 강녕하시고, 여러 아드님들도 건강하며, 대소가 여러분들도 전과 같이 조용하고 편안한지 두루두루 안부를 불었다. 자신은 빗속에 집에 돌아와 다행이며, 조부께서 병이 더해지는 것을 면하고 아직 그대로 건강을 유지하시나, 물봉(勿峰 : 경주출처 : 유교넷 -
294781
갑신(甲申) 11월 25일에 이성연(李聖延)이 두 곳의 논을 정식으로 발패(發牌)하고 성급(成給) 해 주기를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성연지난 달 잠시 동헌 아래에서 만나 지금까지 서운한데, 동짓달 추위에 서쪽 행차는 잘 도착하였고 여행 중의 체후도 건강한지 몰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부모님이 그럭저럭 편안하여 다행이라고 간단하게 근황을 전했다. 다만 만났을 때 말씀드린 일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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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11월 20일에 이시주(李時周)가 혼인의 성사 여부를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이시주봄과 여름 사이에는 공부 때문에 직접 가서 안부를 여쭙지도 못했고 인편을 통해 서찰을 올리는 것도 빠뜨려 매우 죄송한데, 춥고 눈 내리며 고르지 못한 날씨에 기체후 만안하시며 집집마다 모두 편안한지 몰라 그리움을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이 달 초에 비로소출처 : 유교넷 -
294783
1734년(영조 10) 7월 10일에 이시방(李時昉)과 김명석(金命錫)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보백당(寶白堂) 문집 간행에 필요한 『영모록(永慕錄)』과 소대수언(昭代粹言)』중에서 기록한 내용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시방·김명석헤어지고 해를 넘겨 그리움이 간절한데, 늦더위에 조용히 수양하시는 생활이 편안한지 궁금한데, 자신들은 늙어서 별다른 일은 없고 오직 늙은이들의 정만 날과 함께 길어진다고 첫 인사를 했다. 드림 말씀은 본원(本院 : 묵계서원) 세분 선생의 문집을 발간하는 일을 자신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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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윤3월 19일에 이시흥(李始興)이 병 때문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시흥일전에 나아가 뵙고는 묶은 소원을 이루었으나 행색(行色)이 몹시 바빠 조용하게모시지 못하고 물러나서 서글픈 마음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데, 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으니 예를 벗어나 특별히 사랑하여 후하게 대우해 주고 또 안부를 물어주니, 매우 감사하여 사례할 바를 모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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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3월 1일에 이용순(李鏞淳)이 둘째 아이의 혼례에 도움을 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종제 이용순작년 가을에 돌아온 뒤 서로의 소식은 멀리 떨어져 있는 외지고 먼 땅과 같아 때때로 그리움은 해(年)와 함께 새로운데, 이때 빈소를 모신 여러 형제들은 건강을 지탱하며 식구들도 모두 같이 편안한지 몰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우선 예전대로 지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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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乙亥) 4월 7일에 재종질 이원부(李源溥) 등이 유익찬(柳翊贊)댁에 부탁받은 일은 처리하지 못했지만 힘이 닿는 대로 돕겠다는 뜻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질 이원부 등지난번에는 백족(白足 : 수도승)이 돌아가는 줄 몰라 문안 서찰을 쓰지 못하여 매우 죄송하고 한스러웠는데, 뜻밖에 인편이 와서 상대방의 서찰을 받고 감사하고 죄송한 나머지에, 심하게 병을 앓다가 즉시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한편으로 놀랍고 한편으로 기쁨은 말로 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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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庚戌) 11월 10일에 이원영(李源永)이 미동(美洞)에 곡하러 갈 때 만나기를 바라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원영이원영(李源永)은 서찰을 보내지 못한 것이 거의 일 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산천이 멀고 사람의 일은 괴로움이 다른데, 서로 경사에 축하하고 흉사에 위문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만나는 기일이 아직도 며칠 남았지만, 모두 머리가 세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처지라 그리운출처 : 유교넷 -
294788
을유(乙酉) 12월 20일에 이의호(李宜浩)가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이의호이의호(李宜浩)는 한 해가 저물어가고 쌓인 눈이 산과 같은데, 한결같은 생각으로 마음에 두고 우러르니 매우 그립다고 첫인사를 했다. 이어서 부모님 모시고 복중(服中)의 기거가 진중하며, 아드님도 상중의 생활을 잘 견디는지, 식구들도 두루 편한지 골고루 안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294789
정축(丁丑) 2월 4일에 이의행(李宜行)이 문안을 받고 감사함을 전한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질 이의행이의행(李宜行)은 전에 동헌 아래에 나갔다가 조용히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 마음이 서글펐는데, 뜻밖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요즈음 몸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되고 또 감사함을 이길 수 없다고 인사를 하였다. 보내준 돈 한 꿰미는 말씀하신대로 여러 성균관의출처 : 유교넷 -
294790
임진(壬辰) 8월 24일에 이익복(李益馥)이 조부의 소상(小祥)에 조문하지 못하는 사정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익복이익복(李益馥)은 가을 날씨가 갑자기 차가운데, 부모님을 모신 여러분의 복중의생활이 어찌 질병을 면한 것과 같겠느냐는 말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왕존장(王尊丈 : 남의 할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의 상기(祥朞)가 문득 지나가 여러분들의 칼로 베는 듯한 아픔은 더욱 다시출처 : 유교넷 -
294791
병술(丙戌) 8월 12일에 이인섭(李寅燮)이 존문을 받고 감사의 뜻을 전한 답장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인섭여름 끝에 자신이 욕되게도 인아(姻婭 : 사위 집 편의 사돈 및 동서 집편의 사돈의 두루 말하며, 사위의 아버지 곧 사돈을 인(姻)이라 하고, 여자(女子) 형제의 남편끼리 곧 동서 끼리를 아(婭)라 함)의 뒤에 있어 특별히 일부러 존문을 내리신 것을 받으니, 정의(情출처 : 유교넷 -
294792
1725년(영조 1) 8월 8일에 이인식(李仁植)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서찰을 받고 감사함을 전한 답장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하천생 이인식이인식(李仁植)은 일찍이 뜻밖에 유성화의 서찰을 받고 종이에 가득한 말은 대대로 내려온 돈독한 우의의 깊은 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두 번, 세 번 읽어보고 감사함을 견딜 수 없었다고 고마워했다. 즉시 답장을 써야하나 인편이 없어 실천하지 못한 것이 여러 날이 지났다고출처 : 유교넷 -
294793
계축(癸丑) 6월 10일에 이인형(李仁炯) 등이 정각(㫌閣)을 짓는데 보태라며 몇 꿰미 돈을 보내며 부친 간찰. / 기록자료>고문서 / 이인형· 상태· 민식이인형(李仁炯) 등은 요즈음 장마 더위에 건강이 다시 편안한지 매우 그리운데, 자신들은 각각 상을 당한 근심에 골몰하느라 눈썹을 펼 날이 없으니 근심하며 탄식할 뿐이라고 하였다. 정각(㫌閣)은 이미 일을 마쳤으리라 생각되는데 어떻게 금전을 감당할 것인지 걱정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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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壬辰) 3월 그믐날에 이종휴(李宗休) 등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를 맞아 대궐에서 서애에게 큰제사를 내린 것을 축하하고, 참석하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종휴·병수·재수임진년을 맞아 대궐 안에 광감(曠感 : 광세의 감회)이 있어 공종(功宗 : 공신의 으뜸)에 높이 보답하는 은전으로 비로소 원사(元祀 : 큰 제사)를 거행하니, 선선생(先先生 : 서애 유성룡을 가르침)의 넘치는 슬기와 큰 공이 더욱 간책(簡冊 : 서책)에 빛나는데, 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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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乙未) 7월 1일에 이주명(李周命)이 둘째 아들의 상(喪)에 위문을 받고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인 이주명이주명(李周命) 자신은 가문이 불행하여 둘째 아들이 갑자기 일찍 죽어 가슴이 무너지고 창자가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가 궁하게 살았고 독신이어서 뒤에 의탁할 곳도 없으니 가지가지 정경은 사람의 도리의 극한 상황이니 차마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하소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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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辛未) 8월 22일에 이주명(李柱溟)이 손자와 종손자의 혼례에 참석해 주기를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이주명이주명(李柱溟)은 여러 해 소식이 막힌 것은 형세가 본래 그러했지만, 때때로 형의 사촌들을 만나 소식을 들어 위안이 되었는데, 하늘 높은 가을에 체후가 편안하리라 생각하지만 먼 곳에 머물러 있어 서쪽으로 나가는 날 전별하지 못하여 그리워하였을 뿐이라고 안타까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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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3월 2일에 이중광(李重光)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사촌 아우의 상변(喪變)에 대한 위문을 받고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중광이중광(李重光)은 봄날의 바람과 눈이 평상시와 다른데, 조용히 수양하시는 기체가 매우 편안하리라 생각한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유성화의 종손부가 일찍 죽은 것은 매우 놀라우며, 이곳의 종수씨의 상사가 뜻밖에 나서 마음이 아프고 비통함은 다시 어떻게 말할 수 없다고 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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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영조 23) 11월 29일에 이규환(李奎煥)과 이중환(李中煥)이 산음(山陰) 유성화(柳聖和)에게 보낸 위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중환·규환이규환(李奎煥)과 이중환(李中煥)은 뜻밖의 흉한 변고로 계씨장(季氏丈 : 수신자의 아우를 지칭)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놀랍고 슬픔을 그만두지 못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평소 우애가 두터우셨는데 슬픔을 어떻게 견디시며 지내는지 궁금해 하면서, 이치로 감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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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辛亥) 4월 그믐날에 이지구(李之榘)가 종조부 상에 위문을 받고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지구이지구(李之榘)는 아직도 뵙지를 못하여 매우 그리운데 말로 존문을 받고 여행 중의 생활이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위안이 되고 걱정이 씻겼다고 했다. 이지구 자신은 가문의 운수가 불행하여 요즈음 종조부의 상을 당해 매우 슬프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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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李之□)가 홀로된 형수 모자의 소식과 해남 사또의 편지 내용 등을 전한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이지□새벽에 종수씨 서찰로 들려 드릴 내용이 이르렀으나 전달하지는 못했다고 사정을 먼저 밝히면서, 보내주신 답장을 받고 추운 계절에 벼슬하는 생활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매우 감사하고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반드시 초하루가 지나면 벼슬살이에 여가가 있을 것 같으니, 임지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