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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탈 없이 지냈으나 추감(追感)하는 회포는 마음에 절실한데, 깊어가는 가을에 기체가 편안한지 궁금해 했다. 자신은 고로(孤露 : 부모가 없음을 이름)한 여생으로서 목숨을 남에게 의지하는데, 평생을 가만히 헤아려 보니, 한결같이 어찌나 궁핍하게 보냈던지 자신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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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2월에 동윤(東潤)이 상(喪)에 위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동윤2월 28일에 송재(松齋)에서 동윤(東潤)이 하상(河上)의 산음댁(山陰宅)에 보낸 위장(慰狀)이다. 먼저 상대방이 평안한 것을 아니 매우 기쁘다고 하고, 상대방 집안의 상사(喪事)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슬펐는데 멀리 백리 밖에 있어서 초상(初喪)에 가서 곡하고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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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영조 34) 12월에 복제(服弟) 정원(正源)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정원해가 저물어 가는데 상대방은 벼슬살이하며 평안한지를 묻고, 자신은 객지에서 새해를 맞으니 괴로움이 새롭다고 하였다. 그리고, 도처에 성행하고 있는 두기(痘氣 : 천연두)에 대한 걱정을 전하고 있으며, 자신은 봄이 되기를 기다려 체직(遞職)을 도모하여 남쪽으로 돌아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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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8월에 시생(侍生) 류정원(柳正源)이 류성화(柳聖和)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류정원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8월 18일에 보낸 답장이다. 수신인는 봉투에 류산음(柳山陰)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로 보인다. 먼저 상대방의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서도 마음속에 그리움이 여전하다고 하고, 상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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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년(영조 7) 12월 19일에 누제(累弟) 굉(綋)이 도움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과제 굉12월 19일에 누제(累弟) 굉(綋)이 고을 원으로 있는 수급자에게 자신의생활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상대방의 노자(奴子) 편에 보낸 편지인데, 누제(累弟)의 ‘累’는 상대방이 유배지에 있음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먼저 계추(季秋 : 음력 9월)에 순영(巡營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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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12월 26일에 족제(族弟) 류성징(柳星徵)이 상대방이 부탁한 편지에 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류성징12월 26일에 보낸 답장이다. 상대방이 보낸 편지와 보살핌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편지를 받고 몸을 조리하고 있던 상대방의 건강이 나아지고 있음을 아니 위로된다고 하였으며, 상대방 손자(孫子)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것을 듣고 놀랐는데 이것은 상중(喪中)에 있으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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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영조 12) 8월 24일에 제(弟) 류석귀(柳錫龜)가 류성화(柳聖和)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석귀8월 24일에 보낸 편지인데, 수신인는 봉투에 류 산음(柳山陰)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로 추정된다. 지난번에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나서 밖에 나갈 일이 생겨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고 하면서 한편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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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6년(영조 12) 5월에 척말(戚末) 류경시(柳敬時)가 상대방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말 류경시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벼슬에서 물러난 상대방이 평안하다는 것을 아니 위로되고 감사하지만, 집안 안팎의 상사(喪事)가 겹쳐서 일어나니 놀랍다고 하였다. 자신은 전에 앓던 혈훈(血暈) 때문에 지금 약을 조금도 멈추지 않고 있지만 떨치고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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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10월 21일에 기복 척(朞服戚) 류경시(柳敬時)가 류성화(柳聖和)에게 이생(李生)의 처벌에 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척 류경시10월 21일에 보낸 답장인데, 수신인는 봉투에 류산음(柳山陰)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로 추정된다. 이생(李生)의 일에 대한 성주(城主)의 대답이 전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한 뜻과 같으니 만약도배(徒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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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영조 10) 10월 10일에 기복 척(朞服戚) 류경시(柳敬時)가 류성화(柳聖和)에게 인장(印章)을 위조한 이형도(李亨道)의 종숙(從叔)의 일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복척 류경시10월 10일에 보낸 편지로, 상대방이 극인(棘人) 이형도(李亨道)의 종숙(從叔)이 인장(印章)을 위조한 일에 대해 관(官)의 행차가 하상(河上)에 도착했을 때 말을 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그 종숙은 비명(非命)에 아들을 잃은 후에 그 본성을 잃어서 그렇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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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6월 1일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류성화(柳聖和)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헌주6월 1일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보낸 편지인데, 사제(査弟)는 사돈관계인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상대방의 안부가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되고 또한 궁금하다고 하였으며, 자신은 무사히 서울에 들어왔지만 더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나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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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5월 16일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류성화(柳聖和)에게 말을 빌려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헌주5월 16일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보낸 편지인데, 사제(査弟)는 사돈관계인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가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되고 또한 궁금하다고 하였으며,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등의 안부를 언급하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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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己□) 1월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류성화(柳聖和)에게 사위를 보내면서 쓴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헌주1월 그믐날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보낸 편지인데, 사제(査弟)는 사돈 관계인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옥랑(玉郞)이 와서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상대방이 잘 지내고 있음을 아니 매우 위로된다고 하였으며, 자신은 곤궁한데다 물가도 비싸서 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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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4월 20일에 말직에 있는 복인(服人) 윤천복(尹天復)이 류성화(柳聖和)에게 영남의 난이 이미 평정되었음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요말복인 윤천복4월 20일에 그믐날에 요말 복인(服人)이 보낸 편지이다. 요말(僚末)은 함께 벼슬하는 동료 간에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며, 복인(服人)은 상중(喪中)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는데, 자신은 몸의 병은 면했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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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1월 9일에 요말(僚末) 윤천복(尹天復)이 류참봉(柳參奉)에게 꿩을 보내준 것에 감사함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요말 윤천복1월 9일에 요말(僚末) 윤천복(尹天復)이 보낸 답장인데, 요말(僚末)은 함께 벼슬하는 동료 사이에서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수신인 류 참봉(柳參奉)은 당시 장릉 참봉(長陵參奉)으로 재직하고 있던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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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12월 18일에 하생(下生) 윤계(尹銈)가 류성화(柳聖和)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윤계12월 18일에 하생(下生)이 장릉(長陵)에 보낸 답장으로, 그리워하던 중에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섣달 추위에 상대방이 당직(當直)을 서며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니 매우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열흘 전에 이곳에 와서 머물고 있으면서 심부름꾼을 보내 상대방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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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생(下生) 윤계(尹銈)가 류봉사(柳奉事)에게 선공감(繕工監)에서 홍대성(洪大成)의 선척(船隻)을 잡아들인 일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윤계수신인 류봉사(柳奉事)는 선공감(繕工監) 봉사(奉事)로 재직한 류성화(柳聖和)로 추정된다. 상대방이 있는 선공감(繕工監)에서 홍대성(洪大成)의 선척(船隻)을 붙잡았는데, 이 사람은 자기 집 비(婢)의 남편이면서 사옹원(司饔院)의 해부(蠏夫)이니 잡히는 것이 부당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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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영조 13) 8월에 하생 복인(下生服人) 윤수(尹(忄+遂))가 류성화(柳聖和)에게 사위의 과거 공부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윤수먼저 서형(庶兄)의 상(喪)을 당한 자신 곁에 몇 달 동안 머물러준 사위[婿郞] 덕분에 자신의 마음은 위로되었지만, 사위는 병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해서상대방의 말을 저버리게 되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자신이 사위의 공부하는 것을 살펴보니, 독법(讀法)은 괜찮지만 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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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1월에 하생 복인(下生服人) 윤수(尹(忄+遂))가 류성화(柳聖和)에게 딸의 우귀(于歸)에 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윤수자신은 아내의 병 때문에 걱정하면서 지내고 있으며, 작년에 소모(小母)와 서숙(庶叔), 서제(庶弟)의 상(喪)을 연이어 당한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고, 자기 딸의 병은 차도가 있긴 하지만 뿌리가 가볍지 않아서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매우 걱정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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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년(영조 5) 3월 24일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류성화(柳聖和)에게 방문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헌주3월 24일에 사제(査弟) 헌주(憲周)가 장릉(長陵)의 직소(直所)에 보낸 편지인데, 사제(査弟)는 사돈 관계인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앞부분에서는 당직(當直)을 서는 중인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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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10월 16일에 재종제(再從弟) 윤극(尹(火+克))이 류성화(柳聖和)에게 독교(獨轎)를 빌려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제 윤극10월 16일에 재종제(再從弟)가 신행(新行)을 보내는 데 쓸 독교(獨轎)를 빌려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신행(新行)은 신부가 시댁으로 가는 것을 말하며, 독교(獨轎)는 말 한 마리가 메고 끄는 가마, 또는 가마를 소등에 싣고 모는 사람이 뒤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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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乙巳) 7월에 제(弟) 윤훤(尹煊)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장우(張友) 집의 상사(喪事)에 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윤훤윤훤은 먼저 류 생원의 숙부(叔父) 상(喪)은 갑작스러운 일이라 부고(訃告)를 받고 매우 놀라고 슬펐다고 하고, 직접 가서 위로해야 하는데 병 때문에 아직까지 편지도 보내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중에 류 생원의 안부 편지를 받으니 감사하면서도 부끄럽다고 하였다. 편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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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에 봉화 현감(奉化縣監)에게 보낸 답장으로, 류의하(柳宜河 : 1616 ∼ 1698)는 1671년(현종 12)에서 1674년(현종 15)까지 봉화 현감으로 재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받고 행정 중에 평안함을 아니 위로된다고 하고,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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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5년(선조 18) 8월에 소제(少弟) 윤탁연(尹卓然)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과거(科擧)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윤탁연8월 21일에 소제(少弟) 윤탁연(尹卓然 : 1538 ~ 1594)이 보낸 편지이다. 앞머리에서 윤탁연은 과거 시험장에서 류 생원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각자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였다. 그리고 서리 내리는 계절에 류 생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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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壬申) 9월에 제(弟) 유경(濡慶)이 오익진(吳益鎭)을 만나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유경9월 14일에 경조(京兆 : 한성부(漢城府)) 아윤(亞尹 : 한성부 판윤(判尹)아래 벼슬인 종2품 좌윤(左尹)·우윤(右尹)을 이르는 말고, 버금[亞] 자리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 송류(松留 : 개성 유수(開城留守))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금 가는 오익진(吳益鎭)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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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壬申) 1월 4일에 사제 기복인(査弟朞服人) 익서(益瑞)가 류 생원(柳生員)에게 딸의 귀녕(歸寧)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익서임신년 1월 4일에 사제 기복인(査弟朞服人)이 보낸 편지인데, 사제는 사돈 관계인 상대방에게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지난 번 인편 후에 다시 소식이 끊기고 해가 바뀌었는데, 류 생원이 새해를 맞이하여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쁘지만, 지난 번 마을의 전염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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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乙亥) 1월에 기제인(朞制人) 익서(益瑞)가 류 생원(柳生員)에게 사백(舍伯)의 상사(喪事)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죄인 익서지난 연말에 위장(慰狀)을 받고도 겨를이 없어서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가 그 사이에 해가 바뀌었는데 상대방이 편안하리라 생각하니 위로되고 궁금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집안의 화가 겹쳐서 또 큰 형님의 상을 당했으니 고통스럽기 그지없으며, 시간은 흘러 장례(葬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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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에 상중(喪中)인 사돈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어머니와 상대방,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숙부(叔父)가평안한 것은 다행이지만 자신은 묵은 병 때문에 괴롭게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손부(孫婦)를 더위 속에 보낸 것과 손자가 공부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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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3월에 복사제(服査弟) 정지우(鄭之愚)가 근황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정지우먼저 소식이 끊긴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을 언급하고, 상대방 어머니와상대방,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이어서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는데, 자신은 병이 심해져서 스스로 가련하다고 하였으며, 아들 세모자(母子)의 서울 형편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에 대한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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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년(숙종 34) 5월에 제(弟) 정치흠(鄭致欽)이 류성화(柳聖和)에게 제령(濟令)의 상사(喪事)에 관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정치흠편지 수신인을 나타내는 부분에 류 산음(柳山陰)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정치흠(鄭致欽)은 먼저 봄에 류성화(柳聖和)가 보낸 편지를 받고, 류성화가 작은어머니의 상(喪)을 당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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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년(경종 4) 8월 23일에 세제(世弟) 정치흠(鄭致欽)이 류성화(柳聖和)에게 주인(主人)과의 모임에 관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정치흠8월 23일에 세제(世弟)가 보낸 편지인데, 세제는 대대로 교분을 맺고 있는 사이에서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정치흠은 먼저 얼마 전에 류성화를 만났다가 헤어진 일에 대한 기쁘고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 이어서 객지(客地)에서 지내는 류성화의 안부를 묻고,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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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癸卯) 11월에 복인(服人) 정한운(鄭翰雲)이 류 생원(柳生員)의 서제(庶弟)와 작별한 아쉬움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정한운계묘년 11월 28일에 복인(服人) 정한운(鄭翰雲)이 세장(世丈)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편지인데, 복인(服人)은 자신이 상중(喪中)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장(世丈)은 집안 대대로 교분이 있는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정한운은 류 생원의 안부가 평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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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壬寅) 11월 24일에 세말(世末) 정한운(鄭翰雲)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금릉(金陵) 이제(姨弟)의 상(喪)을 당한 심정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말 정한운임인년 11월 24일에 세말(世末) 정한운(鄭翰雲)이 세장(世丈)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편지인데, 세말(世末)은 집안 대대로 교분이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세장(世丈)은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정한운은 류 생원을 만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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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숙종 30) 10월 15일에 정계흠(鄭啓欽)이 류성화(柳聖和)에게 혼사(婚事)에 관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계흠1704년 10월 15일에 보낸 답장인데, 수급자로 기록된 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정계흠은 뜻밖에 류성화의 편지를 받으니 만난 것처럼 기쁘다고 하였으며, 류성화가 부모님 모시고 평안하다는 것은 매우 위로되지만, 류성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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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년(숙종 42) 1월 17일에 복인(服人) 정계흠(鄭啓欽)이 류성화(柳聖和)에게 서숙모(庶叔母)와 표숙(表叔)의 상(喪)을 당한 자신의 심정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정계흠1716년 1월 17일에 정계흠(鄭啓欽)이 보낸 편지인데, 수급자로 기록된 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정계흠은 먼저 지난 연말에 받은 류성화의 편지에 지금까지 감사한데 인편이 없어서 답장을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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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 2월 25일에 보낸 정계흠(鄭啓欽)의 편지인데, 수급자로 기록된 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정계흠은 인편을 통해 류성화를 비롯한 여러분들의 안부가 평안한 것을 아니 자신의 궁금한 마음이 위로된다고 하였다. 이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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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숙종 46) 1월에 정계흠(鄭啓欽)이 류 생원(柳生員) 등에게 달력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계흠1720년 1월 6일에 보낸 정계흠(鄭啓欽)의 편지인데, ‘첨애(僉哀)’, ‘대효(大孝)’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부모의 상중(喪中)인 류 생원(柳生員) 형제들에게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정계흠은 상중에 있으면서 새해를 맞은 여러 상주(喪主)들의 안부에 대출처 : 유교넷 -
294888
경□(庚□) 12월 11일 정계흠(鄭啓欽)이 류성화(柳聖和)에게 편지를 전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계흠간지에 경(庚)자가 들어가는 어느 해 12월 11일에 보낸 편지인데, 수급자로 기록된 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정계흠은 연말 추위에 부모님 모시고 있는 류성화는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몹시 궁금하다고 하고, 류성화 집안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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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1월에 정계흠(鄭啓欽)이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계흠1월 11일에 개중(介仲)에게 보낸 편지인데, 개중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편지에 ‘첨(僉)’자를 쓴 것으로 보아 수급자는 류성화를 포함한 여러 사람으로 보인다. 편지를 받고 여러 사람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아니 기쁘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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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丙午) 윤7월에 척제(戚弟) 정광익(鄭光翊)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정광익척제(戚弟) 정광익(鄭光翊)은 몇 개월 동안 소식이 막혀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인편을 통해 류 생원이 부모님 모시고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새 서원(書院)의 원역(院役)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척종제(戚從弟)인 정광익 자신은 손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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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壬寅) 12월에 척제 복인(戚弟服人) 정광익(鄭光翊)이 류 생원(柳生員)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정광익척제 복인(戚弟服人) 정광익(鄭光翊)은 먼저 일전에 호상(湖上)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류 생원의 집에 찾아 갔는데 마침 류 생원은 출타 중이고, 자신은 집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류 생원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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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壬申) 9월 26일 정광익(鄭光翊)이 자신의 위급함을 구제해 준 대감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광익9월 26일에 대감(台監)에게 보낸 정광익의 편지이다. 정광익은 먼저 대감의 안부를 묻고, 익손(翼孫)의 병이 낫고 있다고 하니 위로되고 기쁘다고 하였다. 하상(河上)의 소식은 복룡(卜龍)이 오는 편에 들었는데, 상대방의 어머니와 집안이 모두 평안하다고 하니 하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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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숙종 30) 5월 14일 복제(服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에게 동생을 대신 보내면서 쓴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정창흥5월 14일 개중(介仲)에게 보낸 복제(服弟) 정창흥(鄭昌興)의 편지인데,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동생이 돌아와서 류성화의 행차가 부(府)에 도착했으며 여행 중의 안부가 평안하다는 것을 알려 주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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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에 제(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에게 인마(人馬)를 보낼 것임을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창흥5월 14일 개중(介仲)에게 보낸 편지인데, 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정창흥이 류성화의 집을 방문하기 전날 사람과 말을 보내줄 것을 청하면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형위(荊圍 : 과거 시험장)에서 작별한 것이 아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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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년(숙종 31) 12월 27일에 제(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에게 달력을 보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창흥12월 27일 개중(介仲)에게 보낸 답장인데, 개중(介仲)은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의 자(字)이다. 정창흥(鄭昌興)은 먼저 류성화가 보내준 편지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고, 편지로 류성화가 부모님을 모시고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매우 위로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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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영조 15) 1월 8일 제(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정창흥1739년 1월 8일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를 비롯한 여러 형들에게 보낸 정창흥의 편지이다. 정창흥은 뜻밖에 류성화의 조카를 만나 류성화와 여러 형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되었지만, 막내 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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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영조 16) 1월 12일 복제(服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아내의 병세를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정창흥1월 12일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를 비롯한 여러 형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창흥은 새해에 여러 형들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되고 궁금하다고 하였다. 자신의 실인(室人 : 아내)은 병으로 신음하는 것이 대단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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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영조 19) 6월 25일 제(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정창흥6월 25일에 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를 비롯한 여러 형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창흥은 전에 류성화 큰형의 소실(小室)이 아플 때 병을 피해 임시 거처로 옮길 것임을 듣고 놀라고 걱정했는데, 지금 이미 돌아와서 무더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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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12월에 복제(服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정창흥12월 8일 정창흥이 산음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에게 보낸 편지이다. 월전(月前)에 보낸 편지에서 나아지고 있다던 상대방의 병이 지금은 어떤지를 묻고 있으며, 계상(溪上) 편에 상대방 손자의 설사 증상이 가볍지 않다가 지금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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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2월에 제(弟) 정창흥(鄭昌興)이 류성화(柳聖和) 등에게 질녀(侄女)의 상(喪)과 장인의 기제(忌祭)를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정창흥2월 17일에 정창흥이 산음현감(山陰縣監)을 지낸 류성화(柳聖和 : 1668 ~ 1748)를 비롯한 그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 질녀(侄女)의 상(喪)에 대한 자신의 놀랍고 애통한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 형제들을 위로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장인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