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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丁丑) 12월 28일에 족손(族孫) 호의(浩義)가 족대부(族大父) 진암처사(進庵處士) 금상(琴祥)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호의족종조부 진암 처사공의 금상(琴祥, 終喪) 전날 저녁에 족손 호의가 변변치 못한 음식과 거친 글을 갖추어 궤연에 올린다고 하였다. 공은 경학과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고 포부를 끝내 펼치지 못하였다. 어려서 시와 예를 배우고 덕의에 맞는 교육을 읽혔으며 살아서는 부모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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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丁丑) 12월 28일에 족소제(族少弟) 효구(孝九)가 진암처사(進庵處士) 영양남공(英陽南公) 종상(終祥)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소제 효구진암처사의 종상에 집안의 아우 효구가 몇 글자와 술 한 잔을 영전에 올리며 말하기를 공은 원래 기질이 외유내강하고 시암공을 부친으로 영와공을 형님으로 하여 학문을 연마하여 육경과 제자백가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근사록(近思錄)’을 섭렵하고 시문에도 능하였음에도 일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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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己卯) 5월 3일에 부삼종현손(夫三從玄孫) 희순(熙淳)이 유인 영해신씨(寧海申氏)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삼종현손 희순남편의 삼종현손(고손자) 희순이 유인 영해신씨의 삼상(초상, 중상, 종상)을 치른 후 담담하게 길일을 택하여 때에 맞는 음식을 제(祭)에 올린다고 하였다. 유인이 70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녀의 부덕과 본인이 입은 은혜를 차마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을 지어 올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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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癸丑) 5월 17일에 인제(姻弟) 서기윤(徐基潤)이 수사(秀士) 영양남군(英陽南君 : 南君)의 일기제(一朞祭)에 올린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서기윤인제(姻弟)는 처남, 매부사이에 자기 자신을 낮춘 말이고 수사는 학생 또는 처사와 같은 말로 벼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칭한다. 세상을 떠난 지 일주기가 된 이때에 친우 서기윤이 남군의 상설(象設 : 무덤 앞에 설치한 석물) 앞에서 올린 제문으로 우리가 아직 장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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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孺人)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갑오(甲午) 겨울 상을 당한 후 또 증조부가 돌아가시자 유인의 원통해함을 보고 본인은 은인자중하면서 보냈는데 이는 그녀를 믿고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녀가 하촌에 머물면 따라서 갔고 내 집으로 돌아오면 같이 따라왔다. 본인의 모친이 귀근할 때도 유인과 같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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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戊午) 2월 11일에 사종증손(四從曾孫) 응시(應時)가 처사공(處士公) 중상(中祥)일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종증손 응시사종증손 남응시가 처사공 중상일 전날 저녁에 소박한 음식을 차려 올리면서 쓴 제문으로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하늘이 내려준 학문하는 집안으로 처사공 대에 이르러서는 시암공(時庵公)과 진암공(進庵公)이 문명을 날렸다고 하였다. 처사공은 집안의 어진 후손으로(肖孫) 시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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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庚辰) 정월 7일에 족종(族從) 유진(有鎭)이가 돈암상사공(遯庵上舍公) 남고(南皐)의 중상일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유진경진년 정월 초7일에 족종인 유진이가 돈암 생원공 중상전날 저녁에 올린 제문이다. 공의 성품은 청명한 기운을 갖춘데다가 독실한 공부가 있어서 소년시절부터 탁이하였다. 본인은 공보다 10여년을 늦게 태어나 과거시험을 볼 때에 그를 쫓아다녔고 강론과 토의 때에도 상고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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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辛巳) 정월 7일에 정제(情弟) 권석만(權錫萬)이 남고(南皐)의 종상일에 올린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권석만신사년 정월 7일 영양남공 종상일 전날 저녁에 다정한 벗 권석만이 몇 종의 과일과 생선을 갖추어 상설[床設之下]아래서 제문을 올린다고 하면서 선비가 때를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주나라가 쇠퇴한 이후로 이것이 재덕을 겸비한 자의 한이 되었다고 하였다. 공은 어린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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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壬子) 7월 23일에 처남 이윤발(李潤發)이 수사 영양남공(英陽南公)의 대야(大夜)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이윤발임자년 7월 23일에 처남 이윤발이 영양남공의 장사를 지내기 전날 밤에 지어 올린 제문으로 수사(秀士)는 벼슬을 하지 못하고 죽은 남자를 일컫는다. 대야(大夜)는 기일 또는 체야(逮夜)로도 쓰이며 장사지내기 전날 밤을 말한다. 본인은 마침 사고로 매형의 매장 시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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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庚辰) 정월 7일에 문생(門生) 전문익(田文翼)이 스승 시암(時庵) 남선생(南先生)의 중상일(中祥日)에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문생 전문익경진년 정월 초7일에 제자 담양 전씨 문익이 돌아가신 스승 남시암의 중상일 전날저녁에 육포와 과일을 준비하여 올리면서 지은 제문이다. 선생은 강과 산에서 영기를 모으고 규성과 벽성처럼 찬란히 빛나 그 성품이 얼음처럼 맑고 자태가 옥처럼 따뜻하다고 하였다. 안인낙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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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는 벗인 백중호(白重鎬)가 수사(秀士) 여형(汝衡)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애사(哀辭) / 기록자료>고문서 / 인우 백중호학생 여형은 영양 남씨로 이름은 악진 여형은 그의 자이다. 나 백중호 와는 같은 마을에서 살았으나 나와는 20살의 차이가 나서 서로 왕래가 없었으나 그 뒤에 그의 집안자제들 때문에 그를 알게 되었다. 그의 선조의 정자에서 과거공부를 할 때 그의 글을 읽었고 얼마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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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간원 대사간인 유치명(柳致明)이 유인 대흥백씨의 행장을 쓴 묘지명. / 기록자료>고문서 / 류치명우인(友人) 남상사의 간곡한 청에 따라 그의 하세한 모친에 대하여 관에 묻기 전에 쓴 글이다. 유인 대흥백씨는 대흥에서 일으켜서 그녀의 6대조 때에 영해로 이사를 하여살았다. 부친 원옥과 모친 안동 권씨 사이에서 을묘(乙卯)년에 태어나 영양 남씨 유로(有魯)에게 시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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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위 유정호(柳廷鎬)가 초를 잡고 사헌부 지평인 그의 벗 김흥락(金興洛)에게 부탁하여 쓴 남고(南皐)의 행장 / 기록자료>고문서 / 김흥락남고(南皐)의 초명은 택환(宅煥), 초자는 중안(仲安) 호는 시암(時庵) 본관은 영양(英陽)이다. 후에 명은 고(皐) 자는 중원(仲元)으로 고쳤다. 중시조는 남의공 민으로 고려 때 영양을 식읍으로 받아 조선조에 와서 그곳에서 세거하였다. 부친은 유로(有魯) 모친은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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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영조 39) 2월 10일에 국왕이 윤방(尹坊)에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임명하는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윤방(尹坊 : 본관 坡平)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월에 나이 많은 백성에게 품계나 벼슬을 하사하는 은전(恩典)을 베풀었는데, 이때 내린 교지를 ‘수직교지(壽職敎旨)’라 한다. 이 교지는 윤방(尹坊)에게 문관(文官)의 정3품 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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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영조 39) 2월에 국왕이 윤방(尹坊)에게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로 임명하는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윤방(尹坊 : 본관 坡平)을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전체가 정3품 무관(武官)의 당상관(堂上官)의 품계(品階)로 어모장군(禦侮將軍)의 위에 해당한다. 첨지의 상급직은 동지(同知)이다. 중추부는 문무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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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년(숙종 33) 3월 12일에 국왕이 윤여룡(尹如龍)에게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임명하는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윤여룡(尹如龍 : 본관 파평(坡平))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시대에는 매년 정월에 나이 많은 백성에게 품계나 벼슬을 하사하는 은전(恩典)을 베풀었는데, 이때 내린 교지를 ‘수직교지(壽職敎旨)’라 한다. 이 교지는 윤여룡(尹如龍)에게 문관(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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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배(尹培 : 본관 파평(坡平))를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 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정3품 무관(武官)의 당상관(堂上官)의 품계(品階)로 어모장군(禦侮將軍)의 위에 해당하고, 용양위부호군은 오위도총부에속한 종4품의 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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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영조 39)에 국왕이 윤사근(尹思近)에게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로 임명하는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윤사근(尹思近 : 본관 파평(坡平))을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정3품 무관(武官)의 당상관(堂上官)의 품계(品階)로 어모장군(禦侮將軍)의 위에 해당하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는 중추원에 속한 정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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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년(영조 39) 8월에 국왕이 윤방(尹坊)에게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로 임명하는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윤방(尹坊 : 본관 坡平)을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 龍驤衛副護軍)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은 정3품 무관(武官)의 당상관(堂上官)의 품계(品階)로 어모장군(禦侮將軍)의 위에 해당하고,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은 오위도총부에 속한 종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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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관찰사(江原道 觀察使)인 윤사국(尹師國)에게 내린 유지로, 울진(蔚珍)의 사인(士人)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이 지은 정관치설(井觀癡說) 3책과 통서연의(通書衍義) 1책, 잡저(雜著) 1책을 감봉(監封)하여 올려 보내고, 그를 강원도 영동교양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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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형(尹時衡)·윤사진(尹思進)을 몽천서원(蒙泉書院)에 제향할 때 조술도(趙述道)가 올린 고유문(告由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조술도조술도(趙述道 : 1729 ~ 1803)가 쓴 고유문(告由文)으로, 몽천서원이 몽천사(蒙泉詞)에서 서원(書院)으로 승원(陞院) 될 때에, 서원에 배향된 윤시형(尹時衡 : 1602 ∼1663)·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 두 분을 제사하며 올린 고유문(告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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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11월 15일에 신기선(申箕善)이 올린 황태자 정청 제3주(皇太子 庭請 第三奏)의 초록(抄錄) / 기록자료>고문서 / 신기선1901년 11월 15일에 신기선(申箕善 : 1851 ~ 1909)이 순종(純宗 : 1874 ~ 1926)이 황태자 시절에 올린 황태자 정청 제3주(皇太子 庭請 第三奏)를 황태자 삼소(皇太子三疏)라는 이름으로 하답(下答)과 함께 초록(抄錄)한 것이다. 내용은, 황제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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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영조 51) 6월에 유학(儒學) 남도식(南道軾) 등 60명이 윤사진(尹思進)의 학행(學行)을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남도식 등1775년 6월에 유학(儒學) 남도식(南道軾) 등 60명이 강원도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로, 향중(鄕中)의 현사(賢士)인 윤사진(尹思進)의 효우(孝友)는 천성에서 나왔으며, 그의 학문과 저술은 전시대를 답습(踏襲)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작년에 읍의 선비들이 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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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영조 51) 2월에 유학(儒學) 남도식(南道軾) 등 69명이 강원도 울진현 성주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남도식 등 69인1775년 2월에 유학(儒學) 남도식(南道軾) 등 69명이 강원도 울진현 성주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울진현의 북평(北坪)에 서당을 창건(天啓元年 : 1621)하여 향선생(鄕先生)을 시축(尸祝)하고 이름을 몽천(蒙泉)이라 하였다. 또한 정자를 영귀(永歸)라 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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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9월에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이 6대 조모(祖母)의 무덤 옆에 투매한 척(隻)을 성주(城主)에게 고발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행진·윤병주 등기축(己丑) 9월에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이 6대 조모(祖母)의 무덤 옆에 투매한 척(隻)을 성주(城主)에게 고발한 소지(所志)이다. 지난번의 소지에서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밝힐 때에, 합하(閤下)의 제음(題音)내에 “무덤의 주인을 자세히 탐문하여 즉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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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9월 24일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이 자신의 선영에 투장한 일을 성주(城主)에게 고발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행진·윤병주 등기축(己丑) 9월 24일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이 자신들의 선영(先塋)에 몰래 투장(偸葬)한 일을 성주(城主)에게 고발한 소지(所志)이다. 윤행진·윤병진 등의 선영과 사산(私山)은 북초면(北初面) 재인구(才仁邱) 뒷 기슭에 있으며 수백 년을 수호해오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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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10월에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이 자신의 선영에 투장한일을 성주(城主)에게 고발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행진·윤병주 등기축(己丑) 10월에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이 자신들의 선영(先塋)에 몰래 투장(偸葬)한 일을 성주(城主)에게 고발한 소지(所志)이다. 윤행진(尹行進)·윤병진(尹炳周) 등은 자신들의 억울하고 통박한 일을 성주께서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지난번에 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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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8월에 윤기(尹紀)·윤동룡(尹東龍) 등 51명이 자신의 선영에 범장(犯葬)한 일을 성주(城主)에게 청원한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기·윤동룡 등 51인무진(戊辰) 8월에 윤기(尹紀)·윤동룡(尹東龍) 등 51명이 자신의 선영에 범장(犯葬)한 일을 성주(城主)에게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윤기(尹紀)·윤동룡(尹東龍) 등 자신들의 7대조모와 6대조부모 분산(墳山)이 본면(本面) 무곡묘리(茂谷卯里)에 있으며, 보호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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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정조 14) 7월에 강원도 울진현의 장응채(張應彩) 등이 윤사진(尹思進)을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장응채 등 94인1790년(庚戌) 7월에 강원도 울진현에 거주하는 장응채(張應彩)·주광덕(朱光德)등 94명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로, 본 현의 훌륭한 선비인 윤사진(尹思進)을 조정에 천거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의 훌륭함을 실행과 실적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실행부분에서는 효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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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정조 2) 강원도 울진현에 거주하는 최승원(崔昇遠) 등 36명이 윤사진(尹思進)을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유생 최승원 등 36인1778년(戊戌) 강원도 울진현에 거주하는 최승원(崔昇遠)·남석유(南錫裕) 등 36명이 윤사진(尹思進)을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향중의 많은 선비들이 말하기를 “윤사진의 효우(孝友)와 경근(敬謹)한 행실은 천성에서 나왔다”라고 말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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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정조 4) 6월에 몽천정사(蒙泉精舍)에서 윤사진(尹思進) 등 유림(儒林)105명이 강원도 울진현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사진 등 105인1780년(庚子) 6월에 몽천정사(蒙泉精舍)에서 윤사진(尹思進) 등 유림(儒林) 105명이 강원도 울진현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지난번에 북평촌(北坪村)의 백성이 몽천서당 위의 절해처(切害處)에 보(洑)를 설치하고자 관아에 정문(呈文)을 한 적이 있었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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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정조 2) 3월 남도식(南道軾) 등 86명이 강원도 울진현 성주에게 윤사진(尹思進)을 조정에 천거해줄 것을 청하는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남도식 등 86인1778년(戊戌) 3월 남도식(南道軾) 등 86명이 강원도 울진현 성주에게 윤사진(尹思進)을 천거해줄 것을 청하는 소지(所志)이다. 국가에서 사람을 취할 때에 오로지 과거시험만을 숭상하고 먼 지방 벽지의 일사(逸士)를 찾는 일은 미치지 못함을 지적하고, 윤사진의 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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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에 윤동헌(尹東憲)이 자신의 자부(子婦) 신행시(新行時)에 온 교전비(轎前婢)와 후소생을 자신의 몫으로 입지(立旨)하기 위하여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동헌1801년(辛酉)에 윤동헌(尹東憲)이 자신의 자부(子婦) 신행시(新行時)에 온 교전비(轎前婢)와 후소생을 자신의 몫으로 입지(立旨)하기 위하여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윤동헌 자신은 운명이 기구하여 1733년에 자식도 없는 장자(長子)와 자부(子婦)를 잃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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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정조 1) 3월 강원도 울진현 유림(儒林) 윤수(尹綏) 등이 몽천서재(蒙泉書齋)의 당원(堂員)인 윤사긍(尹思兢)을 할명(割名)하겠다고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 수 등 29인1777년 3월 강원도 울진현 유림(儒林) 윤수(尹綏) · 남도식(南道軾) 등 29명이 몽천서재(蒙泉書齋)의 당원(堂員)인 윤사긍(尹思兢)을 유안(儒案)에서 할명(割名 : 이름을 삭제)하겠다고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유림(儒林) 윤수(尹綏) · 남도식(南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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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정조 1) 5월 강원도 울진현 유림(儒林) 윤동관(尹東寬) 등 26명이 윤사긍(尹思兢)이 몽천서당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겸성주(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동관 등 26인1777년 5월 강원도 울진현 유림(儒林) 윤동관(尹東寬)·최주민(崔柱旻) 등 26명이 윤사긍(尹思兢)이 몽천서당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겸성주(兼城主)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윤사긍(尹思兢)이 서당 앞의 놀랄만한 절해처(切害處)에 보(洑)를 쌓아 봉안한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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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정조 1) 6월에 강원도 울진현 몽천서당(蒙泉書堂)의 유림(儒林) 윤즙(尹緝) 등이 윤사긍(尹思兢)이 서당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 집 등1777년 6월에 강원도 울진현 몽천서당(蒙泉書堂)의 유림(儒林) 윤즙(尹緝) · 남석초(南錫初) 등 35명이 윤사긍(尹思兢)이 서당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지난번에 윤사긍이 서당의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소지를 올렸을 때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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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정조 1) 6월에 강원도 울진현 몽천서당(蒙泉書堂)의 유림(儒林) 윤적(尹積) 등이 윤사긍(尹思兢)이 서당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 적 등 42인1777년 6월에 강원도 울진현 몽천서당(蒙泉書堂)의 유림(儒林) 윤적(尹積) · 최배혼(崔配混) 등 42명이 윤사긍(尹思兢)이 서당 앞에 보를 쌓는 일 때문에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패지(牌紙) 중에 ‘파쇄농기 파타농민(破碎農器 歐打農民)’ 등의 기록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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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순조 24) 3월에 몽천서원(蒙泉書院)의 유학(幼學) 전수덕(田樹德) 등 32명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전수덕 등 32인몽천서원(蒙泉書院)에서 화양서원으로 차사(差使)를 보내어 수소문한 결과 민정혁(閔正赫)과 신의주(辛宜柱) 두 사람의 죄상이 이미 드러났으므로 법률에 따라 벌을 시행하라는 내용이다. 또 두 사람이 서원의 원예(院隸)를 구타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본원(本院)에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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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순조 24) 2월에 강원도 울진현에 거주하는 유학(儒學) 남석광(南錫光) ·전수덕(田樹德) 등 51명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남석광 등 51인선현을 모함하고 화양동서원(華陽洞書院 : 충북 괴산군 청전면 소재)에서 통문을 보낸 것처럼 위조한 민정혁(閔正赫)을 처벌할 것을 정문(呈文)한 내용이다. 1621년에 몽천서당을 창건하여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1663)과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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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순조 24) 3월에 전수덕(田樹德) · 윤동상(尹東尙) 등 35인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전수덕 등 35인민정혁(閔正赫)과 신의주(辛宜柱) 등이 몽천서원(蒙泉書院)에 배향된 향현(鄕賢)인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과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을 모함하고, 화양서원의 이름으로 관아에 정문한 일이 탄로 난 뒤에 체수(滯囚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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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순조 24) 3월 3일에 유학(幼學) 주봉조(朱鳳朝) · 윤이복(尹彝復)이 충청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주봉조·윤이복통문(通文)을 위조한 민정혁(閔正赫)을 충청도로 이문(移文)하여 엄히 다스려 세도(世道)를 바로잡아달라는 내용이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울진현의 몽천서원(蒙泉書院)은 향현(鄕賢)인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과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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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정조 22) 9월에 전광직(田光稙) · 남석준(南錫駿) 등 26명이 승정원에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전광직 등 26인선사(先師)인 관동교양관(關東敎養官)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은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의 증손(曾孫)으로, 그의 저술인 『정관치설(井觀癡說)』 3책 · 『통서연의(通書衍義)』 1책 · 『잡저(雜著)』 1책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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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순조 24) 2월 윤동거(尹東擧) · 전수덕(田樹德) 등 11명이 강원도 울진현령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동거 등 11인민정혁(閔正赫)과 신의주(辛義柱)가 구무날조(構誣捏造)하여 몽천서원에 배향된 선현을 어핍(語逼)하고, 화양동서원(華陽洞書院 : 충북 괴산군 청전면 소재)에서 발송한 것처럼 통문을 위조한 사건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다. 통문을 위조한 일 때문에 일의 단서가 꼬리를 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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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순조 23) 12월 10일에 몽천서원(蒙泉書院) 유학 주윤도(朱胤道) 등이 강원도 울진현령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주윤도 등 83인몽천서원에 배향한 선현(先賢)을 민정혁(閔正赫)이 구무정소(構誣呈訴)한 일로인하여 강원도 울진현령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몽천서원은 1621년(광해 13)에 창건하여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1602 ∼ 1663)과 그의 아들인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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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정조 22) 9월에 강원도 울진 현 몽천서원에서 윤동빈(尹東賓) 등 44명이울진현령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윤동빈 등 44인1621년에 몽천정사를 창건하여 향현(鄕賢)인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1663)과 그의 아들인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 증손자인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을 배향한 경위를 설명하고, 이어 삼조어비(三朝御批 : 효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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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순조 2) 1월에 강원도 울진 현 몽천서원의 유림(儒林) 최주익(崔柱翼) 등28명이 주효원(朱孝源)의 서적 탈취문제로 성주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최주익 등 28인몽천서원은 1637년(인조 15)에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 1509 ~ 1571)를 봉안하여 봉향하였으며, 1693년에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을 봉향하여 오다가 1770년에 격암 남사고를 향중의 향사당(鄕射堂)으로 옮겨서 봉안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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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순조 4) 1월 26일에 최주태(崔柱台) 등 32명이 강원도 울진 현 성주에게제수용품 부조를 목적으로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최주태 등 32인몽천서원은 1621년(천계 원년)에 몽천정사를 창건하여 향현(鄕賢)인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과 증손자인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을 배향한 경위를 서술하였다. 두 분의 학문과 저술, 효종과 정조에게 비답을 받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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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정조 22) 2월에 윤협(尹綊) 등 13명이 강원도 울진현령에게 몽천서원의제기(祭器)를 훔친 남중횡(南重鈜)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으로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윤 협 등 13인몽천서원(蒙泉書院)은 두 향현(鄕賢)을 배향하고 있는 유궁(儒宮)으로 체모가 자별하며, 뜻밖에 지난번에 유학 남중횡이 부득이 상유사(上有司)가 되어 창고에 들어가 유주배(鍮酒盃) 1(坐)와 유잔(鍮盞) 1(臺)를 훔쳐간 일이 있었는데, 여러 번 되돌려 놓을 것을 청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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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정조 19) 9월 16일에 최주태(崔柱台) 등 4명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주효원(朱孝源)의 죄를 용서할 것을 청한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최주태 등 4인자신들은 도내 울진 현에 거주하는 유학(幼學)으로 지난번에 선사(先師)인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의 일로 정소(呈訴)하였으며, 제사(題辭)를 살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선을 권장하며 악을 징계하는 뜻이 아님이 없어서 읽음에 감사하고 송구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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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헌종 3) 12월에 남중환(南重煥) · 윤두(尹紏) 등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지난번에 구금된 유생들을 석방하여 줄 것을 청한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남중환·윤 두지난번에 몽천사(蒙泉社)의 일로 자신들이 올린 소지는 제사(題辭)가 엄정하여 다시 정문(呈文)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엄동설한에 돌아갈 때에 동행한 유생들은 모두 감기에 걸렸으며 구금된 유생은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음을 강조하였다. 사림(士林)이 장수지소(藏修之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