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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정조 14) 3월에 남석기(南錫棋) 등 42명이 윤사진을 조정에 천거해 달라고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남석기 등 42인국가에서 인재를 뽑을 때에 항상 과거시험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도서지방에 멀리 떨어져 종신토록 학문을 탐구하는 선비는 등용되지 못함을 서술하고,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의 효행을 낱낱이 열거하였다. 특히 60의 노령에도 부모님께 혼정신성하는 일을 자식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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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정조 21) 4월에 전광직(田光稙) 등 82명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몽천정사(蒙泉精舍)를 원(院)으로 승격시켜 줄 것을 청한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전광직 등 82인강원도 울진현의 몽천서당은 곧 향현(鄕賢)인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1663)과 증손자인 교양관(敎養官)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을 배향한 곳으로, 처음에는 정사(精舍)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원(院)으로 승호(陞號)하고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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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정조 19) 9월에 최주태(崔柱台) 등 53명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향의(鄕議)를 저희(沮戱)한 주효원(朱孝源)을 벌할 것을 청한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최주태 등 53인선사(先師)인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의 장례에 참여한 유생들이 모두 몽천사(蒙泉社)에 추체(追腏)하기로 뜻을 모았으며, 초봄에 몽천사의 여러 유생들이 향중으로 통문을 발송하여 급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존상(尊尙)의 도에 해가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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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정조 23) 4월에 강원도 울진현의 유학(幼學) 전광직(田光稙) 등 24명이관찰사에게 윤사진(尹思進)의 저술 판각을 마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상서(上書) / 기록자료>고문서 / 전광직 등 24인선사(先師)인 교양관(敎養官)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 1713 ~ 1792)은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의 증손이며, 윤시형은 1656년(효종 7)에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비답을 받은 분으로 현(縣)의 많은 선비의 공의(公議)로 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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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현에 옥계(玉溪) · 고산(孤山) · 신계(新溪) · 몽천(蒙泉) 4개의 서원이 있으며, 춘추로 향사(享祀)할 때에 3개 서원은 관공(官供 : 관의 支供)이 의례적으로 오지만, 오직 몽천서원만은 아직도 관공이 이르지 않아 사림들이 억울하게 여기고 있으며, 어짊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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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천서원(蒙泉書院)의 유림(儒林)과 더불어 옥계(玉溪) · 고산(孤山) · 신계(新溪) 서원간에 1년간 임무를 나누어 시행하는 일로 대종백(大宗伯 : 예부상서)에게 정문(呈文)하여 제사(題辭)를 받았으므로 이에 하체(下帖)하니 준수하여 시행할 일이라는 내용이다. 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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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정조 21) 2월 25일에 몽천정사(蒙泉精舍) 소임(所任)이 강원도 울진현령에게 올린 첩정(牒呈) / 기록자료>고문서 / 몽천정사 소임몽천정사의 소임이 품보(禀報)하는 일로써, 본 정사가 원(院)으로 승격하는 날이 3월 7일인데 일을 진행하는 선비들의 어려움은 고사하고 제수용품에 있어서는 예를 폐할 수 없는데, 마침 다리가 부러진 소가 있어서 그 소를 사서 포(脯)로 사용할 뜻으로 연유를 품보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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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순조 19)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遠南面) 유학(幼學) 윤행건(尹行健)이24세에 작성한 호구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윤행건1819년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4호(第四戶) 유학(幼學) 윤행건(尹行健)이 24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행건의 본관과 4조(四祖)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학생(學生)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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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숙종 43) 12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유학(幼學) 윤사근(尹思謹)에게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울진현1717년(康熙 56) 12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17통(第十七統) 제5호(第五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사근(尹思謹 : 35세)에게 1717년(丁酉)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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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순조 10)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遠南面) 유학(幼學) 윤동헌(尹東憲)이 77세에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윤동헌1810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4호(第四戶) 유학(幼學) 윤동헌(尹東憲)이 77세에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 재(縡), 할아비는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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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정조 19)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유학(幼學) 윤동헌(尹東憲)이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윤동헌1795년에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 統) 제3호(第三戶) 유학(幼學) 윤동헌(尹東憲)이 62세(甲寅年)에 작성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 재(縡), 조부는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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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순조 31)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행건(尹行健)의 호구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윤행건1831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4호(第四戶) 유학(幼學) 윤행건(尹行健)이 36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행건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學生)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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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고종 25) 정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에게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은1888년(光緖 14) 정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 통(第 統) 제2호(第二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 : 75세)에게 1885년(乙酉)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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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에게 등급해준 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은1885년(光緖 11)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통(第統) 제2호(第二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 : 72세)에게 1882년(壬午)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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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에 강원도 울진현에서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에게 등급해준 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은1876년(光緖 2년)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통(第統) 제1호(第一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 : 63세)에게1873년(癸酉)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口)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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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고종 7) 정월에 강원도 울진현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의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울진현1870년(同治 9년) 정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통(第統) 제3호(第三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 : 50세)에게 1867년(丁卯) 식년 성적(式年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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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에 작성한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의 호구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은1867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17통(第十七統) 제1호(第一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47세 되던 해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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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고종 19) 정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에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선(尹相善 : 59세)에게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선1882년(光緖8) 정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 통(第 統) 제2호(第二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선(尹相善 : 59세)에게 1879년(己卯)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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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2호(第二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53세 되던 해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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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4호(第四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성(尹相成)이 50세 되던 해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성의 본관과 4조(祖)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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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고종 16) 정월에 강원도 울진현에서 유학(幼學) 윤상선(尹相善)에게 등급해 준 준호구(準戶口)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선1879년(光緖 5년) 정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통(第統) 제3호(第三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상선(尹相善 : 56세)에게 1876년(丙子)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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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3호(第三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41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祖)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학생(學生) 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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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에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호(第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44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학생(學生) 행건(行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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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2호(第二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38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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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2호(第二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35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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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에 강원도 울진 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5호(第五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29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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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에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遠南面) 제1리(第一里) 매야촌(梅野村) 제통(第統) 제2호(第二戶)에 사는 유학(幼學) 윤상은(尹相殷)이 26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주호인 윤상은의 본관과 4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 학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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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康熙 38년) 11월에 강원도 울진 현에서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 제1리(第一里) 제16통(第 十六統) 제3호(第三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배(尹培 : 40세)에게 기묘(己卯) 식년 성적(式年 成籍)의 장적(帳籍)에 준거하여 등급해 준 준호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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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 1월 28일에 유학(幼學) 남인조(南仁祚)가 생원(生員)인 윤상설(尹相卨)과 윤병하(尹炳夏)에게 마전(麻田)을 방매하면서 발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남인조남인조가 긴요하게 쓸 일이 있어서 전래되어 오던 서면 귀전자(西面 龜田字)에 있는 마전 6두락지(陸斗落只) 곳을 50량에 방매하며, 위 밭에 딸린 감나무 2그루와 죽전(竹田)과 저전(楮田)도 아울러 영영 방매하니, 오래도록 가지고 농사지어 먹으며 앞으로 피차간에 잡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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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고종 19) 4월 12일에 유학(幼學) 윤병주(尹炳周)가 문중(門中)에 논을 방매하면서 문중유사(門中有司)인 유학 윤행학(尹行鶴)에게 발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윤병주윤병주가 긴요하게 쓸 일이 있어서 자신에게 전래되어 온 본면(本面) 강변 야자원(夜字員) 답 일배미[畓壹夜味] 일두오승락지(壹斗伍升落只)곳을 50량에 문중에 영영방매하니 이 논을 오래도록 농사지어 먹을 일이며, 앞으로 피차간에 잡담이 있거든 이 문서로 관아에 고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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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헌종 3) 3월 27일에 유학(幼學) 최배용(崔配溶)이 윤윤갑(尹胤甲)에게가기전답(家基田畓)과 송전(松田)을 방매하면서 발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최배용최배용이 이사를 가게 되어 취득하였던 광자(光字) 가기전(家基田) 8두락지(捌斗落只)·방가(房家) 12간(拾貳間)·초당(草堂) 3간(參間)·장외기모전(墻外基牟田) 5두락지(伍斗落只)·후록(後麓)의 송전(松田) 중에 송추(松楸)의 큰 소나무를 제외한 송추전과 대추나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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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헌종 3) 12월 15일에 당중회원(堂中會員) 남윤조(南胤祚) 등 11명이 우암선생 주손인 윤상은(尹相殷)에게 방매하면서 발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남윤조 등 11인몽천서원(蒙泉書院)은 본래 우암선생(憂菴先生)을 제사하던 곳이나 기사(己巳)년에 훼철된 뒤로 재목들이 모두 관아로 들어갔으며, 남은 약간의 전토(田土)는 사림의 공의에 의하여 선생의 위토(位土)로 삼기로 하였기 때문에 본면(本面) 진의곡(眞矣谷) 강자원(崗字員) 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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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윤 8월 22일 윤정규(尹定奎)가 윤홍규(尹鴻逵)에게 전답을 방매하면서발행한 토지매도증(土地賣渡證) / 기록자료>고문서 / 윤정규윤정규가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667번지의 밭 7두락 지를 120량에 영영방매하며 오래도록 농사지어 먹을 일이며 앞으로 이론(異論)이 있으면 이 문서를 증거로 삼아 바로잡을 일이라고 하였다. 매도인과 증인 윤상헌(尹相憲)이 도장을 찍었다. 경술국치 이후의 대한제국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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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동복(同腹) 5남매가 부모의 3년 상을 마치고 선세로부터 전래되어 온 전답과 노비를 화회분집(和會分執)하였다. 부모의 제수용품 몫과 묘지기[墓直]몫은 별도로 정하였으며, 박서방(朴書房)은 사망 후에 후손이 없기 때문에 제사조(祭祀條)와 묘지기[墓直]의 몫만출처 : 유교넷 -
295735
1860년(철종 11) 9월에 전참판(前參判) 윤상익(尹相翊 : 1847 ~ ?)등 24명이 파평 윤 씨 대종회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발행한 완의(完議)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익 등 24인파평 윤 씨는 윤애(倫愛)를 근본으로 하며 윤애는 존조(尊祖)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종중(宗中)을 중히 여겨왔으며, 중간에 종손이 적자(嫡子)로 계속 이어져 온 것은 아니었다. 야성군(野城君)의 후사손 12세에 이르러 서(墅)가 요절하여 아우인 후(垕)가 이었으며, 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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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철종 11) 9월에 전참판(前參判) 윤상익(尹相翊 : 1847 ~ ?)등 24명이파평 윤 씨 대종회에서 종원(宗員)들에게 발행한 완의(完議) / 기록자료>고문서 / 윤상익 등 24인파평 윤 씨는 윤애(倫愛)를 근본으로 하며 윤애는 존조(尊祖)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종중(宗中)을 중히 여겨왔으며, 중간에 종손이 적자(嫡子)로 계속 이어져 온 것은 아니었다. 야성군(野城君)의 후사손 12세에 이르러 서(墅)가 요절하여 아우인 후(垕)가 이었으며, 또출처 : 유교넷 -
295737
1797년(정조 21) 3월 3일에 백사일(白思一) 등 4명이 몽천서원의 윤 씨들에게서 원(書院)으로 승호(陞號)한 것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백사일·백형옥·백태형 등우러러 그리워하던 중에 상대방의 편지을 받은 기쁨을 전하고, 서원의 첨존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번에 서원으로 승호된 것은 모두 상현존덕(尙賢尊德)에서 나왔음을 강조하고 욕의(縟儀 : 성대한 의식)의 행사에 참석치 못하는 미안함을 전하고, 1민전(一緡錢)을 보내어 부조출처 : 유교넷 -
295738
1797년(정조 21) 3월 3일에 조일규(趙一圭) 등 6명이 몽천서원의 윤 씨 문중으로 서원(書院)으로 승호(陞號)한 것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월담헌 척하 조일규 등 6인지난달에 보내준 편지은 참으로 고마웠으며, 첨존들의 안부를 물었다. 몽천서원이 승호(陞號)한 것은 실로 광세성의(曠世盛儀)인데, 인척의 관계에 있는 자신들이 어찌 손뼉을 치며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를 반문하였다. 마땅히 변두(籩豆)의 자리에 가지런히 나아가야 하지출처 : 유교넷 -
295739
을묘(乙卯) 10월 20일에 법전(法田)의 강필신(姜必臣)등 12명이 노서(魯西)와 명재(明齋)의 피무사(被誣事)로 몽천서원의 첨존들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강필신 등 12인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 : 1610 ~ 1669)와 명재(明齋) 윤증(尹拯 : 1629 ~ 1714)이 무함을 당한 일로 인하여, 이미 연명으로 진소(陳疏)가 있었으며 장보(章甫)들이 대궐 문에서 규탄한 일과 노강서원(魯岡書院)에서 발송한 통문(通文)과 절목(節目출처 : 유교넷 -
295740
을미(乙未) 3월 복인(服人) 상성(相成)이 보낸 편지로 보내준 선물에 대한 사례답신 / 기록자료>고문서 / 복인 상성영남의 길이 길고도 멀기 때문에 소식이 막혀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던 중에 인편이 와서 편지을 전해주었음을 밝히고, 따뜻한 봄 날씨에 상대방이 보배롭게 잘 있음을 살피고는 위로되는 마음을 전하였다. 막내 동생이 관아(官衙)의 뜰에서 참기 어려운 욕을 당한 일은 실로출처 : 유교넷 -
295741
경오(庚午) 1월 12일에 성산(城山)의 사제(査弟) 윤병구(尹炳龜)가 남생원(南生員)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윤병구이미 좋은 혼인으로 맺어졌고 또 상대방이 방문해주어서 가난한 집에 광채가 남을 깨닫겠으나 다만 투할(投轄 : 손님을 가지 못하게 붙잡음의 비유)하는 정성이 부족하여 눈길을 무릅쓰고 먼 길을 돌아가게 한 것에 대하여 죄송한 마음을 전하였다. 그동안에 조용히 정양하는출처 : 유교넷 -
295742
경진(庚辰) 1월 1일에 사하(査下) 최현삼(崔鉉三)이 사돈 형제에게 보낸 안부 서찰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최현삼1월 1일에 사돈에게 보낸 의례적인 서신으로, 예연(禮筵)에서 뵙고 옛것을 강마하여 새것을 논하였으나 투할(投轄 : 손님을 가지 못하게 붙잡음의 비유)하는 정성이 부족함을 한해와 함께 전별하니 사돈의 정의가 오히려 서글퍼짐을 전하였다. 새해를 맞이하여 형제분이 더욱출처 : 유교넷 -
295743
경인(庚寅) 12월 5일에 외생(外甥) 안명선(安明善)이 장인어른에게 보낸 안부 서찰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안명선안명선이 상중에 있는 장인어른에게 보낸 편지로 헤어진 뒤로 두 분의 안후는 잘 지탱하고 있는지와 빙종조(氷從祖)의 안후와 윤형(允兄)도 한결같이 잘 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은 어제 밤에 돌아오니 어머니의 안후는 별로 더함이 없으며 다른 가족들도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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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庚寅) 12월 5일 계제(契弟) 안명선(安明善)이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안창선안명선이 수신자 미상에게 보낸 안부편지로 새로 계의(契誼)를 맺은 인연으로 화연(華筵)에 참석하여 온화하게 하룻밤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으며, 돌아온 뒤에 또 먼저 편지을 보내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하였다. 섣달의 추위에 부모님 모시는 형제분의 체후가 연달아 호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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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乙巳) 4월 1일에 사제(査弟) 남상규(南相奎)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남상규지난번에 돌아온 이후로 인편이 없어서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우울하던 중에 상대방이 편지을 보내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상대방의 조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 우두커니 기다리는 심정을 위로하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생기는 이때에 존당의 안후는 더욱 보중하고 형제분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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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甲寅) 4월 11일에 이보정(李輔正)이 계약을 파기하자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 이보정요령(葽令)에 상대방 여러분의 기체후는 고루 만안한지를 묻고 자신은 그런대로 지내고 있어서 다행함을 전하였다. 상대방의 편지에서 책망한 말은 인정이 없는 책망임을 지적하고, 당초의 일은 누가 옳고 그른지가 한마디 말로 가리어진 사이에 이미 일이 이루어졌으며, 이로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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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戊戌) 8월 28일에 사제(査弟) 전철수(田哲秀)가 말을 한필 보내줄 것을 부탁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전철수자신에게 방문하여 몇 일간 단란하게 토론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치 백붕(百朋 : 녹을 많이 받음)을 받은 것 같으며 갑자기 돌아가 서글픔이 아직 남아 있음을 전하였다. 가을 날씨가 서늘한데 사장(査丈)의 기체후는 만안하며 합절(閤節)은 균경(勻慶)한지를 물었다. 자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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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10월 13일에 사제(査弟) 최상순(崔尙淳)이 사형(査兄)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최상순대대로 우호의 집안이 다시 사돈의 정의(情誼)를 맺었으므로 좋은 감정이 샘물처럼 흘러나와 그치지 않음을 밝히고, 점점 추워지는 계절에 당상의 사장(査丈)형제 안후는 지난번에 왕래한 피곤함으로 손상됨이 없는지를 묻고, 완부(阮府 : 숙부)형제도 만안하고 가족들도 모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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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壬申) 12월 13일 행촌(杏村)에 사는 사제(査弟) 이현재(李賢載)가 매호(梅湖)의 사형(査兄)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현재예석(禮席)에서 모셨던 일은 이미 상품(常品)에서 뛰어났으며 이어서 먼저 편지을 보내어 위문하는 정의가 더욱 아름다워 기쁨을 헤아릴 수 없음을 전하고, 형제분의 안후가 계절에 따라 더욱 강녕하고 막내아우의 병환도 약을 쓰지 않을 만큼 나았으며, 집안의 절도도 경사스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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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辛卯) 10월 22일에 외생(外甥) 안명선(安明善)이 장인어른에게 올린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안명선예연에서 헤어진지가 어느 듯 한 달이 지났는데 안후를 살피지 못하였음을 말하고, 초겨울에 조용히 정양하는 형제분의 체후는 연이어 호위되고, 완부(阮府 : 숙부)의 기거도 손상됨은 없고 윤형(允兄)도 안온하게 잘 있는지를 물었다. 자신은 어머니의 건강이 그런대로 큰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