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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응시자 미상의 시권(試券) / 기록자료>고문서이 문서는 응시자의 신분을 기록한 부분을 떼어내었다가 다시 붙이지 않아 응시자를 알 수가 없다. 시제는 대책문 1편이다. 대책문은 대개 ‘문운운(問云云)’하고 질문의 내용은 쓰지 않으며‘대(對)’라고 쓰고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여, 마지막에는 ‘근대(謹對)’라고 마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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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숙종 19) 강원도 울진 현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배(尹培 : 33세)의 생원시 복시(覆試)의 시권(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윤 배(33세)1693년 강원도 울진현 원남면(遠南面) 매야촌(梅野村)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윤배(尹培)의 33세 때의 생원시 복시(覆試)의 시권(試券)이다. 시권의 첫머리에 자신의 거주지역과 사조(四祖)를 쓴 명지(名紙)를 따로 기록하였는데, 본관은 영덕(盈德)이며, 아버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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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묵(金道黙)이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노우 김도묵김도묵(金道黙)이 올린 만사(輓詞)이나 수신자는 분명하지 않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城) 동쪽에는 춘색(春色)이 만연한데 비는 꽃가지를 두드리고 다시 바람불어오네. 구름 속 달 상대방의 모습 눈에 가득한데, 밤낮으로 바라던 일이 허사로 돌 아가네라고 읊고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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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거안(趙居安)이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조거안한양(漢陽) 조거안이 올린 만사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은 학문을 귀하에 여기는 성스러운 시대에 동방의 한 모퉁이에 태어나 삼가고 조심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도(河圖)·낙서(洛書)를 탐구하였으며, 봄에는 죽순과 산마루의 학 울음소리 좋아하였는데 이제는 그만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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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학(後學) 전옥심(田沃心)이 올린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후학 전옥심후학(後學) 전옥심(田沃心)이 올린 만사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밝은 창 아래 숙연히 앉아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를 오로지하였으며, 성현이 남긴 경전을 궁구하고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이치를 추구하였다. 천리 멀리 떨어진 궁향에 구중궁궐(九重宮闕 : 대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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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壬辰) 4월 19일에 사생(査生) 주병원(朱秉元)이 사장(査丈)인 파평 윤공(坡平 尹公)의 대상일(大祥日)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생 주병원사장(査丈)인 파평 윤공의 대상일(大祥日)에 주병운(朱秉元)이 올린 제문으로, 사돈이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제수(祭需)를 진설하고 가슴속 가득한 회포를 크게 탄식하며 영전에 올린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공은 파평의 화벌(華閥)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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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12월 21일에 종질(從姪)인 여석(呂錫)의 소상일(小祥日)에 종숙(從叔)인 학규(學逵)가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숙 학규소상일(小祥日) 하루전날인 계사(癸巳)일에 종숙인 학규(學逵)는 용렬한 제수와 간략한 말로 영전(靈前)에 곡함을 말하고, 상대방은 품부 받은 성품이 범상하지가 않아 우리 집안의 동량(棟樑)으로 여겼는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탄식하였다. 상대방이 죽은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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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辛酉) 11월 18일 족조(族祖)인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금상일(禁祥日)에 족손(族孫) 홍규(鴻逵)가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손 홍규족조(族祖)인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금상일(禁祥日)에 족손(族孫) 홍규(鴻逵)가 졸렬한 제수를 의상(儀床)에 올리고 고한 제문이다. 고인은 자인념정(慈仁恬靜)한 성품, 관홍간중(寬弘簡重)한 그릇, 처족돈목(處族敦睦)한 마음, 대인화기(對人和氣)한 덕, 여물무경(與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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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7월 26일에 빙대부(聘大夫) 통정대부(通政大夫) 파평 윤공(坡平尹公)의 금기일(禁朞日)에 손서(孫婿)인 남용철(南容哲)이 올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손서 남용철손서(孫婿)인 남용철(南容哲)이 빙대부(聘大夫)인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금기일(禁朞日) 전날 저녁에 비박(菲薄)한 제수를 상설(象設)하고 올린 제문으로, 울창하게 산기운이 서려있는 바닷가의 특별한 고을이 있으며, 그 아래는 풀이 무성하고 문채가 있는 고택이 있는데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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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庚寅) 4월 19일 족종제(族從弟) 윤용중(尹容重)이 86세로 사망한 종형(從兄)에게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제 윤용중종형(從兄)인 처사공(處士公)이 86세의 나이로 관화(觀化 : 죽음)하였는데, 족종제(族從弟)인 용중(容重)이 정삽(㫌翣 : 銘旌과 翣扇)하기 전날인 그 다음달 9일에 올린 제문이다. 망인을 백옥당(白玉堂 : 한림원학사) 형의 곁에 장례 지내게 되었음을 먼저 말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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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3월 30일 부제(婦弟) 기복인(朞服人) 남일병(南日炳)이 매형인 처사(處士) 파평 윤씨의 조재(祖載 : 發引)전날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남일병기축(己丑) 3월 30일에 남일병(南日炳)의 매형이 사망하였으나 장례일은 여름을 넘긴 가을 양월(霷月 : 음력 10월) 5일이며, 이 제문은 조재(祖載 : 發引) 하루 전날에 올린 것으로, 백옥산 아래의 선조(先兆 : 先塋)에 묻히게 된 것을 고하는 내용이다. 철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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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7월 26일 종형(宗兄) 통정대부(通政大夫) 종상일(終祥日)에 족제(族弟) 병기(炳夔)가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병기고인은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 1602 ∼ 1663)과 송옹(松翁)의 주손(冑孫)으로 대대로 전헌(典憲)의 훌륭함과 시예(詩禮)의 아름다움이 호여(胡呂)의 두 가문에 뒤지지 않았으며, 고인이 선조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은 몸을 삼가고 늘 조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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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辛未) 12월 21일 사제(舍弟) 경달(景達)의 영귀불양(永歸不暘 : 장례)의 날에 사형(舍兄) 석현(錫賢)이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경달신미(辛未) 12월 21일 사제(舍弟) 경달(景達)의 영귀불양(永歸不暘 : 장례)의 날에 사형(舍兄) 석현(錫賢)이 눈물을 훔치며 몇 줄의 뇌사(誄辭)를 고한 제문이다. 예전에 선비(先妣)의 슬하에 있을 때 서로 종유하면서 소장즉수 대장즉주(小杖則受大杖則走 : 작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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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辛酉) 7월 26일에 서거한 외왕고 통정대부 파평 윤공(外王考 通政大夫 坡平 尹公)에게 외손(外孫) 안용훈(安鎔薰)이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외손 안용훈외왕고 통정대부 파평 윤공(外王考 通政大夫 坡平 尹公)이 대질(大耋 : 80세)의 나이로 침상에서 돌아가니 신유(辛酉) 7월 26일이다. 외손(外孫) 안용훈(安鎔薰)은 그 당시에 염양(殮襄)의 곁으로 달려오지 못하고 다음해 임술(壬戌)년 소상(小祥)때 비로소 제물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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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정대부(通政大夫) 파평 윤공(坡平 尹公) 소상일(小祥日)에 사하생(査下生) 남상규(南相奎)가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남상규파평 윤공(坡平 尹公)이 고종(考終)한 다음해인 임술(壬戌) 7월 26일, 즉 공의소상일(小祥日)에 사하생(査下生) 남상규(南相奎)가 올린 제문(祭文)이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고장은 예로부터 문헌의 고장으로 그중에서도 파평 윤 씨가 드러난 문중으로 대대로 뛰어난 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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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7월 26일 통정대부(通政大夫) 파평 윤공(坡平 尹公) 대상일(大祥日)에 사하생(査下生) 최대순(崔大淳)이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최대순대상(大祥) 전날 저녁에 강릉에 거주하는 사돈 최대순(崔大淳)이 철연(撤筵)하기 전에 올린 제문으로, 세상이 숙계(叔季 : 말세)로 내려오면서 풍속이 잡박하고 이언(異言)이 분나(紛挐 : 어지러움)하며 사기가 투박한 요즈음의 세대에 고인만한 사람이 없음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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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7월 26일 재종숙(再從叔) 상무(相武)가 자신의 종군(宗君 : 종손)인통정대부(通政大夫) 윤공(尹公)의 종상일(終祥日) 하루 전날에 올린 제문(祭文) / 기록자료>고문서 / 재종숙 상무자신은 가문이 쇠퇴하여 선고(先考)와 선형(先兄)을 조세(蚤世)에 잃었으며, 자신도 고루하여 선세의 전칙(典則)을 듣지 못하여 오직 공에게 의지하였는데, 서로의 거리가 조금 멀어서 조석으로 봉접(奉接)하지 못하고 매번 사시절사(四時節祀)의 자리에서 밖에 만날 수 없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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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인조 5) 3월에 국왕이 전성복(田成福)에게 내린 추증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이 문서는 1627년 3월에 전성복(田成福)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추증하는 교지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 문무관의품계이고 동지중추부사는 중추부에 속한 종2품의 품계이다. 증직이란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죽은 뒤에 품계 ·관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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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인조 6) 국왕이 유학 전여흡(田汝洽)에게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숭정 원년(1628년)에 이조(吏曹)에서 왕의 명을 받아 유학 전여흡(田汝洽)을 선무랑(宣武郞) 황산도(黃山道) 찰방(察訪)에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전여흡이 받은 관직은 찰방인데, 찰방은 조선시대에 각 도(道)의 역참을 관장하던 종6품의 외관직(外官職)이다. 일반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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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4월 26일에 국왕이 전세등(田世登)에게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1744년 4월 26일에 전세등(田世登)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하는 교지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으로,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할 때 참여하는 벼슬이고 근무일수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가자(加資)하였다. 교지발급 날짜 옆에 발급 사유를 적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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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영조 20) 8월에 국왕이 전세등(田世登)에게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1744년 8월에 전세등(田世登)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하고 동시에 직급보다 낮은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겸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절충장군은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서반(西班 : 武官)에게 주던 관계(官階)이다. 교지발급 날짜 옆에 교지 발급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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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영조 21) 2월 22일에 국왕이 전세등(田世登)에게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건륭(乾隆) 10년(1745년) 2월 22일에 전세등(田世登)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 문무관의 품계를 말한다. 교지를 발급할 때는 교지발급 날짜 옆에 발급사유와 담당자를 기록하는데 이 교지의 내용을 보면, 전세등의 나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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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8월에 화민 전학순·전영두가 성주(城主)에게 묘답(墓畓)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순·전영두경오년 8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전학순(田鶴純)과 전영두(田永斗)가 묘답(墓畓) 문제에 대하여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멸동의 묘답복수부록사(墓畓卜數浮錄事)에 대하여 어제 성주께 모두 보고하였는데 그 가운데 허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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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3월에 죄민(罪民) 전영두가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전영두정묘년 3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지역 내에 살면서 죄를 짓고 있는 전영두(田永斗)가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영두는 주병상(朱秉常)이라는 사람이 기한이 지나도 투장한 묘를 옮겨가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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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3월에 죄민(罪民) 전영두가 성주(城主)에게 묘지 투장(偸葬)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전영두정묘년 3월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면서 죄를 짓고 있는 전영두(田永斗)가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병상(朱秉常)이라는 사람이 전영두 소송인의 선산(先山)에 자신의 아버지 묘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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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2월 며칠에 죄민(罪民) 전영두가 성주(城主)에게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전영두 외 3인정묘년 2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면서 죄를 짓고 있는 전영두(田永斗)외 3명이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억지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데 주병상(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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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2월 며칠에 죄민(罪民) 전영두가 성주(城主)에게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민 전영두 외 3인정묘년 2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면서 죄를 짓고 있는 전영두(田永斗)외 3인이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8대 조부 산소 근방에 주병상(朱秉常)이라는 사람이 몰래묘를 써서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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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2월에 전재심·전학명·전학송 외 16명이 성주(城主)에게 선산(先山)의 훼손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와 표기(標記) 그리고 다짐의 문서를 붙인 첩문(貼文)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명·전재심 등 19인정묘년 2월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면서 죄를 짓고 있는 전재심(田在心) 외 18명이 선산(先山)의 훼손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희들의 선조인 봉렬대부의 묘가 송원(松遠)에 있는데 이 산의 오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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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己卯) 8월에 전재심·전학명·전학섬·전덕심 외 25명이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명·전재심 등 29인기묘년 8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면서 죄를 짓고 있는 전재심(田在心) 외 28명이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11월경에 12대조의 묘의 좌청룡 부근에 누군가가 몰래 무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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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己卯) 10월 며칠에 전재심(田在心) 외 27명이 성주(城主)에게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명·전재심 등 28인기묘년 10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전재심 외 27명이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달 전에 선산에 아주 해가 미칠 정도로 가까운 곳에 투장한 일을 가지고 누차 민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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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戊寅) 11월 며칠에 전재심(田在心) 외 21명이 성주(城主)에게 묘지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명·전재심 등 22인무인년 11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전재심(田在心)외 21명이 묘지 투장(偸葬)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대조인 훈도(訓導) 공의 묘가 근북(近北) 일이동(日移洞)에 있는데 자손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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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8월에 전재심(田在心) 외 2명이 성주(城主)에게 재사복수(齋舍卜數)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승·전재심 등 14인경오년 8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전재심외 2명이 재사복수(齋舍卜數)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 몇 대에 걸쳐 원북의 고등보멸동에 살고 있는데 그 안에 재사(齋舍)가 있어 근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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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8월에 전학순(田鶴純)·전영두(田永斗)가 성주(城主)에게 재사복수(齋舍卜數) 문제에 대하여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전학순·전영두경오년 8월 며칠에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살고 있는 전학순·전영두가 재사복수(齋舍卜數) 문제에 대하여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을 올린 일종의 진정서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사복수(齋舍卜數)에 관하여 누차 민원을 제기하게 되어 죄송하다 하였고, 그때 판결하기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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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戊午) 전준기(田畯基)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준기(50세)무오년(戊午年)에 근북2리 후당촌 제 6통 3호에 사는 당시 50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준기(田畯基)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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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己酉)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광석(47세)기유년(己酉年)에 근북2리 후당촌 제5호에 사는 당시 47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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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壬子)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광석(50세)임자년(壬子年)에 근북2리 후당촌 제2호에 사는 당시 50세인 담양 전씨유학(幼學)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는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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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乙卯)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광석(53세)을묘년(乙卯年)에 근북2리 후당촌 제3호에 사는 당시 53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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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戊午)에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광석(56세)무오년(戊午年)에 근북2리 후당촌 제2호에 사는 당시 56세인 담양 전씨유학(幼學)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는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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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辛酉)에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광석(59세)신유년(辛酉年)에 근북2리 후당촌 제4호에 사는 당시 59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광석(田光錫)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조, 외조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는다.출처 : 유교넷 -
295890
1867년(고종 4)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30세)동치 5년(1867년) 갑자년(甲子年)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2리 후당촌 제4호에 사는 당시 30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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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고종 8)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33세)동치 9년(1871년) 정묘년(丁卯年)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2리 후당촌 제4호에 사는 당시 33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 조, 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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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고종 11)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36세)동치 12년(1874년) 경오년(庚午年)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5호에 사는 당시 36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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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에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39세)광서 2년(1876년) 계유년(癸酉年) 5월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3호에 사는 당시 39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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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고종 16)에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42세)광서 5년(1879년) 병자년(丙子年) 5월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1호에 사는 당시 40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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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48세)광서 11년(1885년) 을유년(乙酉年) 5월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1호에 사는 당시 48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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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고종 25)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51세)광서 14년(1888년) 무자년(戊子年) 5월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1호에 사는 당시 51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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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고종 28)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54세)광서 17년(1891년) 신묘년(辛卯年) 5월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2호에 사는 당시 54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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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영두(57세)광서 20년(1894년) 갑오년(甲午年) 5월에 강원도 울진현 근북면 제2리 후당촌 제1호에 사는 당시 57세인 담양 전씨 유학(幼學) 전영두(田永斗)의 가족과 처족의 신상 명세를 기록한 호적단자(戶籍單子)이다. 호구단자는 해당자의 주소와 나이를 먼저 적고 해당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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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6년(영조 22) 7월 17일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하여 책을 만든 초안 / 기록자료>고문서건륭 11년(1746년) 7월 17일에 재산을 분배하여 책을 만든 초안이다. 재산을 분배하는 이유는,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하여 수 년 동안 경작하게 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나이가 90살을 맞이하게 되어 언제 어떻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에 분배하여 공증을 하려고 작성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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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幼學) 전익대(田益大)의 23세 때에 제출한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 중 대책문(對策文)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익대(23세)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 전익대(田益大)의 23세 때에 제출한 과거 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 중 대책문(對策文)으로 특정 문제를 내어 주고 이에 대해 논문 형식으로 서술한 내용이다. 답안지에는 수험생의 이력서를 적는데 이름과 나이 및 본관을 적고 그 사람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