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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幼學) 전양심(田養心)이 38세 때 쓴 시권(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양심(38세)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인 전양심(田養心)이 38세 때 쓴 시권으로, 제목은 천백치부(薦白雉賦)이다. 답안지에는 수험생의 이력서를 적는데 이름과 나이 및 본관을 적고 그 사람의 부, 조, 증조 그리고 외조부까지 이름을 함께 적는다. 부는 일반적으로 산문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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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幼學) 전양심(田養心)이 38세 때 쓴 시권(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전양심(38세)유학(幼學 : 벼슬하지 않은 선비)인 전양심(田養心)이 38세 때 쓴 시권으로, 제목은 예의천지관(禮義天地官)이다. 답안지에는 수험생의 이력서를 적는데 이름과 나이 및 본관을 적고 그 사람의 부, 조, 증조 그리고 외조부까지 이름을 함께 적는다. 부는 일반적으로 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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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면의 전병규(田炳奎)가 쓴 시권(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전병규울진면의 전병규(田炳奎)가 쓴 시권으로, 제목은 강남임관지미등왕각위제일(江南臨觀之美滕王閣爲第一)이다. 답안지에는 수험생의 이력서를 적는데 이름과 나이 및 본관을 적고 그 사람의 부, 조, 증조 그리고 외조부까지 이름을 함께 적는데 이 시권은 떨어져 나갔는지 인적사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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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면의 전병규(田炳奎)가 쓴 시권(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전병규울진면 후정리(後亭里)의 전병규(田炳奎)가 쓴 시권으로, 제목은 자퇴과일이대소문장형제(自退科日以待蘇文章兄弟)이다. 답안지에는 수험생의 이력서를 적는데 이름과 나이 및 본관을 적고 그 사람의 부, 조, 증조 그리고 외조부까지 이름을 함께 적는데 이 시권은 떨어져 나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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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小弟) 윤호규(尹鎬逵)가 쓴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윤호규윤호규(尹鎬逵)가 정갈한 초서로 써서 엄숙하고도 가슴 아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종서(縱書)로 총 6줄로 썼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죽은 사람과의 관계 및 이름을 썼다. 만사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인데 한시의 형태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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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남동호(南東鎬) 사촌 자형인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제 남동호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남동호(南東鎬) 사촌 자형인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17줄로 썼다. 글자를 아주 단정하게 써서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기축년 4월 28일 날은 사촌 자형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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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족종(族從) 영창(永昌)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영창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족종(族從) 영창(永昌)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22줄로 쓰고 마지막에 쓸 곳이 모자라‘향(饗)’ 자를 제일 위에 격식에 맞지 않게 썼다. 글자를 아주 단정하게 써서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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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사제(査弟) 주병중(朱秉重)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주병중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사제(査弟) 주병중(朱秉重)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13줄로 쓰고 있다. 글자를 아주 단정하게 써서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기축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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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계제(稧弟) 주진렴(朱鎭濂)·남몽호(南夢鎬) 등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설제 주진렴·남몽호 등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계제(稧弟) 주진렴(朱鎭濂)·남몽호(南夢鎬)등이 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15줄로 쓰고 있다. 글자를 아주 단정하게 써서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기축년 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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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관종생(館從甥) 장석문(張錫文)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관종생 장석문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관종생(館從甥) 장석문(張錫文)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14줄로 쓰고 있다. 글자를 아주 정밀하게 썼지만 글자 자체가 단아하지는 않다. 그러나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제문의 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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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족종숙(族從叔) 창술(昌述)이 근고처사(近故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숙 창술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족종숙(族從叔) 창술(昌述)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17줄로 쓰고 있다. 글자를 아주 단아하게 써서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기축년 4월 28일 날은 근고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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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족종(族從) 환기(煥基)가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환기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족종(族從) 환기(煥基)가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23줄로 쓰고 있다. 글자를 아주 단아하게 써서 엄숙하고도 슬픈 마음을 잘 표현하였는데 고치거나 종이로 덧붙여 놓은 부분이 있다. 제문의 내용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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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아제(婭弟) 최성탁(崔聖鐸)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아제 최성탁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아제(婭弟) 최성탁(崔聖鐸)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22줄로 쓰고 있는데 14줄은 그대로 읽으면 되고 그 사이에 작게 쓴 글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8줄을 읽어야 한다. 글자를 아주 단아하게 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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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4월 28일에 부제(婦弟) 남이호(南弛鎬)가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남이호기축년(己丑年) 4월 28일에 부제(婦弟) 남이호(南弛鎬)가 만오처사(晩悟處士)의 대상(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19줄로 쓰고 있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정해년 4월 28일은 나의 자형인 만오처사가 돌아가신 날인데 병을 앓고 있을 때에도 몸소 찾아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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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丁亥) 5월 10일에 소질(少侄) 증하(曾夏)가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초상(初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소질 증하정해년(丁亥年) 5월 10일에 소질(少侄) 증하(曾夏)가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초상(初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22줄로 쓰고 있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정해년 5월 10일은 자신의 큰 아버지인 만오처사를 장사지내는 날인데 통곡하며 제문을 바친다고 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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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丁亥) 5월 10일에 사하생(査下生) 장림(張霖)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초상(初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장림정해년(丁亥年) 5월 10일에 사하생(査下生) 장림(張霖)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초상(初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30줄로 쓰고 있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아, 공께서는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목숨은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어진 사람은 반드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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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戊子) 4월 28일에 족종(族從) 등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중상(中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등무자년 4월 28일에 족종(族從) 등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중상(中祥) 때 지은 제문이다. 종서로 총 20줄로 쓰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또 1줄을 종서로 쓰고 있는 제문에서는 특이하게 보이는 양식이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북당(北塘)의 우리 가문은 근 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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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戊子) 4월 28일에 족종숙(族從叔) 전사술(田士述)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중상(中祥) 때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숙 전사술무자(戊子) 4월 28일에 족종숙(族從叔) 전사술(田士述)이 만오처사(晩悟處士)의 중상(中祥) 때 지은 제문이다. 제문의 내용을 보면, 무자년 4월 28일은 만오처사의 중상인데 하루 전날 족종숙인 사술이 약간의 제수품을 갖추어 절을 하고 제문을 짓는다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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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 5월 4일 관(官)에서 토지조사를 위하여 서초면(西初面) 각동에 내린 전령 / 기록자료>고문서 / 관기해년 5월 4일 관(官)에서 서초면(西初面) 각 동에 내려 보낸 전령이다. 앞의 두 장은 토지조사를 시행하는 전령이고, 다음의 두 장은 10개의 지침에 의거하여 보고하는 양식을 적은 내용이며, 마지막 두 장은 고시(告示)에 관한 내용이다. 특이한 점은 세 가지문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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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6월 20일에 정상교(鄭象僑) 부친의 묘지 문제를 놓고 이씨 집안과 법적소송을 벌인 소지이다. 본 고을에 사는 정상교(鄭象僑)가 ‘자신의 아버지를 기존에 여러 개의 묘가 있는 곳에 묘를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시옥(李時沃)이라는 사람이 명처암(冥悽庵)이 멀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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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년(현종 11) 3월 이시명(李時明)이 이휘일(李徽逸)에게 준 글’을 훗날 기록한 일종의 후지(後識) / 기록자료>고문서 / 이시명이휘일의 할아버지인 이함(李涵)은 만년에 병으로 고생하면서 세상일을 잊은 채 오직 자손들의 교육에만 열중했다. 어느 날 아들 이시명을 불러서 《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 에 나오는 말을 써서 이휘일에게 주며 명심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이휘일은 아주어린 나이였다. 이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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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己丑) 7월에 이상춘(李相春)과 박진암(朴鎭嵓)이 유사(有司)가 되어 갈암선생 문집 간역에 관하여 의견을 모은 완의(完議) / 기록자료>고문서 / 이상춘, 박진암갈암선생 문집 간행하는 일에 대하여 이상춘 외 50여명이 모여 완의(完議)를 하고 이를 알리는 글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갈암선생문집(葛庵先生文集) 간행은 수 백년토록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고장의 선배들이고심을 하여 일을 추진하였으나 구애가 있어서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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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丁未) 5월에 동생이 객지에서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이 편지는 정미년 5월 28일에 동생이 보낸 편지라는 사실밖에는 알 수가 없다. 겉봉이 없어서 수신인을 알 수가 없고, 발신인도 그저 동생이라는 말 밖에 없어서 이름을 파악할 수가 없다. 총 20줄로 종서(縱書)로 정갈하게 썼다. 편지이지만 먹색을 자유자재로 구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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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악(李壽岳)이 박참봉 댁에 공판(供辦)에 참석해 달라고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이수악이 편지는 아주 간단하게 요점만 적어서 보낸 것으로, 겉봉투가 없어서 수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일 오른쪽 하단에 편지를 보내고 난 훗날 수신인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먹색이 편지에 적힌 색과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면, 10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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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악(李壽岳)이 같은 계원으로서 차운한 시를 한 편 보내면서 안부를 물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이수악종서로 16행의 사연을 전하고 있는데, 이 편지는 발신인이 수악(壽岳)이라는 사실만 기록하고 있다. 겉봉이 없어서 수신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발신인은 이수악인데 계제(契弟)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수신인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앞부분의 10줄은 편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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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1월 21일날 척하(戚下) 이수악(李壽岳)이 친척의 죽음을 애도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하 이수악갑진년 1월 21일날 척하(戚下) 이수악(李壽岳)이 친척의 죽음을 애도하며 보낸 편지이다. 겉봉이 없어서 수신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수신인의 친척 죽음에 애도하며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제일 첫머리에 ‘생식(省式)’이라는 말을 써서, 여러 가지 의식과 절차를 생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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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년(癸年) 6월 1일 이수영(李秀榮)이 치숭(致嵩)에게 보소(譜所) 문제에 관하여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영간지(干支)로 계(癸) 자가 들어가는 해의 6월 1일에 이수영(李秀榮)이 치숭(致嵩)에게 보소(譜所) 문제에 관하여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23줄로 쓰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또 종서로 1줄을 쓰고 있다. 종서 셋째 줄부터 읽어서 모두 읽고 시대 반대 방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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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丙寅) 9월 9일에 이수영(李秀瑩)이 과거시험에 실패한 후의 다짐을 적어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영병인년 9월 9일에 이수영(李秀瑩)이 보낸 편지이다. 겉봉이 없어서 수신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종서(縱書) 19줄로 쓰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종서로 2줄 썼으며, 이어 반대편에 2줄로 쓰고, 또 처음처럼 놓고 아래 부분에 5줄로 마무리 하였다. 이처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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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癸酉) 1월 9일에 이수영(李秀榮)이 강회(講會) 날짜를 조정해 주면 함께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영계유년 1월 9일에 이수영(李秀榮)이 보낸 편지이다. 겉봉이 없어서 수신인은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종서(縱書) 23줄로 썼다. 먹색을 진하게 사용하고 글씨도 비교적 크고 단정하게 썼다. 우선 몇 차례나 편지를 받고서도 매번 답장을 하지 못한 사정을 토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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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년(癸年) 10월 22일에 수영(秀榮)이 치숭(稚嵩)에게 보낸 분황(焚黃)에 대하여 부탁한 일에 대하여 답장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숙 이수영계년(癸年) 10월 22일에 수영(秀榮)이 치숭(稚嵩)에게 보낸 분황(焚黃)에 대하여 부탁한 일에 대하여 답장한 편지이다. 종서(縱書) 13줄로 썼고 글씨는 아주 크게 썼으며 제일 오른쪽에는 덧붙이는 말 한 줄을 쓰고 있다. 그러나 겉봉이 없어서 수신인이 누구인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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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辛未) 11월 19일 족노(族老) 이수영(李秀瑩)이 서행(西行)에 함께하지 못하는 사연을 이치숭(李致嵩)에게 전하는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노 이수영신미년 11월 19일 족노(族老) 이수영(李秀瑩)이 이치숭(李致嵩)에게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15줄로 글씨를 크게 썼으며 제일 오른쪽에는 겉봉이 붙어 있다. 글씨는 전체적으로 익숙한 초서의 형태로 썼는데, 여백이 전혀 없어서 답답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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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丁年) 10월 27일 이사실(李士實)이 소송하는 일에 관하여 치숭(稚嵩)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사실정년(丁年) 10월 27일 이사실(李士實)이 치숭(稚嵩)에게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로 12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또 종서로 한 줄을 쓰고, 다시 시계 방향으로 돌려서 원래의 상태에서 오른쪽에서부터 협서(狹書)로 3줄을 쓰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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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丁亥) 8월 10일 족노(族老) 이사실(李士實)이 유배지에 있는 분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노 이사실정해년 8월 10일 족노(族老) 이사실(李士實)이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23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특이하게도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길게 3줄을 쓰고 다시 3줄을 더 쓰고 다시 원위치 시켜서 2줄을 쓰고 날짜와 발신인을 적었다. 내용을 보면, 4월 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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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甲申) 7월 16일에 족노(族老) 이사실(李士實)이 저곡(楮谷)에 있는 치고(致嵪)에게 문중 일 처리에 대하여 상의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노 이사실갑신년 7월 16일에 족노(族老) 이사실(李士實)이 치고(致嵪)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25줄로 쓰고 있는데 겉봉에는 저곡(楮谷)에 있는 분에게 쓴다는 내용이 있다. 거의 정자체로만 써서 알아보기가 쉽다. 중간에 빠진 글자는 왼쪽에 작은 동그라미를 하고 오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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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丙戌) 12월 22일 족노(族老) 이수영(李秀榮)이 유배 가는 이수악(李壽岳)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노 이수영병술년(丙戌年) 12월 22일 족노(族老) 이수영(李秀榮)이 유배 가는 이수악에게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38줄로, 비교적 장문의 편지를 썼다. 6째 줄처럼 글자를 띄워 쓰는 것은 띄운 글자는 높임의 대상이기 때문에 취한 방식이다. 내용을 보면, 북쪽지방의 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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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庚戌) 1월 13일에 이수암(李壽嵓) 외 4명이 문집 간행 문제에 대하여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암 등 4인경술년 1월 13일에 이수암(李壽嵓) 외 4명이 문집 간행 문제에 대하여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가운데를 아래위로 양분한 상태에서, 종서(縱書)로 13줄을 쓰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려서 종서로 5줄을 썼으며, 또 같은 방향으로 돌려서 6줄을 쓰고, 계속 같은 방향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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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冥庵) 고지기에게 문집에 잘못 들어간 내용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명암(冥庵) 고지기에게 보낸 편지인데, 종서(縱書) 25줄로 쓰고 있다. 중간에 틀린 글자에 굵고 큰 글씨를 고친 부분이 있다. 내용을 보면, 상대방 댁에서 보내온 답장 가산서(佳山書)에 ‘직접 가르침을 받고 삼승(三勝)에 표시하여 새겼다’는 말이 있는데 근거 없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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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년(癸年) 10월 22일 계부(季父)가 분황(焚黃) 때 부탁한 일을 잘 해결해 놓았다고 하며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부간지에 ‘계(癸)’ 자 들어가는 해 10월 22일 계부(季父)가 분황(焚黃) 때 부탁한일을 잘 해결해 놓았다고 하며 보낸 안부 편지이다. 종서(縱書) 13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와서 추신을 기록하고 있다. 글씨를 비교적 잘 쓰는 분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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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壬辰) 12월 25일인 인제(姻弟) 조진기(趙晉基)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보낸 안부를 묻는 답장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조진기임진년 섣달 25일에 인제(姻弟) 조진기(趙晉基)가 답장으로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24줄로 썼다. 글씨가 비교적 굵고 단정한 편이다. 특이한 것은 편지를 다 쓰고 날짜를 적고는 왼쪽에 공간이 있는데도 오른쪽으로 썼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편지에 ‘謝’ 자를 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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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戊戌) 3월 11일 류도헌(柳道獻) 외 11명이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복관(復官)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류도헌외 11인무술년 3월 11일 류도헌 외 11명이 갈암 이현일의 복관 문제에 관한 의견을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16줄로 쓰고 제일 오른쪽에 끝말과 이어서 날짜를 기록하였다. 날짜 아래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여러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이 편지는 늦봄을 맞아 여러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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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辛未) 9월 21일 윤곡(尹谷)에 사는 남만형(南萬亨) 외 1명이 선생의 신도비를 세울 때 참석하지 못하고 돈을 대신 보내는 내용을 저곡(楮谷)에 전달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남만형·조환신미년 9월 21일 윤곡(尹谷)에 사는 남만형(南萬亨) 외 1명이 저곡(楮谷)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14줄로 썼는데 제일 오른쪽의 날짜와 그 다음 줄의 이름은 마지막에 읽어야 한다. 글씨의 발묵 상태가 매우 뛰어나고 자형도 아주 단정하며 품격이 있다. 엎드출처 : 유교넷 -
295942
계사(癸巳) 12월 17일에 권제열(權濟說) 외 3명이 저곡(楮谷)에 구필(鳩筆) 선생의 문집 간행에 대한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권제설외 3인계사년 12월 17일에 권제열(權濟說) 외 3명이 구필(鳩筆) 선생의 문집 간행에 대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저곡(楮谷)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 11줄로 쓰고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두 줄을 쓰고, 다시 시계 방향으로 되돌려서 한 줄을 쓴 상태에서 그 다음 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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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壬子) 9월 11일에 부포(浮浦)에 사는 금태기(琴泰基) 외 2명이 저곡의 백호정(栢湖亭) 간역소에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금태기외 2인임자년 9월 11일에 부포(浮浦)에 사는 금태기(琴泰基) 외 2명이 저곡의 백호정(栢湖亭) 간역소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로 10줄로 쓰고, 편지 보낸 날짜를 한 줄로 쓰고 이름을 세 명이나 적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두 글자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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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壬子) 1월 4일 조주원(趙周遠) 등 6인이 석포(石浦) 이 생원에게 문집을 보내 달라고 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조주원 등 6인임자년 1월 4일 조주원(趙周遠) 등 6인이 석포(石浦) 이 생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로 12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다시 오른쪽 제일 앞으로 와서 두 줄을 쓰고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날짜 오른쪽에는 추신을 적고 있으며 날짜 아래에는 왼쪽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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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丁酉) 10월 23일 장경진(張敬鎭)이 선 선생(先先生)의 무덤 입구에서부터 현실(玄室)까지 길을 다듬는 일에 관하여 익동석역소(翼洞石役所)에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장경진정유년 10월 23일 장경진(張敬鎭)이 익동석역소(翼洞石役所)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로 12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다시 오른쪽 제일 앞으로 와서 두 줄을 쓰고 날짜를 기록하고 제일 마지막에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안부인사에서 초봄을 맞이하여 상대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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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庚戌) 4월 16일 정은석(鄭恩錫) 등 3인이 유집 간행 때 불참한 일에 대하여 진보 백호정간소(眞寶栢湖亭刊所)에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은석 등 3인경술년 4월 16일 정은석(鄭恩錫) 등 3인이 진보 백호정간소(眞寶栢湖亭刊所)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로 18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제일 마지막에 날짜 아래에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줄과 8째 줄에 한 글자 밖에 없는 것은 그 다음에 오는 글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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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辛亥) 2월 29일 정진관(鄭鎭觀)이 선선생(先先生) 문집을 보내 달라고 진보 백호정간소(眞寶栢湖亭刊所)에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정진관신해년 2월 29일 정진관이 선 선생 문집을 보내달라고 진보 백호정간소(眞寶栢湖亭刊所)에 보낸 편지이다. 종서(縱書)로 14줄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고, 제일 마지막에 날짜 아래에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줄과 12째 줄에 글자 수가 적은 것은 그 다음에 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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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안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며 문집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별록 / 기록자료>고문서년도와 수신인 그리고 발신인이 없는데 두 집안의 특별한 관계를 말하며 문집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별록이다. 편지를 보내면서 별도로 사연을 기록한다는 ‘별록’이다. 간단하게 써서 보낼 내용이 아니어서 길게 쓸 목적으로 쓴 것이다. 종서(縱書)로 기록하고 있는데 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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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癸未) 11월 11일 주신조(朱紳朝)가 이 생원 댁에 혼인 날짜를 잡아서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주신조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여자 측에서 남자 측에 혼인 날짜를 정해 알리는 것으로 혼인날을 택일(擇日)해 보내는 절차이다. 계미년(癸未年) 1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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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乙酉年) 12월 9일 남양홍씨 홍기수(洪基洙)가 혼인 날짜를 정하여 보내면서 신랑의 옷 치수를 보내라고 답장하는 예장지이다. 종서(縱書)로 총 10줄을 쓰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 나갔다. 그런데 발신인은 제일 오른쪽에 오도록 쓰고 있다. 조선시대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