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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 1월 19일 첨친(忝親) 재령이씨 이수악(李壽岳)이 납폐(納幣)의 예를 갖추며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악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납폐(納幣)하는 절차에 해당된다. 이 편지는 기해년(己亥年) 1월 19일 첨친(忝親) 재령이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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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壬申) 3월 28일 이인호(李麟浩)가 납폐(納幣)의 예를 갖추며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인호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납폐(納幣)하는 절차에 해당된다. 이 편지는 임신년(壬申年) 3월 28일 이인호(李麟浩)가 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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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戊寅) 10월 27일 첨친(忝親) 이수악(李壽岳)이 의성김씨 댁에 납폐(納幣)의 예를 갖추며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수악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납폐(納幣)하는 절차에 해당한다. 이 편지는 무인년(戊寅年) 10월 27일 첨친(忝親) 이수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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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戊寅) 11월 21일 첨친(忝親) 이상건(李相健)이 안동권씨 권생원댁에 납폐(納幣)의 예를 갖추며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상건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납폐(納幣)하는 절차에 해당한다. 이 편지는 무인년(戊寅年) 11월 21일 첨친(忝親) 이상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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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癸巳) 12월 4일 첨친(忝親) 이광흡(李光潝)이 고성이씨 이생원 댁에 납폐(納幣)의 예를 갖추며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광흡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납폐(納幣)하는 절차에 속한다. 이 편지는 계사년(癸巳年) 12월 4일 첨친(忝親) 이광흡(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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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癸未) 11월 11일 주신조(朱紳朝)가 이생원 댁에 혼인 날짜를 택해서 보낸 예장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주신조조선시대의 혼례는 대체로 혼담(婚談), 납채(納采), 납기(納期), 납폐(納幣), 대례(大禮), 우귀(于歸) 등의 순서로 진행이 되는데, 이 편지는 여자 측에서 남자 측에 혼인 날짜를 정해 알리는 것으로 혼인날을 택일(擇日)해 보내는 절차이다. 이 편지는 계미년(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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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通文)은 단체나 개인이 불특정 다수인에게 어떤 사실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보내는 글을 말한다. 이 통문의 제목은 ‘선산에 보내는 통문’이라는 뜻이다. 종서(縱書)로 21줄을 썼는데, 둘째 줄과 셋째 줄은 이름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 수신처는 ‘선산’이라는 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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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己酉) 9월 15일 완담서당(浣潭書堂) 회원 정홍모(鄭弘模) 등 32명이 문집을 간행할 때 사위와 장인이 같은 호를 쓸 수 없다면서 석포간역소(石浦刊役所)에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홍모 등 32인기유년 9월 15일 완담서당(浣潭書堂) 회원 정홍모(鄭弘模) 등 32명이 석포간역소(石浦刊役所)에 보낸 편지이다. 글씨를 아주 단아하게 썼다. 첫째 줄처럼 공간이 남아 있어도 글씨를 연이어 쓰지 않은 것은 그 다음에 오는 글자가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에 한 글자 띄우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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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7월에 존재(存齋)선생과 갈암(葛庵) 선생이 기거하시던 곳에 대하여 안동 권씨 집안이 소유권을 제기하자 이에 여러 곳에 사정을 알리는 통문이다. 통문이란 단체나 개인이 불특정 다수인에게 어떤 사실을 널리 알릴 목적으로 보내는 글을 말한다. 통문은총 10개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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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癸未年)에 수정(修正)을 한 온천서당(溫泉書堂)이 보유한 전답(田畓)을 책으로 작성한 자료이다. 표지를 포함하여 총 16쪽으로 되어 있으나 사진은 18쪽으로 되어있다. 가려놓은 부분을 그대로 찍은 것 한 부와 노출시켜서 찍은 것 한 부가 있는데, 이런 경우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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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기사년(己巳年) 2월부터 고종 계유년(癸酉年)까지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선생의 성균관 사업(成均館司業)에 제수되면서부터 시호(諡號)가 환수되기까지 내력과 상소 글을 모아서 적은 일기이다. 숙종 때 이현일이 기사년 2월에 성균관 사업으로 부름을 받고, 5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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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3월에 용화산(龍華山) 창암진(蒼巖津)에서 갈암 이현일 선생과 44명이 배를 타고 놀 때 적은 기록인데, 이 기록에는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 밖에 없다. 문회록(文會錄이)나 선유록(船遊錄)은 대체로 제목을 적고, 명단을 적는다. 제목에는 어느 곳에서 놀았는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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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丙申) 2월 11일 단에 올라 대장이 되었을 때 그 당시의 등단시파록(登壇時爬錄)과 1월 22일 면 단위나 그 아래 단위의 일을 맡아 보던 곳의 집강소파록(執綱所爬錄) / 기록자료>고문서병신년 2월 11일 단에 올라 대장이 되었을 때 그 당시의 임원록[등단시파록(登壇時爬錄)]과 병신년 1월 22일 면 단위나 그 아래 단위의 일을 맡아 보던 곳의 임원록 [집강소파록(執綱所爬錄)]이다. 등단시파록은 총 17쪽인데, 대장, 부장. 군문도총, 분의장. 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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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현종 5) 5월에 이휘일(李徽逸)이 오촌동(梧村洞)의 계를 만들고 책으로 작성한 문서 / 기록자료>고문서 / 이휘일갑진년(1664년) 5월에 이휘일(李徽逸)이 오촌동(梧村洞)의 계를 만들고 책으로 작성한 문서이다. 우선 오촌동계의 서문을 적고, 그 다음에는 4대 절목을 적었으며, 또 그다음에는 12개의 조항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년도와 오촌동계에 참석한 사람의 이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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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10월에 임동면(臨東面) 망천리(輞川里)에 거주하는 김흥로(金興魯) 등이 조상 대대로 소유해 온 분묘(墳墓) 소재지인 방전곡(方田谷)의전답을 몰래 사기로 매매한 이화숭(李華崇), 이화철(李華哲)과 산직(山直)을 벌해 달라고 호소하며 성주(城主)에게 올린 소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임동면 망천리 김흥로 등1900년(고종 37) 10월에 임동면(臨東面) 망천리(輞川里)에 거주하는 김흥로(金興魯) 등이 성주(城主 : 고을 수령. 여기서는 안동 부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청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면(本面)의 방전곡(方田谷)은 건륭(乾隆) 연간에 구입하여 8대가 대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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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10월에 임동면(臨東面) 망천리(輞川里)에 사는 김흥로(金興魯) 등이 안동 군수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김흥로 등자신의 토지를 몰래 매도한 이화숭(李華崇)과 화철(華哲)을 불러 엄중하게 처벌해 달라고 올린 소지(所志)인데, 여러 사람들이 연서하여 관청에 올린 문건으로 등장(等狀)에 속한다. 본면 방전곡(方田谷)은 김흥로(金興魯 : 1830 ~ 1910)의 8세(世) 이하 여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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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순조 25) 안동부(安東府)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김남수(金南壽)의 준호구 / 기록자료>고문서 / 안동부1825년(순조 25) 안동부(安東府)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김남수(金南壽)의 준호구이다. 준호구(準戶口)란 관청에서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준 문서이다. 발급 연도는 도광(道光) 5년, 즉 1825년이며, 임동면(臨東面) 제1 임당리(林塘里) 제2통의 통수(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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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영조 43) 2월 6일에 배영관(裵永官)이 김노 귀석(金奴貴石)에게 발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배영관김노 귀석(金奴貴石)에게 전답(田畓)을 팔았음을 증명하는 전답매매 문기이다. 배영관(裵永官)이 긴절하게 쓸 곳이 있어 전래한 전답 방전곡(方田谷) 여자원(與字員) 37전(田) 12부(負) 전답 도합 5두락(五斗落)을 김씨 댁의 제위답(祭位畓)으로 전문(錢文) 37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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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 1월 25일에 외구(外舅) 운(雲)이 사위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운귀양에서 풀려난 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사연이다. 보름 뒤 찾아 주겠다는 약속은 고대했지만 오지 않아 서운했는데, 완부(阮府)가 방문하고 가질(家姪)이 돌아가는 길에 들어보니 종기(腫氣)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함을 알았다고 했다. 이어 상대가 질병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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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丙辰) 7월 15일에 부제(婦弟) 동환(東煥)이 매형(妹兄)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동환어수선한 세상에 서로 그리워하는 이 때 뜻밖에 하인을 보내 안부를 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였다. 누이에게 좋은 소식, 즉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염려하던 차에 위안이 되고 기쁘지만 허약한 체질이라 머리가 무겁다고 걱정했다. 금년 장마는 근래에 드문 일이라서 도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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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庚戌) 3월 23일에 망천(輞川)에 사는 부제(婦弟) 김택락(金宅洛)이부포(浮浦)에 사는 매형(妹兄)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김택락안부를 전하고 여혼(女婚)을 의논하는 사연이다. 늦은 봄을 맞아 자당(慈堂)과 완부(阮府)의 안부를 여쭌 뒤에 형제간의 안부와 누이 모자의 근황을 물었다. 자신은 숙부도 편안하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건강하지만, 마을에 전염병이 크게 일어나 부리던 노비도 그 병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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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癸□) 3월 5일에 부제(婦弟) 동환(東煥)이 매형(妹兄)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동환인편이 막히고 봄비도 지루하게 내리는데, 그리운 정을 말하고 당상(堂上)의 안부를 물었다. 수료(修了)하는 공정(功程)에 대하여 무슨 계획을 하고 있는지 묻고, 석질(錫姪)모자도 편안한지 물었다. 가친(家親)은 평안하시고, 모친은 친정에 가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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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5월 5일에 사제(査弟) 기복인(朞服人)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아들 부부의 근황을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원용몇 달 동안 소식이 막혀 그리운 정을 말하고, 조용히 지내시는 안부를 여쭌 뒤에 아들 부부의 근황을 물었다. 자신은 어른을 모시고 잘 지내는데, 설사 증세로 근력이 쇠진되어 답답한 사정을 형언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미아(迷兒)가 칠창(漆瘡)으로 신고(辛苦)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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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丙申) 2월 20일에 족말(族末) 창섭(昌燮), 재하(在河) 등이 족종(族從)에게 토지 보상금(補償金)에 관하여 의논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창섭·재하안부를 전하고 오토재(五土齋) 토지 보상금(補償金)에 관하여 의논한 사연이다. 적조(積阻)한 나머지 상대가 보낸 서신을 받고 반가운 심정을 말하고, 훤당(萱堂)을 모시고 시하(侍下)에 체상(棣牀)이 담락(湛樂)하시고 혼절(渾節)이 금안(錦安)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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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10월 5일에 사제(査弟)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말을 구하여 보내지 못하고 대신 기르던 망아지를 보낸다는 소식을 적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원용계해년 10월 5일에 사제(査弟)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두의 ‘생식(省式 : 예를 생략함)’은 상중에 있는 사람이 편지를 보낼 때 쓰는 상투어이다. 편지발신인인 이원용은 자신을 ‘사제(査弟) 기복인(朞服人)’이라 칭하고 있다. 이런 것들로 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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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査弟)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일상적 안부를 묻고 부탁한 일에 대해 책망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원용천간(天干)이 계(癸)인 해의 3월 11일에 사제(査弟)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확한 편지 작성연도는 알 수 없으나 이원용의 다른 편지들과 비교해 볼 때 계해(癸亥)년으로 추측된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편지를 받고 잘 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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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甲子) 11월 10일에 사소제(査少弟) 유연태(柳淵泰)가 사돈에게 난의(餪儀)를 보내면서 적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류연태갑자년 11월 10일에 사소제(査少弟) 류연태(柳淵泰)가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사돈이 예석(禮席 : 예식의 자리)에 광림해 주어서 밤새도록 흡족하고 기뻤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돈은 잘 지내며, 윤사(允舍 : 상대방의 아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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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5월 25일 소제(少弟) 이한걸(李漢杰)이 자신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아들을 보내고 편지를 보내주어서 감사하다고 적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이한걸1914년 5월 25일 소제(少弟) 이한걸(李漢杰)이 보낸 편지이다. 편지 수신자는 알 수 없다. 이한걸(1880 ~ 1950)은 본관 진성(眞城), 호(號) 후촌(後村)으로 퇴계 이황의 종파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선장(仙庄 : 상대방이사는 곳을 높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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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12월 7일에 사제(査弟) 유동작(柳東綽)이 사돈에게 사위와 딸을 진송(津送)하는 문제에 대해 써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동작기사년 12월 7일에 사제(査弟) 류동작(柳東綽)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편지 첫머리에 십세(十世) 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낸 집안이라 새로 혼인을 맺었다고 하여 더 정의가 두터워질 것도 없지만 이렇게 강구돈신(講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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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甲子) 11월 11일에 사소제(査少弟) 유연태(柳淵泰)가 사돈에게 장롱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류연태갑자년 11월 10일에 사소제(査少弟) 류연태(柳淵泰)가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연일 사돈이 보내준 편지를 받아 읽고 권련(眷戀 : 그리워하며 굽어 살펴 줌)의 고의(高義 : 높은 뜻)에 감사한다고 썼다. 자신은 요사이 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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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辛巳) 2월 11일에 사하생(査下生) 죄인(罪人) 김동건(金東建)이 사돈에게 속절(俗節)을 풍족하게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김동건신사(辛巳)년 2월 11일에 죄인(罪人) 김동건(金東建)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죄인’은 현재 김동건이 상중(喪中)임을 나타낸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자신은 고인(故人)의 어린 아이일 때 사돈 가문에 인사갈 때마다 두터운 가르침을 받았고 오늘날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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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李玉+集)이 매형 김형식(金亨植)에게 일부러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집이집(李玉+集, 1822 ~ 1895)이 매형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확한 편지 발신일은 알 수 없다. 다만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초겨울에 작성한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편지 끝에 쓴 ‘즉선(卽旋)’은 편지를 받고 곧장 답장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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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 3월 2일에 이승우(李承佑)가 고주(姑主)에게 집안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들은 요즘 소식을 적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내질 이승우1895년 3월 2일에 이승우(李承佑)가 고주(姑主 : 원래는 고모를 가리킴. 그러나 여기서는 고모부 앞으로 보낸 편지임)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승우(1859 ~ 1909)는 본관 고성(固城), 자(字)는 계현(啓顯)이다. 아버지는 이종하(李鍾夏)이며 할아버지는 평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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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丙辰) 11월 8일에 척종(戚從) 공복인(功服人) 이정혁(李庭爀)이 김(金) 생원(生員) 형제들에게 자부(子婦)의 상(喪)에 위문편지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하며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 이정혁병진(丙辰)년 11월 8일에 척종(戚從) 공복인(功服人) 이정혁(李庭爀)이김(金) 생원(生員) 체좌(棣座) 앞으로 보낸 편지이다. ‘체좌’는 형제들 앞으로 보내니 함께 보라는 뜻이다. 이정혁은 현재 자부(子婦)의 상(喪)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편지는 대략 다음과 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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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2월 10일에 이승규(李承奎)가 고모부에게 일상적 문안을 묻고 군(郡)의 조사에 대한 대처를 의논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내질 이승규1910년 12월 10일에 이승규(李承奎)가 고모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승규(1867 ~ 1949)는 본관 고성(固城), 초명(初名) 승억(承億), 자(字) 계휴(啓休), 호 연암(硏巖)이다. 이종하(李鍾夏)의 셋째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평천(平泉) 이집(李玉+集)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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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丁巳) 6월 24일에 사제(査弟) 이만상(李晩相)이 사돈에게 한 번가서 인사하지 못한 사정을 설명하고 서늘해진 후에 가겠다고 말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만상정사(丁巳)년 6월 24일에 사제(査弟) 이만상(李晩相)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왕림한 지 석 달이 지나 더욱 그리운데 노비를 통해 전한 편지를 받고서 무더운 장마철에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위로가 된다고 썼다. 자신은 아이들이 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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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壬戌) 10월 24일에 사제(査弟)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일상적 안부를 묻고 새로 맞이한 며느리를 칭찬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원용임술(壬戌)년 10월 24일에 사제(査弟) 이원용(李源庸)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대체로 일상적인 안부를 교환하고 새로 맞이한 며느리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오랜 친우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새로 맺은 좋은 사이를 기뻐함은 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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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고종 35) 1월 12일에 내종숙(內從叔) 이습(李玉+習)이 망천(忘川) 시사(侍史)에게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숙 이습1898년 1월 12일에 내종숙(內從叔) 이습(李玉+習)이 망천(忘川) 시사(侍史)에게 보낸 편지이다. ‘망천’은 주소인데 아마도 망천(輞川)을 가리키는 듯하며, ‘시사’는 편지수신인 대신 아랫사람을 지칭한 것이다. 이 편지의 내용은 편지수신인의 화갑(花甲 : 환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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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2월 26일에 내종복인(內從服人) 이종하(李鍾夏)가 노인(老人)이 잔치에 대행(帶行)하여 잔치에 간 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내종 종하1916년 2월 26일에 내종복인(內從服人) 이종하(李鍾夏)가 보낸 편지이다. 이종하(1839 ~ 1916. 4. 13.)는 본관 고성(固城), 자(字) 우성(禹聲), 호(號) 석호(石皓)으로서 평천(平泉) 이집(李玉+集)의 아들이며 진와(進窩) 이정운(李庭雲)의 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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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11월 21일에 부질(婦姪) 이종하(李鍾夏)가 어머니의 상기(祥期)를 맞은 김형식(金亨植)에게 보낸 위문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이종하1863년(철종 14) 11월 21일에 부질(婦姪 : 고모부에 대하여 자신을 일컫는 말) 이종하(李鍾夏)가 김형식(金亨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종하(1839 ~ 1916. 4. 13.)는 본관 고성(固城), 자(字) 우성(禹聲), 호(號) 석호(石皓)으로서 평천(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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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고종 2) 입춘일(立春日)에 이정운(李庭雲)이 사돈 김택락(金宅洛)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정운1865년 입춘일(立春日)에 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1802 ~ 187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택락의 아들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은 이정운의 사위이며, 만송(萬松) 김흥로(金興魯, 1873 ~ 1949)의 아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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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11월 9일에 이정운(李庭雲)이 사돈 김택락(金宅洛)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정운1859년 11월 9일에 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1802 ~ 187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택락의 아들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은 이정운의 사위이며, 만송(萬松) 김흥로(金興魯, 1873 ~ 1949)의 아버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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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3월 26일에 이정운(李庭雲)이 사돈 김택락(金宅洛)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정운1859년 3월 26일에 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1802 ~ 187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택락의 아들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은 이정운의 사위이며, 만송(萬松) 김흥로(金興魯, 1873 ~ 1949)의 아버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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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4월 24일에 이정운(李庭雲)이 사돈 김택락(金宅洛)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정운1859년 4월 24일에 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1802 ~ 1876)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택락의 아들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은 이정운의 사위이며, 만송(萬松) 김흥로(金興魯, 1873 ~ 1949)의 아버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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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운(李庭雲)이 전염병에 걸린 딸의 상황을 설명하며 사위 김형식(金亨植)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운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위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발신일은 알 수 없다. 편지 끝에 즉오(卽午)라고 썼는데, 이는 편지를 받은 날 낮에 즉시 답장을 써서 보낸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정운의 본관은 고성(固城)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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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9월 25일 이정운(李庭雲)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형제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정운천간(天干)에 기(己)자가 들어가는 해의 9월 25일에 이정운(李庭雲,1805 ~ 1876)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 1802 ~ 1876)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기미(己未)년인 1859년으로 추정된다. 김택락의 아들 김형식(金亨植 : 18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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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7월 15일에 이정운(李庭雲)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형제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정운천간(天干)에 기(己)자가 들어가는 해의 7월 15일에 이정운(李庭雲,1805 ~ 1876)이 사돈 김택락(金宅洛 : 1802 ~ 1876)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기미(己未)년인 1859년으로 추정된다. 김택락의 아들 김형식(金亨植 : 18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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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운(李庭雲)이 사위 김형식(金亨植)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정운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는 해의 8월 15일에 사위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정운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字)는 경관(景觀), 호(號)는 진와(進窩)이다. 김형식은 김택락(金宅洛, 18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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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철종 13) 12월 24일에 이정운(李庭雲)이 사부인(査夫人) 광산(光山) 김씨(金氏)의 상을 애도하며 사위 김형식(金亨植)에게 보낸 위문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정운1862년 12월 24일에 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위 김형식(金亨植 : 1836 ~ 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형식은 김택락(金宅洛 : 1802 ~ 1876)의 아들이고 생부는 김종락(金琮洛)이다. 자(字)는 차원(次元)이며, 만송(萬松) 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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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운(李庭雲)이 사위 김형식(金亨植)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구 정운천간(天干)에 을(乙)자가 들어가는 해의 1월 20일에 이정운(李庭雲, 1805 ~ 1876)이 사위 김형식(金亨植, 1836 ~ 1877)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정운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字)는 경관(景觀), 호(號)는 진와(進窩)이다. 김형식은 김택락(金宅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