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3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96501
1823년(순조 23) 3월 23일에 첨제심복인(忝弟心服人) 고영수(高永秀)가 형뻘 되는 사람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고영수1823년 3월 23일에 고영수(高永秀)가 형뻘 되는 사람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저번에 답장을 하였는데 받아보았는지 묻고, 나머지 회포와 새로운 정황이 서로 교차하여 마음은 아직도 동쪽으로 쏟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이다. 자신을 첨출처 : 유교넷 -
296502
1880년(고종 17) 5월 21일에 사돈인 시생(侍生) 이중철(李中喆)이 상대방(류씨)의 형이 죽어 위로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이중철1880년 5월 21일에 사돈인 시생(侍生) 이중철(李中喆)이, 상대방의 형이 죽어 위로하는 편지이다. 위장(慰狀)의 내용으로 보아, 수신인의 어머니가 아직 생존해 있다는 것과 내당(內堂)에는 세 사람의 부인(婦人)이 슬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집에 화출처 : 유교넷 -
296503
1880년(고종 17) 11월 초3일에 사제(査弟) 손진구(孫振九)가 상중인 사형(査兄) 류모(柳某)에게 보낸 위로 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손진구사제(査弟) 손진구(孫振九)가 사형(査兄) 류모(柳某)에게 보낸 간찰로 상중의 상대방을 위로하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문안편지이다. 우선 보내준 편지와 별폭의 진진한 선물에 대하여 감사하고, 겹친 장사(葬事)를 치른 나머지 손상된 기력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니 얼출처 : 유교넷 -
296504
노상욱(盧相旭)이 새로 부임한 사또에게 올린 편지이다. 새로 부임한 처음이라 공무가 많고 진휼(賑恤)하는 정치에 머리가 아플 것이라 염려된다고 하였다. 이때는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도는 시기였다. 백성인 자신은 시골 소식이 막혀 아버지 건강이 어떤지 알 수 없으니출처 : 유교넷 -
296505
1890년(고종 27) 정월 초7일 하생(下生) 권재종(權載鍾)이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권재종권재종(權載鍾)이 보낸 위장(慰狀)이다. 상대방 류모(柳某)는 부인(夫人)을 잃고 중상(中祥 : 小祥)을 당하였다. 위로의 말에서, 부인의 봉작이 숙부인이니, 상대방의 지위가 통정대부 정3품 당상관이라는 것과 슬하에 아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은출처 : 유교넷 -
296506
1892년(고종 29) 4월 13일 사제(査弟) 이만호(李晩好)가 사형(査兄)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만호사제(査弟) 이만호(李晩好)가 사형(査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동안 보내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인사로 서두를 시작하였다. 반후(頖候)가 안녕하시고 대체적으로 모두 평안하다니 위로가 되지만 상대방의 아우가 아직 병이 완쾌하지 않았다니 매우 걱정된다고 하였다. 반출처 : 유교넷 -
296507
1882년(고종 19) 정월 15일 기하생(記下生) 장효식(張孝植)이 상중(喪中)인 류모(柳某)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생 장효식두 차례 편지를 받았는데 즉시 감사하는 도리를 차리지 못하였으니 송구하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문안하는 말에서 상대방이 상중(喪中)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여관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재미있는 일이 없는데, 다만 조카가 평안하고 영내(營內)에 사고가 없으니 다행이라고출처 : 유교넷 -
296508
1886년(고종 23) 9월 2일 아우 노상욱(盧相旭)이 어느 고을 사또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노상욱1886년 9월 2일 아우 노상욱(盧相旭)이 어느 고을 사또에게 보낸 편지이다. 관변의 편이 가끔 있어서 줄곧 평안하다는 소식은 듣고 있는데, 국화 피는 가을에 관아(官衙)에 계시며 몸은 건강하시냐고 묻고 있다. 또 본댁의 안부는 종종 듣고 있느냐고 묻고 우러러 사출처 : 유교넷 -
296509
1886년(고종 23) 7월 19일 백성 노상욱(盧相旭)이 고을 사또에게 올린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민 노상욱백성 노상욱(盧相旭)이 서울에서 객지생활을 하면서 고향의 고을 사또에게 올린편지이다. 관아의 여러 사람을 포함하여 안부를 묻고, 이제 공무가 점차 실마리를 잡아가느냐고 묻고 있다. 자신은 나그네의 상황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지금 대체로 평안하다는 고향 소출처 : 유교넷 -
296510
1886년(고종 23) 3월 18일 백성 노상욱(盧相旭)이 고향 사또에게 올린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민 노상욱백성 노상욱(盧相旭)이 고을 사또에게 올린 편지인데 앞의 두 간찰보다 발신일이 가장 빠른 것이다. 피봉에 “성주전상서(城主前上書)”라고 씌어 있다. 상대방의 안부와 아드님이 편안히 모시며 잘 지내느냐고 물었으며 춘궁기 경제(經濟)가 아마도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위로출처 : 유교넷 -
296511
1882년(고종 19) 6월 초5일에 사하(査下) 손진우(孫振禹)가 상중(喪中)의 사돈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위로 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손진우손진우(孫振禹)가 상중(喪中)의 사돈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위로 겸 문안 편지이다. 류승지(柳承旨) 어머니의 대상(大祥)이 멀지 않았고, 그 백씨(伯氏)의 담제(禫祭, 대상 한 달 뒤에 지내는 제사)가 임박하였기에, 이에 대한 위로의 말을 하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출처 : 유교넷 -
296512
1883년(고종 20) 2월 29일 인질(姻姪) 손유현(孫裕鉉)이 인숙(姻叔)에게 올린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손유현인질(姻姪) 손유현(孫裕鉉)이 인숙(姻叔)에게 올린 편지이다. 손진우(孫振禹)는 이 간찰의 발신인 손유현(孫裕鉉)의 아버지거나 삼촌이 되며, 수신인은 또한 앞의 류승지(柳承旨)로 추정된다. 뒤에 또 손진구(孫振九)·손경현(孫庚鉉) 부자(父子)가 류승지(柳承旨)에게 보출처 : 유교넷 -
296513
1923년 9월 13일에 녹문(鹿門)에 사는 사하(査下) 고영수(高永秀)가 사돈인 하동(河東)의 류생원(柳生員) 댁으로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고영수1923년 9월 13일에 녹문(鹿門)에 사는 사하(査下) 고영수(高永秀)가 사돈인 하동(河東)의 류생원(柳生員) 댁으로 보낸 답장. 국권침탈 후 13년이 되었고 3·1운동에서도 4년이 지났다. 상대방을 류생원 이라고 불렀으니 아직 벼슬을 하지 않고 있다. 양쪽이 모출처 : 유교넷 -
296514
1868년(고종 5) 10월 15일 삼종(三從) 연조(淵祚)가 성주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연조삼종(三從) 연조(淵祚)가 성주(城主)에게 보낸 편지이다. 성주는 류씨(柳氏), 항렬(行列)은 조(祚) 자(字)일 것이다. 뜻 밖에 편지 받고 고마웠다고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건강하며, 관아 안이 모두 평안하며, 온 고을의 힘을 기울인 봉양에 집안이 기쁘고 즐겁다출처 : 유교넷 -
296515
1869년(고종 6) 3월 8일 상중에 있는 일가 백성 류준영(柳駿榮)이 류성주(柳城主)에게 올린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민 준영상중에 있는 일가 백성 류준영(柳駿榮)이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각별히 도와준 류성주(柳城主)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는 편지이다. 문안인사를 차린 다음, 『죄진 일가 백성은, 지난 5일 미시(未時)에 비로소 장사(葬事)를 잘 마쳤습니다. 헌데, 당일 한 사람의 사소출처 : 유교넷 -
296516
1882년(고종 19) 2월 초9일 삼종(三從) 류도헌(柳道獻)이 상중(喪中)에있는 삼종(三從)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도헌1882년 2월 9일, 과거를 보려고 서울로 온 삼종(三從) 류도헌(柳道獻)이 상중(喪中)에 있는 고향의 삼종(三從)에게 보낸 편지이다. 고종 임오년에는 과거시험이 네 차례나 있었다. 정시(庭試)와 증광정시(增廣庭試)와 증광시(增廣試)와 경과별시(慶科別試)이다.출처 : 유교넷 -
296517
1896년(고종 33) 10월 22일에, 족종(族從) 도진(道鎭)·도균(道均)·도우(道祐)·창식(昌植) 등이 승지공(承旨公) 상사(喪事)에 연명(連名)으로 류승지(柳承旨)댁으로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도진 등1896년 10월 22일에, 족종(族從) 도진(道鎭)·도균(道均)·도우(道祐)·창식(昌植) 등이 승지공(承旨公) 상사(喪事)에 연명(連名)으로 류승지(柳承旨) 댁으로 보낸 위장(慰狀)이다. 이 위장(慰狀)은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것 같으나,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출처 : 유교넷 -
296518
1900년(고종 37) 정월 2일 인제(姻弟) 류승우(柳昇佑)가 상중(喪中)에있는 인형(姻兄)에게 보낸 신년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제 류승우인제(姻弟) 류승우(柳昇佑)가 상중(喪中)에 있는 인형(姻兄)에게 보낸 신년 문안편지이다. 지난 섣달 20일 사이에 부포(浮浦) 편에 보낸 문안편지는 지체 없이 받아보았는지, 궤연(几筵)을 모신 상중(喪中)의 몸이 건강하고 큰아들 집도 모두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출처 : 유교넷 -
296519
1891년(고종 28) 11월 3일 삼종(三從) 류준영(柳駿榮)이 형제가 부모를모시고 있는 삼종(三從)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준영류준영(柳駿榮)이 형제가 부모를 모시고 있는 삼종(三從)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에, “하동(河東)의 형제분이 모시는 자리에 드릴 것”이라고 하였다. 이별한 지 오래되었으나 그리운 마음은 여전하며 추운 겨울에 영감님 안녕하시고, 부모님 모신 형제분은 복 누리시고,출처 : 유교넷 -
296520
1884년(고종 21) 9월 초3일 류승우(柳昇佑)가 아버지에게 올린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자 승우1884년 9월 초3일 고향에 있는 류승우(柳昇佑)가 서울에서 대궐에 입직(入直)하는 아버지에게 올린 편지이다. 피봉(皮封)에 부주전상백시(父主前上白是)라고 썼는데 이것은 이두이므로 “아버님전 상살이”라고 읽어야 한다. 막내가 돌아온 편에 하서를 받고 기뻐하였는데출처 : 유교넷 -
296521
1872년(고종 9) 10월 20일 삼종간(三從間)인 성균관에 있는 류진휘(柳進徽)가 하회에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휘류진휘(柳進徽)가 하회에서 부모를 모시고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로 두 사람은 삼종간(三從間)이니 촌수로 8촌이다. 급하게 이별하여 아직도 슬퍼하고 있는데, 문득 편지를 받아보니 고맙기가 한량없는데 지난 일이야 꼭 다시 들춰낼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고, 어출처 : 유교넷 -
296522
1886년(고종 23) 정월 7일 밤, 삼종(三從) 류도성(柳道性)이 객지에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도성1886년 정월 7일 밤, 하북(河北)에 사는 삼종(三從) 류도성(柳道性)이 객지(서울)에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이다. 12월말에 답장을 받고 감사하였으며, 객지에서 건강이 좋으냐고 묻고, 연말의 정기 인사이동은 아마도 이미 시행되었을 것인데 경영하는출처 : 유교넷 -
296523
1892년(고종 29) 7월 초6일 삼종(三從) 류도헌(柳道獻)이 용동(龍洞)에사는 삼종(三從)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도헌류도헌(柳道獻)이 용동(龍洞)에 사는 삼종(三從)에게 보낸 편지. 피봉(皮封)에 상대방을 “영좌(令座)”라고 높이고 자신을 전원(田園, 시골)의 종(從)이라고 낮추었다. 영좌(令座)란 “영감(令監)의 자리”라는 뜻으로 상대방이 관원(官員)임을 말한다. 문안 인사출처 : 유교넷 -
296524
1902년(고종 39) 2월 20일 족제(族弟) 류근우(柳根佑)가 족형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근우류근우(柳根佑)가 객지에 있으면서 고향의 족형(族兄)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서로 거리가 가깝지 않아 소식을 들을 수 없으니 외로이 고향생각을 붙이며 조석으로 이어 가기 어렵다고 하였고, 봄기운이 점점 화창해지는데 형제분의 건강이 어떠한지, 아드님들은 차례대로 잘출처 : 유교넷 -
296525
1871년(고종 8) 4월 5일 기복인(朞服人)인 류교목(柳敎睦)이 삼종(三從)인 중리(中里)의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교목일 년 상을 입은 류교목(柳敎睦)이 서울 성균관에 있으면서 삼종(三從)인 중리(中里)의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선, 받은 편지에 대하여 고맙다고 하고, 어머님은 건강하시냐고 묻고, 과거를 보러 왔던 일행은 잘 도착하였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학사(學출처 : 유교넷 -
296526
1888년(고종 25) 12월 27일 삼종(三從) 류도기(柳道夔)가 삼종(三從)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도기남쪽 고을살이를 하는 류도기(柳道夔)가 고향에 있는 삼종(三從)에게 보낸 세모(歲暮)의 문안 편지이다. 회포가 쌓여가던 차에 편지를 받아 고맙다고 하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건강하고 아드님이 모시고 잘 배운다니 좋고, 대체적으로 고루 편안하다니 위안이 된다고출처 : 유교넷 -
296527
1889년(고종 26) 정월 22일 인질(姻姪) 손경현(孫庚鉉)이 교동(校洞) 류 씨 댁으로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손경현교동(校洞) 류씨(柳氏)의 합부인(閤夫人) 상사(喪事)에 인척 조카 손경현(孫庚鉉)이 보낸 위장(慰狀)이다. 부인의 내명부(內命婦) 품계(品階)가 숙부인(淑夫人)이니 류씨(柳氏)의 품계는 정삼품·당상관(正三品·堂上官)으로 승지(承旨)에 해당한다. 상대방에 대한 위로출처 : 유교넷 -
296528
1923년 3월 16일 첨제(忝弟) 심제인(心制人) 고영수(高永秀)가 사돈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고영수첨제(忝弟) 심제인(心制人) 고영수(高永秀)가 사돈에게 보낸 편지. 첨제(忝弟)란, “상대방을 욕보이는 아우”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는 말이고, 심제인(心制人)이란“마음으로 상복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두 번이나 문안편지를 받아서 그 친분이 중한데, 이 죄 많출처 : 유교넷 -
296529
1879년(고종 16) 5월 27일 사하(査下) 손철구(孫哲九)가 상중에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손철구손철구(孫哲九)가 상중에 있는 사돈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위장(慰狀)으로 류승지는 큰 형수(兄嫂) 숙인(淑人)의 상을 입었다. 장맛비는 전에 없이 많이 내리는데 뜻밖에 덕 있는 가문이 불행하니, 형수님 숙인(淑人)의 상사를 만났다고 말하고, 형님은 중년에 상처(출처 : 유교넷 -
296530
1880년(고종 17) 5월 12일 손유현(孫裕鉉)이 장인(丈人)의 아우인 류씨(柳氏)에게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손유현손유현(孫裕鉉)이 장인(丈人)의 아우인 류씨(柳氏)에게 보낸 위장(慰狀)이고, 자신을 인질(姻姪)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백씨(伯氏) 외구주(外舅主 : 장인)의 상사(喪事)에 통곡할 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백씨(伯氏)란 상대방의 큰형을 말하는 것이며 외출처 : 유교넷 -
296531
류진휘(柳進徽)가 성균관에 있으면서 삼종(三從)인 류승지(柳承旨)에게 서울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편지 겉봉에, 하회(河回) 중리(中里)의 류승지댁(柳承旨宅)으로 갖다 드리라고 씌어 있다. 알리는 소식은, 첫째 장마더위가 지루하여 병이 날 것 같다는 것과 둘째 이출처 : 유교넷 -
296532
1883년(고종 20) 4월 8일 아우 이중철(李中喆)이 의인(宜仁 : 지명)에 사는 류모씨(柳某氏)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중철성균관에 와 있는 이중철(李中喆)이, 고향 의인(宜仁 : 지명)에 사는 류모씨(柳某氏)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자신을 아우라고 하였으나, 누이가 딸을 순산(順産)한일에 언급하였으므로 류모씨(柳某氏)는 이중철(李中喆)의 매부일 것이다. 봄에 고향을 떠날 때 손도 잡아출처 : 유교넷 -
296533
1878년(고종 15) 12월 21일 손진우(孫振禹)가 사돈에게 보낸 연말의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손진우손진우(孫振禹)가 사돈에게 보낸 연말의 안부편지이다. 사돈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마치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고마웠다고 하였으며, 사돈의 어머니가 건강하신지 묻고, 사돈 형제와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다니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문 닫고 추운데서 쓸쓸하게 지내는데, 쓸출처 : 유교넷 -
296534
1890년(고종 27) 2월 23일 손진우(孫振禹)가 사돈에게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손진우손진우(孫振禹)가 부인의 대상을 지낸 사돈에게 보낸 위장(慰狀)이다. 부인을 숙부인(淑夫人)이라고 하였으니 상대방은 정3품 당상관 승지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서신 왕래가 없던 때에 조카님이 찾아와 편지를 받아 살펴보니 건강이 더욱 좋으시고 아드님들이 잘 모신다니 위출처 : 유교넷 -
296535
1890년(고종 27) 정월 초10일 고애자(孤哀子) 이만창(李晩昌)이 역시 상중(喪中)에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애자 이만창부친의 상을 입고 있는 이만창(李晩昌)이 역시 상중(喪中)에 있는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위장(慰狀)이다. 류승지(柳承旨) 부인의 중상(中祥)이 가까워 이를 위로한 것이다. 해가 문득 바뀌고 달이 점점 둥근데 복중(服中)의 건강이 좋으며 여러 아들이 잘 모시느냐고출처 : 유교넷 -
296536
1905년(고종 42) 8월 초9일에 하회(河回) 백성 정좌(政佐)·연조(淵祚)등이 여수각(如水閣) 사또에게 낸 소장(訴狀) / 기록자료>고문서 / 민 정좌 등 19인하회(河回) 백성 정좌(政佐)·연조(淵祚)·진시(進詩)·진황(進璜)·도일(道一)·진두(進斗)·진필(進弼)·진봉(進鳳)·진철(進喆)·진겸(進謙)·진교(進敎)·도항(道恒)·조건(道健)·도성(道性) 등이 여수각(如水閣 : 사또의 정청) 사또에게 연명(連名)으로 낸 소장(訴출처 : 유교넷 -
296537
1886년(고종 23) 5월 14일 기하(記下) 남일우(南一祐)가 김해(金海) 군수 류모(柳某)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남일우남일우(南一祐)가 김해(金海) 군수 류모(柳某)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문면(文面)은 다음과 같다. 어제 보낸 답장은 아직 보지 못했느냐고 묻고 있고 남일우 자신은 줄곧 괴롭게 지내니 말할 것이 없다 하였다. 나머지는 별지(別紙)에 있으니 갖추지 못하고 올린다출처 : 유교넷 -
296538
1883년(고종 20) 6월 1일 아우 이중철(李中喆)이 자형(姊兄)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중철이중철(李中喆)이 어른을 모시고 있는 자형(姊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중철은 한 달이나 소식이 막혔다가 편지를 받고 위로가 되었고 편지 받은 지 며칠이 됐다고 하였다. 어르신 영감님 기력이 좋으시고, 그 때 동도(東都)에서 과로(過勞)하여 병이 났는데 곧 회복되었출처 : 유교넷 -
296539
1886년(고종 23) 8월 16일에 기하생(記下生) 장효식(張孝植)이 고관(高官)에게 올린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생 장효식장효식(張孝植)이 고관(高官)에게 올린 문안편지이다. 편지 내용에 별다른 것이 없고 단지 문안의 인사뿐이다. 일전에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영저(營邸) 편에 편지를 올렸으나 중간에 없어져서 아직 보지 못하신 것 같다고 하였다. 지금 보내준 편지를 살펴보니, 요즘 영감의출처 : 유교넷 -
296540
1881년(고종 18) 10월 16일 장효식(張孝植)이 아버지를 형제가 같이 모시고 있는 상대방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생 장효식장효식(張孝植)이, 아버지를 형제가 같이 모시고 있는 상대방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저번에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서 뵈려고 하였으나, 집에 돌아갈 마음이 화살처럼 급하여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뜻밖에 편지를 받고 삼가 살피니, 그동안 부모님출처 : 유교넷 -
296541
1880년(고종 17) 2월 12일 하생(下生) 한진규(韓鎭奎)가 어른을 모시고 있는 상대방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한진규한진규(韓鎭奎)가 어른을 모시고 있는 상대방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도 “나머지는 태록(胎錄 : 협지 또는 별지)에 있다”고 하였으며 본문에는 안부인사 외에 별다른 말이 없다. 지난 그믐에 편지를 받고, 인편이 없어서 바로 사례하는 편지를 부치지 못하여 죄송한출처 : 유교넷 -
296542
계□(癸□) 9월 23일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붙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계□년 9월 23일 고향에 있는 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큰아들에게 부친 편지이다. 발신인은 “아비”라고만 하고 이름을 쓰지 않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고 자질구레한 것이 많다. 경주형(景柱兄)은 또 병이 나고, 상주(尙州) 아저씨는 잡혀갔으니 혹 종군(從君)이 억울하출처 : 유교넷 -
296543
1892년(고종 29) 3월 초7일 류도위(柳道緯)가 삼종(三從 : 팔촌)에게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도위서울에 있는 류도위(柳道緯)가 고향에 있는 삼종(팔촌)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도위(柳道緯)는 진발(進發)의 아들이며, 기유년(1849)에 출생하였고 자(字)는 문가(文可)이다. 고종 병자년(1876)의 식년전시(式年殿試)에서 을과(乙科)로 합격하였다. 첫 머리에,출처 : 유교넷 -
296544
1893년(고종 30) 6월 16일 류일우(柳馹佑)가 형뻘 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일우류일우(柳馹佑)가 형뻘 되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 피봉에 수신인을 원대루(猨帶樓)라고 하였으니, 상대방이 소유한 누각(樓閣)의 이름이다. 상대방 이름 대신으로 쓴 것이다. 안부를 묻는 말에서, 그동안 소식이 뜸하였다는 것, 상대방이 벼슬하는 사람이라는 것, 경향(京출처 : 유교넷 -
296545
1868년(고종 5) 12월 27일 류진휘(柳進徽)가 삼종(三從 : 팔촌)인 류성주(柳城主)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민삼종 진휘류진휘(柳進徽)가 삼종(三從 : 팔촌)인 류성주(柳城主)에게 보낸 편지이다. 매우 바쁜 연말에 편지를 받으니 고맙기가 헤아릴 수 없는데, 살펴보니 어머님건강이 줄곧 안녕하시고 형님도 안녕하시고 관아(官衙)의 여러 사람이 모두 안녕하시다니 지극히 위로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296546
1871년(고종 8) 7월 20일 류진휘(柳進徽)가 삼종(三從 : 팔촌)인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진휘하회(河回)에 사는 혜재(惠齋) 류진휘(柳進徽)가 삼종(三從 : 팔촌)인 류승지(柳承旨)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 받고, 시원하게 더위가 가시는 것 같았다고 하였으며, 상대방의 어머니와 상대방과 큰아들에 대한 안부를 묻고, 자신의 늙는 상황은 여전하게 지내니 다행이출처 : 유교넷 -
296547
1857년(철종 8) 12월 갑일(甲日) 류광목(柳光睦)이 삼종(三從)인 류주서(柳注書)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광목전라감사인 류광목(柳光睦)이, 중리(中里)에 사는 삼종(三從 : 팔촌)인 류주서(柳注書)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광목(柳光睦)은 주조(周祚)의 아들로 1798년 출생하였으며 자(字)는 경석(景奭)이다. 헌종(憲宗) 계묘년(1843 : 당시 나이 46세) 식년전시(式年殿출처 : 유교넷 -
296548
정□(丁□) 5월 초 9일에, 류일우(柳馹佑)가 현필종(賢弼從)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류일우류일우(柳馹佑)가 현필종(賢弼從)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자신을 종(從)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상대방과는 종형제(從兄弟) 사이이다. 우선 조카의 병이 지금은 완쾌되었느냐고 하는 등 안부를 묻고, 종부(從父)님은 연달아 격무(激務)에 골몰하시는 가운데 또 기우제(祈雨출처 : 유교넷 -
296549
1893년(고종 30) 12월 초5일 류승우(柳昇佑)가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승우류승우(柳昇佑)가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낮추어 사제(査弟)라고 하였다. 상대방의 어머니와 상대방과 집안의 여러 사람에 대한 안부를 골고루 묻고, 특히 조카가 편안히 재내고 자신의 딸이 아들을 순산(順産)한 것은 상대방 가문의 경사라고 하였다. 상대방의 조출처 : 유교넷 -
296550
1892년(고종 29) 9월 초3일 김중호(金重浩)가 사돈어른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김중호김중호(金重浩)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돈어른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말 가운데서, 상대방이 사돈의 어르신이라는 것과, 그 아들인 사형(査兄)은 멀리 외직(外職)으로 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은 두 아이의 상기(祥期)가 봄에 한꺼번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