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296751
1866년(고종 3) 7월 17일에 유주목(柳疇睦)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안타깝다는 것과 기타 일들에 대해서 미동(美洞) 친척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질 류주목류주목(柳疇睦)이 미동(美洞) 친척에게 보낸 편지로, 덥고 습한 기운이이전과 다르니 그리움도 이전과 다르다하고, 요즈음 날씨가 서늘해진 듯한데, 집안어른을 비롯하여 가족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미련한 목숨이 죽지 못하고 세월이 물과 같이 흘러 어느덧 대출처 : 유교넷 -
296752
1866년(고종 3) 5월 23일에 유주목(柳疇睦)이 어머니의 제사가 다가왔다는 것과 기타 일들에 대해서 친척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종질 류주목류주목(柳疇睦)이 친척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 어머니의 제사가 문득 다가왔는데, 상대방이 위문장을 보내주니 슬프고 감사함이 지극하여 할 말이 없다하고, 가뭄과 무더위에 먼 여정에서 잘 돌아왔는지 물었다. 상대방이 집에 도착한 날이 새로 급제(及第)해서 경사를 치르는출처 : 유교넷 -
296753
허용(許墉)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봄 사이에 답장을 오랫동안 빠뜨려 늘 죄송하고 부끄러웠는데, 상대방의 가문에 재앙이 있어 두 번째 형제의 초상을 당한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한통의 편지로 위문을 대신 하는 것은 마땅히 남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데출처 : 유교넷 -
296754
1892년(고종 29) 8월 21일에 허훈(許薰)이 상대방이 아들의 초상을 당한 것과 기타 일들에 대해서 지인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허훈허훈(許薰)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상대방이 인후(仁厚)한 덕이 있는데도 둘째 아들이 젊은 나이로 원통하게 죽었다고 하니 이것이 무슨 이치이냐 하고, 눈에 보이는 사물마다 슬픔을 자아내어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니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0일 후에출처 : 유교넷 -
296755
허용(許墉)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상대방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중에 과연 상대방의 막내 동생이 방문하여 보내준 편지를 받고, 부모모시는 형제분들과 여러 자녀들이 공부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가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하고,출처 : 유교넷 -
296756
1889년(고종 26) 10월 10일에 허훈(許薰)이 아들이 복시(覆試)에 합격했다는 것과 기타 일들에 대해서 사돈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 허훈허훈(許薰 : 1836 ∼ 1907. 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순가(舜歌), 호는 방산(舫山). 경상북도 선산군 임은(林隱 :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에서 출생)이아들이 복시(覆試 : 조선 시대에, 과거에서 초시에 합격한 사람이 이 차로 시험을 보출처 : 유교넷 -
296757
1887년(고종 24) 4월 그믐에 허훈(許薰)이 상대방이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서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민 허훈허훈(許薰)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서울로의 행차는 아득하였고, 남쪽으로 돌아와서 꿋꿋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임금의 현명함이 그 일을 간파한 것이니 감사하여 공경히 떠받듦이 어떠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먼 길 여행에 건강이 손상되었을 것이고, 읍(邑)의 업무를 오출처 : 유교넷 -
296758
신묘(辛卯) 1월 9일에 허훈(許薰)이 상대방의 기일에 위문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안부를 전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허훈허훈(許薰)이 상대방의 기일에 위문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안부를 전한 편지이다. 삼가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니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당신의 집에 두 번째 기일(忌日)이 문득 이르렀으니 여러 상주님들의 애통한 마음을 이루 다 누르기 어렵다고 위로하였다. 상대방의 부친[출처 : 유교넷 -
296759
무진(戊辰) 12월 15일에 아전인 김용흡(金容翕) 권의경(權宜卿) 권세성(權世星) 등이 상관에게 올린 고목(告目) / 기록자료>고문서 / 병영영리 김용흡 등 3인군인들이 생활하는 병영에 소속된 아전인 김용흡(金容翕), 권의경(權宜卿), 권세성(權世星) 등이 상관에게 올린 고목(告目)이다. 고목(告目)이란 천한 사람이나 지위가 낮은 관원이 고귀한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관원에게 올리는 편지이다. 절도사(節度使)께서 연일 집무를출처 : 유교넷 -
296760
을축(乙丑) 11월 4일에 권 씨 가문에서 작성한 의건물목(衣件物目). / 기록자료>고문서권 씨 가문에서 작성한 의건물목(衣件物目)이다. 의건물목은 혼인예물로 보낸 옷가지 목록을 말하며, 그 물목은 다음과 같다. 북쪽에서 생산된 베로 지은 도포, 푸른 모시 도포, 흰모시 도포, 옥양목 큰 두루마기, 명주 겹두루마기, 가는 무명 겹두루마기, 옥양목 겹두루출처 : 유교넷 -
296761
권 씨 가문에서 작성한 혼인예물로 보낸 술과 안주, 반찬꺼리와 과일 목록인데, 그 물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엿 한 상자, 산자 한 상자, 소주 한 병, 약주 한 병, 청주 한 병, 녹각 한 부분, 소갈비 한 부분, 되지 반 마리, 북어 두 쾌(떼), 넙치 한 두름출처 : 유교넷 -
296762
을축(乙丑) 11월 초4일에 권 씨 가문에서 작성한 혼인 예물로 보낸 물건 목록 / 기록자료>고문서권 씨 가문에서 작성한 혼인예물로 보낸 술과 안주, 반찬꺼리와 과일 목록인데, 그 물목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옷 한 상자, 이불과 베게 한 보자기, 청주(淸酒) 한 병, 엿 한 상자, 유과(油果),약과(藥果) 한 상자, 다식(茶食), 문어(文魚) 한 축, 홍합(紅출처 : 유교넷 -
296763
유학(幼學) 유승우(柳昇佑)가 45세 때 생원 진사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류승우(45세)시험문제는 “상과 서라는 학교를 설립하여 가르친다(設爲庠序學校以敎之)”는 제목으로 부(賦)라는 산문체(散文體)의 작문을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의 출처는 주희(朱熹)가 편찬한 맹자집주(孟子集註) 「등문공(藤文公)」편(篇) 상(上)이다. 답안지 첫 머리에는 중국 고대출처 : 유교넷 -
296764
유학(幼學) 유환우(柳煥佑)가 33세 때 생원 진사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류환우(33세)유학(幼學) 유환우(柳煥佑)가 33세 때 생원 진사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이다. 시험문제는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의 도읍에서 학술을 강론했다(講業齊魯之都)”는 문장이며, 답안은 부(賦)라는 산문체 문장으로 작성되었다. 문제의 출처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출처 : 유교넷 -
296765
유학(幼學) 류시협(柳時恊)이 19세 때 식년문과 초시(1차 시험)에 응시한 시험답안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류시협(19세)유학(幼學) 류시협(柳時恊)이 19세 때 식년문과 초시(1차 시험)에 응시한 시험답안지(試券)이며 시험문제는 무위이화론(無爲而化論)이다. 문과 식념시험은 초시, 복시(2차 시험), 전시(3차 시험)의 3장으로 진행된 내용이다. 이 답안지는 주희가 24세에 임관하여출처 : 유교넷 -
296766
류지영(柳芝榮)이 부수찬(副修撰)에 재임 때 문과 초시 중장(中場 : 2차 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수찬 류지영류지영(柳芝榮)이 부수찬(副修撰)에 재임 때 문과 초시 중장(中場 : 2차 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試券)로, 시험문제는 당나라 왕조 때 홍문관을 궁궐 옆에 설치하고 천하의 문학사를 선발하여 전대의 말씀과 과거의 행동을 강론하여 정사를 논의 확정하는 것을 본떠서출처 : 유교넷 -
296767
부사과(副司果) 류지영(柳芝榮)이 문과 초시 중장(中場 : 2차 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試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과 류지영부사과(副司果) 류지영(柳芝榮)이 문과 초시 중장(中場 : 2차 시험)에 응시했던 시험답안지(試券). 시험문제는 주(周) 왕조 때 일월이 내리비춰서 사방에 빛나고 서주(西周)에 밝게 드러나는 것과 같음을 본떠서 여러 신하들이 하례하는 내용의 표문이다. 이 시권(試券출처 : 유교넷 -
296768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류지영(柳芝榮)이 지은 왕대비전(大王大妃殿) 연상시(延祥詩)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과 류지영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류지영(柳芝榮)이 지은 왕대비전(大王大妃殿) 연상시(延祥詩)이다. 연상시는 새해가 되면 조정의 관원들이 임금님의 치적을 칭송하거나 새해의 나라 안녕, 왕실의 건강과 다복 등을 축원하는 시를 지어 올렸는데 홍문관(弘文館)과출처 : 유교넷 -
296769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류지영(柳芝榮)이 지은 왕대비전(大王大妃殿) 연상시(延祥詩) / 기록자료>고문서 / 부사과 류지영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류지영(柳芝榮)이 지은 왕대비전(大王大妃殿) 연상시(延祥詩)이다. 연상시는 새해가 되면 조정의 관원들이 임금님의 치적을 칭송하거나 새해의 나라 안녕, 왕실의 건강과 다복 등을 축원하는 시를 지어 올렸는데 홍문관(弘文館)과출처 : 유교넷 -
296770
임금님 앞에서 유학경전이나 역사 서적을 강론하는 경연(經筵)에서 소대(召對)한내용이다. 삼월 초사일 신시(申時)에 임금님이 희정당(凞政堂)에 임어(臨御)하여 참찬관, 시독관, 검토관, 대교(待敎), 가주서(假注書), 기주관(記注官) 등을 소대하여 통감(通鑑) 제12출처 : 유교넷 -
296771
왕명으로 입시(入侍)하여 정사에 관한 보고나 의견을 상주(上奏)하는 소대(召對)이다. 칠월 초육일 진시(辰時)에 임금님이 희정당(凞政堂)에 임어(臨御)하여 우부승지, 가주서(假注書), 기사관(記事官),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使) 겸 광주유수(廣州留守)를 소대하여 사출처 : 유교넷 -
296772
삼종(三從)인 인우(仁佑)의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인우삼종(三從)간인 인우(仁佑)가 보낸 만사(輓詞)이다. 만사(輓詞)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천에 써서 깃발처럼 들고 상여를 인도하는 글을 말한다. 이 만사의 내용은 이러하다. 옷 칠한 등잔불이 영원히 깜깜한데 영혼은 홀로 어느 곳에 헤매는가? 생각도 그 이치를출처 : 유교넷 -
296773
정제 87세 노인 월성 최원복(崔元復) 경린(景麟)의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최원복[경린]이 만사는 7언 율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칠언율시는 일곱 자로 한 구를 이루고 2구가 한 련(聯)을 이루며, 네 연이 한 장을 이루는 형식의 글을 말한다. 1장에서 4장까지는 기(起) 승(承) 전(轉) 결(結)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첫째 연은 나뭇잎 떨어지출처 : 유교넷 -
296774
표재종제(表再從弟 : 외 6촌 동생)이며 같은 본관(풍산)의 김응섭(金應燮)이 외 6촌 형을 추모한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표재종제 김응섭표재종제(表再從弟 : 외 6촌 동생)인 김응섭(金應燮)이 외 6촌 형을 추모하여 지은 만사(輓詞)이다. 이 만사는 7언 율시(律詩)의 형식으로 총 16구로 구성되었고 4구가 한 수(首)이다. 만사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승지(承旨) 댁에는 어진 손자가 있어 하회출처 : 유교넷 -
296775
친구 김달연(金達淵)이 친구의 서거를 추모하여 지은 만사(輓詞) / 기록자료>고문서 / 정제 김달연이 만사는 순천 김달연(金達淵)이 친구(신원미상)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칠언율시(七言律詩)의 형식으로 총 12구(句) 6련(聯) 3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가계와 출세를 밝혔다. 망자(亡者)는 서애의 후손으로 가정의 모범을 이어받아 제산을출처 : 유교넷 -
296776
임인(壬寅) 2월 21일 표종질(表從姪 외5촌 조카) 풍산(豊山) 김규섭(金奎燮)이 내종숙(內從叔 : 호칭자의 외5촌 아저씨) 류공(柳公)의 대상을 맞이하여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질 김규섭풍산(豊山) 김규섭(金奎燮)이 친구의 대상 날인 2월 21일에 일이 있어 몸이 빠져 나올 수 없는 까닭으로 7일전 병진(丙辰)에 제상 앞에서 통곡하며 이별을 고한다는 내용이다. 먼저 공의 출생배경과 가문의 내력을 회고하고 본인의 생시 모습과 성품, 타고난 재능과 그출처 : 유교넷 -
296777
임진(壬辰) 7월 초4일 인척동생 광산(光山) 김각수(金珏洙)가 처사(處士) 풍산 류공(柳公)의 대상을 맞이하여 지은 만사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소생 김각수광산(光山) 김각수(金珏洙)가 지은 만사이다. 류공(柳公)의 마음은 첨렴하고 성품은 온화하지만 고집이 있고 행동은 원만하면서도 반듯하고 집을 다스리는 데는 효우의 기풍이 있으며 사람을 구제하는 데는 주변하고 빨리하는 의리가 있었다. 80세를 향수했지만 본래 한 점의출처 : 유교넷 -
296778
을축(乙丑) 2월 20일에 풍양(豊壤) 조종연(趙宗衍)이 자형인 류공(柳公)의 소상 때 아들 성각(誠覺)을 시켜 보낸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조종연풍양(豊壤) 조종연(趙宗衍)이 자형인 류공(柳公)의 소상을 맞아 병이 나서 직접 참사(參祀)를 하지 못하고, 대신 아들 성각(誠覺)을 시켜 잔을 드리고 읽게 한 제문이다. 제문 첫 머리에 선비가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고유한 일이고 하늘이 복을 내리는 것은 마땅출처 : 유교넷 -
296779
을축(乙丑) 2월 21일에 풍산 류주영(柳胄榮)이 낙좌처사(洛左處士) 류공(柳公)의 소상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주영삼종(三從)인 풍산 류주영(柳胄榮)이 낙좌처사(洛左處士 : 낙동강 왼쪽에 살았던 선비) 류공(柳公)의 소상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이다. 류주영은 먼저 고인이 류주영 자신의 부친이 죽었을 때 제문을 지어 추도할 때 두 집안의 우의가 무겁다고 하였듯이 자신도 이와 같은출처 : 유교넷 -
296780
신묘(辛卯) 7월 4일에 표종제(表從弟)인 풍산 김원재(金元在) 김형재(金亨在)가 내종형(內從兄)의 소상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제 김원재·형재표종제(表從弟 : 외4촌 동생) 풍산 김원재(金元在) 김형재(金亨在)가 내종형(內從兄 : 내종 사촌형)의 소상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이다. 김원재(金元在)는 자기의 내종형이 가문의 주손자리를 이어받아 한결같은 의지로조상의 업적을 잘 지켜서 집안이 여전히 번창하고 가까출처 : 유교넷 -
296781
을유(乙酉) 4월 11일 류지영(柳芝榮)이 종형(從兄) 류공(柳公)의 대상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종제 지영참최인(斬衰人 : 부친의 상복을 입은 사람) 종제(從弟) 류지영(柳芝榮)이종형(從兄) 류공(柳公)의 대상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류지영이 왠지 종형을 잊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를 찾아보면 종형이 지닌 덕기(德器)와 아량(雅量)인데 자신의 얕은 식견출처 : 유교넷 -
296782
을축(乙丑) 2월 21일 여강(驪江) 이훤구(李烜久)가 중표숙(重表叔) 통덕랑(通德郞) 풍산(豊山) 류공(柳公)을 추모하여 지은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중표질 이항구중표질(重表姪 : 고조부의 자매의 증손자나 증조부의 자매의 손자인 인척 조카) 여강(驪江) 이훤구(李烜久)가 중표숙(重表叔) 통덕랑(通德郞) 풍산(豊山) 류공(柳公)의 소상을 지난 반년 뒤 8월 21일에 류공을 추모하여 지은 제문이다. 이훤구는 고인과 나이가 비슷하출처 : 유교넷 -
296783
갑자(甲子) 4월 3일에 창녕(昌寧) 조지환(曺之煥)이 통덕랑(通德郞)의조제(祖祭) 때 고인을 추모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인질 조지환인척 조카인 창녕(昌寧) 조지환(曺之煥)이 인척 아저씨인 통덕랑(通德郞 : 정5품 벼슬)의 영구가 장지(葬地)로 출발하기 전에 영구(靈柩)를 수레 위에 싣고 지내는 조제(祖祭)를 지낼 때 잔을 드리면서 고인을 추모한 제문이다. 조지환은 산 넘고 물 건너 200리를출처 : 유교넷 -
296784
신묘(辛卯) 7월 초4일 표재종제(表再從弟) 풍산(豊山) 김이섭(金履燮)이 표재종형(表再從兄) 소상 날에 병으로 몸소 영전에 추도를 하지 못하고 아들 인재(寅在)를 대신하여 추도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재종제 김이섭재종제(表再從弟 외6촌 동생) 풍산(豊山) 김이섭(金履燮)이 표재종형(表再從兄외6촌 형) 소상 날에 병으로 몸소 영전에 추도를 하지 못하고 아들 인재(寅在)를 대신하여추도한 제문이다. 80에 가까운 노인이 80이 된 노인을 추모하는데 무슨 슬픔이 있으며 슬픈들 얼마출처 : 유교넷 -
296785
임진(壬辰) 7월 초4일 연하의 류태영(柳泰榮)이 연상의 삼종(三從) 대상을 맞이하여 공을 추도하는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태영연하의 류태영(柳泰榮)이 연상의 삼종(三從) 대상을 맞이하여 공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고인은 대사간 류치목(柳致睦), 승지 지산옹(志山翁) 류지영(柳芝榮)의 가계를 있는 가문에서 출생하여 도량이 깊고 풍도가 우람하며 깨끗하였고 문중과 서원의 여러 가지 일을 공명하고출처 : 유교넷 -
296786
임오(壬午) 정월(正月) 7일에 사하생(査下生) 진양(晉陽) 정국진(鄭國鎭)이 학교업무에 바빠 동생 응진(應鎭)을 대신 보내어 사장의 대상을 추도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통가하생 정국진통가하생(通家下生), 즉 사하생(査下生) 진양(晉陽) 정국진(鄭國鎭)이 학교업무에 바빠 임오(壬午) 정월(正月) 7일에 동생 응진(應鎭)을 대신 보내어 사장의 대상을 추도한 제문이다. 고인은 영남의 대 문벌 서애(西厓) 가문에서 태어나 조상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행출처 : 유교넷 -
296787
삼종(三從 8촌이나 9촌) 지암(志庵) 주영(周榮)이 축고처사(春皐處士) 주영(冑榮)의 서상(小祥)때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고인은 54세에 병으로 서거하였는데 삼종(三從) 주영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인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성품이 남보다 따스하고 착하였출처 : 유교넷 -
296788
임오(壬午) 1월 정미(丁未)일에 진성(眞城) 이동한(李東漢)이 내종숙(內從叔) 처사(處士) 풍산 류공(柳公)의 대상 때 드린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표종질 이동한표종질(表從姪 : 외 5촌 조카) 진성(眞城) 이동한(李東漢)이 내종숙(內從叔 : 내종 5촌 아저씨) 처사(處士) 풍산 류공(柳公)의 대상을 맞이하여 고인을 추모하는 제문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추모하는 자신은 여태 한 마디영결의 말도출처 : 유교넷 -
296789
신사(辛巳) 정월 초7일 삼종 류후식(柳厚植)이 춘고거사(春皐居) 류공(柳公)의 소상 때 고인을 추모한 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후식삼종 류후식(柳厚植)이 춘고거사(春皐居) 류공(柳公)의 소상 때 고인을 추모한 제문이다. 공은 하회의 풍산 류씨 가문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가문의 법도를 따르고 풍도가 헌칠하며 마음씨가 너그럽고 천성이 효성스러워서 부모님 봉양을 잘하였으며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기를출처 : 유교넷 -
296790
을미(乙未) 10월 12일에 삼종조부(三從祖父) 류인묵(柳寅黙)이 갑오(甲午) 12월18일에 죽은 삼종손(三從孫 ) 류용하(柳用夏)를 추모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삼종 인묵갑오(甲午) 12월 18일에 서거한 삼종손(三從孫 8촌 손자) 수사(秀士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 류용하(柳用夏)의 대상이 다가오자 을미년에 때마침 하회에 왔던 삼종조부(三從祖父 : 8촌 조부) 류인묵(柳寅黙)이 10월 12일 저녁상식(上食)을 올릴 때 고인을 추출처 : 유교넷 -
296791
병신(丙申) 4월 18일 사제(査弟) 여주(驪州) 이태형(李泰衡)이 사형(査兄) 풍산(豊山) 류공의 영전에 고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태형병신(丙申) 4월 18일 사제(査弟) 여주(驪州) 이태형(李泰衡)이 사형(査兄) 풍산(豊山) 류공의 영전에 고한 제문이다. 옛날에도 사람의 목숨과 복은 예측할 수 없었는데 공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하였다. 공은 성품이 착하고 지행이 돈독하며 학식과 문필이 출중하여출처 : 유교넷 -
296792
경신(庚申) 4월 13일 풍산(豊山) 류지영(柳芝榮)이 종자형(從姊兄)인 광산(光山) 김공(金公)의 대상을 추도한 제문 / 기록자료>고문서 / 부종제 류지영부종제(婦從弟 : 4촌 자형에 대한 4촌 처남의 자칭) 풍산(豊山) 류지영(柳芝榮)이 종자형(從姊兄 : 4촌 자형) 광산(光山) 김공(金公)의 대상을 추도한 제문이다. 고인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성품이 푸근하고 모습이 헤 맑으며 뜻과 기백이 날렵하였고 형제들이 잘 자출처 : 유교넷 -
296793
병자(丙子) 춘분절(春分節)에 창산(昌山) 조지환(曺之煥)이 처조부(妻祖父)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우승지(右丞旨) 류공(柳公) 지영(芝榮) 공의 묘갈명(墓碣銘) / 기록자료>고문서 / 손녀서 조지환손녀서(孫女壻 : 손녀사위) 창산(昌山) 조지환(曺之煥)이 병자(丙子) 춘분절(春分節)에 지은 처조부(妻祖父)인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우승지(右丞旨) 류공(柳公)지영(芝榮) 공의 묘갈명(墓碣銘)이다. 묘갈문(墓碣文)이나 묘비문(墓碑文)은 죽은 사람의출처 : 유교넷 -
296794
1692년(숙종 18) 4월 숙종이 봉직랑 이구(李榘)를 통덕랑으로 삼으며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조이조(吏曹) 강희(康熙) 31년 4월 왕명을 받들어 봉직랑(奉直郞) 이구(李榘)를 통덕랑(通德郞)으로 삼으며 내린 교지로, 교지에 추가로 삼촌 숙부 이희철(李希哲)이 장수찰방(長水察訪)으로 있을 때 병오(丙五)·병십(丙十)으로 특별히 대가(代加 : 품계에 오를 사람이출처 : 유교넷 -
296795
1791년(정조 15) 정조가 이세익(李世翊)을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으로 삼으며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이세익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驤衛) 부호군(副護軍)으로 삼으며 내린 교지로, 건륭(乾隆) 56년 발급한 것으로 날짜는 없다. 부호군은 오위(五衛)에 딸린 종 4품 벼슬이고, 절충장군은 정 3품 당상관 품계로 종 4품 관직과 정 3품 품계가 맞지 않고 품출처 : 유교넷 -
296796
1791년(정조 15) 3월 7일 정조가 이세익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삼으며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건륭 56년 3월 7일 이세익을 절충장군(折衝將軍 : 정 3품 당상관 품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 중추원에 속한 정삼품 무관의 벼슬)로 삼으며 내린 교지이다. 이세익의 조부는 이구(李榘)이고, 부친은 이수원(李守元)이며, 아들은 이구운(李龜雲)으로1786년(출처 : 유교넷 -
296797
건륭(乾隆) 59년 2월 15일에 학생(學生 : 벼슬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의 명정·지방·신주(神主) 따위에 쓰는 존칭) 이수원(李守元)을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으로 추증하며 내린출처 : 유교넷 -
296798
1794년(정조 18) 정조가 이구(李榘)를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하며 내린 교지 / 기록자료>고문서 / 국왕건륭(乾隆) 59년 2월 15일 통덕랑(通德郞) 이구(李榘)를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조참의(吏曹參議)로 추증하며 내린 교지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세익의 조고(祖考 : 돌아가신 조부를 지칭)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다고 하였다. 경국대전(經출처 : 유교넷 -
296799
순조 연간에 유학 이숭정(幼學 李崇廷) 등이 후조당 김부필(後彫堂 金富弼 : 1516∼1577)의 문순공(文純公) 시호(諡號)에 반대하며 올린 상소(上疏)의 초(草).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숭정유학 이숭정(幼學 李崇廷) 등이 후조당 김부필(後彫堂 金富弼 : 1516∼1577)의 문순공(文純公) 시호(諡號)에 반대하며 올린 상소(上疏)의 초본(草本)이다. 문서가 쓰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김부필이 1822년(순조 22) 시호를 받았으므로 그를 전후하출처 : 유교넷 -
296800
유학(幼學) 이만설(李晩卨)의 호구단자 / 기록자료>고문서 / 유학 이만설(45세)경상북도 예안현(현 안동군) 의동면(宜東面 : 현 도산면) 원원리(遠遠里)에 사는 유학(幼學) 이만설(李晩卨)의 호구단자로, 관인이 있는 것을 보면 제출하였다 돌려받은 것이 분명한데, 작성한 연월일이 없다. 호주(戶主)의 벼슬여부와 이름 및 나이와 간지(干支), 본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