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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伯仲二兄 3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두 형님에게 올린 편지이다. 李時應이 오면서 편지를 전하여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는 네 집의 식구들이 모두 편안한지를 묻고, 賀班 후에 고향을 찾아볼 생각이지만 總裁官이 허가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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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家季用彦 3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집안의 막내 동생에게 답한 편지이다. 두 형님도 평안하시고 동생이 병이 다 나았으며, 집안이 모두 평온하다니 기쁨을 형용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누님이 宿祟가 재발하여 쑥뜸을 해보고자 海艾를 구하였으나 급히 되돌아가시는 바람에 구해드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구하여 보내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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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姪兒載欽 3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조카인 載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23일의 제사에 이미 3년 동안이나 참석하지 못하여 매우 슬펐다고 하면서 내년의 慶科가 이미 정해졌으니 준비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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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姪輩 3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아들과 조카들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여 최근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오늘 아침 소식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편지를 땅에 던지며 입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고 하면서 우리 집안이 3년 사이 네번의 상을 당했으니 형수와 姪婦를 어찌 위로를 해야 할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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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長兒輔欽 3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장자인 輔欽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에 큰 우환은 없으나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설사 증세가 심하다니 지극히 염려스럽다고 하면서 돌아가려고 결정을 하였으나 연일 비가 계속되어 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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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次兒運欽 3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둘째 아들인 運欽에게 답한 편지이다. 조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감출 길이 없었다고 하면서 자세한 내용은 伯氏에게 편지를 보내 알렸으니 두 손자밖에 없는 백씨를 대신해서 일을 잘 처리하라고 전하고, 日課도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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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若曰三政云云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백성과 나라를 위해 만들어진 군역과 토지세의 부과 및 양곡 대여와 환수를 이르는 軍‧田‧糶 三政에 대하여 經界가 어지러워지고, 戶籍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糶法이 허물어지는 등의 병폐를 인식하고 바로잡고자 하니 軍에는 布가 있고, 田에는 賦가 있으며, 糶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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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修存信禊帖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朋友有信’의 뜻을 취하여 만든 ‘存信禊帖’을 重修하고 지은 序文이다. 鄕에는 序가 있고, 黨에는 塾이 있는 것이 옛날의 제도였으며, 그 제도와 節目은 비록 상세하지 않지만 후세에 蘭亭의 禊와 香山의 社가 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1761년(영조 37)에 만들어진 存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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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遠堂重建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追遠堂을 重建하고 지은 記文이다. 1704년(숙종 30) 조상들에 의해서 지어진 追遠堂을 1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야 집안의 종손인 長欽‧從姪 肱欽 등이 주축이 되어 重建하고 조상들의 삶을 돌아보며, 감회를 적어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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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邑星廳重建記(代人作)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1827년(순조 27)에 시작하여 다음해 6월 本邑 향리의 집무장소인 星廳의 重建을 마친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지은 記文이다. 내외 업무에 대하여 應酬하는 곳이라는 등 장소가 가지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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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谷書堂重修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道谷書堂을 重修하고 지은 記文이다. 1552년(명종 7) 목사 申潛(1491∼1554)이 부임하여 18개 서당을 건립할 때 세운 서당 중의 하나로 后溪 金範(1512∼1566)이 은둔하여 학문을 익히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인데, 1697년(숙종 23) 李益達이 중창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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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嶽書院先輩唱酬錄跋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1552년(명종 7) 목사 申潛이 부임하여 18개 서당을 건립할 때 세운 서당 중의 하나인 智川書堂이 1702년(숙종 28) 朴彦誠‧金彦健‧康應哲을 배향하고 승격되어 이름을 淵嶽書院이라 하였는데, 서원에 전하는 선배들의 唱酬錄을 읽은 뒤에 愚伏 鄭經世(1563∼16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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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葛菴李先生緬襄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李玄逸(1627∼1704)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자는 翼昇이고, 호는 葛庵이며, 본관은 載寧이다. 徽逸의 동생으로 외조는 敬堂 張興孝이고 妻父는 務安朴氏 玏이다. 仲兄인 徽逸을 쫓아 講學했으며, 洪汝河와 도의로 사귀었다. 1666년(현종 7)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宋時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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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霽山金先生緬襄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金聖鐸(1684∼1747)에게 올린 祭文이다. 자는 振伯이고, 호는 霽山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泰重의 아들로 외조는 順天金氏 如萬이고, 妻父는 務安朴氏 震相이다. 金台重‧李玄逸‧李栽 등에게 수학하였으며, 1735년(영조 11) 增廣文科에 급제하여 司諫院正言‧工曹佐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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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山柳先生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柳正源(1703∼1761)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자는 淳伯이고, 호는 三山이며, 본관은 全州이다. 錫龜의 아들로 외조는 延安李氏 天麟이고, 妻父는 宣城李氏 曦와 務安朴氏 廷煥이다. 1729년(영조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735년(영조 11) 增廣文科에 급제하여 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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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立齋先生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鄭宗魯(1738∼1816)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愚伏 鄭經世의 후손이자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士仰이고, 호는 立齋이며, 본관은 晉州이다. 어릴 때 가학을 전수받았으며, 중년에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 나아가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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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南子皜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南漢濯(1760∼1821)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자는 子皜이고 호는 誠齋이며, 본관은 宜寧이다. 조선후기의 학자로 川沙 金宗德(1724∼1797)과 立齋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출사에 뜻을 두지 않고 위기지학을 연마하였으며, 도학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저서로는 『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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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姪師彦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從姪 師彦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二周朞를 맞이하여 33세의 나이로 불행하게 요절한 것을 매우 슬퍼한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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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師彦文(改葬時) 2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改葬하면서 從姪 師彦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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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長子輔欽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長子 輔欽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1822년(순조 22) 11월에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長子 輔欽을 장사지낼 때 지은 것으로 정말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이냐는 애끓는 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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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小祥時) 2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長子 輔欽의 小祥 때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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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從姪師彦文(幷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뜻을 행함에 스스로 노력하는 자가 드물었다고 전하면서 33세의 나이로 불행하게 요절한 從姪 師彦을 위해 모두 5편의 誄文을 수록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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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齋先生遺事 3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立齋 鄭宗魯(1738∼1816)의 遺事이다. “居敬은 儒家의 요긴한 工夫이니 후학들이 힘쓸 것은 마땅히 立志를 우선하여야 한다. 뜻이 세워지지 않으면, 敬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등 배우는 자들은 나태하지 말고 마땅히 知行에 힘써 노력하라는 것과 理氣‧太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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兢庵銘(立齋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立齋 鄭宗魯가 지은 兢庵銘이 수록되어 있다. 4언 8구의 문장으로 ‘星學에는 중요한 바가 있는데 敬으로 말미암아 나아가며, 경의 訓은 하나가 아니지만 오직 畏에 가깝다. 외는 무엇과 같은가? 조심하여 삼가는 것이며, 삼감을 그치지 않으면 上達할 수 있을 것이다.’ 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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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信菴 李秉夏(1780~1852)가 撰한 行狀이 실려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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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定齋 柳致明(1777~1861)이 撰한 墓碣이 실려 있다.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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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道南儒生金遠休, 鳳山儒生趙櫺金宗儒等, 洛巖儒生金魯鎭, 道谷儒生李峻煥等, 朴台寧, 鄭衆晉, 李秉夏, 黃獻老, 趙述立, 鄭民穆, 李廷實, 錫頣, 黃摯鉉, 柳抃春, 外從孫曹錫羲, 門人李秀學, 外甥李秀弻, 張錫孝, 柳夏祚, 李顯熙, 張炳遠, 族兄世綸, 從姪肱欽, 從子進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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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文 4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黃磻老가 쓴 誄文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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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5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李升培, 鄭衆履(十二首), 李羲發, 柳台佐, 李秉運, 黃眉老(二首), 南漢普(二首), 李秉夏(四首), 趙㯖(五首), 金養楨, 李秉華, 呂學祖(四首), 蔡周郁, 李秉殷(九首), 李鋉(二首), 張錫頤(三首), 鄭民穆, 趙慕洙(二首), 李遠弼, 趙述立(五首), 門人全達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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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6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세규曾孫 昇馨이 쓴 跋文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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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애집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낙애집(洛厓集) 洛厓 安日履의 시문집, 6卷 3冊, 木活字本, 四周雙邊, 半郭 21.6 × 15.3㎝, 有界, 10行20字, 內向2葉花紋魚尾, 30.4× 20.5㎝. 책의 서두에 權璉夏가 쓴 序文이 있다. 卷1에는 35首의 詩와 29편의 輓詞가 수록되어 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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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贈李息山(萬敷), 遊淸凉太白吟呈韓太叟丈(宗老), 又呈韓丈, 臨別又呈, 同時贈太白上人, 江院松亭與申退伯(弼成)韓太叟全錫爾(命三)聯句, 松亭次韓太叟韻, 次贈鄭君弼晬日韻, 次贈李上舍(時徵)二首, 題高致伯(必遠)堂詠, 次高致伯小塘韻二首, 次高致伯壁梅韻, 送桃于李進士(世瑗)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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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輓金無爲堂先生泰基, 輓金芝村邦杰戚夾, 輓張茅菴瑱丈, 輓權荷塘斗寅, 輓蔡進士命年二首, 輓趙持平德純, 輓南順天箕瑞, 輓權蒼雪斗經, 輓柳寓軒世鳴夾, 輓蔡進士文徵丈, 輓李達源㵓二首, 輓權深戚兄, 輓柳軍威世哲夾, 輓南進士圖萬, 輓李賚予在弼, 輓蔡晩復堂時徵丈, 輓成世昌, 輓南察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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斥享疏 3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숙종이 1694년(숙종 20) 1월 18일 비망기에서 앞으로 감히 이이와 성혼을 聖廟에 復享하자는 의논을 제기하는 사람은 성묘를 모욕한 죄로 논한다고 하고는 얼마 후 복향하자는 상소를 받고 복향 결정을 내리자 이에 반대하여 올린 상소문이다. 이미 인조‧효종‧현종의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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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隱峯鳳徵 4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南郊의 숙소에서 머물 때 자신이 타고 온 수레를 팔아 나이 어린 후생의 숙박비를 지불해 주어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는 것, 친구들의 도움으로 머나먼 노정을 무사히 마치고 유배지에 도달한 것은 다행이지만 고향의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소식을 듣지 못하여 슬픈 감정을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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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芝村 4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나에게 가르침을 준 지 6년이 지나 芝村 金邦杰이 갑자기 변방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서한을 가지고 기다렸으나 길이 멀어 전하지 못하여 죄송스러웠다는 것, 자신도 죄인이 되어 6진의 변방으로 가게 되어 계속해서 안부를 묻고자 하였으나 서로의 거리가 멀어 마음을 전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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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修撰汝鍵 45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변방의 유배지로 떠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어떤 죄인이 북변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인가 싶어 자주 지체하며 보기를 기대하였으나 보지 못해 한스러웠다는 것, 10월 20일 후에 李兄이 두루 돌아다니면서 형이 무사하게 유배지에 도착하였음을 알려주어 위안이 되었다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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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竹峯侃 4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東郊에서 이별할 때 떠나가는 나도 견디기 어려워 우울한 감정이 되었다는 것,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소식을 듣지 못해 갈수록 마음이 애절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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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大玉安士輝煜 4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서울을 떠나 북변으로 가게 되니 형들의 소식을 접할 수 없어 걱정이라는 것, 아우인 珍福이 10월에 한 번 다녀가면서 지금은 옥중에서 목숨을 보전할 수 있어 다행이나 이곳은 금년에 흉년이 매우 심하고 상인도 가장 늦게 와 물품을 살 수 없어 걱정이라는 것, 별검이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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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參奉泌從兄弟 49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아우가 10월에 유배지를 다녀가 잠시 잠자리와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는 것, 천지가 모두 살 곳이지만 집을 떠난 지 6개월이 넘도록 편지 한 통 받지 못해 애가 탄다는 것, 귀양간 자가 굶어 죽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나 이곳이 전례 없는 흉년이고 물건도 살 수 없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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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韓進士弘靖 50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정중한 서한이 3천리를 멀다 않고 북방의 이 먼 곳까지 오니 서신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 아우가 북변을 다녀간 후 고향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하다는 것, 흉년이 들고 기근이 있어 견디기 어렵지만 運氣의 움직임은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맡길 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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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悅卿浹 5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하룻밤에 멀리 떨어져 있는 심정을 얘기하려니 마음이 우울하다는 것, 아우가 먼 길을 찾아와 살펴주니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천하가 임금의 땅이 아닌 곳이 없으므로 어디에선들 살 수 없겠는가마는 애타는 심정을 스스로 억제하기 힘들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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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元禮復仁從兄弟 5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南郊에서 함께 지낸 것은 며칠이고 북쪽 변방으로 멀리 가게 되어 이별하니 기쁨은 잠깐이고 슬픔은 오래라는 것,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어린 裕를 살피지 못하는 심정, 아우가 유배지로 찾아와 잠자리와 음식을 살펴주어 옥에 갇혀서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친구들이 돌봐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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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載伯之垕 52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7월부터 8월 사이 수십 일간 華山에서 近巖에 이르는 200리 길을 오가며 형과 만나 얘기를 듣고 토론한 것이 나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별 후에도 의지가 되고 한편으로는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없어 슬프다는 것, 아우가 집을 떠난 지 6개월이 넘고 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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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原谷從大父 53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새해가 되었는데도 안부를 살피지 못해 죄송하다는 것, 從孫은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옥중에 갇힌 죄수이나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북방은 전례 없는 흉년이라 보리의 싹이 더디게 날지 빨리 날지 관심이라는 것, 고향 소식을 들은 지 오래되니 보고픈 심정이 절절하다는 내용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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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家兄 53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오늘이 정월 초하루라 일가와 이웃들은 서로 축하 인사를 건넬 터인데 내가 울적한 지경이라 그런 때임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 옥에 갇혀 고생하고 있으나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이곳은 흉년이 심하여 수백 리 내에 물건을 살 곳이 없어서 부득이 노비를 茂山으로 보내 얼마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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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無爲堂先生文 55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과거를 접고 평생 자연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산 表從叔인 무위당 김선생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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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洪鳳巖文 5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사마시에 장원하고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에서 벼슬한 홍봉암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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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蔡惟吉文 6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선대의 친분으로 어려서부터 어울려 지내던 채유길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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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月梧堂從叔文 63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조실부모하고 형을 잃어 삶의 의지를 잃었던 조카를 친자식처럼 돌보아준 從叔인 월오당 安晉石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