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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元之兄文 6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 三從兄 元之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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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望洞從叔文 6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망동에 사는 종숙의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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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幽通賦 7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평소 孟堅이 지은 幽通을 좋아하지만 그 의미는 비루하여 싫어하므로 中庸의 종지로서 운자에 따라 시를 지었는데, 잘 지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 경계삼을 할 만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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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石亭船遊序 79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옛날 蘭亭에서는 노소가 모였으나 뱃놀이를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적벽에서는 賓主가 모였으나 돌을 닦고 앉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이제 백석정에서는 수석의 경치를 즐기며 옛 현인들이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던 遺風을 즐길 수 있어 좋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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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曲寺重修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지금은 폐사가 된 예천군 지보면에 있었던 용곡사의 중수기이다. 용곡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승려 몇 명이 재물을 모으고 힘써 일해 불상과 불전, 佛器 등을 새로 마련하고, 固城의 승려 應玉이 여러 승려들과 힘을 합쳐 법당의 단청을 칠하고 불상에 도금을 한 사실을 적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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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征日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저자 安日履가 1694년에 함경도 富寧으로 유배갈 때 쓴 路程記이다. 안일리는 1694년 李珥와 成渾이 문묘에 復享되는 것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당하였는데, 당시 한양에서 부령까지 유배가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卷2의 斥享疏). 일기는 1694년 9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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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中士友相訪錄 1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서울에 머물 때 서로 오고 가며 우의를 다진 인물 143명의 명단과 관직, 號, 生年, 本貫, 居住地 등을 기록한 명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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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中士友贐行錄 30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각종 물품을 보내준 사람들의 명단이다. 相訪錄에 들어간 사람들도 모두 물품을 보내주었지만 여기서는 중복해서 기록하지 않고, 상방록에 들어가지 않은 인물 139명을 적었다. 보내 온 물품의 품목은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다. 이름 아래에는 그 사람의 직책이 적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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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崗書堂上樑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글을 지은 연도는 알 수가 없다. 서당을 짓기 시작하였으나 3년이 지나도록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에 한마음으로 일을 지켜보며 노소가 모두 힘을 보태고 재물을 내어 儒宮을 이뤄 길일을 택하여 상량을 하는데, 상량문에는 동‧서‧남‧북‧상‧하의 방향으로 기둥을 올리며 축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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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崗書堂開基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龍崗縣 북쪽 上羅里에 學舍를 세우면서, 神靈이 이를 보우해 줄 것을 바라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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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稷壇祈雨文(代地主作) 3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수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물기가 많은 낮은 곳의 논들도 모두 타들어가는 가뭄을 당하여, 논밭이 타들어 가는 안타까움에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글이다. 지금이라도 신령이 이 기도를 들어주어 甘澤의 은혜를 베풀면 早禾에는 혜택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晩禾는 구할 수 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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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潭祈雨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옛 용궁현 읍치의 남쪽 10리 부근에 있었던 음담에서 올린 기우제문이다. 戊寅‧庚辰‧癸未年의 큰 가뭄으로 백성들의 목숨이 다할 지경이라 한탄하며, 임금과 수령이 정성스럽게 제사지내 줄 것을 청하는 글이다. 가뭄이 심하면 물이 마르고, 물이 마르면 사물이 궁핍해지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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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山堂祈雨文(鶴膝頌體) 40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비가 내리지 않은 지가 戊寅年에서 庚辰年을 지나 또 이 봄까지 이르니, 한 말의 좁쌀도 없어 사람들이 도탄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사람에 의지하는 것은 神이고, 음식에 의지하는 자는 사람인데, 사람이 죽고 나면 누가 (신에게) 제사를 올리겠는가? 정결한 희생물과 香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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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4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通訓大夫前司憲府持平 金興洛이 쓴 저자의 행장이다. 본래 安日履의 행장은 안일리의 형이 초고를 지었으나 완성하지 못하였고, 이를 다시 아들 光世와 錫龍이 행장을 완성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하여 후손 鎭龜가 미비점을 보완한 것을 바탕으로 김흥락이 행장을 지었다. 자세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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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5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通訓大夫前行敦寧府都正 權璉夏가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다. 행장의 내용과 큰 차이는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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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次龍腰寺韻(李山斗), 次同時偶吟韻(李山斗), 奉呈疏首案下(鳳巖 洪相民), 次洪天卿韻呈疏首行軒(全命三), 又, 寧山歌呈吉甫求和(裵正徽), 次昔年高汝含送別韻奉呈三首(金仁仲), 搆 拙贈行(金汝鍵), 次諸兄韻呈疏首行軒(權斗經), 奉呈(金碩基), 奉呈(鄭天周), 悲秋吟三絶奉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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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東巖 洪大龜, 長隱 權協, 龍浦 李濰, 權東著, 尹烇, 安后慮, 權啓, 安重栢, 尹, 李之晟, 高必遠, 姜晉文, 尹熽, 金琦, 洪應龜, 金世鳴, 黃澈 등이 쓴 저자 安日履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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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疏首西行序(洪永錫) 11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사람들이 평소에는 쉽게 高談大論을 말하지만 大節臨事에는 計較利害를 바꾸고 서로 피하는데, 안일리는 천지가 막히고 斯文이 죽어 邪說이 횡행하는 때에 분연히 일어나 우리 道의 선비들을 倡勵하였으니, 臨大節에 不可奪者는 吉甫가 아닐런가 하며 칭찬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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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疏首赴洛序(洪相勛) 11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栗牛의 聖廟從祀에 당하여 그 논의의 順逆으로 威福이 이루어지니, 이로부터 士風이 매우 피폐해져, 위세에 협박을 당하여 아침에 正論을 펼치고 저녁에 다른 의견을 펼치는 자가 자주 나왔다는 것과, 전날에 浪翁‧高公은 두 사람이 復陞하기 전에 멈출 것을 다투었으나, 安日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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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呈(府使柳敬時) 119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군자가 가는 길에 한마디 말을 올리는 것은 예로부터 있어온 일이니, 내가 그대에게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疏首가 되었으니, 그대의 임무가 매우 막중하도다. (유배 길을) 敬時가 마땅히 함께 따라가야 하지만 병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니, 한마디 말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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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疏首入洛序(高師錫) 120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1682년(숙종 8)에 族祖 浪翁이 封章하더니, 지금은 公이 또 尺疏로 항의하여 一脈의 正氣가 扶持되었으니, 영남 70州의 수많은 선비들이 따르지 않음이 없다는 것과, 공이 능히 天心을 돌려 잘못된 典則을 바로 잡아 놓을 것이라 하였으나, 朝議가 이미 기울어 위험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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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疏首遠謫富寧序(李浹) 12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우리 鄒魯之鄕의 士君子들이 평일에도 義理之分을 강론함이 매우 뜨거웠는데, 오늘 그대가 천여 명의 선비를 이끌고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龍鱗을 犯함이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심과 같이 하였다. 그 旅程이 고향에서 鳥嶺을 넘어 中原을 지나 漢水를 건너 한양으로 들어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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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北行序(張望斗) 123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그대가 가는 길에 물건을 준다면 백쌍의 璧玉이라도 오히려 가볍고, 말씀을 드린다면 세치 혀로도 다할 수 없지만, 다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마음뿐이다. 지금 그대가 홀로 북행하는 것에 함께하지 못함은 내가 진실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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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行走草送北行(都子華) 125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내 친구 吉甫는 慷慨한 선비라, 대궐에 抗章하자 사람들이 모두 吉甫가 위험하다고 하더니, 과연 富寧에 유배되고 말았다. 富寧은 그 풍토가 남쪽과 다르고, 또 친척‧친구들이 없어 돌보아 줄 사람이 없으니 모두 吉甫를 위해 걱정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길보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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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行序(洪大龜) 12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천지간의 正氣는 하루라도 막힐 수 없는 까닭에 사람에게 부여되어 발하면 즉 正論이 되고, 正論 역시 하루라도 멈출 수 없는 까닭에 그 때를 만나 이를 펼치면 君子가 할 일이 된다. 사람에게 부여되고, 때를 만나게 하여 이를 세우는 것은 바로 하늘(天)이니, 그대가 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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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門鑰贐吉甫(李衡祥) 129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1722년(경종 2) 甁窩 李衡祥이 永川의 浩然亭에서 安日履와 토론을 하던 중, 병와가 “意必固我를 마음의 병으로 삼는다.”하며 이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論語「子罕」編의 子絶四毋意毋必毋固毋我에 대한 해설이다). 병와는 意必固我가 곧 공자가 말씀하신 誠과 敬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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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懶隱李東標) 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북으로 유배가는 것을 이미 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과, 裵正徽가 같은 곳에 유배 가 있다하니 絶域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어 다행이며, 가을 초에 집에 갔다가 제사 때문에 宣城에 가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송별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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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戚記金以鉉) 2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보내주신 편지를 받아보니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과, 돌아왔지만 추위 때문에 길이 늦어졌으며, 茂山에서 곡식을 바꾸는 일을 하지 못했으니 한 해를 보내는 일이 매우 군색할 것 같아 염려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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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元致道) 2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동생이 감히 다른 사람의 道는 따르지 못해도 兄의 道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가지고 가신 약이 보름치뿐인데 다시 보내 드리지 못하고 있으며, 가시는 길이 편안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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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參奉李德玄) 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배소는 어느 곳에 정했으며 8~9일간 북정 소식을 들었지만 감히 길에서 전별하지 못한다며, 관직의 박한 녹봉에 보내드릴 물건도 없으니 더욱 참담하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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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李浡) 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遠地의 荒域으로 유배가시는 것이 개탄스럽지만 병으로 전별하지 못함이 한이 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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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正郞李萬根) 5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太廟의 제사 때문에 즉시 나아가 위로를 못했다는 것, 언제 길을 떠나는지를 물어보고 錢文 5錢을 보내니 받아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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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翰林兪世重) 5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謫客의 가는 곳이 鏡城보다 더욱 멀어, 이 궁벽한 가을, 북방의 이른 추위에 수천리 길을 언제 도착하실지 염려되며 마땅히 몸소 전별을 해야 하지만 아이의 병으로 부득이 못했다는 것과 유배 길에 드릴 것도 없어 먹 5개와 붓 5자루를 드리니 웃으면서 받아 주십사 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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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李河) 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친구를 송별하고자 하는 마음은 항상 있었으나 병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과, 길 떠나는 사람에게 물건을 주는 것은 古禮이나 궁색하여 못하며, 원컨대 먼 길에 여정을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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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鄭瓛) 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병으로 일어설 수가 없어 능히 전별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면서, 보내는 물품이 매우 보잘 것 없어 참람하다는 것과 남은 여정도 신중히 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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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李禎休‧井休等)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동지들이 유배되어 남북으로 멀리 떨어졌다는 것과, 여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염려와 함께, 보내는 물건들이 매우 소략하여 부끄럽지만 받아 주십사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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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李錫仁)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起居가 어떠한지를 묻고 筆墨을 보내드리지만 너무 적은 것이 한스럽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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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李廷揚) 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行具는 준비하였는지, 내일 출발하실 수 있는지 염려된다는 것과 출발 전에 한번 만나뵙기를 원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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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參奉姜琂)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室人의 병이 死生 間에 있어 큰 걱정이라는 것과, 이 때문에 함께 (상소를 위한 모임에)나아갈 방법이 없어 쳐다만 보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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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尹宗緖) 8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여러 곳에서 보낸 11兩 5錢과 壯紙 1束, 白紙 2束, 갓, 빗, 紫色紙, 먹, 燭藥 등의 물건을 보내니 받아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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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都事李龜齡) 9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兄의 이번 유배 소식을 듣고 어제 달려 나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과, 떠나시는 길이 家鄕에서 수천리로 모든 일이 아득하고 여정도 어려워 차마 말을 할 수 없으며, 떠나는 길을 며칠만 늦춘다면 여러 차례 전별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면서, 粮太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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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南老明) 10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북풍의 차가운 눈보라에 기거는 어떠하신지 멀리서 안부를 여쭙는다는 것, 일전 設疏 때 거처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서로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시하고, 몸에 익숙하지 못한 風土에 조심하시고, 유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위로하는 글과 함께 약간의 종이와 扇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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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中表弟金汝鎔) 11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동생이 참화를 당한 후에 또 유배를 가서 天涯絶域에서 형과 동생이 이별하여 수천리 길을 가니 모두 고달파 능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형의 저간의 정황을 상세히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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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東厓李浹) 12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달력을 보내 드리니, 북방에서 해(年)가 가는 것과 세월이 바뀌는 것에 대비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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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韓弘靖) 12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북방의 風霜은 이곳의 배나 된다고 하니, 여정이 과연 평안하였는지 염려하면서, 기거하시기 어떤 지를 묻고 있다. 또 형이 만약 고향에 편지를 보내신다면 本府(부령)에 보내 官便으로 동생의 거소로 보내시면 즉시 용궁의 고향으로 전하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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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黃鍟) 13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富寧사또가 내 동생과 서로 아는 사이니 도와 달라는 뜻을 편지로 청하여도 괜찮은지 뜻을 물어보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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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元致道) 1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이조판서가 진달한 李玄齡이 용서받은 것으로 보아, 형도 곧 방면한다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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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進士權景濂) 14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도로가 매우 험한데 어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그 먼 곳까지 갔는가 하는 위로의 말과, 大口 2마리를 보내 드리지만 약소하여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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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富寧倅李東相) 16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안부와 함께 부령의 흉황이 극에 달해 겨우 제사를 폐하는 액만 면할 뿐이지만, 친구의 편지를 기다리지 않고도 마땅히 도움을 드릴 것이라는 뜻과, 米魚를 드리고자 하였지만 上役에 여가가 없다가 지금에서야 보낸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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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李東相) 17 / 기록자료>고도서 / 안일리문후를 드리고자 하였지만 공무가 바빠 그러지 못한다는 내용과 함께 붕어 세 마리를 보낸다는 내용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