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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洪從叔(世哲) 3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從叔인 홍세철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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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廬利川(大河) 3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노수신의 조카인 廬大河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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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李玉山丈 3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옥산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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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金季彦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김계언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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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戚丈金石川(覺)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김각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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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尹希菴丈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윤희엄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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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李兵使 3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兵使인 이공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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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尹僉知 3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僉知인 윤공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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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金副率(瓛) 3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金瓛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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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雪城朴僉知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첨지인 박설성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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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成忠州則優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충주에 사는 則優 成好善을 애도하면서 지은 만사이다. 좋은 벗을 잃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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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或人書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선생이 ‘어떤 사람(或人)’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 여름에 보낸 편지로, 이 글에서 선생은 편지를 받는 사람이 복직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또한 科擧에 떨어지고 난 뒤의 힘든 상황에 대해서 말하면서, 정치에 잘못 손을 들이 밀게 되면 그것을 수습하기도 힘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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策 3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병사 및 군량미에 관한 策文이다. 선생은 글의 첫머리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道는 근본적으로 안과 밖에 없다는 원론을 받아들이지만, 일을 처리할 때에는 순서와 輕重에 따라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전제로 제기한다. 선생은 이와 같은 입장에 따라 중요한 일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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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汝式(憲)墓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重峯 趙憲(1544~1592)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조헌은 율곡 이이의 문인으로, 字가 汝式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17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승병과 함께 청주를 탈환하였으며,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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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朴德凝(惺)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大菴 朴惺(1549~1606)을 추모하면서 쓴 제문이다. 德凝은 박성의 字이다.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의 참모를 역임했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李元翼의 참모로 종군했던 인물이다. 悼兦弟止仲文 41 이글은 선생이 자신보다 먼저 죽은 동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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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兦弟止仲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글은 선생이 자신보다 먼저 죽은 동생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 연보에 따르면 선생이 50세 되던 해 동생인 止仲의 상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 동생을 잃은 슬픔을 제문으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친애하고 형을 공경할 줄 알았던 삶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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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笠巖山城神文(長城縣) 4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전라도 장성현에 있는 입암산성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문이다. 입암산의 높은 형상을 표현하면서, 그곳이 험지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산은 백성들이 의지하는 산으로, 오래도록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입암산의 험준함과 더불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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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趙可畦以冬至使書狀赴京(李芝峯)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선생이 동지사 書狀이 되어 서울로 갈 때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쓴 投贈이다. 이 글을 쓴 이지봉은 선생이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병조참의를 지냈던 인물로, 이 때문에 두 번째 구에서 선생을 이백 명의 사람들 가운데 一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별의 아쉬움을 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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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趙可畦赴嶺南都事(前人)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 역시 이지봉이 쓴 것으로, 嶺南都事로 떠나는 선생을 보내면서 쓴 글이다. 선생의 뛰어남을 드러내어 칭송하면서, 떠나보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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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趙仲赴嶺南佐幕(尹月汀)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嶺南佐幕으로 떠나는 선생을 보내면서 尹月汀이 쓴 投贈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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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別可畦自嶺南赴朝(尹季守)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영남을 떠나 조정으로 돌아가는 선생을 떠나보내면서 쓴 윤계수의 投贈이다. 특히 이별의 정리를 제비와 기러기에 비유하면서, 아쉬워하고 있다. 이 글은 같은 이유로 집필된 김자창의 시나 이숙재의 시와 함께 쓴 것으로, 鴻자를 네 번째 구 마지막 글자의 韻으로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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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金子昌)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 역시 영남을 떠나 조정으로 돌아가는 선생을 떠나보내면서 쓴 김자창의 투증이다. 이 글에서도 기러기를 비유로 들어서 떠나는 정을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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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李叔載)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위의 글과 같은 이유로 이숙재가 쓴 투증이다. 만난 지 3년 만에 이제 서로를 알만한 상황에서 헤어지는 정리를 홀로 된 기러기에 비유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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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坊直廬醉贈棐仲(金昌遠)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세자시강원에서 김창원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심정으로 선생에게 써서 준 시이다. 3년이나 떨어지게 되었지만 이별의 정리는 아직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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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山詩帖(車復元)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신복원이 쓴 공산시첩이다. 선생이 공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함께 공산 일대를 유람하면서 남겼던 시로, 「공산일기」에도 여기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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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溪契軸後小識(鄭遇伏) 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북계에서 열린 북계계축 이후 선생에 대해 느낀 점을 쓴 우복 정경세의 글이다. 북계계축은 선생이 52세 되던 해(1607)에 정경세를 비롯한 우인들이 모여서 시제를 가지고 글을 쓴 모임이다. 이 글에서 우복은 선생의 뛰어남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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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譜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연보의 자세한 내용은 저자소개를 참고하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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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詞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李埈이 선생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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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李晬光이 선생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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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鄭經世가 선생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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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高騁雲이 선생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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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趙掌令棐仲墓(金允安)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김충안이 선생의 묘를 지나면서 쓴 애도의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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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洪瑋)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西潭 洪瑋(1559~1624)가 선생을 위해서 쓴 제문이다. 공의 본관은 南陽이고, 자는 偉夫이며, 西潭은 호이다. 공조참의 義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禹軾이고, 아버지는 증한성부우윤 訢이며, 어머니는 洪渾의 딸이다. 西厓 柳成龍의 문인이다. 선생의 志行이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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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李埈)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蒼石 李埈(1560∼1635)이 선생을 위해서 쓴 제문이다. 공의 본관은 興陽이고, 자는 叔平이며, 蒼石은 호이다. 兆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琢이고, 아버지는 守仁이며, 어머니는 申氏이다. 西厓 柳成龍의 문인으로, 사담 김홍민 등과 더불어 선생과 깊이 교유했던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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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伯兄, 遷葬時)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선생의 백형인 조정(號 黔澗, 1555∼ 1636)이 동생을 위해 지은 제문으로, 무덤을 이장할 때 쓴 것이다. 동생의 관을 쓰다듬으면서 유명을 달리한 동생과의 떨어진 거리를 생각하면서 애통해 하고 있다. 동생을 먼저 보낸 형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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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從六代孫錫喆)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선생의 6대손인 錫喆이 쓴 가장이다. 내용은 연보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저자소개 부분을 참고하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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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李承延이 쓴 선생의 행장이다. 내용은 연보 및 家狀을 참고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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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2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李仁行이 쓴 묘갈명이다. 공의 어릴 적 행적과 임진왜란을 겪었던 시기의 내용들은 주로 연보 및 행장을 보고 기술한 듯하다. 가장 및 행장과 전체적으로 내용이 유사하다. 이 묘갈명에서 이인행은 서애 류성룡이 경상감사로 왔을 때 선생을 보고 “앞으로 큰 학자가 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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涑水書院追享時告由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속수서원에 선현을 추향할 때, 왜 추향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쓴 고유문으로, 黃磻老가 썼다. 이 글에서는 선생을 비롯하여 속수서원에 배향된 申祐‧孫仲暾·金宇宏·趙靖 모두를 다루면서, 왜 이 서원에 배향을 하는지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선생에 대해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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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安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황번로가 쓴 속수서원 奉安文이다. 속수서원은 가휴선생의 백형인 검간공 조정과 선생이 함께 배향되어 있는 곳으로, 이 글은 이 두 선생을 함께 봉안하면서 쓴 것이다. 두 형제가 누가 더 낫고 못한 지를 따지지 못할 정도로 서로 쌍벽을 이루었다고 평가하면서,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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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황번로가 쓴 축문이다. 선생에 대해서 가정에 거할 때에는 孝友이며, 조정에 서면 바른 말을 꺼리지 않고 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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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謄出後識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글은 선생의 7대 손인 趙岐然인 쓴 것으로, 추정해 보면 대략 1800년대 쯤 쓴 것으로 보인다. 문집을 발간하기 위해 선생의 글을 옮겨 적은 이후에 쓴 글이다. 당시 저자는 선조 가운데 가휴선생의 유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찾아 보고 어른들에게 물어봄으로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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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巳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辰巳日記」는 卷7과 卷8 2권 1책으로 이루어진 임진왜란 시기의 기록이다. 선생은 4월 14일(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틀 뒤임) “관첩을 보니 임진년 4월 12일 왜선 수백 척이 부산과 동래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이 일기를 시작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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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巳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卷8은 卷7에 이어서 1593년(癸巳)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계사년 12월 일기부터 일실되어 다시 1594년(甲午) 6월 16일부터 시작된 일기는 드문드문 그 내용이 남아 있었다. 실제 1595년(乙未)은 정월 초하루의 일기와 5월 14일 일기 밖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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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華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일기는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선생이 1599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그것을 보고하기 위한 사신단에 참여하여 연경을 다녀온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선생은 陳奏兼賀至使의 書狀官으로 연경을 다녀왔는데, 正使는 韓德遠이었다. 이 일기는 1599년(선조 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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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山日記 / 기록자료>고도서 / 조익이 일기는 일종의 귀양일기이다. 선생은 사헌부 장령으로 있으면서 기축옥사 문제를 재론하는데, 이로 인해 선조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공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당시 선생은 당색으로는 동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붕당의 폐해를 두려워하여 서인이었던 정철을 제거하려는 선조의 입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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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위갈수헌집(渴睡軒集) 渴睡軒 金의 문집. 4卷 2冊. 1830.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0.0 × 16.5㎝, 有界, 10行19字, 上下內向2葉花紋魚尾, 30.8×20.4㎝. 卷1·2에 詩와 輓詞 215수‧疏 1편‧書 9편, 卷3에 雜著 1편‧記 1편‧跋 2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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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위親臨庭試日感吟, 雙巖從兄(埅)除關東亞使阻痘不赴書懷以示仍次其韻, 送柳半刺(觀鉉)之任鏡城, 重過草庵憶壽大師, 送李期應(壽天)赴省試, 東京懷古, 郊園秋日寄洛中故人, 送兄子若鍊讀書鳴鳳寺, 聞尹上舍士純來醉醒堂徑歸詩以贈之, 重登聚遠樓憶李員外君楫(慶濟)有感, 過石泉亭憶乖齋有感,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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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위戚叔柳陽坡(觀鉉)挽, 三從叔長春公(彦烈)挽,滯職江城逢季父拙黙軒府君終祥日不勝悲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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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위次李景文(象靖)大山書齋韻, 同李景文步往雲洞謁牧隱畵像次軸中韻(二首), 送權上舍(濤)謫渭原, 次權守約韻贈張士益(泰祺), 懷渭原謫客, 次洪敘仲(錫範)江亭韻, 挽權僉樞(達國), 次樊浦書齋韻, 挽成國範(彦模), 象兒聞喜日次權子吉韻, 挽李稷山仁仲(萬宏), 牛川臺次黃趙兩上舍韻,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