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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宗文(學程)哀辭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친구인 宗文 宋學程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이다. 70에서 5년을 못 채우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가슴 아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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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魯弼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柳魯弼을 위해서 올린 제문이다. 오랜 질병 끝에 마침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지금 내가 한 잔 술을 올리지만 그대는 나에게 잔을 돌리지 못하니 마음이 슬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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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叔一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친구인 金叔一을 위해서 올린 제문이다. 그대와 나는 管鮑之交로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대가 세상을 떠나니 눈물이 한 없이 쏟아진다고 하면서 슬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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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姊兄(徠休)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자형인 柳徠休를 위해서 올린 제문이다. 학문도 뛰어나고 지조도 훌륭해 이웃사람들 탄복하였다. 이제 영원히 이별하니 올리는 잔을 받으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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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姪天衢(龍道)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5촌 조카인 龍道를 위해서 올린 제문이다. 나하고 같이 관직생활을 하면서 함께 즐거워하였는데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슬픔이 끝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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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姪天叙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5촌 조카인 天叙를 위해서 올린 제문이다. 같이 관직생활을 하면서 함께 즐거워하였는데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슬픔이 끝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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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從子載聲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조카 載聲을 위해서 올린 제문이다. 네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었건만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네가 不惑도 되기 전에 찢어지는 아픔을 나에게 남기고 떠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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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亡女柳氏婦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柳聲文에게 시집가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올린 제문이다. ‘슬프다. 네가 죽은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지만 꿈에서라도 항상 보는 듯하다. 너는 삼남매 중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나이 25세에 자식도 하나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내가 제문을 지어서 나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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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代祖考下巖府君家狀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7대조인 下巖 金夢得(1521∼1601)의 家狀이다. 이름은 夢得, 자는 天賚, 호는 下巖, 본관은 延安이다. 1521년(중종 16) 7월 4일 斗巖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通禮院 引儀를 지낸 復興, 어머니는 咸陽朴氏이다. 17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정성을 다하여 장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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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1862년(철종 13)에 張錫英이 저자를 위해 지은 행장이다. 이름은 瑩, 자는 義謙이다. 조상은 신라 왕족으로 대대로 延安에 살았으므로 연안을 본관으로 하였다. 역대 유명한 조상으로는 고려의 暹漢, 光厚, 濤가 있다. 특히 濤는 공민왕이 ‘蘿葍山人金濤長源’이라고 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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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장남 龍秉이 부친을 위해 쓴 家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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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並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定齋 柳致明(1777∼1861)이 저자를 위해 지은 묘갈명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질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仁者에 가깝다고 하였다. 나는 괴헌공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한다. 지금 그의 내적인 행동을 보고 더욱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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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並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權相翊(1863∼1935)이 저자를 위해 지은 묘갈명이다. 김공의 학문은 뛰어나고 재주도 훌륭하다. 담담하고 욕심 없는 마음을 평생 지켰다. 책상 위에는 경전이 있으며 깊이 연구하였다. 관직 생활을 할 때는 孝悌를 근본으로 하였다. 그의 행적을 돌에 새기어 천년토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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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朴時源·李家淳·金在振·李祥奎·李殷淳·琴詩述·金鎭河·金騏獻·族孫 鍞 등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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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金樂顯·李彙發·琴日圭·朴齊巘·族曾孫 善淵·再從孫 鎬 등이 저자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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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隱亭記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1892년(고종 29)에 權璉夏(1813∼1896)가 지었다. 龜城(경북 영주의 옛 지명) 동쪽 20리에 마을이 있는데 斗月이라고 한다. 김공은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에 있었다. 즉 은거하고픈 마음이 항상 있은 것이다. 달은 온 천지를 비추지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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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叙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1922년 朴勝振이 쓴 後叙이다. 우리 고향의 선배이신 槐軒 金公은 학식있는 가문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 조정에서 벼슬하여 4품까지 올랐다. 신재 주세붕 선생의 시호를 내리는 의식을 시종일관 예법에 맞게 거행하였다. 또 自如道 察訪으로 있을 때는 혼신을 다하여 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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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1955년 金晦鎭이 쓴 跋文이다. 괴헌 김공선생께서 布衣시절부터 관직생활을 할 때까지의 크고 작은 훌륭한 행적이 많다. 그 중에서 주세붕 선생의 시호를 맞이하는 일을 주관한 것과 자여도 찰방시절 진휼정책에 공로가 많았다. 선생께서 지은 글은 증손 敬淵이 모으고 玄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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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창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국창집(菊窓集) 菊窓 李燦의 문집, 4卷 2冊, 1895, 木活字本, 四周雙邊, 半郭 15.0 × 18.0㎝, 有界, 10行18字, 註單行, 上向花紋魚尾, 上下白口, 19.5 × 29.5㎝. 이 문집은 저자의 후손인 李駿九가 주변 사람들의 뜻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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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秋懷, 又, 與鄭塢仁輔(榮後)往送全雲溪性之(以性)於其家性之以兵郞翌日發行時八月十五日夜也, 己未夏偶到山陽卞丈家尹咸陽設小酌錢洪御史近處諸老合席同話有吟九月九日訪魚川文,贈全性之配所, 又, 贈別申河陰汝涉(楫), 重陽日寄朴士豪(世雄), 次金溪巖子峻(坽)韻, 附原韻, 全性之自新安送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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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李石潭茂伯(潤雨)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李潤雨(1569∼1634, 字 茂伯, 號 石潭)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 이윤우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寒江 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1년(선조 24) 진사가 되고,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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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鄭淸風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鄭允穆(1571∼1629, 字 穆如, 號 淸風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4언 고체시의 형태로 지어졌다. 정윤목은 鄭逑와 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퇴계학풍을 계승한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經史子集을 모두 섭렵하였고 詩文에도 대단히 뛰어났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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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鶴湖孝伯(奉祖)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金奉祖(1572∼1630, 字 孝伯, 號 鶴湖)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 김봉조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저자와 함께 류성룡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김봉조는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13년(광해군 5) 증광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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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曺護軍(潤邦)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護軍 曺潤邦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 이 만사에서 저자는 자신보다 10살 많은 조윤방을 평소 형으로 모시며 서로 진솔한 우애를 나누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또 90세까지 장수를 누리며 세상의 영예를 한 몸에 받았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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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全沙西淨遠(湜)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全湜(1563∼1642, 字 淨遠, 號 沙西)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 전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류성룡과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적을 토벌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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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內兄柳狼川(䄎)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집안의 형인 柳䄎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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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鄭仁輔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鄭仁輔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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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全性之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性之 全以性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 전이성은 全緈의 아들로, 영남 지역에서 출중한 인재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1606년(선조 39) 식년시 병과에 9등으로 급제하고 寺正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우연한 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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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鄭主簿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主簿 鄭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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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張士和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張士和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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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尹司評(涉)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司評 벼슬을 지낸 尹涉(1550~1624, 字 景楫, 號 竹湖)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 윤섭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서 싸웠다. 그 공으로 장례원사평에 올랐지만 벼슬에 뜻이 없어 사직하고 고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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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윤섭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 앞의 만사가 5언시인 반면 이 만사는 7언 율시로 되어 있다. 중국 역사의 위인들에 비유하여 죽은 이의 공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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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姜孝伯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姜孝伯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7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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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高泰村思勿(尙顔)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高尙顔(1553∼1623, 字 思勿, 號 泰村)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과 7언시 2편이다. 고상안은 함창현감·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40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 함창 지역에서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큰 공을 세웠다. 49세 이후 지례현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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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人輓泰村丈走筆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고상안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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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盧弘仲(景任)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盧景任(1569∼1620, 字 弘仲, 號 敬菴)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 5언시 3편이다. 노경임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장현광과 류성룡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저자와 각별한 사이로 교유하였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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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全寡尤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全寡尤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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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權汝涵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權汝涵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5언시 1편과 7언시 1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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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洪(鏶)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洪鏶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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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李和叔(時淸)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李時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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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舍兄輓邊僉使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僉使 邊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舍兄을 대신하여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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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權樂而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權來(1562~1617, 字 樂而, 號 石泉)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 권래는 본래 權東美의 아들인데 큰아버지인 權東甫에게 후사가 없어서 그의 양자로 들어가 안동권씨 가문의 적통을 이었다. 軍資正의 벼슬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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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克齋平甫(坪)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克齋 金坪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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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舍兄輓鄭統制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사형을 대신하여 鄭起龍(1562∼1622, 字 景雲, 號 梅軒)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 정기룡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昆陽鄭氏의 시조이다. 1580년(선조 13)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선조 19) 무과에 급제한 뒤, 임금의 명에 따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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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汝宣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金汝宣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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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權正甫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權正甫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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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高秀才用楫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秀才 高用楫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만사이다.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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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全泰之(景迪)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全景迪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7언시 4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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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安蘿峰浩遠(溭)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安溭(1579~1645, 字 浩遠, 號 蘿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7언시 3편이다. 안직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정경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귀향하여 부모를 모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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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柳察訪嫂氏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察訪 벼슬을 지낸 柳氏의 형수를 위해 지은 만사이다. 5언시 1편과 7언시 1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