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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遜卿內子柳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金遜卿의 아내인 柳氏를 위해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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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張士感內室申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張士感의 아내인 申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7언시 1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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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柳季華內室嫂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柳袗(1582~163, 字 季華, 號 修巖)의 아내를 위해 지은 만사이다. 장문의 5언시로 지어졌다. 류진은 류성룡의 아들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저자와는 이종 사촌지간이다. 인조반정 뒤 천거되어 봉화현감이 되었는데, 이때 그 지역의 토지와 부세 문제를 바로잡아 백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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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江陵姊氏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江陵 지역 金氏의 누이를 위해 지은 만사이다. 5언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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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金益山大夫人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益山 지역 김씨의 부인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 장문의 5언시로 지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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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朴仲植母氏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朴檜茂(字 仲植, 號 六友堂)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7언시로 지어졌다. 박회무는 정구와 정경세의 문인으로, 왜란과 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해냈던 의로운 선비였다. 병자호란이 和議로 끝나자, 그는 두문불출하고 자연 속에 묻혀 여생을 마쳤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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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全姨妹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全氏 아내의 여동생을 위해 지은 만사이다. 5언시 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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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溪巖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저자가 金坽(1577∼1641, 號 溪巖)에게 보낸 새해 안부편지이다. 김령은 자가 子峻이고, 호가 溪巖으로 조선 중기 문신이다. 雪月堂 金富倫의 아들로 저자와는 처남 매부지간이 된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김령에게 새해의 복을 축원하면서 痘瘡의 병세가 어떠한 지 묻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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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한양에 머물고 있는 김령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이다. 저자는 먼 곳에서 병들어 누워있는 신세라 직접 만나지 못해 대단히 아쉽다고 이야기하면서, 소주 한 병과 꿀 한 되를 선물로 보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김령이 새해 전에 고향에 오지 못한다면 심부름꾼 편에 약을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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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김령의 안부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김령은 자신의 병세를 편지에 소상히 기록하여 저자에게 알려 주었고, 이 편지를 본 저자가 답장을 쓴 것이다. 저자는 김령의 건강을 매우 걱정하면서, 만일 저자 자신이 대충 처방전을 만들어 보내면 오히려 김령의 건강에 해가 될지 모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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更告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저자가 류성룡의 문집 편찬에 관해 김령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류성룡의 문집이 막 판각되기 시작했는데, 鄭經世가 李埈(1560~1635, 號 蒼石)에게 류성룡의 글을 수집하게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김령의 집에도 류성룡의 글이 많이 있을 것이니 자제들에게 모두 찾게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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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저자가 김령의 병환을 걱정하며 보낸 편지이다. 김령의 병세에 차도가 없음을 걱정하면서 자신의 처방이 별 효험이 없으면 복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아내가 김령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처가에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아내는 김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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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韓秋月堂士瞻(山斗)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韓山斗(1556∼1627, 號 秋月堂)에게 보낸 답장이다. 한산두가 안부를 물어온 것에 감사하면서, 17일에 여러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로 했는데 이때 한산두도 참석하여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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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한산두의 안부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예전에 한산두가 방문했을 때 자신이 마침 외출 중이라 만나지 못했던 것이 매우 미안했었는데, 이번에 편지를 보내와 자신의 안부를 물어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마을에 새로 짓는 서원이 거의 완성되어 가지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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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伯達(耀亨)僉昆季書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저자가 金耀亨에게 몇 가지 일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김요형은 김령의 아들로 저자에게는 처조카가 된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지고 있다고 스스로 탄식한다. 氣가 위로 솟아오르는 증상은 조금 호전되었지만 하체의 기가 약하게 들떠 있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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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伯達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김요형에게 보내는 답장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 時祭를 거행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번 달에 시행할 수 없으면 열흘이나 스무날 정도 미루었다가 시행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예법에 밝은 자에게 문의하여 결정하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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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洪叔京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洪鎬(1586∼1646, 字 叔京, 號 無住)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홍호는 대제학 洪貴達의 후손이며, 무신인 洪德孫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글을 읽었는데, 20세에 류성룡이 그를 만나보고서 총명함을 크게 칭찬하였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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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曺護軍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護軍 曺潤邦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조윤방은 저자보다 10살이나 많지만 항상 젊은이처럼 건강하여 100살까지 장수할 거라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사별하게 되어 놀랍고 슬프다고 쓰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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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仁輔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鄭仁輔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저자는 정인보와의 오랜 인연을 회상하면서, 비록 정인보가 속세에서 立身하지는 못하였지만 집안과 자손이 번창하는 복을 누렸다는 점을 치하하고 있다. 더불어 병들고 외로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영령이나마 불쌍한 자신을 돌봐달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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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全性之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性之 全以性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전이성은 全緈의 아들로, 1606년(선조 39) 식년시 병과에 9등으로 급제하고 寺正의 관직을 맡았다. 이 글에서 저자는 세속의 시시비비에 휘말려 불우한 인생을 살았던 전이성을 애도하면서, 오직 자신만은 전이성의 진솔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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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兄梅園公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金光繼(1580~1646, 號 梅園)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김광계는 金垓의 아들로, 왜란 시기 아버지와 더불어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에 항거하였던 義士였다. 김광계는 의병장이었던 부친의 행적을 본받아서 나라에 충절을 다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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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權璉夏(1813∼1896, 字 可器, 號 頤齋)가 쓴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권연하는 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평생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전념한 순수 선비였다. 이 행장에서 그는 저자를 높은 학식과 덕망을 갖춘 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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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李敏求(1589∼1670, 字 子時, 號 東洲)가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묘갈명이다. 내용은 행장과 대동소이하다. 이민구는 李粹光의 아들로 부제학·대사성·도승지·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저자가 인조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해 입궐하였을 때 이민구는 태학사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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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洪汝河, 李敏求, 柳元之, 金應祖, 金是榅, 李元禎, 李弘祚 등이 쓴 만사 83편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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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저자가 류성룡과 김령에게서 받은 편지를 부록으로 모아두었다. 류성룡이 보낸 편지가 총 5편 편집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애선생문집제12권에 「寄兩甥」과 「寄李甥」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것이다. 류성룡이 조카들의 안부를 묻고 학문을 면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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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洪汝河, 柳元之, 安瑞徴, 金磏, 全僑, 鄭焜, 朴璗, 權後卨, 尹湯聘, 朴成敏 등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이 총 17편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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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찬黃蘭善이 쓴 발문 1편이 실려 있다. 발문에서 이 문집을 발간하게 되는 경위를 밝히고 있다. 저자의 후손인 李駿九가 저자의 글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문집으로 출판하자는 뜻을 밝혔다. 이에 황란선은 평소 저자의 인품을 흠모해 왔던데다 가계상으로도 깊은 인연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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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집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錦州 高夢贊의 시문집. 6卷 3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1.1 ×15.8㎝, 有界, 10行20字, 上下內向花紋魚尾, 上下白口, 32.0×20.8㎝. 서문은 없고, 그의 아들 高文謙이 1892년(고종 29)에 쓴 발문이 있다. 天冊에는 目錄과 卷1·2가 있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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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海東行, 張童子謠, 春日卽事二首, 述懷二首, 送柳豊安(相祚)奉使之燕京, 追遠堂會席次呈外舅鄭思軒先生(來成), 陪姜芝園丈(世綸)夜話鹿墅,次呈黃白下丈(磻老)屛巖韻, 次呈金屛巖丈(顯圭),姜半醒丈(長欽)姜渾齋丈(哲欽)李丈(奎亨)金剛行見訪,和呈姜渾齋四首, 和呈姜渾齋三首, 和呈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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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山海遊觀篇, 仙夢臺, 蘓山南望, 華府林藪, 川前, 陶淵瀑, 臥龍堂, 仙遊亭, 題寧海政堂, 登觀漁臺望海, 大津觀漁, 觀日出, 登厚里浦東望鬱陵島, 月松亭二首, 竹島放舟, 淸河寶鏡寺, 內延瀑, 內延石窟, 靑松大典寺, 贈玩虛上人, 駕鶴樓, 周王瀑, 周王窟, 靑鶴洞, 紫霞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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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魯巖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스승인 魯庵 鄭必奎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을 가득채운 가르침은 공부의 본령과 핵심을 향한 단서를 열어주셔서 비록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라도 마음 속으로 잊을 수 없지만 타고난 性이 부박하고 의지가 굳지 못해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는 겸손의 말을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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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魯巖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스승인 魯庵 鄭必奎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겨울 조카(高彦弼)의 장례에 誄文을 보내준 데 감사하며, 요절한 젊은 나이가 애석하기도 하지만 조카가 지닌 뛰어난 재주와 여러 어른들이 그에게 걸었던 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되어 안타까움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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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魯巖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스승인 魯庵 鄭必奎에게 답한 편지이다. 연전에 십여 일 동안 스승을 보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다시 얻기 어려운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때때로 생각할 때면 더욱 아쉽고 우르르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이어서 편지로 일러준 말은 자신에게는 모두 정문일침의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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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權晶山(載大)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權載大(1778~1859)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의 덕을 그리워한 것이 60년이 되어가지만 문하에 나아가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서 자신은 궁벽한 곳에서 거하면서 병과 이웃하며 사느라 밖의 일을 살피지 못한 지 오래되어 상대가 호남의 섬에 유배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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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柳定齋(致明)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柳致明(1777∼1861)에게 보낸 편지이다. 늙음에 따라 힘들고 괴로운 일이 감당하기 어렵지만 평소 갖춘 안정됨의 힘으로 인해 어려움을 만남에 편안해 할 수 있어서 밖에서 이르는 근심이 마음에 스며들지 못할 것이니, 오직 그것에 의지하면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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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屛巖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金顯奎에게 보낸 편지이다. 청명한 계절이 지나고 이미 겨울이 되어 비바람이 쓸쓸한 때를 맞이했음을 말하고 상대의 건강을 물었다. 이어서 살펴본 새로운 집의 터는 대지가 꽤 넓고 창 밖에는 작은 내가 굽어서 흘러가고 있어 자연과 벗 삼아 시를 읊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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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渾齋 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姜哲欽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의 형제는 모두 늙고 병들어 거의 죽음과 이웃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서 집에서의 일상이 별다른 일이 없고 오직 책 읽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데, 세월은 자신을 버리고 앞으로 치닫고 눈과 귀의 밝음은 점점 어두워지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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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德輿 6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공부의 목적과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 편지이다. 文學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유학자가 추구할 만한 것으로서 전혀 안할 수 없지만 그것에만 힘쓰는 것도 타당치 않음을 말했다. 이어서 상대가 학문에 빼어난 자질을 지녔으면서도 과거를 위한 학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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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德輿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겨울에 상면했던 일이 마치 꿈과 같다며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상대가 벼슬길에 올라 떠나간 후 일찍 축하의 편지를 보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이어, 수십 년 전 젊은 시절 자신을 포함해 상대와 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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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德輿 8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가을 받은 편지를 항상 곁에 두고 읽고 있다며 상대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溪山의 이른 봄 흰 눈 위로 떠오른 달이 더욱 맑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 많아진다고 했다. 이어, 자신이 아직 오십이 되지 않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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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德輿 9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月初에 愚川 柳使君을 만나 상대에 대한 대략적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자신은 두문불출한 것이 이미 40년이 되어가니 알던 벗과의 만남은 뜸해지고 아침저녁으로 마주 대하고 있는 것으로는 오직 책 속의 고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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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輿 9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시골에 떨어져 살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병이 깊어지니, 이 세상에 나서 품은 뜻 들이 모두 차가운 재가 되어가고, 그에 따라 젊은 시절 공부를 같이하던 벗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다며 상대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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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輿 10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늙고 쇠약함이 심해져서 앉아서 편지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외에 별달리 뜻을 기울여 할 일이 없으며, 오직 새로 지은 정자에서 여름날 긴 잠을 자는 즐거움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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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輿 1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외로움 속에 오직 同氣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지금 골육을 여의는 천륜의 고통을 당하고 보니 늙어감을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고 했다. 이어, 경산 현감에 재직 중인 상대에게 더욱 분발하여 선정을 베풀고 치적을 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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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輿 12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시골에 물러나서 전원을 지키며 근근이 옛날에 하던 공부를 일삼으며 늙어가고 있으니 별달리 기뻐할 일이 없고, 다만 근래 綱目 한 부를 구하여 넘겨보면서 세월을 보내는 즐거움으로 삼고 있는데, 여기서 옛 사람들의 성공과 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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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輿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彙載(1795∼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두문불출하고 새해를 맞이함을 말하고 상대의 편지를 받은 반가움이 옛 사람이 말한 “천리를 떨어져 서로 마주보며 말을 나눈다.”는 말을 낳게 한 것임을 알겠다고 했다. 이어서 月峯 선조의 遺稿 校勘을 荷蒼 두 선생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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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蔡顯余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蔡光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가 보내준 圖書가 진리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을 뿐 아니라 가을로 치닫는 바깥 경치의 소란함 속에서도 한가할 겨를이 없게 해준다고 했다. 또한 자신은 시골의 낡은 집에서 적막한 가운데 때때로 책상위의 서책을 마주하곤 하는데 모두 옛 사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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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顯余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蔡光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을 앓아 자리에 누운 지 이미 40일이 지나니 氣가 다하고 정신이 거의 죽은듯하여 결코 이 세상을 살고자 하는 뜻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근래 들어 자신의 고장에 나이 먹은 어른들이 차례로 돌아가셔서 斯道를 맡아서 전해줄 분이 거의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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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顯余 1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蔡光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을 서울로 보내고 혼자 남아 적막한 집을 지키고 있으니 옛 벗이 찾아옴이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뜰에 심은 매화나무에 꽃이 피어 맑은 향을 피우고 있는데 상대와 함께 완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또한 일전에 보내준 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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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顯余 16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蔡光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삼동의 계절에 얼음과 눈으로 덮인 집에서 추위에 시달리니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근래 점차 따뜻한 陽의 기운이 자라나니 뜰의 매화가 꽃을 피워 향기를 전한다고 했다. 이어, 자신에게는 늙음이 일찍 닥쳐와 머리털은 이미 빠지고 잇몸이 드러났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