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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顯余 17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蔡光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몇 달을 앓아누웠다가 근래 들어 비로소 창을 열고 앉게 되었음을 말했고, 그러한 중에 상대가 보내준 편지가 큰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근래 병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정신은 아직 혼미하고 평소에 쓰던 안경도 다른 이에게 빌려줘서 마치 장님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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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公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자신은 시골에 조용히 칩거하는 것이 마치 본성인양 몸에 배여서 벗들이 찾아오는 일 외에는 아무런 일삼을 것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무정히 지나가 앞머리는 이미 희게 세었고 학문을 향한 포부는 어느덧 스러졌으니 장부의 평생이 이것으로 다 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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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公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봄이 오니 사물들이 새로워지니 수양 공부 중에 틈을 내어 사물을 살펴 이치를 탐구하는 즐거움을 누리자고 했다. 이어, 자신은 궁벽한 시골에 머물며 별달리 이룬 것 없이 어느덧 쉰 살이 되었으니 名利를 도모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다만, 근래 농사짓는 방법을 배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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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公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자신이 사는 강가의 집이 추워 함부로 문밖을 나서지 못했는데, 밖에는 맑고 맑은 눈이 쌓여있고 보름달이 떠 있기에 문득 일어나 앉아 시를 지었다고 했다. 이어, 상대의 자질을 칭찬한 후 "천리 길을 나서는 사람은 석 달을 먹을 양식을 준비한다."는 옛 사람의 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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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公立 20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봄 사이에 상대에게 경사가 있었음을 들었지만 불가피한 일로 축하의 예를 갖추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이어 자신은 쇠약함이 날로 심해져 五官이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닐 정도로 되었으니, 이러고도 세상을 어떻게 해 보겠다는 헛된 꿈을 품을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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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洛北源百(孝淳)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孝淳(1789∼1878)에게 부친 편이다. 승진 소식을 접한 후 남들보다 먼저 축하의 인사를 전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불가피한 형편으로 인해 여의치 못했음을 말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했다. 이어 지난 가을의 일은 아직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하고서 상대가 신체를 保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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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仲淵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金驪書(1789∼1837)에게 부친 편지이다. 상대가 임금의 은혜를 입어 벼슬길에 올랐을 때 벗들이 모두 축하의 예를 갖추어 보냈는데 자신만 거기에서 빠진 것에 대해 사과했다. 이어 시간이 흘러 어느덧 뭇 사물들이 소생하는 때를 맞은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세월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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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仲淵 2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金驪書(1789∼1837)에게 부친 편지이다. 수십 년 동안 함께 어울려 지내다 벼슬길에 올라 갑작스레 떠나가 서로 천리의 길로 멀어지게 된 것을 아쉬워했고, 특히 근래 추위가 찾아오니 더욱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 더 하다고 했다. 이어 고향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고 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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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仲淵 2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金驪書(1789∼1837)에게 부친 편지이다.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고 또한 편지로써 거듭 관심을 가져준 상대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자신이 그러한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함을 사과했다. 이어 봄이 깊어가는 즈음을 맞은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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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文若(宜翼) 2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宜翼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은 어리석게 궁벽한 촌에 칩거하며 형제들과 더불어 주어진 분수대로 먹고 쉬며 지낸다고 했다. 이어서 걱정되는 바는 학문이 날로 퇴보하는 반면 나이는 날로 늘어나 끝내 山南의 노인으로 늙어 생애를 마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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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文瑞(昌周) 2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鄭昌周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 가을 상대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었고 다시 장문의 편지를 보내준 데 감사했다. 이어서 자신은 산야에 묻혀 어부나 나무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 세상에 관한 지식이 없다고 겸손해하면서, 그런데도 상대가 오해해서 뛰어난 인재로 쓸 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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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蔡宗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蔡周郁에게 부친 편지이다. 산야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지만, 상대와 같은 지기가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했다. 이어, 상대가 옛 성인의 도를 다시 회복할 것을 결심하고 배우고 저술함에 날로 남들이 미치지 못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칭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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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用華 27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姜用華에게 답한 편지이다. 상대가 편지를 보내 관심을 기울여 준 데에 대해 감사했다. 이어서 자신은 반평생 동안 궁벽한 시골에 묻혀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한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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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丈(冲淵) 27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冲淵에게 부친 편지이다. 자신은 타고난 본성이 공소한데다가 재능도 짧고 얕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작은 재주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몇몇 뜻을 같이하는 벗들을 따라 경서를 들고 학비를 마련해 스승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다고 했다. 이어 文이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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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質如 29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李秉殷(1782∼1860)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른 봄에 받은 장문의 편지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봄이 깊어가니 溪山의 자연이 주는 즐거움도 깊어간다고 했고, 특히 눈앞에 펼쳐진 모든 정경이 그림 속 詩의 재료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서, 자신은 형제가 서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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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公範(宗九) 30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洪宗九에게 답한 편지이다. 형의 상례가 끝나니 혼자 남겨진 외로움에 더욱 세상을 살아갈 뜻이 없어졌다고 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슬픔이란 우리 삶에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말했다. 이어 보내준 편지 끝에 바다와 산을 유람하려는 소망을 적었는데 그 부분을 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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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琴稺玄 3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琴禹圭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은 본래 궁벽한 강호에 은거하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으며, 평소 혹 저술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성품이 못나서 비록 친구가 요구하더라도 그것을 꺼내어 보여준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보내온 편지 중에서 자신을 도연명이 국화를 사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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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思軒集營刊所 32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思軒 鄭來成(1744∼1835)의 문집 간행소에 답한 편지이다. 사헌과의 학문적 인연을 말한 후 자신은 강촌에 칩거해 있어서 어떤 일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병든 몸으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음을 한탄했다. 그럼에도 다행히 간행소에서 자신을 내치지 않고 일을 맡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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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善長 3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집안 조카인 高彦弼에게 부친 편지이다. 사람이 호수에 사는 물고기나 산에 사는 짐승과 다른 것은 같은 혈족과 친척과의 사이에 누리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서 죽고 나며 병드는 슬픔과 즐거운 일이 있어 마련하는 잔치에 힘을 더하고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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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善長 3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집안 조카인 高彦弼에게 부친 편지이다. 강촌의 집에서 조카와 함께 한 일들을 회상하면서, 외로이 앉아서 조카의 얼굴을 떠올리고 조카의 말을 생각하면 슬퍼지면서 그리운 마음이 더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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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伯兒 36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맏아들 高聖謙에게 부친 편지이다. 자신이 아들에게 바라는 바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지금의 작은 성취를 다행으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들의 재질이 그렇게 노둔하거나 포부가 그렇게 보잘 것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세태에 휩쓸려 명예와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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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洲子自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자신의 인생을 술회한 자서이다. 태어나 자란 錦洲의 지리적 환경에 대해서 말하고, 그 지명을 따서 스스로 호를 삼았음을 말했다. 이어서 어려서부터 옛 군자들이 立志하던 요체와 天人性命의 근원에 대해 얻어들었지만, 본디 질병이 많아서 그것을 받들어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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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張義士詩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임진왜란 시 17세의 나이로 의병진에 참여해 용감히 싸웠고, 임란 후의 참상을 시로 읊었던 張聖允의 행적을 기리며 지은 시의 序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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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琴稺玄別章小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琴禹圭에게 이별의 시를 주면서 지은 서이다. 나무의 무늬는 뿌리 내린 곳의 바위에 부딪히며 자라고 도끼로 다듬어지는 등의 가공을 거쳐서 완성되고, 단단한 쇠가 물과 불의 단련을 거쳐서 예리한 도구로 만들어짐을 들어서 이제 40세가 된 금우규가 환경의 시련을 거쳐 단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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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金周彦之洛浦詩小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金斗洛이 洛浦(현재의 여수)로 떠나는 것을 전송하면서 지은 시의 서이다. 김두락의 인품을 칭찬하면서 세상과 부합되지 않아 30년을 불우하게 지냄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작년 금주로 와서 함께 지나가 채 1년이 되지 않아 떠나감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그곳은 편벽된 촌이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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廬陵逸稿跋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廬陵逸稿』에 부친 발문으로, 공이 살았던 때로부터 3백여 년이 지나서 詩文 약간 수와 及亂時 日錄이 남아 있을 뿐이었는데, 이것과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합쳐서 묶고 저자에게 발문을 청하기에 응하여 짓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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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峯先祖文集跋 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고몽헌의 선조인 月峯 高仁繼(1564∼1647)의 문집에 쓴 발문이다. 행실은 효성과 우애를 벗어나지 않았고, 강론한 것은 모두 성명이기에 관한 것이었으며, 말한 바는 전인들이 발명하지 못한 것들이었다고 했다. 고인계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開城이고, 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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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敎辨 6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불교의 오류와 폐해에 대해 논한 글이다. 저자의 불교비판은 크게 윤회설비판, 인과응보설비판, 인륜부정에 대한 비판이 그 골자이다. 윤회설비판과 관련해서는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어도 그 정신만은 멸하지 않고 남아 다시 다른 몸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지만, 이러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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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理辨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山理 즉, 풍수설의 폐해와 오류를 분석한 글이다. 풍수설에서 말하는 여러 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것이 아무런 유래와 근거가 없는 것임을 말하고, 역사상의 여러 인물의 성패와 선현들의 언급을 들어 풍수설의 허무맹랑함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사마광은 그 아버지 태위공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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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거문고를 통하여 옛사람의 음악 정신을 새기고 사특한 마음을 경계하고자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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硯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벼루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다. 갈아도 닳지 않아 허다한 문자를 낳고 글을 쓰게 하여 유학의 가르침을 펴지게 하는 덕을 기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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眼鏡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溫潤함을 덕으로 지니고 淸螢함을 바탕으로 해 의심 없이 밝게 비추어 주기에 자신이 안경을 사용해 옛 성현들의 말씀과 자취를 살필 수 있음을 기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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杖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나이 들어 지팡이에 의지해 함께 살아가는 고마움을 기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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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香檀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자신은 성품이 외로움을 좋아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않아, 꽃에 대해서도 찬란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다가 향단을 심어 세월을 보내는 즐거움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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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海行程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1843년(헌종 9) 지은이의 나이 50세 되던 해 4월 17일 집을 떠나 5월 5일 귀가하기까지 19일간 동해안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적은 기행문인 산수유기이다. 동해로부터 300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50세가 되도록 바다를 바라보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다 4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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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政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군사행정에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이다.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 당, 오대, 원, 명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무기란 흉기이다. 전쟁이란 위험한 길이다. 성인도 할 수 없어서 사용한다. 나라가 한 번 태평하고 한 번 혼란함은 필연적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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徭役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요역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적은 글로서, 요역의 역사적 전개에 대한 고찰에 이어 바람직한 요역제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周禮에는 풍년에는 3일 흉년기에는 1일의 요역을 부과했고, 한나라 때에는 弄口의 부역이 있었고, 당나라 때에는 力役의 부역이 있었고 부역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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糶糴說 10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환곡제도에 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환곡제도의 역사적 유래와 그 시대적 특징 및 바람직한 환곡제의 개선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糶糴米는 항시 일정한 분량을 창고에 보관했다가 춘궁기에 絶糧民에게 대여하였는데, 매년 가을 10月부터 開倉하여 還收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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貢擧說 12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요순시대의 인재 등용방법으로부터 주나라 때 賓興의 禮, 한대의 孝廉秀才와 射策明經 등용제도, 당대의 貢擧三場, 송대의 殿試 등 중국의 사례를 소개한 후 고려 광무제 이래의 과거제도의 변천을 설명한 후 바람직한 인재 추천과 선발 및 등용 등에 관한 제도적 개선안을 제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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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圖說撮要 19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圖書의 이치에 대해서는 옛 성현들의 말이 자세하여 자신으로서는 옛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았던 의미를 밝히지는 못하고 단지 그 요점을 간추려 적어서 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할 뿐이라면서 河圖의 유래와 구조 그리고 근본 의미 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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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書說撮要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洛書를 보면 그 方圓의 形, 奇耦의 數, 陰陽의 象이 대략 黑白으로 나타나며, 하늘의 둥근 것과 땅의 네모난 것 등 天道의 流行, 地氣의 升降, 陰陽의 贏乏 등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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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天卦說撮要 2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하도가 나옴으로써 괘획에서 虛가 생겨나고, 그 中數가 태극이 된다고 했다. 虛중에서 奇偶의 수가 모두 40인데, 20의 奇가 陽儀가 되고 20의 隅가 陰儀가 된다고 했다. 또한 生數의 1‧2‧3‧4가 太陽‧少陰‧少陽‧太陰이 되어 四象이 생겨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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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天卦說撮要 2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後天은 쓰임(用)을 위주로 하므로, 乾坤이 자리를 바꾸어 泰坎이 되고 离가 자리를 바꾸어 旣濟가 되며 長男과 長女가 나와서 작용(用事)이 일어난다. 震은 아버지를 대신해 일을 시작을 열어 동쪽 방향에서 만물을 만들어 내며, 巽은 어머니를 대신해 일을 이어서 동남 방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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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辭悼黃秉元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황병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훌륭한 재주를 소유하였지만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고 지난날 함께 글을 읽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哀傷感을 증폭시키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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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趙賓(榮)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벗인 趙榮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부지런하면서도 순박한 자질을 지녀 儒業에 종사하면 그 문을 光大히 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며 벗의 죽음을 슬퍼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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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趙景玉(述璟)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趙述璟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한양 조씨 집안의 재주 있는 사람으로서 상서로운 세상에서 역량을 발휘할 인물이었는데 불행하게도 단명하였다고 하였다. 그의 부친이 자식의 죽음을 오래도록 슬퍼하다가 자신에게 애사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그의 부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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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善長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집안 조카인 高彦弼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고언필은 風儀‧度量이 있으며 행동거지가 성숙한 사람이었다. 志意가 너그럽고 넉넉하며 성품은 온화하면서 엄숙하여 일찍이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청화한 그의 음성과 밝은 그의 얼굴을 듣고 보지 못함이 비통할 따름이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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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魯庵先生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스승인 魯庵 鄭必奎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선생은 주자를 사모하고 퇴계를 흠모하여 맛있는 음식처럼 즐겼고, 안빈낙도하면서 시종일관 明誠의 공부에 매진해 대성하였다고 했다. 갑자기 세상을 뜨니 나라에는 시초와 큰 거북이가 없고 선비는 큰 스승을 잃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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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思軒先生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思軒 鄭來成(1744∼1835)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鄭來成(1744∼1835)의 자는 岐瑞, 호는 思軒, 본관은 청주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사·장악원주부·종묘서령·병조참판·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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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芝園姜公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고몽찬姜世綸(1761~1842)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姜世綸의 자는 文擧, 호는 芝園이다. 1783년(정조 7) 생원에서 癸卯增廣試 문과에 급제하여 奎章閣講製 문신에 뽑혔고 司諫院 大司諫을 지내고 兵曹參判을 역임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