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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18701

    巖廊齋舍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집안의 先塋이 있는 곳에 재실을 건립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먼저 先塋의 위치를 밝힌 뒤, 재실이 건립되고 200여 년 세월이 경과하면서 衰落해버린 처지와 다시 옛터에 짓게 된 의의를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02

    蘆峯精舍重建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집안의 노봉정사를 중건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110년 내려온 선조의 집이 무너지게 되자 자손들이 의논하여 鶴沙의 무덤과 100리 쯤 떨어진 북쪽에 精舍를 다시 만들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03

    方山里社雪月堂全公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方山마을에 사당을 짓고 雪月堂 全益禧를 봉안할 때 저자가 지은 글이다. 休溪 全希哲(? ~1592)가 살았던 마을이며, 望日堂(休溪의 증손)의 자손들이 대대로 내려오는 方山里 집터에 사당을 짓고 그의 5대손이 되는 설월당을 奉安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휴계와 망일당과
    출처 : 유교넷
  • 318704

    濒西全公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설월당을 짓고 濒西公을 봉안하면서 저자가 지은 글이다. 먼저 休溪가 고상하고 높은 절개를 지녀 대대로 향기를 전하였고 雪月堂이 뒤이어 일어나 휴계를 모셨다고 頌德을 하고 있다. 이렇게 기술한 다음, 이름난 조상과 알려진 자손이 있는 湖嶺은 산 높고 물 맑은 곳이라고
    출처 : 유교넷
  • 318705

    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방산리에 설월당에 휴계‧설월당‧빈서공을 봉안할 때 지은 저자의 상향축문이다. 세 개의 축문 모두 4언 16자로 되어 있는데 짧아서 전문을 싣는다. 강직함으로 물욕을 이기고 검소함으로 녹봉을 사양했네. 맑은 기풍 늠연하니 영원히 공경받으리. [休溪를상향하는글]
    출처 : 유교넷
  • 318706

    楊州山所加土後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通政大夫에 증직된 兵曺參議府君의 墓에 加土를 할 때 저자가 지은 제문이다. 공의 묘가 이 언덕에 있은 지 400년이 되었는데 중간에 여러 차례 修改를 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무덤을 보살피지 못하였고, 남아 있는 자손들이 사방으로 멀리 흩어져 보살피는 정성이 비게 되
    출처 : 유교넷
  • 318707

    先祖潛庵先生焚黃吿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인종이 세자일 때 세자시강원을 지낸 金義貞(1495∼1547)이 관직을 추증받아 묘소에 고할 때 저자가 지은 告由文이다. 세자의 知遇를 받고 國士와 같은 은혜를 받아 군신으로 훌륭한 다스림을 기약하였으나 인종이 죽자 고향으로 내려와 음식을 물리치고 먹지 않고 죽었다고
    출처 : 유교넷
  • 318708

    巖廊山所改塋築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암랑산의 선영을 개축하면서 저자가 지은 고유문이다. 수재를 당하여 묘가 무너지고 螭首와 龜趺가 굴러 엎어졌으며, 莎土가 허물어지게 된 상황을 서술하고, 후손들이 개축하기로 의논하였다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18709

    從先祖鶴湖先生遷葬時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從先祖인 金奉祖(1572∼1630)의 묘를 옮길 때 저자가 썼던 제문이다. 선조에 대하여 평소 흠모하고 있었다는 필자의 감회를 적고, 묘가 무너져 민망했던 상황을 말한 뒤 공이 죽은 지 190여 년이 되었지만 景慕하는 마음은 쇠퇴하지 않아 제기를 갖추어 제사지내고 遺
    출처 : 유교넷
  • 318710

    從六代祖從仕郎公遷葬時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1832년(순조 32) 수재로 무너진 묘를 遷葬할 때 저자가 지은 제문이다. 먼저 묘소가 물에 침식된 정황을 말하고, 부인이 돌아가시고 마땅히 공의 묘에 합사를 해야 하는데 공의 묘 뒤에 壓葬을 한 것이 한 번 잘못된 일이었으며, 묘 자리를 보는 자도 공의 묘는 穴法
    출처 : 유교넷
  • 318711

    外大父竹軒黃公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外大父인 竹軒 黃公을 제사지내는 글이다. 식견은 名理를 분별하기에 충분하면서도 남에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고, 80년의 생애를 초야에서 살았다는 등의 말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12

    祭內舅慵窩黃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外叔인 慵窩 黃公을 제사지내는 글이다. 굳세고 반듯한 지조와 숙달된 지식 순후하고 도타운 행실, 학문을 정밀함에 이르렀는데 장수하지 못하고 중년에 돌아가니 안타깝다는 등의 감회를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318713

    祭金戚叔元禮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戚叔인 金元禮를 제사지내는 글이다. 어릴 적 嘯逸公을 따라 뵈었던 공의 풍모와 가득한 수염, 자리 가득한 談笑를 보며 감탄하였던 일을 회상하고 공의 말씀을 다시 접할 수 없고 웃음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으니 슬프다고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14

    祭柳豐安君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柳相柞(字는 爾能. 號는 逸愚. 諡號는 貞簡, 1763~1838)에게 바치는 제문이다.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儒林의 뛰어난 자였으며 임금의 높은 신망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또 홍경래의 난을 만나 계책을 내고 충성을 바쳤으며, 조정에서 신망과 중임을 지녔지만 재산과
    출처 : 유교넷
  • 318715

    祭再從叔父甁城齋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재종숙인 甁城齋公에게 바치는 제문이다. 자신을 다스림에 엄격하고 마음을 잡아 보존하는 공부가 견고하였으며, 강직하고 바른 행실과 맑게 닦고 대범하고 곧은 지조로 毅然히 범할 수 없는 기색을 지녀, 사람들이 모두 본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며 나라를 보필할 만한 선비
    출처 : 유교넷
  • 318716

    祭柳參奉爾恭(徽柞)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매형의 아우인 寢郎 柳徽柞(1791~1836)에게 저자가 쓴 제문이다. 처음 공이 죽고 장례를 치를 때 가지 못하였고 挽歌로 상여 끈을 잡지도 못하여 안타깝다는 내용을 먼저 기술하였다. 그런데 지금 형인 景奭(柳進翰, 1798∼1856)이 성균관에 들어가게 됨으로 인
    출처 : 유교넷
  • 318717

    附誄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柳徽祚에게 바치는 뇌문이다. 고인의 字는 爾恭인데 豐安公의 아우이다. 주자가 “자질이 아름다운 사람은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사실 아름다운 자질을 가진 자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寢郎 柳爾恭이 거의 그러한 사람이라고 하며 고인의 훌륭했
    출처 : 유교넷
  • 318718

    祭李聖士(彦儒)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와 일 년에 한두 번 왕래를 하던 延陵의 李聖士가 1814년(순조 14) 겨울 12월 병에 걸려 梧溪에서 객사를 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병든 채 죽은 아들을 보러 와서는 또 불행히 타향에서 죽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기록하였다. 그래서 다음해 5월에 선산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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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19

    祭堂叔父庸叟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당숙인 용수공에게 저자가 쓴 제문이다. 공은 문장의 재주가 뛰어나며, 안목이 높았고, 글은 진부한 것을 없애고 답습을 꺼렸으며, 문장은 西漢시대의 風調가 있고, 詩는 晚唐의 韻致가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 평소 歐陽修의 문장과 李攀龍·王世貞의 시를 읽는 등 세속적
    출처 : 유교넷
  • 318720

    又(大祥時)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의 堂叔父인 庸叟의 大祥 때 지은 제문이다. ‘공은 죽어서 신선이 되었고 나는 오히려 사람이라 마시고 먹고 말하고 웃으니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으며 누가 즐겁고 누가 괴로운가?’라며 필자의 심회를 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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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21

    祭三從姪德老(重器)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집안의 종손인 김중기가 일찍 죽은 것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蘆峯의 집안을 이어온 지 5대째로 위로는 70이신 늙은 어버이가 계시고, 아래로는 兒女가 집에 가득하여 혼인도 다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 科擧에 從事하여 이름을 드러내지도 못하였는데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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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22

    祭李查兄(晩軾)文(代孫兒作)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37세에 죽은 처남의 죽음에 저자가 지은 제문이다. 하늘이 인자한 덕성을 주었으면서도 큰 복을 막았고, 총명하고 영리한 재주를 주면서도 장수를 막았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또 이름을 세우고 행실을 닦았는데도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였다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출처 : 유교넷
  • 318723

    祭妹兄柳承宣(進翰)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柳進翰(1798∼1856, 字 景奭)에게 주는 저자의 제문이다. 형제 8명 중 6명은 일찍 죽고 본인과 여동생만 가정을 가졌다며 누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자가 시집가서 남편과 자식이 없으면 그녀의 죽음에 부모형제가 大功服으로 낮추지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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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24

    祭姑夫晶山權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晶山 權載大에 주는 저자의 제문이다. 고모부는 1778년(정조 2)에 태어나 1859년(철종 10)에 사망하였다. 그의 재능이 쓰이지 않고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았고, 곤란함을 만나도 고민하지 않았으며, 學識은 넉넉하고 박학하면서도 글 솜씨를 자랑하지 않았고, 志行이
    출처 : 유교넷
  • 318725

    祭李翊衛(仁行)文(代士林作)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李仁行의 죽음에 대해 사림을 대표하여 저자가 지은 4言體로 된 제문이다. 金石 같은 지조, 생강처럼 매운 기질을 지니고 있으면서 세밀하고 빈틈없는 공부와 바른 행실을 하였다고 말한다. 벼슬에 나아가서는 나라를 위해 일하였고 물러나서는 집안에서 자신을 수양하였으며 후배
    출처 : 유교넷
  • 318726

    祭姑母淑夫人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고모의 죽음에 저자가 지은 제문이다. 선생은 나이 서른에 아버지를 잃고 58세에 어머니를 잃었으며 지금 또 72세에 고모를 잃었다고 안타까워 한다. 어릴 때 선생이 고모와 함께 공부하고 놀던 추억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 다음 시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는데도 살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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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27

    祭族姪稺常令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族姪인 秋部右侍郎 金稺常이 죽은 지 일 년 만에 지내는 제사에 선생이 지은 제문이다. 80년을 함께 지낸 벗이 죽으니 늙어 정신이 혼미하고 七情도 무디어져서 슬픔으로 통곡하고 있음도 깨닫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고인에 대한 필자의 情意를 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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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28

    白南先生傳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金始鑌의 일생에 대하여 저자가 지은 傳記文이다. 선생의 字는 休伯, 본관은 咸寧이며 1804년(순조 4)에 태어나 1849년(헌종 15)에 사망하였으니 향년 46세였다. 孝愛가 있으며 총명하였고, 열아홉에 사마시와 別試文科에 합격하여 백성들을 구휼하고 농사에 힘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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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29

    白屋處士傳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지은 白屋處士 黃泗源의 傳記이다. 공의 字는 德淵, 본관은 昌原으로 8세 때에 고아가 되어 조부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어머니께서 이미 돌아가시자 과거 시험을 그만두고 문장과 역사를 즐겼으며 풍류가 넉넉하였다고 기록한다. 매우 가난하였지만 그것을 편안히 여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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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0

    嘯逸處士傳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嘯逸處士 金公에 대하여 저자가 기록한 전기이다. 처사 김공은 1758년(영조 34)에 태어나 1798년(정조 22)년 2월 13일 사망하였으니 향년 41세이다. 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덕이 높아 私謚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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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1

    烈婦金氏事蹟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열부인 김씨의 事蹟에 대하여 적은 글이다. 열부인 김씨는 進士인 顯奎 딸로 열여덟에 상주 선비 홍아무개에게 시집왔다. 1814년(순조 14) 윤2월 27일 21세의 나이로 남편이 사망하자, 김씨는 장례를 치른 뒤 독약을 먹고는 남편을 묻은 지 10일만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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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2

    嘉義大夫工曺參判晶山權公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고모부인 權載大에 대하여 적은 묘지명이다. 權載大는 1778년(정조 2)에 태어나 1859년(철종 10) 사망하였다. 나이가 18세인 1897년(정조 22)에 사도세자와 관련된 후손임으로 인하여 등용되었고, 사도세자에게 尊號를 올리도록 상소를 하다 섬으로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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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3

    聽梧堂權公壙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쓴 청오당 權垕의 壙誌이다. 字는 厚之, 自號는 聽梧堂, 본관은 安東으로 1602년(선조 35)에 태어나 1667년(현종 8)에 사망하니 향년 66세이다. 愚伏 鄭經世에게 배워 깊이 유가의 학문을 공부하였고, 1633년(인조 11)에 進士가 되었으며,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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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4

    一慵齋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지은 일용재 金時忱의 행장이다. 공의 字는 終卿, 본관은 豐山으로 1600년(선조 33)에 태어났고 1670년(현종 11)에 사망하였으니 71세이다. 1635년(인조 13)에 성균관에 올랐고 효렴으로 추천되어 冰庫別提를 제수 받았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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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5

    外大父竹軒黃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쓴 외대부인 죽헌공 黃最源의 행장이다. 공의 字는 樂善, 號는 竹軒이고, 본관은 昌原이며, 1775년(영조 51) 2월 5일 태어나 1819년(순조 19) 6월 10일 사망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천성이 뛰어나고 총명하고 슬기로워 일찍 공부에 성취가 있었고, 大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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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6

    副護軍順天金公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쓴 金履範의 행장이다. 金履範의 字는 一元, 본관은 順天으로 1742년(영조 18)에 태어나 1832년(순조 32) 5월 10일 사망하였으니 향년 91세이다. 어려서 아름다운 자질이 있었고 몸집도 훌륭하였으며, 기개와 도량이 높고 넓었다고 말한다. 제자서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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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7

    先考通訓大夫行成均館典籍府君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쓴 金相溫의 遺事이다. 공의 字는 友直, 본관은 豐山으로 1760년(영조 36) 5월 5일 태어나 1812년(순조 12) 5월 2일 사망하였으니 향년 53세이다. 20살에 族父인 長源에게 후사로 갔고, 1809년(순조 9)에 대과에 급제하여 承文院副正字,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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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8

    哭子述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가 아들(金重厚)을 잃고 지은 글이다. 나이 스물 둘에 낳아서(1805) 여든 한 살(1865)의 나이에 잃으니 아버지와 자식으로 산 것이 60년이 된다고 말한다. 열 살 남짓에 이미 나의 수고를 대신하였고 서른이 되지 않아 집안일을 전하였으며, 집이 가난하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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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39

    豐安君柳公謚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풍안공 柳相柞의 시호를 청하기 위해 자손인 縣監君 아무개가 家狀을 보여주며 김종휴에게 지어달라고 청하여 짓게 된 글이다. 공의 字는 爾敬, 諡號는 豐安, 본관은 豐山으로 1763년(영조 39)에 태어나 1838년(헌종 4) 8월 5일 사망하였는데, 豐昌公의 셋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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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0

    家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의 집안 내력과 행적을 손자인 縉欽이 적은 글이다. 공의 字는 聖浩, 號는 書巢, 본관은 풍산으로 1783년(정조 7) 9월 8일에 태어나서 1866년(고종 3) 정월 2일 사망하였으니 향년 84세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집안의 내력을 자세히 밝힌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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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1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저자의 손자인 縉欽의 부탁을 받고 李彚載가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집안의 내력과 생몰년에 관하여 자세히 밝히고, 남다른 자질로 열한 살에 경전과 제자백가를 능히 이해하였으며, 1822년(순조 22)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여러 번 추천하는 글이 들어갔지만 벼슬을 얻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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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2

    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휴
    甥姪인 柳道獻이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다. 집안의 내력과 생몰년에 대하여 적고, 평소 성품이 곧아서 남에게 아부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는 등 성품과 평소 행실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그리고 1855년(철종 6)에 景慕官의 전례와 관련하여 상소했던 글과 월천 선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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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3

    와은집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와은집(臥隱集) 臥隱張緯恒의 문집. 6卷 3冊. 木版本. 四周雙邊, 半郭 21.3×16.0㎝, 有界, 10行21字, 小字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31.5×16.0㎝. 1767년(영조 43)에 曾孫 成矩가 편집한 것을 1897년(광무 1)에 7대손 師厚가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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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4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冬夜吟(十四歲在浮石寺作),敬讀朱文公日用自警詩敢用其韻,伊院觀物堂月夜書懷, 讀圃隱先生集仍次先生題遁村詩卷韻,除夜吟, 煎花偶成, 野翁亭次板上韻, 開目寺次柳掌令(敬時)韻, 夢與二弟會映湖樓, 謁汚院次板上韻, 元晨吟, 黌齋次李季實(恒培)韻, 新巖會伏次退溪先生第二絶詩韻,病暑夜起次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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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雲谷雜詠(幷小序)(二十六詠),又次朱子雲谷雜詠十二首韻(幷序),雲浦九曲謹次朱夫子武夷櫂歌韻(幷小序), 覆次(幷序), 愚川之下亦有七曲仍用武夷七詠韻以記之,次柳君實所居石溪雜詠三絶及八詠韻(幷小序),春霖歎, 睡起, 閒坐漫吟, 聞雞曉起, 金國均(衡國)繼其先君子遊金剛山旣還送詩求和次韻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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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6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輓黃秀伯, 輓權丈(復衡)(二首), 輓趙固城(鳳徵),輓南察訪(夏明),輓朴進士質兼(文燁), 輓成參奉(文夏), 輓金休伯(始鑌), 輓權(賁衡), 輓四從叔(爾楷), 輓再從大父生員公(瑢), 輓朴丈(嗣基), 輓李丈(聖翊), 輓柳進士(宗林), 輓任察訪(華世),輓金丈(時一), 輓金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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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7

    松竹諭禮器(丁未東堂試製)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1727년(영조 3) 東堂試에 올린 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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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8

    河陰感二鳥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韓愈(768~824)의 「感二鳥賦」를 근거로 하여 지은 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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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49

    郁陽書院請額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郁陽書院의 賜額을 청하는 疏이다. 退溪 李滉을 主享으로 하고 錦溪 黃俊良을 從享으로 하는 욱양서원의 중요성과 그 역할을 강조하면서 사액을 청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50

    癸丑聯名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1733년(영조 9) 梅山 鄭重器(1685~1757)와 연명으로 올린 疏이다. 1728년(영조 4)에 발생했던 李麟佐의 난으로 嶺南人들이 의심을 받는 것과 관련하여 그 부당함을 상세하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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