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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18751

    代新寧士林爲花山權公請祠額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新寧의 士林들을 대신하여 花山 權柱(1457~1505)의 祠額을 청하는 疏이다. 漢‧唐‧宋 때에는 忠武祠‧忠烈廟‧英武祠 등이 있었고, 고려 때는 申崇謙의 ‘壯節之祠’가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李舜臣의 ‘忠愍之祠’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선비로 사당을 지으면 조정에서
    출처 : 유교넷
  • 318752

    答李丈(涑)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李涑에게 답한 편지이다. 아들이 소식을 전해오고, 스님이 시를 전해오니 펴서 채 반도 읽기 전에 놀라서 땀이 먼저 흐른다고 하면서 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53

    與宋意如(翼龍)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意如 宋翼龍에게 보낸 편지이다. 세상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수개월이 지나도록 함께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안부를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54

    答宋意如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에게 답한 편지이다. 추운 날씨에 왕래가 쉽지 않은데 생각지도 않았던 아드님의 방문을 받아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하면서 아들이 아직 어리고 옛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싫어하여 잠시 가르침을 받는 것에 대하여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길이 열리기를 기다려 다
    출처 : 유교넷
  • 318755

    答宋意如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에게 답한 편지이다. 스스로 몸조차 돌보지 못할 정도라고 상황을 전하면서 山陰에서 함께 작은 배를 탈 수 있는 날을 기약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56

    答宋意如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별한 뒤로 마음은 九笑臺에 머물고 있다고 전하면서 ‘危危’ 두 글자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지 않다고 그 病弊를 지적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57

    與宋意如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에게 보낸 편지이다. 봄이 되었어도 龍山에 기탁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전에 보내준 長篇을 오랫동안 헤아려 보았으나 서툴러서 결과가 없었다고 전하고 原韻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58

    答宋意如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전에 앓던 기침이 습한 기운을 만나 더욱 심해졌다고 전하면서 東遊하며 지은 글을 읽어보니 마치 關東 8백리 山水를 눈앞에 펼쳐놓은 것 같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59

    與宋意如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도 어느덧 花甲의 나이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평생의 意想이 어떠했는지를 반성하는 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0

    答金進士(燁)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進士 金燁에게 답한 편지이다. 스스로 寒士의 예라고 하면서 돌아가고자 하여도 돌아가지 못하며, 쇠약하고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기약하는 것도 두렵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1

    答柳丈(後甲)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柳後甲에게 답한 편지이다. 가을부터 舊證의 여러 가지 상태가 변하여 근심을 물리치기 어려웠다고 하면서 趙令의 은혜로 석방되어 다행이라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2

    與李大有(景翼)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大有 李景翼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 곳에서 서로 바라보고만 지낸 것이 벌써 2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從大父의 遺稿를 아직 수습하지 못하여 15일에 가까운 절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3

    答李大有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李景翼에게 답한 편지이다. 칩거하여 몸을 보존하고, 오직 조물주의 처분을 들을 뿐이라고 하면서 눈이 녹기 전에는 잠시 마음을 먹기가 어려우며, 봄까지 미루어도 火色이 어떨지 알 수가 없으니 서로 상의하여 도모하자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4

    與金掌令(人+政)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掌令 金(1670~1737)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麟佐의 난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집의 막내가 三從弟 直方과 함께 入城을 시도하였으나 천연두를 꺼려하여 그 뒤의 행적에 장애가 많으니 가르침을 달라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5

    與或人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或人에게 보낸 편지이다. 명이 내려와 돌아갈 기약이 있다니 누가 致賀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집의 동생을 보내어 대신 축하를 전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66

    答金(瑞龜)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金瑞龜에게 답한 편지이다. 7월 20일과 23일 연이어 두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지난달 成服을 행하고 이제 葬地가 정해진 내용을 전하는 글이 처량하기 그지없다고 하면서 장례를 행함에 薄하고 厚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67

    答權丈(復衡)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權復衡에게 답한 편지이다. 반년 동안이나 분주하게 다니다가 어제서야 비로소 집에 이르렀으나 仲弟가 멀리 宣城에서 瘡疾에 걸리고, 본가의 弟婦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전후 사정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8

    與三從弟(緯樞)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三從弟 緯樞에게 보낸 편지이다. 疏本을 이틀 동안이나 자세히 살피고는 이를 버리고 달리 撰하려고 하였으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대략 가감하여 스스로 결말을 지었다고 하면서 사실 草略한 것 같고 이처럼 간단하여 어떨지 모르겠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69

    寄家兒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집안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너와 헤어진 것이 이미 10일이 지나 염려스러움을 형용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초이틀에 入都하였으나 忌患이 심하여 城外에 머물고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어려움이 있으면 뒷마을 僉從의 지시를 따르고, 노비들은 잘 위로하며, 너도 이제 장성
    출처 : 유교넷
  • 318770

    寄家兒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집안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별한 지가 이미 수십일이 지났는데 그간 별고가 없었느냐고 전하면서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 말이 많아서는 안 되고 소리가 높아서도 안 되며, 오직 엄함과 조화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큰일이 있으면 仲父에게 고하고, 공부에 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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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71

    寄家兒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집안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늘이 元日이니 가족과 헤어져 만나지 못한 것이 이미 1년이 넘었다고 하면서 올해는 과거가 있는 해인데 너는 어떤 소망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너의 叔父가 먼 곳에 있어서 배움을 구할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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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72

    寄家兒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집안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수개월 동안 고향의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하면서 네가 비록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의지가 굳다면 감당해 내지 못할 바가 없다고 하고, 飢寒의 고초가 심하더라도 마음을 굳건히 하라고 전하고 있다. 아울러 올 봄부터 이미 돌아가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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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73

    讀書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理致는 스스로 밝게 되지 않고 知識은 스스로 이르는 것이 아니니 지식을 이르게 하고 이치를 밝게 하는 것은 독서뿐이라고 하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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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74

    守口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마음으로부터 말이 만들어지고, 말은 입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면서 함부로 입을 열어 가볍게 토로해 버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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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75

    防意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마음은 본래 虛明한 것이니 드러나야만 비로소 뜻이 된다고 하면서 뜻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76

    安分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본분은 命으로 정해진 것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분수를 지키라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77

    寢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一身도 乾坤으로 열릴 때와 덮일 때가 있으니 깨끗하고 맑은 밤의 기운으로 새로운 기운을 길러 밤낮으로 부지런히 노력하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78

    食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음식은 온몸을 기르는 중요한 일로 그 바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배부르게 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79

    步履箴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걸음걸이는 각자 矩度가 있는 것이라고 전하면서 걸음걸이를 편안하고 침착하게 하되 그침이 없게 하라고 경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80

    衾席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하늘은 나의 몸을 덮어주는 이불이요, 땅은 내가 등을 붙일 수 있는 자리라고 하면서 덮을 것과 자리는 존중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81

    忠義衛花山權公壽席題名錄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1702년(숙종 28) 花山 權柱의 80세 壽宴에 네 명의 아들이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한 사람들이 이름을 적어 ‘壽宴會客錄’이라 하였는데, 1724년(경종 4) 이 기록을 후대에 전하고자 序文을 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82

    德山宋氏世系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德山宋氏世系」를 정리하고 지은 序文이다. 淸德과 直節로 잘 알려진 집안이지만 族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郡誌와 선조들의 墓碣 등을 근거로 집안의 세계를 정리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83

    養老宴記(代人作)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榮川의 관리로 있던 李莅가 邑民인 張晩棫으로 하여금 養老宴을 열도록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723년(경종 3)에 지은 記文이다. 70이 넘은 士大夫 33명과 80이 넘은 庶民 남녀 38명 등 모두 71명이 모였다고 하면서 양로연의 의미와 상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84

    追遠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같은 고향 친구인 宋爾健이 조상들을 모신 追遠堂에서 10월 上旬에 자손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올리고 조상들의 덕을 기리고자 하는 뜻을 전하면서 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85

    鄕校明倫堂重修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榮州鄕校를 重修하고 지은 記文이다. 先王이 학교를 세우고 백성을 가르치고자 한 목적은 五倫에 있었으며, 가르침을 세우고자 하는 곳에는 明倫堂이 없는 곳이 없다고 전하면서 生員 金燁과 悠然堂 金大賢의 5대손 瑞肩 등이 참여한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86

    南澗書堂移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南澗書堂을 移建하고 楡巖 裵幼章의 從孫인 星大의 청으로 지은 記文이다. 배유장의 남간서당 기문을 언급하면서 본래의 자리가 적합하지 않아서 이건을 하기로 결정하고, 1731년(영조 7)에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며, 남간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명칭은 고치지 않았다고
    출처 : 유교넷
  • 318787

    臥雲幽居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1743년(영조 19) 臥雲幽居를 마련하고 지은 記文이다. 1734년(영조 10) 겨울에 벼슬을 버리고 돌아온 뒤에 雲谷에 거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고, 朱熹가 지은 「雲谷記」의 뜻을 취했다고 밝히면서 그 위치가 小白山과 太白山의 줄기가 이어져 내려오다가 만나는 곳이라
    출처 : 유교넷
  • 318788

    避炎亭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李希音(1579~1641)이 세웠다고 하는 영주시 장수면 葛山里의 避炎亭 記文으로 曾孫인 端翊이 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여름의 더위뿐만 아니라 세상의 열기를 시키고자 하는 뜻이 있고, 피하고자 하는 것은 이름과 세상은 물론 不義한 富貴라고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89

    觀水堂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친구인 子良 金某가 지은 觀水堂의 記文이다. 건물을 옮겨 지으면서 청하여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옛 건물을 철거하면서 대들보에 새겨진 ‘觀水堂’이라는 세 글자를 보았다고 하였으며, 당호를 지어준 것이 오래되었다고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90

    書節孝潘公行蹟後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圃隱 鄭夢周의 文集인 『圃隱集』의 序文을 기록한 門生 朴信이 선생의 文章과 道德을 존숭하였을 뿐만 아니라 孝子라고 칭하고 居喪에도 도리를 다했다는 내용을 전하였다고 하였으며, 潘公도 마찬가지로 효를 다했다고 하면서 후손인 欽이 청하여 박신의 서문을 참고하여 지었다고
    출처 : 유교넷
  • 318791

    涕淚帖後書感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1592년(선조 25) 왜구가 침략을 했을 때 여러 장수들과 釜山鎭城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副司猛 李廷憲과 관련된 涕淚帖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4장의 종이로 이루어졌으며, 첫째 장과 둘째 장은 공이 남긴 手墨이고, 셋째 장과 넷째 장은 祭文과 事蹟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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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92

    伊山書院題名錄跋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栢巖 金玏(1540~1616)이 萬曆 연간에 天子로부터 하사받은 『大學衍義』를 6대손인 弘運이 임금에게 보인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伊山書院에서 강론한 뒤에 書名에 대하여 뒤에 고증할 수 있도록 이 글을 남긴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793

    題漫然軒入刻後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漫然軒은 汝益 曹友仁이 護軍을 지낸 曾祖 張龍慶에게 써서 보내준 것이라고 하면서 조우인의 증손인 漢功이 종이가 오래되고 오염되어 오래도록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나무에 새겨서 거처에 걸어두고 청하여 1738년(영조 14)에 지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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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94

    九容衍義(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 등 君子의 九容은 德을 기르는 절목으로 王者의 禮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각각의 내용에 대하여 단락을 나누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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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95

    慈仁境內告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학문을 振作시키기 위하여 慈仁 境內의 여러 선비들에게 孔‧孟‧程‧朱의 글 등을 위주로 하여 근면하게 노력할 것을 알리고, 講과 製를 권유하고자 하는 告諭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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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96

    爲副司猛李公(廷憲)呈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副司猛 李廷憲이 壬辰倭亂 때에 여러 장수들과 釜山鎭城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하였으나 조정의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고 전하면서 남긴 書簡과 祭文은 물론 당시 釜山 僉使 鄭橃의 종이 목격한 사실 등을 언급하고 명부에 수록해 줄 것을 청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18797

    鄕校明倫堂重修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榮州鄕校의 明倫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梁文이다. 重修記에 관련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798

    山泉書堂改建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吳澐(1540~1617)이 건립한 山泉書堂을 改建하고 올린 上梁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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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799

    新方山金氏齋舍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新方山 金氏齋舍를 지은 뒤에 올린 上梁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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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8800

    晩對亭重建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福源(1544~1604)이 지은 晩對亭을 重建하고 올린 上梁文이다. 吳澐이 ‘翠屛宜晩對’라는 杜甫의 「白帝城樓」 시구에서 이름을 취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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