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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18801

    栗園建祠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栗園 李珙(1533~1612)의 祠堂을 건립하고 올린 上梁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02

    金鶴山祈雨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金鶴山 祈雨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03

    賢聖山祈雨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賢聖山 祈雨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04

    縣衙逐邪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縣衙의 邪惡함을 몰아내기 위해 지은 글이다. 縣은 왕의 땅이고, 縣官은 왕의 명으로 다스리는 곳이라고 하면서 왕의 명으로 잘 다스려지게 되면, 그 땅이 지켜지고 그 백성들에게 주인이 있음으로 인하여 왕의 명을 우러러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805

    龍江開渠時祭土神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龍江에 渠를 만들면서 土地神에게 올린 祭文이다. 농사의 근본이 되는 토지를 옥토로 가꾸기 위하여 水利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06

    廣川精舍潘節孝太西庵宋梅圃三賢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廣川精舍에 節孝 潘儒‧西庵 太斗南‧梅圃 宋某 등 세 분을 모시고 올린 奉安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07

    潘節孝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節孝 潘儒에게 올리는 祝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08

    太西庵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西庵 太斗南에게 올리는 祝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09

    宋梅圃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梅圃 宋某에게 올리는 祝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0

    寶城을 지낸 文淑器와 典籍을 역임한 文孫貫 등 두 분의 墳墓 開封 때에 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告辭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1

    封植後祭告文(代本孫作)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本孫을 대신하여 封植 후에 지은 祭告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2

    祭再從大父錦江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再從大父 錦江 先生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3

    祭柳處士(後甲)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處士 柳後甲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4

    祭全丈(柱國)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全柱國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5

    祭丁丈(道敏)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丁道敏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6

    祭再從大父生員公(瑢)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再從大父 生員 瑢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7

    祭再從叔父晩修菴(世相)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再從叔父 晩修菴 世相(1655~1727)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8

    祭權景瞻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權景瞻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19

    祭金(瑞龜)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金瑞龜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0

    祭從叔石門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從叔 石門公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1

    祭李秀伯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李秀伯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2

    祭三從弟休應(直方)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三從弟 直方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3

    祭洪(道益)文(代人作)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洪道益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4

    祭李(基晩)文(代人作)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李基晩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5

    七代祖校理公碑陰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七代祖 校理公 張孟羽(1470~1511)의 碑陰記이다. 자는 翼之이며, 고려시대 集賢殿 直提學을 지낸 桂之의 후손이다. 曾祖는 天敘이고, 祖父는 安良이며, 부친은 末孫이다. 어머니는 安東權氏 永愼의 딸이다. 1470년(성종 1) 5월 11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
    출처 : 유교넷
  • 318826

    先考處士府君行錄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先考 處士 張玉相(1654~1707)의 行錄이다. 자는 鉉叔이며, 고려시대 集賢殿 直提學을 지낸 桂之의 후손이다. 曾祖는 汝華이고, 祖父는 龍慶이며, 부친은 璉이다. 어머니는 安東權氏 黝의 딸이다. 어머니 안동권씨가 姙娠 8개월 만에 놀라 넘어진 다음날인 1654년(
    출처 : 유교넷
  • 318827

    從叔父成均生員晩修菴張公自製碣文後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從叔父 成均生員 晩修菴 張世相(1655~1727)이 스스로 지은 碣文의 後敘이다. 공은 일찍이 병이 얻어 이 갈문을 써서 11년 동안이나 상자에 넣어두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828

    自製墓碣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저자가 스스로 지은 碣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29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淸臺 權相一(1679~1759)이 쓴 行狀이 실려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30

    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訥隱 李光庭(1552~1627)이 撰한 墓碣이 실려 있다. 내용은 行狀과 유사하다
    출처 : 유교넷
  • 318831

    考終錄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長子인 泰翰이 기록한 考終錄이다
    출처 : 유교넷
  • 318832

    修道菴說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李涑이 修道菴이라 이름하고 지은 글이다. 榮州의 남쪽과 金雞의 북쪽에 있으며, 친구인 張君의 무덤이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8833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權相一, 李光庭, 李景翼, 鄭重器, 金燁, 金墀, 金衡國, 金埅, 宋翼龍, 李象辰, 宋儒挺, 趙元益, 李齊華, 李義兼, 李齊寔, 李興慶, 金偉烈, 鄭權, 李世泰, 趙鎭泰, 李世師, 金浹, 金行秋, 宋最基 등이 쓴 輓詞가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34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宋翼龍, 李震文, 李台晩, 金柱震, 弟 緯邦, 三從弟 緯仁, 再從姪 泰立, 金瑞重, 外甥 宋運光 등이 쓴 祭文이 수록되어 있다. 본래 17쪽이어야 되지만, 16쪽이 두 번 중복되었다. 내용에는 出入이 없다
    출처 : 유교넷
  • 31883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逸圃 朴時源(1764~1842)이 쓴 발문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36

    書臥隱先生張公文集後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西山 金興洛(1827~1899)이 쓴 後文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37

    後識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항
    睡山 金輝轍(1842~1903)이 쓴 後識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38

    용강집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용강집(龍岡集) 龍岡 黃壽一의 시문집. 4卷 2冊. 木活字本. 半葉匡郭,23.0×15.7㎝, 四周單邊, 有界, 10行21字, 註雙行, 上下花紋魚尾, 31.5×20.3㎝. 頤齋 權璉夏의 跋文에 의하면 『龍岡集』은 外孫 南龍燮(1734~1817)이 散佚되어 있던 황수
    출처 : 유교넷
  • 31883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躑躅, 卽景(二首), 謹次魚洲丈人全(五倫)口占韻, 草菴寺會話(權叔胤錫黃金瑞雨), 次金汝修(命錫), 和金鳴于(世鏞), 贈李台老(邦彦), 贈金德三(尙鼎)二首, 贈別鄭豊基聖功(思愼), 葛庵李先生輓, 愚潭丁先生輓, 輓荷塘權公(斗寅), 輓張錦江(璶), 輓金適庵(台重), 輓申淸
    출처 : 유교넷
  • 318840

    上葛庵李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葛庵 李玄逸(1627∼1704)에게 올린 편지이다. 이현일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연이은 우환 때문에 하루도 편안하게 지내지 못했음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봄에 여러 차례 召命을 받아서 죽령고개를 넘어 疏를 전달하고 돌아왔다는 것도 편벽한 곳에 살다가 보니 제대로
    출처 : 유교넷
  • 31884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제주도로 유배간 뒤 한통의 편지도 전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자신은 최근 들어서 겨우 우환을 면하였고, 先人의 弊廬가 오래되어 봄에 새로 지을 계획임을 알리고 있다. 또 이현일이 남쪽으로 떠난 뒤로는 忠言하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나약하고 게으른 병을 치료할 사람
    출처 : 유교넷
  • 31884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안부인사와 함께 별다른 우환은 없지만, 지난날 이현일을 모셨던 생각 때문에 독서에 집중할 수 없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人心道心의 설에 대해서 언급해 준 것은 朱子의 뜻과 어긋남을 전하면서, 人心道心에 관해서 언급한 여러 가지 설들을 증빙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43

    答上愚潭先生(169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愚潭 丁時翰(1625~1707)에게 답한 편지이다. 人心道心과 四端七情에 관한 의혹을 풀어주니 마치 물이 들어와 배가 뜰 수 있는 것에 비유하면서 丁時翰을 ‘退溪의 忠臣’이라고 일컫고 있다. 그러면서 한두 군데 의심나는 대목을 별지에 기록하였음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44

    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性은 理氣가 합쳐서 된 것”이라는 정시한의 말에 대해서 황수일은, “성은 한마디로 개론할 수 없으며, 天地의 性도 있고, 氣質의 性도 있는데, ‘天地의 性은 理를 주로 하여 말한 것으로, 이때의 性은 氣의 상대적인 性이고, 氣質의 性은 理가 氣와 섞여 있다는 말이니
    출처 : 유교넷
  • 318845

    上李翊贊先生(169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翊贊 李先生에게 올린 편지이다. 庸劣한 자질에 晩學이고, 궁벽한 곳에 살다가 보니 견문도 적으며, 나이는 많지만 공부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음을 전하면서,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가서 배워야 하는데, 가까이 살면서도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46

    答李幼材(栽)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密庵 李栽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喪禮備要』에 실려 있는 ‘向左向右의 說’은 矛盾되며 이는 沙溪 金長生이 『朱子大全』과 『性理大全』의 補註에서 인용한 것뿐인데, 이는 사계의 잘못이 아니라 인쇄하는 사람이 좌우를 바꾸어서 그렇게 된 것임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47

    答權正言(斗經,17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權斗經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갈암 이현일의 문집을 교정함에 있어 密庵 李栽와 함께 치밀하고 꼼꼼히 讎校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신이 검토한 결과 자신과 주고받은 편지글도 수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이 넘고, 마땅히 수록해야 될 것도 수록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밀암 이재와
    출처 : 유교넷
  • 318848

    與金修撰(世欽,170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金世欽(1649∼1721)에게 보낸 편지이다. 왕명을 받고 豊基를 지나갈 때 찾아보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멀리 興陽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을 위로하면서 풍토병에 걸리지 말고 건강을 유지하라는 당부의 말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18849

    答三溪書院會中(17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三溪書院 會中에 답장한 편지이다. 갈암 이현일의 신원을 회복하는 상소를 청성서원에 모여 거행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임에 참석하려고 했으나 감기에 걸려 5, 6일을 조리하고 있는데, 만약 가지 못하면 모든 일을 삼계회원의 회원들이 잘 알아서 처리해 달라는
    출처 : 유교넷
  • 318850

    答金振伯(聖鐸,170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수일
    金聖鐸(1684~1747)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봄에 전염병이 돌아 다른 곳에 피신해 있기 때문에 공부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음을 전하면서, 지긋한 장마도 그치고 가을로 접어들었는데도 志士들이 전염병에 더 걸려 죽게 되었으니, 언제 전염병이 수그러들지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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