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19001

    請柳命賢出仕啓(11月)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정언 류명천을 체직하고 집의 류명현을 출사하도록 명을 내려달라고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02

    體而不正說을 내세워 服制를 어지럽힌 故 參贊 宋浚吉의 爵號를 추탈할 것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03

    避嫌啓(行大司憲時,12月)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은산현감 정동룡을 削版하라고 계문이 올라가 윤허를 받았으나 자신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避嫌을 위하여 자신도 삭직해 줄 것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04

    雲谷書院配享事儒疏回啓(禮曹判書時)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충주 운곡서원에 한강 정구를 배향하고자 하는 유소가 올라왔으므로 임금의 판단을 요청한 계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05

    陳御藥防納弊上監司狀(任禮安時,1631)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최근 약재를 의관으로 하여금 방납하게 한다는 소문이 일도에 파다한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예안의 경우 웅담은 해마다 순영에 납부하나 內局에서 퇴짜를 놓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의약의 경우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의관에 달려있는 것은 아닌데
    출처 : 유교넷
  • 319006

    辭公州牧使狀(1641) 2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관찰사에게 올린 것으로 元持平이 상경할 당시 제대로 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향소‧공형이 치죄를 당하였으므로 목사도 같이 체직되기를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07

    辭公州牧使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관찰사에게 올린 것으로 자신은 공주와 같은 거진을 다스릴 수 있는 재목이 되지 못하므로 파직을 아뢰어줄 것을 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08

    辭高城郡守狀(1670) 2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나이도 66세로 노년에 달했고 건강도 좋지 못하므로 계문을 올려 사직할 수 있도록 처치해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09

    虎豹皮는 비록 供用之需이나 그 贖木을 민간에 징수하는 것은 백성들이 당하는 해를 없애고자한 것이었다. 그러나 1670‧1671년의 대흉년으로 인하여 민생이 어렵고, 금년의 산역으로 말미암아 잡물이 추가된 것이 많은데 다시 虎贖木을 징수하면 백성들이 살아가기 어려우니
    출처 : 유교넷
  • 319010

    稽古堂記 2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예부터 뜻이 있는 선비들은 옛 것을 존숭하였으니 맹자가 그러하고 한유가 그러하였다. 나는 稽古로 나의 당명을 삼았으니 내가 고시에 태어나지 않았으며, 고인을 친히 보지 못하여 책을 보고 상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책을 쌓아 놓고 찾아보고 즐기고자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11

    附稽古堂記跋(杜谷公著) 32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형인 홍우정이 「계고당기」를 보고 쓴 발문이다. 稽古의 뜻을 풀이하고 독서와 수양의 집으로 삼고자 한 것을 칭찬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12

    木根枕說 3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농부가 뽑아 버린 나무뿌리로 베개를 만들고 우연히 자기의 손에 들어왔으나 베개로 된 것은 어떤 물건이든 버려지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하고, 선비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버려진 물건으로 두나 명군을 만나 쓰이게 되면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이니 어찌 길가에 버려진 나무가 되
    출처 : 유교넷
  • 319013

    角說 3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뿔에 대하여 언급한 논설이다. 금수의 성질은 날개가 있는 것은 반드시 두 발이 있고, 이빨이 있는 것은 뿔이 없는 것이라고 하고, 이빨은 씹기 위한 것이고, 뿔은 부딪히기 위한 것으로 말과 고양이에 뿔이 있는 것은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니 상서로운 것이 아니고 괴이한
    출처 : 유교넷
  • 319014

    老馬說 3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늙은 말을 처분하고자 할 때의 주인과 말의 대화에 가탁하여 군신간의 의리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15

    白黑難 3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흑과 백의 대화를 통하여 세태를 풍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16

    藥契序 42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兪之才‧慶元老 등이 약계의 서문을 청하자 쓴 것이다. 약은 炎帝가 百草를 맛보아 만든 것이니 생민을 구제하는 듯이 깊은 것이다 라고 하고 두 사람이 동지 50인을 모아 약계를 결성하니 仁人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17

    인경왕후 김씨에게 옥책과 寶章을 내린다는 내용이다. 인경왕후 김씨는 김만기의 딸로 숙종의 첫째 왕비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18

    祈雨祭文(任公州時) 4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공주목사로 재임할 당시의 기우제문이다. 가뭄이 심하여 백성들이 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비를 내려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19

    동해용왕에게 올린 기우제문으로 비를 내려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20

    祭雀峴神堂文 4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아우 宇亮을 雀峴에 장사지내면서 올린 산신제문이다. 1668년(현종 9)의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21

    視民如傷說 47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환자를 돌보듯이 백성을 돌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22

    答龍洲趙判樞日章(絅)書(1661) 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邸報를 받아보고 시세를 개탄하였으며, 자신은 妻, 사위 및 외손녀를 잇달아 잃었다고 하였으며, 선조의 문자를 모아 정본을 만들었으니 보낸다고 하였다. 선조의 문자는 홍가신의 󰡔만전집󰡕이다. 조경은 홍가신의 신도비를 썼다.
    출처 : 유교넷
  • 319023

    答眉叟許相國文父(穆)書(1679) 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고향으로 내려온 후 허목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한 것이다. 지난번의 상소는 자신의 충정을 올린 것으로 호기 天心의 한 번 깨우침을 기대한 것이나 도리어 음사한 무리들의 모함에 빠졌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24

    與某人書別錄 2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외증조의 贈諡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퇴계 이황의 증시과정을 길게 언급하였다. 자신의 외조부의 贈諡문제에 대하여 수급자의 뜻은 어떠한가를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19025

    答李鍾城國賓(觀徵)書(1670) 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종성부사 이관징의 편지를 받고 답한 것이다. 吉應 令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였고 상사 朴賮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26

    答鄭羅州子皮(之虎)書(1651) 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정지호에게 보낸 서한으로 몸이 좋지 않아 사직하였음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27

    答趙應敎(威鳳)書(1670) 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부친상 중인 조위봉에게 보낸 서한으로 선대인의 遺事는 미수 허목에게 부탁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28

    與安方伯(縝)(任高城時,1672) 5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강원도관찰사 안진에게 보낸 편지로 첫째 딸과 셋째 딸이 산중에 죽었고, 지금 안동에서 데려온 딸 또한 산달이 멀지 않아 안성 집으로 보내놓았는데 지금 구호할 사람이 없으니 사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29

    答安方伯書 7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이미 관직에 오른 지 40년이 넘었고 나이가 많아 郡事를 다스리기 힘드니 사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19030

    答鄭進士子脩(時羽)書(1652) 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정시우에게 보낸 서한으로 자신과 집안의 병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1

    答鄭子脩書(1670) 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장사는 잘 지냈는지 묻고 부조로 木 2疋을 보낸다고 하였다. 또한 정시우의 집 농사도 금년은 잘 되지 않았다고 하고 자신의 경우 2년 동안 喪事가 끊이지 않았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2

    答鄭子脩書(1671) 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3월 보름 전에 한번 왕림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3

    與鄭子脩書 10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흉년이 심하다고 하고 언제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19034

    答鄭子脩書(1671) 10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흉년이 심하다고 하고 집의 농사는 어떠한지를 물었다. 지난 달 화적들이 금강산 신계초암에 들어가 인명을 살해한 것이 많으니 이는 이전에 없는 변고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5

    答鄭子脩書(1673)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율시 2편을 받고 답한 것이다. 李選의 상소에 대해 언급하면서 과격하다고 하고 자신은 이미 사직 보장을 보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6

    與鄭子脩書(1673) 12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흉년이 극심함을 전하고 이웃 읍의 조보를 빌려 보니 천재와 시변이 괴이한 일들이 겹겹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7

    答鄭子脩書(1676)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乳腫에는 水鐵酒가 가장 좋은 약이라고 추천하고, 경연에 들어갔으나 기력이 딸림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8

    答韓執義仲澄()書(1664)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가노가 征役의 일로 상경함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39

    與韓仲澄書(1669)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자신이 서울에 갔을 때 한기는 강화도로 가서 만나지 못하였음을 아쉬워하고 중형은 장수의 수령으로 나가 평판이 좋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0

    答韓仲澄書(1670)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동래에 부임해서 6개월이 되었으나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고 하였다. 고인이 나이 70이 되면 치사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옳은 말로 여름에 사직하고 귀향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1

    與韓仲澄書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과거에 아들들이 합격하였는가를 묻고, 가을에 사직하고 귀향하고자 하였는데 이루지 못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2

    與韓仲澄書(1671)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흉년과 癘疫이 극심하여 경내의 백성들이 죽는 자가 많다고 하였고, 죽은 딸의 練日에 참석하고자 순영으로부터 수유를 받았으나 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3

    答韓仲澄書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흉년이 자심함을 전하고 자신은 海邑의 수령으로 있어 비록 읍이 적으나 약간의 봉급이 나와 급한 것을 메울 수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4

    答韓仲澄書(1671)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전염병이 돌고 있음을 말하고 금년 또한 흉년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5

    與韓僉正(墍)‧執義()昆季書(1671)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한기의 처의 병은 나았는가 묻고, 鍾城府使 이관징의 편지를 받았음을 전하였다. 저보를 보니 남중의 수령 년한이 다한 자들을 몇 명 보고하였다고 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사직 장계를 올렸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6

    與韓僉正‧執義昆季書(1672)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누이의 상을 당하였음을 전하고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감사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7

    與韓仲澄書(1674)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한기의 아들의 병세를 물었다. 자신도 66세의 나이라 山陵役 전에 사직하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또한 중원의 兵事(오삼계의 반란)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달라고 하고 嶺伯에게 보내는 답서는 즉시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8

    答韓仲澄書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한기의 동생의 병세를 묻고 한기의 형 韓墍의 근황을 전하였다. 또한 이전에 洪川에 복거하려 했는데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중씨(韓墍)가 이전에 살던 곳을 빌려 살고 싶은데 어떨 지 알려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49

    與韓仲澄書(1675)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이 달 초에 누이가 죽었음을 말하고 지금 시세가 급박하니 인재는 동서를 가리지 말고 쓸 만한 사람은 선발하여야 한다고 하고, 자신은 일전에 감당하기 어려운 은명을 입었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또한 허목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해 주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19050

    答韓仲澄書(1677)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원
    자신은 사직소를 올렸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고 소식을 전하고, 낙향하여 소요하는 한기에게 출사를 권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