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19101
上鄭箕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큰 아들을 잃은 정민병이 둘째 아들마저 잃은 일에 대해 위로를 전하는 편지이다. “닥쳐오는 氣數는 人力으로 바꿀 수 없다.”면서, 이를 대범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평소의 수양 때문일 것이라며 위안하고 있다. 견디기 힘들겠지만 부디 몸을 크게 상하지 않도록 당출처 : 유교넷 -
319102
上鄭箕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벼슬을 제수받게 된 정민병에게 축하를 보내는 편지이다. 이 일은 축하할 일일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공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는 저자의 견해가 담겨 있다. 또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 것과 도성으로 간 자제들이 벼슬이나 얻어출처 : 유교넷 -
319103
與李金溝丈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서울에서 돌아온 집안 사람들이 칭송했던 金溝 李源長이 저자의 안부를 물어온 데 대한 감사의 편지이다. 여러 해 전에 내직에서 외직으로 옮긴 후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재미가 어떠냐고 물으면서,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관직에 나가는 꿈을 접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편지에출처 : 유교넷 -
319104
與李始能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始能 李敦禹(1807∼1884)에게 祖考의 행적에 대한 글을 지어달라고 보낸 청탁의 편지이다. 저자는 세월과 함께 묻힐 조고의 유적을 글로 남겨준다면 후손으로서 더없이 다행일 것이라고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19105
答李始能 1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묘지명과 행적에 대한 글을 지어준 이돈우에게 감사를 표한 답신이다. 이 편지에 따르면, 저자는 이 글들을 받아 손을 씻고 세 번을 반복해 읽으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의 동생이 그곳의 경관과 풍치가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따뜻한 봄이 되면 한 번출처 : 유교넷 -
319106
答李叙可 1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억울하게 형벌을 받게 된 李叙可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이다. 군자는 역경을 당하게 되면 순순히 받아들이기 때문에 저자가 따로 이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번 일이 실상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일소에 붙일 날이출처 : 유교넷 -
319107
與鄭兪善(久愚) 16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맏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러 喪期를 마치게 되었지만, 자식을 잃은 아픔에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있을 兪善 鄭久愚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이다. 저자는 평소 자신과의 정의를 생각하면 당연히 달려갔어야 하지만 집안의 여러 일들이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병환출처 : 유교넷 -
319108
與金文一 1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아들을 원통하게 잃은 文一 金斗欽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이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어떻게 대대로 음덕을 쌓은 집안에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느냐고 한탄하면서, 순리대로 역경을 헤쳐 나가라고 위로한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 위로해야 마땅하지만출처 : 유교넷 -
319109
答姜曰成 1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曠士 姜曰成에게 답신한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강왈성이 ‘자연을 벗 삼아 살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저자는 “暮年에 산 한 구렁을 차지한다.”[暮年專一壑]는 王安石의 시를 인용하면서 ‘金谷을 자부하는 것이 혹시 왕안석을 숭상하는 것이냐.’며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또출처 : 유교넷 -
319110
答姜曰成 18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강왈성과의 논쟁을 담은 편지이다. 강왈성이 지난 편지에서 저자의 견해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였고, 이것에 대해 저자가 다시 의견을 개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옛 길을 따르는 것이 싫다고 정당한 길을 버리고 샛길을 찾을 수는 없다.’는 논리를 제시한출처 : 유교넷 -
319111
與姜曰成 19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강왈성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는 편지이다. 봄빛으로 산들이 물들어가는 계절에 저자는 문득 3년 전 評花樓에서 국화꽃을 띄워 술을 마시던 생각이 난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한다. 이 편지에 따르면, 그동안 저자는 여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슬픔에출처 : 유교넷 -
319112
答姜曰成 2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강왈성에게 보낸 편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일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있다. 편지에 따르면, 지난 봄·여름에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들을 보내느라 격식을 차릴 겨를이 없었으며, 지난번 금강산 유람 가자던 약속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출처 : 유교넷 -
319113
與姜曰成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강왈성에게 생긴 불행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 따르면 지난겨울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들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저자는 들었다. 그러나 또다시 강왈성이 아프다는 편지를 받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것이 모두 가슴 속에 쌓인 울화가출처 : 유교넷 -
319114
答柳揆老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낙담해 있는 柳揆老를 격려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젊었을 때 文章에 심취했던 이력과 과거공부에 매몰되어 있었던 경험을 술회한다. 그리고 류규노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유학자로서의 본분을 지켜나간다면 분명 큰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고 있다. 이출처 : 유교넷 -
319115
答柳揆老 2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시를 지어 보내준 류규노에게 감사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500언에 달하는 류규노의 시들을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읊어본다고 말하며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엔 눈과 달이 모두 세상을 깨끗하게 하니 詩想이 더욱 많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시를 주고출처 : 유교넷 -
319116
與姜啓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啓宇 姜胥永에게 가을 단풍구경을 청하는 편지이다. 봉래산(금강산)을 가지 못하지만 대신 역내의 명승지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면서, 늦가을의 단풍잎이 시들기 전에 北山부터 俗離山까지 단풍놀이를 떠나자고 청한다.출처 : 유교넷 -
319117
與金由用(驥雲) 2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오랜 벗이었던 由用 金驥雲에게 ‘명나라에 대한 존숭 의리’[崇明]를 권고하는 편지이다. ‘옛날 橋門에서 놀던 때가 아득하다.’고 회상하는 저자는, 패기가 충만했던 젊은 시절 서로 모임을 가졌던 벗들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김기운뿐이라며 벗에 대한 마음을 전한다출처 : 유교넷 -
319118
與柳夏亨(進瑀) 2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夏亨 柳進瑀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류진우는 지난 해 여름 저자와 함께 하룻밤을 묵으며 이야기를 나눈 인연이 있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긴 여름을 힘들게 보내고 가을이 되어서야 뜻을 내어 퇴계 선생의 글을 읽고 있다면서, 간혹 이것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싶어도 류진출처 : 유교넷 -
319119
答柳夏亨 2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류진우에게 鳳笙亭이 낙성될 때 만나자고 청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簡墨에 취미를 붙이고 있으며, 산수유람은 그때는 좋지만 지나면 그만이라면서 사람이 늙으면 모두 그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19120
答柳舜亨 26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舜亨 柳進徽의 시에 화답시를 담아 보낸 편지이다. 나이가 들어서 하는 이별은 힘겹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서 저자는 정든 사람들의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책을 통해 그 시기를 인내한다고 말한다. 다만 총명함이 예전만 못해서 글을 읽어도 몸과 마음에 도움이출처 : 유교넷 -
319121
與李仲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李仲文에게 서평과 함께 우의를 권하는 내용을 담아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서로 講磨하는 친구의 도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형식미만 추구하는 문장(偶儷)만을 추구하느라 古文이 망실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아울러 전에출처 : 유교넷 -
319122
與李家述(晩孫) 28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家述 李晩孫의 부친상에 가지 못한 사정을 적어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지난 번 헤어진 이후로 너무 왕래가 없었음을 말하고, 거리가 멀다지만 옛 사람들이 천리를 떨어져서도 소식을 전하던 것에 비하면 부끄럽다고 말한다. 늙어가면서 정신은 혼미해지고 눈은 멀어출처 : 유교넷 -
319123
答任容叔 28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容叔 任圭直(1811~1853)에게 문장에 대한 견해를 적어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임규직으로부터 전해온 시를 소중히 외우고 있다며 감사를 전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당면한 임규직의 어려움은 한때 지나가는 시련일 것이라며 위로하고 있다. 이어서 저자는 문장에 있출처 : 유교넷 -
319124
與洪箕範 29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箕範 洪殷標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지난 3개월 간의 근심스러운 상황은 강건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일들인데 하물며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야 더하지 않았겠느냐며 걱정을 표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매미소리가 서늘함을 전하고 있으니출처 : 유교넷 -
319125
與姜孝思 3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학문을 빨리 이루려고 하는[速化之述] 謙山 姜孝思를 경계하고자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성패는 물론 완급도 모두 하늘(宰物者)의 소관인데 어찌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힘으로 다투려 하느냐고 점잖게 나무라고 있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이 모두 글이고 보면 많이출처 : 유교넷 -
319126
與姜孝思 3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죽마고우였던 姜孝思가 관직에 나아가게 된 것을 축하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평생을 학문을 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 없이 늙고 말았다고 회상하면서, 관직에 나가면 이렇게 한가롭게 글 읽는 시간을 얼마나 가질 수 있겠느냐며 반문하기도 한다.출처 : 유교넷 -
319127
答姜孝思 3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초봄에 관직에 있으면서 姜孝思가 시골에 있는 자신을 기억하고 편지를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답장이다. 그리고 전에 夫子의 글을 읽었다는 말과 時文을 짓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지금쯤 결과물이 나왔을 것이라며 보내줄 것을 청하고 있다. 저자가 셋째 숙부와 맏형님을 여출처 : 유교넷 -
319128
答李雲伯 3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산수유람을 청하는 李雲伯에게 보낸 답신이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금강산(봉래산) 한 번 가자던 묵은 약속은 늙은 몸으로 지킬 수 없게 되었지만, 俗離·曦陽·仙遊·雙龍 같은 곳은 가볼 만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보내준 「西遊錄」은 잘 읽어보고 있으며, 宣城老主人의출처 : 유교넷 -
319129
答李驪應 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아우를 통해 받은 驪應 李昭著의 서신에 답한 편지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간 이소저에게 ‘뜻이 있으면 일은 마침내 이루어진다.’며 격려하고 있다. 다만 後漢시대에 毛儀가 檄文을 받고 좋아했듯이 집안을 위해 벼슬을 해야 하겠지만, 山水가 있는 고을에 부임하여출처 : 유교넷 -
319130
與李驪應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늙어버린 저자 자신을 보고서 죽마고우인 李昭著에게 보낸 편지이다. 관직생활이 얼마나 고된지 안부를 물은 다음, 자신도 의지하며 살던 친지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 데다 어버이와 딸마저 병중에 있게 되는 우환이 겹쳐 경황출처 : 유교넷 -
319131
答李驪應 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가을에 관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李昭著에게 위로를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공무를 집행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아는 것이 정말 어렵다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노력을 하다보면 수월하게 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리고 ‘윗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백성들에는 인자한 척, 가난한출처 : 유교넷 -
319132
與李驪應 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李昭著에게 저자의 시를 살펴봐 달라고 청한 편지이다. 이 편지는 그리워만 하던 중에 한 해가 또 지나갔다는 안부의 말로 시작한다. 편지에서 저자는 병과 함께 살아가다보니 글을 보는 것이 예전만큼 또렷하지 못하다는 걱정을 나타낸다. 근래에 선친의 글들을 교정하여 정리했출처 : 유교넷 -
319133
與李驪應 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李昭著에게 지역 여론을 따라 공무를 처리하도록 충고하는 편지이다. 한 고을에 부임해서 어떤 일을 집행할 때 여론을 따르지 않으면 권세로 누르려 한다는 혐의를 받게 되고, 지역 사림들이 존봉하는 것을 무리하게 허무는 것은 輿望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신중해야 하는출처 : 유교넷 -
319134
與柳叔斌 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溪堂 柳疇睦(1813~1872)에게 저자의 선친 高夢贊의 碑銘을 청탁하는 편지이다. 편지를 보면, 선친이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면서 유묵들이 유실될까 두려워 遺文과 散稿들을 모으고 선친에 대한 일대기를 평생의 지기인 운산 이휘재에게 부탁하였다고 한다. 碑文은 樂善君子출처 : 유교넷 -
319135
答柳叔斌 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저자의 從孫을 제자로 받아준 溪堂 柳疇睦(1813~1872)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답신이다. 작년에 종손이 한 번 찾아갔지만 뵙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이제 이렇게 제자로 받아주겠다는 승낙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고 감사를 전한다. 저자의 종손은 재능이 아예 없지는출처 : 유교넷 -
319136
與柳叔斌 6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柳疇睦의 부친 柳厚祚가 정승에 제수된 것을 축하하는 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이것이 류주목 가문의 경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행복이고 선비들에게는 희망을 가져도 좋은 시기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만 서울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출처 : 유교넷 -
319137
與柳叔斌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柳疇睦이 중형의 상을 당한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한 편지이다. 뛰어난 재능과 흠 없는 행실로 처음 벼슬길에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였는데, 축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어떻게 위로해야 하느냐며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이런 역경에 처할 때마다 ‘命’이라는 한 글자로출처 : 유교넷 -
319138
答李文五 7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文五 李晩運(1815~1886)에게 축하를 보낸 답신이다. 이 편지에서 저자는 먼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길에 나아가고 또 부모님의 회혼례를 마련해 드린 것은 요즘에 보기 드문 장한 일이라고 칭송하고, 다만 길이 멀어 그 자리에 참석해 축하의 술잔을 올리지 못하는출처 : 유교넷 -
319139
答李杞園 8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시를 보내온 杞園 李南年에게 쓴 답장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강건한데다 사물을 감상하고 이치를 탐구하는 힘이 깊어만 가는 것은 모두 학문의 힘이라며 축하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저자 자신은 친지들의 잇따른 죽음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고, 남은 날출처 : 유교넷 -
319140
答姜耘甫 9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覽勝圖譜』에 글을 써달라는 耘甫 姜稷의 청탁을 거절하는 편지이다. 엊그제 비가 내린 뒤로 세밑 겨울이 봄날인 듯 따뜻하다며 안부를 묻는다. 보내준 『覽勝圖譜』는 한번 보고도 대단한 식견의 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글을 덧붙여달라는 청은 저출처 : 유교넷 -
319141
答姜耘甫 1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글을 부탁하는 姜稷의 청탁을 거절하는 답신이다. 거절에 앞서 저자는 남쪽 지방에 덕망 높은 宿儒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는 가운데 강직처럼 젊은 나이에 명망의 굴레를 버리고 한결같이 학문에 매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칭찬하고 있다. 또한 글마다 겸손함을 잊지 않고, 저출처 : 유교넷 -
319142
與姜耘甫 10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아들을 잃은 姜稷에게 위로를 보낸 편지이다. 전도가 촉망되던 꽃다운 젊은이에게 이게 웬일이냐며, 마땅히 ‘운명’으로 여기고 이겨내야 하겠지만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일어나는 아픔까지야 없을 수 있겠느냐.’며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 전에 보내준 2권의 시도 직접출처 : 유교넷 -
319143
答金應羲 11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암자를 수리한 應羲 金龍欽에게 축하를 보낸 답장이다. 가뭄 끝에 비가 온 것처럼 오랜만에 받은 편지에 매우 기뻤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저자는 새로 수리한 암자가 비록 소박하기는 해도 전한시대에 袁安이 눈 속에 누어있던 집에 비하면 훌륭하다며 축하한다. 또한 가난함출처 : 유교넷 -
319144
答李謹休 12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謹休 李晩慤(1815~1874)에게 글을 짓는 것에 관한 의견을 피력한 답신이다. 저자는 젊어서는 기발한 논의를 좋아해서 『左傳』이나 『穀梁傳』 또는 班固나 揚雄의 글을 읽을 때면 즐거워서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글이란 것이 의미는 원만하고 문장은 분명하며 담박출처 : 유교넷 -
319145
與李謹休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병상에 있는 李晩慤에게 위로를 보내는 편지이다. 저자는 근래 글을 읽으면서 옛 사람들의 ‘뜻 세운다’[立志]는 글귀가 눈에 들어오면서 스스로를 반성해보니 평생 명성만을 따라다녔다고 고백한다. 이제부터라도 방향을 바꿔 스스로에게 절실한 공부를 하고 싶은데, 貞百 金度銖출처 : 유교넷 -
319146
答李謹休 13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글을 청하는 李晩慤에게 보낸 답신이다. 저자는 올 여름에 동해를 다시 유람했고, 청량산 어풍대에 올라 퇴계 선생의 자취를 느꼈다고 한다. 이어서 이만각을 찾아가 이틀 동안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평소에 원하던 세 가지를 모두 이루었으나 일상으로 돌아와서 보니 다시 근심출처 : 유교넷 -
319147
與李謹休 14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李晩慤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저자는 지난여름 관직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公議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一命의 벼슬이 이만각에게는 축하할 만한 것은 아니겠지만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쁘다.’는 옛말처럼 축하를 금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안부는출처 : 유교넷 -
319148
與金貞百 1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貞百 金度銖를 위해 글을 지어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영달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학문에 전념하면 될 뿐 나날이 진전이 있지 못할까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며 격려한다. 저자는 지난 5월에 驪應 李昭著 등과 함께 한달 간 짬을 내어 潁水에서 보냈는데, 이소저는 곧장출처 : 유교넷 -
319149
答朴聞遠 15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가을에 나들이를 청했던 聞遠 朴周鍾(1813 ~1887)에게 보낸 답신이다. 저자는 기억할 것도 없는 자기 같은 사람을 기억해주느냐며, 늙도록 이렇다 하게 이루어놓은 것도 없는 처지에 벗의 책무를 어떻게 다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강의 동서에 사는출처 : 유교넷 -
319150
答朴聞遠 16 / 기록자료>고도서 / 고성겸聞遠 朴周鍾의 『동국통지』에 관한 답신이다. 저자는 먼저 노년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완성하여 후학들을 위해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해 축하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사람에게 이를 살펴봐 달라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라며 겸양한다. 이어서 가을 산사 나들이에는 못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