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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溪別祠奉安文(李大山象靖) 2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大山 李象靖(1587~1667)이 지은 牧溪別祠 奉安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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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常享祝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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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泉書院陞號時告由文(掌令李級) 2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掌令을 지낸 聲隱 李級(1721~1790)이 山泉書院에 지어 올린 告由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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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安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다시 奉安하고 올린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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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友錄 2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佔畢齋 金宗直‧正郞 權七臨‧毅庵 韓伯倫‧桃隱 李秀亨‧寒暄堂 金宏弼‧一蠧 鄭齋汝‧秋江 南孝溫‧錦南 崔溥‧靈川 朴聃孫‧嵩陽 申希演‧忘軒 李冑‧濯纓 金馹孫‧草堂 姜景叙‧寒齋 李穆‧李黿‧藏六堂 李鼈‧滄溪 文敬仝‧監察 鄭應祥‧仁齋 孔仁達‧郭承華‧僉正 琴致湛‧參奉 禹錫鼎‧拙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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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通論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本鄕儒生과 玄風 道東書院 儒生들에게 보내는 두 편의 글인데, 佔畢齋 金宗直의 문하에서 寒暄堂 金宏弼과는 道義로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契帖으로 그 교류가 더욱 돈독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함께 奉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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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墨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2점의 遺墨을 수록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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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송석충宋應朢(1743~?)이 1813년(순조 13)에 쓴 跋文으로 내용은 行狀과 유사하며, 사후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어진 덕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遺事는 선조인 倻溪 宋希奎(1494~1558)가 이미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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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곡집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두곡집(杜谷集) 杜谷 洪宇定의 시문집. 5卷 2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21.2×16.5㎝, 有界, 10行20字, 小字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31.5×21.0㎝. 1824년(순조 24) 봉화 三溪書院에서 목판본으로 처음 간행되었으며, 뒤에 석판본으로 重刊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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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晩晴, 新晴, 寒碧樓, 次李訓導(鼈)木刻梅鶴韻, 偶吟, 送舍弟熙叔之任濟州半刺, 挽詞, 挽詞, 客中秋懷, 挽柳進士(泰元)內室, 醉贈尹秀伯, 題小窗, 蓮池, 卽景, 丹陽道中, 謾吟, 碧桃, 喜雨, 詠懷, 道中吟, 送人, 次韻, 謾吟二首, 夜吟, 荷花, 客居, 盆中種烏竹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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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遺懷二首, 雪行二首, 次從弟韻, 普賢卽事, 次贈沈德祖(長世)宴席, 雪, 雪後, 夢仙, 夢龍, 夢虎, 卽事二首, 夢見元子建(斗杓)覺後吟成三首, 贈熙上人, 臘月, 自普賢移樓文殊, 山寺記事, 山行, 山雪, 自廣德山投徐秀夫(挺然)家呼韻二首, 大風, 出塞, 立春, 卽事二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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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次周愼齋(世鵬)白雲洞景濂亭韻, 次元子建韻, 春睡, 無題, 留別林實之(㙐)昆季, 秋夜, 雨後, 讀靖節集有感, 詠淸溪, 題木枕, 除夕, 雨後赴朴晦而(敦),別後寄元子建,送二子赴遠販物, 赤城寺次僧詩軸韻, 題南慶仲(昌祖)短屛十絶, 客愁, 歸鴻, 客夜, 贈金景溫, 次韻三首, 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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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律詩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詠懷十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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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古詩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挽權遠遊, 贈正上人, 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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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古詩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次金齊休(周)韻,疊五律韻博爲七言古詩, 苦雨, 又, 山水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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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古堂賦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동생 重而가 지은 稽古堂을 방문한 후 지은 부이다. 뒤에 실려 있는 稽古堂記跋과 서로 참고가 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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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古城賦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천안에 유배되어 있을 때 이름 모를 옛성에 올랐다가 당시의 감회를 읊은 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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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蔡用九書 7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蔡聖龜에게 보낸 답신이다. 채성구가 지은 시에 대해 품평한 후, 지난 여름 병자호란 때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을 먹은 일 등 근래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내용으로 볼 때 1636년에서 1637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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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子遠(浚)書 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李浚에게 보낸 답신이다. 술과 여자를 삼가라고 질책하는 내용이다. 내용으로 볼 때 이전에 한 번 충고를 하였는데, 이준이 자신의 방종한 행동을 부인한 것으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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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生勉甫書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尹勉甫에게 보낸 답신이다. 지난 봄에 보내준 편지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자신은 다만 생명을 보전하려는 것일 뿐이지 세상을 피해 은거하는 등의 큰 뜻은 없다고 스스로를 낮추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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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賓羽(䎙)書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吳䎙에게 보낸 답신이다. 牙山에 유배되어 있는 오빈을 위로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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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隱窩記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金應龜의 부탁을 받고 지은 六隱窩의 기문이다. ‘六隱’이 陰의 수인 ‘六’과 숨어 사는 거북의 습성을 뜻하는 ‘隱’로 이루어졌음을 소재로 삼아 處世와 養性의 이치를 조언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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覺今堂記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沈德祖의 거처인 覺今堂에 붙인 기문이다. 각금당은 심덕조가 龜城의 수령으로 있다가 임기가 끝나고도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 요량으로 鳳城의 동쪽 丹坡洞에 지은 집이다. 당호인 ‘覺今’은 중국 晉代의 시인 陶淵明의 “覺今是而昨非”(이제야 오늘이 옳고 어제까지의 삶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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可笑亭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洪公叙의 정자인 가소정에 붙인 기문이다. 정자의 이름을 ‘可笑’라고 한 이유를 묻자 홍공서가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아 자신 역시 배를 잡고 웃었는데, 이 또한 ‘가소’의 의미에 부합하는 일화라는 생각에서 기문으로 썼다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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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五堂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홍우정 자신이 지은 이오당의 서문이다. “하늘의 뜻을 즐기면 명을 아는 것이고, 그것에 순응하면 삶에 통달한 것”이라고 하면서, 비록 이 두 가지는 자신이 능히 이룰 수 있는 경지는 아니지만 갈망하는 것이라는 취지에서 ‘二吾堂’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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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古堂記跋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동생(重而)이 지은 稽古堂의 기문에 붙인 발문이다. 동생이 집을 짓고 유학의 경전과 제자백가를 읽고 토론하는 곳으로 삼겠다는 취지에서 ‘稽古’라고 당호를 짓고 기문을 붙인 후 발문을 청하자 땅의 형세를 소재로 당호의 뜻을 부연한 글이다. 앞에 실려 있는 稽古堂賦와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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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子修失杖說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鄭時羽가 일본에서 만든 지팡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쓴 글이다. 밖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의지할 지팡이를 찾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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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廟御書後識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鄭在玆의 집에 소장되어 있는 선조의 어필에 대해 그 내력을 기록한 글이다. 평소 선조의 어필을 얻고 싶었던 정재자가 친척 가운데 후궁으로 들어간 이가 있어 그에게 부탁하여 어필을 구한 뒤 첩으로 꾸며 자손에게 전하면서 그 내력을 적어줄 것을 여러 번 청하기에 썼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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兀銘(竝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案席에 명문을 새긴 후 이를 기념하여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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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谷乃城洞上樑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병자호란이 끝난 뒤 북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두곡리에 거처를 정하면서 지은 집의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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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洪汝徵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친구인 洪必瑞에게 바친 제문이다. 병자년 전란 중에 만나 姜正吾‧洪公叙 등과 함께 서로 뜻이 맞아 서로 어울리며 고금의 역사와 經史를 논하곤 하였는데, 세상을 먼저 떠나 슬프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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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함께 교유하며 太白五賢으로 불렸던 覺今堂 沈長世가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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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金宗衍이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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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竝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眉叟 許穆(1595~1682)이 쓴 묘갈명이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공은 이름이 宇定이고, 자는 靜而이며, 본관은 南陽이다. 증조는 掌苑署掌苑으로 영의정에 추증된 昷이고, 조부는 선조 때 洪州牧使로 있으면서 李夢鶴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寧原府院君에 봉해진 可臣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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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竝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葛庵 李玄逸(1627~1704)이 쓴 묘갈명이다. 내용은 허목의 묘갈명과 대동소이하다. 중복되지 않는 부분을 중심으로 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은 고려 때 金吾衛別將同正을 지낸 先幸의 후손이다. 5형제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3형제 가운데 맏이라고 한 허목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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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 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訥隱 李光庭(1674~1756)이 쓴 홍우정의 전기이다. 묘갈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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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大山 李象靖(1710~1781)이 쓴 행장이다. 묘갈명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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致祭文(英廟丙子)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영조가 1756년(영조 32)에 내린 치제문이다. 文敏公 元仁孫(1721~1774)이 받들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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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今上丙子)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순조가 1816년(순조 16)에 내린 치제문이다. 李允謙이 받들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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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峯祠奉安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홍우정을 九峯祠에 처음 제향할 때의 봉안문이다. 玉川 趙德鄰(1658~1737)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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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山祠奉安文(正廟丙午)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홍우정을 文山書院에 제향할 때의 봉안문이다. 1786년(정조 10) 小山 李光靖(1714~1789)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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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建奉安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옛 사우인 구봉사를 이건한 후 쓴 봉암문이다. 臥隱 金翰東(1740~1811)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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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峯常亨祝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李光庭이 쓴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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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山常亨祝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鄭持淳이 쓴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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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李光靖이 쓴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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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峯毁撤時告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홍우정이 처음 제향되었던 九峯祠를 훼철할 때의 고유문이다. 李光庭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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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山改題還安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晩聞齋 李仁行(1758~1833)이 쓴 환안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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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峯上樑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홍우정이 처음 제향된 곳인 구봉사의 상량문이다. 李光庭이 썼다.출처 : 유교넷 -
319349
文山移建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문산서원을 구봉사 자리로 이건할 때의 상량문이다. 金翰東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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焚黃文(英廟丙寅) 24 / 기록자료>고도서 / 홍우정1746년(영조 22) 홍우정에게 吏曹參議가 추증될 때의 분황문이다. 李光庭이 썼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