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0851
전응방(全應房)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전응방(全應房, 1493~1556)의 본관은 옥천(玉川)이고, 자(字)는 이기(而紀), 호는 야옹(野翁)이다. 야옹정(野翁亭)을 건립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0852
정도전(鄭道傳)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다.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출처 : 유교넷 -
320853
정문형(鄭文炯)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정문형(鄭文炯, 1427~1501)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이다. 개국공신 도전(道傳)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속(束)이다.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1455년(세조 1) 교리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이 되출처 : 유교넷 -
320854
정사신(鄭士信)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정사신(鄭士信, 1558~1619)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 자부(子孚). 호 매창(梅窓) ·곡신자(谷神子)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급제, 저작(著作) ·감찰 ·정언 등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에 지평(持平)으로서 왕을 호종하다 도중에 이탈한 죄로출처 : 유교넷 -
320855
정운경(鄭云敬)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정운경(鄭云敬, 1305~1366)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충숙왕때 문과에 급제 상주사록 전교 교감들을 역임한 뒤 복주판관(福州判官)으로 전임되어 송사를 잘 다스렸으므로 명성이 높았으며 충목왕(忠穆王) 때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온 뒤 양광도(楊廣道) 교주도(交州출처 : 유교넷 -
320856
정유일(鄭惟一)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정유일(鄭惟一, 1533~1576)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중(子中), 호는 문봉(文峰)으로 군자감정을 지낸 목번(穆蕃)의 아들이요 눌재(訥齋) 이홍준(李弘準)의 외손이다. 이퇴계 문하에 나아가 수학한 뒤 1552년(명종 7년)에 사마시를 거쳐 1558년(명종출처 : 유교넷 -
320857
정탁(鄭鐸)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정탁(鄭鐸, 1659~?)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字)는 여선(汝宣), 호는 매계(梅溪)로 생원 숙(俶)의 손자로서 1677년 진사하고 1699년(효종 25)에 문과 급제,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0858
조덕린(趙德鄰)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택인(宅仁), 호는 옥천(玉川)이며, 군의 아들이다. 1677년(숙종 3)사마시에 합격한 뒤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설서·교리·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노론·소론의 당론이출처 : 유교넷 -
320859
조목(趙穆)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목(趙穆)은 횡성인(橫成人)으로 호는 월천(月川)이다. 1577년 1월에 부임하여 1579년 9월에 이임(離任)하는 2년 9개월의 재임기간중 도학적 덕행으로 휼민(恤民)하고 허물어져 가는 향교와 서원문묘(書院文廟)를 이건개축(移建改築)하고 치산치수에도 역점을 기울여출처 : 유교넷 -
320860
조병익(趙秉益)이 현감으로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병익(趙秉益)은 1868년 6월부터 1873년 1월까지 재임 4년 8개월간 선정하다가 경기도 고양군수로 영전(榮轉)하니 주민들이 송덕비(頌德碑)를 건립하다.출처 : 유교넷 -
320861
현감 금란수(琴蘭秀)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금란수(琴蘭秀)는 본군(本郡) 출신 현감(縣監)으로 1599년 5월에서 1604년 6월까지 5년 1개월간 근무하는 기간 봉화향약을 준행(遵行)하도록 교화선도하며 후학배양에 힘쓰다가 전출발령이 있자 사임(辭任)했다.출처 : 유교넷 -
320862
홍사제(洪思濟)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홍사제(洪思濟, 1539~)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제경(濟卿), 호는 승제(承濟)이다. 좌의정 휴휴당 응(休休棠 應)의 후예이고 충재의 외손이다. 1580년(선조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홍문정자(弘文正字)를 하였으며 필법이 뛰어났다.출처 : 유교넷 -
320863
홍세공(洪世恭)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홍세공(洪世恭, 1541~1598)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안(仲安), 호는 봉계(鳳溪)이며 시호는 충헌(忠憲)으로 군수를 지낸 보(俌)의 아들이다. 1567년(명종 22)에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에 문과에 급제 현감, 부사를 역임하고 임진왜란이 일출처 : 유교넷 -
320864
홍우정(洪宇定)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홍우정(洪宇定, 1593∼1654)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정이(靜而), 호는 두곡(杜谷).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가신(可臣)이고, 아버지는 한성서윤(漢城庶尹) 영(榮)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허성(許筬)의 딸이다. 1616년(광해군 8) 진사가 되었으나 1616출처 : 유교넷 -
320865
홍익한(洪翼漢)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홍익한(洪翼漢, 1586~1635)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 초명은 습(霫)이고,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1624년(인조 2) 공주행재정시문과(公州行在庭試文科)에 장원, 사서(司書)를 거쳐 장령(掌令)이 되었다. 1636년 청나출처 : 유교넷 -
320866
경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경체정은 법전강씨(法田姜氏)의 강윤(姜潤)·강완(姜浣)·강한(姜瀚) 3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인 유하(柳下) 강태중(姜泰重, 1778∼1862)이 강씨들이 대대로 살아온 마을 한쪽에 1858년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강씨들이 사는 속칭 음지마을 입구의 산출처 : 유교넷 -
320867
이오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오당(二吾堂)은 강흡(姜洽)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 건물은 강흡을 추모하기 위해 그가 돌아간 8년 후인 1679년에 후손들이 세웠고, 그 뒤 1938년 다시 고쳐지었다.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출처 : 유교넷 -
320868
창랑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창랑정사는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 1683~1742)이 이인좌의 반란에 무고로 연루되었다가 풀려난 후, 초야로 물러나 앉아 공부하고 수양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건물은 길가 비탈 위에 서 있다. 비탈면의 중간을 밀고 들어가 작은 집을 지었으므로, 정자 영역 외출처 : 유교넷 -
320869
태백산 사고지 / 유교문화>유적 / 미상태백산 사고지의 건물은 현재 모두 소실되고 남아 있지 않다. 1988년 8월에 발굴정비계획에 따라 건물의 유구를 발굴한 결과 태백산 사고지는 실록각(實錄閣), 선원각(璿源閣), 포쇄각(曝曬閣), 근천관(近天館) 등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실록각은출처 : 유교넷 -
320870
사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사미정(四未亭)은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운곡천 상류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자이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경사진 대지 암반 위에 위치하는 사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촐한 정자이다. 정자가 자리한 이 지역 일대는 큰 바위와 암반 사이를 넘나들며 흐르는 맑은출처 : 유교넷 -
320871
창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창애정은 이중광(李重光, 1709∼1778)이 지은 정자이다. 이중광은 1742년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여 사람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에 전념하면서 후배를 양성하였다. 이로 보아 이 건물을 지은 때는 1742~17출처 : 유교넷 -
320872
옥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계정은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졸내(拙川)에 자리하고 있다. 옥계(玉溪) 김명흠(金命欽, 1696∼1773)의 효행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림과 후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출처 : 유교넷 -
320873
옥천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천서당은 작고 단아한 건물이다. 서당이라고 하지만 정자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의성김씨 일문이 스스로 공부하고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옥천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건물은 산기슭의 사면을 문지르고 들어가서출처 : 유교넷 -
320874
송월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송월재는 이시선이 지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서재이다. 가운데 칸이 대청이고 양 옆 칸이 대청인 정자의 형태를 취한 건물이다. 앞 열 반 칸은 마루이다. 삼면에 퇴를 둘렀는데, 앞면의 퇴는 계자난간을 두었다. 기단은 현재는 시멘트로 고쳐 놓았다. 지붕은 팔작지출처 : 유교넷 -
320875
애일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애일당은 효자 금홍달(琴弘達, 1633∼1704)이 봉화읍 법전면 풍정리 아현 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앞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을 두었다. 정자 앞에는 아주 너른 연못이 있어 연꽃이 가득하고 오른쪽 측면은 산언덕에 기대어 있다.출처 : 유교넷 -
320876
한수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한수정은 1608년(선조 41) 봉화 춘양 동촌마을에 세워진 정자이다. 원래 춘양에는 충재 권벌(1478∼1548)의 농장이 있었다. 그의 아들 청암 권동보는 지금의 한수정 자리 남쪽에 거연헌(居然軒)이라는 건물을 지었는데, 불이 나서 없어지자 그의 아들인 석천 권래출처 : 유교넷 -
320877
진주강씨 만산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진주강씨 만산고택은 대문채가 다른 어떤 집보다도 크다. 웅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나 칸수가 유달리 많다. 좌·우에 각 5칸씩의 행랑채를 거느리고 있으니, 총 11칸에 이르는 규모이다. 정자건물인 ‘칠류헌’도 거대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디다 가져다 놓아도 빠지지 않을출처 : 유교넷 -
320878
산천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산천정사는 황암(惶庵) 권철연(權喆淵, 1874~1951)이 살던 집의 뒤쪽 산록에 있다. 집은 거대하고, 사랑채는 물론이고 별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 의양리는 춘양면소재지 큰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한적한 곳이다. 그러므로 집을 벗어나 다른 거처가출처 : 유교넷 -
320879
태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태고정은 오른쪽으로 철도가 달려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철길은 일제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태고정은 단정하고 아담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문이 좀 작은 것일 뿐 본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작지 않은 정자이다. 정자는 가슴 높이의 대좌 위출처 : 유교넷 -
320880
안동권씨 권진사댁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만석봉을 뒤로 두고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9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의 좌측에는 3칸의 서실이 있으며, 대문채와 마주하여 口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측 허리부분에는 토담을 좌·우로 뻗어 내외마당으로 공간구분을 하고 있으며출처 : 유교넷 -
320881
구가암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의 미학은 상당히 독특하다. 특히 부엌문을 설치한 기법이 그러하다. 주초는 이중으로 놓여 있다. 대개의 경우 주초는 하나의 자연석을 쓰거나 기둥 굵기로 다듬어진 대석 위에 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 구가암에서는 조금 판판한 자연석을 2장 겹쳐 놓고 그 위출처 : 유교넷 -
320882
법전리 진주강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강씨종택은 여러 건물들이 한데 모여져 있다. 一자 형상의 사랑채와 ㄷ자 형상의 좌우 건물채가 연결되어 口자형의 살림집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어른 몸통만한 자연석을 5줄로 높이 쌓아 대좌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안채는 영남지방의 안채 중 가장 크고 넓고 높출처 : 유교넷 -
320883
법계서실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해은 강필효(1764∼1848)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자 정조 24년(1800) 마을언덕 위에 지었던 것을,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의 제자인 과재(果齋) 성근묵(成近黙), 효헌공(孝獻公) 성수묵(成遂黙) 등과 유림에 의해서 184출처 : 유교넷 -
320884
진주강씨 기헌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진주강씨 기헌고택은 2006년 현재 중수 중이다. 건물은 대문채와 본채로 되어 있다. 대문채는 지붕공사가 한창이었다. 대문채의 지붕 위에는 6명의 기와공이 올라가 있었다. 암기와는 바닥에 가지런히 깔려 있고, 수키와는 수북하게 이곳저곳 쌓여 있었다. 그 기와의 무더기출처 : 유교넷 -
320885
와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와선정(臥仙亭)은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골띠마을 계곡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와선정은 신선이 누워 쉬던 정자라는 뜻이다. 병자호란(1636년)에 태백산 줄기인 춘양에 은거하며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지킨 이른바 태백오현(太白五賢)이라 일컫는 홍우정(洪宇定출처 : 유교넷 -
320886
사덕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사덕정은 추만(秋巒) 이영기(李永基)가 1641년에 건립한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1863년(인조 19)과 1928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봉화읍 법전면 풍정리 시드물이라 불리는 마을 입구의 좌측 산허리에 이영기의 종가와 재사가 있는데출처 : 유교넷 -
320887
전주이씨 영모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전주이씨 영모당은 추만 이영기가 서울에서 풍정으로 옮겨와 살면서 지은 집이다. 전주이씨 영모당은 마을 입구 쪽으로 나와 서 있는 사덕정, 그 안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당, 사당의 안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전주이씨 영모당, 그리고 제일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안채 등출처 : 유교넷 -
320888
구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구애정은 경북 봉화군 법전면 풍정리 갈방마을에 소재하며, 전주이씨들이 구애(龜崖) 이완(李琓, 1650~1732)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만든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정면의 앞 열은 마루이고, 뒤 열은 방 2칸과 대청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192출처 : 유교넷 -
320889
무진장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화군 상운면 문촌리 깊숙한 골 야산 끝자락에 동향으로 자리 잡은 무진장재는 원래 신라시대 무진장사(無盡藏寺)라는 절이었다. 조선 전기인 1480년에 농수(聾叟) 금원정(琴元貞, 1472∼1557)이 이를 인수하여 개축하고 용도를 재실로 바꾸었다. 무진장재는 정면출처 : 유교넷 -
320890
종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종선정은 금응석(琴應石, 1508~1583)의 선행을 흠모하여 마을 주민들이 세운 조선 중기의 정자이다. 금응석은 여러 해를 거듭한 가뭄과 흉년으로 인하여 마을 인근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땅에 뿌릴 씨마저 없는 상황이란것을 알았다. 이 때 금응석은 사람들에출처 : 유교넷 -
320891
봉화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화향교는 직선이 강조되는 건물미학을 갖추고 있다. 여기 건물군에서는 우리 옛 건물의 일반적 유형인 추녀들림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점은 추녀 길이가 짧은 것이나 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향교의 배치는 유교문(由敎門)·누각(樓閣)·명륜당(明倫堂)·내삼문(內三門)·대출처 : 유교넷 -
320892
봉서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봉서루(鳳棲樓)는 현재 봉성면 봉성리 시장 안에 위치한 누각이다. 이 누각은 원래는 봉성면사무소 자리에 있었던 봉화현 관아 건물의 일부였다. 1738년 봉화 현감 이광직(李匡直)이 동헌인 조양관(朝陽館)을 중건하면서 바깥 동헌으로 다시 세운 건물로, 봉성현 내의 유학출처 : 유교넷 -
320893
밀양박씨 오고당구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평면형태가 사방 각 3칸으로 된 이른바 사방집이며, 지붕이 까치구멍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는 점에 특색이 있는 주택이다. 지어진 것은 조선시대 말기인 1820년대로 조대비(趙大妃)의 병환을 고치고 고종으로부터 오고당(五高堂)이라는 호를 받은 조출처 : 유교넷 -
320894
옥류암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옥류암은 마을로부터 벗어나 동쪽 산줄기 속에 숨어 있다. 두곡 홍우정이 여기 들어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마을 영역이라 한다. 옥류암 영역에 이르면 막 새로 지은 현대식 한옥이 웅장하고 미끈한 자태를 드러낸다. 2006년 9월 현재, 종가는 이제 완공을 눈앞에 두고출처 : 유교넷 -
320895
야옹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야옹정(野翁亭)은 야옹(野翁) 전응방(全應房, 1491~1554)이 선조 때 건립한 정자이다. 야옹정은 구천리 전씨 종가가 있는 마을 뒤쪽 깊숙한 곳에 뒤편 야산을 배경하여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는 해마다 장릉에 찾아가 도포자락에 흙을 담아 능 위에 던져 올리고출처 : 유교넷 -
320896
선성김씨 백암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의 특징은 뒷면에서 보이는 지붕선을 제외하고 앞면과 양 측면에서는 추녀들림 방식을 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뒷면의 지붕선에서는 들림의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건물은 口자형을 하고 있지만, 빈틈없이 서로 이어진 口자형이 아니라 아래편의 一자 형출처 : 유교넷 -
320897
구산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구산서당은 구암(龜菴) 전수동(全秀東, 1791~1862)이 만년에 머물러 배우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서당 서편의 까치구멍집은 주사의 용도로 지어졌다. 이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건물로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은 서당출처 : 유교넷 -
320898
화산이씨 충효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충효당의 정문은 작고 아담하다. 양쪽 나무판 문을 달고, 그 앞으로 반팔 정도 나아가서 앞 선의 기둥 둘, 또 그 뒤로 반팔 정도 나아가서 뒤 선의 기둥 둘을 키 높이가 조금 넘도록 세워 올리고 위에 지붕을 덮었다. 충효당이 서 있는 바닥면은 그대로 경사면이다. 이출처 : 유교넷 -
320899
청량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는 청량정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이(武夷)의 36동천(洞天)은 세상에 유명하니 회암(주자)선생은 정자를 짓고 노래해 말하기를, ‘나의 샘과 바위에서 살리라.’하였다. 청량의 12봉우리는 해동에 이름이 높으니 퇴도(退陶) 이황 선생은출처 : 유교넷 -
320900
갈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있는 갈천정(葛川亭)은 갈천 김희주가 지은 정자이다. 그는 1808년(순조 8) 당시 안동부 재산현 갈산리 선영 아래에 이 정자를 지었다. 산이 깊고 물이 돌아나가며, 아래에는 폭포가 있고 돌이 파여 그윽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위에 집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