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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0901

    김갑동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김갑동가옥은 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길 쪽으로 나와 마을 집들의 앞 선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다. 대문 앞으로는 서쪽 편으로 치우쳐서 젊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아이 몸통만한 굵기에 이른 이 은행나무는 김갑동가옥 위로 스치고 지나간 세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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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02

    계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계서당(溪西堂)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동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집이다. 정면 7칸, 측면 6칸의 口자형으로 되어 있는 사랑채는 후에 넓히거나 다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쪽 마당 끝에 대문간채를 두고, 그 북쪽 높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되
    출처 : 유교넷
  • 320903

    화수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화수정사의 고방은 일제시대 초기에 순사들의 주재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1910년경의 일이다. 나중에 장터에 지서가 지어지면서 순사들은 그곳으로 이동하여 갔다. 이것은 당시의 물야에서 오록의 풍산김씨 일문이 가장 주의 깊게 관리될 필요가 있는 곳이었다는 것과 상관되
    출처 : 유교넷
  • 320904

    풍산김씨 노봉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노봉 김정은 오록마을에 입향하여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노봉정사를 지어 후학들을 교육하는 곳으로 삼았다. 오록마을에 들어가면 돌담으로 쌓은 울타리가 특히 눈을 잡아끈다. 집들은 넓은 평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다들 큼직큼직한 기와집들이다. 아마도 옛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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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05

    장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장암정은 봉화읍 물야면 오록리 마을 앞 정 중앙에 자리 잡은 건물이다. 김창조(金昌祖, 1581~1637)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724년 풍산김씨(豊山金氏) 문중에서 건립한 정자로 지방 유생들과 사림에서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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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06

    청간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간당(淸澗堂)은 청간당 김정원(金鼎元, 1655~1735)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 김탁연(金卓然)이 건립하여 자손들의 강학 장소로 사용한 정자이다. 김정원의 본관은 선성(宣城), 안집사 김륵(金玏)의 후손이다. 건물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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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07

    한천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한천정사는 행계서원과 짝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한천정사의 발치 아래로 좁은 분지는 사선으로 펼쳐지고, 건너산은 그 분지의 사선을 따라 또 사선으로 달려간다. 그 한가운데를 이번에도 또 사선으로 가르며 흘러내리는 것이 행계(杏溪), 수식마을 논과 밭을 적셔주는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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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08

    도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도암정은 1650년 무렵에 황파(黃坡)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이 건립한 정자로, 당시 사림들이 서로 교유하며 시를 지어 읊으며 노닐던 곳이다. 정자는 봉화읍 거촌 2리 황전 마을 앞에 남향으로 들어서 있다. 정자 전면에 잇닿아 네모 형태의 큰 연못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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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09

    쌍벽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쌍벽당은 거촌리 광산김씨 종택인 쌍벽당 김언구의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거촌리 쌍벽당은 정자 쌍벽당을 포함한 김언구 종가의 여러 부속 건물을 포함하여 일괄 지정된 것이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쌍벽당은 김언구 종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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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0

    봉산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봉산리사 건물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당이고, 다른 하나는 리사(里社)이다. 리사란 마을 단위에서 건설된 작은 규모의 서원이라고 보면 된다. 서원에 비해서는 교육기능이 약화되어 있다. 사당은 서쪽으로, 리사는 동쪽으로 조금 사이를 띄워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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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1

    구양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구양서원의 공간은 서원 영역, 주사 영역, 사당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 건물들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서원 영역은 좁은 골짜기 전체에 자리하고 있고, 각진 화강암 석재를 4줄로 쌓아올린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서원 정문채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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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2

    의성김씨 경암헌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의성김씨 경암헌고택은 사랑채, 문간채, 안채, 좌·우 부속채, 사당 등 5채의 건물이 서로 어울려 있다. 의성김씨 경암헌고택의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이고 6단으로 이루어진 석축 위에 올라서 있으며 앞쪽으로 정면 3칸, 측면 반 칸 정도 넓이의 앞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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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3

    우계이씨 공북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우계이씨 공북헌은 이수형이 낙향 후 거처하고자 지은 집인데, 단종에 대한 충절의 의미가 건물 구조 속에 담겨 있다. 정면이 좁고 측면이 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은 남향으로 지어졌는데, 실제로는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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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4

    도계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도계서원은 사당과 서원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 영역은 그리 넓지 않고, 건물은 조금 높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구조이다. 측면의 경우, 칸 수는 3칸이지만, 칸의 너비는 반 칸 정도로 아주 좁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1칸 반의 규모인 것이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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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5

    삼계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삼계서원은 지역유림이 지역 선현인 충재 권벌을 제향하기 위한 묘당으로 지었다가 지역의 선후배가 모여서 학문을 닦고 도의를 탁마하기 위한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서원은 크게 서원 영역과 주사 영역으로 나뉜다. 주사는 서원의 서쪽 울타리 밖에 붙어 있다. 서원은 3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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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6

    녹동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녹동리사는 괴담 배상렬의 학덕을 추모하고 지역 선현으로 제향하기 위해 사림이 건설한 건물이다. 오늘날에는 강당만 1채 남아 있을 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무너지고 복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동리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인데, 이 건물이 강당이다.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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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7

    동암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동암서당은 선조의 학덕과 행의를 기리고 후손을 교육시키기 위해 안동권씨 집안에서 세운 서당이다. 서당 안에는 몇백 년된 괴화나무 고목이 서 있는데, 지금은 화재로 죽었다. 동암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중 오른쪽 1칸은 방이고,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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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8

    안동권씨 송석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석재에 이르면, 우리의 평상심은 대문 안에 들어설 때까지만 유지된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충격에 휩싸인다.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집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러한 상식은 가파른 비탈면 위에 위험하게 올라앉아 있는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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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19

    석천계곡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석천계곡은 봉화읍 중심부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계곡이다. 봉화읍은 내성천을 중심에 끼고 있어 물은 풍부한 곳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내성천은 넓고, 그늘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늘과 웅덩이, 바위와 숲이 있을 때 물은 사람들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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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0

    석천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석천정사는 빠짐없이 단청이 칠해져 있다. 이 점은 석천정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데 유교건물에서는 본격적인 단청을 만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단청이라 해봤자 기둥에 주사칠을 한다든지, 대문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든지 하는 것이 고작이다. 여기 석천정사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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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1

    안동권씨 충재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1519년 벼슬길에 나가 있던 충재 권벌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 다음해인 1520년에 권벌은 모부인 파평윤씨의 묘소가 있는 유곡마을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유곡마을에 안동권씨 일문이 세거하여 살게 된 이유이다. 안동권씨 충재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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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2

    안동권씨 서설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안동권씨 서설당은 바깥울타리나 바깥대문이 없다. 안동권씨 서설당 영역은 옆으로 펼쳐져 있으며, 앞에는 옆으로 길쭉한 앞마당을 두고, 뒤편으로 물러나 일선의 건물군을 형성한다. 모든 건물들은 남향을 하고 서 있다. 왼쪽 끝은 사당 영역, 가운데는 본채 영역, 오른쪽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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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3

    청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청암정은 충재고택 안에 있는 정자로 충재 권벌이 1526년(중종 20)에 정자 아래에 있는 3칸의 서재 충재(冲齋)와 함께 지은 정자이다. 창건 당시에는 누마루 6칸만 지었는데, 그 뒤 아들 권동보가 누마루 밑에 담처럼 축대를 쌓고 방 2칸을 덧붙인 것이다. 거북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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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4

    송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송암정은 충재(沖齋) 권벌(權橃)의 2남인 석정(石亭) 권동미(權東美)가 창건하였다. 정자 주변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정자를 둘러싸고 있으며 앞에는 확 트인 시야가 남다르다.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에 우측 1칸이 전후로 반 칸씩 튀어 나와 있어 전체적으로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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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5

    두릉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두릉서당 지역은 세 영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서당 영역, 다른 하나는 주사 영역, 마지막 하나는 사당 영역이다. 이 세 영역은 좁은 골짜기 안에 일선으로 늘어서 있다. 이 골짜기는 모두 두릉서당의 영역으로, 다른 집은 한 채도 들어서 있지 않다. 골짜기의 초입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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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6

    구만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구만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조금 높은 경사면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향하고 있다. 멀리 정면으로 몽화각(夢花閣)을 바라보고 있다. 몽화각과 시선 방향이 서로 일치하고, 높이도 서로 같다. 건물의 좌·우 양끝으로는 정면 1칸, 측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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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7

    몽화각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몽화각은 봉화읍 화천리 북쪽 산록의 좀 높은 남쪽 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몽화각 아래쪽으로는 회이당(悔易堂) 종가가 위치한다. 오늘날 회이당 종가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회이당 종가와 몽화각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으나 높이의 차이는 상당하다. 몽화각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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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8

    동천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동천정은 봉화읍 화천리에 있는 동천(東川) 박경(朴擏, 1573∼1655)의 정자이다. 정자는 동천 종가 사랑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종가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도 이 정자는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이 정자는 동천의 학덕을 기리어 후손인 박규택(1876∼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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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29

    의성김씨 만회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의성김씨 만회고택 사랑채 건물의 구조와 목재를 사용한 방식이 특히 눈을 잡아끈다. 명월루는 건물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작은 규모의 누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 앞으로 튀어 나옴으로써 이 공간은 사방이 탁 트인 전망을 갖게 되고, 일상의 공간보다 더 여유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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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0

    단사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단사정은 단사(丹砂) 김경온(金景溫, 1692~1734)의 6대손 김석림(金碩林)이 지었다. 봉화읍 해저리 바래미 마을 뒤쪽 뒷골(후곡)에 있다. 전면 측면 2칸의 규모로 1칸 반의 방과 반 칸의 마루로 되어 있는데 뒤쪽을 제외한 3면에 기둥 밖으로 다시 조그만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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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1

    의성김씨 팔오헌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김성구(金聲久, 1641-1707)는 파조인 개암 김우굉(金宇宏)의 현손이다. 부친 김율(金瑮)이 기지로 잡은 봉화 호평(범들이) 마을에서 의성김씨 팔오헌종택 김성구가 해저마을로 옮겨 오면서 지은 집이다. 이 의성김씨 팔오헌종택은 의성김씨 개암공파가 해저마을에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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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2

    의성김씨 남호구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의성김씨 남호구택은 잘 관리되고 있다. 그것은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집에 관리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고 있다는 것은 口자 형식의 안마당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장독대 위의 크고 작은 독들이 반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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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3

    의성김씨 해와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의성김씨 해와고택은 이 지방의 양반집 배치방법인 ㅁ자형과는 달리 안채와 전면 사랑채 및 중문채가 2개의 ㄱ자형으로 나누어져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앞면 3칸·옆면 4칸 반으로 큰사랑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대청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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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4

    의성김씨 개암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의성김씨 개암종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바깥마당 영역과 안마당 영역이 그것이다. 대문채로부터 시작된 바깥담은 집안 전체를 감싸고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채가 한쪽에 중문을 끼고 서 있고, 사랑채와 중문을 중심으로 하는 또 하나의 울타리가 안쪽으로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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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5

    백천계곡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백천계곡 안의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봉화 석포면의 열목어 서식지. 이곳 대현리 일대는 세계적인 희귀한 어종인 열목어가 서식하는 곳으로, 낙동강 유역 중에서 열목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곳은 또한 열목어 분포지역 중 남방 한계선이기도 하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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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6

    대룡산 창원황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대룡산 창원황씨종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 2리 남역마을 대룡산에 있다. 이 종택은 귀암 황효공(黃孝恭, 1493~1553)의 손자 황언주(黃彦柱, 1553~1632)가 영주 배고개에서 살다가 처가마을인 이곳 남역마을로 오면서 건립하였다. 남역마을 뒤 산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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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7

    대룡산 순흥안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대룡산 순흥안씨종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 2리 남역마을 대룡산에 자리 잡은 서파 안리(安理, 1393~?)의 옛집이다. 이 집의 첫 주인인 안리는 단종 때 예천 군수로 있다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 안정면 용암산 아래 대룡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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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8

    서파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서파정(西坡亭)은 인륜을 저버린 단종 폐위 사건에 분개하여 명예와 이욕을 버리고 은거한 조선조 선비 안리(安理)가 독서하며 후학들을 지도하던 곳이다. 안리는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6대손으로 단종 때 예천 군수를 지냈으며,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분연히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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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39

    용산강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용산강당(龍山講堂)은 후진 양성에 힘쓴 지암(止菴) 황영조(黃永祖)가 건립하였다. 강당은 순흥안씨와 창원황씨의 동족 마을인 남역 마을 중간쯤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근의 젊은이들 중 배움에 뜻이 있어 가르침을 받고자 한 이들이 수백이었으나 다 수용하지 못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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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0

    봉강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안정평야 앞에 나주정씨의 집성촌인 줄포(茁浦)가 자리 잡고 있다. 지대가 낮고 늪이 맑아 줄풀이 무성하다고 하여 줄포라는 이름이 생겼다. 입향조는 검암공 정언숙인데 안동 판관으로 있다가 고향 원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 줄포의 아름다운 경관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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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1

    행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행정(杏亭)은 풍기진씨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대대로 살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魯佐) 1리에 있는 정자이다. 고려 후기 이 마을의 큰 선비 진중길(秦中吉)이 은행나무를 심고, 정자를 지어 행정이라 이름 짓고, 자신의 호도 행정으로 삼았다. 행정이라는 이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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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2

    구고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돈암 서한정을 배향한 서원이다. 조선 고종 때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구고서당이라는 현판으로 바꿔 달았으며, 서원 복설을 하지는 못했으나 현재 사당인 상절사를 세덕사로 삼아 춘추로 향사를 이어오고 있다. 당초 이웃 마을인 구구리 도인봉 아래에 건립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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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3

    돈암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돈암정(遯菴亭)은 경상북도 영주시 사천리(沙川里)에 있다. 진사 서한정(徐翰廷)이 세워 은거하던 처소로, 20세기 초에 후손이 다시 세웠다. 당시는 마을 안쪽의 정자를 중심으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 있어서 마치 뭇별들이 정자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듯이 배치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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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4

    도강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며 영주 지역 대표적 유학자였던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 1867~1952)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상량문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꾸몄다.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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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5

    첨모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첨모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창원황씨 집성촌 안쪽에 있다. 본래 세종 때 황전(黃躔)이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였다. 선조들의 학덕과 업적을 우러러 사모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강학을 하던 강당이다. 1538년에 고택을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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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6

    첨모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첨모정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丹山面) 병산리(屛山里)에 있으며 첨모당(瞻慕堂)의 주인을 기려 후손들이 종문의 단합과 풍류를 위해 지은 정자이다. 첨모의 뜻이 우러러 사모함이니, 이 역시 옛사람의 덕망을 우러러 그리워하며 오늘을 살고자 하는 바람으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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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7

    이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이산서원은 1558년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원리(지금의 휴천 1동)에 군수 안상이 창건하였다. 1572년에 사당을 세워 퇴계 이황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1574년에 사액을 받아 사학기관이 되었다. 1614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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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8

    만취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만취당(晩翠堂)은 증좌승지 김개국(金盖國)이 1587년(선조 20)에 건립하였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면 석포교를 지나 왼쪽 소로길을 따라 약 2km 쯤 가면 우금촌의 두암고택이 나타난다. 다시 논길로 500m 쯤 가면 넓은 들과 산을 등진 만취당을 만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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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49

    연안김씨 괴헌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마을에 자리 잡은 연안김씨 괴헌고택은 조선시대 순조 때의 선비 괴헌 김영의 집이다. 김영은 1804년(순조 4)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부정자·사헌부 지평 등을 지냈다. 이 집은 김영이 그의 부친 김경집에게서 분가할 때 물려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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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0950

    선성김씨 두암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선성김씨 두암고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우금에 위치한다. 한성부 서윤을 지낸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1571~1639)의 옛집이다. 선성김씨 두암고택은 정침과 사랑이 口자를 이루고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4칸 마루와 2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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