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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천운정(天雲亭)은 참판인 백암(栢巖) 김륵(金玏, 1540~1616)이 건립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김륵이 처음 구학정에서 거처하다가 읍성이 가까워 번잡하다고 하여, 이 천운정에서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산을 등지고 전면에 넓은 논을 마주하며, 앞에는 작은 연못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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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루 및 휴계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칠성루는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龍上里) 칠성산(七星山) 아래에 있다. 이곳은 옥천전씨(沃川全氏) 영주 입향조인 휴계(休溪) 전희철(全希哲)이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한가롭게 거처하던 곳이다. 5대손 설월당(雪月堂)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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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남악정(南岳亭)은 좌통례(左通禮) 남악(南岳) 오여벌(吳汝橃)이 건립하였다. 그러나 오여벌은 남악정 보다는 주로 경암(敬庵)에 거처하였다. 그런데 이만도가 지은 「경암기문(敬庵記文)」을 보면 남악정과 경암은 애초에 각각 별개의 건물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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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주 시내를 남쪽으로 벗어나 한정교를 지나서 왼쪽으로 좁은 길로 약 1km 쯤 가다 보면, 작지만 아담한 정자 하나를 볼 수 있다. 심원당이다. 정문 앞에는 보기 드문 둥근 연못이 있고, 작은 우물물에서 물이 나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정자 앞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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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주에서 예천으로 통하는 큰길을 따라 반두들을 거쳐 지나가다가 성곡(城谷)으로 들어서 5리쯤 들어가면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동네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경주이씨가 400여 년을 세거해 온 갈미마을이다. 갈미마을은 용암산에서 떨어진 줄기가 동남으로 뻗어 내려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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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염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피염정(避炎亭)은 무더운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여 쉴만한 정자라는 뜻으로 조선조 진사 이희음(李希音)이 지은 풍류공간이다. 원래 있던 장소가 물난리로 잠기면서 자리를 옮겨 지금은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長壽面) 갈산(葛山) 1리 장구목 길옆에 있다. ‘염(炎)’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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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리 인동장씨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화기리 인동장씨종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花岐) 1리 꽃계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초기의 선비 장응신(張膺臣)의 옛 집이다. 장응신은 연복군 장말손(張末孫, 1431~?)의 손자로, 아버지 장맹우(張孟羽, 1470~1511)가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황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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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長壽面) 화기리(花岐里)에는 조선 세조 때 적개공신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의 유물각(遺物閣)과 화기리 인동장씨종택(花岐里 仁洞張氏宗宅)이 있으며, 그 뒤쪽에 송설헌(松雪軒)이 있다. 본래는 장말손이 당시 예천 땅 화장(花庄)에 터전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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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녹야당(鹿野堂)은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長壽面) 호문리(好文里) 녹동(鹿洞), 속칭 곰실마을 노루들에 있다. 이 마을 이름이 노루들이 된 것은 이 정자의 주인인 단양장씨 진사 장진(張溍)이 이곳에 녹야당을 짓고 머물며 정자 이름을 자호로 취한 데서 비롯되었다. 정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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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향교는 문묘와 어진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는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이다. 풍기향교는 원래 금계동에 있었으나 1542년(중종 37)에 풍기 군수 주세붕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그 후 1692년(숙종 18)에 옛터로 다시 옮겼다가 173출처 : 유교넷 -
320961
금선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금선정(錦仙亭)은 조선조 선비의 풍류공간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장생이마을 가운데로 금계(錦溪)의 깊은 여울목에 절벽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에 우뚝 솟은 사각 정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금선정이다. 1781년(정조 5)에 황준량의 후손이 세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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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금양정사(錦陽精舍)는 금계 황준량을 기리며 후학들이 공부했던 배움터이다. 황준량은 문과에 급제해 입신양명의 길이 열렸지만 청빈한 선비의 삶을 지향하였다. 공부에 몰두할 아담한 집을 평생 동안 꿈꾸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의 사후에 그 꿈이 이루어져 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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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숭덕사(崇德祠)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희여골)에 있다. 조선 성종·중종 연간에 활약한 황사우(黃士佑, 1486~1536)와 황섬(黃暹, 1544~1616)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정면 3칸, 측면 칸 반의 굴도리집이다. 황사우는 중종 때 대사간·대사헌·이조 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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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김씨 해우당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선성김씨 해우당고택(宣城金氏 海愚堂古宅)은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무섬)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海愚堂) 김낙풍(1825~1900)이 지은 집이다. 건축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망와의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79년경을 건축연대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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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만죽재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반남박씨 만죽재고택(潘南朴氏 晩竹齋古宅)은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무섬)마을에 있다. 16세기 박수(1641~1709) 선비가 건립하였다. 박경안이 원암에서 수도리로 옮겨 살면서 무섬마을이 처음으로 개척되었다. 박경안은 무섬마을 건너 원암에 여러 대 동안 세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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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김씨 김위진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선성김씨 김위진가옥은 김위진(金渭鎭)의 조부인 김휘윤(金輝潤, 1866~1872)이 27세에 지은 건물이다. 무섬마을 유창순 가옥 뒤편에 있는 김덕진고택 오른쪽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넓은 대지 위에 산을 등진 口자형 정침이다. 본채와 행랑채·문간채 등으로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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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김씨 김뢰진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선성김씨 김뢰진가옥은 만운고택(晩雲古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무섬)마을에 있다. 만운은 김휘걸(金輝杰, 1864~1937)의 호이다. 김휘걸은 선성김씨 김뢰진가옥을 지은 후 7남매를 데리고 생활하다 생활공간이 부족하여 지금으로부터 60출처 : 유교넷 -
320968
선성김씨 김덕진고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선성김씨 김덕진가옥은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석고택(我石古宅)이라고도 한다. 이 가옥은 18세기에 건축된 목조와가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반남박씨가 건립하였으나, 현 소유자의 4대 조부인 김락기(金樂沂, 1826~1892)가 매입한 뒤출처 : 유교넷 -
320969
종릉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종릉재사(鐘陵齋舍)는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승문리 유릉(버드랭이)마을에 있다. 조선 개국 공신 유빈(柳濱, 1267~?)의 묘 아래에 있는데, 그의 후손인 졸암 유영순(柳永詢, 1552~?)이 1606년(선조 39)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 건축했다. 유빈은 조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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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난고서당은 고란골을 개척한 박내길과 박처길 형제가 8개 문중 인사들과 함께 인재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 1688년(숙종 14) 마을 장노들이 발기하여 공부하기에 좋은 자리라 하여 남산 앞 기슭에 터를 잡고 건물을 짓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였다. 1689년 봄에 공사가출처 : 유교넷 -
320971
창계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창계정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조제리(助梯里) 삼계(三溪) 마을 뒤 언덕에 있다. 선비 박삼수(朴三秀)는 무고대(舞鼓臺)에 두어 칸 정자를 지으려다가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는 곁에 작은 집을 얽어 ‘창계정사’라 편액하고, 옛글을 읽으며 후학을 지도하는 것으로출처 : 유교넷 -
320972
동호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동호정(東湖亭)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平恩面) 강동리(江東里)에 있으며, 배현봉(裵顯奉)이 그의 부친 배상길(裵相吉)을 위해 세웠다. 동호정은 산수가 어우러진 풍광 보다도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부친에 대한 효성과 동기간의 우애가 그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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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 인동장씨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금광리 인동장씨가옥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 2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중턱에 단산을 뒤로 하고, 왼쪽에 가랑봉, 오른쪽에 불로봉, 앞쪽에 내성천을 마주하며 동북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장연구(張衍矩, 1802~1892)의 행장을 참고로 하면 이 가옥은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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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심원정(心遠亭)은 경상북도 영주시 금광리에 있다. 장여화가 세속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은거를 꿈꾸며 이름 지어 놓았던 것을 그의 후손이 정자로 완성했다. 심원정 내부에 있는 다리와 연못은 우리나라의 정자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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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 장석우가옥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인동장씨 장석우가옥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 2리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심원정(心遠亭) 뒤편에 위치한 이 집은 1800년대 초에 건립된 가옥으로 처음에는 까치구멍집인 안채만 있었으나 이후에 사랑채와 방앗간채를 증축하여 튼 口자형 집이 되었다. 이 튼 口자형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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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석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침석정(枕石亭)은 헌종 때 서계상(徐繼祥)의 후손 서병민(徐丙玟)이 그를 추모하여 건립하였다. 서계상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치욕스러운 화의(和議)에 울분을 품고는 분연히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처음에 청부(靑鳧 : 청송의 옛 이름)에 자리를 잡았으나 나중에 양양(襄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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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엄 / 유교문화>유적 / 미상"심서엄(深棲广)은 경상북도 영주 남쪽 30리 평은면 용혈 2리에 있는데, 안동김씨 김영하(金永河)가 세웠다. 그 후 서숙에서 공부하던 제자들이 유덕을 흠모하여 심서엄을 중건했다고 한다. ‘엄(广)’자를 보면 그 자체로 집인데, 겉을 좀 두르기는 했지만 속이 없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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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 간재 이덕홍이 세운 오계정사의 후신으로 정사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지자 1600년(선조 33)에 이덕홍의 장남인 이시가 쌍계마을로 이건하고 한호의 글씨로 관성재·관서헌의 편액을 걸었다. 1665(현종 6)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존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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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만대정(晩對亭)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에 있다. 저녁풍경이 아름다운 정자이다. 조선시대 송복원이 영주 고을 평은면 언덕에 정자를 세우고 미처 이름을 짓지 않고 있었다. 친구인 오운(吳澐)이 우연히 들렀다가 사방을 둘러보고는, 두보(杜甫)의 「백제성루(白帝城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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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암 / 유교문화>유적 / 미상양지암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 양지암(養芝庵)마을에 있다. 수안김씨(遂安金氏) 김언광이 아버지인 현감 김정몽의 묘지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운 재사이다. 그러나 김언광은 딸만 셋을 두어 사위인 김린·김봉상·박대령에게 외손봉사를 유언했다. 이 후 이 재사는 그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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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그 후 1544년(중종 39)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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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순흥향교는 소수서원 맞은 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문루인 영귀루를 지나면 동재와 주사가 명륜당 앞에 있고, 명륜당 뒤의 내삼문을 통과하면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 앞에는 동무·서무가 마주보고 있다. 크게 보아 대성전과 명륜당, 영귀루가 남북으로 일직선상으로 배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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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강학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소수서원에서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명륜당(明倫堂)이라 불린다. 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강학당의 지붕 처마 밑에 ‘백운동(白雲洞)’이라는 편액이, 그리고 강당 내부 북면에는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은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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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문성공묘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소수서원 경내에 있는 사당이다. 문성공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안축(安軸)·안보(安輔)·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인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좌(柱座)를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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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금성단은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여섯 째 아들.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아우)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그와 연루되어 순절한 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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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계구곡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배점리에서 초암사에 이르는 계곡을 죽계구곡이라 한다. 옛날 퇴계 이황 선생이 계곡의 절경에 심취하여 물 흐르는 소리가 노래 소리 같다하여 각 계곡마다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며 죽계구곡이라 불렀다. 계곡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 울창한 푸르른 숲, 그 사이로 보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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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정려비 / 유교문화>유적 / 미상배순은 조선 중기 때의 사람으로 1615년(광해군 7)에 충신과 효자의 면모를 인정받아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 받았다. 이를 정려(旌閭)라고 하는데, 정려비는 1649년(인조 27) 그의 손자 배종이 세웠다. 지금의 정려비는 1755년(영조 31) 그의 7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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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현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고려 말 안석(安碩)과 그의 세 아들 안축(安軸)·안보(安輔)·안집(安輯), 4명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우물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우물은 오래 전부터 대대로 이 마을에 살았던 안석의 집안에 있던 것으로, 이 우물의 물을 마시고 산 덕에 그 집안에서 여러 명의 명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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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숙묘 / 유교문화>유적 / 미상어숙묘는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처음 조사하였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무덤은 일제시기에 도굴되었는데 무덤 안에 장막이 쳐져 있었고, 장막과 벽면에 사람과 뱀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사신(四神)과 생활풍속도가 결합된 형태인 것으로 볼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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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매양정(梅陽亭)은 병산(缾山) 김난상(金鸞祥)이 한양 도제동(道濟洞)에 건립하였다. 후손들이 1882년(고종 19) 청도김씨의 세거지인 경상북도 영주시 구수동으로 이건하였다. 1944년 후손 김조영이 한저마을에 중건하였는데, 한저마을의 약간 비탈진 언덕에 남향으로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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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육우당(六友堂)은 병자호란 화의 후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 2동 원당(元塘)에 박회무(朴檜茂)가 건립하고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후 후손들이 현 위치인 순흥으로 가는 길에 이건하였다. 육우당 좌측에 소고 박승임의 사당이 있고, 정면의 양옥집에 후손이 살고 있다. 도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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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주에서 순흥으로 길을 잡아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서쪽 산 아래에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한 정자를 발견하게 된다. 삼수당이다. 주인과 후손들의 무관심 탓인지는 몰라도 정자 마당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이미 고사목(枯死木)이 되어 버려서 현재 이 정자자 처한 상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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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괴정은 육우당과 소고사당에서 약 300m 쯤에 위치한다. 솔숲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 위에 남서쪽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뒤편에는 큰 도토리나무와 밤나무가 있고,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서천의 냇물과 흰 모래톱을 볼 수 있는 고요한 곳에 위치한 정자이다. 괴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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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운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단운재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상망동 단운(丹雲)마을에 위치한다.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사복재(思復齎) 권정(權定)의 손자인 현감 권경행(權景行, 1415~1484)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이 재사는 1484년 권경행을 암자 뒤에 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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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암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검암정사(儉巖精舍)는 현감 정언숙(丁彦王+肅, 1600~1693)이 원주 치악산 밑의 검암리(儉巖里)에 건립하였다. 그 후손들이 1925년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 2동 줄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이 정사는 풍류 보다는 교육 활동을 많이 한 곳이다. 검암정사는 정면 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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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원래 안동군 임하면 기사리에 고려 좌사간(左司諫) 권정(權定)이 건립하였는데 후손들이 이 고장으로 이주하였고, 1780년(정조 4)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동구대(東龜臺)와 서구대(西龜臺)가 팔짱을 낀 것처럼 둘러있고 서천(西川)의 물이 돌아 흐르며 넓은 들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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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영훈정은 1468년(세조 14)에 군수 정종소(鄭從韶)가 건립하여 영접과 전송을 하는데 사용하던 곳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정자의 이름을 명명하고 현판을 썼다. 1644년(인조 22)에 군수 신속(申洬)이 중건하였고, 그 후에 옛 영주군 청사 서쪽에 이건하여 지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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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송대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사복재(思復齋) 권정(權定)은 고려 말엽 절신(節臣)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켜 벼슬을 버리고 안동군 임하현 기사리(棄仕里)로 낙향하여 반구정(返舊亭)과 봉송대(奉松臺)를 세우고 은둔하였다. 반구정과 봉송대는 후일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는데, 현출처 : 유교넷 -
320999
낙운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낙운정(洛雲亭)은 옛날의 영주군청, 현재는 영주시 의회 건물로 쓰이는 곳을 옆으로 돌아 속칭 선계동(仙溪洞)이란 곳을 한참 들어가면 철탄산(鐵呑山)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영주초등학교가 있고 영훈정(迎薰亭)이 지척에 자리하고 있다. 가락영주종친회(駕洛榮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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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가학루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옛 영천군의 동헌 앞에 있던 문루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영주초등학교가 건립되면서 동헌과 함께 철거되어 현재는 경상북도 영주시 영주동 구성산 위에 있다. 가학루는 구성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누각의 이름을 가학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