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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1501

    與金孟言(昌燮)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昌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鶴湖 金奉祖(1572~1630)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당시 德業과 文章이 성대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전하면서 저자의 고향이 바로 선생의 ‘遺馥之地’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02

    答族弟景七(休陽)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弟 休陽에게 답한 편지이다. 초학자는 오직 ‘勤’자 하나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요지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科業을 폐하고 名利의 길을 끊었더라도 배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03

    居接錄後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榮州鄕校의 󰡔居接錄󰡕과 관련된 後序이다. 金啓鎭이 榮州 郡守로 부임하여 明倫堂과 尊賢堂 등 學舍를 수리하고 學田을 넓힌 일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鄕校에 걸려 있는 1894년(고종 31)에 朴遇尙이 쓴 「故侯金公修學舍廣學田事實」에 관련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전하고
    출처 : 유교넷
  • 321504

    起菴詩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禹昌(1830∼1906)의 詩와 관련된 序文이다. 字는 殷圭이며, 號는 起菴, 本貫은 咸昌이다. 부친은 鎭泌이며, 어머니는 安東權氏 昉度의 딸이다. 외삼촌 權載珽을 사사하였고, 1883년(고종 20) 도내 유생들이 鄭經世의 문묘배향을 주장하여 疏를 올릴 때 疏頭가
    출처 : 유교넷
  • 321505

    懼菴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大父 好笑公이 팔십 평생을 하루처럼 아무런 근심과 두려움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胤子 蓮谷翁이 부친이 평소 머물렀던 암자를 ‘懼’로 지었다고 전하면서 그 까닭을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321506

    闕里社重修記(代人作) 2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榮州의 泗溪와 洙川 사이에 있으며, 龜山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闕里社를 重修한 뒤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지은 記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1507

    左松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松齋 李堣(1469∼1517)의 후손인 친구 李聖在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오랫동안 살아온 거처 왼쪽 언덕 위에 있는 늙은 소나무를 ‘左松’이라고 이름 지은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전하고 견해를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321508

    農坡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豐基 동쪽에 農坡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거처를 지나다가 들려서는 자신이 지은 「農坡說」을 보여주면 글을 請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09

    錦南記(幷銘)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錦南이라는 號를 짓게 된 경위와 羅州의 옛날 명칭이 ‘錦’자와 관계가 깊다는 등 그 의미를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10

    錦翁傳神記 2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자신의 모습을 마치 눈앞에서 한 폭의 초상화를 보는 것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후인들이 만약 나를 알고자 한다면 내 용모를 보고 웃지 말고 마음을 보고 본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11

    書晉公(守誠)孝行錄後 2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어느 날 晉祚永이 5대조 晉守誠의 효행과 관련된 記行錄을 가져와서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선조들은 모두 南原人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12

    書朴臺端(遇賢)玆山錄後 2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朴遇賢(1829~1907)의 󰡔玆山錄󰡕을 보고 지은 글이다. 字는 穉文이며, 號는 錦坡, 本貫은 高靈이다. 부친은 秀龍이고, 어머니는 眞城李氏로 退溪의 후손인 日淳의 딸이다. 1869년(고종 6) 謁聖文科에 급제하였으며, 承文院副正字와 司憲府監察 등을 역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13

    家藏古硯識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집에 두 개의 古硯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대나무 잎이 새겨진 것으로 宗宅에서 所藏하고 있다가 잃어버렸으며, 다른 하나는 포도와 매화 그리고 대나무가 함께 그려진 것으로 집에서 소장하고 있었다고 전하면서 소장하게 된 경위와 보관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14

    書三禎七吉兩墓所謄錄後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祖父와 부친의 두 墓所에 성묘를 갔을 때 묘소가 위치한 곳에 대한 기록을 등사하고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1515

    書家季應晉手謄通鑑後 3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동생인 應晉이 手謄한 󰡔通鑑󰡕을 보고 지은 글이다. 동생이 50이 가까운 나이에 󰡔十九史󰡕를 手抄한 것을 보니 몇 책이 특히 볼 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16

    金周彦(汝奭)哀辭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汝奭을 위해 지은 哀辭이다. 姓은 서로 달랐으나 骨肉과도 같아서 그대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그대도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17

    祭先祖六友堂先生文(1878)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先祖 六友堂 朴檜茂(1755~1666)에게 올린 祭文으로 1878년(고종 15) 緬禮 때에 부친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字는 仲植이며, 號는 六友堂, 本貫은 潘南이다. 牧使 承任의 손자이다. 鄭逑와 鄭經世의 門人으로 어려서부터 중후한 성품을 지녀 成人의 기품을 지녔
    출처 : 유교넷
  • 321518

    祭觀卜齋金公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騏獻(1797~?)에게 올린 祭文이다. 字는 舜擧이며, 號는 觀卜齋, 本貫은 咸昌이다. 勿巖 隆의 8대손이다. 1823년(순조 23) 文科에 급제하였으며, 承文院正字‧司憲府監察‧司憲府正言 등을 역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19

    祭族叔處士公(齊崙)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叔 處士公 齊崙에게 올린 祭文이다. 1787 년(고종 15)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했던 일을 회상하면서 항상 굳건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으니 주변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0

    祭再從叔吾軒公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再從叔 吾軒公에게 올린 祭文이다. 도량이 넓으시고 용모가 단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孝友와 和睦의 모범이 되셨던 생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1

    祭族叔懼菴公(齊輔)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叔 懼菴公 齊輔에게 올린 祭文이다. 1892 년(철종 13) 배우자를 잃었을 때 격려를 해주신 일을 회상하면서 배움의 길에 있어서나 집안의 대소사 등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의지할 바를 잃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2

    祭外王考密窩權公(錫元)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外王考 密窩 權錫元에게 올린 祭文이다. 생전의 단정하고 엄숙하던 모습을 회상하면서 바다와 산처럼 넓고 깊은 은혜를 어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23

    祭宗叔處士公(齊榮)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宗叔 處士公 齊榮에게 올린 祭文이다. 팔순이 되도록 강녕한 모습을 간직하시고 집안의 어른으로 옛 풍속을 이어받으셨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24

    祭族祖菊泉公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祖 菊泉公에게 올린 祭文이다. 집안의 화목을 위해 애쓰시고 자제들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던 모습을 그리며 애통한 슬픔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5

    祭金殷弼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殷弼에게 올린 祭文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情誼를 떠올리면서 평소 병도 없었던 사람이 어찌 병이 있는 사람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느냐며 의지할 바를 잃은 심정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6

    祭金丈(樂洪)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樂洪에게 올린 祭文이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孝友를 존숭하고 집안의 화목을 위해 힘쓰던 생전의 모습을 그리며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7

    祭金聖欽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金聖欽에게 올린 祭文이다. 평소 형제처럼 가까웠던 이를 떠나보내고 그 슬픔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8

    祭族祖(禧壽)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祖 禧壽에게 올린 祭文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생전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최근 2년 여 동안 뵙지를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시게 되어 슬픔이 더욱 크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29

    祭金表弟庸必(洛升)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表弟 金洛升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철이 들면서부터 형제처럼 함께 지냈던 50여 년 세월을 회상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30

    祭族弟成弼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族弟 成弼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평소 뛰어난 才質로 기대가 매우 컸다고 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두 아들이 모두 부지런하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31

    哭從子(勝彧)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從子 勝彧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이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남아 있는 부인과 아들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물로 대신할 뿐이라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32

    鄕序堂重修上樑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榮州 龜城山 남쪽 濟民樓 옆에 있었던 鄕序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1533

    德洞齋舍講堂重修上樑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榮州 古峴에 있던 德洞齋舍 講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1534

    道林書堂重修上樑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榮州 伊山 斗月에 있던 道林書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1535

    三樂堂宗宅重修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榮州 寒亭에 거주했던 三樂堂 朴樅茂(1582 ∼1664)의 宗宅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1536

    王考槐軒府君家狀 2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王考 槐軒府君 朴在璣(1766~1846)의 家狀이다. 字는 穉敬, 本貫은 潘南이다. 高祖는 世南이고 曾祖는 孝元이며, 祖父는 時喆이고 부친은 道中이다. 어머니는 醴泉權氏 堳의 딸이다. 1766년(영조 42) 古川里에서 태어났으며, 家勢가 淸寒하였으나 부모를 섬기고 자
    출처 : 유교넷
  • 321537

    本生王考處士府君家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本生王考 處士府君 在德(1783~1850)의 家狀이다. 字는 穉道, 本貫은 潘南이다. 高祖는 世南이고 曾祖는 孝元이며, 祖父는 時杰이고 부친은 萬中이다. 어머니는 安東權氏 德行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6월 15일 剡溪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부모의 뜻을
    출처 : 유교넷
  • 321538

    先考學生府君家狀 3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先考 學生府君 齊望(1814~1883)의 家狀이다. 字는 聖登, 本貫은 潘南이다. 高祖는 孝元이고 曾祖는 時喆이며, 祖父는 道中이고 부친은 在德이다. 어머니는 全州柳氏 尙潤의 딸이다. 생모는 德山宋氏 宅星의 딸이다. 1814년(순조 14) 8월 28일 剡溪에서 태어났
    출처 : 유교넷
  • 321539

    先妣孺人安東權氏行畧 3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先妣 安東權氏(1815~1852)의 行畧이다. 祖父는 文赫이고 부친은 錫元이다. 어머니는 安東金氏 達倫의 딸이다. 1815년(순조 15) 10월 1일 태어났으며, 1852년(철종 3) 5월 2일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1831년(순조 31) 17세의 나이로 출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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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540

    三弟秀士君行畧(1890) 3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三弟 秀士君 朴箕陽(1845~1897)의 行畧이다. 字는 應武이다. 1845년(헌종 11) 12월 16일 修義洞 본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형제들 중에서도 남달리 용모가 단정하고 성격이 온화하였다. 1852년(철종 3)에는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8세의 어린
    출처 : 유교넷
  • 321541

    子婦孺人宣城金氏記畧 4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子婦 宣城金氏의 記畧이다. 부친은 輝轍이고 어머니는 延安金氏 有淵의 딸이다. 1878년(고종 15)에 禾洞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동들이 唐詩를 익히는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외우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31) 출가하여 어진 부녀자의 도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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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542

    陶山廟變時上言(代儒生作未徹)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儒生을 대신하여 지은 글이다. 10월 1일 香禮를 위해 陶山書院에 들어갔다가 神門의 交鍵이 이미 부서지고 廟戶의 雙扇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하면서 서원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43

    從先祖槐川公請贈爵上言(代本孫作)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從先祖 槐川公 朴弘儁(1704~1755)의 贈爵을 請하는 글이다. 字는 子敬이며, 號는 槐川, 本貫은 潘南이다. 嘯皐 承任(1517~1586)의 7대손이며, 生員 泰來(1673~1738)의 아들이다. 1735년(영조 11) 文科에 급제하여
    출처 : 유교넷
  • 321544

    月城李氏請立字行變通事上言(代本孫作)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月城李氏 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李文靖子孫勿施大辟'이라고 내려준 御筆에 대한 기록이 󰡔麗史提綱󰡕의 「鷄林世家」와 「廣西記」 등에 수록되어 있다고 전하면서 그 御旨를 銘心鐫肺하고 代를 거듭하더라도 廢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再造의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바란
    출처 : 유교넷
  • 321545

    苦海雜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저자가 병상에 있으면서 평소 어려웠던 생활을 돌아보며 경계로 삼고자 기록한 글이다.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고통[忍飢之苦]‧추위를 참아야 하는 고통[耐寒之苦]‧공업을 쌓아야 하는 고통[攻業之苦]‧과거를 준비하는 고통[塲屋之苦]‧일을 주선하고 처리해야 하는 고통[幹事之苦
    출처 : 유교넷
  • 321546

    漫錄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漢나라 昭烈皇帝가 아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明心寶鑑󰡕에 나오는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라는 글을 전하면서 伯父가 일생동안 겪은 일들 중에서 자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아서 수록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547

    書與張生(師龍) 2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張師龍에 대한 이야기를 몇 단락으로 나누어 전하면서 학문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48

    睡戒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아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일찍 일어나서 문을 열고 정원을 쓸어야 한다는 등 잠자는 것에 대한 경계를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49

    酒訟 2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술을 적당하게 마시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게 마신다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술에 대한 경계를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550

    鏡嘲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데, 모습이 여위었고 귀밑머리가 흰 것이 어디를 보더라도 자신이 아니어서 거울을 보고 웃었다고 하면서 내가 거울을 보면서 웃는 것인지 거울이 나를 보고 웃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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