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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孟言(昌燮)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昌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鶴湖 金奉祖(1572~1630)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당시 德業과 文章이 성대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전하면서 저자의 고향이 바로 선생의 ‘遺馥之地’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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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族弟景七(休陽)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弟 休陽에게 답한 편지이다. 초학자는 오직 ‘勤’자 하나를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요지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科業을 폐하고 名利의 길을 끊었더라도 배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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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接錄後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榮州鄕校의 居接錄과 관련된 後序이다. 金啓鎭이 榮州 郡守로 부임하여 明倫堂과 尊賢堂 등 學舍를 수리하고 學田을 넓힌 일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鄕校에 걸려 있는 1894년(고종 31)에 朴遇尙이 쓴 「故侯金公修學舍廣學田事實」에 관련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전하고출처 : 유교넷 -
321504
起菴詩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禹昌(1830∼1906)의 詩와 관련된 序文이다. 字는 殷圭이며, 號는 起菴, 本貫은 咸昌이다. 부친은 鎭泌이며, 어머니는 安東權氏 昉度의 딸이다. 외삼촌 權載珽을 사사하였고, 1883년(고종 20) 도내 유생들이 鄭經世의 문묘배향을 주장하여 疏를 올릴 때 疏頭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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懼菴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大父 好笑公이 팔십 평생을 하루처럼 아무런 근심과 두려움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胤子 蓮谷翁이 부친이 평소 머물렀던 암자를 ‘懼’로 지었다고 전하면서 그 까닭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321506
闕里社重修記(代人作) 2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榮州의 泗溪와 洙川 사이에 있으며, 龜山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闕里社를 重修한 뒤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지은 記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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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松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松齋 李堣(1469∼1517)의 후손인 친구 李聖在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오랫동안 살아온 거처 왼쪽 언덕 위에 있는 늙은 소나무를 ‘左松’이라고 이름 지은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전하고 견해를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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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坡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豐基 동쪽에 農坡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거처를 지나다가 들려서는 자신이 지은 「農坡說」을 보여주면 글을 請하여 지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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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南記(幷銘)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錦南이라는 號를 짓게 된 경위와 羅州의 옛날 명칭이 ‘錦’자와 관계가 깊다는 등 그 의미를 간략하게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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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翁傳神記 2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자신의 모습을 마치 눈앞에서 한 폭의 초상화를 보는 것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후인들이 만약 나를 알고자 한다면 내 용모를 보고 웃지 말고 마음을 보고 본받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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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晉公(守誠)孝行錄後 2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어느 날 晉祚永이 5대조 晉守誠의 효행과 관련된 記行錄을 가져와서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의 선조들은 모두 南原人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512
書朴臺端(遇賢)玆山錄後 2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朴遇賢(1829~1907)의 玆山錄을 보고 지은 글이다. 字는 穉文이며, 號는 錦坡, 本貫은 高靈이다. 부친은 秀龍이고, 어머니는 眞城李氏로 退溪의 후손인 日淳의 딸이다. 1869년(고종 6) 謁聖文科에 급제하였으며, 承文院副正字와 司憲府監察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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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藏古硯識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집에 두 개의 古硯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대나무 잎이 새겨진 것으로 宗宅에서 所藏하고 있다가 잃어버렸으며, 다른 하나는 포도와 매화 그리고 대나무가 함께 그려진 것으로 집에서 소장하고 있었다고 전하면서 소장하게 된 경위와 보관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514
書三禎七吉兩墓所謄錄後 3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祖父와 부친의 두 墓所에 성묘를 갔을 때 묘소가 위치한 곳에 대한 기록을 등사하고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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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家季應晉手謄通鑑後 3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동생인 應晉이 手謄한 通鑑을 보고 지은 글이다. 동생이 50이 가까운 나이에 十九史를 手抄한 것을 보니 몇 책이 특히 볼 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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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周彦(汝奭)哀辭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汝奭을 위해 지은 哀辭이다. 姓은 서로 달랐으나 骨肉과도 같아서 그대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그대도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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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先祖六友堂先生文(1878) 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先祖 六友堂 朴檜茂(1755~1666)에게 올린 祭文으로 1878년(고종 15) 緬禮 때에 부친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字는 仲植이며, 號는 六友堂, 本貫은 潘南이다. 牧使 承任의 손자이다. 鄭逑와 鄭經世의 門人으로 어려서부터 중후한 성품을 지녀 成人의 기품을 지녔출처 : 유교넷 -
321518
祭觀卜齋金公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騏獻(1797~?)에게 올린 祭文이다. 字는 舜擧이며, 號는 觀卜齋, 本貫은 咸昌이다. 勿巖 隆의 8대손이다. 1823년(순조 23) 文科에 급제하였으며, 承文院正字‧司憲府監察‧司憲府正言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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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處士公(齊崙)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叔 處士公 齊崙에게 올린 祭文이다. 1787 년(고종 15)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했던 일을 회상하면서 항상 굳건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으니 주변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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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吾軒公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再從叔 吾軒公에게 올린 祭文이다. 도량이 넓으시고 용모가 단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孝友와 和睦의 모범이 되셨던 생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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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懼菴公(齊輔)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叔 懼菴公 齊輔에게 올린 祭文이다. 1892 년(철종 13) 배우자를 잃었을 때 격려를 해주신 일을 회상하면서 배움의 길에 있어서나 집안의 대소사 등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의지할 바를 잃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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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王考密窩權公(錫元)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外王考 密窩 權錫元에게 올린 祭文이다. 생전의 단정하고 엄숙하던 모습을 회상하면서 바다와 산처럼 넓고 깊은 은혜를 어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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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叔處士公(齊榮)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宗叔 處士公 齊榮에게 올린 祭文이다. 팔순이 되도록 강녕한 모습을 간직하시고 집안의 어른으로 옛 풍속을 이어받으셨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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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祖菊泉公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祖 菊泉公에게 올린 祭文이다. 집안의 화목을 위해 애쓰시고 자제들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던 모습을 그리며 애통한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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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殷弼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殷弼에게 올린 祭文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했던 情誼를 떠올리면서 평소 병도 없었던 사람이 어찌 병이 있는 사람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느냐며 의지할 바를 잃은 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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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丈(樂洪)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樂洪에게 올린 祭文이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孝友를 존숭하고 집안의 화목을 위해 힘쓰던 생전의 모습을 그리며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527
祭金聖欽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金聖欽에게 올린 祭文이다. 평소 형제처럼 가까웠던 이를 떠나보내고 그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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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祖(禧壽)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祖 禧壽에게 올린 祭文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신 생전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최근 2년 여 동안 뵙지를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시게 되어 슬픔이 더욱 크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529
祭金表弟庸必(洛升)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表弟 金洛升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철이 들면서부터 형제처럼 함께 지냈던 50여 년 세월을 회상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530
祭族弟成弼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族弟 成弼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평소 뛰어난 才質로 기대가 매우 컸다고 하면서 떠나보낸 슬픔을 전하고, 두 아들이 모두 부지런하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531
哭從子(勝彧)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從子 勝彧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이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남아 있는 부인과 아들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물로 대신할 뿐이라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532
鄕序堂重修上樑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榮州 龜城山 남쪽 濟民樓 옆에 있었던 鄕序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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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洞齋舍講堂重修上樑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榮州 古峴에 있던 德洞齋舍 講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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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林書堂重修上樑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榮州 伊山 斗月에 있던 道林書堂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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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樂堂宗宅重修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榮州 寒亭에 거주했던 三樂堂 朴樅茂(1582 ∼1664)의 宗宅을 重修하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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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考槐軒府君家狀 2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王考 槐軒府君 朴在璣(1766~1846)의 家狀이다. 字는 穉敬, 本貫은 潘南이다. 高祖는 世南이고 曾祖는 孝元이며, 祖父는 時喆이고 부친은 道中이다. 어머니는 醴泉權氏 堳의 딸이다. 1766년(영조 42) 古川里에서 태어났으며, 家勢가 淸寒하였으나 부모를 섬기고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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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王考處士府君家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本生王考 處士府君 在德(1783~1850)의 家狀이다. 字는 穉道, 本貫은 潘南이다. 高祖는 世南이고 曾祖는 孝元이며, 祖父는 時杰이고 부친은 萬中이다. 어머니는 安東權氏 德行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6월 15일 剡溪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부모의 뜻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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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學生府君家狀 33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先考 學生府君 齊望(1814~1883)의 家狀이다. 字는 聖登, 本貫은 潘南이다. 高祖는 孝元이고 曾祖는 時喆이며, 祖父는 道中이고 부친은 在德이다. 어머니는 全州柳氏 尙潤의 딸이다. 생모는 德山宋氏 宅星의 딸이다. 1814년(순조 14) 8월 28일 剡溪에서 태어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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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孺人安東權氏行畧 37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先妣 安東權氏(1815~1852)의 行畧이다. 祖父는 文赫이고 부친은 錫元이다. 어머니는 安東金氏 達倫의 딸이다. 1815년(순조 15) 10월 1일 태어났으며, 1852년(철종 3) 5월 2일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1831년(순조 31) 17세의 나이로 출가하여출처 : 유교넷 -
321540
三弟秀士君行畧(1890) 39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三弟 秀士君 朴箕陽(1845~1897)의 行畧이다. 字는 應武이다. 1845년(헌종 11) 12월 16일 修義洞 본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형제들 중에서도 남달리 용모가 단정하고 성격이 온화하였다. 1852년(철종 3)에는 모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8세의 어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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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婦孺人宣城金氏記畧 4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子婦 宣城金氏의 記畧이다. 부친은 輝轍이고 어머니는 延安金氏 有淵의 딸이다. 1878년(고종 15)에 禾洞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동들이 唐詩를 익히는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외우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31) 출가하여 어진 부녀자의 도리로출처 : 유교넷 -
321542
陶山廟變時上言(代儒生作未徹)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儒生을 대신하여 지은 글이다. 10월 1일 香禮를 위해 陶山書院에 들어갔다가 神門의 交鍵이 이미 부서지고 廟戶의 雙扇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하면서 서원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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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先祖槐川公請贈爵上言(代本孫作) 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從先祖 槐川公 朴弘儁(1704~1755)의 贈爵을 請하는 글이다. 字는 子敬이며, 號는 槐川, 本貫은 潘南이다. 嘯皐 承任(1517~1586)의 7대손이며, 生員 泰來(1673~1738)의 아들이다. 1735년(영조 11) 文科에 급제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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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城李氏請立字行變通事上言(代本孫作) 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月城李氏 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것으로 ‘李文靖子孫勿施大辟'이라고 내려준 御筆에 대한 기록이 麗史提綱의 「鷄林世家」와 「廣西記」 등에 수록되어 있다고 전하면서 그 御旨를 銘心鐫肺하고 代를 거듭하더라도 廢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再造의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바란출처 : 유교넷 -
321545
苦海雜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저자가 병상에 있으면서 평소 어려웠던 생활을 돌아보며 경계로 삼고자 기록한 글이다.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고통[忍飢之苦]‧추위를 참아야 하는 고통[耐寒之苦]‧공업을 쌓아야 하는 고통[攻業之苦]‧과거를 준비하는 고통[塲屋之苦]‧일을 주선하고 처리해야 하는 고통[幹事之苦출처 : 유교넷 -
321546
漫錄 18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漢나라 昭烈皇帝가 아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明心寶鑑에 나오는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라는 글을 전하면서 伯父가 일생동안 겪은 일들 중에서 자손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아서 수록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547
書與張生(師龍) 22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張師龍에 대한 이야기를 몇 단락으로 나누어 전하면서 학문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548
睡戒 24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아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일찍 일어나서 문을 열고 정원을 쓸어야 한다는 등 잠자는 것에 대한 경계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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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訟 25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술을 적당하게 마시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게 마신다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술에 대한 경계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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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嘲 26 / 기록자료>고도서 / 박규양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데, 모습이 여위었고 귀밑머리가 흰 것이 어디를 보더라도 자신이 아니어서 거울을 보고 웃었다고 하면서 내가 거울을 보면서 웃는 것인지 거울이 나를 보고 웃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