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1601
答金啓周別紙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金應洛에게 답한 별지이다. 殮襲의 절차를 族親과 붕우에게 맡기는 것, 七星板을 소렴 때 쓰는 것, 묶지 않고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것은 살아나기를 기다는 것, 心喪 3년에 관한 것, 絞帶를 칡으로 바꾸지 않는 것, 부인이 重喪 때 상복을 입는 방법, 모친상 중에 그 자출처 : 유교넷 -
321602
答族姪國明(聲達)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질 聲達(字 國明)에게 답한 편지이다. 천하의 사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니, 만나는 일에 따라 편안히 시행하고 천명을 믿고 행하며, 내 능력에 따라 내 도리를 다하도록 힘쓴다면 피부가 깎기는 근심과 눈살을 찌푸리는 근심이 날마다 눈앞에 닥쳐도 너가 큰출처 : 유교넷 -
321603
答族姪德夫(馨遠)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질 馨遠(字 德夫)에게 답한 편지로 심신수양과 학업에 대해 당부한 것이다. 뜻을 확고하게 세우고 산을 무너뜨리듯 욕심을 막고, 우물을 파듯 학문에 힘쓰며, 남들이 비웃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만두고, 남들이 칭송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장대하게 생각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출처 : 유교넷 -
321604
答德夫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질 德夫에게 답한 편지이다. 모든 일은 뜻을 확고하게 세우는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유가의 학문은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하고 급하지 않은 일은 제거하고, 성현의 서적을 가지고 날마다 공부한다면출처 : 유교넷 -
321605
答德夫別紙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덕부에게 답한 별지이다. 祔葬과 祔祭에 대하여 답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21606
答族姪德謙(柄遠)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族姪 柄遠(字 德謙)에게 답한 편지이다. 뜻을 확고하게 세우고 만나는 일에 따라 힘써 나간다면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07
答德謙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질 병원에게 답한 편지이다. 가문의 법도를 어기지 말라고 당부한 것과 祠堂의 위차에 대해서 논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1608
答族姪孟穆(聲駿)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질 聲駿(字 孟穆)에게 답한 편지이다. 우리 가문이 문학을 대대로 전하여 세상의 추앙을 받았는데, 지금은 많이 실추되었으니 그대들이 힘써서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禫祭의 절차에 대해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09
請復祠院儒疏(1871)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臨川書院 복설을 청하려 1871년(고종 8)에 鄕儒들이 올린 소장이다.출처 : 유교넷 -
321610
祭定齋先生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定齋 柳致明(1777~1861) 선생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류치명의 字는 誠伯이고, 호는 定齋이며, 本貫은 全州이다. 父는 晦文이며, 남한조의 문인이다. 1805년(순조 5) 별시문과 급제하고 병조참판을 역임했다. 선친과도 매우 친밀하였고 자신도 10년 동안 가르침출처 : 유교넷 -
321611
祭外舅桐巢金公(重夏)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장인 桐巢 金重夏(1784~1860) 공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金重夏의 字는 穉常이고, 號는 桐巢이며, 本貫은 豐山이다. 父는 宗鳳이다. 1835년(헌종 1) 증광문과 급제하고 전적‧정언‧사헌부지평을 역임한 후로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321612
祭荷叟朴公(箕寧)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荷叟 朴箕寧(1779~1857) 공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천성이 뛰어나고 문장은 山南의 宗匠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쓰이지 못하자 鹿門에 은거하며 효행을 실천하였다고 하였다. 저자와는 선대의 情誼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유가 친밀했음을 서술하면서 애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13
祭李愼菴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李晩慤(1815~1874)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이만각의 字는 謹休이고, 號는 愼庵이며, 本貫은 眞城이다. 彙運의 子이며, 柳致明의 문인이다. 영리의 뜻을 두지 않고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14
祭肯庵李公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肯庵 李敦禹(1807~1884)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이돈우의 字는 始能이고, 號는 肯庵이며, 本貫은 韓山이다. 象靖의 현손이며, 秀應의 子로 류치명의 문인이다. 1850년(철종 1) 문과 급제하고, 형조참의‧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15
祭權進士(世永)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진사 權世永의 제사에 올린 제문이다. 송암 권호문과 졸수재의 후손으로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고, 문단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時運이 맞지 않아 산림에 은거하면서 군자의 도리를 지켰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16
祭素軒權公(人夏)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素軒 權人夏(1805~1889)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권인하의 字는 而素이고, 호는 素軒이며, 본관은 安東이다. 宅模의 子이며, 류치명의 문인이다. 후학 양성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고, 十圖啓蒙을 공경하게 暗誦하는 資料로 삼았으며, 四端과 七情은 退溪의 敎訓을출처 : 유교넷 -
321617
祭金參判(奎運)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參判 金奎運(1801~1881)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김규운의 字는 景會이고, 號는 梧村이며, 本貫은 豐山이다. 重夏의 아들이다. 1850년(철종 1) 문과 급제하고, 대사간‧대사헌‧홍문관제학을 거쳐 刑曹參判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18
祭洪進士(淳學)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진사 洪淳學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뛰어난 재주를 가졌지만 세상의 번화한 것을 싫어하여 산림에 은거하면서 유유자적하게 한 세상을 보냈다고 하였다. 특히 저자의 선친과 나이가 비슷하고 형제처럼 친밀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저자를 친아들처럼 보살펴 주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19
祭內舅金公(樂後)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외숙 金樂後 공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후덕한 성품을 지녔고, 순수하고 근실한 행실을 베풀었으며, 문학은 입신양명할 만하고, 재주는 당시에 쓰일 만하였는데 때를 만나지 못해 산림에 은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저자의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외숙을 모친처럼 믿고 의지하려출처 : 유교넷 -
321620
祭李內兄(晩栢)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외사촌 형 李晩栢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저자는 형으로부터 특히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형이 세상을 떠나자 외롭고 더욱 그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21
祭山泉朴丈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山泉 朴周鍾(1813~1887)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박주종의 字는 聞遠이고, 號는 山泉이며, 本貫은 咸陽이다.출처 : 유교넷 -
321622
祭李丈(晩斗)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李晩斗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자질이 뛰어나고 가정의 가르침을 받아 문장은 빼어나고 행실은 순수했다고 하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려도 자신만은 곧은 도리를 지켜서 시속에 아부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가업을 잇고 자손을 잘 훈육하면서 소백산 아래 山雲 땅의 逸民이출처 : 유교넷 -
321623
祭族兄(人煥)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형 權人煥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어릴 때부터 가업을 이어서 언어는 우뚝하고 풍모는 단아하며 학문은 정밀하여 요즘 사람 중에 보기 드물다고 하였다. 형이 세상을 떠나자 화수회에서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슬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24
祭申公(浩運)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申浩運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젊은 나이에 명성이 나고 학문이 뛰어났으나 때를 만나지 못해 산림에 은거하면서 자손들을 교육하고 독서하는 것으로 한 세상을 마쳤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25
祭三從叔新溪公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삼종숙 新溪公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덕과 학문을 갖추고도 산림에 은거하였던 선조들의 뜻을 이었으며, 만년에 新溪에 은거하면서 安貧樂道 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26
祭族兄(周煥)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형 周煥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형의 마음은 너그럽고 儀範은 진솔하며 번화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강호에서 세월을 보내며 시와 술로 풍류를 즐기고, 그러면서도 가문의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27
祭族兄(有煥)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형 有煥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우리 가문은 문학과 덕행으로 가풍을 삼았는데, 덕 있는 어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이제 형에게 모든 희망이 걸려 있는데 세상을 떠나니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28
祭族叔輔卿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족숙 輔卿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총명한 자질을 타고 났으며 어질 때부터 문예가 뛰어났으며 장성해서는 학문에 힘써서 명성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뜻을 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 고아가 되고 일찍 아내를 잃고 또한 오랫동안 복통을 앓았다고 하였다. 그러다가출처 : 유교넷 -
321629
祭伯兄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백형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어질고 후덕했던 형의 인품을 서술하고 아버지처럼 저자를 돌보아 주었던 형의 기일이 되니 애통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30
哭李婿章鎬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사위 李章鎬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후사를 두지 못하고 일찍 죽은 사위를 애통해하면서 남편을 잃은 딸의 마음도 찢어지는 듯할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31
祭室人豐山金氏文(1859)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부인 풍산김씨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죽은 아내의 덕행을 서술하고, 딸을 잘 길러서 시집보내겠다고 하였고, 저승에서 친정 부모를 모시며 화락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32
長女李氏婦短招哀辭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맏딸 진성 李孺人의 죽음을 슬퍼한 글이다. 孺人은 1844년(헌종 10)에 태어나 16세에 어머니를 잃고 19세에 진성 李章鎬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이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자 자식 없이 홀몸으로 12년 동안 老翁에게 의지하여 살다가 1886년(고종 23)에 괴질로출처 : 유교넷 -
321633
再從姪聲鎬哀辭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재종질 聲鎬의 죽음을 슬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21634
曺司諫景年(錫萬)誄辭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사간 曺錫萬(1828~1878)의 죽음을 위로한 글이다. 조석만의 字는 景年이고, 本貫은 昌寧이다. 1852년(철종 2) 정시 문과에 병과 13위로 급제하여 司諫院獻納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321635
新溪公誄辭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1881년(고종 18) 신계 권공께서 향년 76세로 돌아가신데 대하여 죽음을 슬퍼하고 위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21636
金德文誄辭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1881년(고종 18) 春耻庵 金德文의 죽음을 위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21637
李羲則(龍河)誄辭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李龍河(字 羲則)의 대상날에 그의 죽음을 위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21638
先祖贈判書公墓改床石告由文(在通明山)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선조 증판서공의 묘소 상석을 改修할 때의 고유문이다. 세월이 오래되어 선조의 문헌이 멸실되고 묘소 또한 훼손되어 사초를 하고 상석을 다시 놓는다고 하였다. 선조는 고려조에 秘書著作을 지냈다.출처 : 유교넷 -
321639
新齋金公(爾甲)墓安石告由文(代本孫作)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新齋 金爾甲 공의 묘에 安石할 때의 고유문이다. 본손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1640
通德郞金公(濟萬)墓安石告由文(代本孫作)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통덕랑 金濟萬 공의 묘에 안석할 때의 고유문이다. 본손을 대신하여 지었다.출처 : 유교넷 -
321641
聖學十圖疑義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성학십도에 대하여 자신의 미진한 점을 묻고 그 점에 대하여 자세히 답변하는 형식으로 기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42
第一太極圖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太極의 위에 다시 無極을 더한 것은 어째서인가 물었다. 답변에는 태극 외에 별도로 무극이 있는 것은 아니나 무극은 지극하여 더할 수 없다는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또 善惡의 구분을 묻고 朱子의 주해를 들어 설명하였다. 中正仁義로써 정하는데 中正의 뜻을 묻고 퇴계선생의출처 : 유교넷 -
321643
第二西銘圖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西銘의 규모는 광대하고 뜻을 深遠한데 유독 서명이라 한 것은 어째서인가 묻고, 주자가 논한 東西銘을 들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44
第三小學圖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공부의 차례를 말할 때 마땅히 소학을 제일로 하는데 어째서인가 하고, 근사록 머리에서 말한 태극도를 들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45
第四大學圖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道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왔기 때문에 經傳 중에서 말한 性道는 반드시 하늘에 근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明德을 말하면서 하늘에 근본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물었다. 또 物에는 本末이 있고 일에는 終始가 있다고 하는데 본말에 本을 먼저 말하고 종시에 終출처 : 유교넷 -
321646
第五白鹿洞規圖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濂溪先生은 五賢과 함께 제향하지 않고 별도로 사당을 세운 것은 어째서인가 묻고, 그 이유를 주자대전의 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1647
第六心統性情圖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虛靈知覺이 心의 體用이 되지 않는가 묻고는, 虛靈은 心의 體이고 知覺은 心의 用이다 라고 답하였다. 허령은 氣인가 理인가 묻고는, 理氣를 합하면 物事이고 반드시 나누고자 한다면 氣의 허령이다. 그러나 氣가 허령한 까닭은 理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48
第七仁說圖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顔子가 仁을 묻자 공자가 克己復禮라 하였는데 朱子의 해설을 들어 설명하면서 그 뜻을 들으려 한다 하고, 朱子語類의 설명을 들어 답하였다. 또 仁자에 대해서 先儒들이 心之德 愛之理라 하고 또는 愛之德 心之理라 하는데 서로 같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묻고, 仁의출처 : 유교넷 -
321649
第八心學圖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良心‧本心‧赤子心‧大人心을 혹 분별할 수 있는가 묻고, 아마도 분별할 수 없을 것이라 답하며 퇴계선생의 말을 들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1650
第九敬齋箴圖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貳와 二, 參과 三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묻고, 퇴계선생께서 말한 二와 三은 成數이고, 貳와 參은 그 수를 이루는 이름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