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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1651

    第十夙興夜寐箴圖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조리와 근본이 선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묻고, 조리는 일상생활에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이며 근본이 선다는 것은 내 마음의 큰 근본이니 깊이 보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52

    燈火銘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마음은 허하면서 밝으며 어두운데서 열려 성하면 불이 난 벌판이 되고 꺼지면 죽어서 재가 된다고 마음을 등불에 비추어 지은 명이다.
    출처 : 유교넷
  • 321653

    慵漢說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인간이 성인이 되고 미치광이가 되고 현인이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부지런한 가 게으른가에 달려 있는데, 부지런히 힘쓰면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며, 나태하여 게으르면 미치광이가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언제나 부지런히 힘쓰고 잠시라도 나태한 마음을
    출처 : 유교넷
  • 321654

    戒鶯說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한성에서 돌아오면서 어느 주점에 묵었는데 안개 자욱한 새벽에 어둑한 숲속에서 수탉과 惡鳥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듣기에 매우 좋지 않았다. 사람의 소리도 이처럼 듣기 실은 소리가 있을 터이니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경계하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55

    命山續稧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金啓周 權在裕 등이 함께 도모하여 先賢의 자취를 베껴 쓰고 聯名하여 ‘命山續案’이라 하고 서문을 청하기에 써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1656

    金海金氏族譜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김해김씨 족보 서문이다. 여섯 아들 중 맏이인 수로가 가락국의 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 아들도 각각 5가야의 수장이 되었다고 한다. 김해김씨는 이 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족보를 펼쳐보는 후손은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유연히 일어나 조상을 높이고 宗族
    출처 : 유교넷
  • 321657

    學稧案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선비에게 학문이란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옷과 같으므로 하루도 지나칠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선대에 학계가 있었는데 학계가 분열된 후에는 문풍이 떨치지 못하고 士氣가 침체되었다며, 先世의 業을 잇기 위하여 이 계를 조직한다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58

    龍門齋舍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산 아래에 선조의 성묘를 편하게 하기 위해 齋舍를 짓고 쓴 기문이다. 1846년(헌종 12)에 삼종대부께서 일을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였고, 여섯 칸에 堂室을 반으로 하였으며 그 아래에 별도로 산지기의 방을 꾸몄다고 하였다. 주변 경관이 빼어나 독서하고 心性을 수양할
    출처 : 유교넷
  • 321659

    塔洞齋舍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탑동 선조의 묘소가 지금 300년이 되었으나 아직 齋閣을 짓지 못했고, 두어 칸 초가를 얽어 산지기의 방으로 꾸며 놓았는데 祭奠을 드릴 때마다 제물을 둘 곳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삼종조 進溥께서 族孫들에게 말하여 이 齋舍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321660

    草澗亭廚舍樑記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草澗亭 廚舍를 수리하게 된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1832년(순조 32)에 발생한 홍수로 인해 퇴락한 주사를 중수하였다. 이후 32년이 흐른 1863년(철종 14)에 주사가 다시 무너지는 우환이 있어 수리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61

    能川書堂重修上樑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능천서당을 중수하고 쓴 상량문이다. 능천서당은 栗里 李熹가 창건한 서당으로,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한 것을 중수하였다. 능천서당이 중수된 이후, 儒生들은 백선의 풍속을 인도하고 六經을 외우며 四書를 독서하여 ‘爲己之學’에 힘쓰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62

    觀察使丁公(胤祐)別廟重修上樑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관찰사 丁胤祐의 別廟를 중수할 때 상량문이다. 정윤우의 字는 天錫, 號는 草菴, 1570년 (선조 3) 문과에 급제한 후 都承旨 등을 거쳐 明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592년(선조 25) 壬辰倭亂 때 功을 세워 原從功臣에 策錄되었고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21663

    竹林書室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죽림서실을 짓고 상량식에 지은 글이다. 상량한 후에 儒敎가 날로 성대해지고 科業은 대대로 더해지고 훌륭한 이들이 서당에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64

    贈資憲大夫工曹判書寧越嚴公諡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嚴興道의 시호를 청할 때의 글이다. 내용의 대략은 아래와 같다. 1759년(영조 34) 공조판서로 추증하여 사육신 정렬에 배향하고 六臣祠에 봉안 치제케 하였다. 1516년(중종 11)에 어명으로 노산 묘를 찾아 수축하고, 1791년(정조 15)에 어명으로 노산군 묘를
    출처 : 유교넷
  • 321665

    定窩先生黃公請贈上言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定窩 黃龍漢의 추증을 청하는 상소이다. 黃龍漢의 字는 穉見이고, 號는 貞窩이며, 本貫은 昌原이다. 父는 直大이다. 忠北 延豊 출신으로 20대에 大山 李象靖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쳐 文績이 많고 여러 문인을 지도하였다고 하였다. 도덕과 문장이 후세의 모
    출처 : 유교넷
  • 321666

    孫孝子請贈上言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효자 孫麟燮의 추증을 청하는 상소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님께 혹 병환이 있어 젖이 나오지 않아도 울지 않고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고 하였다. 5,6세의 나이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효도는 마땅히 힘을 다해야 한다[孝當竭力]’라는 구절에 대하여 묻고
    출처 : 유교넷
  • 321667

    金孝子金孝婦請旌閭上言(代大丘儒生作)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대구 유생들의 대신해서 지은 상소이다. 대구부 가까이에 사는 효자 金和淳과 그의 아들 金聖哲, 그리고 김성철의 아내 金氏의 효행이 지극하여 세상에 모범이 된다며 정려를 내려주기를 청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68

    祖考通德郞府君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祖考 權進漢의 유사이다. 字는 濯之이고, 號는 竹窩이며, 本貫은 醴泉이다. 1763년(영조 39)에 태어났다. 어려서 남다른 기품이 있었고 특히 인륜에 돈독하였다. 부모상에 시묘살이하며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奉祭祀에 정성을 다하였다. 先代의 祭田을 기록하여 魚鱗圖와
    출처 : 유교넷
  • 321669

    本生考成均生員府君遺事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본가 아버지 성균생원 權顥相의 유사이다. 자는 淳夫, 본관은 醴泉이다. 1794년(정조 18)에 태어났다. 어려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아울러 科擧공부도 하였다. 재주가 영민하고 견해가 투철하며 章句에서 제가의 註疏에 이르기까지 관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1822년(순
    출처 : 유교넷
  • 321670

    齊平公松堂先生遺事畧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齊平公 權孟孫의 유사이다. 字는 孝伯이고, 號는 松堂이며, 本貫은 醴泉이다. 1390년(공양왕 2)에 태어났다. 牧使 詳의 아들이다. 1408년(태종 8) 式年文科에, 1427년(세종 9) 文科重試에 각각 乙科로 급제, 공조판서‧대제학‧이조판서‧咸吉道都觀察使 등을 역
    출처 : 유교넷
  • 321671

    睡軒先生遺事輯略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權五福의 유사이다. 자는 嚮之이고, 號는 睡軒이며, 本貫은 醴泉이다. 1467년(세조 12) 용문면 하금곡리에서 태어났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다. 1486년(성종 17) 형 오행‧오기와 함께 생원이 되고, 같은 해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에 뽑혀 등용되었다가,
    출처 : 유교넷
  • 321672

    鄭成一의 행장이다. 字는 乃實이고, 本貫은 晉州이다. 1789년(정조 13)에 태어났다. 1816년(순조 16) 28세에 문관에 급제하고 승문원정자가 되었으며, 1829년(순조 29) 부친 참판공의 병환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와 밤낮으로 옷을 벗지 않고 탕약을 드리
    출처 : 유교넷
  • 321673

    聽澗權公家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權玉相의 가장이다. 字는 周琢이고, 號는 聽澗이며, 本貫은 醴泉이다. 1774년(영조 50)에 태어났다. 총명함이 남달라 10여세에 詞賦로 명성이 있었다. 1807년(순조 7) 겨울에 부친의 병환이 위독하자 매일 밤중에 澗湫에서 깨끗이 몸을 씻고 지극 정성으로 하늘에
    출처 : 유교넷
  • 321674

    孺人羅州丁氏事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洪求柱의 子婦 孺人 나주 정씨의 가장이다. 1852년(철종 3)에 태어나 1868(고종 5) 士人 洪日華의 아내가 되었다. 외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溫厚하여 시부모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同壻 간에는 우애가 있었다. 아래로 종들에게도 은혜로 다스려 모두가 기뻐하였
    출처 : 유교넷
  • 321675

    長子鼎遠壙誌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맏아들 權鼎遠의 壙誌이다. 字는 極初이고, 本貫은 醴泉이다. 1867년(고종 4)에 태어났다. 5세에 이미 총명함이 남달랐는데, 權經夏 공께서 ‘士’자와 ‘土’자의 다른 것과 같은 것을 물으니 “위아래 두 획의 장단이 같지 않는데 어찌 같다고 이르겠습니까?”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1676

    族姪弘遠廣誌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족질 權弘遠의 광지이다. 字는 士毅, 本貫은 醴泉이다. 1865년(고종 2)에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史略󰡕을 읽고 “사람이 어찌 뱀의 몸이 되고 소의 머리가 됩니까?” 하였고, 효경을 읽고 “무엇이 충성이 되고 무엇이 효도가 됩니까?”라 질문하였다. 1886년
    출처 : 유교넷
  • 321677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金道和(1825~1912)가 쓴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678

    墓碣銘(幷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柳必永(1842~1924)이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출처 : 유교넷
  • 321679

    輓詞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金興洛, 柳謹睦, 金常壽, 李晩寅, 權經夏, 黃範鱗, 權聲遠, 金奭洛, 李晩燾, 朴周鈺, 金宇洛, 權奎相, 金悳奎, 權世淵, 朴周鉉, 黃肇夏, 安浩淵, 權喆淵, 權禹淵, 柳廷鎬, 朴周大, 李晩煃, 柳杰睦, 金震淵, 朴憙寧, 金應煥, 申壽楹, 權聲達, 權錫煥, 金應洛,
    출처 : 유교넷
  • 321680

    誄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金道和가 쓴 뇌문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681

    祭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주환
    權經夏, 金應洛, 權聲駿, 權相大, 朴一洙, 李能鎬 등이 쓴 제문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682

    대계유고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대계유고(大溪遺稿) 大溪 黃在英의 문집. 木版本, 序: 申獻求, 7卷 4冊: 四周雙邊, 半郭 19.0×15.5㎝, 有界, 10行 19字,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0×20.5㎝. 이 책은 저자가 임종할 적에 집안 사람들에게 초고를 불태우라고 했는데, 그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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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83

    懷遊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자신의 존재와 삶의 좌표에 대해 폭넓은 의문을 던지며 스스로 호쾌한 답을 하고 있다. 저자의 기상과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68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雨雪詩送柳石舍(基鎬)謫關東(1870),壇杏詩呈校宮鄕飮酒禮席(1884), 冬日吟(1852), 展拜墨洞先塋感而有作(1853), 鄭文五(奎鉉)臨行索詩忘拙贈之(1854), 金五衍(景洛)留越中書示山未忍向喬陵去之句用爲押韻(1856), 哭金理翁(韻永), 苦暑, 讀莊陵誌伏次御製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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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85

    請禹祭酒文僖公陞廡疏(代八道儒生,1883) 4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文僖公 禹倬의 文廟配享을 청원하는 상소문이다. 저자는 김종직이 “고려가 5백 년 동안 이 현인을 배출했다.”고 말한 점과 退溪가 易東書院을 창건하면서 우탁을 “忠義大節과 道學의 淵源”이라고 기록한 점, 그리고 정조의 下敎에 우탁의 종사를 언급한 점, 순조 때 팔도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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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86

    上定齋柳先生(1859) 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현재 자신의 공부가 혼미해져 자꾸만 성현의 뜻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스스로 탄식하면서 定齋 柳致明(1777~1861)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大學或問󰡕을 다시 읽는데, 마음을 써서 공부를 해도 그만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답
    출처 : 유교넷
  • 321687

    答定齋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金生을 통해 갑자기 定齋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다. 저자는 먼저 미리 안부를 여쭈지 못한 점을 사죄하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邪敎가 퍼져 위협하고 있는 시점에 홀로 문을 닫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 회의하며 한 줄기 陽氣를 얻어 물리칠 방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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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88

    上洛坡柳相公(1866) 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洛坡 柳厚祚(1798~1875)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그의 부친이 외직에 나갈 적에 따라 가서 그곳에서 낙파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류성룡의 道德과 功烈이 백세에 빛을 내어 공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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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89

    上外舅金令公(鎭右,1856) 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장인인 金鎭右에게 보낸 편지이다. 벼슬을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으로 옛 사람들이 늙은 어버이를 위해 벼슬했으니, 지금도 의리상 녹봉이 필요하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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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0

    與肯庵李台丈(敦禹,1883) 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肯庵 李敦禹(1807~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大山 李象靖(1711~1781)이 이조판서에 증직된 일을 언급하면서 연이어 동생과 부인을 잃은 슬픔으로 기쁨을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적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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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1

    與溪堂柳公(疇睦,1866) 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溪堂 柳疇睦(1813~1872)에게 보낸 편지이다. 洋夷의 침범으로 혼란한 시기이지만, 대대로 忠義를 돈독히 하고 산림에서 德을 양성하였기에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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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2

    答溪堂柳公 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溪堂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지금의 곤란한 지경은 마치 학질을 앓던 사람이 춥고 더운 것이 갑자기 물러나,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위생의 방법에서 음식을 절제하고 바람과 추위를 피하며 좋은 약재를 쓰며 기다려야 하듯이 지금 상황 역시 조금만 참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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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3

    與溪堂柳公 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溪堂에게 보낸 편지이다. 觀水樓의 풍광에 대해 감탄한 내용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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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4

    答頤齋權公(璉夏,1872) 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頤齋 權璉夏(1813~1896)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牛山의 石磬이 樂府에 오르듯이 만물이 드러나고 묻히는 것도 모두 그 때가 있으니, 힘든 시기를 견디다 보면 드러날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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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5

    與頤齋權公(1879) 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頤齋에게 보낸 편지이다. 외종형의 장례를 치르며 주위 여러 무덤의 보존 상태를 보고 탄식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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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6

    上內舅柳公重祚(1877) 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內舅인 柳重祚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을 당했는데, 멀리에 있어서 가지 못하고 위문하는 내용이다. 상례를 치르고 있는 외삼촌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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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7

    與荷泉金公(世鎬,1866) 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저자가 荷泉 金世鎬(1806~1884)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자신의 학문에 대한 근황을 말하면서, 학문이란 서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학문에 뜻을 두어 분발하고 先後와 輕重에 次序가 있어야 함을 말하면서 상대의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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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698

    與荷泉金公(1872) 1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당시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荷泉 金世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가 「石磬銘」이라는 글을 읽고 난 소감을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321699

    答荷泉金公(1880) 1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荷泉 金世鎬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수많은 책 중에 오직 󰡔四書󰡕와 󰡔三經󰡕이 근본이 되며, 그 중에서도 의리를 논한 것으로는 󰡔大學󰡕과 󰡔中庸󰡕만한 것이 없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1700

    答巡相南公(一祐,1885)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巡察使 南一祐(1837∼?)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남일우가 監營에 도착한 다음날 저자를 방문해 준 것을 고마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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