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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1801

    答金嶺一(鎭達,1885) 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金鎭達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嶺一은 김진달의 字이다. 전에 김진달이 편지를 보냈는데, 저자가 답장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김진달이 다시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오자, 이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2

    答任聖叔(喆宰,1882) 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任喆宰(1858~?)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聖叔은 임철재의 字이다. 지난해에 동생이 죽고, 올해에는 아내가 죽었다는 말을 임철재에게 하면서, 그에 따른 자신의 애달픈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3

    與柳聖久(長熙,1884) 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柳長熙에게 보낸 편지이다. 聖久는 류장희의 字이다. 류장희는 저자와 500리 정도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데, 예전에 편지를 보내왔다. 저자는 앞서 받은 편지를 보고 류장희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근황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4

    答鄭士玉(柱漢,1877) 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鄭柱漢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士玉은 정주한의 字이다. 자신의 집안과 정주한 집안 사이의 世交를 말하고, 儒家의 학문은 일상생활에 있어 평범하면서도 당연한 이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聖經賢傳을 밤낮으로 외우며 익힐 것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5

    與金子洪(禹鉉)別紙(1872) 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金禹鉉에게 보낸 別紙이다. 子洪은 김우현의 字이다. 사람이 먼 곳에서 상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이 올 때까지 빈소를 차리는 것은 기다릴 수 없지만, 장례는 기다릴 수 있음을 얘기하며 상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6

    答潘士善(在元,1877) 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潘在元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士善은 반재원의 字이다. 6살의 나이로 才童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潘在元은 장성하면서 차츰 文章, 재산증식, 遊俠을 좋아하다가 끝내는 讖緯나 奇門遁甲에 대한 책에 빠져들었다. 저자는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길 뿐 아니라 나
    출처 : 유교넷
  • 321807

    答士善 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潘在元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2월 달에 반재원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자신의 말이 다소 지나쳤음을 말했다. 그리고 반재원이 편지에서 저자에게 改悛의 뜻을 보이자, 저자는 다행스럽게 여기며 반재원에게 덕과 재주가 부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8

    答士善別紙(1884) 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潘在元이 보낸 편지에 대해 답한 별지이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는 󰡔대학󰡕·󰡔중용󰡕을 비롯한 유가경전과 성리학자들의 말을 바탕으로 性‧情과 敬‧誠 등의 문제를 논했으며, 말미에서는 우주와 천체를 논하면서 ‘九層說’과 ‘地球自轉說’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09

    答朴子厚(載鉉)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朴載鉉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子厚는 박재현의 字이다. 근간 친구가 자신을 위해 시초점을 쳐서 豫卦의 九四爻를 얻은 이야기를 하고, 박재현이 蘭 그림을 보내온 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출처 : 유교넷
  • 321810

    與尹致道(學燮,1880)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尹學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致道는 윤학섭의 字이다. 상례를 치르며 朱子의 편지글 몇 권을 공부했다고 밝히면서, 최근 士族의 擧子들이 부모의 명을 핑계삼아 禫祭 기간에도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1

    與姜君(壽昌,1884)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姜壽昌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의 아들이 있는 곳이 강수창과 조금 떨어져 있으니, 서로 講磨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2

    答族叔性善甫(繼夏,1860)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족숙인 黃繼夏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性善은 황계하의 字이다. 앞서 보내온 편지를 통하여 황계하가 舊習을 일신하여 마음을 씻는데 더욱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자, 저자는 그 말을 종신토록 실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3

    答性善甫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黃繼夏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이 편지에서는 고인이 착한 사람을 보면 곧바로 그에게 부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유가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들어 황계하가 스스로 반성하도록 타이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4

    上渚樵從叔(1880)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從叔에게 올린 편지이다. 渚樵는 從叔의 호이다. 최근 從叔의 답장으로 상대의 안부를 확인하였고, 지금은 자신의 늙은 어버이의 건강과 아들의 일과에 관한 일 등 집안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5

    上從叔(1881)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從叔에게 올린 편지이다. 자신의 집안이 최근 편안하지 않으나,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아울러 종숙이 禍福에 관계되는 일이 닥쳐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에 대한 칭송과 우려를 함께 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6

    答族叔致默(靖夏,1877)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叔인 黃靖夏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致默은 황정하의 字이다. 황정하에게 刻苦勉勵하여 스스로를 수양하고, 이를 통해 좋은 친구를 선택하여 仁을 돕는 방도를 생각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7

    答致默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叔 黃靖夏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가 일전에 󰡔丙寅會誦錄󰡕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10년 동안 황정하와 族姪 黃始欽의 공부 상태를 비교하여 황정하에게 여러 가지를 훈계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18

    答致默(1878)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叔 黃靖夏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화창한 봄날을 맞이하여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과는 반대로, 집안에 여러 우환거리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19

    與致五族叔(世夏,1882)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叔인 黃世夏(1840~?)에게 보낸 편지이다. 致五는 黃世夏의 字이다. 과거 급제는 저자의 선친이 바라던 것이고, 황세하 역시 오랫동안 노력했던 것이지만 그 어려움을 말하였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가세가 기우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20

    答族弟道凝(基道,1877)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弟인 黃基道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道凝은 황기도의 字이다. 황기도가 󰡔四書󰡕부터 읽지 않고 󰡔周易󰡕부터 읽자, 저자는 이 편지를 통하여 그것에 반대하며 󰡔四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21

    答道凝(1878)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弟 黃基道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황기도에게 󰡔주역󰡕 읽는 것을 그만두고 󰡔大學󰡕과 󰡔大學或問󰡕을 먼저 읽고, 다음으로 󰡔논어󰡕를 읽으며 학문의 순서에 따라가야 나중에 󰡔주역󰡕의 이치도 알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22

    答道凝 2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弟 黃基道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요 며칠 한가한 시간에 朱子의 편지글을 읽었는데, 자신의 공부가 부족함을 깨닫고 황기도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학문적인 난관을 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23

    答道凝別紙大學或問(1879) 2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弟 黃基道가 보낸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그 別紙에 誠과 心, 理氣 등과 관련이 있는 󰡔大學或問󰡕의 일부 내용들을 초록하여 보낸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24

    再答道凝別紙 2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弟 黃基道가 보낸 別紙에 대해 저자가 두 번째로 보낸 답장이다. 이 편지에서는 朱子와 程子의 말을 인용하고 󰡔소학󰡕과 󰡔대학󰡕의 관계를 바탕으로 格物 공부의 의미를 논했다.
    출처 : 유교넷
  • 321825

    答道凝(1881) 2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弟 黃基道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저자는 문장과 시문을 짓는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황기도에게 조선의 전고를 알 필요가 있으므로 󰡔朝野會通󰡕을 이 편지와 함께 부쳐 빌려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26

    答族姪堯伯(始欽,1878) 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姪인 黃始欽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堯伯은 황시흠의 字이다. 이전에 심기가 불편하여 제때 답장을 못한 이유를 밝히고, 자신의 안부와 주변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학문이란 죽을 때까지 놓아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27

    答堯伯(1879) 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姪 黃始欽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어버이의 체후가 편안할 날이 드물고, 季君은 과거에 낙방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며, 白農兄 父子는 곤궁한 속에서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는 등의 근황을 전하며 속마음이 편치 않음을 말했다. 아울러 앞서 보내온 편지 내용을
    출처 : 유교넷
  • 321828

    答堯伯 2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姪 黃始欽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文藝보다는 德行이 근본을 힘쓰는 취지에 가깝다고 말하고, 원주에 사는 金生이 程文을 배우러 다니다가 자신의 말을 듣고 󰡔大學󰡕을 읽고 돌아간 사실을 얘기했다.
    출처 : 유교넷
  • 321829

    答堯伯(1880) 2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姪 黃始欽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기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黃靖夏의 재주와 공부를 칭찬했다.
    출처 : 유교넷
  • 321830

    答族姪聖習(學銖,1879) 2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族姪인 黃學銖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聖習은 황학수의 字이다. 최근에 鄭聲振이 저자를 방문하여 학문을 토론함으로써 보탬이 되었다는 말과 자신의 집안에 貧窮이 닥쳤음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31

    與弟應韶(在薰) 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동생인 黃在薰에게 보낸 편지이다. 應韶는 황재훈의 字이다. 저자 자신이 병중에도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면서, 古項이라는 마을이 잿더미가 된 일과 白農이 결국 사망한 소식을 알리고 그에 따른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32

    與應韶(1880) 3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동생 黃在薰에게 보낸 편지이다. 늙은 어버이의 근황과 자신이 최근 병을 앓았던 일을 전하며 동생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33

    答再從弟穉圭(在鎭) 3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再從弟인 黃在鎭(1853~?)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穉圭는 황재진의 字이다. 저자와 재종제 모두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혼사를 앞두고 儉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34

    壽荷泉金相公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荷泉 金世鎬의 71세를 축하한 글이다. 荷泉은 문장이 조야에서 으뜸이고 덕망이 국가에 드러나 지금의 어진 대부라고 할 만하다고 칭송하였다. 또한 大夫人 柳氏에 대한 효행도 함께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35

    狎鷗亭約會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압구정에서 약회를 가졌던 일에 대해 쓴 글이다. 압구정은 한성 동쪽 10리에 있는데, 앞에는 冽水가 흘러 강교의 승경 중 최고이다. 皇明의 사신도 이곳을 유람하고 아름답다고 일컬었다. 이제 荷泉 金公이 압구정에서 유식하고 있으며, 임오년 5월에 耕石 李會正‧澹齋 任應
    출처 : 유교넷
  • 321836

    贈李穉道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李穉道에게 준 글이다. 이치도는 도성의 세족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명성과 이익에 초연한 선비로 저자가 만나길 원했다. 결국 막역한 사이가 되었는데, 곧 이별하게 되어 그에게 사대부 집안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학문의 폐단에 대해 경계하고 권면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37

    韻總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韻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고증한 것이다. 六經을 살펴보면 󰡔詩經󰡕보다 성대한 것이 없고, 󰡔書經󰡕의 賡載歌는 또 그보다 앞선다. 예전에는 그 법칙으로 腰韻‧頭韻‧叶韻 등이 있었는데, 당송 이후로 모든 법칙이 다 없어지고 오로지 운통만을 숭상하여 그 폐해를 다
    출처 : 유교넷
  • 321838

    鄕射禮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향사례에 대한 글이다. “文을 일삼는 자도 반드시 武를 갖춰야 한다.”는 孔子의 말을 인용하여 둘 중 하나라도 그만둘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三代 이후로 禮樂이 없어져 大射‧賓射‧燕射의 법도도 익히지 않게 되었다. 그 뒤 禁郞 權太鉉이 다시 향사례를 시행하였는데
    출처 : 유교넷
  • 321839

    癡巖裴公文集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癡巖 裴尙益(1581∼1631)의 문집에 쓴 서문이다. 치암은 安村 裴應褧의 아들이고, 雲川 金涌의 사위이다. 공은 어려서 西厓의 가르침을 받았고, 뒤에 寒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才行으로 추앙받았다. 저자는 치암이 벗을 취하는데 더욱 엄숙하였다며 그와 교유한 사
    출처 : 유교넷
  • 321840

    送文載書(泰灝)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載書 文泰灝를 전송하는 글이다. 恩津의 江鏡은 큰 도회지로 풍속이 사치스럽고 문란해진지 오래되었는데, 文泰灝는 강경 출신이면서 사치함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몸을 삼가고 마음을 보존한 자라고 칭찬하고, 학문하는 바른 방법에 대해 말해주면서 돌아가거든 동지들과
    출처 : 유교넷
  • 321841

    星經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星經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천문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왜 무익한 일에 힘을 쓰냐?”고 물었다. 그러자, “천하의 일이 遠近緩急의 다름은 있지만 그 까닭을 연구하는 것은 내 분수 안의 일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옛 사람들은 천문에 대해 모두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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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842

    文山社鄕飮酒禮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文山社에서 鄕飮酒禮를 행한 것에 대한 글이다. 우리나라의 향음례는 천하에 알려진지 오래되었다. 정조는 1797년(정조 21) 󰡔鄕禮合編󰡕을 지어 안팎으로 반포하여 시행하였는데, 근래에는 그러한 예를 점점 익히지 않아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이때 마침 再從弟
    출처 : 유교넷
  • 321843

    鄕校重修記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鄕校를 중수하면서 지은 기문이다. 1542년(중종 37)에 무릉 주선생이 井林遺址에서 校宮을 옮겨 세운 것이 지금의 교궁인데, 그동안 옛 터로 옮겼다가 1735년(영조 11) 다시 주선생이 정한 곳으로 옮겨 지금까지 이곳에 124년간 보전되었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44

    退逸軒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權侍郞公이 巖后 李晩慤(1815∼1874)이 지은 「退逸軒記」를 저자에게 보여주며 자기를 위해 다시 지어달라고 하여 쓴 기문이다. 慕齋 金安國 등이 조정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恩逸亭을 짓고 날마다 제생들과 강학하기를 즐기는 선인의 자취를 쫓은 의미를 부여하여 ‘退逸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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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845

    慵庵記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점필재의 高弟인 金仲賢이 안동의 龍巖에 대대로 살았는데, 어느 날 白樂天의 「十慵詩」에서 느낀 점이 있었다. 그래서 비슷한 음을 취하여 ‘龍巖’을 ‘慵庵’으로 고치고 저자에게 기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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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1846

    節婦嚴氏旌閭記(1882)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1786년(정조 10)에 嚴氏가 寧越의 父家에서 순절하니 그 일이 알려져 정려문을 세웠는데, 지금 후손이 그것을 수리하고 기문을 청하자 이에 지어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47

    中山石磬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中山齋의 주춧돌 앞에서 황색의 송아지 모양의 돌덩이 하나를 얻었는데, 두들겨 보니 소리가 매우 맑아 쓰게 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1848

    拓窩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金範初는 일찍부터 뜻을 세우고 법도가 엄밀하여 한번만 봐도 그가 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자가 아끼고 소중히 여겼다. 범초의 外臺叔이 일찍이 拓窩로써 명하였는데, 이제 그 가르침을 받들고 그 설을 미루어 종신토록 자신을 살피는 바탕으로 삼고
    출처 : 유교넷
  • 321849

    無貳齋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저자의 벗 姜周五가 벽에 ‘無貳齋’라고 쓰고 저자에게 그 설을 청하자 지어준 記文이다. 마음은 한 가지 그 발현은 만 가지 변화가 있으니, 오직 전일하게 해야만 이룰 수 있다고 권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1850

    石我室記(1861) 1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
    저자의 從叔이 1860년(철종 11) 봄에 세 칸의 띠집을 짓고, 다음해 여름에 ‘石我’로 이름 지으려 한다는 말을 저자에게 하고 기문을 부탁해서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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