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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樹三幹帖跋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花樹三幹帖의 발문이다.화수삼간첩은 西厓의 세 아들이 서애로부터 그 집안사람들의 글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서애의 外後孫으로서 이에 대한 발문을 쓰면서, 그 집안에 현달한 자들이 많음을 말하고, 이 글을 통해 자득하도록 노력하여 서애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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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村裴公文集跋(1884)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安村 裴應褧의 문집에 쓴 발문이다. 剛州 배씨는 영남의 명문가로 불행히 근래에 쇠락했는데, 그 후손 漢植씨가 興州에서 그 선조의 遺稿를 저자에게 가지고 와서 발문을 부탁하였다. 安村은 星州에서 태어나 寒岡과 함께 수학하였고, 東岡과 함께 시를 수창하였다. 만년에는 剛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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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尹忠肅公壬午日記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尹塾(1734∼1797)의 壬午日記의 뒤에 쓴 글이다. 역사 기록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 오래되었는데, 國史는 당쟁 때문이고, 野史는 소홀하고 멀기 때문이며 家史는 사사롭고 구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숙의 임오일기는 그 당시의 사건을 함부로 쓸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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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金仲賢金剛錄後 2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金仲賢(獻洛, 1826~1877)의 金剛錄 뒤에 쓴 글이다. 김중현은 안목이 매우 고상하고 빼어났지만, 평소 글짓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금강산에 오르고서야 비로소 본 것을 기록하여 금강록을 지었는데, 그 글이 매우 뛰어났다. 洪上舎의 遊山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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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磻溪隨錄後 2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柳馨遠(1622∼1673)의 반계수록에 대한 후서이다. 류형원이 조부의 喪을 마치고 전라도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에 은거하면서 지은 반계수록은 반계가 겪은 농촌의 생활과 경제의 안정책 등을 제시한 내용으로 엮여 있는데, 여기에 대한 저자의 감회가 나타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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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柳氏七賢錄後敘(代家君作) 2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저자가 梁山에 있을 때 柳煥成이 선조의 저서인 文化柳氏七賢錄을 가져왔기에 보고서 지은 後叙이다. 西山 柳自湄를 비롯한 문화 류씨 7명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적극 참여하였다. 그런데 이름이나 공적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류씨 후손들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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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嘉靖甲子司馬榜目後(1880) 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嘉靖甲子司馬榜目의 후서이다. 저자의 족질 始欽이 어떤 사람의 집에서 버려둔 종이 가운데 구겨지고 찢어진 곳을 정비하고 기워서 저자에게 보여주었는데, 우리 선조 貞翼公이 생원시에 참여하여 3등 64인이 된 것으로 지금에서 317년 전의 것이었다. 이를 보고난 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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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先祖雲溪公親筆日記後敘(1859) 2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친족 형의 집에 있는 오래된 상자 속에서 從先祖 雲溪公이 쓴 日記를 찾고서 쓴 後叙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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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丁戊雜錄後(1878) 2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丁戊雜錄의 후서이다. 저자의 先祖考는 뛰어난 재주와 곧은 절개로 당세에 칭찬을 받았지만, 끝내 현달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쳤다. 그래서 몇몇 사적만 家乘野史에 보이고, 그외 저술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동생 黃在薰이 처음 丁戊雜錄에 대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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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從高祖詩稿後 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從高祖 詩稿에 쓴 후서이다. 저자의 從高祖는 시를 읊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특히 이 책은 만년의 뛰어난 필적으로 쓰인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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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叔祖竹南軒冊錄後 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叔祖의 竹南軒冊錄 후서이다. 저자의 종조부 죽남공은 평소에 매일 글을 읽었는데, 다양한 책을 섭렵하였다. 그래서 공의 후손들에게 죽남공이 초록한 글을 보며 가학을 실추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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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季祖怡齋公手抄杜律後 3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季祖 怡齋公이 손수 베껴 쓴 두보시의 후서이다. 저자의 종조부 이재공은 시에 癖이 있어서 당송의 여러 대가에서부터 당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그 법을 다 배우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두보시를 베껴 한 권을 만들어 저자에게 글을 짓게 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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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叔西行日記後敘(1875) 3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從叔의 西行日記 후서이다. 종숙이 서행일기를 쓴 까닭과 저자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감회에 대해 쓴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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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經 3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星座에 대해서 2,600여 字의 분량으로 자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紫微垣과 北辰을 중심으로 많은 별이 둘러싸여 있고, 15개의 營衛가 左樞와 右樞로 나뉘어져 오른쪽은 少尉·上輔·少輔·上衛·少衛·上丞·少丞,왼쪽은 上宰·少宰·上弼·少弼·上衛·少衛·少丞·上丞이 있다. 또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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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店金老事蹟 4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저자가 20세 때 할아버지를 모시고 고금의 인물에 대해 논하였다. 이 때 저자의 할아버지가 직접 만난 사람 중 竹嶺의 朱店에 은거하고 있는 김씨 노인에 대한 얘기를 했다. 이 글은 저자가 할아버지께 듣고서 그 노인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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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錢 4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저자가 가지고 있는 옛 동전을 당‧송‧명‧금‧청‧조선‧몽고‧일본의 동전으로 구분하여 고증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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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蘭說 4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朴子厚가 저자에게 손수 蘭 그림 六幅을 그려 주었다. 저자가 그 그림을 보고 난과 어진 사람은 모두 드물다는 공통점을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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續通解 4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通은 道義에 통하는 것과 私曲에 통하는 것이 있다. 요즘 사람들의 습성이 후자에 힘을 쓰고 있는데, 진정 통한다는 것은 도의에 벗어나지 않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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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家語 4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孔子家語를 반복해서 읽어보면, 논어에서 미처 말하지 않은 부분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논어가 성인의 말이라고는 하지만, 모두 精粗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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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嘉山傳 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寒岡 鄭逑의 후손으로 嘉山郡守를 지낸 鄭蓍(1768~1811)의 傳이다. 정시가 순조 때 가산군수를 지내면서 당시 洪景來를 주축으로 한 농민반란군에 대항하였다. 전세가 불리하여 가산군이 함락되어 그의 아버지 鄭魯와 함께 적의 포로가 되었지만,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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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山星川書院常享祝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梁山의 星川書院 常享祝文이다. 성천서원에서 봉사하는 晚翠 金公‧濯淸 金公‧拙愚 金公께 흠향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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厲祭文(代地主作) 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厲의 제문이다. 厲는 나병환자를 의미하는데, 서자로 태어나 나쁜 병에 걸려 죽은 것에 대해 탄식한 것이다. 천지는 살리기를 좋아하고 신은 大德을 펼치는데, 위배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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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熊川赤峴山始祖墓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態川의 赤峴山에 있는 始祖墓에 대해 쓴 제문이다. 공이 先墓 근처에 살게 되어 10월에 제를 올리며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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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澗浣亭先墓立石告由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黃澗·浣亭의 先墓에 비갈을 세우고 고유하는 글이다. 一位와 二位로 나누어 각각의 고유문을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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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定齋柳先生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柳致明(1777∼1861)을 애도한 글이다. 본관이 全州이고, 자는 誠伯이며, 호는 定齋이다. 아버지는 진사 晦文이며, 어머니는 韓山李氏이다. 李象靖의 외증손으로 외가인 안동의 蘇湖에서 출생하였다. 이상정의 문인인 南漢朝‧柳範休‧鄭宗魯‧李瑀 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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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金令公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장인 金鎭右(1805∼1861)의 죽음을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의성이고, 자는 國元이다. 안동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驥壽이다. 내외관직을 두루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천성이 강직하여 상사라도 잘못이 있으면 직언하는 성격 때문에 상사들이 그를 꺼려했다. 때문에 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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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小祥時) 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장인 金鎭右의 小祥 때에 쓴 글로,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슬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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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壽靜齋柳公(鼎文)文(改葬時) 1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柳鼎文을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全州이고, 字는 耳仲이며 號는 壽靜齋이다. 安東 朴谷에 살았다. 아버지는 範休이다. 조부 柳道源과 종조부 柳長源, 외조부 金江漢에게 수학하였으며 科擧에 뜻을 버리고, 經學·禮學·性理學 등에 몰두하였다. 文學과 德行으로 경상감사의 惠陵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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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溪堂先生柳公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柳疇睦(1813∼1872)을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豐山이고, 자는 叔斌이며 호는 溪堂이다. 상주에서 태어났다. 류성룡의 9세손으로 부친은 좌의정을 지낸 厚祚이며, 모친은 연안 이씨로 부사 李載延의 딸이다. 1868년 掌樂院主簿와 公忠道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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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荷泉金公文(1884)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荷泉 金世鎬(1816∼1884)를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淸風이고, 자는 稚賢이며 호는 修齋이다. 부친은 黃州牧使를 지낸 晉敎이다. 1869 년(고종 6)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러나 1874년(고종 11) 민정의 규찰을 태만히 하고, 李東畯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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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同敦寧李公(龍夏)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同敦寧 李龍夏를 애도한 글이다.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제를 어질게 키워 그나마 맘 편안히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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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柱下池丈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池運浩(1793~1864)를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忠州이고, 자는 仲受이며 호는 柱下이다. 부친은 通德郞을 지낸 世咸이다. 대대로 당대의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천성이 돈후하면서도 강직한 면이 있었고, 글재주가 많은 사람들을 탄복시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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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丈(晩斗)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李晚斗를 애도한 글이다. 6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한결같이 저자의 집안과 친밀히 지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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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丈(廷睦)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柳廷睦을 애도한 글이다. 풍교가 쇠퇴하던 시기에 강직한 성품으로 독실히 행한 점을 추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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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丈(錫元)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權錫元(1798∼1871)을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安東이고, 자는 孟善이며 호는 密窩이다. 아버지는 文赫이다. 어려서 매우 총명하여 스스로 독서할 줄 알고 일찍이 약관이 못되어 과업에 뜻을 두었으나 여러 차례 낙방하자, 과업에 뜻을 버리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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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仲賢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金獻洛(1826~1877)을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義城이고, 字는 仲賢이며 號는 慵庵이다. 鶴峯 誠一의 후손이고, 부친은 鎭右이며 외조부는 柳鼎文이다. 어려서 기질이 단정하며 자상하고 성품은 편안하고 고요하여 주위에서 남다른 기대가 있었다. 저자는 용암의 매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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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小祥時)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慵庵 金獻洛의 소상 때 쓴 글이다. 명철하고 강직한 공이 옆에 없어서 의지할 곳이 없음을 탄식하며 슬퍼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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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德文文(返柩時) 1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金碩奎(1826∼1883)를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德文이며 호는 恥庵이다. 부친은 輝京으로 榮州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諸子百家를 두루 읽었고 柳致明의 문하에서 배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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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懿民(秉模)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金秉模(1829~1877)를 애도한 글이다.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懿民이며 호는 書田이다. 부친은 龍洛이고, 柳致明의 문인이다. 성품은 강개하고 겸손하였으며, 詞賦의 문장은 정밀하게 지었다. 저자가 金獻洛과 함께 글을 지어 공의 죽음을 애도하였는데, 얼마 안 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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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文五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鄭文五를 애도한 글이다. 저자의 벗 鄭文五가 동생의 죽음에 너무 깊이 슬퍼하다가 젊은 나이로 그 또한 세상을 떠나자, 이를 슬퍼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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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叔(明夏)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三從叔 明夏를 애도한 글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자신을 엄하게 단속한 것을 기리며 슬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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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性夏)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族叔 性夏를 애도한 글이다. 숙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자신의 집안이 오래도록 번성하지 못하고 한 명씩 죽어가는 것을 탄식했다. 또 빨리 죽은 것에 대해 매우 애통해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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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叔祖竹南府君文(改葬時) 23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叔祖 竹南府君의 무덤을 이장할 때 애도한 글이다. 仲祖‧王考‧季祖 모두 돌아가신 것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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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祖怡齋府君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季祖 怡齋府君을 애도한 글이다. 오래도록 병석에 있었는데, 근래에는 朱子의 글에 몰두하여 밤낮으로 읽으면서 병을 잊으려 하였다. 일찍이 저자에게 “나는 주자의 글을 수백 번 읽었다. 다른 글도 읽었지만, 모두 무익하고 빈말들이었다.”라고 하여 주자의 글을 공부할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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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弟應韶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동생 黃在薰을 애도한 글이다. 자는 應韶이다. 저자는 형제가 두 사람 뿐이었는데, 모두 불효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며 애통해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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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小祥時) 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小祥 때 쓴 글로 동생의 상을 지내고 있는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과 동생의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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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恭人金氏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아내 金氏를 애도한 글이다. 가족을 함께 보살피며 집안에 일이 있을 적마다 함께 의논하고 의지하였는데, 곁을 떠나서 매우 슬퍼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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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殤子曾賜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죽은 아들을 애도한 글이다. 효성이 매우 두터웠던 자식을 떠나보내고, 운명인가 하면서도 잊지 못하며 슬퍼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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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興安氏臺山新壇碑銘(幷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고려시대에 順興 安氏만큼 뛰어난 인재가 많은 집안이 없었는데, 조선시대에 錦城의 난리를 겪어 그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만 후인들은 계속해서 그들을 존경하고 흠모하여 단을 지어 제사지내는 예를 행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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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妣晉州姜氏墓表 30 / 기록자료>고도서 / 황재영先祖妣 姜氏의 墓表이다. 본관은 晉州이고, 姜琠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에 태어나 黃有詹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일찍 죽어서 61년 동안 홀로 살다가, 89세에 후손도 없이 세상을 달리했다. 順興 墨洞 先考의 묘 아래에 장사지내고, 뒤에 黃澗縣 서쪽 白華山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