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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고산사(通古山寺)의 무쇠 말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통고산은 서면 삼근 2리 소재로 꽃마(芳村) 17가구(家口)나 사는 마을 뒷산이다. 이 산의 높이는 해발 1,066m로 서면일대와 근남면 일부지역이 이 산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산내(山內) 통고산 절이 있었는데 어떤 도승(道僧)이 수도(修道)를 마치고 타고 갈 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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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동헌터(東軒址) 느티나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평해읍 평해리의 옛 지명(地名)은 하성리(下城里) ․ 하리(下里) ․ 하성저리(下城底里)라 불러져 왔는데 모두 구 평해군청 소재지 외곽에 평해읍성(平海邑城)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하성리(下城里)라 불렀다 한다. 옛날 정씨(鄭氏) 모(某)가 다래덩굴을 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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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鶴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북면 고목리 지정(芝亭)마을 최상단부 마을 안에 샘(泉)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학(鶴)이 물을 먹었다는 학소샘, 또 하나는 매(鷹)가 물을 먹었던 응소샘이 있다. 두 샘(泉)은 불과 거리가 20m 안팎에 자리잡고 있어 위의 샘 학소샘은 사람이 물을 마시지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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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鶴巢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근남면 구산 3리 굴구지 마을 앞 양쪽으로 흐르는 냇물 속에 섬(島)처럼 우뚝 솟은 큰 바위 위에 학의 집이 있었다 하여 학소대(鶴巢台)라 칭하고 있다. 이 대(台)에 약 200년 전 어떤 사람이 이 바위에 흙을 덮고 선조(先祖)의 분묘(墳墓)를 만들었으나 홍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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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재(寒汰嶺)입구 성황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근남면 수곡(水谷)리 마을 북쪽으로 둘러쌓인 한태재는 서면 하원(下院)리로 가는 대로(大路)가 있었는데 1700년경 당시 강원도 관찰사(觀察使)가 이 한태재를 넘기 위하여 말(馬)을 타고 성황당(城隍堂) 앞을 지나가는 도중 말(馬)이 발을 띠지 않고 가지 않아 할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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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海神堂)과 농신당(農神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울진군 기성면 기성리(箕城里) 마을은 농사를 지어가며 고기잡이로 생활하는 곳으로 바다에서 그물을 당겨 올릴 때는 너 나 배(船)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두가 힘을 합하여 백사장에 모여 그물을 끌어 올린다. 이것은 남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는 어촌주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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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곡(杏谷)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근남면 행곡리(杏谷里) 행곡(杏谷) 동명(洞名)은 천양암(天糧岩)에서 쌀이 나왔다하여 “쌀골”이라 불러져 오다가 조선조 인조(仁祖) 때 이 마을에 우거(寓居)했던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 선생이 주천대 묵객들과 시(詩)를 지을 때 내앞(川前)에 살구꽃이 만발한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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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내(顯內)마을 수전대(水殿台)와 포진(浦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 현내(縣內) 마을은 울진읍 연지(蓮地) 1리 소재(所在)로 고려 때 고현성(古懸城) 해곡(海曲) (연지리 현내동)에 토축성을 쌓고 울진 현성(懸城)이 되었다가 1371년 왜구의 급습으로 폐허가 되었다. ○ 수전대(水殿台)는 당시 가뭄이 극심할 때 고을 원이 중심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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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火水)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근남면 산포리 가는게(細浦) 마을에 옛날에 큰 화재(火災)가 발생하여 온 마을이 전소(全燒)되고부터 도승(道僧)에게 물으니 앞산에 큰 독을 두 개 구하여 매년 음력 2월 1일(영등날)에 물을 길러 넣고 이 독에 물이 많이 줄어지면 화재(火災)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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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리와 이산해(李山海)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이산해(李山海)는 호(號) 아계(鵞溪)이며 조선조 선조(宣祖) 때 영의정으로 임진왜란 때 평란공신(平亂功臣)으로 아성부원군에 봉하고 문충공(文忠公)의 시호(諡號)를 하사 받았다. 이산해는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서 5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李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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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전(還生殿)과 백극제(白克薺)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현령(縣令) 백극재(白克齋)는 양주(楊洲) 사람으로 1396년 조선조(태조 5년 丙子) 때 울진현령으로 임명되어 취임한지 불과 3일 만에 왜구 간길랑(干吉郞)일당이 울릉도를 침입 본거지로 하여 해안 일대 부락은 물론 울진읍성을 완전히 불태우니 읍소(邑所)가 폐허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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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黃衍)선생과 정려(旌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선생의 이름은 연(衍)이며 호(號)는 애모재(愛慕齋)로 평해황씨(平海黃氏) 시조 황락(黃洛)의 후손이며 태자검교공(太子檢敎公) 황온인(黃溫仁)의 17세손으로 1595년(조선조 선조 28년 乙未) 12월 20일 평해읍 오곡(梧谷)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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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산(虎尾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전인식울진읍 호월 2리 용저동(龍渚洞) 앞산이 범의 꼬리와 흡사하다 하여 호미산(虎尾山) 명산(名山)이라 불러 오고 있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약 300여 년 전 울진장씨(蔚珍張氏)가 이곳에 조상의 묘(墓)를 쓰기 위하여 명풍(名風)을 모셨는데 풍수가 말하기를 이 묘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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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옹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담옹집(澹翁集) 澹翁 丁奎昌의 문집. 石印本, 跋: 金承學(1967)‧丁湜(1967), 4卷 2冊: 半郭 19.1×14.9㎝, 有界, 10行 20字, 註雙行,上下向二葉花紋魚尾;31.5 ×20.5㎝. 저자의 유문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 6.25사변이 일어나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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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案上吟, 月洞送朴敬哉(勝直, 1906), 仲春入淸凉山拜龍山李先生請校文巖先祖文集將歸以一絶詩贈門下同人(1897), 宣城道中作, 春日見風飛雨寒歎花發多風雨, 繕寫文巖集有感, 逢春述懷與人, 宣城歸路過加川洞, 餞春, 偶吟, 入山自述, 在月洞呈淸溪宋丈, 呈文谷金丈, 次李載汝(鍾華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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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亭李先生(1902) 16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東亭 李炳鎬(1851~1908)에게 올린 편지이다. 李炳鎬는 본관이 眞城, 자는 子翼이다. 요즘 벗들과 모여 문자나 상고하고 품평하는 것을 가장 좋은 일로 삼고 있으니 결국 이익에 유혹되고 남을 이기기 좋아하는 폐단이 생길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小學을 이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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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亭李先生別紙(1900)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東亭 李炳鎬에게 올린 편지의 별지이다. 理가 쌓여서 氣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理도 흩어지고 모임이 있는가, 타고난 氣가 많고 적음에 따라 性이 온전하고 치우치게 되는 것에 대해서, 성품이 선한 것이 성인과 같다는 것에 대해서, 타고나기 전의 氣는 淸濁의 차이가 없는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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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亭李先生別紙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東亭 李炳鎬에게 올린 편지의 별지이다. 性과 氣에 대해 정자와 주자의 생각이 다른 이유, 理發氣發을 나누어서 말할 수 없는 이유, 정자가 性에 대해서 논하고 氣의 性에 대해 논하지 않은 이유, 타고난 氣가 많고 적음에 따라 性이 온전하고 치우치게 되는 것에 대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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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亭李先生別紙 25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東亭 李炳鎬에게 올린 편지의 별지이다. 氣質之性은 낳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氣에는 스스로의 氣가 있고 理에는 스스로의 理가 있다는 것에 대해 理는 하나이지만 氣는 천만가지로 다르다는 것에 대해, 理發氣發에 대해서, 사람의 性이 氣를 겸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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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亭李先生別紙(1901) 30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東亭 李炳鎬에게 올린 편지의 별지이다. 氣에 본래 淸濁이 있다는 것에 대해, 衆人의 性이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볼 때는 본래 치우치거나 온전한 차이가 없는데 氣質로 본다면 치우치거나 온전함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 至善과 圓滿이란 의미에 대해, 心統性情圖의 主理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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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老正(中聃,1901) 32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李中聃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온 편지에서 저자가 차지한 것이 많다는 것에 대해 이것은 남들이 꾸민 말이고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노형께서 나를 어리석게 여기지 말고 일에 따라 깨우쳐 주어서 소인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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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禹卿(勝夏) 33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朴勝夏(1877~1938)에게 보낸 편지이다. 박승하는 본관이 潘南, 자는 禹三으로 榮州에 거주하였다. 1894년(고종 31) 진사시 합격하고 參奉을 지냈다. 禫服제도에 대해 숙종 때 인현왕후의 죽음에 왕세자가 전교한 27개월과 大山 李象靖이 말한 27개월이 예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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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仁卿(炳寅)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崔炳寅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에 논했던 心統性情圖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中圖의 氣稟이 과연 맑고 순수한 氣인지, 한 쪽의 善함이 과연 성인의 情인가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理와 氣에 대한 관점 등에 대해 논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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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仁卿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崔炳寅에게 보낸 편지이다. 앞의 편지에서 논했던 것들을 겨울내내 師友들을 따라 연구한 결과 자신의 견해에 오류가 있었다고 하면서 心統性情圖의 中圖와 下圖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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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叔伯崇(敦燮) 4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族叔 丁敦燮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늘날 異端과 物慾의 해는 걱정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吾黨에서 詞章에만 힘을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근본은 이해하지 못하고 한 바탕 문장을 지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기쁘게 하고 후세에 보이려 하니 이단보다 폐해가 심하다고 통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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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鵬卿(源國)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李源國(1875~1955)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源國은 본관이 眞城, 자는 鵬卿, 호는 昌庵이다. 우리의 학문은 독서를 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 학문의 발전은 반성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하루는 하루에 한 일을 반성하고 1년은 1년 동안 한 일을 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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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全重三(在琦) 7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全在琦에게 답한 편지이다. 전재기가 병세가 깊다는 것을 듣고 답한 것이다. 지금 사람은 지금 사람들이 익히는 것을 따라야 하는데 전재기는 옛날의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하늘이 도와서 곧 좋아지고 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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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7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無極이면서 太極이라는 것에 대해, 火氣와 水氣의 이치에 대해, 七情의 발현에 대해, 心合理氣에 대해, 心統性情圖의 中圖와 下圖에 대해, 理가 일심을 주재한다는 것에 대해, 衆人이 氣質을 변화시킨 사람을 성인이라고 해야 하나 현인이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은 것에 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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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全重三(1902) 9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全在琦에게 답한 편지이다. 吾黨에서 기대할 만한 인물 몇몇을 거론하면서 자신은 이들에게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없고 오직 이들이 장래에 성취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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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宗姪魯叟(泰鎭,1935) 10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宗姪 丁泰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승의 문집을 간행하는데 있어서 그 내용 중 ‘童子問答’에 정당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어 보낸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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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謹夫(思鎭,1901) 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金思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心統性情圖의 中圖에서 聖人과 凡人을 통괄해서 논하고 理에 대해서 말하고 氣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논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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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謹夫 12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金思鎭에게 답한 편지이다. 氣質之性에 대해서 성인은 性이 본래 선하고 氣도 역시 선하며, 衆人은 性은 비록 선하지만 氣는 선하고 선하지 않음이 있어서 氣가 선하지 않으면 性도 치우치고 가려지는 것이 있는데 性이 본래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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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謹夫 13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金思鎭에게 답한 편지이다. 퇴계선생이 논한 四端七情論은 性을 이미 理와 氣로 나누어 말하면 情도 理와 氣로 나누어 말할 수 있고, 性은 하나이지만 본연과 氣質의 이름이 있으니 한 가지만 가리키고 아울러 가리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情은 하나이지만 四端과 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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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謹夫(1935) 14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金思鎭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의 스승이 말했던 聰明睿知에 대해 제가의 학설을 들어 설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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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敬哉(勝直,1902) 15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朴勝直에게 답한 편지이다. 과감하게 힘을 써서 나가면 의심나는 곳과 막힌 곳이 절로 풀릴 것이니, 진실되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근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문장은 노둔한 사람이 배워서 이룰 수 있는 것이고, 자기에게 절실하고 이치에 가까운 공부가 날마다 행해야 할 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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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聲之(1901) 16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權鍾遠(字 聲之)에게 보낸 편지이다. 16일 하산한 이래로 세상의 번잡한 일에 얽매어 안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다만 부형들이 무탈하고 공부하는 것이 산에 있을 때만은 못하나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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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聲之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權聲之에게 답한 편지이다. 淸凉山을 유람하여 선생들이 남긴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하였다. 心統性情圖의 中圖에 대해 논하였다. 理와 氣는 합하고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理의 본래 선함으로 말하자면 氣의 선함과 불선함에 합하지 않고, 氣에 善惡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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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별지는 心統性情圖에 中圖와 下圖로 나눈 이유, 그 내용에 대해 문답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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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聲之(1902) 20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權聲之에게 답한 편지이다. 理氣 두 글자에 대해 사람들이 통쾌하게 깨닫지 못하고 小人이 되어 버린 이유는 죽을 때까지 말로만 떠들고 하루도 실제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오직 스스로 힘써서 남들에게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圖說의 理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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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聲之 22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權聲之에게 보낸 편지이다. 氣質之性과 本然之性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잘 깨우쳐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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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德純(漢杰)論其所述大學記聞 23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李漢杰에게 보낸 편지로 大學을 강론한 것을 적어서 보낸 것이다. 明德에 대해서, 明明德의 해석에 대해서, 誠意에 대해서, 新民에 대해서, 新자에 대해서, 前王을 잊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使無訟’의 풀이에 대해서, ‘使無訟’에서 使자는 시키는 것이 아니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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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德純 29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李漢杰에게 답한 편지이다. 大學과 大學或問의 내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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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敬哉(學基,1936) 34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李學基에게 답한 편지이다. 心性理氣에 대한 논변은 근래에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하였다. 心이 性情을 통솔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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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姜孟禹(沭,1901) 35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姜沭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대는 가정의 훈육을 받고 엄한 스승의 가르침도 받았으며, 형제간의 즐거움도 있으니, 친구의 도움을 기다릴 것도 없다고 하였다. 스스로 명민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더욱 힘쓰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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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洪巨源(濬) 36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洪濬에게 보낸 편지이다. 心統性情圖의 中圖에 대해 퇴계선생이 圖를 만든 의도에 대해 견해를 적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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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汝文(奎鎬,1938) 37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李奎鎬(1893~1969)에게 답한 편지이다. 일상 생활의 안부를 묻고 전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말미에 元旦의 제사를 어떻게 거행하는 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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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三從弟雲卿(奎集,1901) 38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三從弟 丁奎集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늘부터라도 뜻을 확고하게 세우고 학문에 임하라고 하였다. 학문을 하는데 多能한 것과 博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오직 내가 마땅한 바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루 생활, 독서하는 방법 등에 대해 자세하게 일러 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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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湜孫(1929) 39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손자 丁湜에게 부친 것이다. 학습을 하는데 반드시 字字句句를 분명하게 외워서 文義를 관통하여 훗날 수용하는 바탕으로 삼고,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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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湜孫 39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손자 丁湜에게 부친 것이다. 토목공사에 골몰하고 있겠지만 학문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행동과 마음 가짐을 삼가서 본심을 잃지 말라고 하였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학문에 임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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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辨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규창性은 하나인데 氣質之性과 本然之性의 두 가지 이름이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