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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2301

    우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尹思進 著
    윤시형(尹時衡, 1602∼1663)의 시문집 목판이다. 윤시형은 본관이 파평이고 자가 평중(平仲)이며 호가 우암(憂菴)으로, 윤몽열(尹夢說)의 아들로 태어났다. 윤시형은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향시(鄕試)를 치를 때마다 장원하였지만 과거 시험에는 계속 실패하
    출처 : 유교넷
  • 322302

    황림선생문집 책판 / 유교문화>유물 / 尹思進 著
    윤사진(尹思進, 1713∼1792)의 시문집 목판이다. 윤사진은 본관이 파평이고 자는 퇴보(退甫)이며 호는 황림(篁林)이다. 이 책은 1914년 후손 윤병규(尹炳奎)와 윤상요(尹相堯) 등이 『정관치설』 6권과 함께 묶어 간행한 것이다. 권두에 곽도(郭鋾)의 서문이 실
    출처 : 유교넷
  • 322303

    옥계당안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지역에서 결성된 학문공동체의 인원 명부이다. 당안(堂案)이란 당실(堂室)에 모인 사람들의 명부라는 의미로, 이 옥계당안(玉溪堂案)은 옥계서원(玉溪書院)의 학생 명부이거나 그 서원과 관련된 계회(契會)의 회원 명단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남의 선비들은 주로 서원을 중심으
    출처 : 유교넷
  • 322304

    만향계안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울진 지역 선비들의 계회(契會) 기록과 참가자 명단이다. 이 문서의 서문에 따르면, 옥계서원(玉溪書院)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 1727~1788), 만은(晩隱) 전선(田銑) 등을 배향하던 곳이었는데, 흥선대원군
    출처 : 유교넷
  • 322305

    아희원람 / 유교문화>유물 / 張 混 編
    장혼(張混, 1759~1828)이 지은 어린이 교육용 도서이다. 장혼은 본관이 결성(結城)이고 자가 원일(元一)이며 호가 이이엄(而已广) 혹은 공공자(空空子)이다. 서울 출신 중인의 아들로 태어나, 1790년 대제학 오재순(吳載純)의 추천으로 교서관사준(校書館司準)이
    출처 : 유교넷
  • 322306

    채미연원록 / 유교문화>유물 / 曺錫日 編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일대기와 학문, 사승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서명의 ‘채미’(茝薇)는 최익현이 태어난 경기도 포천군 가채리(嘉茝里)와 이사하여 정착한 충남 청양군 미궐산(薇蕨山)에서 한 글자씩 따서 붙인 것이다. 최익현은 본관이 경주이고 자가 찬겸
    출처 : 유교넷
  • 322307

    간재사고 / 유교문화>유물 / 田 愚 著
    전우(田愚, 1841~1922)의 문집 중 일부를 편찬한 것이다. 전우는 본관이 담양(潭陽)이고 자가 자명(子明)이며 호가 간재(艮齋)이다. 임헌회(任憲晦) 문하에서 20년간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윤치중(尹致中)·서정순(徐廷淳) 등과 함께 노론(老論)의 학맥을
    출처 : 유교넷
  • 322308

    일우집 / 유교문화>유물 / 張柱臣 著ᆞ張必勳 編
    장주신(張柱臣)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이다. 장주신은 동추(同樞) 장정연(張政淵)의 아들로 호가 일우(一愚)이다. 천품이 순수하고 문장이 특출하였으며 경사(經史)에 박학다식하였다. 고종(高宗) 때 의관(議官)에 나아갔으나 대부분은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마하고 후
    출처 : 유교넷
  • 322309

    담양전씨족보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담양(潭陽) 전씨(田氏) 집안의 족보이다. 담양전씨는 고려 중엽 담양 출신의 전득시(田得時)를 시조로 여긴다. 전득시는 문과에 급제한 뒤 좌복야(左僕爺),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다. 그 후 3개 파로 나뉘는데, 후당 덕현파는 전조생
    출처 : 유교넷
  • 322310

    만은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田銑 著
    전선(田銑, 1599~1693)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이다. 전선은 호가 만은(晩隱)으로 조선 중기 울진 지역의 이름난 유학자였다. 어릴 적부터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인품을 가지고 있었기에, 연산군 때 이이첨(李爾瞻)을 능지처참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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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1

    삼은합고 / 유교문화>유물 / 田愚 編
    담양(潭陽) 전씨(田氏) 가문의 세 선조인 야은(壄隱) 전녹생(田祿生), 뇌은(耒隱) 전귀생(田貴生),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이다. 제1~2권에는 전녹생의 일고(逸稿)와 부록, 제3권에는 전귀생의 실기(實記)와 부록, 제4권에는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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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2

    우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尹時衡 著
    윤시형(尹時衡, 1602∼1663)의 시문집 목판이다. 윤시형은 본관이 파평이고 자가 평중(平仲)이며 호가 우암(憂菴)이다. 윤시형은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났지만 과거시험에는 계속 실패하였고, 결국 45세의 늦은 나이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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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3

    시문1(상치록서) / 유교문화>유물 / 田達心
    향음주례(鄕飮酒禮)에서 연장자를 공경하는 미덕에 관한 기록물을 만들고 그것의 서문을 쓴 것이다. ‘상치’(尙齒)란 웃어른을 존숭한다는 의미로, 보통 향음주례와 같은 경로연(敬老宴)에서 연장자의 경력을 찬탄하고 품덕을 존숭할 때 쓰는 말이다. 이 글의 지은이는 전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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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4

    시문2(노반계서) / 유교문화>유물 / 田元植
    경로의 풍속을 진작시키기 위해 계회를 조직하고 그것의 경위를 적은 서문이다. 지은이 전원식(田元植, ?~?)은 본관이 담양(潭陽)이고 자가 유경(孺耕)이며 호가 가암(柯菴)으로 경북 울진 출신의 이름난 유학자이다. 성리학 연구에 높은 경지를 이룬 인물들도 그에게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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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5

    시문3(죽와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백시승(白始升, 1680~?)이 담양 전씨 집안 인사에게 써준 당실(堂室) 기문(記文)이다. 백시승은 호가 낙천(樂天)으로 1723년(경종 3)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한 울진 지역 선비이다. 김언기(金彦璣)-백현룡(白見龍)-백표(白彪)-백빈흥(白賓興)으로 전해져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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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6

    성책1(부거유생도목)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과거시험 응시자의 명단이다. ‘부거’(赴擧)란 과거시험에 응시한다는 뜻이고 ‘도목’(都目)은 명단이라는 의미이다. 울진 지역 선비 중 중앙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이름과 인적 사항을 기록한 것이다. 이 명부에는 먼저 응시자의 성명․본관․나이․출생지 등을 기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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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7

    시문1(상량문) / 유교문화>유물 / 黃鎭奎 撰
    울진향교를 이건할 때 쓴 상량문(上樑文)이다. 울진향교는 1484년(성종 15)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월변동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에 다시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축(移築)하였다. 한국전쟁 때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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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8

    관동빈흥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선시대 강원도 지역 선비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1793년 조정에서는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晋賢)에게 명하여 강원도의 선비 중 공령생(功令生 :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과 경공생(經工生 : 經學을 공부하는 학생) 중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시험을 치르게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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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19

    서화류1(전동해비)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허목(許穆, 1595~1682)이 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의 탁본이다. 1661년(현종 2)에 허목이 삼척부사(三陟府使)로 갔을 때 세운 비석이다. 당시 삼척에는 해파가 심하여 조수가 읍내까지 올라와서 주민의 피해가 심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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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0

    어사재집(고파집) / 유교문화>유물 / 朱奐璧 著
    주환벽(朱奐壁, ?~?)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이다. 주환벽은 본관이 신안(新安)이고 호가 어사재(於斯齋)로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의 증손이다. 1684년(숙종 10)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 생원이 되었고, 관사(官舍)에서 소(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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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1

    성책1(기휴재문인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주필혁(朱必赫, ?~?)의 문하에서 공부한 제자들의 명부이다. 주필혁은 본관이 신안(新安)이고 호가 기휴재(棄休齋)로, 충효당(忠孝堂) 주경안(朱景顔)의 증손이다. 1660년(현종 1)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임만휴(任萬休)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신독재(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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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2

    성책2(기휴재문인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주경안(朱景顔, ?~?)의 자손들이 계회(契會)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주경안은 본관이 신안(新安)이고 자가 여우(汝愚)이며 시호는 충효당(忠孝堂)이다. 효심과 충성심이 지극하여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임금이 붕어했을 때 모두 3년간 상을 치렀다고 한다. 또한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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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3

    충효당문접안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주경안(朱景顔, ?~?)의 자손들이 계회(契會)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주경안은 본관이 신안(新安)이고 자가 여우(汝愚)이며 시호는 충효당(忠孝堂)이다. 효심과 충성심이 지극하여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임금이 붕어했을 때 모두 3년간 상을 치렀다고 한다. 또한 임
    출처 : 유교넷
  • 322324

    연하침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김휴(金烋, 1597~1638)가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만폭동 청룡담(靑龍潭)의 반석(盤石) 사이 물속에 잠겨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목침(木枕)이다. 김휴는 이것을 연하침(煙霞枕)이라고 이름 붙였다. ‘연하’란 자연의 풍광을 가리키는 말로, 이 목침을 베고 누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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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5

    신라경순왕 고적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 때부터 전해져 온다는 옥피리이다. 이 피리를 가보로 전수한 의성김씨 집안은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석(金錫)을 시조로 삼는다. 그러므로 이 피리는 무려 천여 년을 고스란히 전수된 보물이다. 피리의 보관함에는 신라 경순왕 때부터 전해져 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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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6

    갓끈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갓을 매는 데 사용하는 끈 3점이다. 보통 헝겊으로 만들었으나 옥·마노·호박·산호·밀화·수정 등 보석류의 광물을 사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특히 여름에는 헝겊으로 짠 갓끈은 땀에 젖어 착용이 불편하므로, 이러한 광물로 구슬갓끈[珠纓]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구슬갓끈은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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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7

    거문고_옥천선생사용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이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거문고이다. 조덕린은 본관이 한양(漢陽)이고 자가 택인(宅仁)이며 호가 옥천(玉川)으로, 조선 후기 유명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교리·사간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서원을 너무 많이 세우는 것에 반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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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8

    관자(옥)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망건에 달아 당줄을 걸어 넘기는 구실을 하는 작은 고리로 권자(圈子)라고도 한다. 재료는 금·옥·뼈·뿔 등인데, 관품(官品)에 따라 재료와 새김장식이 달랐다. 그래서 이 관자가 관품과 계급을 구별하는 사회적 구실도 수행하였다. 표시하는 사회적 구실도 하였다. 『오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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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29

    등잔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나무를 깎아 만든 등잔이다. 등잔은 전등이 쓰이기 전 등화구(燈火具) 가운데 가장 널리 쓰였던 조명기구이다. 등잔은 보통 등가(燈架)·등잔받침·나비형 장식 등으로 구성되며, 토기·도기(陶器)·청자·백자·옥석 등 불연소성 소재로 만든다. 불을 켤 때 사용하는 재료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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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0

    병풍(봉래풍악, 백세청풍)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한양(漢陽) 조씨(趙氏) 옥천(玉川) 종택에서 기탁한 병풍 2점이다. 한 점은 남송(南宋)시대의 대학자인 주희(朱熹, 1130~1200)가 쓴 ‘백세청풍(百世淸風)’ 네 글자를 탁본한 것으로, 이것은 주희의 친필을 탁본하여 병풍으로 만든 것이다. 겉표지는 갈색 비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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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1

    부채_옥천선생사용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이 사용했던 부채이다. 조덕린은 본관이 한양(漢陽)이고 자가 택인(宅仁)이며 호가 옥천(玉川)으로, 조선 후기 유명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보통 부채에는 둥글부채와 접부채가 있는데, 둥글부채는 부챗살이 고정된 것이고 접부채는 부챗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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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2

    상아끈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상아로 만든 장신구이다. 상아는 코끼리의 엄니로 내구성이 높으면서도 조각하기에 적합한데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신구의 중요한 재료로 여겨져 왔다. 이 유물은 작은 상아 조각 수십 개를 구슬 모양으로 조각하여 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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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3

    지휘봉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한양(漢陽) 조씨(趙氏) 옥천(玉川) 종택에서 기탁한 지휘봉 2점이다. 하나는 나무를 조각한 것으로 앞부분에는 육각모의 구형이 달렸고 손잡이 부분은 줄을 꼬아 붙인 듯한 모양으로 나무를 유려하게 조각하였다. 다른 하나는 검은 대나무[烏竹]를 광택이 나도록 다듬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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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4

    칼(무신난호소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이 사용했던 장검(長劍)이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영조(英祖)는 조덕린을 경상도호소사(慶尙道號召使)로 임명하여 반란을 평정하게 하였다. 이 장검은 그때 영조가 하사한 물건이다. 함(函)에는 옥천(玉川)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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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5

    호패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이 사용했던 호패(號牌)이다. 호패는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발급한 패로,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이것으로 호구(戶口)를 파악하고 유민(流民)을 방지할 뿐 아니라 부역(賦役)의 조달과 신분 질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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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6

    홀기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제사 때의 홀기(笏記)를 적은 목판이다. 홀기란 혼례나 제례 때 진행 절차를 적은 글로, 복잡하고 긴 예식 행사를 정확하게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홀기는 따로 적어 보관하다가 행사 때 상황에 맞게 변형하고 종이에 크게 적어 게시하는데, 불천위제(不遷位祭)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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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7

    흉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조선시대 왕족과 문무백관이 입는 상복(常服)의 가슴과 등에 장식하던 사각형의 수(繡) 장식품이다. 흉배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그 문양에 따라 품계를 나타내었고, 왕족이 사용하는 것은 특별히 보(補)라고 불렀다. 왕과 왕세자는 용무늬를 수놓은 원형의 보를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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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8

    관감록 / 유교문화>유물 / 朴弘長 著
    임진왜란 때의 명장 박의장(朴毅長, 1555~1615)의 행적과 공훈을 기록하고, 그의 유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박의장은 본관이 무안(務安)이고 자가 사강(士剛)이며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김언기(金彦璣)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퇴계정학을 계승하였지만, 1577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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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39

    도남지 / 유교문화>유물 / 南敎喆 編
    남교철(南敎喆)이 지은 영양(英陽) 남씨(南氏)의 종친회(宗親會) 기록물이다. 영양 남씨는 신라시대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을 시조로 삼는데, 이 책에는 그의 묘소를 그림과 함께 수록하고 제문, 묘갈명, 고유문(告由文), 당기(堂記), 기타 선산과 관련된 행정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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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0

    무안박씨세보 / 유교문화>유물 / 朴載緯 編
    무안(務安) 박씨(朴氏) 집안의 세보(世譜)이다. 무안 박씨는 8대군파 완산대군의 후예로, 고려 초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食邑)으로 받은 박진승(朴進昇)을 중시조로 삼는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를 21명이나 배출한 명문가로서, 대표적 인물은 고려시대의 박승중(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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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1

    박도사유사 / 유교문화>유물 / 朴宗文 著
    박종문(朴宗文, ?~?)과 관련된 기록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박종문은 세조(世祖) 때의 인물로 무과(武科)에 합격한 뒤 제주통판(濟州通判)으로 부임하였다가 다시 함길도(咸吉道, 현재의 함경도) 도사(都事)로 부임하였다. 이때 이시애(李施愛,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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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2

    자양봉사 / 유교문화>유물 / 朱熹 著
    남송시대 대학자이자 문신인 주희(朱熹, 1130-1200)의 「무신봉사(戊申封事)」를 필사한 책이다. 책표지의 ‘자양(紫陽)’은 주희의 아버지인 주송(朱松)이 거처하던 ‘자양산(紫陽山)’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희는 자기의 서원 이름도 ‘자양서원(紫陽書院)’이라 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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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3

    축산지 / 유교문화>유물 / 南敎喆 著
    남교철(南敎喆)이 지은 영양(英陽) 남씨 시조의 유적지에 관한 기록이다. 장석영(張錫英, 1851∼1926)이 지은 이 책의 서문에 따르면, 영양 남씨의 시조인 남민(南敏)은 본래 당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의 축산(丑山)에 표류하게 되었다. 이때 신라의 경순왕이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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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4

    영와문집 / 유교문화>유물 / 南孝源 著
    남효원(南孝源, 1819∼1890)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이다. 남효원은 본관이 영양(英陽)이고 초명이 치경(致敬)이며 자가 가직(可直), 호는 영와(寧窩)이다. 남효원은 10세에 부친을 잃고 증조부 남서양(南舒陽)에게서 학문을 시작하였고, 그 후 숙부 남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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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5

    담와선생일집 / 유교문화>유물 / 白文寶 著
    백문보(白文寶, 1303~1374)의 시문을 모아 엮은 유고문집이다. 백문보는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으로, 자는 화보(和父)이고 호는 담암(淡菴)이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1320년(충숙왕 7) 문과에 급제한 뒤, 검열(檢閱)․우상시(右常侍)․전리판서(典理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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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6

    언문고서1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한글로 쓴 가사(歌詞) 문집이다. 표지에는 ‘옥낭가(玉娘歌)’, ‘시절가’, ‘외잡록’,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붕우사모가(朋友思慕歌)’이라고 쓰여 있다. 이 중 ‘추풍감별곡’은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조선 순조(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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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7

    언문고서2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한글로 쓴 서간문(書簡文) 모음집이다. 규방 여인들의 편지를 모아 문집처럼 편찬한 것으로, 친정 가족 간의 애정과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한 내용이 많다. 총 34매로 구성되어 있다. 궁체의 한글 글씨로 썼다는 점과 보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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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8

    대봉재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대봉재사는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사육신 등과 화를 당한 충민공(忠愍公) 권자신(權自愼)을 주위(主位)로 모시고, 부제학 권자홍(權自弘)의 아들로 13세 때 영해로 유배된 안동권씨 영해입향조 오봉(五峯) 권책(權策)과 병자호란 때에 척화를 주장한 남곡(南谷) 권상길(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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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349

    덕후루 / 유교문화>유적 / 미상
    덕후루는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무의공(武毅公) 박의장 (朴毅長)의 재실이다. 덕후루는 창수면 수리 저수지를 지나 북서쪽 ‘집희암’ 마을 입구에 위치하며,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 평면구성은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원래 건물은 ‘日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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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모재 / 유교문화>유적 / 미상
    영모재는 영덕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영양남씨(英陽南氏) 괴시파(槐市派) 13세조 남정방(南靖邦)과 배위 수안김씨(遂安金氏), 15세조 남두원(南斗遠), 16세조 남붕한(南鵬翰)을 모시는 재사이다. 재사는 창수면 수리 숯골마을을 지나 좌측 야산 밑을 돌아서는 길 모서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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