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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申乭石)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호는 장산(壯山).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조선의 의병장. 을사강제병합이 맺어진 이듬해 울진군 평해면에서 의병을 일으켜 많은 일본군을 죽임으로써 당시 영남지방의 의병장 중 가장 활약이 컸다. 이때 현상금을 탐낸 고종(姑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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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득청(申得淸)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징수(澄叟). 호는 이유헌(理猷軒). 본명(本名)은 중청(仲淸)이었으나 공민왕(恭愍王)대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자 왕이 사람을 얻었다 하여 이름을 득청이라 하였다. 역대전리가(歷代轉理歌)를 지어 공민왕의 실정에 대하여 건의(建議)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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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한(申維翰)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 가야초수(伽倻樵叟).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19년 제술관(製述官)이 되어 통신사(通信使) 홍치중(洪致中)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으며,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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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경(申履慶)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선중(善仲). 호는 육구당(六懼堂). 1646년(인조 24) 식년시(式年試)에 2등으로 급제(及第)하여 생원(生員)이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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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활(申活)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탁(景濯). 호는 죽로(竹老).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인(門人)이며, 예론(禮論)과 성리학(性理學)에 밝았다. 임진왜란에 아버지를 따라 화왕진(火旺陣)에 참획(參劃)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 학문에 관한 열이 식어가자 단산서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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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성(柳晉成)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응휴(應休). 호는 동계(東溪). 조선(朝鮮) 말기(末期)의 유학자(儒學者)로 은거(隱居)하며, 후학양성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동계집』 4권 2책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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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황(尹煌)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집(聖執). 호는 명은(溟隱). 문종(文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자 이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영해로 이주해와 은거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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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도(李善道)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영모당(永慕堂). 숙조(叔祖) 퇴계(退溪)의 문인(門人)이고 성품은 효성스럽고 부드러웠다. 관(官)은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에 이르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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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함(李涵)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양원(養源). 호는 운악(雲嶽). 1588년(선조 21) 식년시(式年試)에 3등으로 합격(合格)하여 생원(生員)이 되었고, 1600년(선조 33)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 1603년(선조 36) 의금부(義禁府) 도사(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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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일(李徽逸)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문(翼文). 호는 존재(存齋). 승의랑(承議郎) 시성(時成)에게 입양되었으며 현일(玄逸)의 형이 된다. 13세 때 외할아버지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의 문하(門下)에 들어가서 『맹자』의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설을 배웠다. 또한, 『주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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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옥(田光玉)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덕휘(德輝). 호는 간송당(澗松堂). 1725년(영조 1) 증광시(增廣試)에 3등으로 합격(合格)하고, 1747년(영조 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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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득여(權得輿)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득초(得初). 호는 송천자(松川子). 1682년(숙종 8) 증광시(增廣試)에 2등으로 합격(合格)하여 진사(進士)가 되었으며, 참판(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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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南師古)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원(景元). 호는 격암(格菴). 조선 명종(明宗) 때에 효성과 청렴으로 사직참봉(社稷參奉)을 하고, 선조(宣祖) 초에 천문교수(天文敎授)를 지냈으며, 유고(遺稿)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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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규(南相奎)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로(德老). 호는 우산(愚山). 기품이 높고 넓으며 풍채가 빼어나게 밝았다. 사사로운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최면암(崔勉菴) 선생과 더불어 사물의 이치에 관해 논변(論辨)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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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세영(南世英) 임진년 일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임천(臨川). 어려서 격암 남사고(南師古)의 문하(門下)에서 수학하였고,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산속에 숨어 부모님께 효도하고 책을 읽고 학문연구를 하였다. 후에 정사(精舍)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오래 살면서 통정(通政)에 오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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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영(南軫永)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정함(靜涵). 호는 무실재(務實齋).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학문연구에 힘써 주자 성리학의 학문적 성과를 얻었으며, 동학들과 강학소를 열어 후학을 가르치며 덕을 갖춘 선비로 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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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효(孫舜孝)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 시호는 문정(文貞). 1453년(단종 1) 생원(生員)으로 증광문과(增廣文科), 1457년(세조 3)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각각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우찬성(右贊成)에 올랐으며, 1496년(연산군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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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일(吳道一)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영의정 윤겸(允謙)의 손자이며,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700년 대제학·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고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1702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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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진(尹思進)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퇴보(退甫). 호는 황림(篁林). 천인일리학설(天人一理學說)과 통서연의(通書衍義) 잡저(雜著) 등을 저술하였다. 이를 본 울진현령 이병정(李秉鼎)이 황림의 행적과 저서를 요약한 단자를 만들어 조정에 보고하여 강원도 영동교양관(嶺東敎養官)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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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형(尹時衡)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평중(平仲). 호는 우암(憂菴). 어려서부터 글짓기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서 백일장(白日場)에 여러 번 장원하였으며,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 주형(朱炯) 등과 더불어 학문을 토론하고 생사를 같이하는 막역한 벗이었다. 1647년(인조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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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발(李英發)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사계(沙溪). 과거의 뜻을 버리고 사동에 집을 짓고 사계정사라 하였다. 후학양성에 힘썼으며 성품이 후하고 너그럽고 시(詩)와 예(禮)를 힘써 행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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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후(任有後)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효백(孝伯). 호는 만휴당(萬休堂). 임숙영(任叔英)의 문인으로 1624년(인조 2) 생원(生員)·진사(進士) 양시(兩試)에 합격, 162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가 되었으나, 1628년 동생 지후(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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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수(張良守) 진사시 급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울진(蔚珍). 1205년(희종 1)에 진사시(進士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전리판서(典理判書)·상호군(上護軍)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일찍이 사신(使臣)으로 갔다 온 업적(業績)과 나라에 많은 공덕(功德)을 남겼다. 그의 과거급제패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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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손(張伯孫) 호방시 급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울진(蔚珍). 1487년(성종 18) 호방시(虎榜試)에 병과(丙科)에 급제한 후 1491년(성종 22) 파저강(婆獄江 : 퉁자강(佟佳江)에서 야인(野人)을 토벌(討伐)하는 데 큰 공(功)을 세웠으며, 강계도호부사(江界都護府使)를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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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성(張時聖)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화언(和彦). 호는 죽파(竹坡).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자태가 단정하였다. 효우(孝友)가 독실하였으며 지조와 행실이 깨끗하고 바르며 학문이 높았다. 또한 문학에 뛰어나고 역학(易學)에 정통하였으며 향약(鄕約)을 만들어 백성을 선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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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원(田九畹)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정칙(正則). 호는 우와(愚窩).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 문하(門下)에서 수업하여 학문과 덕행이 당시를 압도하니 향중 사람들이 죽림(竹林)의 삼봉(三鳳)이라 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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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田銑)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만은(晩隱).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벽지에서 물욕 없이 학문을 즐기며 한가로이 살았다. 1599년(선조 32)에 출생하여 1693년(숙종 19)에 향년 95세로 졸하였다. 대질(大耋)로서 수직(壽職)인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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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田愚)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간재(艮齋), 구산(臼山), 추담(秋潭). 당시의 거유(巨儒) 신응조(申應朝)의 권유로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였고 임헌회(任憲晦) 문하(門下)에서 20년간 학문을 닦았다. 노론(老論) 학자들의 학통을 이어, 이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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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식(田元植)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유경(孺耕). 호는 가암(柯菴). 간재(艮齋) 전우(田愚)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통 성리학 수학에 나섰다. 무실재(務實齋) 남진영(南軫永), 경재(絅齋) 정연국(鄭然國)과 더불어 정통 성리학자로서 유학의 도리를 지키고 이를 실천한 유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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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석(田爾錫)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주경(周卿). 호는 송암(松菴). 천성이 지극하고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송어(松魚)를 원함에 하늘을 보고 통곡하니 해조(海鳥)가 송어를 물고 와 공양하니 그의 효성스런 일화를 보고 들은 사람들은 이를 감천지효(感天之孝)라 말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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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국(鄭然國)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경재(絅齋). 무실재(務實齋) 남진영(南軫永)의 문하(門下)에서 수업하였고, 천 리 바깥에 있는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간재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연구에 힘썼다. 간재선생이 죽자 석농(石農) 오진영(吳震英)을 좇아 충북 음성(陰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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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개신(朱介臣)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공립(公立). 호는 이우당(二友堂).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경전(經典)과 사서(史書)를 넓게 통달했으며 부모님을 섬김에 효성과 공경을 다했다.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과 같이 읊은 시집(詩集)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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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안(朱景顔)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우(汝愚). 추호(追號)는 충효당(忠孝堂). 행동함이 거짓이 없고 순수하며 성실하여 충효를 몸소 실천하였다. 1578년(선조 11)에 정문(旌門)을 받았으며, 1748년(영조 24)에 조정으로부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의 벼슬과 충효당(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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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기(朱命杞)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정보(正甫). 호는 치암(致庵).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항상 옆에서 도우며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효경(孝經)과 소학(小學) 등 성리학의 모든 책을 공부하였고 특히 하락서(河洛書)에 정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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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창(朱世昌)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대유(大猷). 호는 독송(獨松). 성품이 지극히 온순하고 부모 공경이 남달랐으며, 연일(延日), 경원(慶源), 의주(義州) 교수(敎授)로 제수하였다. 학문을 좋아하여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와 송강(松江) 정철(鄭澈), 월천(月川) 조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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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대(朱必大)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한재(寒齋). 학문이 뛰어나고 뜻이 돈독하였다. 1662년(현종 3)에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임만휴(任萬休)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오직 학문에만 뜻을 두며 살다가 1693년(숙종 19)에 향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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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한(崔益翰)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운거(雲擧). 호는 돌샘[石泉], 창해(滄海). 성품이 순결하며, 재능이 뛰어나 한문 수학할 때 천재적 문인(文人)이란 칭호를 받았다. 1911년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생으로 5년간 수학(修學)하였고, 신학에 들어가 서울 중동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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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일(黃汝一)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회원(會元). 호는 해월(海月). 어려서부터 문장으로 이름났고, 1576년(선조 9)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85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한 후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權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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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응청(黃應淸)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청지(淸之). 호는 대해(大海).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천거로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다시 장원서별좌(掌苑署別座) 등에 임명되었을 때 4가지 시폐(時弊)를 개진(開陳)하여 왕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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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중윤(黃中允)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도선(道先). 호는 동명(東溟). 일찍이 학문적 소양과 재질을 가지고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정언·헌납·사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620년 주문사(奏聞使)로 임명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온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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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 6월에 노비 박천억(朴千億)이 그의 상전(上典) 채무(債務)에 관한 일로 고을 사또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서삼계 박노 천억1893년 11월 즈음에 자신의 상전(上典)이 이웃에 사는 이복록(李卜彔)에게 20냥을 빌려 주었는데, 사정으로 제때에 갚지 못했고, 또 흉년을 당해 빚을 갚을 길이 없자 초가 4칸과 곡물로 전당(典當)을 잡혔다. 그런데 올해 2월 즈음에 이복록이 객지로 떠돌아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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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고종 36) 12월에 화민(化民) 박문용(朴文鏞)등이 자신들 선영(先塋)에 소나무를 벌목당한 일로 고을 수령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박문용·박주욱·박진용 등 45인1899년 12월에 박문용(朴文鏞)등이 연명(連名)하여 올린 소지(所志)로, 죽은 참판(參判) 정공(鄭公)은 자신들 선조의 증손서(曾孫壻)로서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 김제군수(金堤郡守)로 있다가 웅치(熊峙)에서 순절(殉節)을 하였는데, 자신들의 선조가 그의 갑옷과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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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1월에 박문용(朴文鏞), 박주휴(朴周休) 등이 채무(債務)에 관한 일로 고을 수령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화민 박문용·박주휴 등1902년 화민(化民) 박문용(朴文鏞) 등이 고을 수령에게 올린 소지로, 지난해 10월에 친척이 갑자기 초상을 당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만 남았는데, 그 집안에서 빚과 도지(賭地 : 일정한 대가를 주고 빌려 쓰는 논밭이나 집터)로 받아쓴 돈이 1천 3백여 냥이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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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2월에 박치범(朴致範) 등이 선영(先塋)의 경계가 분명하지 못한 이유로 수령에게 올린 소지(所志). / 기록자료>고문서 / 겸민 박치범 등 26인1916년 2월에 박치범(朴致範) 등이 고을 수령에게 올린 소지(所志)로, 참판(參判) 정공(鄭公)은 자신들 선조의 증손서(曾孫壻)로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하여 웅치(熊峙 : 전라북도 진안과 전주 사이에 있는 고개)에서 순절하여 자신들의 선영(先塋)아래에 반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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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고종 17) 1월에 송전주인(松田主人) 신생원(申生員)이 신천송계(新川松契) 앞으로 발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송전주 석계댁 신생원송전주인(松田主人)인 신생원(申生員)이 신천송계(新川松契)에 발급한 명문(明文)으로, 자신의 집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곳이 있어서 내사동(內絲洞)에 전래해오던 송전(松田)중에 신리곡(辛梨谷)으로부터 긴 비탈로 곧장 계곡(溪谷)주변까지를 전문(錢文 : 돈) 3냥 5전(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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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월에 종형(從兄) 효원(孝源)이 사종(四從) 대원(大源)에게 발급한 수기(手記) / 기록자료>고문서 / 기주 종형 효원종형(從兄 : 사촌형) 효원(孝源)이 사종(四從 : 십촌뻘 되는 형제자매)대원(大源)에게 발급한 수기(手記)로, 삼종(三從 : 팔촌이 되는 관계)할머니의 묘(墓)자리 전후(前後)에 세 무덤이 점차로 장사(葬事)지내졌다 하고, 백동(栢洞)위쪽 긴 비탈은 윗대부터 금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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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고종 35) 3월에 답주(畓主) 호신축(戶辛丑)이 호천열(戶千烈)에게 발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답주 호 신축답주(畓主) 호신축(戶辛丑)이 호천열(戶千烈)에게 발행한 명문(明文)으로, 자신의 상전(上典)이 중요하게 쓸 곳이 있어 전해오던 망동(輞洞)의 종자(終字)들 정조(正租 : 벼) 4마지기와 백동(栢洞) 동내입구(入口)의 길 아래 논 2배미(구획진논을 세는 단위) 짐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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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9월에 산주(山主)인 주형(周亨)이 족손(族孫)인 대원(大源)에게 발급한 명문(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산주 주형산주(山主)인 주형(周亨)이 족손(族孫 : 성이 같은 사람들 가운데 유복 친안에 들지 않는 손자뻘이 되는 사람)인 대원(大源)에게 발급한 명문(明文)으로, 족손(族孫)인 대원(大源)이 불행하여 갑자기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선영(先塋)의 청룡(靑龍 : 풍수지리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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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3월에 전답주인(田畓主人) 박대원(朴大源)이 박회식(朴晦植)에게 발급한 분할명문(分割明文) / 기록자료>고문서 / 전답주 박대원전답주인(田畓主人) 박대원(朴大源)이 박회식(朴晦植)에게 발급한 분할명문(分割明文)으로, 자신이 전해오던 전답(田畓)을 분할(分割)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文書)로 분할할 전답(田畓)은 다음과 같다. 송경평(松景坪) 욕자원(欲字員 : 지번(地番)이 욕자인 들) 논2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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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훈(遺訓) 작성자가 죽기에 임해서 자손들에게 훈유(訓遺)한 유계(遺戒)로, 우리 자손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관대(冠帶)하고 부모를 찾아뵙고 곧바로 독서(讀書)하고 행동을 삼가되 부랑(浮浪 :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하는 무리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