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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고종 9) 9월 19일에 류정호(柳廷鎬)가 남효술(南孝述)에게 종이와 쑥을 청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1872년 9월 19일에 류정호(柳廷鎬)가 성용(聖鎔) 형(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성용은 남효술(南孝述)의 자(字)이다. 남효술의 아버지인 남고(南皐)는 류정호의 장인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저는 부모님 모시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아이의 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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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철종 11) 윤3월 18일에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1860년 윤3월 18일에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쪽으로 가셨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신 채로 봄도 다 가서 매우 그립습니다. 언제 돌아오십니까? 아드님은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척장(戚丈)께출처 : 유교넷 -
323003
1893년(고종 30) 3월 28일에 류연구(柳淵龜)가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위로 및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질 류연구1893년 3월 28일에 류연구(柳淵龜)가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위로 및문안 편지이다. 류연구의 아버지 류정호(柳廷鎬)는 남효술의 아버지 남고(南皐)의 딸과 혼인하였다. 먼저 돌아가신 종모(從母)에 대해 숙부께 차마 위로의 말씀도 드릴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월출처 : 유교넷 -
323004
1870년(고종 7) 4월 20일에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1870년 4월 20일에 류정호가 장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편지 첫 머리에 생식(省式)이라고 쓰고 있어 류정호가 상중(喪中)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 년 동안이나 편지가 끊겼으니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늦봄부터 전염병이 도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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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철종 8) 1월 19일에 류치후(柳致厚), 류치호(柳致好), 류치유(柳致游)가 남고(南皐) 등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죄인 류치원·치호·치유 등1857년 1월 19일에 류치후(柳致厚), 류치호(柳致好), 류치유(柳致游)등이 남고(南皐)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치후 외 2명은 남고의 사위인 류정호의 아버지 류치임(柳致任)과 사촌 사이이다. 류치후 등은 현재 상중(喪中)인데, 이 편지는 남고 등이 보낸 위로출처 : 유교넷 -
323006
1860년(철종 11) 8월 5일에 류지호(柳止鎬)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류지호1860년 8월 5일에 류지호(柳止鎬 : 1825 ~ 1904)가 남고(南皐)에게 답장으로 보낸 문안 편지이다. 류지호는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아들이며 자는 원좌(元佐), 호는 세산(洗山)이다. 남고는 류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한 적이 있다. 편지의 내용은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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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철종 4) 10월 25일 류병호(柳炳鎬)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죄인 류병호1853년 10월 25일 류병호(柳炳鎬)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편지 첫 머리에 ‘계상(稽顙)’이라고 쓰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죄인(罪人)’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류병호가 상중(喪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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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 1월 25일 류치임(柳致任)이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1876년 1월 25일 류치임(柳致任)이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류치임과 남고는 사돈 사이이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겨울 오산(梧山) 편에 부친 편지는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전에 우리 아이가 갔을 때는 종이가 없어 다시 편지를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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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2월 26일에 류치임(柳致任)이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복제 치임1859년 2월 26일에 류치임(柳致任)이 남고(南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치임과 남고는 사돈 간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대평(大平)은 요즈음 여전한데, 태형(台兄 : 대감 형)은 오늘 산정(山亭 : 산 속의 정자)으로 갔습니다. 며칠 동안 지내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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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11월 8일에 류지호(柳止鎬)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담제인 류지호1863년 11월 8일에 류지호(柳止鎬)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고는 류지호의 아버지인 류치명(柳致明 : 1779 ~ 1861)의 문하에서 배운 바 있다. 이 편지에서 류지호는 자신을 ‘시생(侍生) 담제인(禫制人)’이라고 칭하고 있어서 당시 담복(禫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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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2월 10일에 류치임(柳致任)이 남고(南皐)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치임1863년 2월 10일에 표곡(瓢谷)에 사는 류치임(柳致任)이 원구(元邱 : 현재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의 남고(南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고와 류치임은 사돈 사이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 달 쯤 전에 편지를 받고도 멀리 나가 있느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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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철종 8) 11월 9일에 류정호(柳廷鎬)가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1875년 11월 9일에 류정호(柳廷鎬)가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남효술의 아버지 남고(南皐)는 류정호의 장인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늦가을에 두 번 뵈었는데 바빠서 오랫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하기엔 부족했습니다. 끝없이 그리워하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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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고종 6) 2월 8일에 이돈우(李敦禹)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경제 이돈우이돈우(李敦禹 : 1807 ~ 1884)의 자(字)는 시능(始能)이고, 호(號)는 긍암(肯庵)이다. 그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현손이며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배웠다. 남고와는 정재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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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丁未) 7월 29일에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에게 보낸 위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복용정미년 7월 29일에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정확한 연도와 수신인은 알 수 없다. 사돈이 둘째 형수의 상을 당한 데 대한 위문편지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근래 몇 년 동안 소식이 막혀 있었습니다. 최근 둘째 형수의 상을 당하셨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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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辛巳) 5월 10일에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에게 보낸 위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복용신사년 5월 10일에 조복용(趙復容)이 지동(枝洞)에 사는 사돈에게 보낸 위문편지이다. 자신을 ‘기복인(朞服人)’이라고 칭하고 있어서 조복용이 당시 상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편을 통해 보내신 편지를 받고 질부(姪婦)의 상을 당하셨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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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고종 16) 8월 27일에 박영수(朴瀛秀)가 남효술(南孝述)에게 남고(南皐)의 죽음에 부친 만시(輓詩)를 보내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박영수1879년 8월 27일에 박영수(朴瀛秀)가 남효술(南孝述)에게 남고(南皐)의 죽음에 부친 만시(輓詩)를 보내며 보낸 편지이다. 남고는 1879년 1월 7일에 사망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늘한 가을이 되어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요사이 시전(侍奠 : 상중임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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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丙子) 7월 12일에 사위가 장인에게 올린 위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병자년 7월 12일에 사위가 장인에게 올린 위문 편지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두 달 소식을 전하지 못한 동안 그리움의 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가을장마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시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형제분들과 온 마을은 잘 지내시는지요? 저희 아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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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고종 16) 1월 11일에 김기화(金夔和)가 부친상을 당한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조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제 김기화1879년 1월 11일에 김기화(金夔和)가 아버지 남고(南皐)의 상을 당한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조문 편지이다. 남고는 1879년 1월 7일에 사망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숙주(姻叔主 : 처가의 숙부뻘 되는 분. 장인의 동생. 김기화는 남고의 형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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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1월 27일에 이창원(李昌源)이 사돈을 초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창원경자년 1월 27일에 이창원(李昌源)이 사돈을 초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지난 연말에 보내주신 편지에 답장하지 못하여 연초에 그리움이 마치 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듯 했습니다. 답장을 써 인사드리려 할 때 아드님이 다시 찾아와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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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4월 14일에 박우찬(朴宇燦)이 모친상을 당한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강복인 박우찬1867년 4월 14일에 박우찬(朴宇燦)이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편지이다. 박우찬은 남효술의 장인이다. 남효술의 어머니인 안성(安城) 이씨(李氏)는 1867년 1월 15일에 사망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선비(先妣 : 죽은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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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 12일 남탁(南鐸)이 사위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옹 남탁1942년 6월 12일 남탁(南鐸)이 사위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요즈음 여러 가지로 이전보다 더 그리운데 부끄러운 것은 편지를 받고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답장이 늦어진 것이네. 사정을 헤아려 책망하지 말게나. 어머니는 탈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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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丁未) 7월 10일에 황중회(黃中晦)가 친구인 새 영해부사(寧海府使)의 손자·손녀의 혼처를 알아봐 달라고 남(南) 진사(進士)에게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우 황중회정미년 7월 10일에 황중회(黃中晦)가 보낸 편지이다. 본 자료는 봉투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봉투에는 ‘영해(寧海) 원구(元邱) 남(南) 진사(晉士) 사촌(沙村) 댁(宅) 전납(傳納 : 전하여 들임)’이라고 수신인이 표기되어 있고, 발신인은 ‘봉암(鳳巖) 황우(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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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7월 14일에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복용무진년 7월 14일에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늦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서늘함은 미약한 이때에 장인어른은 계속 건강하시며 사돈께서는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잘 지내시며 집안사람들은 모두 잘 지냅니까? 새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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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철종 8) 7월 9일에 성혁수(成赫壽)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성혁수1857년 7월 9일에 성혁수(成赫壽)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지난번에 각산(角山)에서 조우(趙友 : 조씨 친구)를 만났더니 바다 구경 갔을때 귀 댁에 방문하여 며칠 놀았던 이야기를 신나게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시시콜콜한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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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철종 6) 10월 12일에 성혁수(成赫壽)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 성혁수1855년 10월 12일에 성혁수(成赫壽)가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여름에 평향(萍鄕)에서 만난 후 소식이 끊겨 항상 그리웠습니다. 지난번에 동경(東京 : 경주)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시는 고을을 지나갔는데, 마점(馬店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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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丙午) 3월 10일에 정익세(鄭翼世)와 정익우(鄭翼右)가 신도비를 세우고 지내는 제사에 가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정익세·정익우병오(丙午)년 3월 10일에 척제(戚弟)인 정익세(鄭翼世)와 정익우(鄭翼右)가 신도비를 세우고 지내는 제사에 가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보낸 편지이다. 수신인은 알 수 없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때는 늦봄인데 건강하게 잘 지내시며 집안도 모두 평안하십니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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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5월 4일에 종하(宗下) 두익(斗翼)이 집안 어른에게 올리는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종하 두익편지를 받아보니 직접대하는 것 보다 반갑고, 단오절이 다가오는데 기거가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두익 본인은 형님이 죄를 용서받고 집으로 돌아와 감회가 너무 커 늙고 병든 자신이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고 하였다. 또 형님이 암행어사의 견책에 갑자기 피해를 입었을 때 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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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윤월 24일에 김진강(金鎭綱)이 원파(元坡)에 사는 남생원(南生員)에게 보내는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병제 김진강연초부터 병에 시달려오다가 더욱 심해져 몸을 폐기함에 이르렀는데, 외지고 협소한 곳에서 세상사와 끊고 사는 사람에게 벗이 편지를 보내 왔는데도 마침 병으로 타지에 있어서 답을 못 드린데 대하여 용서를 구하였다. 암(巖)모자가 오랫동안 남생원의 도움을 받아 지내온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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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辛亥) 윤4월 17일에 집안종항간인 남유수(有鏽)가 도향댁(陶鄕宅)에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유수유수 본인이 두문불출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윤달 여름에 보내준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의 내용은 문장의 폐해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즉 좌수(座首)를 시켜 환자(還上 : 춘궁기에 각 고을의 사창에서 백성(百姓)에게 꾸어 주었던 곡식(穀食)을 가을에 받아들이는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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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고종 43) 2월 24일에 허훈(許薰)이 원파에 거주하는 이에게 답장을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허훈연전(年前)에 직접 저를 찾아와 뵌 후에 편지를 보내 주어 그 감사함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미 간행된 부친의 문집과 앞으로 세울 묘도에 온힘을 써주어서 경복한다고 하면서 묘도문(墓道文)은 묘석을 세울 시일이 임박하여 고치지 못하고 올린 바, 다시 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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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7월 26일에 생질인 유연려(柳淵驪)가 숙부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복인 류연려반년 전부터 죽음의 문턱을 오가며 겨우 목숨만 보전하는데다가 습한 바람이 불어 적막하기만 하다. 게다가 연초부터 전에 없는 한발이 들었다가 겨우 해갈된 가을에 접어드는 이때에야 외숙부와 집안 어른, 어린이들의 건강과 종항형제들이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23032
경자(庚子) 10월13일에 처남 신원휴(申遠休)가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신원휴겨울 한풍이 불어대는 이때에 형제들을 데리고 계시는 매형은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냐고 문안편지를 보냈다. 본인 형제들은 서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읍에 사는 상인여자 편에 들은 바에 의하면 삼가례(三加禮)를 16일에 치루고 기다렸다가 7일에 패상(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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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丁巳) 10월(양월) 16일(旣望)에 운남에 거주하는 신상빈(申相斌) 이원구에 사는 친우에게 보낸 부탁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세제 신상빈한랭한 계절에 친우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 가를 묻고, 상빈 본인은 67년의 생을 살아오는 동안 견마지로(犬馬之勞 : 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힘이라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이르는 말)의 노력을 다하였음에도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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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4월 4일에 사돈인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에게 답을 한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복용오래전에 한번 뵌 후 10년 동안 종종 생각을 하던 차에 뜻밖에 서신을 받아 마음이 흔쾌하고 활연하여 답장을 보낸다고 하였다. 사돈의 부친은 잘 지내시냐고 묻고, 본인도 전처럼 잘 지내고 있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시집보낸 딸(新人)이 옆에서 잘 보살펴주는(庇護)대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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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癸亥) 12월 23일에 소상(疏上)중에 있는 신익경(申翼敬)이 남상사(南上舍)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생 신익경소상중에 국휼(國恤 : 국상)로 가슴이 더욱 아파 가을에 위문을 한 후 더욱 슬픔이 더해 가고 현음(玄陰 : 氣運)이 질서를 다하여 백설이 쌓이는 때에 선생의 공부가 연찬을 거듭하여 한창 무르익는지를 묻고 있다. 본인은 하루하루를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 아버지의 종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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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2월 26일에 소상 중에 있는 조복용(趙復容)이 사돈어른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사하생 조복용한해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고, 본인의 사정을 어느 누구와도 도모할 길이 없어 글을 올린다고 하였다. 차가운 봄 날씨에 잘 지내고 아들사돈은 형제들을 잘 돌보며 지내느냐고 묻고 있다. 본인은 죄가 심중한데다가 완고하고 끈질긴[頑忍] 목숨을 끊지 못하고 명을 이어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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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4월에 계하생 이교영(李敎榮)이 같은 계원에게 즉시 답장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계말 이교영외로이 혼자 있는 곳에서 소식을 듣지 못하여 서글퍼하던 차에 윤랑(允郞)의 편지를 받게 되니 직접 마주 대하는 것처럼 기쁘기 한량없다고 하였다. 교영 본인은 잘 지내고 있으나 늙어 병든 몸으로 세상과 접촉함이 거의 없고 졸음만 벗을 삼으니 한스럽다고 하였다. 그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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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戊子) 10월 초순에 조병색(趙秉穡)이 사돈인 남생원(南生員)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병색사돈이 된 이래로 바로 한번 뵈야 하는데도 피차 노쇠하여 만나는 날은 적고 헤어지는 날은 많아 회포를 풀기 어렵다고 하면서 사돈은 10월 소춘에 원림에서 시를 읊조리고 책을 보면서 이치를 깨닫는 즐거움으로 날마다 자적하신지 또 사돈의 아들도 잘 있느냐고 물었다. 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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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12월 23일에 계제인 李潤發(이윤발)이 영양남씨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하생 이윤발계제 이윤발이 의형제인 영양남씨의 모인에게 보낸 편지로 수일간 모시고 다니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헤어진 후 더욱 보고픈 마음에 편지를 드린다고 하였다. 이런 차제에 수신인은 부모님을 잘 봉양하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평안히 잘 계신지 안부를 묻고 있다. 본인은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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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10월 2일에 계제 조병색(趙秉穡)이 영양 남씨에게 답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조병색대대로 강학(世講)한지 백년에 새로 결의를 맺어 기쁜 마음이 가득한데 저녁 무렵에 편지를 받으니 어찌 새로운 인연이 왕래하는 예가 아니겠는가 하며 계형(契兄)과 자식, 집안사람, 새로 맞아들인 며느리 등 집안 모두의 안부를 묻고 있다. 본인형제 들은 별 볼 일 없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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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4월 4일에 계제(契弟) 조병색(趙秉穡)이 영양 남씨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조병색걱정과 고민 없이 지내고 있던 차에 손자가 와서 편지를 주고 갔는데 새로운 인연에 정이 더욱 율율(律律 : 마음이 더욱 격하여 지는 모양)해짐을 깨달았는데 하물며 현란한 의상을 벗어던진 중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하였다. 계형이 경연(經筵 : 임금 앞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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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丙寅) 4월 10일에 어린 아우 이윤장(李潤章)이 영양 남씨 모인에게 답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윤장지난번에 답장을 써서 수사(水使)겸 송사를 담당한 자가 법을 어긴 죄에 대해서 아뢰려고 하는 때에 편지가 와서 민둔지상(敏鈍之相 : 민첩하고 둔한 차이)을 생각하고는 부끄러움이 앞선다고 하였다. 부모를 모시는 모인의 부친이 갑자기 돌아가시어 범백(凡百 : 여러 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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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10월 2일에 사하생 조부용(趙復容)이 영양 남씨 집안 모인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조부용사돈의 아래 항열인 조복용이 서계에서 한번 봬 온 후 황량하고 외진 물가에서 스스로 망연함을 금할 길이 없어 사돈어른에게 올린 문안편지 이다. 사돈어른께서는 몸 건강하시고 아들사돈은 아우들을 잘 돌보며고 지내며 당무(堂廡 : 정전둘레에 있어 손을 응접하는 방)의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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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10월 10일에 사돈인 조병색(趙秉穡)이 원파에 사는 영양 남씨 수취인에게 올린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병색수신인을 전에 잔치석상에서 뵈옵고 원래부터 영민함을 알고서 그 뒷자리를 빌어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별한 후 백리도 못가서 조용히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의 내용이 본인에게 일에 바쁘게 쫓기지 않아 편안하고, 여행길을 피곤해 않으니 건강하고 부러워할만 한 사람이라고 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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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丁丑) 4월 관등절 저녁에 사돈인 이규진(李奎鎭)이 수신인에게 답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이규진“가는 길에 서한을 받아 미처 답을 못하고 적조한 중에 송구한 마음이 가득하던 차에 아들이 편지를 가지고 와 더욱 위로가 깊습니다. 화창한 날에 사돈어버이어른의 예도 있는 행동이 모두 건강하고 사돈과 사랑하는 여식 손자도 무사히 잘 있다하니 크게 위로가 되고 기쁩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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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10월17일에 사돈인 조부용(趙復容)이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부용담담하게 서로 사귀는 사람에게 오늘같이 좋은 날에 편지를 받으니 아리따운 숙녀의 충만한 얼굴을 대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돌아온 아들에게 물었더니 사돈어른의 수체후가 매우 건강하시고 모시는 부모님과 형제들도 모두 편안하며 안사돈도 안녕하시고 새 며느리도 어른들의 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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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10월 17일에 계제(契弟) 조병색(趙秉穡)이 보낸 답장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조병색손자와 같이 밤에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을 뵈옵는 날에 수신인의 편지를 받아 세 번이나 읽어보니 바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 같이 정이 이어져 우러러 바라보니 서글퍼진다고 하였다. 이때에 수신인의 조용히 지내는 몸[靖體候]이 건강하시고 아들은 부모님 모시고 동생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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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丁卯) 11월 18일에 조병색(趙秉穡)이 사돈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조병색달포에 서로 격조하여 소식이 없이 지내니 새로운 정이 서로 간에 가슴에 맺힐 것이라고 하면서 안부를 보낸 편지이다. 사돈이 정양하면서 경서를 공부하시는 체후가 건강하시고 숙부를 모시면서 공부하시는 아드님도 편안하시며 집안대소 제절 모두가 태평하시며 딸아이도 도타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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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4월초 길일에 芝谷(지곡)에 사는 신필휴(申弼休)가 원고(元皐)에 거주하는 수신인에게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신필휴오랫동안 서신을 못 받아 동정기거가 어떠한지 더욱 그리워 동동 발만 구른다고 하면서 아늑하고 따뜻한 봄날에 정리기거가 편안하고 아드님도 건강하며 집안 내 대소 간이 모두 안녕하신지 묻고 있다. 본인은 부모님의 건강이 매번 나빠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으나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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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11월13일에 매제인 신원휴(申遠休)가 매형인 보낸 문안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신원휴매형이 왔다 가신 후 싸락눈이 내리다가 갑자기 맑은 날씨로 바뀌니 더욱 간절히 생각이 나서 글월을 드린다고 하였다. 이때에 매형께서는 동생들을 데리고 건강히 잘 계시고 집안 대소제절도 모두 안녕하신가 묻고 본인은 평상시 데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조카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