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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丙申) 3월 15일에 사제(査弟) 권찬두(權燦斗)가 보낸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권찬두사제(査弟) 권찬두(權燦斗)는 인편이 없어 소식이 막혔다고 말하면서, 보낼 수도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일로 틈이 없었고, 고질적으로 게을러서 보내지 못하였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인편을 통해 받은 편지를 보고서, 늦봄에 집안에서 고요히 보내는출처 : 유교넷 -
323102
병오(丙午) 2월 9일에 척말(戚末) 오석인(吳錫寅)·오세발(吳世潑)·오세녕(吳世寧)이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우는 일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부조금을 보낸다고 원파(元坡)에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말 오석인· 오세발·오세녕오석인(吳錫寅)·오세발(吳世潑)·오세녕(吳世寧) 등은 원파에 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하여 오래도록 소식이 막혔다고 하면서 집안에 계시는 생활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선부군(先府君 : 상대방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인 시암(詩庵) 선생의 묘도(墓道 : 무덤출처 : 유교넷 -
323103
기사(己巳) 11월 1일에 사소제(査少弟) 권석유(權錫瑜)가 남(南) 진사(進士)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소제 권석유사소제(査少弟) 권석유(權錫瑜)는 평소에 남(南) 진사(進士)의 성대한 덕성을 마음 깊이 흠모하였는데, 외람되게 혼사의 일까지 맡겨 되니 우러러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로 지극해진다고 하였다. 추운 겨울날에 남 진사가 집안에서 고요히 보내는 생활은 평안하며, 집안사람들출처 : 유교넷 -
323104
을미(乙未) 10월 14일에 제(弟) 박휘찬(朴徽燦)이 상중(喪中)인 원파(元坡)에게 보내는 위문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박휘찬박휘찬(朴徽燦)은 집사(執事 : 상대방을 이른 말)에게 생긴 슬픈 소식을듣고서 마땅히 한번 위문을 하여야 했는데 하지 못한 것은, 무익(無益)한 말로 공연히 집사의 마음을 심란하게 할까 두려웠던 것이라고 하였다. 편지를 보내고자 했으나 보내지 못한 것이 벌써 한 해가출처 : 유교넷 -
323105
경자(庚子) 10월 4일에 족말(族末) 남성철(南聲喆)·남찬하(南贊夏)·남두운(南斗運) 등이 시암(時庵) 문집을 간행하는 일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부조금을 보낸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말 남성철·남찬하·남두운남성철(南聲喆)·남찬하(南贊夏)·남두운(南斗運) 등은 시암(時庵) 선생과 같은 분이 계셔서 선비들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감탄하였다. 이어서 매우 뛰어난 선생의 글이 문집으로 간행되어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는 일은 효행임과 동시에 군자(君子)가 마땅히 해야 할출처 : 유교넷 -
323106
임인(壬寅) 4월 4일 서석화(徐錫華)가 수급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수급인 미상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을 첨하생(忝下生)이라고 하였다. 상대방이 나이나 지위가 자신보다 높다는 것을 말한다. 편지 내용은 서신(書信) 왕래에 대하여 자신이 발송한 편지가 당연히 도중에 없어지지 않고 잘 들어갔을 것이고, 상대방의 편지출처 : 유교넷 -
323107
1901년(고종 38) 11월 8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10월 1일 전후하여 돌아왔다고 하고 그동안 편지왕래가 있었지만, 제비와 기러기처럼 늘 엇갈려 짧은 편지라도 제때에 맞추어 답장을 하지 못했으니 그 슬픔은 똑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상대방에 대하여, 추위에 건강이 어떠냐고 묻고, 상대방이 숙실(淑室 : 측실)을 맞이출처 : 유교넷 -
323108
1896년(고종 33) 수요(秀葽 : 4월) 6일에, 서달윤(徐達潤)이 친구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서달윤서달윤(徐達潤)이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서달윤(徐達潤)은 자신을 제(弟 : 아우)라고 하였다. 친구 사이의 겸칭(謙稱)이다. 자신들이 사귄 지는 40년이나 되는데 그동안에 남쪽의 기성(箕星)과 북두성(北斗星)처럼 소원(疏遠)하게 지내어 길가는 사람출처 : 유교넷 -
323109
1906년(고종 43) 10월 25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아이(아들)가 돌아와서 답장을 받고 가을 시제(時祭)를 도맡아 주선(周旋)한 일을 축하하고, 점점 노쇠(老衰)해 가는데도 건강이 좋아서 능히 힘든 일을 해내는 것을 알게 되니, 군자(君子)가 수양하는 방법이출처 : 유교넷 -
323110
1903년(고종 40) 6월 17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이다. 수신자를 “원파(元坡) 정궤(靖几) 장명(將命)”이라고 썼는데, 원파(元坡)는 지명이거나 상대방의 호(號)이다. 정궤(靖几)는 정궤(靜几)와 같으며, “조용한 궤안(几案)”이고, 장명(將命)은 “전달해 달라”는 뜻이다. 피봉(皮출처 : 유교넷 -
323111
1907년(고종 44) 1월 5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발신자 서석화는 자신을 첨하생(忝下生)이라고 하였다. 지금 귀족(貴族 ; 상대방의 일가)의 두 형을 만나, 인경(仁境)이 병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놀라고 당황하여 생각을 달리게 하니, 마치 자신이출처 : 유교넷 -
323112
1900년(고종 37) 2월 12일에, 서효연(徐孝淵)이 사돈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제 서효연서효연(徐孝淵)이 사돈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자신을 첨제(忝弟)라고 하였다. 지난 그믐에 사람이 왔는데 마침 밖에 나가 있어서 곤폭(悃幅 : 정성)을 펴지 못하였으며, 새봄이 또한 반 이상 지났는데 아직 한 번 문안드리지 못하여 새로 사돈을 맺은 처지에 이렇게 지출처 : 유교넷 -
323113
1905년(고종 42) 12월 12일에, 서기윤(徐基潤)이 장인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제인 서기윤서기윤(徐基潤)이 장인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자신을 외생제인(外甥制人)이라고 하였다. 외생은 사위라는 뜻이고, 제인은 상복(喪服)을 입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년 넘게 편지 왕래가 적조하던 차에 일이 있어서 사람을 보내어 하문(下問)하시니 감사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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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고종 41) 2월 21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자신을 첨하생(忝下生)기복인(朞服人)이라고 하였다. 첨하생(忝下生)이란 “하생(下生)”과 같은 말이며 기복인(朞服人)이란 “1연상”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난번에 상(喪)을 당하였을 때는 존자(尊慈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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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11월 23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이다.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앞서 보내주신 편지에 너무 어지러워 답장하지 못하여 슬펐는데, 잔치를 잘 치렀다니 아름다움이 한이 없다고 하였다. 내외(內外)의 안부를 묻고, 우리 집 사람은 모두 은혜를 받았는데 다만 하나는 보내고 하출처 : 유교넷 -
323116
1912년 12월 6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위장(慰狀)으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다만, 뒤의 겉봉 글씨가 내비치는 것이 “남석사(南碩士) 기복좌전(朞服座前)”이라 하였고, 본문 시작에 “공회지통(孔懷之痛)”이라고 있으니, 상대방이 남씨(南氏)인 것과 형제(兄弟)의 상(喪)을 당한 것출처 : 유교넷 -
323117
1901년(고종 38) 11월 8일에, 서기윤(徐基潤)이 장인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서기윤(徐基潤)이 장인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전월에 상서하였는데 인편(人便)은 돌아왔으나 편지는 없어서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히 간절하다고 하였고, 조용히 양생(養生)하시는 몸이 건강하고 왕성(旺盛)하시냐고 물었다. 아드님이 차차 건강해져서 공부 잘하고, 집안의출처 : 유교넷 -
323118
1908년(순종 2) 7월 그믐날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서석화는 자신을 첨하생(忝下生) 애고자(哀孤子)라고 하였다. 죄짓고 들어앉은 이래, 특별히 존자(尊慈 : 상대방의 어머니)의 구휼(救恤)을 많이 받았는데, 감사하는 인사를 차리지 못하여 부끄럽다고 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323119
1902년(고종 39) 6월 1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이다. 자신을 첨하생(忝下生)이라고 하였다. 수신자를 알 수 없다. 편지한 뒤에 몇 달이 지나 슬프고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으니, 마주하여 이야기하는 듯 위로가 되고, 두풍(頭風)이 갑자기 치료된 듯 시원하다고 하였다. 이어 안부를 묻출처 : 유교넷 -
323120
1911년 3월[窉月] 그믐 전날에, 서석화(徐錫華)가 외숙(外叔)에게 보낸 답장.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외숙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자신을 첨하생(忝下生)이라고 하였다. 월전(月前)에 수십일 모시고 유람(遊覽)하고 돌아왔더니, 보내준 편지가 먼지 앉은 상자 위에 떨어져 있어서 심획(心劃)을 쓰다듬으며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은출처 : 유교넷 -
323121
1906년(고종 43) 10월 11일에, 류연구(柳淵龜)가 외숙(外叔)에게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류연구(柳淵龜)가 외숙(外叔)에게 보낸 안부편지(답장)이다. 저번에 하교(下敎)를 받고 편(便)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였는데 뜻밖에 이 형이 멀리서 찾아와 손수 쓰신 글월을 받으니,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은 아버지 병환으로 항상 조마조출처 : 유교넷 -
323122
1905년(고종 42) 2월 5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이다. 자신을 첨하생(添下生)이라고 하였는데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아들을 말 태워 상대방 생일에 보내려고 하였으나 마침 눈이 와서 못 보냈다고 하고, 상대방과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올봄에, 혹시 원시(員試 : 관원을 뽑는출처 : 유교넷 -
323123
1900년(고종 37) 4월 1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날마다 아들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시원하게 오랜 계획이 들어맞아 위로되기가 날개를 세탁한 것 같다고 하였다. 안부를 묻고, 책을 간행(刊行)하는 일은 이미 장정(裝幀)·인쇄(印刷)의 단계에 이르렀다니 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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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고종 40) 6월 28일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응희(應羲)가 돌아와서 답장을 받고, 귀족(貴族)의 가온(可溫) 어르신이 방문해주어서 또 전에 발송한 편지를 받았다고 하였다. 안부 인사를 하고, 다만 궁한 계절에 객식구가 날로 늘어 점점 눈살을 찌푸리게출처 : 유교넷 -
323125
1906년(고종 43) 2월 20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편지 받고 감사하다고 하고, 안부를 물은 뒤, 농강(隴岡)에 비갈(碑碣)세우는 일은, 제 기일(期日)에 맞추어지니, 생각하는 효성과 일 처리가 민첩하여 끝내 큰일을 잘 성취하였으니 축하(祝賀)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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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9월 24에, 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가 보낸 안부편지로, 수신자를 알 수 없다. 음성과 모습을 접할 날이 가까워지니 삼가 우러러 사모하기를 부지런히 하였다고 하고, 건강을 물었다. 그리고 기쁨을 맺어 행장(行裝)을 꾸려 보내기에 수고로움이 많았으리라고 위로하였다. 자신에 대하여는, 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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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3월 15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며느리가 질병과 집안 사정으로 약속한 일자에 친정으로 출발하지 못하는 사정을 전하는 내용이다. 이전의 서찰에서 상대가 질병이 들었다가 뒤에 나았음을 알았지만 다시 걸려서 걱정이 되었다 하고, 늦은 봄에 조용히 서적(書籍)을 완미(玩味)하며 정양(靜養)하는 안부를 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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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3월 12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사돈에게 손자를 얻은 기쁨을 전하고, 상대를 한 번 오라고 초청하는 내용이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몇 달 동안 소식이 막힌 것을 말하고, 며느리가 심부름꾼이 올 때마다 약속이 있다고 하여 문안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며, 자주 욕은 하지 않았는지 농담조로 서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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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2월 그믐날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원파(元坡) 정궤하(靖几下) 시인(侍人)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사돈과 안부를 교환하고,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두루 여쭙는 내용이다. 일전에 상대의 친족이 가는 인편에 보낸 서찰을 받아 보셨는지 묻고, 추위에 조용히 지내시는 안부를 여쭈었다. 자신은 어른을 받들고 자제를 기르며 그런대로 지내고 있지만, 망인(亡人)을 매장하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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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戊寅) 5월 28일에 사제(査弟) 규진(奎鎭)이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규진사위가 가을 과거(科擧)에 잘 대비하여 좋은 성적으로 입격(入格)하기를 권면(勸勉)하는 내용이다. 근래 소식이 막혀 그리운 정을 말하고, 무더위에 부모님 모시고 편안하며, 딸과 외손자도 잘 지내는 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묵은 증세로 더위와 습기를 만나 오랫동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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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服弟) 이진상(李晉祥)이 기축년 3월 12일에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척제 이진상백씨 상을 당한 상대를 조문(弔問)하고, 망인과 자신과의 지난 일을 회고하며 상을 치를 것을 염려하는 내용이다. 상대의 백씨 상을 당한 것에 애통한 심정을 말하고, 육순 노친이 계신 처지에 멀리서 반장(返葬)해야 하는 처지를 염려했다. 자신은 생관(甥館)을 처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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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7월 25일에 생질 복인(甥姪服人)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복인 류연구초여름에 서군(徐君)이 돌아올 때 아들의 질병으로 걱정한다는 말을 듣고 한 번 가서 위문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표한 뒤에 그간의 안부를 묻고, 가뭄 속에 곡식이 익지 않아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내용이다. 자신은 부친께서 돌아오신 뒤에 달포도 지나지 않아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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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윤달 보름날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여름과 가을 동안 소식이 막혀 그리운 정을 말하고,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안부를 여쭈는 내용이다. 자신은 부친께서 열흘 전에 외지에서 무사히 돌아오셨다는 안부를 전하고, 백부(伯父)께서도 편안하지만 아우가 질병으로 몇 달 동안 고생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심정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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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 1월 29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며칠 동안 모시고 있다가 물러나 서운한 마음을 말하고, 복중(服中)에 있는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숙주 댁을 방문하여 며칠 동안 모시고 있다가 물러나니 더욱 서운한 마음을 말하고, 복중(服中)에 위장(胃腸)이 조금 열려서 소생(蘇生)하였는지 물었다. 새로 계례(笄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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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7월 20일에 족종(族從) 기항(基恒)이 둔산(遯山) 복좌하(服座下)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기항자부(子婦)의 상을 당한 상대를 위문하는 내용이다. 우귀(于歸)를 앞두고 상대의 자부가 갑자기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놀라운 심정을말하고 이어 깊은 애도(哀悼)를 표하였다. 인편이 없어서 곧바로 위문하지 못했던 사정을 말하고, 그간에 장례(葬禮)를 마치고 혹시 속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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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2월 19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종매(從妹)의 상을 당한 숙주(叔主)를 위문하는 내용이다. 지난봄에 만난 뒤로 안부도 전하지 못했는데, 종매(從妹)가 사망했다는 부고를 받고 애도를 표한 뒤에 그간의 정황을 물었다. 그리고 지난번 이사한 사람과 관례(冠禮)를 올린 사람, 새로 맞이한 며느리는 어떤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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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순종 2) 5월 2일에 생질 고애자(甥姪孤哀子)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고애자 류연구지난겨울 대략 애통한 마음을 전한 뒤로 한 해가 바뀌었는데, 소식을 듣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말하고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천중절(天中節)을 맞아 안부를 묻고 주갑(周甲)을 당한 숙주를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한 심정을 전하였다. 이어 유우(惟憂)가 근래 어떤지 묻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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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 5월 10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내숙주(內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일전에 돌아오는 인편을 통하여 가엄(家嚴 : 가친)에게 보낸 서찰을 보고조섭(調攝)하는 안부가 좋지 않아 걱정이 되는데 혹시 심하게 될까 염려하며, 근래에는 체력이 점차 회복되고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어른께서 근래 묵은 해수(咳嗽)가 심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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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고종 5) 8월 16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내숙주(內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일전에 묵계(黙溪) 편에 보낸 서찰을 받아 보았는지 묻고, 그 뒤로 조용히 지내는 안부와 다른 가족의 근황을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고향으로 와서 며칠 단란한 즐거움을 누리고 오늘 떠나는데, 전에 용사(龍寺)에서 인출(印出)한 몇 판본은 여러 장인(匠人)들이 졸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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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戊辰) 10월 초4일에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이 원파(元坡) 경궤하(經几下)에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수순(數旬) 동안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며느리가 친정에 간 것을 알고 사돈에게 그간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며느리와 세모자가 종일 비를 맞으며 길을 가느라 병이 나지 않았는지 묻고, 자신의 허물이라 탄식하였다. 자신은 오랫동안 여러 곳을 다니다가 임원(臨院)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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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고종 8) 4월 21일에 외생 장기인(外甥杖朞人) 류정호(柳廷鎬)가 외구주(外舅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기복인 류정호상중(喪中)에 문안드리지 못해 사죄하고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찾아오셨을 때에 마침 밖에 있어서 만나지 못한 것을 사죄하였다. 근래 골몰하여 문밖 일에 겨를을 내지 못하나 항상 상대를 그리며 경조(慶弔)에 위문해 주신 정을 간절히 기억한다고 했다. 자신은 집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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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고종 36) 9월 27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계속되는 인편에 연이어 서찰을 받아 반가운 마음을 표하고 국화꽃 피는 가을에 주간할 사람도 없이 대사(大事)를 어떻게 치렀는지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부친의 건강이 작년 가을 진탕(震盪)한 때로부터 좋지 않아 눈썹을 펼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용사(龍寺)로 가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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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庚申) 11월 20일에 시생(侍生) 정진헌(鄭鎭憲)이 올린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정진헌지난겨울에 찾아가 뵙고 가르침을 받아 개발된 점이 많아 기뻤다고 인사드리고 그간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그 뒤로 산정(山亭)에서 모시고 놀겠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여 부끄럽다고 하였다. 전에 기록한 것을 보고 규모와 배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소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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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고종 23) 3월 24일에 생질복인(甥姪服人)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복인 류연구환란을 격은 뒤로 정이 멀어졌다가 심부름꾼을 통해 보내준 서찰을 받고, 조리하는 체도(體度)와 가족의 안부를 여쭙는 내용. 성첨 함장(聖瞻咸丈)과 백사진(白士珍)씨가 모두 작고(作故)한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자신은 문을 닫고 칩거(蟄居)하고 있는데, 묵은 질병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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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己酉) 4월 20일에 족종(族從) 기항(基恒)이 원구(元邱)에 천리 밖에서 항상 상대를 그리워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의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기항천리 밖에서 항상 상대를 그리워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상대의 조카가 성균관에 들어와 정이 담긴 서찰을 전해주어 은거 중인 상대의 소식을 알고 기뻐서 만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고 하며, 자당(慈堂)과 상대의 건강을 묻고, 지난해 손자를 본 경사를 축하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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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12월 15일에 남유구(南有榘)가 둔산(遯山)에 달포 전에 사소한 문제를 질문하려고 상대를 찾아갔다가 질병으로 갑자기 돌아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남유구달포 전에 사소한 문제를 질문하려고 상대를 찾아갔다가 질병으로 갑자기 돌아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그 뒤로 서적을 읽으며 터득한 바가 있으며 건강도 신령이 도와주는 지 물었다. 자신은 추위를 맞아 어른께서 편안하지 못하여 가슴을 졸이는 심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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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5월 초3일에 족종(族從) 기항(基恒)이 종이 와서 상대와 아들, 가족의 안부에 대하여 말로 전해주어 소식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의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종 기항종이 와서 상대와 아들, 가족의 안부에 대하여 말로 전해주어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그 뒤에 안부를 묻고 전하는 내용이다. 자신은 선조의 일 때문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데, 병이 든 조카를 홀로 두고 갈수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병이 심해지니 선조의 일에 도움은 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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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고종 34) 8월 24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내숙주(內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봄부터 소식을 듣지 못해 답답했는데, 가을을 맞아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 번포(番布) 숙모의 상기(祥期)가 끝났는지 묻고, 대지에 풍년이 들어 안도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고 했다. 자신은 가족들이 잘 지내지만 하동(河東)으로 곡식을 옮기는 괴로움과 무창(武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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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고종17) 1월 19일 제복인(弟服人) 류정호(柳廷鎬, 1837∼1907)가 원파(元坡)에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류정호만나서 슬픈 마음을 말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상중에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근래 당한 슬픔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고, 고인이 곤고한 지경에도 성취한 바가 있듯이 정신을 다 잡으라고 당부했다. 혜련장(惠連丈)과 성행형(聖行兄)의 안부를 묻고 모두 그립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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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고종 7) 12월 19일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 1805~1876)이 원파(元坡)에 보낸 위문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상을 당한 상대를 위로하고 두루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상을 당한 슬픔을 말한 뒤에 상대의 아들이 객지에서 흉변(凶變)을 당하여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가다가 병이 난 일은 당연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신은 병을 조리하는 일이 마치 죽은 사람을 보내는 절차와 같으니,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