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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5월 초1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단양(端陽)을 맞아 오랫동안 막혔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자신은 어른께서 외지에서 돌아오신지 겨우 20여일 만에 또 문내(門內)에 교감(校勘)할 일이 있어서 가셨는데, 그믐 전에는 오실 듯하다 했다. 아이가 모시고 갔고 아우도 외출하여 혼자 칩거(蟄居)하여 세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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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2월 15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부친의 서찰과 함께 상대의 서찰이 서안(書案)에 있어서 기쁜 심정을 말하고,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 자신은 근래 눈병과 치통(齒痛)으로 괴로운 사정을 말하고, 부모님은 편안히 고향에 계시지만 아이와 아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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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순종 1) 2월 7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 1861~1938)가 숙주(叔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세모 전후에 인편이 있었지만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말하고, 근래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 자신은 어른께서 오랫동안 편찮으시다가 이제 방안에서 동작은 하지만 기침으로 고생하는 정황과 천연두로 새로 태어난 손자를 잃은 처참한 사정을 말했다. 상대의 선고(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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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甲寅) 윤월 초1일에 시생(侍生) 류병호(柳炳鎬)가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류병호장마를 지난 뒤에 그리운 심정을 말하고 가족과 조카의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어른께서 건강을 조리하는 안부가 편안하지 못하고 자신도 질병에 걸려 가슴 졸이는 정황을 말했다. 그런 가운데 삼촌은 그런대로 편안하고 제수(弟嫂)의 질병도 차도가 있다고 했다. 아우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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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고종 40) 2월 11일에 동생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에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봄을 맞이하여 그리운 마음을 표하고 가족들의 안부를 두루 묻는 내용. 창추(蒼楸)에 비갈(碑碣)을 세우는 일은 동지(同知)들이 오래 전부터 준비했는데 언제 마치는 지 물었다. 자신은 노병(老病)으로 지내는데 세초(歲抄)에 돌림감기에 걸려 달포나 고생하다가 요사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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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7월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외구주(外舅主)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맞아하는 즈음에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 산속에서 조용히 지내며 학문에 종사하는 상대의 즐거움은 외부의 질병이나 더위로도 간여(干與)하지 못할 정도라 하며 부러워하였다. 아울러 조카의 안부도 물었다. 자신은 어른을 모시고 가족들과 잘 지내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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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고종 26) 8월 30일에 제(弟)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에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인편을 통하여 상대의 큰집 종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표하며 위로하고, 안부를 묻는 내용. 뜻밖에 성행(聖行)형이 찾아와서 서찰을 전해주어 상복을 입고 있는 상대와 아들의 안부를 살폈다 하고, 순서(舜瑞)형이 작고(作故)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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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철종 4) 5월 21일에 제기복인(弟朞服人) 류치유(柳致游)가 진사(南進士)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기복인 류치유상(喪)을 당한 자신을 위로해준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사돈 간에 안부를 묻는 내용. 무더운 여름에 경서(經書)를 읽는 재미와 조카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말하고, 어른들은 본래 이런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현재 대단히 심하지 않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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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고종 5) 9월 21일에 사제(査弟) 류치엄(柳致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엄지난 4월 8일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찾아가 질의(質疑)하려고 했지만 서찰로 대신 위문하지도 못하여 죄송한 마음을 말하고, 가을을 맞아 사돈 간에 안부를 묻는 내용. 근래 이시능(李始能)의 서찰을 본 일을 언급하고, 상대가 부탁한 서적 3권을 적어서 보낸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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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3월 16일에 동생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화창한 봄을 맞아 그리운 심정을 말하고, 가족의 안부를 두루 묻는 내용. 상대가 진행 중인 개판(改板)과 인역(印役)이 순조롭게 되는지 묻고, 선조의 학덕(學德)을 천양(闡揚)하는 일이 효도이니, 자신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와 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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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순종 1) 3월 11일에 복제(服弟)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제 류정호겨울부터 봄까지 붓과 벼루를 모두 물리치고 지냈는데, 형을 통하여 먼저 안부를 전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한 뒤에, 집안의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요즈음도 소생하지 못하는데다 일전에 또 병을 앓아 고생하지만, 아이들은 별탈이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손녀가 20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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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6월 7일에 사시생(査侍生) 류지호(柳止鎬)가 남진사(南進士)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류지호뜻밖에 부인을 잃고, 또 자부(子婦)를 잃은 사돈을 위로하는 내용. 상대가 만년에 이른 혹독한 슬픔을 당한 사정을 위문하고, 아들의 건강과 산지(山地)를 정했는지 물었다. 자신은 지난겨울부터 병으로 고생하는 근황과 제수(弟嫂)가 무슨 질병에 걸려 약재(藥材)를 탓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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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9월 9일 사제(査弟) 류치엄(柳致儼)이 원구(元邱) 사돈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엄가을을 맞아 조용히 지내는 상대와 아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여전하므로 달리 전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전날 답장에서 가까운 날에 한 번 오시겠다고 하여 기다렸는데, 아직 소식이 없으니 궁금하다고 했다. 모임이 내일 있는데, 벌써 시능(始能)과 근휴(謹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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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1월 20일에 정광호(鄭光顥)가 남생원(南生員)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정광호얼굴을 보지 못하면 서찰을 보냄은 예전의 도리라는 서두로 시작하여 상대에게 서찰로 안면(顔面)을 터고, 상대에게 소회(所懷)를 말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 궁벽한 산에서 기구한 60평생을 살았지만 바깥사람의 힘에 의하여 의관(衣冠)도 스스로 폐지하게 됨을 탄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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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丙戌) 12월 초2일에 서정한(徐廷翰)이 원파(元坡)에 올린 시고(詩稿) / 기록자료>고문서 / 서정륜삼가 원파(元坡) 행헌(行軒)에 올린 오언(五言) 장편(長篇) 시고(詩稿)이다. 행헌(行軒)은 고관(高官)의 행차(行次)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 헌(軒)은 건물이 아니라 수레를 가리킨다. 수신자가 사는 영해면(寧海面)에 속한 마을 이름이다. 상대가 가을에 원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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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更子) 5월 16일에 소제(少弟) 이중장(李中章)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소제 이중장몇 달 전에 가서 잠깐 뵌 일을 말하고 그 뒤 안부를 전하며, 서적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단양(端陽)을 맞아 조용히 조리하는 안부와 마을 안 노소가 모두 편안하며, 숙형(叔兄)의 안부도 물었다. 자신은 여전하게 지내는 근황을 말하고, 선함주(先函主)의 유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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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 6월 6일에 제(弟) 이병규(李炳奎)가 남생원(南生員)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병규무더위에 안부를 묻고 어대(魚臺)의 모임에 꼭 와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 자신은 달리 알려드릴 만한 근황은 없고, 어른도 편안하다는 소식을 듣는다고 했다. 어대(魚臺)의 모임 약속은 회문(回文)을 보셨을 터이니, 그날에 광림하여 자리를 빛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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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乙亥) 4월 12일에 사하생(査下生) 이만익(李晩(金+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하생 이만익반평생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살면서도 한 번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안부를 묻는 내용. 멀리 떨어져 살면서 평소 상대를 존경하다가 혼사를 맺어 사돈이 되어 기쁜 심정을 말하였다. 자신은 허약한 체질을 타고나 질병을 자꾸 앓게 되니 앞길이 걱정이라 했다. 딸을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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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고종 12) 10월 14일에 기하생(記下生) 이정필(李正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생 이정필상대를 그리워하다가 서찰을 받고 기쁜 마음을 표한 뒤에 안부를 전하고, 한 번 오라는 상대의 초빙에 응하여 16일에 가겠다고 알리는 내용. 상대가 산수 좋은 곳에서 글을 읽으며 지내는 즐거움은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고 하며 부러워하였다. 자신은 항상 분주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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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고종 1) 11월 22일에 손하(損下) 이만각(李晩慤)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손하 이만각25년 동안 잊지 않고 지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서찰도 자주 왕래하지 못하여 서운한 마음을 표하고, 학문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말한 내용. 겨울비가 내리는데 경서를 연구하는 재미가 어떤지 묻고, 한가로운 가운데 완락(玩樂)하다가 혹시 들려 줄만한 일이 없는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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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癸卯) 7월 그믐날에 신재수(申在洙)가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신재수직접 찾아오시고 또 서찰로 위문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고 가을을 맞아 어른을 모시고 지내는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자신은 그런대로 지내지만 상대가 말한 돈을 뜻과 같이 마련하지 못하여 신용이 없다는 질책을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의 사정을 약간 생각해 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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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에 이정필(李正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이정필어제 보낸 서찰은 받았는지 묻고, 밤사이 감기로 인하여 내일 약속에 가지 못함을 알리는 내용. 자신은 밤사이에 감기에 걸려 고생하느라 내일 약속을 지킬 수 없는 형편임을 전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속담을 인용하며 별세계 운월(雲月)에는 관리하는 이가 있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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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고종 12) 11월 동짓날에 하생(下生) 이정필(李正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이정필고산정(孤山亭)에 같이 가지 못해 서운한 정을 표하고, 상대의 아들이 전해준 서찰과 시를 받고 안부를 전하는 내용. 함께 가지 못했지만 서찰과 시를 보내주니 모시고 따라가 이야기를 나눈 듯하지만, 자신을 지나치게 칭찬하여 감당할 수 없다고 겸양했다. 상대가 약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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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癸丑) 3월 7일에 제(弟) 이현발(李鉉發)이 남진사(南進士)에게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현발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며 조용히 지내는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경서(經書)를 완미(玩味)하며 이치를 탐색(探索)하여 현재 소광(曠)한 경지에 도달했는지 묻고, 아울러 조카도 잘 지내는지 여쭈었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는 상황을 말씀드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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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고종 10) 6월 22일에 기하생(記下生) 이정필(李正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생 이정필매번 찾아뵈려고 했지만 바쁜 일 때문에 그러지 못하다가, 서찰을 받고 안부를 전하는 내용. 근래 겪은 일은 참으로 놀라서 사방 사람들이 부담을 지고 온갖 방도를 강구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으니, 부끄럽고 근심스럽다고 하며 자신을 질책했다. 향음주례(鄕飮酒禮)는 매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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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 12월 초1일에 기하생(記下生) 이정필(李正弼)이 보낸 문안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기하생 이정필상대가 보낸 서찰을 받고 하례를 표한 뒤에 세모(歲暮)를 맞아 안부를 묻는 내용. 상대가 몸이 약간 불편하다는 소식에 걱정을 하며 맑게 수양하는 방도가 있고 또한 따뜻한 날이 되면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은 거듭 은전(恩典)을 입었으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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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철종 6) 11월 25일에 제(弟) 이돈우(李敦禹 : 1807 ~ 1884)가 중간에 만날 수 있는지 미리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이돈우대질(大耋)이 행차하여 같이 길을 나섰는데, 중간에 상대와 만날 수 있는지 의향을 묻는 편지이다. 가을에 한 번 만남이 봄날 꿈과 같이 기억되는데, 이후에 편지를 받았지만 답장이 늦다고 하였다. 인편을 찾음이 쉽지 않아 늦었으니 용서를 바란다고 하였다. 양(陽)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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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弟)인 재소(在韶)가 자형(姊兄)의 장례식에 갔다가 상대에게 한번 방문하겠다고 통보하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족제 재소자신이 자형(姊兄)의 장례식에 갔는데, 다음날에 상대에게 한 번 찾아가겠다고 통보하는 편지이다. 저번에 저물녘에 임정(林亭)을 지나면서 상대의 집을 쳐다보며 거리가 가까운데 사람의 왕래가 먼 것에 탄식을 하였는데, 상대가 편지를 먼저 보내주어 이를 받아보고 많이 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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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8월 19일에 부제(婦弟) 이윤발(李潤發)이 자형(姊兄)에게 한번 찾아오라고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부제 이윤발선고(先考)의 기일(忌日)이 지나간 것에 대해 위로하고, 상대에게 한 번 찾아오라고 권하는 편지이다. 이별한 후 여러 날이 지나 가을 기운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이윤발(李潤發) 자신은 조부모와 부모가 모두 큰 병 없이 잘 지내며, 생가(生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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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庚子) 3월 6일에 죄종(罪從) 조연(朝演)이 간소(刊所)에 얼마의 돈을 보낸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종 조연상대의 선집(先集)의 간행 작업이 빠른 것을 치하하며, 간소(刊所)에 얼마의 돈을 보낸다는 편지이다. 나무가 우거진 푸르른 땅에서 강호(江湖)를 잊은 것이 오래되었으며, 궁벽한 여막에서 상주의 죄인으로 칩거하여 그리움만 간절하다고 하였다. 늦은 봄에 잘 지내는지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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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庚午) 윤10월 20일에 고애자(孤哀子) 이재희(李在喜)가 유문(遺文)의 초고를 만드는데 금난록(金蘭錄)과 생시에 왕복한 문서들을 보내달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고애자 이재희상사 때 보내 온 위장(慰狀)과 만사(輓詞)에 대해 칭송하고, 금난록(金蘭錄)과 왕복한 문서들을 찾아 보내달라는 내용이 있다. 자신은 죄와 결점이 많아도 스스로 죽지 못하여 화가 선고(先考)에게 미쳤으니, 살아가는 세상에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저번 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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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철종 11) 9월 21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교행(轎行 : 부인의 행차)의 날짜를 알리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자신의 일정을 설명하고, 교행(轎行)의 날짜를 알리는 편지이다. 저번의 여가에 상대를 향한 사모함이 일어났으나, 나귀가 병들고 종이 고통을 호소함이 두려워 자신의 계획을 이룰 수 없게 되어 항상 슬프다고 하였다. 하나의 편지가 문하에서 나오니 감응이 일어났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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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0월 25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가 외삼촌에게 자신이 몰랐던 안부를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자신의 사정을 전하고, 상대의 상황을 알고는 그 안부를 묻는 편지이다. 병환으로 근심하던 중에 여가가 없어 지극한 정으로 생각하였으나, 이것이 상대가 가장 늦은 나이에 조양(調養)하던 곳이니, 때때로 풍문을 따라 사모만 한다고 하였다. 곧 함씨(咸氏)를 보고서 상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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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철종 10) 2월 21일에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이 사돈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치임중수(仲嫂)가 죽은 이유와 장례절차 등의 애로점을 말하며 그 안부를 전하는 편지이다. 저번에 곧바로 왕래하는 인편이 있었으나, 편지를 붙이지 못해 그 후에 의거할 데가 없어 바람 불면 그리워하였는데, 곧 편지를 받아보고는 안부를 알아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류치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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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고종 38) 1월 10일에 제복인(弟服人)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새해가 되어 신년인사를 하고 홍범연의(洪範衍義)를 구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류정호1901년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신년 문안편지이다. 이 편지에서 류정호는 안부를 물으면서 큰 집을 중수(重修)하는 일과 선묘(先墓)에 비석을 세우는 경영에 대해서 물었다. 자신은 무릎뼈에 담(痰)이 들어 굴신(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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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고종 17) 1월 4일에 제복인(弟服人)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에게 장인의 면례(緬禮) 때 찾아가지 못하는 사정을 상세히 기술하였고, 의례(儀禮)때 입는 옷과 갈명(碣銘)과 지석(誌石)을 쓰는 방법 등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류정호1880년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류정호는 지난겨울에 3통의 편지를 받았으나, 지금까지 게을러 답장을 못하였다가 오늘 직접 뵙고 말씀드리려 했지만, 여의치 못해 죄송하게 되었다고 하며 편지로 답하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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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고종 26) 9월 17일에 제(弟)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시암집(時庵集)을 편찬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편집 원칙들을 조언해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1889년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정호는 성행(聖行)형이 돌아간 뒤에 얼마 안 있다가 자신을 남고의 문집을 편찬하는 일에 참여시킨다는 남효술의 편지를 받고 감격해 하면서도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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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癸卯) 3월 5일 제(弟)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선집(先集)의 간행에 산삭(刪削)을 조언하는 편지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남효술(南孝述)이 선조의 문집을 간행하는데 있어 개전(改塡)과 산삭(刪削)에 대해 조언을 하는 편지이다. 저번에 편지를 열어보았는데 다시 심부름꾼에게 편지를 보내오니, 그 소식을 자주 전해주어 반년동안 막혔던 그리움을 풀어주었다고 하였다. 추운 봄날에 상대의 소식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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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乙未) 1월 13일에 생질복인(甥姪服人) 류연려(柳淵驪)가 외숙부한테 아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유집(遺集)의 판각이 늦어짐을 전하는 위장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복인 류연려외숙부의 아들이 죽은 것에 위로하였고, 유집(遺集)의 판각이 지체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편지이다. 난사(蘭使 : 사망 소식)가 돌아옴에 종이를 나란히 하여 위장(慰狀)을 지었지만, 자신의 정을 펴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또 듣기에 숙부가 큰 진탕(震盪)을 겪었다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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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고종 30) 11월 7일에 제(弟) 류정호(柳廷鎬)가 시암집(時庵集)을 편찬하는데 있어 편집에 대해 조언해 준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1893년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이 편지는 주로 남고(南皐)의 문집을 교정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할당되어 있다. 그는 원고를 정결히 하고자 하여 한 자도 틀린 곳이 없도록 교정하였지만 두 번째 보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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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고종 3) 2월 5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국수를 보내고 양인들에 대한 소문을 전하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국수를 보낸다는 것과 양인(洋人)들이 체포된 것에 관련된 소문을 전하였다. 해가 바뀌어 멀리 떨어짐이 전에도 있지 않았는데, 때마침 보내 준 편지를 받고 봉영(蓬瀛 : 봉래산(蓬萊山)과 영주산(瀛州山))의 소식을 얻어 의심스런 소식을 보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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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고종 7) 4월 22일에 사제복인(査弟服人) 류치임(柳致任)이 강단(江端) 지역의 사돈 남고(南皋)에게 자신 집의 옥역(屋役)에 대한 언급과 여러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류치임1870년에 류치임(柳致任 : 1805 ∼ 1876)이 사돈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자신의 아들인 류정호(柳廷鎬)가 먼 길을 갔다가 별 탈 없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그 밖에 며느리는 병이 심하였지만 이제는 다 나아서 귀숙(歸宿)이 멀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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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6월 1일에 제(弟)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자신과 관계된 여러 사람의 안부를 전하고, 만나서 비갈(碑碣)에 대한문제를 상의하자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1902년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답장이다. 류정호는 남효술이 쇠약해져서 음식을 먹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안타까워하였다. 다음으로 비갈(碑碣)을 세우는 역사(役事)에 대해서는 비갈문의 내용 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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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철종 4) 5월 22일에 제기복인(弟朞服人) 류치후(柳致厚)·치호(致好) 등이 남(南) 진사(進士)에게 자식이 죽은 것에 위장을 받고 답한 답위장(答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제기복인 류치후·치호자신의 자식이 요절한 것에 위장을 보내오자 그것에 답을 한 답위장(答慰狀)이며, 아울러 여러 사람의 사정을 같이 전하였다. 집안의 참혹한 상사는 요절(夭折)에 비유할만한데 오히려 번거롭게 위장을 보내주니 상대가 자신에게 부지런하게 대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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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꼭 한번 찾아가겠다는 것과 중함형(仲咸兄)이 서울서 돌아왔는지 묻는 편지이다. 소식이 막힌 지 삼 개월이 되어 항상 그리워하여 오랫동안 상대의 자리에 앉아 이야기하고 싶지만 바랄 수 없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류치임(柳致任 : 1805 ∼ 187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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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고종 1) 5월 5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고천(高川)의 일과 시문(時文)의 공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소목설(昭穆說)에 대해 질문하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고천(高川)의 일과 시문(時文)의 공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전하였다. 그리고 중용혹문(中庸或問)의 소목설(昭穆說)에 대한 견해를 언급하며 상대의 답변을 요구하였다. 소식이 막혀 상대의 덕을 사모하는 정성이 더한데, 중용(仲容) 장(丈)을 만나 상대의 편지를 전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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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고종 10) 10월 24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자신의 처신에 자문을 구하고, 자식의 공부할 곳을 추천해달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장인인 둔암(遯庵) 남고(南皋)한테 자신의 상황을 전하면서 그 처신에 대해 자문을 구하였고, 자식의 공부할 곳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이다. 옛날부터 덕의(德儀)를 사모함에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 상대의 집을 바라만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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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癸丑) 8월 23일에 사시생죄인(査侍生罪人) 류병호(柳炳鎬)가 사장에게 양일(襄日)의 날짜가 늦추어졌다고 알리는 답소서(答䟽) / 기록자료>고문서 / 사시생 류병호사장(査丈)에게 상사(喪事)의 위문에 답하는 편지로서, 수씨(嫂氏)의 신행에 관련된 언급과 장례의 날짜가 늦추어졌다고 통보하는 편지이다. 반향(半餉 : 잠시)의 그림자를 잠시 따랐으나, 궁벽한 처지를 펼 수 없어 그리움이 슬픈 속에서 간절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편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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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고종 16) 1월 10일에 류정호(柳廷鎬)가 남(南) 생원(生員)에게 장인(丈人)이 죽어 보내는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류정호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장인의 죽임에 상인(喪人)에게 보내는 위장이다. 배움을 받듦에 녹이 없어 족숙(族叔) 둔암(遯庵 : 남고(南皋 : 1804 ~ 1879)) 선생이 세상을 떠났으니, 후생이 부고를 받고 놀라 애통하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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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철종 11) 1월 17일에 사제복인(査弟服人) 류치임(柳致任)이 원파(元坡) 남고(南皋)에게 상중에서 맞는 새해의 감회를 적고, 며느리와 조카 등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1860년에 류치임(柳致任 : 1805 ∼ 1876)이 사돈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새해 문안 편지이다. 류치임은 남고와 조카들의 그 간 안부를 물었다. 류치임은 종씨(從氏)형의 종제(終制)가 문득 지나서 한번 가서 인사를 여쭈어야 되지만, 그렇지 못했음을 사과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