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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2월 9일에 제복인(弟服人)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자신과 가족들의 안부를 전하고, 문집에 관련된 부탁을 수락하면서 교각(校刻)이 끝나는 것 같다고 치하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류정호1902년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정호는 해가 지났는데도 서로 연락을 못하고 있던 차에 편지를 받아보고 왕림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다. 먼저 남효술과 가족들, 당내 친척들의 안부를 묻출처 : 유교넷 -
323202
1872년(고종 9) 3월 23일에 사제복인(査弟服人) 류치임(柳致任)이 원파(元坡) 남고(南皋)에게 마을의 변괴에 대해 언급하고, 향음례(鄕飮禮)에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복인 류치임임신년(1872)에 류치임(柳致任 : 1805 ∼ 1876)이 사돈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고 일수를 헤아려 보니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인편을 만나 답장을 받으니 여러 가지로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남고와 아이들, 조카들이 다 잘 있는지출처 : 유교넷 -
323203
1867년(고종 4) 9월 9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아이 공부 때문에 찾아가겠다는 것과 우정(愚亭)의 모임에 참석여부를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장인(丈人)에게 자신 아이의 공부를 위해 찾아가겠다는 것과 우정(愚亭)의 모임에 참석가능한지 의향을 묻는 편지이다. 가을이 옴에 다시 소식이 막혀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서늘한 가을에 상대가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출처 : 유교넷 -
323204
1903년(고종 40) 2월 10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가 숙부에게 사정상 갈 수 없다는 것과 소병(小甁)을 보낸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자신의 갈 수 없는 사정을 알리고 소병(小甁)을 보낸다는 편지이다. 해를 넘기도록 소식이 막혀 편지를 한 번 보내지 못하고 앉아서 방문함을 당하니, 이렇게 받들어 응함이 모두 산이 빽빽한 사이에 오가게 했으니, 어리석은 때문이라 죄송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묻출처 : 유교넷 -
323205
1865년(고종 2) 1월 10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소목(昭穆)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지촌(芝村)의 일에 대해 언급한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소목(昭穆)에 대해 의심나는 것을 다시 질문하고, 지촌(芝村)의 일에 대한 사정을 전하는 편지이다. 밖에 있어 기세(氣勢)가 소식을 전할 수 없는 상황에다가, 바로 체귀(遞歸)하여 또한 소식이 막혔으니, 여러 차례 편지에도 답장을 한 번 보냄이 늘 죄송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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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2월 15일에 외생복인(外甥服人)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혼처(婚處)에 대해 언급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복인 류정호장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혼처(婚處)에 대해 주선하는 편지이다. 함장(咸丈)이 돌아간 후에 소식이 막혀 그리워함이 깊어졌는데 근래 추위가 흡사 대동(大冬) 같다고 하였다. 이 때 상대의 안부를 묻고,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 자신은 특별한 병은 없으며출처 : 유교넷 -
323207
1861년(철종 12) 7월 3일에 외생(外甥)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향음주례(鄕飮酒禮)의 홀기(笏記)를 다음에 보내겠다는 것과 석각(石刻)은 지시대로 고치겠으며, 내행(內行)은 뒤에 다시 통보하겠다는 것과 절선(節扇)을 못 받았다 함에 죄송하게 여기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신유년(1861)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장인인 남고(南皐)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정호는 이때 장인인 남고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라 그의 안부와 가족들과 동당(同堂)의 소식을 아울러 물었다. 서호(西虎)가 오랫동안 치성하여서 가솔들을 이끌고출처 : 유교넷 -
323208
기미(己未) 6월 3일에 시생(侍生) 류필호(柳弼鎬)가 계군(季君)이 돌아올 날짜를 알려달라는 것과 이장(移葬)의 일과 제수(弟嫂)의 사정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시생 류필호계군(季君)이 돌아올 날짜를 정해 달라하였고, 아울러 자신의 이장(移葬)에 대한 근심과 제수(弟嫂)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하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함은 비록 병환 때문이나, 그리워하는 정회는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아득히 문후가 막혔음에 상대의 안부를출처 : 유교넷 -
323209
1848년(헌종 14) 8월 23일에 제(弟) 류치후(柳致厚)·치임(致任)이 원파(元坡) 진사 남고(南皋)에게 여행을 같이 가자고 권유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치후·치임친척들이 바다를 따라 여행을 가자는데, 사돈에게 동참하기를 권유하는 편지이다. 소식이 막연하여 슬픔이 깊은데 이때 날씨가 서늘해짐에 상대의 안부가 어떤지 물었다. 병이 나아 약을 끊었는지 묻고, 종씨(從氏)의 과소(科所)가 서울에 어디 있는지 묻고, 어제 사람을 보출처 : 유교넷 -
323210
1866년(고종 3) 4월 18일에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이 사형(査兄) 남고(南皋)에게 자신의 집안 사정을 전하고 향촌(鄕村)의 분란에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사돈에게 자신의 집안 사정을 전하고 상대에게 향촌의 분란으로 어떤 처지인지 그 상황을 물었다.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늘 그리워하였는데 이렇게 늙어 다시 정성처럼 되지 않아 서로 떠나 문후가 끊이는 탄식이 있으니, 바로 츤첩(櫬貼)의 상태임을 깨달겠다고 하였다. 상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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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7월 21일에 간정(澗亭)에 사는 사제(査弟) 류치엄(柳致儼)이 원파(元坡) 남고(南皋)에게 무후전서(武侯全書)를 빌려달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엄「무후전서(武侯全書)」를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이다. 저번에 의례적으로 베껴 적어 질문에 응대한 것이 손을 빌려 정성스럽지 하지 못했으니, 성대한 마음에 흡족하지 못했을 것이라서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류치엄(柳致儼 : 1810 ~ 1876출처 : 유교넷 -
323212
1855년(철종 6) 5월 15일에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이 원파(元坡) 남고(南皋)에게 적거지(謫居地)에서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조카가 잘 도착하였는지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류치임(柳致任 : 1805 ∼ 1876)은 1855년에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숭(追崇)과 관련하여 탄핵을 입어 전라도 나주(羅州)의 지도(智島)에서 약 1년간 절도(絶島)의 적거(謫居)생활을 하였다. 이 편지는 그 때의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사정을 전하고 여러 가지출처 : 유교넷 -
323213
1903년(고종 40) 2월 25일에 생질(甥姪) 류연구(柳淵龜)가 숙부에게 문집의 잘못된 부분을 빨리 고치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생질 류연구각수(刻手)를 불러 문집의 잘못된 부분을 빨리 산개(刪改)하여 어려움 닥치지 않도록 하라는 편지이다. 바빠 근심하던 중에 서(徐)군이 소매 속에 편지를 가져와 보고서 지극히 기뻤고, 아울러 상대의 안부를 알아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류연구(柳淵龜 : 1861∼193출처 : 유교넷 -
323214
1854년(철종 5) 7월 5일에 외생복인(外甥服人)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전궤(奠饋)가 볼품이 없어 죄송하고, 교행(轎行)은 서늘해지면 하겠다는 것과 유산(酉山)의 글을 지시대로 보았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복인 류정호갑인년(1854)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장인인 남고(南皐)가 보낸 소장(疏狀)에 답하는 편지이다. 자신은 소장을 받고 작은 정성이라도 보이려 하였으나 비 때문에 갈 수 없었으니, 슬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을 아뢰었다. 전궤(奠饋)는 꼴을출처 : 유교넷 -
323215
1900년(고종 37) 윤월 15일에 제복인(弟服人)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책자의 반포에 사람들이 청탁을 하니 잘 가려주기를 바란다는 것과 다음 달에 금계(金溪)에서 부인과 같이 만나자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복인 류정호경자년(1900)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정호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때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그 책임을 느낀다고 하며 상대방의 안후와 가족들, 당내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치옥장(穉玉丈)이 오랫동출처 : 유교넷 -
323216
1900년(고종 37) 10월 25일에 제(弟) 류정호(柳廷鎬)가 원파(元坡) 남효술(南孝述)에게 선집(先集)을 교정하는데 필요한 자료가 있으니 보내달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류정호경자년(1900)에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가 처남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효술이 병을 싣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 나았는지 물었다. 류정호 자신은 고향에서 선조의 문집을 겨우 판각하였지만, 찍어서 반포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323217
1853년(철종 4) 12월 16일에 대평(大平)에 사는 외생참최인(外甥斬衰人) 류정호(柳廷鎬)가 장인 남고(南皋)에게 계모(季母)의 병환이 차도가 있다고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류정호계모(季母 : 아버지의 막내아우의 아내)의 병환에 대해 차도를 보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는 편지이다. 정신없어 바쁜 가운데라서 편지를 전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류정호(柳廷鎬 : 1837 ~ 1907) 자신은 예전 그대로 지내고 있지만,출처 : 유교넷 -
323218
1866년(고종 3) 12월 19일에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치엄(致儼)이 진사 남고(南皋)에게 자부(子婦)가 죽어 위로하는 위장(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치엄사돈의 자부(子婦)가 죽어 보내는 위장(慰狀)으로 아울러 자신이 재앙으로 고통 받는 심회를 같이 전하였다. 뜻하지 않은 참화로 상대의 자부(子婦)가 일찍 죽은 것에 대해 부음을 받고 놀랐다며 위로를 하였다. 육 십년동안 만공(晩供)이 한결 같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출처 : 유교넷 -
323219
1869년(고종 6) 10월 7일에 사제(査弟) 류치임(柳致任)이 강단(江端)에 사는 남고(南皋)에게 자신의 아이가 향해(鄕解)에 통과했다는 것과 상대의 아들이 새로 부인을 맞은 것을 축하하고, 함형(咸兄)에게 한번 방문하라는 것 등을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사제 류치임·치엄기사년(1869)에 류치임(柳致任 : 1805 ∼ 1876)과 류치엄(柳致儼)이 사돈인 남고(南皐 : 1804 ~ 1879)에게 보낸 답장이다. 류치임은 세 번이나 서신을 받고도 한 번도 답장을 드리지 못하고 있던 터에 다시 편지를 받으니 황송스럽다고 하였다. 남고와출처 : 유교넷 -
323220
1905년(고종 42) 1월 13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 : 1869 ~ 1924)가 추운 길을 아이들이 갔는데 잘 도착했는지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추운 날씨에 아이들이 찾아갔는데 잘 도착했는지 묻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보내라는 편지이다. 편지의 왕복이 시절을 지났으니 산천이 넓었기 때문이지만, 인정(人情)은 화락하여 즐기지 않을 수 없음에 새해가 되어 몇 번을 살펴봐주어 머리를 들어 쳐다봄을 금할 수 없다고출처 : 유교넷 -
323221
신유(辛酉) 5월 15일에 병제(病弟) 김진강(金鎭綱)이 상대의 행차에 아들과 손자를 대신 보낸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병제 김진강보내 준 선물에 감사함을 전하고, 보리 심기로 바빠 상대의 행차에는 아들과 손자를 대신 보낸다는 내용이다. 상대가 행차함에 지금쯤 교(轎 : 아내)를 데리고 반쯤 이르렀음을 알아 일사(一舍) 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찾아가서 잠시라도 만날 수 없어 한스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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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순종 2) 3월 13일에 외생기복인(外甥朞服人) 서기윤(徐基潤)이 원파(元坡)에 사는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조비(祖妣)의 상사에 슬픈 심회를 전한 답위장(答慰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기복인서기윤조비(祖妣)의 상사로 겪는 자신의 심회를 전한 답위장(答慰狀)이다. 집안의 흉악한 화로 조비(祖妣)가 돌아가시니 애통한 고통이 끊어질 듯하여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때 위장을 받고서 읽어보니 말이 간절하여 평소의 두터운 정이 가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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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윤월 15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원파(元坡)에게 아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과 신행(新行)의 날짜를 선택해 달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아이를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과 신행(新行)의 날짜를 선택해서 답변을 달라는 편지이다. 날마다 그리워하는 곳에서 막연히 가을바람 부는데 말 타고 가는 행차에 참가하려 했으나 곧 차질이 생겼고, 백리 밖에서 석 달간 편지를 보내주었는데 장자(長者)와 소식이 끊겨 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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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壬辰) 10월 25일에 제(弟) 김징수(金徵壽)가 상대의 안목을 칭송하녀 책의 교정을 부탁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제 김징수상대의 높은 안목을 칭송하면서 자신이 만드는 책에 교정을 부탁하는 편지이다. 악사(岳寺)에 동참하여 천사(川社)에서 베개를 나란히 하여 잤으니, 이것이 한번 만나기를 바란 후의 좋은 모임이라고 하였다. 저번에 상대의 얼굴을 보았고, 지금 상대의 마음을 보고 비로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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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고종 43) 5月 8일에 하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마포(麻布)를 구해 보낸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서석화마포(麻布)가 가격이 높아 겨우 한 단을 구해서 보낸다는 편지이다. 뜻밖에 편지를 받아 행차가 진안(眞安)에 왔다는 것을 알아 위로된다고 하였다. 상대가 백리 길을 움직일 만큼 건강한지 묻고, 윤우(允友)가 함께 돌아가고자 하여 차츰 변동이 생겼음을 알았으니 병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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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고종 41) 11월 29일에 외생죄인(外甥罪人)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소장(疏狀)을 받고 자신의 사정을 언급하며 늦게 답을 해서 죄송하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죄인 서기윤갑진년(1904)에 사위인 서기윤(徐基潤 : 1860 ~ 1924)이 장인의 소장(疏狀)에 답한 답소장(答疏狀)이다. 서기윤은 자신이 죄역(罪逆)을 당한지 일 년이 되어 구차히 시일만 보내고 있던 차에 상대가 멀리서 편지를 보내주어 이를 보고는 위로가 된다고 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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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4월 4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왕림(枉臨)한다기에 미리 축원한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상대가 왕림(枉臨)한다는 편지에 미리 축원하면서 기다린다는 편지이다. 해가 바뀐 후 한 번 방문하기를 날마다 바랐는데, 마침내 심부름꾼이 홀로 문을 넘어와 대신 만났으니 쓸쓸함이 차츰 사라졌다고 하였다. 상대와 여러 식구들의 안부를 알고는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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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10월 26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상대의 맏아들이 초례(醮禮)를 잘 치렀는지 묻고, 자신의 상황을 전하는 단순한 안부 편지이다. 저번 달 녹거(鹿車)의 행차에서 장자(長者)가 병이 들어 돌아가서 근심이 된다고 하였다. 지금 편지를 보니 점차 나아진다하여 마음이 놓인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물으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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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화(徐錫華)가 원파(元坡)에 사람을 돌려보내며 동봉한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서석화서석화가 사돈에게 어떤 사람을 돌려보내며 그 아쉬움을 전하는 편지로 보인다. 삼 일 동안 함께 베개를 베고 잤고 일사(一舍)의 거리를 연이어 방문해주어 위로가 되었지만, 중간에 헤어짐에 창창(蒼蒼)한 운수(雲樹)라도 이보다 창암(悵黯)할 수 없다고 하였다. 상대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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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고종 43) 5월 8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이 여행 중에 보낸 편지에 안부를 전하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사위가 장인 남효술(南孝述)이 여행 중에 보낸 편지에 답장한 것으로 안부를 전하고 자신의 마을에 오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전하며, 마포(麻布)를 사서 보냈다는 편지이다. 뜻밖에 편지 심부름꾼이 와서 편지를 받아보고 행차가 중평(中坪)에 머문다는 것을 알았으니 축하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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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고종 43) 2월 20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선조의 수갈(竪碣)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장인 남효술(南孝述)의 선조의 비석을 세우는데 사정으로 못 갈 것 같다는 편지이다. 출발한 후에 이런 소식을 전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에서 편지 심부름꾼이 문을 넘어 와서 잘 소식을 알았다고 하였다. 아울러 선롱(先壟)의 수갈(竪碣)이 해를 넘겨 준비하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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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하생(罪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원파(元坡)에게 무사한 귀향을 축원하며 노자(路資) 돈을 보낸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죄하생 서석화서석화(徐錫華 : 1869 ~ 1924)가 사돈인 남효술(南孝述)이 문상(問喪)을 하고 떠나 다음날 편지를 보내오자, 잘 귀향하라하며 노자(路資) 돈을 같이 보내준 답장편지이다. 열흘 동안 서로 토로하고 모시며 받든 것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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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고종 41) 11월 29일에 하생기복인(下生朞服人) 서석화(徐錫華)가 여러 사람의 안부를 전하면서 다른 것은 협지를 보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기복인 서석화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여러 사람 안부를 전하면서 현 상황을 알기 위해 협지의 내용을 보라는 편지이다. 아득하게 삼상(叅商 : 삼성(參星)과 상성(商星), 멀리 떨어짐)과 같이 됨이 일 년을 넘겼으니, 그리워함이 평소보다 더하다고 하였다. 편지를 받아 보고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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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 : 1860 ~ 1924)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잘 돌아갔는지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상대가 잘 돌아갔는지 묻고, 편지 심부름꾼은 지시대로 보냈다는 편지이다. 가는 길을 일찍 도모하였지만, 쇠하고 늙은 몸으로 도보하여 갔으니, 근심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잘 도착하였는지 물었다. 편지 심부름꾼을 지시대로 보내었는데, 이미 바로 도착하라는 분부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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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순종 2) 12월 19일에 외생기복인(外甥朞服人)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반행(半行) 일자의 통보를 바라고 유재(油材)를 보낸다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기복인 서기윤반행(半行)의 일자를 직접 전해달라는 것과 유재(油材)를 한 말밖에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편지이다. 백리 밖에서 소식을 달마다 들을 수 있었지만, 이왕에 막힌 것들과 비교하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상기(祥期)가 다가오는데 편지 심부름꾼을 보내 위문을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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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순종 3) 1월 11일에 첨하생죄인(忝下生罪人) 서석화(徐錫華)가 자식 내외를 보낸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자식들을 보낸다는 것과 반행(半行)의 날짜는 아이들이 직접 물을 것이라고 하는 편지이다. 집안 사정으로 며느리가 친정을 찾아가지 못해 양해를 바란다고 하였다. 궁한 집에서 사모하는 무리들이 보통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데 새해의 그리움은 다른 때보다 더욱 심하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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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10월 25일에 하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백목(白木)에 대한 사정과 여러 사람들의 상황을 모두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서석화백목(白木)에 대한 사정과 마포(麻布)를 보내면서 당사(堂事)의 일과 여러 사람들의 상황을 전하는 편지이다. 저번에 돌아간 행차에 신정(新情)의 이별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안부를 묻는 답장을 못해 부끄럽고 근심이 매우 깊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살폈고, 서석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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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순종 4) 9월 8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여러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자신의 집안에 여러 사람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이다. 척지(尺紙)도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긴 여름 장마를 보내고 북문의 눈바람을 맞아 한 조각의 마음이 동성(同聲)의 땅에 달려가 머물지만 만날 길이 없다며 탄식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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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순종 3) 2월 25일에 첨하생죄인(忝下生罪人) 서석화(徐錫華)가보낸 귀가(歸家)를 잘 하였는지 묻고, 자신은 다음날 손자의 관례식을 한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상대에게 잘 돌아갔는지 묻고, 자신은 다음 날 며느리와 손자가 돌아와서 관례식을 한다는 사정을 전하는 편지이다. 한 번의 소식에 행차가 집 앞까지 찾아와서 간절한 그리움이 더욱 마음에 새겨진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물으면서 며느리는 잘 지내는지 묻고, 지금 출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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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11월 22일에 계제(契弟) 서효연(徐孝淵)이 교행(轎行)의 안부를 묻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계제 서효연교행(轎行)이 날씨가 추운데 잘 도착했는지 묻는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 답장이 못한 지 오래되었으니, 간간히 인편이 있었지만 혹 밖에 나가고 혹은 병이 생겨 잊어버렸으니 죄송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서효연(徐孝淵) 자신은 쇠약한 상황에다가 또 외침(外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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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5월 6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책의 간행을 마친 것을 축하하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서기윤(徐基潤)이 장인인 남효술(南孝述)이 책의 간행을 마치고 배포한 것에 대해 그 노고를 치하하는 답장편지이다. 편지 심부름꾼이 도착하여 소식이 막혔던 차에 편지를 볼 수 있어 사모하던 마음에 위로되었으니, 비록 편지가 없이 사람만 온들 감사와 기쁨은 말할 수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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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고종 36) 12월 21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에게 부친과 친족들이 관부(官府)에 잡혀갔고, 말몰이꾼은 길이 얼어붙어 새해가 되어 갈 것이라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부친과 친족들이 관부(官府)에 잡혀간 사정을 전하고, 말몰이꾼은 길이 얼어붙었기에 새해가 되어 갈 것이라는 편지이다. 소식이 막힌 지 보름이 되어 이때의 그리움이 평소보다 배나 더 하다고 하였다. 뜻밖에 편지를 받고 상대의 안부를 살폈다. 서기윤(徐基潤 : 186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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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고종 36) 10월 25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새로 사돈관계를 맺은 집에 보내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새로 사돈관계를 맺은 사돈가에 그 덕을 칭송하고 선물을 후하게 주어 감사하다는 편지이다. 교유한지 반세상에 만나고 싶은 소원을 이룰 수 있었기에 외람되이 가벼운 것을 부탁했지만 거듭 중요한 가르침을 입어 매우 감사한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서석화(徐錫華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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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고종 39) 6월 1일에 외생(外甥) 서기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부모님의 병환으로 모두 걱정한다는 사정을 전하는 답장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서기윤(徐基潤 : 1860 ~ 1924)이 장인에게 부모님의 병환으로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사정을 전하는 답장편지이다. 두 곳에서 서로 소식이 한 달이나 없었으니 한마음으로 그리워함을 늦추지 못한다고 하였다. 뜻밖에 편지를 받아보고 울적한 심회가 차츰 위로 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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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고종 26) 윤월(閏月) 11일에 인제(姻弟) 서기윤(徐基潤)이 함군(咸君)의 죽음에 복인(服人)을 위로하고, 자신의 집안사정을 전하는 위장 / 기록자료>고문서 / 생제 서기윤함군(咸君)이 죽음에 그 슬픔을 위로하였고, 자신의 흩어져 사는 집안사정을 전하였다. 난세(亂世)라도 이 같지 않을 것이라며 절실히 도타운 사이로 생사(生死)를 서로 들을 수 없었는데, 함군(咸君)이 죽었다는 것을 듣고 탄식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복중(服中)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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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고종 42) 12월 12일에 복하생(服下生) 서석화(徐錫華)가 비석을 세우는 일과 며느리의 행차에 대해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복하생 서석화비석을 세우는 일에 대해 언급하고 며느리의 행차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편지이다. 일 년 동안 강호(江湖)에서 탄식하였는데 백리에서 온 편지를 읽어보고 같은 마음인 것을 알아 서로 날마다 도모하니 그 감개가 심하다고 하였다. 상대의 안부를 알고는 위로가 된다 하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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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5월 6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자식의 상황과 당백(堂伯)의 사정, 본 고을의 분란에 대해 전하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자식의 상황을 말하였고, 당백(堂伯)의 사정을 언급하며, 본 고을의 분란에 대해 전하는 편지이다. 한 달을 소식이 막혔지만 하루도 그리워함은 잊지 않았다고 하였다. 단지 꿈속에서만 그리워하다가, 뜻밖에 멀리서 보내준 편지를 보고 감사하면서 저녁을 다 보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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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고종 43) 2월 27일에 외생(外甥) 서기윤(徐基潤)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에게 남고(南皋)의 수갈(竪碣)의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외생 서기윤서기윤(徐基潤 : 1860 ~ 1924)이 장인 남효술(南孝述)의 부친인 남고(南皋)의 비석을 세우는 것에 대해 치하하고 그 행사에는 병으로 참석을 못해 죄송하다는 편지이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이미 열흘이 지나 그리워하는 마음에 오래도록 가까이 할 수 없어 간절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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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2월 28일에 첨하생(忝下生) 서석화(徐錫華)가 선집(先集)의 교감을 잘하라 하였고, 일을 늦추게 하여 죄송하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첨하생 서석화선집(先集)의 교감을 잘하라고 당부하고, 일이 지연된 것에 유감을 표시하며, 아이들이 돌아올 날을 가르쳐 달라는 편지이다. 삼 일 밤을 촛불을 태워가며 마음을 기울였으니 거듭 여러 사람들한테 감사드리며 소매를 맞잡고 흡족하였으니 이 생애의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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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순종 4) 2월 30일에 하생담제인(下生禫制人) 서석화(徐錫華)가 「휘요(彙要)」의 낙장을 묻고, 보내준 제수품이 감사하다는 편지 / 기록자료>고문서 / 하생 서석화휘요(彙要)의 낙장이 무엇인지 묻고, 제수품(祭需品)을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편지이다. 일 년에 만나기를 다시 하여 십 일간 토로함이 깊었으니,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기약하기 힘든 좋은 만남이라서 이별에 창망함이 더욱 깊다고 하였다. 상대의 편지를 받고 상대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