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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51

    族叔禮曹佐郞三省齋公行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족숙인 趙錫虎(1724∼1784)의 행장이다. 본관은 豐壤, 초명은 錫均, 자는 正則, 호는 三省齋이다. 부친은 觀經, 모친은 務安朴氏이다. 江左 權萬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관례를 치루기 전에 부친을 여의고, 조모와 계모, 그리고 어린 4명의 동생을 부양
    출처 : 유교넷
  • 325552

    從祖處士松崗府君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종조 趙欽經(1688∼1756)의 행장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敬甫, 호는 松崗이다. 부친은 瀣, 모친은 義城金氏이다. 관례를 치른 후 장인인 權瑾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스승이 그를 매우 훌륭하게 여겨, 그를 볼 때마다 경의를 표하며 진정으로 예법을 아
    출처 : 유교넷
  • 325553

    從祖處士直方齋府君行狀 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종조 趙麟經(1696∼1759)의 행장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謹甫, 호는 直方齋이다. 부친은 瀣, 모친은 義城金氏이다. 그의 맏형이자 저자의 조부인 中厓公을 사부처럼 모셨다. 篪叟 鄭葵陽의 딸과 혼인하였다. 당시 훈수, 지수 형제가 후학을 斯文으로 이끌어내
    출처 : 유교넷
  • 325554

    堂父成均進士靜窩府君行狀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당숙인 趙錫喆(1724∼1799)의 행장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明仲, 호는 靜窩이다. 부친은 善經, 모친은 密陽朴氏이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자, 백부이고 저자의 조부인 趙時經이 거두어 학문을 가르쳤고, 20세가 되어서는 그 지역의 종장이던 청대 권상일의 문
    출처 : 유교넷
  • 325555

    저자의 당숙인 趙錫穆(1726∼1793)의 행장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遠仲이다. 부친은 履經, 모친은 仁川李氏이다. 생부는 善經, 생모는 密陽朴氏이다. 1756년(영조 32) 대과에 올랐다. 학문과 명성이 세상에 퍼졌으나, 본인은 소년이 등과하면 불행한 결과를 낳
    출처 : 유교넷
  • 325556

    季父通德郞日省齋府君家狀 2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계부인 趙錫魯(1725∼1777)의 가장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景得, 호는 日省齋이다. 부친은 時經, 모친은 星山呂氏이다. 평생의 삶이 ‘孝友慈’ 3글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라 부모의 신임을 받았으며, 따라
    출처 : 유교넷
  • 325557

    先考通訓大夫司憲府持平存省齋府君家狀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부친인 趙錫愚(1721∼1760)의 가장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景顔, 호는 存省齋이다. 부친은 時經, 모친은 星山呂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보여 5세에 효경을 암송하고, 6세에 사서를 배우자, 무왕이 주를 친 것을 신하가 임금을 정벌한 것은 의롭지 않다
    출처 : 유교넷
  • 325558

    族兄處士松窩公墓誌 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와 8촌간인 趙昞然(1731∼1788)의 묘지명이다. 본관은 豐壤, 자는 季明, 호는 松窩이다. 부친은 縡, 모친은 星山李氏이다. 부인 仁川蔡氏와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저자의 조부가 그의 기상이 빼어나고 어려서 고아가 된 것을 가련하게 여겨 문하에 들였다.
    출처 : 유교넷
  • 325559

    烈婦孫孺人傳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상주 사람으로 士人 孫必慶의 딸이고, 成孝悅의 부인인 열녀 손씨에 대한 글이다. 남편이 병을 앓다 죽자 몹시 상심해 하면서도 목숨을 부지하던 부인이, 그 아들마저 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에 그 큰 동서에게 “남편이 죽은 뒤에도 목숨을 부지했던 것은 남편이 남긴 혈육을
    출처 : 유교넷
  • 325560

    孝烈李孺人傳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士人 李行源의 딸이고 新平(본관) 사인 李亨基의 부인인 열녀 이씨에 대한 글이다. 남편이 병을 얻어 죽자 오랫동안 식음을 전폐하더니, 하루는 갑자기 “늙으신 시어머니가 살아계시고 강보에 쌓인 자식이 있는데 내가 죽는다면 이는 큰 불효다.”라고 하고, 마침내 직접 방아
    출처 : 유교넷
  • 325561

    長水縣故吏朴姓人血書事蹟 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장수현 아전이었던 박씨 성을 가진 이의 일을 적은 것이다. 湖南道 碧溪縣 서쪽 십리 쯤의 川邊에 피로 ‘墮淚碑’ 3자를 쓴 비가 있다. 그 사연을 들으니, 당시 知縣이던 趙宗冕이란 이가 일 때문에 출타하던 중 마침 물이 불어 말이 넘어지면서 익사하고 말았다. 이때 박
    출처 : 유교넷
  • 325562

    大學言心不言性中庸言性不言心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는 󰡔대학󰡕과 󰡔중용󰡕의 목적이 각각 달라서 중점을 달리 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즉 심과 성은 서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심에는 성이 그 안에 있고, 마찬가지로 성에는 심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다만 주자가 강조점을 주기 위해 각각 달리 말한 것이라
    출처 : 유교넷
  • 325563

    大學只言謹獨而中庸兼言戒懼 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는 이러한 차이가 󰡔대학󰡕과 󰡔중용󰡕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대학󰡕은 소학 공부를 바탕으로 한 다음에 익힌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근독’ 만을 말한 것이고, 󰡔중용󰡕은 전체적인 차원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계구까
    출처 : 유교넷
  • 325564

    誠敬是庸學宗旨而大學略言敬中庸詳言性 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는 이러한 차이가 󰡔대학󰡕과 󰡔중용󰡕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대학󰡕은 공부의 근저에 흐르는 것이 경이기 때문에 굳이 중언부언하지 않고 경만을 강조했고, 󰡔중용󰡕은 천도와 인도를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성을 상세히
    출처 : 유교넷
  • 325565

    저자는 동의 개념이 ‘시청언동’ 4가지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다고 하였다. 즉 눈이 움직여서 보는 것이고, 귀를 움직여 듣는 것이며 혀를 움직여 말하는 것이니 ‘동’의 개념에 이미 ‘시청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25566

    저자는 󰡔대학󰡕이 다양한 경전을 인용한 것은 당연하다고 보았다. 다만 󰡔중용󰡕이 시경만을 인용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중용󰡕은 ‘성리설’을 설명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고, 따라서 그 의미가 표현하기 매우 곤란한 것이 많다. 이러한
    출처 : 유교넷
  • 325567

    저자는 공부에 있어 가장 큰 요체는 戒懼하여 미발한 것을 기르는 것과, ‘戒謹’하여 그 萌動한 것을 살피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근독’ 이야말로 ‘하학이상달’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568

    舊堂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그 뜻을 설명한 서문이다. 구당을 지은 지 110년이 되었는데, 이 집은 선조의 舊家요, 孝悌忠信은 선조의 舊業이며, 謹厚恭儉은 선조의 舊風이요, 오백여 서책은 선조의 舊物이며, 박전과 늙은 노비는 선조의 舊物이다. 후손이 평생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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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69

    道南一貫堂重修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도남서원의 ‘일관당’을 중수하고 쓴 서문이다. 저자는 공자의 도가 증자‧자사‧맹자를 거쳐 정자‧주자 5현에게 이어졌고, 이후 중국은 그 맥이 끊어졌다. 이 도통을 이어받은 이가 포은이고 이는 다시 한훤당, 일두를 거쳐 회재, 퇴계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도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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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0

    贈孫注書(鎭翼)聞喜宴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1781년(정조 5) 손진익이 개최한 문희연에서 지은 시를 모은 시첩의 서문이다. 저자는 손진익이 대과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 21살이었다. 그때 부모와 조부모 모두 살아계시고, 또 외조부모와 처부모 모두 살아계셨다. 젊은 나이에 대과에 오르는 것은 4喜 중 하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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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1

    賀柳公(聖霖)重牢宴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 모친의 從祖兄인 류성림이 1786년(정조 10) 회혼례를 치른 것을 축하하며 쓴 서문이다. 저자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지만, 두 부부의 모습이 60년 전 혼례식 때와 같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부부가 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淸心寡慾의 삶을
    출처 : 유교넷
  • 325572

    渭川書窩記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류심춘이 지은 위천서와에 쓴 기문이다. 류심춘은 궁벽한 산촌에서 부모 봉양하며 한문에 전념하는 삶을 목표로 하였다. 그래서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뜻하지 않게 임금의 은총을 입어 계방의 관료를 지내고 또 두 읍의 목민관을 역임하여 자못 治績이 있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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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3

    先賢筆帖後跋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의 당제인 士休가 퇴계의 遺墨과 그 급문제자의 手簡을 모아 만든 필첩에 쓴 발문이다. 저자는 당제가 필첩을 만든 뜻이 누가 쓴 글씨와 필적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필첩을 통해 퇴계와 그 제자들의 기상과 학문을 본받으려는 데 있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574

    書僑窩成丈(涉)文稿後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僑窩 成涉의 문집 발문이다. 저자는 성섭을 덕망과 선행이 있고 才智와 聰明이 特達한 군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서재에 찾아가 읽던 책과 대화를 보니 속세의 학자에 비교할 바가 아니고, 性情의 바름을 얻은 것 같다고 하였다. 이어 문집은 雜記와 傳記, 序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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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5

    書渴睡軒記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金㙔가 지은 渴睡軒의 기문이다. 김위는 병조좌랑으로 당직 중일 때 한 아전이 그에게 고하지 않고 궁궐에 들어오다 붙잡혔다. 아전은 당직자가 자고 있어서 그랬다고 변명을 하였고, 이에 국왕이 “그때의 ‘낭관이 잠이 모자라는 사람(渴睡郞)’이었나보다” 하면서 웃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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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6

    題黃從次野與子希往復說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자신의 종제인 黃巖老와 趙子希 간에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첩에 쓴 발문이다. 저자는 친우 간에 성리학과 관련된 의문점과 변설을 주고받은 편지를 찾기 어려운데, 이 둘 사이에 이렇게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차야의 의견은 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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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7

    蒼玉硯銘(竝小叙) 2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서해 바닷가에서 채취한 벼루를 얻어 사용해보고 명품임을 기뻐하며 지은 명이다. 저자는 이 벼루가 역대 명품에 뒤지지 않다고 하면서도, 뛰어난 벼루라도 반드시 그 주인을 만나야 이름을 떨치는 것이 곧 그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명에는, 벼루를 군자에 비겨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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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78

    狎鷺亭重建上樑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松潭 蔡應麟이 을사사화 이후 은거하면서 금호강변에 지었던 압로정을 중건하며 지은 상량문이다. 풍광의 아름다움과 정자 곳곳에 걸린 명현의 필적에 감탄하며, 중건을 축하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579

    涑水書院明倫堂重修上樑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상주와 경주의 사족이 힘을 합쳐 속수서원 명륜당을 중수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저자는 속수서원이 退齋 申祐, 景節公 孫仲暾, 開巖 金宇宏, 黔澗 趙靖의 신위를 배향한 곳으로 지은 지 150여년이 지나 퇴락하였다. 이것을 사족이 힘을 합쳐 중건하였으니, 학문을 익히고 때
    출처 : 유교넷
  • 325580

    西臺亭重建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金冲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은거하기 위해 지었던 西臺를 중건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저자는 김충의 후손들이 2, 3대의 노력 끝에 서대를 중건한 것을 축하하고 있다. 50리 먼 길의 공역을 꺼리지 않고 옛 규모를 복원해 놓았으니, 노인은 풍광을 즐기며 시를 짓고 젊은이
    출처 : 유교넷
  • 325581

    瀟陽書院廟宇重修上樑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懶庵 鄭彦信, 忍百堂 金樂春, 嘉隱 沈大孚, 稼隱 李襑, 孤山 南嶸을 배향한 문경 소양서원의 묘우를 중수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배향된 5인의 사적을 소개하고 묘우의 위치를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582

    字戒 30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저자가 관례를 치른 후 士威라는 자를 받은 다음, 자에 걸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경계하는 의미로 쓴 글이다. 스스로 덕성과 공업을 쌓되, 남들과 그것을 견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 안과 밖의 모든 이에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여 부모와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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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83

    挽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柳氵+奎, 鄭宗魯, 成彦根, 姜世白, 鄭必奎, 黃巖老, 金虎燦, 金熙周의 만사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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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84

    祭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南漢朝, 柳尋春, 道安社 儒生 姜世獻, 孤峰書堂 儒生(韓弘澤, 邊性浩, 王述孝, 趙希洙), 洪錫疇, 南植正, 權宅模, 舍弟 趙學洙, 再從弟趙承洙, 再從弟 趙養洙의 祭文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585

    行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江皐 柳尋春이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586

    墓碣銘(幷序)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목수
    定齋 柳致明이 쓴 묘갈명이다. 내용은 순서만 다를 뿐 행장과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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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87

    구탄집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구탄집(九灘集) 九灘 張緯邦의 문집. 石印本, 序: 黃土+憲(1908), 跋: 張建德‧張斗淵(1908),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21.3×16.5㎝,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向黑魚尾; 26.9×21.0㎝. 黃土+憲이 1908년(융희 2)에 쓴 서문과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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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88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讀小學書志感,辛亥臘月避痘奔迸客懷無聊又値歲除屈指行年已三十六歲矣悼前時之失學慨餘韻之難理因作詩以自警,壬子除夕次楊龜山此日不再得韻示諸生,除夕復用七言一律寫懷, 正月六日夜無眠拈韻, 將赴靑鳬試所有感, 伯氏在仁衙次先府君贈戒詩戒泰翰伏次其韻, 集兒三加日謹次伯氏韻, 緝兒加冠日敬次朱晦菴遠遊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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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89

    南征謾錄(幷小序)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到宜春懷堂父石門公,到黃山懷舊丞金源仲(景泌), 過曹南冥先生山海亭故基, 登金海南城樓次板上韻, 過首露王陵, 登黌樓望府城, 鷰子樓次朱悅韻, 海汀人家, 南山箭竹, 籬外杏花, 還渡龍堂江, 還到宜春老妓垂楊示石門翁所贈韻次韻給之,登東萊海雲臺次萊倅鄭道中(權)沒雲臺韻,忠烈祠次權貳相(以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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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0

    越行謾錄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鵝溪阻雨, 宿簑笠峰, 呈寧越倅鄭道中令公, 謁莊陵, 彰節祠, 閱陵誌謹次金栢巖吳竹牗兩先生韻, 洛花巖, 越州九日次杜詩崔氏庄韻呈陵寢郞鄭(宅祚), 雨宿自作亭, 趙承旨(德鄰)玉川亭感吟, 辶+亐院與諸益敬次退溪先生集中韻, 題仁同四義士傳後, 權上舍子開訪余題鳳行到竹溪寄五言二絶而次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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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1

    遊海謾錄(1758)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月厓道中望淸凉山有感(三首), 長渴峴, 過竹塢村有感, 行哭嶺(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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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2

    月松亭伏讀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肅考大王御製詩,謹次高麗安文敬公懸板韻, 題寧海鄕校蓮桂錄後(幷小序), 觀魚臺下同諸友泛舟, 海行歸與季良相酬, 追次金煥如自輓詩, 次金上舍燁如韻, 送金壻德卿(世鍊)徃三陟, 燁如以一律投示歩其韻謹呈, 次權萬源韻, 次霞巖亭韻, 敬次再從叔父(晩棫)慶席韻,伊院同宋文極金獻可全器叔及士益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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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3

    上伯氏書 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伯氏 張緯恒(1678~1747)에게 올린 편지이다. 최근에는 기침이 어떠한지? 그리고 조정에서의 생활은 어떠한지? 등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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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4

    上伯氏書 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伯氏 張緯恒에게 올린 편지이다. 병을 얻어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가서 직접 뵙고자 하나 병이 완쾌되지 않아서 한스러울 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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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5

    寄泰陽侄 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조카인 泰陽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미 한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지닌 이상 마음을 굳게 다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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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6

    思庵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思庵 記文이다. 三從弟 元伯이 거처의 남쪽에 祠屋을 마련하고 방의 오른쪽은 祭祀를 모실 때에 寢所로 사용하고자 하여 ‘思庵’이라고 칭했다고 전하면서 ‘思’자를 사용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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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7

    五代祖考最樂堂扁銘(幷小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五代祖考의 最樂堂 扁額에 수록된 銘文이다. 三從兄이 志事를 서술하여 최락당에 걸고자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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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598

    李大裕黙窩銘(幷小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친구인 大裕 李慶泰의 거처 黙窩와 관련하여 지은 銘文이다. ‘黙’이라고 명칭을 정한 까닭을 적고 이미 관련된 詩를 짓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599

    王山世系後叙 4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王山世系 後叙이다. 張大翼이 전한 花溪宗家의 系牒과 張萬秀가 전한 張水使 집안의 朔寧譜를 비롯하여 張東翰이 전한 世系 등을 비교하여 보면 서로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張太師 위로 5代를 더 첨가해야 한다는 등 世系와 관련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600

    辶+亐溪書院君子堂上樑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
    辶+亐溪書院 君子堂을 짓고 올린 上樑文이다. 1711년(숙종 37) 서원을 이건하고 40여 년이 지났다고 하면서 군자당의 위용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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