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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龍齋舍上樑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從龍齋舍를 짓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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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從兄(緯一)誄辭 8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三從兄 張緯一에게 올리는 誄辭이다. 생전에 늘 부모에게 효를 다했던 일을 들어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라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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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弟(漢星)誄辭 9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再從弟 張漢星을 위해 지은 誄辭이다. 생전에 함께 독서를 하면서 서로 질의를 하기도 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얻은 바가 적지 않았으니 서로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하면서 올 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비통하기 그지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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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訥隱李先生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訥隱 李光庭(1674~1756)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字는 天祥이고, 號는 訥隱이며, ‘鹿門山人’이라고도 한다. 金中淸에게 師事를 받았으며, 26세가 되던 1699년(숙종 25) 進士試에 합격하여 成均館에 입학하였다. 46세 때에 생부와 양부의 遺訓으로 과거를 보았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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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權公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外舅 權復衡(1658~1744)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자세한 生平은 卷3의 墓誌에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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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宗慶(宅相)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權宅相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서 같은 해에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門戶를 서로 통하게 되어 ‘莫逆之友’라고 칭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세상을 갑자기 떠나게 되었으니 어찌 그 슬픔이 더욱 크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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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聲烈)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金聲烈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서로 왕래하며 많은 곳을 함께 다니기도 하였는데, 이렇듯 세상을 떠나니 ‘知音’을 잃어버린 슬픔이 크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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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輝彦(暄)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李暄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1752년(영조 28) 겨울에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하면서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그대가 세상을 떠난 것이 정말 슬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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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通甫(弘遠)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金弘遠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15쪽이 두 번 반복되었으나 내용에는 출입이 없다. 나의 부족함을 관여하지 않고 왕래를 해주었다고 전하면서 작년 겨울에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난 뒤에 직접 쾌차하실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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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公(賁衡)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權賁衡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이제 세상을 떠나 영원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처지가 되어 하늘을 우러러 눈물로 호소를 하여도 아무런 말이 없으니 슬픔을 달랠 길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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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公聖瑞(亻+永)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金亻+永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忘窩 金榮祖(1577∼1648)의 曾孫으로 남다른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등 인품도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이제 나를 두고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아무런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버린 아픔이 너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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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獻可(墀)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金墀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형제가 적어 평소 함께 하면서 서로 형제처럼 지냈는데, 이제 이렇게 세상을 떠났으니 누가 나의 허물을 바로잡아 주고 누가 나의 경솔함을 경계해줄지 모르겠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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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丁上舍以和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丁以和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평소 성품이 돈후하여 後生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이렇듯 세상을 떠나서 매우 슬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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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堂叔父石門公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堂叔 石門公 張后相(1677~1742)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卷3의 行狀에 자세한 生平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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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氏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伯氏 張緯恒(1678~1747)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卷3의 家狀에 자세한 生平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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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祥時 2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白氏의 大祥 때에 올린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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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氏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仲氏 張緯衡(1694~1750)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卷3의 家狀에 자세한 生平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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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堂叔壽巖公(一相)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堂叔 張一相에게 올리는 祭文이다. 천성이 實厚하고 言動이 분명하여 모든 이들이 본받을 만 하였는데,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어 그 슬픔이 크지만 아들을 하나 두었으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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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弟(緯辰)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再從弟 張緯辰을 위해 지은 祭文이다.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어 남은 가족들이 의지할 곳을 잃게 되었다고 전하면서 애통해하는 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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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舅處士權公墓誌 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外舅 處士 權復衡(1658~1744)의 墓誌銘이다. 본관은 安東이다. 字는 子休이고, 號는 義川이며, 증조는 應銖이고, 조부는 遘이며, 부친은 山甫이다. 어머니는 缶林洪氏 汝基의 딸이다. 1658년(효종 9) 7월 27일 唐陣里에서 태어났으며, 仲弟인 益衡과 더불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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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金氏墓誌 4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姓은 金氏(1666~1721)로 고려시대 侍中平章事를 지낸 金椿의 후손이다. 증조는 成沃이고, 조부는 汝㦿이며, 부친은 坖이다. 어머니는 安東權氏로 權幸의 후손이다. 1666년(현종 7) 9월 12일 태어났으며, 1684년(숙종 10) 19세의 나이로 출가하여 어른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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堂叔父通訓大夫行成均司藝府君家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堂叔 張后相(1677~1742)의 家狀이다. 본관은 仁同이다. 字는 夢予이고, 號는 石門이며, 증조는 汝華이고, 조부는 龍慶이며, 부친은 瑜이다. 어머니는 禮安金氏 墩의 딸이다. 1677년(숙종 3) 3월 19일 仙巖里에서 태어났으며, 1699년(숙종 25) 가을 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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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氏縣監府君家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伯氏 張緯恒(1678~1747)의 家狀이다. 본관은 仁同이고, 字는 天應이며, 號는 雲巢, 혹은 臥隱이다. 高祖는 汝華이고 曾祖는 龍慶이며, 祖父는 璉이고 부친은 玉相이다. 어머니는 宣城李氏 世龜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8월 2일 豐山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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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氏通德郞公家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仲氏 張緯衡(1694~1750)의 家狀이다. 본관은 仁同이고, 字는 心應이다. 高祖는 汝華이고 曾祖는 龍慶이며, 祖父는 璉이고 부친은 玉相이다. 어머니는 宣城李氏 世龜의 딸이며, 생모는 禮安金氏 坖의 딸이다. 1694년(숙종 20) 2월 7일 菖浦里에서 태어났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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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 1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李象靖‧權正宅‧李守恒‧金翼溟‧李守貞‧金埅‧李象辰‧金宅東‧金㙔‧趙葵陽‧李世師‧成巨寅‧鄭泰益‧金燁‧權命九‧丁志宬‧金虎鍊‧朴鼎烈‧宋儒文‧金‧權重泰‧權芨‧李台煥‧權正始‧趙普陽‧柳晋鉉‧金柱震‧吳浻‧金土+彦‧權心揆‧李光培‧南震萬‧河龍翼‧李周禎‧宋翼龍‧金彦烈‧宋儒式 등이 쓴 輓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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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 12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鄭一珪‧權光運‧趙龍錫 등이 쓴 誄詞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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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金世鍊‧猶子 泰翰 등이 쓴 祭文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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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19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從子 泰翰이 쓴 저자의 家狀이다.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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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李炳觀이 쓴 저자의 行狀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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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29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權世淵이 쓴 저자의 墓碣銘이고,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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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34 / 기록자료>고도서 / 장위방후손 建德과 斗淵이 쓴 跋文이 실려 있다. 부친이 家勢가 어려워서 6대조의 遺文을 지금은 책으로 펴내지 못하니 잘 보관하였다가 후일을 기약하기 바란다는 말을 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뜻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였다. 정리 등 관련된 일들은 族姪인 두연의 도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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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긍재집(兢齋集) 兢齋 權相龍의 문집. 石印本, 序:李祥鎬(1937), 跋: 權秉燮(1935)‧權奇旭(1984),1卷1冊:半郭 22.1×14.9㎝, 有界, 10行 22字, 註雙行, 上下向二葉花紋魚尾; 27.7× 19.49㎝. 1935년 후손 權道黙이 집안에 간직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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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伏次李息山(萬敷)心體韻, 次姜瑞長韻, 閨巖與諸友共賦, 登萬項望海寺後麓, 次洪重厚(載)除夜韻, 咏無燈, 敬次金慕齋校中板上韻, 伏次從兄別章呈息山座下,次古詩韻二首呈吳竹崖(尙遠), 次吳丈竹崖韻, 直指寺與鄭汝仰鄭士敏得三絶奉勉兩益因以自警,過孔子洞有吟, 見道中流丐㦖然, 和李聖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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幽栖洞崇敎堂重修記(1762) 6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幽栖洞에 있는 崇敎堂을 중수하고 그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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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金剛內山大略 6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1746년(영조 22) 함경도도사로 재임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금강산을 유람하게 되었는데, 유람의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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潭巖金先生遺墟碑後叙 7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潭巖 金用石(1453~?)은 자는 鍊叔, 본관이 光山이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2년(성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사화가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연산군 초기에 가족을 데리고 풍산 구담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임종 때에 문적을 다 불태우고 자손들로 하여금 대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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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谷里社上樑文 7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龍谷里社를 짓고 상량식 때 지은 글이다. 상량한 후에 산과 강은 생기가 돌고 강에 비친 달은 더욱 빛나며, 효도하는 노래를 부르고 사모하는 정성이 더욱 간절하며,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을 길이 보게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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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詩 7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輓李宜仲, 輓蔡丈(後甲), 輓申上舍達仲(孝源), 輓李掌令(濰), 輓洪典籍士開(聖源), 輓李上舍(基龍), 輓申丈(厚元, 1749), 輓李慈仁(知聖), 輓宋丈(邦維), 哭李處士(國春), 輓安進士(榮世), 輓蔡護軍(允中), 輓姜丈(碩弼), 輓高季泂(斗瑞), 輓金得一(好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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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參奉魯得(聖曾)文(1762) 8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參奉 柳聖曾(1700~?1761)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柳聖曾은 자는? 魯得, 호는? 花溪, 본관이 豐山이다. 1740년(영조 16) 진사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역임하였다. 과거를 보려고 함께 가면서 길가의 가난한 사람을 구휼해 주었던 일, 姻戚이 되어 정분이 돈독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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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拙修齋從兄文(1759) 8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從兄 拙修齋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맑은 기질과 순수한 자질, 독실한 학문으로 영남 사림의 영수가 되었으며, 자기 가문의 동량이었다고 하였다. 덕행과 학업이 모두 사표가 될 만하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염려하는 마음이 70이 넘어도 변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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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壻柳君(浵)文(1754) 8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사위 柳浵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장인과 사위 관계가 된지 2년이 넘었으나 서로 만난 것은 겨우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고, 忠孝와 詩禮를 계승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실한 학문으로 훌륭한 그릇이 될 줄 알았는데 21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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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姑鵝洲申氏文(1733) 8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丈母 鵝洲申氏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저자가 장가들었을 때 장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장모가 오직 사위를 맞아 어루만지고 아껴 주었다고 하였다. 저자에게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었지만 자신은 그것을 다 갚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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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齋蔡公墓碣銘(幷序) 8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蔡得江(1574~1660)의 묘갈명이다. 채득강은 자가 而永, 호는 西齋, 본관은 仁川이다. 여러 번 향시에는 합격하였으나 과거에는 실패하고, 후진 교육에 힘썼으며 壽職으로 통정대부에 올랐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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點离窩安公墓碣銘(幷序) 8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安道徵(1592~1678)의 묘갈명이다. 안효징은 자가 泰和, 호는 點离窩, 본관은 順興이다. 일찍 문장 통달하여 여러 번 향시에 우수한 성적을 얻었으나 과거에는 실패하였다. 1659년(효종 10) 효종이 승하하자 禮訟에 관한 疏를 올려 예를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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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梧堂安公墓碣銘(幷序) 8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安晉石(1644~1725)의 묘갈명이다. 안진석은 자가 士雅, 호는 月梧堂, 본관은 順興이다. 어릴 때부터 늠름한 모습은 어른 같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장이 정밀하고 이치가 있었으나 과거에는 실패하였다. 80세가 되어 護軍이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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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從兄淸臺家狀 8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伯從兄 權相一(1679∼1759)의 家狀이다. 권상일은 자는 台仲, 호는 淸臺, 본관은 安東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저작·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1727년(영조 3) 만경현령이 되고, 이듬해 일어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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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10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아들 權檾이 지은 저자의 가장으로 내용은 이 글 앞의 저자소개에 자세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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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李象靖, 朴孫慶, 李植春, 金成胤, 李守貞, 高裕, 李顯靖, 金履常, 蔡瀗, 李穦, 姜杭, 李象辰 등이 지은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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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李植春과 蔡淳이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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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상룡權相圭(1874~1961)가 지은 행장으로 내용은 이 글 앞의 저자소개에 자세하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