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5701

    祭羅參奉(學濂)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羅學濂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덕행이 조정에 알려져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安分自足한 생활을 바꾸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라고 하였다. 평소에 서로 담소하며 즐기던 일을 생각하니 애통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2

    祭朴寬汝(弘儁)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朴弘儁(1704∼1755)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朴弘儁은 자가 子毅, 호는 槐川, 본관은 羅州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司諫院正言‧司憲府執義‧靈光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나주벽서 사건으로 어수선한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올린 상소로 국문을 받고 거제도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출처 : 유교넷
  • 325703

    祭金公(穆源)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金穆源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科場에서 한 번 만난 후로 특별한 교분을 맺었으며, 또한 혼인으로 맺어지기도 했다고 하였다. 그간의 정리를 회상하고, 지금은 梧溪의 옛 벗들이 모두 모였는데 그대만 없으니 애통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4

    祭申進士(光厚)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申光厚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死者의 예의 바르고 공손하고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였으며 예로 자식을 훈육하였던 것에 대해 기술하고, 혼인으로 맺은 정분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함께 노닐던 정자는 텅 비어 벗들이 애통해 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5

    祭朴公(可祥)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朴可祥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死者의 喪期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지금 哭을 하는 것은 자신은 늙어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고아한 자태와 공손한 행실 등 死者의 인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知己를 잃어버려 애통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6

    祭外大父學生府君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外祖父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외조부의 小祥이 다가오는데 목소리와 모습은 아득히 멀어졌다고 하였다. 세상이 일이 이렇게 어긋나니 눈물이 흐른다고 하였다. 눈물이 흘러 붓을 잡아도 글을 쓸 수가 없고, 태어난 근본을 생각하니 더욱 애통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7

    祭洪公(龜壽)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洪龜壽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옛적 저자의 고조 二五公과 死者의 顯祖 遜愚公 사이의 정의를 회고하였다. 그리고 같이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함께 과장에 나갔던 일을 회상하며 애통해 하였다. 그리고 死者가 집에서 죽음을 맞지 못하고 객지에 죽은 것이 더욱 서글프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8

    祭姊兄羅公(錫經)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姊兄 羅錫經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死者가 우리 집에 장가든 후 30여 년 동안의 정리를 회상하며 애통해 하였다. 스스로 행실을 조심하고 근실하였으며, 그것이 누나와 아우에게 미쳐서 훈독하고 이끄는 방도를 잃지 않았으니, 공이 죽었으나 잊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09

    祭伯父學生公遷葬時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伯父의 묘를 移葬할 때 올린 글이다. 저자가 태어나기 전에 백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친도 일찍 돌아가셔서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제 이장을 하게 되어 관 뚜껑을 열게 되어 백부의 기골과 피부를
    출처 : 유교넷
  • 325710

    祭族祖雪竹堂(再淑)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族祖 雪竹堂 姜再淑(1677~1758)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강재숙은 본관이 晋州, 자는 淸甫, 호는 雪竹堂이며, 奉化 法田에 거주하였다. 1728년(영조 4) 戊申亂에 창의하였으며, 문장과 필법에 뛰어났다. 선친과 같은 해에 태어나고 동문수학하였던 일을 회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11

    祭宗從叔(鼎一)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宗從叔 姜鼎一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집안의 어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니 애통하다고 하였다. 종조는 가문의 장손으로 문중을 잘 통솔하였으며, 나이가 지긋하도록 농사에 힘써서 선조들이 은둔하려던 遺風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12

    祭族祖縣監公(再恒)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族祖 姜再恒(1689~1756)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姜再恒은 자가 久之, 호는 立齋‧雷風居士, 본관은 晋州이다. 학문에 전일하여 낮에는 경전을 읽으며 농사짓고 밤에도 문자에 힘썼으며, 제자백가와 경사자집을 모두 섭렵하여 고아한 기개와 도량은 학문의 힘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13

    祭三從兄生員公(澤)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三從兄 姜澤(1709~1760)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姜澤은 字는 土源이고, 本貫은 晋州이며, 潚의 弟이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과장에 나가고 함께 절차탁마하였다고 하였다. 일이 잘못 되면 서로 허물을 일깨워 주어 서로 경계하려던 계획은 아직 다 이루지 못했고, 학
    출처 : 유교넷
  • 325714

    祭三從兄處士公(泂)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三從兄 姜洞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근래 우리 집안은 덕 있는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시어 문중의 일을 주관할 사람이 없어 삼종형이 주관하고 자신은 거기에 따랐다고 하였다. 문중을 잘 이끌었을 뿐 아니라 모친을 여읜 후로 부친을 모시고 봉양을 지극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15

    祭宗從兄寢郞公(潚)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宗從兄 姜潚(1709~1781)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姜潚은 자가 士淸, 호는 柳隱, 본관은 晋州이다. 저자와 비슷한 年輩로 함께 놀이하고 같이 공부하여 科場이나 서울을 출입하였으며, 두터운 우의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고 어긋남은 없었다고 하였다. 재주가 뛰어나 어
    출처 : 유교넷
  • 325716

    祭外姑完山李氏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장모 完山李氏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맑고 화락한 기운을 타고 났으며, 부녀자의 규범에 법도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휼륭한 자제들을 두었으며 길이 복을 받았다고 하였다. 예전에 장가들어 덕스런 모습을 뵙고 그 명성이 사실임을 알았다고 하였다. 이제 돌아가시니 애
    출처 : 유교넷
  • 325717

    祭亡室孺人潘南朴氏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부인 孺人 潘南朴氏(1711~1740)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저자에게 시집 온 10년 동안 偏母를 정성으로 모셨고 나의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냈으며 집안 살림살이도 잘 꾸렸고, 婦德이 있었다고 하였다. 젖먹이 어린 세 아들을 두고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웃
    출처 : 유교넷
  • 325718

    十代祖考贈參判正郞府君碑陰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10대조 參判府君 姜安福의 碑文 陰記이다.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병화를 겪는 동안 墳墓잃어 버렸는데, 근래에 후손 姜必復이 발의로 찾기 시작하여 1년 만에 묘소를 찾았고, 姜文憲의 발의로 비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옛날 비석의 글자가 뭉개져서 읽을 수 없
    출처 : 유교넷
  • 325719

    高祖妣淑人靑松沈氏碑陰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고조모 靑松沈氏(1599~1692)의 비석의 陰記이다. 고조모는 맑은 덕행과 아름다운 행실이 있었는데도 묘 앞에 비석이 없는 것은 후손의 부끄러움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후손 姜潚과 姜浣이 지혜를 모으고 일을 주관하여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20

    江原道安廉使田公祭壇碑陰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江原道安廉使 田子壽 제단비의 陰記이다. 수 백 년을 내려오면서 전쟁 등 풍화를 겪어서 묘소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후손들이 그 주변에 제단을 마련하고 家譜와 郡誌 등을 참고하여 기록하고 제단을 설치한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25721

    族叔學生公墓誌 2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족숙 姜福一(1687~1756)의 묘지이다. 족숙의 선대의 내력, 그리고 성품과 행실에 대해 기록하였다. 형제들이 각도에 흩어져 살면서 객지에서 죽자 모두 달려가 장례를 치른 일을 기록하는 등 형제간의 서로 도움과 형제들이 죽은 후 형제의 후손들을 도와 준 것에 대해
    출처 : 유교넷
  • 325722

    亡室孺人潘南朴氏墓表 2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죽은 아내 潘南朴氏(1711~1740)의 묘표이다. 시집을 온 후로 시어머니를 잘 모셨고 형제들과 단란하였으며, 집안이 가난하여도 항상 편안한 기색으로 굶주림을 참고 공부에 열중하라고 경계했던 일 등을 기록하였다. 産痛을 겪다가 죽게 되니 어린 자식을 성장시키지 못해
    출처 : 유교넷
  • 325723

    先考生員府君行狀 3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선친의 姜履一(1677~1727) 행장이다. 자는 坦之, 본관은 晉州이다. 선대에 대해 기록하고, 선친의 이력에 대해 기록하였다. 학문을 닦은 일과 거상 중의 범절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子孫錄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24

    先妣孺人豊川任氏行狀 3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先妣 豊川任氏(1682~1762)의 행장이다. 시집온 후 조부모에게 효성을 다해 모셨고, 분가한 후로 선친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잘 보필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식들을 가르치는데 방도가 있었으며, 잘 성장시켰다고 하였다. 마지막에 子孫錄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25

    亡子生員行錄 3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죽은 아들 姜木橐(1740~1771)의 行錄이다. 태어난 지 14일 만에 어미가 産痛으로 죽고, 조모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젖을 얻어 먹였으며, 백모와 고모가 젖을 먹여 키운 덕택으로 온전하게 살 수 있었다고 하였다. 1767년(영조 43)에 생원에 합격하고 참봉의 擬
    출처 : 유교넷
  • 325726

    草堂處士姜公行狀 4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草堂 姜郁(1646~1695)의 행장이다. 자는 汝興이고 호가 草堂이다. 선대에 대해 기록하고, 이력을 기록하였다. 거상 중의 행실과 학업의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727

    挽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저자에 대한 만사로 縣監 沈元之, 正言 李級, 持平 金㙔, 生員 金濟黙, 生員 李敏哲, 生員 安明逸, 生員 安明述, 生員 權思浩, 生員 金土, 商山 金濟亨, 生員 金益顯, 完山 李泰春, 南陽 洪日熙, 宣城 金虎鍊, 靑松 沈完之, 靑松 沈能復, 靑松 沈能益, 和義 金度
    출처 : 유교넷
  • 325728

    祭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저자에 대한 제문으로 西磵儒生 李訒, 前縣監 沈元之, 生員 李敏哲, 生員 金勉恒, 眞城 李龜書, 甥姪 生員 金益顯, 生員 申晊, 甥姪 眞城 李宗壽, 外甥 豊山 金相敏, 安東 金命宅, 外甥 東陽 申相柔, 綿城 朴增, 安東 權思直, 生員 洪居聖, 二弟 浣, 三弟 瀚, 三
    출처 : 유교넷
  • 325729

    行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三弟 姜瀚이 지은 행장이다.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30

    墓誌 5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손자 姜始煥이 지은 묘지이다. 내용은 행장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25731

    尙州興巖書院道會所通文 5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1783년(정조7) 7월에 지은 저자의 祭를 위한 통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25732

    安東鄕校答興巖書院通文 5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안동향교에서 흥암서원 통문에 대한 답을 적은 글이다. 앞부분의 30여 자만이 남아서 전하고 있으며, 나머지 통고 부분은 모두 缺落되고 없다.
    출처 : 유교넷
  • 325733

    竢德祠法川柳川兩先生追享奉安文 5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法川 姜潤과 柳川 姜瀚을 竢德祠에 奉安하고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5734

    竢德書院追享告由文 5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윤
    竢德書院의 묘에 네 분 선조의 위패를 바꾸고 올린 고유문이다. 증손 泰重이 士林을 대신하여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25735

    비와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비와집(卑窩集) 卑窩 鄭重岱의 문집. 石印本, 序:盧相稷(1926)‧李中均(1931), 跋: 鄭建模‧鄭寅彦‧鄭瑗謨‧鄭升謨‧鄭鎭華(1931),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9.9×16.0㎝, 有界, 10行 20字, 註雙行,上下向二葉花紋魚尾; 31.5×20.9㎝.
    출처 : 유교넷
  • 32573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往訪徐上舍(廷望)於西峯山蹊茅塞溪石險側艱關往來及出洞口大道坦坦洞豁可由馬上思鄒夫子舍正路不由之訓感發自警, 道中, 歸路馬上復用前韻二首, 用前韻贈朴別將, 回路過法泉洞口白足持肩輿來待, 洛中書懷二首, 漢城旅舍, 箕城倅罷官歸以一絶贈之, 奉酬金丈(玄瑞), 次贈金司藝, 久客少睡金司藝來訪
    출처 : 유교넷
  • 325737

    筵說 2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17년(숙종 43) 저자가 奉常寺主簿를 역임할 당시, 經筵에서 주고받은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經筵의 주요내용은 중국 제왕의 흥망성쇠의 역사와 역사의 정통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黃帝로부터 五代十國의 시대에까지 문답형식으로 엮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의 경우, 고조
    출처 : 유교넷
  • 325738

    答淸臺權丈(相一,1737)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37년(영조 13) 양산군수 시절에 淸臺 權相一(1679~1760)이 보낸 편지에 답장한 것이다. 지방관료 생활이 매우 바빠서 통도사를 유람하며 평소의 회포와 학문토론 등을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39

    答權江左(萬)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37년(영조 13)양산군수시절에 江左 權萬(1688 ~1749)이 보낸 편지에 답장한 것이다. 관청의 일과 어머니를 모시는 일로 인해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40

    與李大山(象靖)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37년(영조 13) 양산군수 시절에 후배 大山 李象靖(1710~1781)에게 준 편지이다. 예전 서울에서 만났던 인연이 있었는데, 다시 지방에서 만나게 되어 기이한 인연이 있다고 전한다. 이 편지에서 지방의 황폐한 고을을 다스리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며
    출처 : 유교넷
  • 325741

    與朴臺憲(文秀,1737)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37년(영조 13) 양산군수로 재직할 때 암행어사 朴文秀(1691~1756)가 순시하니, 자신의 재주는 황폐한 작은 읍을 다스리는 것도 분에 넘치는 일이라며, 자신의 심정을 겸손하게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42

    與申察訪(鳳休)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저자가 察訪인 申鳳休에게 준 편지이다. 예전에 같이 유람하고자 했던 약속을 자신의 병으로 인해 후일로 미루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43

    答申察訪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저자가 察訪인 申鳳休에게 답한 편지이다. 申鳳休가 驛吏를 보내서 위문하고 아울러 편지까지 보낸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자신의 지방관료 생활에 대한 감정을 술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44

    答金矦(尙黙,1752)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52년(영조 28) 동료 金尙黙이 준 편지에 답한 것이다. 우선 어머니를 모시는 일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金尙黙이 부탁한 책인 朱子의 󰡔韓文考異󰡕는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내용과 󰡔楚辭󰡕는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자식들이 가져가 없지만, 수소문하여 보내
    출처 : 유교넷
  • 325745

    與安(浹)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자신과 인척관계가 있는 安浹에게 준 편지이다. 가정의 소식과 여동생의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또 甥姪의 안부를 묻고, 재주가 뛰어나고 학문이 빼어나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하는 내용을 아울러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46

    答族叔(之鈺,1731) 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31년(영조 7) 族叔 鄭之鈺에게 답한 편지이다. 집안의 喪事가 연이어 일어난 소식을 듣고 애통해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무안현감을 마치기까지는 아직 몇 개월이 남아서, 별 다른 일없이 무료하게 지내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선영의 묘역을 수리하는 부탁을 말
    출처 : 유교넷
  • 325747

    與族叔(之鈺)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族叔 鄭之鈺의 맏아들에 이어 둘째아들이 죽은 소식을 듣고 애통한 마음을 서술하고 있다. 12월에 지방직의 임기가 만료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안부를 묻겠다고 하고, 선영을 수리하는 일은 喪事로 인해 실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전하고 있다. 자신이 서울의 문
    출처 : 유교넷
  • 325748

    答族叔(之鈺,1734)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1734년(영조 10) 사헌부감찰 재직시 族叔 鄭之鈺의 편지를 받고 답장한 내용이다. 서울의 벼슬살이에 근심이 없고, 가정도 편안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가을이 되니 더욱 심해짐을 표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49

    與族姪(好相) 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族姪 鄭好相의 혼례에 대하여 축하인사를 전하고, 삼강 장례식에 갔을 때 석어 다섯 마리를 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750

    與金戚叔 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
    戚叔 金公의 형제 상사에 대하여 지극한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외지에서 살며 병들어 체직을 당했다고 근황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