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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舍弟道瞻(重岳,1731) 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동생 鄭重岳에게 어머니와 형님의 소식을 묻고 있다. 그리고 鐵兒의 小學을 배워 방랑하는 습속을 금하고 독서에 매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영남사람 가운데 벼슬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고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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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道瞻 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동생 鄭重岳이 보내온 편지에 답한 편지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소식과 형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장마철에 별고 없이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알려주고 있다. 鐵兒가 비록 좋은 가르침은 잃었으나 매일 공부하는 것을 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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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道瞻(1742) 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동생 鄭重岳에게 보낸 편지이다. 具生이 가는 편에 보낸 편지와 약재를 받았는지 묻고, 아버지 소식과 龍兒의 병을 걱정하고 있다. 친구 金德麟이 館下齋에 위탁하여 재야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면했으니, 친구를 위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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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仲兒必忠(1753) 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둘째 아들 鄭必忠이 보낸 편지에 답한 내용이다. 과거시험의 득실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마음속에 개의치 말라고 위로하였다. 비록 떨어졌으나 뜻을 세우기를 확고하게 하여 더욱 학업에 매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큰 일을 하려고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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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必忠(1754) 1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둘째 아들 鄭必忠이 보낸 편지에 답한 내용이다. 姜君이 과거에 합격한 소식을 듣고 매우 칭찬하면서, 아들도 더욱 인내하고 깊이 공부하여 오랫동안 공력을 쌓으면 형통한 운이 저절로 온다고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을 손상하여 병을 얻으면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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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必忠(1755) 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둘째 아들 鄭必忠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에는 별고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면서 아들을 안심시키고, 과거시험에 기회가 왔을 때 호기를 잃지 말고 통렬하게 공부하라는 내용이다. 향시가 있을 때 참관하거나 서울에서 시행하는 과장을 관람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권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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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必忠(1755) 1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둘째 아들 鄭必忠이 보낸 편지에 답한 것이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걱정하면서 좋은 기회를 만났을 때 놓치지 말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러나 萬事는 하늘에 달려 있지 않는 것이 없으니 과거시험에 너무 집착해서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시키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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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必忠(1759) 1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둘째 아들 鄭必忠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이 객지에서 먹고 자는데 문제가 없는지 걱정을 하면서, 집안의 일은 모두 편안하니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매진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三經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눈을 감고 항상 암송하고 그 의문 나는 부분을 헤아려 본다. 그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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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必忠(1759) 1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둘째 아들 鄭必忠에게 붙인 편지이다. 과거시험에 필요한 여러 도구를 잘 갖추었는지 물어보고, 필요한 靑衫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용궁에서 보내주면서 과거시험 응시준비 철저하게 하기를 권면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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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季兒必弘(1754) 1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가 1762년(영조 38)에 죽었기 때문에 丙戌(1766)은 甲戌(1754)의 오기이다. 셋째 아들 鄭必弘에게 답한 편지이다. 아들에게 안부를 묻고 생질인 安生의 질병과 집안의 喪事관련 소식을 알려주면서 세상일의 운수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다. 자식을 위해 백방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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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溪菴重建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가 松溪菴을 중건한 것을 기념하여 1749년(영조 25)에 작성한 記이다. 松溪菴은 龍宮縣 馬山里에 있는 東萊鄭氏 묘역의 齋舍이다. 저자는 朱子의 寒泉精舍와 徐甄의 思亭을 본받아 松溪菴을 重修하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松溪菴에는 11대조 判書公 鄭龜齡과 10대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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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溪菴重建敍事(松溪菴卽馬山齋舍)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龍宮縣 馬山에 있는 東萊鄭氏 齋舍인 松溪菴을 중건하게 된 始末을 기록한 것으로 1759년(영조 35)에 지은 글이다. 1734년(영조 10)에 族叔 鄭之鈺과 宗兄 鄭泰東이 중건계획을 세웠다. 당시 저자와 鄭之鎛은 그 일을 주관하게 되어서 주위의 문중사람들과 契를 만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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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洛厓安丈(日履)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洛厓 安日履(1661~1731)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그는 淸臺 權相一‧江左 權萬‧大山 李象靖 등과 더불어 저자와 친하게 지내는 영남 좌도지역의 인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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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都事南公(溟翮)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都事 南溟翮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南溟翮(1702∼1748)의 본관은 英陽, 자는 雲游, 호는 養閑齋이고, 南隆達의 5대손이고, 南峙衡의 아들이다. 1738년(영조 14) 문과 급제하여 承文院副正字‧禮曹正郞‧咸鏡都事 등을 역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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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郡守士元(昌順)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郡守 李昌順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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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上舍(翊夏)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鄭翊夏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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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洪戚叔(聖龜)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戚叔 洪聖龜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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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安公(守弘)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外舅 安守弘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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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妹壻安(浹)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妹壻 安浹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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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安濟卿((木曇))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安(木曇)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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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君馥(桂)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權桂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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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具子亨(與泰)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具與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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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全姪(以德)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조카 全以德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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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安上舍子仁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安子仁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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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父處士公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伯父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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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兄拙菴公(重泰)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從兄 拙菴公 鄭重泰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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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兄處士公(重恒)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從兄 鄭重恒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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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淑人順興安氏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첫째 부인 順興安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 부인은 安汝止의 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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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姪(翰龍)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從姪 鄭翰龍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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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姪(世宅)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從姪 鄭世宅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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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孫婦襄陽權氏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孫婦 襄陽權氏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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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祖考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府君墓碣 2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이 글은 저자의 5대조 鄭沚(1563~1642)의 묘갈명이다. 저자의 가계는 高麗時代 尙書左僕射太府卿을 지낸 시조 文安公 鄭穆에서 시작하여 三樹 鄭龜齡鄭雍鄭復周鄭渙鄭允奇鄭元忠으로 이어지는데 鄭元忠은 缶溪洪氏와의 사이에서 鄭湜을 낳았고, 甘泉文氏와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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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7세손 鄭玄謨가 1930년대 卑窩集 간행을 준비하면서 저자의 일생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의 字는 國瞻, 號는 卑窩, 本貫은 東萊이며, 文安公 鄭穆의 후손이다. 조선시대에 鄭龜齡‧鄭雍‧鄭渙 등 3명은 용궁의 浣潭祠에 배향된 선조들이다. 高祖는 鄭榮閈, 曾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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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族後孫 鄭誾朝가 기록한 저자의 행장이다. 내용은 저자 소개에 자세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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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1875년(고종 12) 金炳昌이 鄭玄謨의 부탁을 받고 저자의 행적을 적은 묘갈명이다. 墓碣銘을 부탁한 鄭玄謨는 鄭重岱의 曾孫인 鄭仁黙의 현손이다. 저자의 風儀는 하늘로부터 물려받아 남달랐으며, 학식은 박통하였고, 엄숙하고 정제한 가운데 돈독한 惻怛의 기운을 가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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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幷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墓誌銘은 金鴻洛(1863~1943)이 8세손 鄭鎭華의 부탁을 받고, 7세손 鄭玄謨가 지은 「遺事」를 바탕으로 저자의 행적을 표창한 글이다. 따라서 墓誌銘의 내용은 遺事와 대동소이하고,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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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輓詞 32편이 실려 있으며, 撰者는 아래와 같다. 進士 李重穆, 進士 黃羽漢, 同樞 鄭游龜, 李重和, 進士 李權, 進士 金南九, 鄭㰒, 姜載, 金鼎元, 李氵+敬, 尹德恒, 全景采, 李寅馥, 全明濟, 南以元, 朴東臣, 張漢師, 李受鼎, 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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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 13편 실려 있으며, 撰者는 아래와 같다. 李重和, 進士 李權, 進士 安鎭龜, 進士 金鳴九, 金光天, 金達采, 尹聘來, 門生 南師中, 柳氵+述, 族從 鄭之鎛, 族弟 鄭泰益, 再從弟 鄭重龜, 舍弟 鄭重岳.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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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舊酬唱 4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卑窩集에는 다른 문집과는 다르게 교우들과 주고받은 시를 모아놓은 知舊酬唱과 서찰을 모아놓은 知舊往復을 싣고 있다. 지구수창에는 무안현감으로 부임할 당시 族從 鄭錫鵬이 지어준 「赴任務安時別章」이 맨 앞에 있다. 그 외 현감 재직시 주고받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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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舊往復 5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知舊往復은 淸臺 權相一 2통‧江左 權萬 1통‧大山 李象靖 1통‧臺憲 朴文秀 1통 등 모두 5통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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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5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族6세손 鄭建模이 쓴 발문이다. 저자의 주손 鄭玄謨(1851~1923)가 유고간행을 준비하다가 사망하자 그 아들 鄭鎭華가 선지를 계승하여 간행하였다. 저자는 어려서 문제가 뛰어났고 효성이 지극하였고, 출사해서는 숙종에게 칭찬을 받았다.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백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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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5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6세손 鄭寅彦이 저자 사후 170년이 지나서 쓴 발문이다. 자신과 함께 유고를 수집하여 간행을 준비하던 7대손 鄭玄謨(1851~ 1923)가 사망하고 자신은 병이 심하여 족제 鄭寅昤이 간행을 하였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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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5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7세손 鄭瑗謨가 쓴 발문이다. 공의 덕행과 문장 그리고 孝友가 뛰어났고, 유문이 산일되어 매우 零星하다고 탄식한다. 그리고 문집을 간행할 때 향내의 士林들이 謄寫와 校勘하는 일을 찬조하였다고 특기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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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5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7세손 鄭升謨가 쓴 발문이다. 공의 유고가 수재와 화재로 인하여 거의 산실되어 책 상자에 있는 잔본과 세의가 있는 집안에 남아있는 것을 등사하여 모으고, 훌륭한 사람의 교정을 받아 2책으로 편집하고 간행한다고 적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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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5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중대저자의 7세손 鄭鎭華가 쓴 발문이다. 공의 유고를 간행하기 위하여 선인 鄭玄謨가 당대 유명한 사람들에게 행장과 묘갈명을 받아 두고 갑자기 별세하여 애통해하고 있다. 그는 선인의 뜻을 이루기 위해 族祖 鄭寅昤의 도움을 받아 4개월 만에 문집 2책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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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자유집 / 기록자료>고도서 / 정재로사무자유집(四無子遺集) 四無子 丁載老의 문집. 石印本, 序: 黃龍漢, 跋: 丁文敎, 識: 丁珠燮(1938), 2卷 1冊: 四周雙邊, 半郭 20.0×15.3㎝,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29.0×19.7㎝. 孫子인 文敎가 쓴 跋文에 의하면, 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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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정재로丹陽歸路和申持平時成(完)十絶,敬次渚谷五老宴韻奉呈權同樞(忄完), 霽後書事二首, 六月晦夜,凉生,得秋五日次從兄鶴坡翁韻, 謹次權上舍丈(正玉)人日三首, 次權碁翁(重機)李霞老(之培)遊鶻嵒韻, 野塘垂釣用明人韻, 次熙寧君御賜琴重修韻, 謾興, 上元憶京中舊事, 晩春書懷用許用晦韻, 雨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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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野朴公誄辭 5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재로朴孫慶(1713~1782)에게 올리는 誄辭이다. 字는 孝有이며, 號는 南野이고, 本貫은 咸陽이다. 醴泉 출신으로 朴成玉의 아들이다. 朴蕓·朴守緖로 이어지는 家學을 계승하였고, 李滉을 私淑하였다. 鄭玉·李象靖·金樂行·李守貞·李鎭東 등과 교유하였다. 英陵參奉과 童蒙敎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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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海左族兄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재로族兄 海左 丁範祖(1723~1801)에게 보낸 편지이다. 字는 法世이며, 號 海左이고, 本貫은 羅州이다. 1763년(영조 39)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 등용되고, 1768년(영조 44) 持平과 正言을 지낸 뒤 賜暇讀書하였다. 1785년(정조 9) 이후 大司諫‧大司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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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尹彜仲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재로尹弼秉(1730∼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字는 彝仲이며, 號는 無號庵이고, 本貫은 坡平이다. 工曹判書 以濟의 曾孫이며, 師容의 아들이다. 1765년(영조 41) 司馬試에 합격하고, 1767년(영조 4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正言·宗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