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5851

    祭權季亨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權季亨에게 올린 祭文이다. 가을 산은 수놓은 듯하고 가을 달은 서리 같은데 그대는 어디에 갔느냐고 하면서 슬픈 심정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52

    祭伯子婦權氏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白氏의 子婦인 權氏를 위해 지은 祭文이다. 우리 집안으로 시집온 지 10년 동안 갖은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집안을 다스리다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난 슬픔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53

    悼族子宇魯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族子 宇魯를 위해 지은 祭文이다. 族兄의 아들이 1798년(정조 22)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적은 글이다. 어릴 때 일찍 어머니를 잃고 어렵게 지내왔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식을 잃은 족형의 슬픔이 마치 자신의 슬픔처럼 느껴진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54

    東溟書院陞號奉安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東溟書堂이 書院으로 陞號된 뒤에 올린 奉安文이다.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襄烈公 趙仁璧(1330~1393)과 丹邱 趙靖(1555~ 1636)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96년(정조 20) 건립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855

    眉叟許先生畵像奉安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眉叟 許穆(1595~1682)의 畵像을 奉安하고 올린 글이다. 허목의 字는 文甫·和甫이고, 號는 眉叟이며, 시호는 文正이다. 縣監 許喬의 아들이자 李元翼의 손녀사위이다. 鄭逑에게 학문을 배웠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17세기 후반 2차례의 禮訟을 이끌었으며,
    출처 : 유교넷
  • 325856

    勿溪書院追享時告由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勿溪書院의 追享 때에 올린 告由文이다. 昌寧成氏 시조 成仁輔의 아들 成松國을 비롯하여 성씨 문중 21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57

    丹溪書院廟宇重建後還安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丹溪書院의 廟宇를 重建하고 올린 還安文이다. 文節公 金淡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1618년(광해군 2) 건립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858

    順興鄕校詠歸樓上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順興鄕校의 詠歸樓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59

    丹溪書院廟宇上樑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丹溪書院의 廟宇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0

    文陽里社廟宇上樑文(代本孫作)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本孫을 대신하여 文陽里社의 廟宇가 지어진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1

    道溪書院拱極樓上樑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道溪書院의 拱極樓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2

    杏溪里社廟宇重建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杏溪里社의 廟宇를 重建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3

    鑑谷書堂上樑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鑑谷書堂을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4

    登西樓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登西樓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5

    藻溪里社廟宇重建上樑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藻溪里社의 廟宇를 重建하고 올린 上樑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6

    石居亭李公行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石居亭 李澤龍(1713~1799)의 行狀이다. 字는 雲徵이고, 號는 石居亭이다. 1713년(숙종 39) 3월에 태어났으며, 1799년(정조 23) 5월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初配는 沃川全氏 必銶의 딸이고, 後配는 豐山柳氏 後東의 딸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67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成公墓碣銘(幷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成祖寅(1713~1796)의 墓碣銘이다. 본관은 昌寧이고, 字는 汝述이며, 조부는 正夏이고, 부친은 世玶이다. 芙蓉堂 安義의 玄孫으로 관직이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賢行으로 鄕黨에 稱頌을 받았다.
    출처 : 유교넷
  • 325868

    處士成公墓表 33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處士 成濰(1765~1802)의 墓表이다. 본관은 昌寧이고 字는 靑惟이며, 조부는 世玶이고 부친은 祖寅이다. 安東權氏 正興의 딸과의 사이에 후사가 없어 형의 둘째 아들인 彦楗이 뒤를 이었다.
    출처 : 유교넷
  • 325869

    宋朝諫議大夫余公墓傳疑碑銘(幷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宋나라 諫臣이었던 余善才의 碑銘으로 전해지는 바를 기록하였다. 본관은 宜寧이다. 諫議大夫로 있으면서 천자에게 직언을 하다 미움을 사 우리나라로 건너오게 되었다. 이후 고려 조정에서 宜春君에 봉하였는데 의춘은 宜寧의 옛 이름이다. 후에 世系가 失傳되어 고려 때 문과에
    출처 : 유교넷
  • 325870

    桃杯銘(幷序) 3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檜峯 權得平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눈 먼 부친이 출입을 할 때 늘 부축을 하고 다녔고, 한 겨울에 복숭아를 먹고 싶다고 하자 울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커다란 복숭아를 얻어서 병을 낮게 하였다. 후에 풍기군수가 그 복숭아씨로 술잔을 만들었으며,
    출처 : 유교넷
  • 325871

    會老臺續會序 38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1794년(정조 18) 光津 위쪽 물이 돌아 흐르는 곳에 있는 會老臺에서 黃菊이 피어있는 시기를 이용하여 다시 모임을 가지면서 지은 글이다. 비록 마음을 사로잡는 絶景은 없지만 노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하면서 어린아이가 지나가면 장난을 치고 어른이 지나가면 함께
    출처 : 유교넷
  • 325872

    景行錄後叙 4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고려시대 명장이었던 李薿의 玄孫에 대하여 전하면서 그 절개를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73

    南遊記序 4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사람들은 각자 무엇을 지나치게 즐기는 성향이 있는데, 자신은 특히 山水를 지나치게 즐기는 편이라고 하면서 小白·淸凉·周王·仁王·天磨·智異 등은 서너 번에서 대여섯 번은 올랐으며, 天淵·洛淵·錦湖·龍湖·洛江·漢江·昭陽·臨津·白馬·豆峙 등 많은 강을 배를 타고 직접 오르
    출처 : 유교넷
  • 325874

    希白堂記 42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族兄인 南厓公이 七星山 아래 平津里에 거처를 마련하고 노년을 보내고자 하였는데, 그 당호를 ‘希白'이라고 하였다고 전하면서 그 연유를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75

    復齋記 44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거처의 서쪽 산 아래에 書塾을 마련하여 ‘復齋'라 하고 지은 記文이다. 이름을 ‘復'이라 칭하게 된 까닭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76

    至樂齋重修記 4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紹修書院의 至樂齋를 중수하고 지은 기문이다. 1799년(정조 23) 成守魯와 徐祚胤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77

    日新齋記 4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紹修書院의 日新齋를 증축하고 지은 기문이다. 1804년(순조 4) 朴東元과 宋希淵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78

    養賢堂同會錄跋 48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養賢堂同會錄󰡕 跋文이다. 1783년(정조 7) 봄에 양현당에서의 모임을 다시 시작하여 명단을 적어 帖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79

    書宋氏傳世寶帖後 49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宋氏傳世寶帖󰡕 後識이다. 宋希淵이 帖을 가져와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0

    書崔竹塘追感錄後 5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崔竹塘追感錄󰡕 後識이다. 晉陽士人 崔重習이 선조인 죽당공의 遺事를 보여주며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선조 溪西公이 書狀官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글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1

    書晉孝子行蹟後 52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晉孝子行蹟󰡕 後識이다. 晉守誠이 70에 가까운 나이로 90이 넘은 부친을 업고 출입하고 겨울에 생선을 구해드리며,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해산물을 구해드리는 등 정성으로 섬긴 내용을 전하면서 5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모두가 잊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2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李仁行(1758~1833)이 1827년(순조 27) 에 쓴 저자의 行狀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3

    墓碣銘 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權璉夏(1813~1896)가 쓴 저자의 墓碣銘이고,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
    출처 : 유교넷
  • 325884

    輓詞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李仁行‧金熙紹‧李龜雲‧金熙奮‧趙宅奎‧權象度‧金熙敎‧朴時源‧徐榦發‧康儼‧李雲燮‧金永億‧徐成烈‧趙星復‧金永璜‧鄭必奎‧李攀龍 등이 쓴 輓詞가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5

    祭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權夏度‧徐榦發‧姜橒‧鄭光說‧李雲燮‧東溟儒生趙時成‧徐成烈‧權赫祖‧族子守魯‧族子百魯 등이 쓴 祭文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
    權命燮(1885~1949)‧玄孫 大源‧裔孫 漢永 등이 쓴 跋文이 실려 있다. 대대로 선조의 글을 엮어내지 못하여 한스럽게 여겼는데, 현손인 대원과 族弟인 한영이 도모하여 저자 사후 120년이 넘도록 보관되어 오던 遺文을 정리하여 문집을 편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87

    동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동거집(東渠集) 東渠 宋鼎鋎의 문집. 木版本, 序: 金世洛(1926), 跋: 金㙽(1925)‧宋啓欽, 識: 宋寅鈺,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6.3.0×20.0㎝,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0×21.0㎝. 풍산김씨 金世洛이
    출처 : 유교넷
  • 325888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送別趙文源(德洵), 女圓舞.
    출처 : 유교넷
  • 32588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龍山賦(幷序), 樂山樓賦(幷序).
    출처 : 유교넷
  • 325890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曉坐有吟, 休次退溪先生自歎韻以自警, 謹次景濂亭韻, 白雲洞三字分韻, 追慕訥隱先生, 謹次陶山韻十七絶, 巖棲軒, 玩樂齋, 幽貞門, 淨友塘, 節友杜, 隴雲精舍, 時習齋, 止宿寮, 觀瀾軒, 谷口巖, 天淵臺, 天光雲影臺, 濯纓潭, 盤陀石, 東翠屛, 西翠屛, 幽居遣興, 朝坐有懷,
    출처 : 유교넷
  • 325891

    上訥隱李先生(光庭) 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訥隱 李光庭(1764~1756)에게 올린 편지이다. 잡다한 世事로 배움에 매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892

    上訥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이광정에게 올린 편지로, 이전에 부탁한 바 있던 자신의 선조 묘갈문을 아직 받지 못하여 다시 간청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893

    答鄭牛川(玉) 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牛川 鄭玉(1694∼1760)에게 답한 편지로, 海西에 지방관으로 파견된 수신인에게 목민관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당부하면서, 해서의 실제 풍물이 자신이 東史를 통해 알고 있는 지식과 비교하여 어떤지 궁금함을 나타내었다.
    출처 : 유교넷
  • 325894

    與權平庵 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平庵 權正忱(1710~1767)에게 보낸 편지로, 수신인을 위시하여 여러 동문들이 함께 독회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정해 모였는데, 자신은 어버이 모시는 일로 동참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동문들이 무슨 책,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25895

    與丁海左(範祖) 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海左 丁範祖(1723~1801)에게 보낸 편지로, 先代의 묘도 문자를 청하는 내용인데, 간략하면서도 語勢가 매우 정중하다.
    출처 : 유교넷
  • 325896

    答金雙巖(埅) 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雙巖 金埅(1706~1778)에게 답한 편지로, 지방관으로 파견된 벗에게 목민관으로서의 절목을 일러주어 遵行하기를 권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897

    與李若天 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下枝 李象辰(1710~1772)에게 보낸 편지로, 일찍이 磨崖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켜지지 못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98

    與李陰城(世述) 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陰城현감 李世述(1731~?)에게 보낸 편지로, “옛날 이천선생이 말씀하기를, 관리의 자리에 앉아서 淸‧愼‧勤 세 가지를 지키는 자라면 몸가짐을 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목민관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899

    與朴南野 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南野 朴孫慶(1715~1785)에게 보낸 편지로, 편집한 여러 기록이 방대하고 심오하다고 들었는데, 世事에 바쁘다가 보니 직접 베껴올 형편이 못되므로, 대신 등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900

    上外舅潛軒琴公 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아들, 곧 수신인의 외손자를 맡아서 訓誨해 주기를 부탁하는 서신이다.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