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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季亨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權季亨에게 올린 祭文이다. 가을 산은 수놓은 듯하고 가을 달은 서리 같은데 그대는 어디에 갔느냐고 하면서 슬픈 심정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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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子婦權氏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白氏의 子婦인 權氏를 위해 지은 祭文이다. 우리 집안으로 시집온 지 10년 동안 갖은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집안을 다스리다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난 슬픔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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悼族子宇魯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族子 宇魯를 위해 지은 祭文이다. 族兄의 아들이 1798년(정조 22)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적은 글이다. 어릴 때 일찍 어머니를 잃고 어렵게 지내왔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식을 잃은 족형의 슬픔이 마치 자신의 슬픔처럼 느껴진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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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溟書院陞號奉安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東溟書堂이 書院으로 陞號된 뒤에 올린 奉安文이다.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襄烈公 趙仁璧(1330~1393)과 丹邱 趙靖(1555~ 1636)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96년(정조 20) 건립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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眉叟許先生畵像奉安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眉叟 許穆(1595~1682)의 畵像을 奉安하고 올린 글이다. 허목의 字는 文甫·和甫이고, 號는 眉叟이며, 시호는 文正이다. 縣監 許喬의 아들이자 李元翼의 손녀사위이다. 鄭逑에게 학문을 배웠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17세기 후반 2차례의 禮訟을 이끌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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勿溪書院追享時告由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勿溪書院의 追享 때에 올린 告由文이다. 昌寧成氏 시조 成仁輔의 아들 成松國을 비롯하여 성씨 문중 21현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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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溪書院廟宇重建後還安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丹溪書院의 廟宇를 重建하고 올린 還安文이다. 文節公 金淡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1618년(광해군 2) 건립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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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興鄕校詠歸樓上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順興鄕校의 詠歸樓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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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溪書院廟宇上樑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丹溪書院의 廟宇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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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陽里社廟宇上樑文(代本孫作)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本孫을 대신하여 文陽里社의 廟宇가 지어진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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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溪書院拱極樓上樑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道溪書院의 拱極樓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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杏溪里社廟宇重建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杏溪里社의 廟宇를 重建하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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鑑谷書堂上樑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鑑谷書堂을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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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西樓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登西樓를 지은 뒤에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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藻溪里社廟宇重建上樑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藻溪里社의 廟宇를 重建하고 올린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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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居亭李公行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石居亭 李澤龍(1713~1799)의 行狀이다. 字는 雲徵이고, 號는 石居亭이다. 1713년(숙종 39) 3월에 태어났으며, 1799년(정조 23) 5월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初配는 沃川全氏 必銶의 딸이고, 後配는 豐山柳氏 後東의 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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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成公墓碣銘(幷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成祖寅(1713~1796)의 墓碣銘이다. 본관은 昌寧이고, 字는 汝述이며, 조부는 正夏이고, 부친은 世玶이다. 芙蓉堂 安義의 玄孫으로 관직이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賢行으로 鄕黨에 稱頌을 받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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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成公墓表 33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處士 成濰(1765~1802)의 墓表이다. 본관은 昌寧이고 字는 靑惟이며, 조부는 世玶이고 부친은 祖寅이다. 安東權氏 正興의 딸과의 사이에 후사가 없어 형의 둘째 아들인 彦楗이 뒤를 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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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朝諫議大夫余公墓傳疑碑銘(幷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宋나라 諫臣이었던 余善才의 碑銘으로 전해지는 바를 기록하였다. 본관은 宜寧이다. 諫議大夫로 있으면서 천자에게 직언을 하다 미움을 사 우리나라로 건너오게 되었다. 이후 고려 조정에서 宜春君에 봉하였는데 의춘은 宜寧의 옛 이름이다. 후에 世系가 失傳되어 고려 때 문과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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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杯銘(幷序) 3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檜峯 權得平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눈 먼 부친이 출입을 할 때 늘 부축을 하고 다녔고, 한 겨울에 복숭아를 먹고 싶다고 하자 울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커다란 복숭아를 얻어서 병을 낮게 하였다. 후에 풍기군수가 그 복숭아씨로 술잔을 만들었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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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老臺續會序 38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1794년(정조 18) 光津 위쪽 물이 돌아 흐르는 곳에 있는 會老臺에서 黃菊이 피어있는 시기를 이용하여 다시 모임을 가지면서 지은 글이다. 비록 마음을 사로잡는 絶景은 없지만 노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하면서 어린아이가 지나가면 장난을 치고 어른이 지나가면 함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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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行錄後叙 4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고려시대 명장이었던 李薿의 玄孫에 대하여 전하면서 그 절개를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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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遊記序 4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사람들은 각자 무엇을 지나치게 즐기는 성향이 있는데, 자신은 특히 山水를 지나치게 즐기는 편이라고 하면서 小白·淸凉·周王·仁王·天磨·智異 등은 서너 번에서 대여섯 번은 올랐으며, 天淵·洛淵·錦湖·龍湖·洛江·漢江·昭陽·臨津·白馬·豆峙 등 많은 강을 배를 타고 직접 오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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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白堂記 42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族兄인 南厓公이 七星山 아래 平津里에 거처를 마련하고 노년을 보내고자 하였는데, 그 당호를 ‘希白'이라고 하였다고 전하면서 그 연유를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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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齋記 44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거처의 서쪽 산 아래에 書塾을 마련하여 ‘復齋'라 하고 지은 記文이다. 이름을 ‘復'이라 칭하게 된 까닭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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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樂齋重修記 46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紹修書院의 至樂齋를 중수하고 지은 기문이다. 1799년(정조 23) 成守魯와 徐祚胤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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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新齋記 4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紹修書院의 日新齋를 증축하고 지은 기문이다. 1804년(순조 4) 朴東元과 宋希淵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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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賢堂同會錄跋 48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養賢堂同會錄 跋文이다. 1783년(정조 7) 봄에 양현당에서의 모임을 다시 시작하여 명단을 적어 帖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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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宋氏傳世寶帖後 49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宋氏傳世寶帖 後識이다. 宋希淵이 帖을 가져와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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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崔竹塘追感錄後 5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崔竹塘追感錄 後識이다. 晉陽士人 崔重習이 선조인 죽당공의 遺事를 보여주며 글을 청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선조 溪西公이 書狀官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기록한 글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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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晉孝子行蹟後 52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晉孝子行蹟 後識이다. 晉守誠이 70에 가까운 나이로 90이 넘은 부친을 업고 출입하고 겨울에 생선을 구해드리며,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해산물을 구해드리는 등 정성으로 섬긴 내용을 전하면서 5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모두가 잊고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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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李仁行(1758~1833)이 1827년(순조 27) 에 쓴 저자의 行狀이다. 자세한 내용은 글 앞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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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權璉夏(1813~1896)가 쓴 저자의 墓碣銘이고, 내용은 行狀과 비슷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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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李仁行‧金熙紹‧李龜雲‧金熙奮‧趙宅奎‧權象度‧金熙敎‧朴時源‧徐榦發‧康儼‧李雲燮‧金永億‧徐成烈‧趙星復‧金永璜‧鄭必奎‧李攀龍 등이 쓴 輓詞가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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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權夏度‧徐榦發‧姜橒‧鄭光說‧李雲燮‧東溟儒生趙時成‧徐成烈‧權赫祖‧族子守魯‧族子百魯 등이 쓴 祭文이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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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성언근權命燮(1885~1949)‧玄孫 大源‧裔孫 漢永 등이 쓴 跋文이 실려 있다. 대대로 선조의 글을 엮어내지 못하여 한스럽게 여겼는데, 현손인 대원과 族弟인 한영이 도모하여 저자 사후 120년이 넘도록 보관되어 오던 遺文을 정리하여 문집을 편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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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동거집(東渠集) 東渠 宋鼎鋎의 문집. 木版本, 序: 金世洛(1926), 跋: 金㙽(1925)‧宋啓欽, 識: 宋寅鈺, 4卷 2冊: 四周雙邊, 半郭 16.3.0×20.0㎝,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0×21.0㎝. 풍산김씨 金世洛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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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送別趙文源(德洵), 女圓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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賦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龍山賦(幷序), 樂山樓賦(幷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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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曉坐有吟, 休次退溪先生自歎韻以自警, 謹次景濂亭韻, 白雲洞三字分韻, 追慕訥隱先生, 謹次陶山韻十七絶, 巖棲軒, 玩樂齋, 幽貞門, 淨友塘, 節友杜, 隴雲精舍, 時習齋, 止宿寮, 觀瀾軒, 谷口巖, 天淵臺, 天光雲影臺, 濯纓潭, 盤陀石, 東翠屛, 西翠屛, 幽居遣興, 朝坐有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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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訥隱李先生(光庭) 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訥隱 李光庭(1764~1756)에게 올린 편지이다. 잡다한 世事로 배움에 매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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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訥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이광정에게 올린 편지로, 이전에 부탁한 바 있던 자신의 선조 묘갈문을 아직 받지 못하여 다시 간청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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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牛川(玉) 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牛川 鄭玉(1694∼1760)에게 답한 편지로, 海西에 지방관으로 파견된 수신인에게 목민관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를 당부하면서, 해서의 실제 풍물이 자신이 東史를 통해 알고 있는 지식과 비교하여 어떤지 궁금함을 나타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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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平庵 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平庵 權正忱(1710~1767)에게 보낸 편지로, 수신인을 위시하여 여러 동문들이 함께 독회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정해 모였는데, 자신은 어버이 모시는 일로 동참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동문들이 무슨 책,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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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丁海左(範祖) 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海左 丁範祖(1723~1801)에게 보낸 편지로, 先代의 묘도 문자를 청하는 내용인데, 간략하면서도 語勢가 매우 정중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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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雙巖(埅) 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雙巖 金埅(1706~1778)에게 답한 편지로, 지방관으로 파견된 벗에게 목민관으로서의 절목을 일러주어 遵行하기를 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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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若天 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下枝 李象辰(1710~1772)에게 보낸 편지로, 일찍이 磨崖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켜지지 못하여 안타까운 심정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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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陰城(世述) 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陰城현감 李世述(1731~?)에게 보낸 편지로, “옛날 이천선생이 말씀하기를, 관리의 자리에 앉아서 淸‧愼‧勤 세 가지를 지키는 자라면 몸가짐을 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목민관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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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南野 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南野 朴孫慶(1715~1785)에게 보낸 편지로, 편집한 여러 기록이 방대하고 심오하다고 들었는데, 世事에 바쁘다가 보니 직접 베껴올 형편이 못되므로, 대신 등사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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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外舅潛軒琴公 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자신의 아들, 곧 수신인의 외손자를 맡아서 訓誨해 주기를 부탁하는 서신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