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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5901

    與李大山(象靖) 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大山 李象靖(1711~1781)에게 보낸 편지로, 예법과 관련한 질문이다. 자신의 선조 京山子의 祧埋 시기가 당도하여 마땅히 산소에 위패를 묻어야겠지만, 산소가 멀리 계시므로 權度로 訥齋 宋碩忠(영주 입향조임) 선조 묘역의 깨끗한 장소에 設壇을 하고 예를 갖추어 지내
    출처 : 유교넷
  • 325902

    附大山答書 7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위의 「與李大山」에 대한 이상정의 답장이다. “朱夫子가 일찍이 말씀하기를 ‘묘소가 멀면 깨끗한 곳에 묻는다’고 했으니, 지금 생원공 묘역에 埋安하는 일이 미안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設壇行祀의 논의는 이런 사례가 있는지 師友들 사이에서 널리 문의해
    출처 : 유교넷
  • 325903

    答全姑叔(必錡) 7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全必錡에게 보낸 답장으로, 눌은선생이 覺華寺에서 강학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8, 9일을 모시면서 조부의 행장을 부탁하고 돌아왔을 뿐, 학문과 관련해서는 별무소득이었다고 소회했는데, 이 때 눌은선생은 退溪先生 逸集을 교열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325904

    與全從希源金有甫伊山任席 8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이 伊山書院의 원임을 맡았던 시절에 도산서원에서 판각한 󰡔理學通錄󰡕을 인출해 오기 위하여 종이와 비용을 준비했다가 갑자기 任所에서 종이를 다른 용도에 쓰는 바람에 이루지 못했던 과거사를 언급하면서, 새로 이산서원의 원임으로 선임된 두 사람에게 이 일을 반드시
    출처 : 유교넷
  • 325905

    與崔載興 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崔載興에게 보낸 편지로, 공부에는 차례가 있고 진도에는 단계가 있어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 높은 경지에 닿을 수 있는 것이지, 獵等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후배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906

    與洪仲厚(載) 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洪載에게 보낸 편지로, 淸臺 權相一을 찾아가 공부해 보자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07

    與內從李(寅泰寅恊) 10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李寅泰‧李寅恊에게 보낸 편지로, 두 외사촌 아우에게 절차에 따라 차근차근 공부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퇴계집󰡕은 선배들이 󰡔주자서󰡕에 비길 정도로 문호가 넓고도 초학에게는 친절하므로 잠심하여 읽을 것을 아울러 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908

    與洪德保(大容) 1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德保 洪大容(1731~1783)에게 보낸 편지로, 수신자의 공부가 周羅博採의 기습이 있는 듯하므로, 그러한 기풍을 경계하고 절차에 따라 부지런히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09

    與趙文源 1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趙德洵에게 보낸 편지로, 한 번 만나서 잠깐 수작한 사이지만 상대방의 志氣가 고매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를 치하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10

    與崔穉楷(範興,居京) 1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崔範興에게 보낸 편지로, 부질없이 工令의 말단에서 애쓰지 말고 心身의 간절한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11

    與黃文仲(裳,居鐵原) 1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黃裳에게 보낸 편지로, 의리는 무궁하므로 자족하지 말고, 세월은 한도가 있는 것이므로 자만하지 말고 나아가고 나아가는 것을 그치지 말고, 힘쓰고 힘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25912

    與三弟仲通(鼎鉉) 1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宋鼎鉉(1715~1751)에게 보낸 편지로, 간편함에 안주하여 참된 지식과 실천을 생각하지 않는 자세와 괜히 시일을 허비하면서 志向을 독실히 하고 힘써 행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극력 경계하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13

    自警箴 1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늘 배우는 자세를 견지하기 위하여 자신을 경계시키는 글이다. “하늘이 인간을 낼 때 네 가지 德을 부여하는데, 聖人이라고 하여 풍성하게 하지 않고, 어리석은 이라고 하여 인색하게 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고 백치가 되는 것은 오직 배우느냐 배우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는
    출처 : 유교넷
  • 325914

    送金雙巖赴慈仁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1735(영조 11) 정언 벼슬을 지낸 金埅이란 분이 90세 된 노모를 모시고 백수로 살아가는데 끼니를 잘 잇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영조가 처음 親政을 시작하면서 이 말을 듣고 즉시 그에게 慈仁縣監을 제수하라고 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영남인들은 白衣로는 竹
    출처 : 유교넷
  • 325915

    金永立禮仲字序 1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金幼源이 그 아들의 이름을 ‘永立’이라 하고 字를 지어주기를 부탁했다. 이에 ‘立’자를 󰡔논어󰡕 장구의 ‘立於禮’와 결부시켜서 ‘禮仲’이라 作字하여, ‘예’자의 의미를 여러 경구와 역사 사례에 비의하여 풀었다.
    출처 : 유교넷
  • 325916

    洪述彦大原字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洪述彦이 字를 지어줄 것을 청하므로 大原이라고 지어 주었는데, 그 뜻은 道의 大原이 하늘에서 나와 사람에게 깃들어, 안으로 어버이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밖으로 임금께 충성하고 윗사람에게 겸손한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러한 뜻이 가장 핍진하게 구현된 서적이 바
    출처 : 유교넷
  • 325917

    宗會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先祖 訥齋 宋碩忠이 처음 영주에 터를 잡은 뒤 자손들이 영주와 예천 일대에 세거해 온 것이 10세에, 世代가 멀어져 親疎와 慶弔의 예법이 맞지 않고 회합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이를 우려하여 一家間 敦睦을 제고하기를 제청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18

    觀瀾書院重修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1647년(인조 25) 仁山縣의 선비들이 縣令 孫公과 협의하여 일찍이 晦齋 李彦迪(1491~ 1553)이 命名하고 발걸음이 미쳤던 觀瀾臺에 회재 이언적을 향사하는 觀瀾祠를 세운 바 있다. 1759년(영조 35)에 김방이 이곳 현감이 되었을 때 원우가 심하게 퇴락되었으
    출처 : 유교넷
  • 325919

    槐洞齋舍記 20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선조 송석충의 묘 아래에 있던 재사가 협착하여 이를 중건하고, 이 일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20

    晩對亭重修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晩對亭은 자신의 傍先祖 生員公이 만년에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인데, ‘晩對’는 본래 杜甫의 시구에서 나온 것이지만 朱子가 그 의미를 정립하고 퇴계선생도 주자를 흠모한 뜻을 부친 바 있는 것으로, 시인묵객의 空淡慢詠과는 다른 것임을 밝혔다. 생원공의 손자대에 여섯 분이
    출처 : 유교넷
  • 325921

    觀德堂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鐵山 자락에 射亭을 짓고 德音을 청하기에, 활을 쏠 때 한 번 당기고 한 번 놓는 절도를 益稷과 孔子와 文武의 道에 결부시켜 부연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22

    鄕校食樓落成時題名記 2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1759년(영조 35) 李在가 영주군수로 부임하여, 이미 퇴락하여 무너진 향교의 食樓와 東‧西寮를 새로 지어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이 때 군수가 직접 󰡔소학󰡕을 펼쳐 明倫篇 祭儀章을 직접 읽고 報本追遠의 의미를 강론하였다. 그리고 제생들에게 순서대로 읽게 하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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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23

    陶山書院從遊錄後識 2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1774년(영조 50) 자신이 도산서원 재임이 되어 알묘를 했는데, 다음 날 敦令府知事와 同樞府知事 및 본손 수십여 인이 와서 모며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 모임을 ‘靑春白髮會’라 명명하였다. 이 글은 이 모임을 기념하기 위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25924

    三峯書院同遊錄後識 27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1774년(영조 50)에 洪拱汝‧金器甫‧全希源‧李爾信‧李幼源‧金器應‧金儀伯‧金子開‧琴某‧金雙巖‧渴睡翁‧反浦 등의 여러 벗들과 함께 삼봉서원에서 이틀 동안 시주로 즐긴 후, 다음 날 십여 인이 이산서원까지 걸어서 저녁에 당도하였다. 함께 참여한 분들이 모두 칠십 팔십이
    출처 : 유교넷
  • 325925

    癡白庵閔先生墓表後敍 28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癡白庵 閔先生의 道學과 文章이 근래 사림의 宗匠이라는 말씀을 들은 바 있는데, 돌아가신 후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우연히 선생의 증손을 만나서 羅滄州가 지은 묘표를 얻어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선생의 도학과 문장과 아름다운 말씀과 선행 등이 선친
    출처 : 유교넷
  • 325926

    檜原孔氏族譜後敍 2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慈仁縣에 갔다가 縣西 馬山村에 孔氏 집안이 예닐곱 집이 있어 그 본관의 소종래를 물었더니, 자신들의 鼻祖가 元朝 翰林學士로 諱가 紹인데, 공자의 53세 손으로 공민왕이 원나라로부터 돌아올 때 시종해 온 분이라고 소개했다. 공민왕이 檜原君에 봉하여 본관을 회원으로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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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27

    社稷壇祈雨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社稷의 神은 霜露와 風雨를 받아 천지의 기운에 도달하게 하는 역할을 함에 따라 衣食의 源泉을 관장한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따라서 우리 백성들이 신을 우러러 모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도 우리 백성이 아니라면 의지가 없을 것이니, 하루 바삐 비를 내리게 하여 유래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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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28

    祭訥隱李先生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英祖代에 영남의 대문호로 명성을 드날렸던 訥隱 李光庭(1674~1759)의 제문이다. 醇朴 영걸스러운 풍도와 珍重 介潔한 인격, 박학과 達辭의 식견과 문장으로 인물됨을 표현하여 기리고, 1742년(영조 18) 7월 旣望, 東龜臺 달놀이가 있던 날 처음으로 배알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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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29

    祭朴執義(弘儁)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는 子毅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1735년 문과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여 司諫을 지낸 朴弘儁을 곡하는 제문이다. 이웃에서 아버지처럼 섬기던 분이 유명을 달리한 데 대한 애석한 심정을 곡진하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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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0

    祭李釣隱(世澤)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는 孟胤이고, 본관 眞寶이다. 1753년(영조 29) 문과 庭試에 乙科로 급제, 平市奉事와 홍문관과 의금부의 여러 관직을 거쳐 亞卿에까지 이른 李世澤(1716~1777)의 大祥을 맞이하여 지은 제문이다. 이세택은 難進易退하여 漁釣와 耘耕으로 山水間을 소요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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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1

    梅陰羅先生贈爵焚黃時祭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梅陰 羅以俊(1602~1676)이 사후 副提學의 증직을 배수할 당시, 焚黃할 때 지은 제문이다. 나이준의 자는 宅于‧鳳瑞이고, 호가 梅陰이며, 본관은 壽城이다. 1646년(인조 24) 明經科에 올라 三司의 관직을 두루 거쳐 應敎에 이르렀다. 仁祖 병자호란 당시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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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2

    祭菊軒金公(始烈)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菊軒 金始烈의 대상 때 지은 제문이다. 김시열은 禮安金氏 文節公 金淡의 후손으로 늦게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만족하면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詩酒에 흥을 붙이고 밭두둑에 구기자와 국화를 심어 그 사이에서 소요하였다. 향당 선배로 글 지은이의 아버지와 숙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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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3

    祭內舅李公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外叔이 죽었을 때 지은 제문이다. 外叔은 眞城李氏 松溪 李亨男의 현손으로 가학의 정맥을 이어 사우들이 推服하고 향당의 모범이 되었으며, 時風의 末俗을 싫어하여 竹杖芒鞋로 산수 간을 소요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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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4

    祭金上舍周彦(邦翰)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과 동갑으로 절친하게 지내던 金邦翰이 죽어 이를 곡하는 제문이다. 당시 자신과 함께 영주에서 생활하던 동갑 제배의 수가 육칠십 여인으로 많았는데 거의 다 돌아가고, 남은 분들도 혹은 늙고 병들어 출입을 할 수 없거나 혹은 칩거하여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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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5

    祭金應甫(弘運)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동갑으로 가장 친하게 지내던 벗 가운데 한 사람인 김홍운이 갑자기 죽어 이를 곡하는 제문이다. 두 사람의 우의에 대하여 당시에 ‘仲和(東渠 자신) 가는 데는 應甫가 있고 응보가 노는 데는 중화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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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6

    祭晩農軒趙向卿(葵陽)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趙葵陽(1706~1776)은 字가 向卿이고, 號가 晩農軒 혹은 鈍巖이며, 본관은 漢陽이다. 醴泉에 살았다. 재주와 문장에 뛰어나 경향에 명성을 떨쳤다. 伯邑考가 아버지 文王보다 먼저 죽었고, 程伯子가 아버지 太中보다 먼저 죽었으나 효자로 칭송되는 데에 비겨, 칠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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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7

    祭娣兄全美淑(必金+南) 3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妹夫 全必金+南이 죽어서 이를 애통하게 여겨 지은 제문이다. 일찍이 처남과 매부의 관계로 맺어져 책상을 이어 공부하고 花朝月夕에 論質하던 일을 회상하고, 늦게 鶴岑 북쪽에 우거하여 늙도록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공부에 독실하다고 칭찬하였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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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8

    祭內從兄李公(命福)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외사촌 李命福이 돌아간 몇 년 뒤에 옛 시절을 그리면서 쓴 제문이다. 빼어난 자질과 勤儉에도 불구하고 성취는 書劍을 이루지 못하고 수명도 누리지 못하였지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자별하였고 어린 시절 자신의 행동거지를 경계하고 깨우쳐 준 점 등을 회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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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39

    祭外舅潛軒琴公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장인 潛軒 琴必恒을 곡하는 제문이다. 그의 인격은 정대하고 화기롭고 후덕하였으며 항상 서책을 펴서 독서 잠심하되 명리의 학문에도 밝았으니 蘆峯 金湞은 “이 노인은 당세의 현인으로 그 학문을 배우고 그 행동을 본받는 것이 바로 자식의 도리이다.”라고 했고, 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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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0

    祭姑叔忍庵權公(龍燮)文 43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고모부 權龍燮을 죽음을 애통해하는 제문이다. 그는 순숙한 鴻儒碩德으로, 어릴 적부터 聲譽가 자자했고 병으로 앓고 있을 때조차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고향에 집을 새로 짓고 어버이의 뜻을 받드는 한편, 󰡔심경󰡕·󰡔근사록󰡕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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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1

    祭李濟卿(綵)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동서 李綵의 죽음을 애통해하여 쓴 제문이다. 그는 松齋 李堣 선생의 후손으로 가학의 정맥을 계승하고 순아한 자질을 품수하여 배움에 독실하였다 한다. 향시에는 연거푸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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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2

    辛卯十一月告廟文(1771,幷序) 4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甲年에 사당에 고한 告由文이다. 序文에 선친 生時에 자신의 체질이 나약하고 질병이 잦은 것을 염려하여 인간으로서 中壽만 기약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하면서 경계하기를 정력을 삼가 허비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말씀을 항상 戒懼하여 ‘愼攝調護’ 네 글자를 평생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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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3

    漣川縣監菊軒金公墓誌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菊軒 金始烈(1702~1766)의 자는 亨則이고, 본관은 禮安이며, 金淡의 9세손이다. 道薦으로 參奉이 되고 1761년(영조 37)에 奉列大夫로 승직하였다. 宗廟署直長, 漢城參軍, 司憲府監察을 거쳐 1765년(영조 41) 漣川縣監이 되었다. 1766년(영조 42)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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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4

    潛軒琴公墓誌銘(幷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潛軒 琴必恒(1694~1746)의 자는 子久이고, 본관은 奉化이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다가 1744년(영조 20) 51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독서를 즐겼으나, 관직에 나가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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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5

    處士裴公(是禧)墓誌銘(幷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裵是禧(1691~1737)의 자는 亨甫, 본관은 達城이다. 자신의 장인과 동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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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6

    族大父同樞公(世標)墓誌銘(幷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宋世標(1664~1749)의 자는 爾則이다. 壽職으로 僉知中樞府事를 배수하고 몇 년 뒤 다시 同知中樞府事와 三世追榮의 은혜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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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7

    三弟鼎鉉墓誌銘(幷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宋鼎鉉(1715~1751)의 자는 仲通이고, 자신의 남매 5男 2女 가운데 3男이다. 재질이 뛰어났으나 3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므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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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5948

    亡室宜人鳳城琴氏墓誌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자신의 아내 奉化琴氏(1711~1773)의 묘지명으로 향년 63세이다. 婦德이 매우 고상했으며 아들 셋을 두었는데, 각각 鶴沙 金應祖의 현손 金瑞白의 딸과 공주이씨 李遠榮의 딸과 晩翠堂 金士元의 5대손 金守禧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949

    祖考三省齋府君家狀 11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三省齋 宋萬宗(1636~?)의 자는 君式이다. 1665년(현종 6) 부친상을 당한 뒤로 매일 세 번 어머니를 문후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호를 三省齋라고 하였다. 戊申亂 때 원근 인사들이 겁을 먹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나학천과 논의하여 창의하려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25950

    先考南牎府君家狀 14 / 기록자료>고도서 / 송정환
    宋最基(1684~1755)의 자는 善卿이다. 향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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