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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001
答柳燁如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柳晦文(1758~1818)에게 보낸 간찰이다. 아우와 백모가 잇달아 돌아가신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김양원, 강익주 등과 학문을 같이 논할 만 하다고 하였다. 장연에 유배되었을 당시의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6002
答金伯雍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金熙紹에게 보낸 답장이다. 집안의 예와 관한 분쟁은 東巖集‘疑禮’條를 따라 기년복을 입고 심상 삼년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혹자는 通典 庾純의 논의에 따라 父祖의 차이가 없이 삼년으로 같이한다는 설을 가지고 斬衰 삼년복을 입게 하고자 하지만, 承重의 경출처 : 유교넷 -
326003
與金伯雍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柳侍讀이 여러 번 召命을 어겼으니 미안하다고 하고 지난번 石泉會에서 취죽옹, 갈천과 같이 다음 번 강회를 열어 만나자고 하였으나 이미 각각 하늘로 갔으니 인사가 더욱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04
答金公穆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葛川 김희주에게 보낸 서한이다. 임병록을 집사와 같이 교감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소초에도 같이 들어갔으나 異論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비답과 연설이 같이 수록되었으니 기사의 체제가 적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상소, 비답, 연설의 순으로출처 : 유교넷 -
326005
與金公穆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지난날 논의가 溪院(三溪書院)에서 새로 간행하는 근사록에 特旨御製序를 편차하는 것에 대하여 이르렀다. 그대의 주장은 모두에 배치하자고 상세히 말하였는데 자신의 의견도 이와 같지만 특지의 말이 매우 간단하니 판본일 경우 본문의 글자 크기로 하면 반 장에도 미치지출처 : 유교넷 -
326006
與丁美庸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정약용에게 보낸 서한이다. 만난 지 20년이 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정약용이 해배되었던 1820년대의 서한이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생활을 소재 노수신의 19년 귀양살이에 비교하면서 강진생활에서 정약용의 학문이 큰 진전이 있었다고 극찬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07
與蔡爾叔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채홍원에게 보낸 서한이다. 채제공의 번암집 간행이 이루어졌음을 축하하였다. 채홍원이 이전에 보낸 서한에 문집의 간행에 도움을 준 분들을 비를 세워 드러내겠다고 하였으나, 문집은 이미 정조대에 정조가 손수 교정본 것이 있었으므로 변동할 수 없는 것이며, 둘째로는출처 : 유교넷 -
326008
與蔡爾叔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앞의 서한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채홍원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봉정사에 비를 세우는 것은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봉정사는 채제공의 번암집을 간행한 곳이다.출처 : 유교넷 -
326009
與李際可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俛齋 李永運(1766~1841)에게 보낸 서한이다. 노림서원에서의 회의 결과를 언급하고, 서원의 배향은 사림에서 먼저 의논하고 조정에 아뢰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조가 떨친 가르침을 우리 무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하면서 문집의 간행이 속히 이루어출처 : 유교넷 -
326010
與廣瀨族叔(野淳)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廣瀨 李野淳(1755~1831)에게 보낸 서한이다. 경사와 참상이 교차한 것에 대하여 한편으로 위문하며, 한편으로는 축하하였다. 출처를 이미 염두에 두고는 있다고 알고 있지만 한 번 숙배하고 내려가는 것이 隨時의 뜻이 아닌가 권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11
答金舜叟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金熙奮(1760~1822)에게 보낸 답신이다. ‘군자는 사람을 사랑함에 덕으로 하여야 한다’는 말에 대하여 자신은 소장년 시절에 10여 년 동안 잘못 나가 어진 친구와 서로 절차탁마하지 못하였으니 근본이 없다고 겸양하였다. 보내 주신 말씀은 警策하는 것으로 알겠다고출처 : 유교넷 -
326012
與柳士鉉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鶴棲 柳台佐(1763~1837)에게 보낸 서한이다. 자신은 한직으로 옮겼음을 전하고 외직에 나가 수고하는 류이좌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서한 중에 등장하는 叔明은 金熙洛(1761~1803)이다. 말미에 從氏가 만금을 버리고 강산에 누워 노니는 것이 부럽다고 하였는데 從출처 : 유교넷 -
326013
與李友文(羲發)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이희발(1768~1849)에게 보낸 서한이다. 嶺蹟에 처음 들어간 것이 1,700명인데, 임금께서 현인이 많이 들어간 것을 극찬하였으며, 김희락 등 여러 사람이 軍器寺 회중에서 일을 하였으니 이는 영남의 큰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 우암 李世憲, 자암 李民寏출처 : 유교넷 -
326014
答趙奎應(星復)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鶴坡 趙星復(1771~1830)에게 보낸 답장이다. 백수로 聽鐘之行을 하였다 하였고, 西行할 당시 한 친지를 만났는데 손을 잡고 위로하는 것이 친아들과 조카를 대하는 것과 같았다고 하였다. 보내주신 편지에 비유하기를 사람이 윤리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나 이는 지나출처 : 유교넷 -
326015
答趙(錫稷岐然)子希(承洙)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可畦 趙翊과 초은‧연천 등 풍양조씨 선조의 문집 서문을 부탁한 조승수‧조석직 등에 보낸 답신이다. 보내 주신 문고와 행적 등 여러 책을 도착하는 대로 바로 돌려보내는 것은 매우 미안하니 책상 위에 두고 보다가 다 읽으면 돌려 드리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16
與權士用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權洛度에게 보낸 서한이다. 자신의 신병이 있어 거동이 힘들다고 하고, 栢麓의 刊役은 어디 정도 되었는지 물었다. 또한 일전에 洪公이 찾아와 梅軒公의 비갈을 부탁하여 대략 적어 보내니 卯谷의 노형이 고쳐 주었으면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17
答尹侯(匡烈)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수령인 尹匡烈에게 보낸 서한이다. 기문을 쓰라는 요청을 수락한다고 하였고, 月會가 언제 열릴 지 문의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18
答權周甫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星圃 權補(1765~?)에게 보낸 답신이다. 보내온 편지에 풍월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로 止詩하기를 권한 것에 대하여 오히려 그대가 시에 너무 빠진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權補는 필자인 이인행과 절친한 사이로 1789년(정조 13) 式年試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1791출처 : 유교넷 -
326019
答族祖(師侗)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족조 李師侗에게 보낸 답신이다. 근래 종문에서 벼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하고, 근년에 기복, 대소공의 상을 입은 것이 네 번이나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벼슬을 하는 것은 본심이 아니며, 揚淸激濁之論은 세상에 일 만들기 좋아출처 : 유교넷 -
326020
答金逸少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金永義에게 보낸 답신이다. 이인행이 유배되었을 때의 것으로 자신이 移配되었음을 전하였고, 편지를 보내 위로해 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21
與金叔一(永範)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金永範(1772~1838)에게 보낸 서한이다. 듣자니 左揆疏에 영남인을 調用하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비록 本藁는 보지 못하였으나 서북인들과 같이 본다는 것은 헛된 말로 위로하는 것이니 그 모습이 매우 가볍다고 탄식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22
與鳳停刊所諸公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번암집판각을 위하여 봉정사 간역소에 보낸 서한이다. 교감의 예는 줄이는 것은 있어도 늘이는 것은 없다는 말은 타당하며, 번거롭고 남는 부분은 채홍원과 상의하여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별로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 아닌 부분은 繕寫시에 참작하여 정출처 : 유교넷 -
326023
答柳宣則(魯文)耳仲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柳魯文과 柳鼎文(1782~1839)에게 보낸 답신이다. 두 사람의 부친의 안부를 묻고 부친의 슬하에서 학문에 진전이 있기를 바랐다. 위로하는 편지를 보내준 것에 감사를 드리고 자신은 유배된 죄인 중에 가장 작은 죄로 가장 크게 실의하였다고 하였으며, 해저의 어른은 기출처 : 유교넷 -
326024
答柳耳仲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壽靜齋 柳鼎文(1782~1839)에게 보낸 답신이다. 일전에 아들이 경림서원의 도석에 갈 때 편지를 보내지 못하였는데 먼저 편지를 보내주어 고맙다고 하고, 이전에 四箴圖를 보여 주면서 의견을 물은 것에 대하여 답변한 것이다. ‘勿’자가 중간에 있는 것은 사람이 볼 때출처 : 유교넷 -
326025
答族姪孟浩仁浩問目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집안의 조카 뻘 되는 李孟浩와 李仁浩가 보낸 禮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변한 것이다. ① 設位 哭臨할 때 改題가 맞는가 改造가 맞는가 물었을 때 「잡의」에 의거하여 改造가 맞다고 하였으며, ② 還奉할 때, 改造할 때, 사당 안 諸位에 고할 때의 고사 내용을 일러주었다.출처 : 유교넷 -
326026
答柳誠伯(致明)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손자를 류치명(1777~1861)의 문하에 보내고 지도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손자가 목전의 일에 급급하여 속성하도록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27
與柳誠伯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대리청정의 명이 있었으니 조정의 경사라고 하고, 자신은 춘방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손자의 지도를 당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28
與李內弟(和發增發)諸從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외사촌 이화발‧이증발에게 보낸 편지로 수백리 떨어진 곳이 하늘가와 같이 먼 곳이 아닌데 90대의 외조부께 문안드리지 못한 것이 몇 년이 되었고, 두 외사촌과 작은 외숙의 상에서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남이요, 앉아 있는 시체라고 탄식하였다. 또한 다천옹과 대언공의 교법이출처 : 유교넷 -
326029
與姜季鷹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장연의 강계응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의 안부를 묻고 이미 그대의 뜻은 알았으니 일부러 빚을 내어 還報할 필요는 없다고 하고는 열 꾸러미의 동전을 邸人에게 부쳐 즉시 전달되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강계응은 이인행이 장연에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던 집의 주인이며, 자주 만출처 : 유교넷 -
326030
答李景圓(蓍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이시수(1790~1849)에게 보낸 답장이다. 어린 나이에 학문에 뜻을 품고 求道하는데 근면하며, 大方之門에 就正하는 자세를 칭찬하였다. 자신의 경험을 들어 스승과 붕우의 가르침에 충실할 것을 권하였다. 이시수가 질의한 문제에 대한 답을 별지로 적었다.출처 : 유교넷 -
326031
別紙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문의한 내용은 반은 알 듯, 반은 모를 듯 하지만 답한다고 하고 몇 가지 조목으로 나누어 대답하였다. 如賓如祭는 군자가 경외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成德의 지위이며, 정자가 愼獨하여 守之하라는 법은 은미한 것으로 史氏가 象恭色莊이라고 한 것은 程子의 본뜻에 부합되는출처 : 유교넷 -
326032
答金舜擧(騏獻)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金鶀獻(1797~1873)에게 보낸 답신이다. 학문에 더욱 힘쓸 것을 권면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33
與趙士元(時成)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緬禮를 치른 趙時成에게 보낸 서한으로, 가묘에 신주를 모실 때 前後妣가 있을 경우, 「雜記」의 주석은 杜撰이므로 동암 류장원의 설을 따른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34
上大人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부친인 李觀燮에게 올린 서한이다. 집안의 안부를 물었고, 자신은 이번 달 15일 중용책을 올려 榜首가 되어 중용언해를 받았으며, 특령으로 調用되었다고 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6035
別紙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앞의 부친에게 올린 서한에 첨부한 것이다. 中庸策을 올려 居首가 된 후 12월 17일 이인행이 자필로 작성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교령이 있었고, 같은 날 특별히 調用하라는 전지가 있었다. 20일 온릉참봉으로 首望되었으며, 21일 이해의 후손인가를 왕이 직접 확인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326036
上大人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공릉참봉에 이배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柳星漢의 凶疏가 있었음을 전하였다. 지금 대간의 상소와 성균관의 상소가 잇따르고 있다. 嶺疏도 없을 수 없으니 삼계서원이나 호계서원에서 發通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는 유소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으나 이번 일은 關係가 매우출처 : 유교넷 -
326037
上大人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서울의 상소소식을 전하였다. 蘇湖의 李丈이 소두가 되어 7일 식후부터 伏閤하였다고 하고, 유소의 반입이 저지되었으나 金檢討의 獨疏가 있은 후에 비로소 봉입이 되었다고 하였다. 정조가 우악한 비답을 내렸으니 영남의 신하로써 감읍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소호의출처 : 유교넷 -
326038
上大人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삭직이 되었다가 왕의 특명으로 인하여 陞遷例에 의거하여 出六하였다고 소식을 전하였으며, 채제공의 상소 이후 金藤書를 頒示하는 거사가 있었다고 하였으며, 原疏와 筵本을 晦退鶴厓 4서원에 謄送한 것은 단지 領府事의 뜻만은 아니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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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人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도내의 大論이 정해졌는지 묻고 京中의 知舊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금등사로 인하여 촉발된 정국의 추이를 서술하였으며, 저들이 어떠한 계책을 내놓을지 우려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들이 고심하고 정성을 다하는 까닭은 이것이 대의를출처 : 유교넷 -
326040
上從叔(雲燮益燮範燮)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금년에 식년시와 慶科가 있었으므로 노소를 가리지 않고 응거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비용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일가의 쇠락을 탄식하였으며, 盤松의 舍役과 德洞의 石役 등은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으니 이는 재물이 없는 것보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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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從兄(儒行)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집안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뜻밖의 은총을 입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말씀하신 가르침은 하나하나가 병의 약과 같이 새겨듣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書舍의 일은 덕겸과 공윤 등이 담당하는지 어렵지는 않는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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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從兄(儉行)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위원에 도착하여 종형인 李儉行에게 보낸 서한이다. 위원에 도착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1802년(순조 2)의 것이다. 대동강‧청천강‧압록강‧두만강 등 북쪽의 경치를 한 번 보기를 소원했지만 죄를 입어서 왔으니 부끄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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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弟公允(信行)公望(儼行)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동생인 이신행과 이엄행에게 보낸 서한이다. 저번 달 15일 울산을 출발하여 금월 17일 위원에 도착하였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위원의 특산물은 면과 밤이 있고 백반과 해물이 귀하다고 하였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도록 부탁하였다. 1802년의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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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公允公望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동생인 이신행과 이엄행에게 보낸 서한이다. 집안의 안부를 묻고 수령은 원래 충주에 있던 사람으로 잘 대접해 준다고 하였다. 아들 淵兒는 근래 述作을 시작하였는지 물었다. 유배당시의 것으로 보이며, 淵兒는 아들인 이연호로 보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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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公望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동생인 이엄행에게 보낸 서한이다. 군자는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 찾지 않음이 없다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심사를 달래고, 立志를 하였으면 독실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공부를 함에 있어서 일자일구라도 방만하게 지나치지 말도록 충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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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公望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동생인 이엄행에게 보낸 서한이다. 편지에 초조한 기색이 있으니 그리하지 말도록 충고하는 내용이다. 죽음과 상례, 근심은 사람의 집에서 면할 수 없는 것이요, 인생은 항상 順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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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淵浩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아들인 이연호에게 보낸 서한이다. 공부는 어떤 지 묻고 자신은 유배지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낙담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48
答兒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집에서 지내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하였으며, 학문하는 방도는 성실하게 광음을 아껴서 독서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집안 일을 살피는 것은 財利를 이르는 것이 아니니, 財利 두 글자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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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淵浩姪兒鴻慶(道浩小字) 4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아들 이연호와 조카 이도호에게 보낸 서한이다. 독서를 폐하지 말고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050
寄兒別紙 4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아들 이연호에게 보내는 편지의 별지이다. 며느리의 고생을 위로하며 집안의 화기를 위해 신경을 쓰고 부부사이에 서로 공경하라고 하였다. 글씨공부는 큰 글자를 쓰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 큰 책자를 만들어 古文을 베끼는 연습을 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