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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金公墓碣銘(幷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생원 金恒重(1649~1713)의 묘갈명이다. 字는 士常이고, 아버지는 贈戶曹參判 梅竹軒 英震이다. 어머니는 정부인 월성이씨로 첨사 滓의 딸이다. 1691년(숙종 17)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부인은 恭人 鄭氏로 道敏의 딸이다. 3남 3녀를 낳았다. 아들은 慶龜, 正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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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雲皐李公墓碣銘(幷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雲皐 李重慶(1724~1764)의 묘갈명이다. 字는 志彦이며, 本貫은 眞城이다. 父는 濟兼이고, 祖父는 李東標이다. 母는 의성김씨로 창현의 딸이며, 계비는 풍산김씨로 학사 김응조의 후손이다. 奉化 鹿洞에 살았다. 李光庭‧權萬‧權相一 등 당시 名碩들에게 촉망을 받았으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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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山縣監三松林公墓碣銘(幷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三松 林貴枝(1455~1508)의 묘갈명이다. 그 선조는 중국에서 건너왔으며, 아버지는 副護軍 重敬이고 어머니는 김씨다. 공이 처음 醴泉 율현에 살았다. 鴻山縣監 재직 시 선정으로 백성들이 遺愛碑를 세웠다. 부인은 숙인 권씨로 종사랑 약형의 딸이다. 2남 2녀를 두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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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曹正郞亦樂齋權公墓碣銘(幷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亦樂齋 權斗南(1573~1658)의 묘갈명이다. 字는 景望이고, 아버지는 用中이다. 사복재 권정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宜寧余氏로 忠順衛 武伯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 4) 式年試 을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급제 후 국정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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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考府君墓表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고조부 李萬知(1672~1717)의 묘표이다. 초휘는 木+胤이었으며 字는 致伯이다. 本貫은 진성으로 아버지는 在遇이고, 생고는 통덕랑 在運이다. 부인은 선성김씨로 진사 宗灝의 딸이다.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曅, 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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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祖考府君墓表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증조부 李曅(1691~1754)의 묘표이다. 字는 汝華이고 진보인이다. 아버지는 萬知이고 어머니는 선성김씨로 진사 宗灝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류씨로 생원 昌時의 딸이다. 4남 1녀를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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梧山處士徐公墓誌銘(幷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梧山 徐昌載(1726~1781)의 묘지명이다. 字는 尙甫이고 本貫은 달성이다. 李象靖의 문인이다. 부인은 완산이씨로 月浦 仁溥의 딸이다. 2남 1녀를 낳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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聾隱李公墓誌銘(幷序)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집안의 조부 뻘이 되는 聾隱 李級(1721~?1790)의 묘지명이다. 李師延의 부탁을 받고 柳尋春이 쓴 행장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字는 子明, 本貫은 眞城이다. 아버지는 敏政이고, 生父는 聃龍이다. 1753년(영조 29) 문과에 급제하여 兵曹佐郞‧司諫院正言‧司憲府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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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權公墓誌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처사 權昌孫(1704~1757)의 묘지이다. 字는 子雲이고, 本貫은 안동이다. 진보현감 자홍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松齡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로 兵部郞 老明의 딸이다. 아들이 없어 재종재 昌祚의 아들 熙承을 후사로 삼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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烟沙處士徐公墓誌銘(幷序)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烟沙 徐宗胤(1740~1777)의 묘지명이다. 字는 穉承, 本貫은 達城이다. 아버지는 昌傑이고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생원 세열의 딸이다. 생고는 昌鉉이고 妣는 남양홍씨로 儉의 딸이다. 榮州 沙川에 살았다. 鼎龜의 증손이며, 李象靖의 문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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僉中樞朴公墓誌銘(幷序) 4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僉中樞 朴濟南(1683~1764)의 묘지명이다. 字는 濟濟이고, 本貫은 반남으로 박상충, 박승임의 후손이다. 榮川에 살았다. 아버지는 진사 文豹이고 어머니는 진성이씨 찰방 希哲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났다. 1703년(숙종 29) 부친상을 당하여 가례에 어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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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隱處士朴公墓誌銘(幷序) 5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五隱 朴孝述(1735~1800)의 묘지명이다. 박명중의 부탁으로 작성한 것이다. 박효술은 박제남의 아들로 어머니는 평산신씨 주부 필정의 딸이다.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인은 나주정씨로 생원 兼愼의 딸이다. 2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時龍, 時漢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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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溪全公墓誌銘(幷序) 5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休溪 全希哲(1425~1521)의 묘지명이다. 字는 原明, 本貫은 沃川이다. 아버지는 禮이고. 榮州 休川에 살았다. 소과에 합격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上將軍을 지냈다. 단종 폐위를 계기로 벼슬에서 물러나 영주 휴천으로 이주하여 영주의 입향조가 되었다. 중종대 大耋로 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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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溪處士姜君墓誌銘(幷序) 5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玉溪 姜鳳文(1735)~1815)의 묘지명이다. 字는 周瑞, 號는 玉溪이다. 本貫은 晉州이고, 아버지는? 得涓,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同知 斗錫의 딸이다. 居住는 安東이며, 柳弘源의 문인으로 학문에 힘써 향내의 명사들을 두루 찾아 교유하였으며, 후진들을 양성하였다. 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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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峯權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옥봉 權暐(1552~1630)의 행장이다. 字는 叔晦, 아버지는 生員 審行이고, 어머니는 康希哲의 딸이다. 충정공 권벌의 후손이다. 金誠一‧金彦璣‧趙穆의 문인으로 1601년(선조 34) 문과에 급제하여 典籍‧工曹佐郞‧戶曹佐郞‧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뒤에 刑曹正郞‧禮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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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諫院正言雪月堂全公行狀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雪月堂 全益禧(1598~1659)의 행장이다. 字는 子綏, 아버지는 봉사 磊이고, 어머니는 진양정씨로 鄭好仁의 딸이다. 希哲의 후손이며, 鄭経世의 문인이다.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하여正言‧司憲府持平‧鳳山郡守‧善山府使등을 역임하였다. 正言으로 재직 시 金自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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僑軒蔡公行狀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僑軒 蔡無敵(1500~1554)의 행장이다. 字는 居仁이고, 本貫은 인천이다. 아버지는 참봉 胤權이고, 어머니는 富林君 湜의 딸이다. 1528년 (중종 23) 式年試 생원에 합격하여 1533년(중종 28) 掌樂院主簿를 냈으며, 1535년(중종 30) 漏閣을 補修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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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琴軒李公行狀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樂琴軒 李庭栢(1553~1600)의 행장이다. 字는 汝直, 本貫은 진보, 아버지는 통정 希雍이고, 어머니는 영해신씨 眷의 딸이다. 생부는 참봉 希顔이고, 생모는 의성김씨 禮範의 딸이다. 金誠一‧南致利‧權宇 등과 교유하고 1588년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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瓢巷處士完山柳公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瓢巷 柳洛休(1749~1825)의 행장이다. 字는 疇瑞이고, 本貫은 전주이다. 아버지는 蘆厓 柳道源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의성김씨 參奉 景溫의 딸이다. 李象靖의 문인이다. 부인은 서원정씨로 약포 정탁의 후손으로 통덕랑 崇簡의 딸이다. 1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少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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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柳君行略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류낙휴의 아들인 柳少文(?~1828)의 행장이다. 字는 厚如, 本貫은 전주다. 어머니는 청주정씨로 통덕랑 숭간의 딸이다. 잇따른 장례를 치르다가 요절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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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進士稼隱成公行狀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成彦根(1740~1818)의 행장이다. 字는 叔晦이고, 本貫은 창녕이다. 계서 성이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渫이고 어머니는 무안박씨 天柱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式年試 2등으로 진사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유학하였으며 1787년(정조 11) 사도세자 신원을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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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谷處士趙公行狀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蘭谷 趙尙泰(1682~1754)의 행장이다. 字는 士集이고, 本貫은 한양이다. 아버지는 丹皐 漢源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 斗廷의 딸이다. 향년 73세이다. 증손자 時殷이 金達圭가 지은 글을 가져와 부탁하므로 지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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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諫院正言南厓成公行狀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南厓 成彦檝(1732~1812)의 행장이다. 字는 用汝이고, 本貫은 창녕이다. 아버지는 澯이고, 어머니는 옥산장씨 緯의 딸이다. 1762년(영조 38) 謁聖試 을과로 문과에 급제하고. 承文院正字‧奉常寺直長을 역임하다가 부모의 병간호를 위하여 사직하였다. 뒤에 成均館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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盤谷處士朴公行狀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盤谷 朴履泰(1726~1793)의 행장이다. 字는 大來, 本貫은 반남이다. 아버지는 僉樞 宗絅이고, 어머니는 의성김씨 汝鏳鏳의 딸이다. 효성이 뛰어났다. 부인은 의성김씨로 緯河의 딸이며, 5남 2녀를 두었다. 아들 박송수의 부탁으로 조성복이 찬한 행록을 바탕으로 작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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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諫院正言金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金熙洛(1761~1803)의 행장이다. 字는 叔明이고, 本貫은 의성이다. 개암 김우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參奉 斗東이고, 어머니는 전주류씨 阿谷 世源의 딸이다. 李象靖의 문인으로 1792년(정조 16)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고, 도산별시에 甲으로 합격하였으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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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童蒙敎官晉山姜公行錄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효행으로 동몽교관을 증직받은 姜翼周(1764 ~1819)의 행장이다. 字는 季鷹이다. 아버지는 聖耈이고 어머니는 경주김씨 時澄의 딸이다. 효행이 뛰어났다. 근사록을 직접 필사하여 책을 만들만큼 학문에 힘썼다. 전배는 밀양박씨 世鳳의 딸이며, 후배는 전주이씨 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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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司憲府掌令府君行略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溪東 李燦漢(1610~1680)의 행장이다. 本貫은 眞城, 字는 子昭, 溪東은 자호이다. 父는 㟰, 祖父는 深道, 榮州 新川에 살았다. 憲의 증손이다. 1646년(인조 24)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하고, 1648년(인조 26) 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三陟府使·司憲府掌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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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府君行錄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아버지 李觀燮(1738~1795)의 행장이다. 字는 賓卿, 本貫은 진보, 溫溪 이해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師德, 어머니는 밀양박씨 聖錫의 딸이다. 14세에 花塢 柳聖曾에게 글을 배웠다. 책을 읽지 않음이 없었으나 특히 중용, 주자서, 도산집에 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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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叔處士公行狀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종숙인 李亮燮(1746~1806)의 행장이다. 字는 寅伯, 本貫은 진보이다. 溫溪 이해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晦根이고 어머니는 야성송씨 현감 儒式의 딸이다. 생부는 師迪이고 생모는 풍산류씨 후겸의 딸이다. 부인은 풍산김씨 洛源의 딸로 勉行, 秉行, 敏行 3자를 두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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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兄梧谷處士行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종형인 梧谷 李儒行(1753~1829)의 행장이다. 字는 公問. 아버지는 泰燮이고, 어머니는 반남박씨 五隱 孝述의 딸이다. 숙부 拙窩공에게 수학했다. 부인은 한산이씨 통덕랑 述靖의 딸이다. 天浩, 元浩, 善浩 세 아들을 두었다. 拙窩는 이인행의 아버지인 李觀燮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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砂溪張公遺事(代本孫作)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砂溪 張汝華(1566~1621)의 유사이다. 장여화의 字는 茂甫이고, 砂溪는 호이다. 本貫은 인동이고 퇴계문인 最樂堂 壽禧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숙부인 창원황씨 사재감정 士彦의 딸이다. 朴承任의 문인으로 郭山+晉·趙靖 등과 교유했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에 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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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趙公遺事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趙尙亨의 유사이다. 字는 通仲, 本貫은 한양이다. 영주에 살았다. 아버지는 漢源이고 어머니는 영남남씨 斗廷의 딸이다. 기사년에 출생하였다. 蘭谷 趙尙泰의 동생이다.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항상 형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에게는 박하게 하였다.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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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世遺事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祖考 師德(1711~1760). 初諱는 長根, 字는 永徵, 어려서 총민하였으나 중간에 질병으로 인하여 학문을 폐하였다. 성품은 仁厚하였다. 배위는 밀양박씨 聖錫의 딸이다. 仲祖 師迪(1719~1787). 초휘는 遠根, 字는 大徵, 계부 炅에게 出后. 어머니는 안동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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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遷錄上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1802년(순조 2) 2월 2일 臺臣 姜世綸이 탄핵하였다. “전현감 李仁行은 명가의 후예로서 이가환에게 의탁하였고 역당을 옹호하였으며, 李鎭宅은 家煥을 위하여 복수하려고 하였으며, 이유수는 몰래 정약용에게 붙었다”하니 대신이 처리하라 하므로 이인행은 渭源에, 이진택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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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遷錄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3년 정월 1일 관에서 다과와 책을 보내 주었다. ◦19일 館人이 밤에 와서 수년전에 강계 땅에 두 괴물이 있어 곰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 것이 사람을 만나도 해치지 않았고 밤에 무덤을 파서 시체를 먹었다고 하였다. 곰이 시체를 먹는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해서 기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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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廳錄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1792년(정조 16) 성균관에 있을 때 기록한 것이다. 이미 湖上 壬丙錄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다시 적지 않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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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字는 公宅, 號는 新野, 本貫은 진성이다. 父는 처사 觀燮, 母는 영천이씨로 德祥의 딸이며, 이민환의 후손이다. 李瀣의 후손으로 榮州‧禮安에 거주하였다. 어릴 때부터 노성하여 놀이 감이 있으면 동생들에게 주었고 13세 때 이미 經史에 博通하였다. 1773년(영조 9)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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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朴時源이 지은 이인행의 유사로, 류치명의 행장과 거의 같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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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인행아들 이연호가 지은 家狀이다. 박시원이 지은 유사 및 류치명이 지은 행장과 내용이 거의 같다. 행장과 유사는 이 가장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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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근암집(謹庵集) 謹庵 康儼의 문집. 木活字本, 跋: 康駿然, 4卷 2冊:四周雙邊, 半郭 17.0 ×22.5㎝,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21.0×30.0㎝. 저자의 아들 康敏淳과 손자 康起元이 주도하여 유고를 수집하여 柳疇睦(181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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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過白雲洞紹修書院祗謁先生先賢畵像因上景濂亭敬次周愼齋韻二首,登浮石寺聚遠樓敬次退陶先生韻,敬和渭陽丈席權公(思潤)陶淵韻, 敬和丈席西水家塾韻, 與安妹兄公和(光夏)有遊山之約病不能遂卽製一絶以謝, 次公和詠雪, 公和方讀大學詩以勉之且以自警, 觀心經, 望湖, 偶吟, 乙卯立春公和次邵康節年老逢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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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立齋鄭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立齋 鄭宗魯에게 올린 편지이다. 정종로는 본관이 晉陽, 자는 士仰으로 상주에 거주하면서 강학하였고, 저자가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몇 년 동안 뵙지 못하였으며, 친구들이 선생을 뵙고 강론을 듣고 시를 주고받은 것을 보면 저자 자신도 마음만은 상주의 愚山으로 달려 간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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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立齋鄭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立齋 鄭宗魯에게 올린 편지이다. 봄 여름 사이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하였으나, 부친이 편찮으시고 자신도 병이 나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 연유를 선생의 從氏가 왔을 때 전하라고 하였는데 들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저자의 從弟가 외숙을 뵈러 가는 길에 인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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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立齋鄭先生 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立齋 鄭宗魯에게 올린 편지이다. 편지로 안부를 묻고, 숙부의 초상으로 부친이 매우 애통해한다고 하였다. 지난번에 보낸 書傳과 太極圖說의 疑目에 답장을 작성하였는지 물었다. 詩經을 읽다가 의문점을 적어서 보낸다고 하였다. 疑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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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丈(漢朝) 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損齋 南漢朝에게 올린 편지이다. 남한조는 본관이 宜寧, 자는 宗伯이며, 상주에 거주하였다. 독서하는 방법에 대해 물은 것이다. 저자가 처음에는 책을 많이 읽는 것에 뜻을 두고, 사서오경‧성리서‧기타 서적‧제자백가 등을 읽고 의미를 파악한다면 비록 하나하나 체득하여 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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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弦窩權參奉(應慶)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弦窩 權應慶에게 보낸 편지이다. 生家 초상에 대해 위로를 하고, 자신은 부모 모시며 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집안에 大小喪이 차례대로 끝나가고 있으니 여러 가지로 애통하다고 하였다. 편지를 보내 가르침을 주어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게으르기도 하고 일에 골몰하여 공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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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戚叔權存身翁(思聞)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戚叔 權思聞(1734~l800)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사문은 본관이 安東, 호는 松身齋(存身翁)이며, 奉化에 거주하였고 정조 때 生員試에 합격하였다. 外叔을 몇 달동안 모시고 있으니 매우 기쁜 일이지만 연이어 가벼운 병이 들어 마음껏 공부하지 못하고, 또 남은 열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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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誠庵李丈(挺洛)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誠庵 李挺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表叔이 경주로 유람가면서 늘 그대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고 했다. 과거가 얼마 남지 않아 매우 바쁘고, 일간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朱子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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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宗人得心齋(聖浩)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宗人 康聖浩(1736~1808)에게 보낸 편지이다. 강성호는 본관이 信川, 자는 志完, 호는 得心齋, 永川에 거주하였다. 座下께서 林泉에서 수양하여 가난한 생활 속에서 학문을 좋아함이 나이 들어도 더욱 독실한 것은 우리 선조의 유업을 실추시키지 않고 이어갈 사람이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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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得心齋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康聖浩에게 답한 편지이다. 朱子書는 사람이 되는 전범이 되니 먼저 주자서를 읽은 후에 六經의 의미를 탐구하라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성상께서 주자서에 밝은 사람을 천거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이러한 때 책을 읽는 것이 혹 사람들의 비웃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