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87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26201
與得心齋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康聖浩에게 보낸 편지이다. 卿來가 와서 몇 달 동안 머물며 고생하고 있는데, 병이 들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文見이 투철하지 못한 것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科文이나 義理文이나 모두 文見이 통한 연후에 손을 댈 수 있다고 하였다. 文見이란 널리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출처 : 유교넷 -
326202
與姜湖隱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湖隱 姜履和(1744~1828)에게 보낸 편지이다. 姜履和는 본관이 晉州이며, 호는 湖隱이다. 정주의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세 번이나 학행으로 사림의 추천을 받았다. 상주 愚山에서 鄭宗魯와 唱和한 시를 몇 읊어보니 沖澹灑落하여 의미가 무궁하여 저자같이 용렬한 사람이출처 : 유교넷 -
326203
與南子皜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1760~1821)에게 보낸 편지이다. 南漢皜는 본관이 宜寧, 자는 子皜. 호는 誠齋이다. 損齋 南漢朝의 再從弟이고, 상주에 거주하였으며 鄭宗魯의 문인이다. 형께서는 집안에서는 가정의 가르침을 받고, 나가서는 여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밝게 강론하고 실천출처 : 유교넷 -
326204
與南子皜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에 주역을 읽고 있는데 의심나는 곳이 산처럼 쌓였다고 하였다. 형께서는 이 책에 오랜 공부가 있으니 말을 아끼지 말고 막힌 곳을 열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귀향 玉洞書院의 일은 士林의 큰일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쉽게 말을 할출처 : 유교넷 -
326205
與南子皜 1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대학의 별지이다. 대학의 ‘虛靈不昧’에 대해 朱子와 송나라 유학자들의 설을 토대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6206
與南子皜 2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편지이다. 세상일에 시달려 師友를 따라 배울 겨를이 없고,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金翼昊 형제가 같은 마을에 살고 있으나 서로 만나는 일이 드물다고 하였다. 이러한 때 의리를 탐구하고 어리석음을 계발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출처 : 유교넷 -
326207
與南子皜 2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름부터 서전을 읽고 있는데 의문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어서 그대에게 질의를 하고 싶지만 적어서 보내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書傳序例 한 권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혹 이 책이 있으면 빌려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326208
與南子皜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편지이다. 仙洞의 일은 사세가 급박하니 마땅히 門會를 열어 대응해야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訴狀을 올려야하겠지만 저들이 믿는 것이 있으니, 소장을 올리는 일이 이롭지 못하고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출처 : 유교넷 -
326209
與南子皜 2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곳은 흉년과 돌림병이 심한데 그곳은 어떠하며, 근래에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책을 읽는지 물었다. 서전을 읽고 의심나는 곳은 기록하여 보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하지 못하다가 이제 몇 조목 적고, 愚山 어른의 답장을출처 : 유교넷 -
326210
答南子皜 2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답장이다. 「太極圖說」에 대해 조금 연구를 하여 疑目 한 통을 만들어 서전 疑義와 함께 愚山 어른께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없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평생 이루어 놓은 일 없이 오직 이 한 가지 일만 생각하고 있다고출처 : 유교넷 -
326211
答南子皜 2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南漢皜에게 보낸 답장이다. 남한호가 朱子의 「敬齋箴」에 나오는 ‘두 마음을 품어 정신을 둘로 분열시키거나 뒤섞어 셋으로 쪼개지 말라[勿貳以二 勿參以三].’의 뜻에 대해 물은 것에 대해 답한 것이다. 주자의 해석이 명백할 뿐 아니라 퇴계가 논한 것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출처 : 유교넷 -
326212
與柳翊贊(尋春)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1762~1834)에게 보낸 편지이다. 柳尋春은 본관이 豊山, 자는 象遠, 호는 江臯이며, 상주에 거주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世子翊衛司翊贊을 거쳐 翊衛가 되었다. 지난번에 왕림하였을 때 토론하며 어리석음을 깨우친 것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다. 근래에 공출처 : 유교넷 -
326213
與柳翊贊 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보낸 편지이다. 蘇湖里의 일은 영남의 운수가 불행한 일이지만 이로 인해 義理가 크게 밝아지고 만세토록 태평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농사를 지으며 분수에 따라 살면서 옛날의 서적을 공부하고 몸을 수양하고자 하나 게으름이 버릇이 되어출처 : 유교넷 -
326214
與柳翊贊 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에 부모를 뵈러 말미를 얻어 돌아왔고, 자제분 형제가 동시에 혼례를 치른다고 들었는데 매우 축하한다고 하였다. 직접 가서 축하를 드리고 싶으나 바쁜 일에 골몰하여 갈 수 없으나 마음은 간절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15
答柳翊贊 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아들이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있고, 그대는 관직에 있기 때문에 아들에게 보내는 인편에 그대에게도 보낼 수 있는데, 바빠서 편지를 올리지 못했다고 하였다. 또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고 하였다. 객지출처 : 유교넷 -
326216
答柳翊贊 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聞韶(義城)로 부임한 것을 축하드리지 못했는데 먼저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으니 감사하다고 하였다. 학문이 넉넉해진 후에 벼슬하였기에 치적과 명성이 원근에 자자하니 공경스럽고 감탄스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17
答柳翊贊 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달 뵌 후로 마음에 그리움이 가득하였는데, 먼저 정이 넘치는 편지를 보내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친과 아들이 병이 들고, 본인도 눈이 어두워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없어 고민스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18
答柳翊贊 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二程(程顥‧程頤)의 글을 읽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제목만 생각해도 정신이 상쾌해진다고 하였다. 그대가 본 것 중에 마음에 들고 스스로 좋아하는 곳이 있으면 가르쳐 주어 이 혼미한 사람을 깨우쳐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19
答柳翊贊 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선조 一竹公과 修巖先生이 같은 시대에 교류하였으니 반드시 주고받은 글이 있을 것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아들 편에 들으니, 수암선생이 지은 輓詩 1편이 상자 속에 있다고 하는데, 찾아서 베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20
答柳翊贊 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랜 동안 안부를 묻지 못했는데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친과 아들이 병들어 여러 가지 고민스러움을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 매우 곤궁하다고 하였다. 그대 아들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방문해출처 : 유교넷 -
326221
答柳翊贊 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翊贊 柳尋春에게 답한 편지이다. 근래에 痰熱 증세가 있었는데 봄과 여름 사이에 다시 발병하여 밤낮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뜬구름 같은 생각은 점점 사라졌으니, 졸렬하게 수양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옛날 습관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니출처 : 유교넷 -
326222
與崔太和聖觀(鎭華) 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崔鎭華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제들과 모여 공부하고 善行을 장려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매우 부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23
答權公晉 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權公晉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와 함께 시를 보내 주어 읽어보니 가슴이 상쾌해지고 직접 만난 듯하다고 하였다. 부친이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으며, 자신도 병이 많아 백발로 노쇠한 모습을 보는 사람이 놀란다고 하였다. 노쇠한 사람이 적막함을 깨뜨리기 위해 책을 읽지만출처 : 유교넷 -
326224
與趙子希(承洙)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趙承洙에게 보낸 편지이다. 趙承洙는 본관이 豊壤, 호는 梅隱, 상주에 거주하였으며, 鄭宗魯의 門人이다. 「太極圖說」의 ‘定’자의 의미에 대해 지난번에 南漢皜에게 물어보니, ‘道理自定’이라고 하였는데, 그대의 견해와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心制’를 25개월이라 하기도출처 : 유교넷 -
326225
答金鳳天(翼昊) 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金翼昊(1765~1831)에게 답한 편지이다. 金翼昊는 본관이 善山, 자는 鳳天, 호는 正軒이다. 의성에 거주하였으며, 柳致明의 문인이다. 心經을 읽고 있을 터인데, 그곳에서 선생의 유지를 깨달은 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杜陵 어른의 답변이출처 : 유교넷 -
326226
與金鳳天 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金翼昊에게 보낸 편지이다. 「太極圖說」의 ‘聖人定之’의 定자를 어떤 사람은 ‘스스로 정한다[自定].’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남을 정한다[定人].’고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子希와 子皜에게 물어보니, ‘自定’과 ‘定人’으로 나눌 필요가 없이 ‘도리가출처 : 유교넷 -
326227
與金鳳天 1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金翼昊에게 보낸 편지이다. 대학의 ‘實其心之所發’ 다음에 현토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적은 것이다. 大山은 ‘者’자를 붙여 읽고 ‘은(隱)’으로 보았다. 그대 또한 이것을 의심할 것이 없다고 하였으나 ‘하야(爲也)’로 읽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하였출처 : 유교넷 -
326228
與內從權穉紹(逑度) 1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內從 權逑度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종제의 아들이 와서 요즘 많이 늙었지만 큰 병이 없다는 소식을 전해 주니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아흔 된 부친과 서로 흰머리를 마주하고 있으니 가련하다고 하였다. 아들은 어떤 병에 걸려 해를 넘기도록 차도가 없고 음식은 보통사출처 : 유교넷 -
326229
答族兄季倫(宅信) 1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族兄 康宅信에게 답한 편지이다. 景洛事 廟宇가 새로 건립되었으니 본손된 입장에서 마땅히 때에 맞게 봉안을 거행해야 하는데, 鄭氏 통문을 보내 事端을 일으킨 것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6230
與箕城譜廳 1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箕城(평양)의 족보 간행소에 보낸 편지이다. 천리 먼 곳에서 늘 일이 잘 진행되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昭穆의 순서와 嫡庶의 구분이 자세하지 않고, 떠난 뒤에 들으니 처음 서로 이야기할 때와 다르니 뜻밖이라고 하였다. 우리 파에 載寧派를 合本하면 系派가 분명하지 않을출처 : 유교넷 -
326231
道袍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道袍를 가지고 명을 지은 것이다. 손님을 만날 때는 띠를 매고, 제사를 지낼 때는 성대하게 차려 입는다고 하였다. 마음을 맑고 밝으며 純一하게 가져서 이 도포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32
古木藏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집안에 있는 이층 고목장롱에 책을 저장하고 있는데, 거기에 쓴 명이다. 외관은 질박하여 화려하지 않고, 속은 여유가 있어 용납함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옛날의 그릇이니 책을 저장하기에 마땅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33
琴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거문고에 쓴 명이다. 현달하면 순임금의 南風 곡을 연주할 수 있고, 곤궁하면 공자의 猗蘭 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달 밝은 대숲에서 거문고 타고 시 지으며 근심을 삭히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34
竹籖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대 제비는 대나무로 만든 책갈피인데, 거기에 쓴 명이다. 성인의 心法이 책에 있으니 너와 함께 그 오묘한 뜻을 파헤치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35
草堂春頌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봄볕이 세상을 비추는데는 많이 비추고 적게 비추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도 이처럼 더함도 덜 함도 없이 항상 일정하게 간직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사로운 뜻이 혹 생기면 利害가 서로 공격해서 道理가 끊어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마음을 저 봄과 같이 항상 한출처 : 유교넷 -
326236
臨鏡堂重建上樑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臨鏡堂을 중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臨鏡堂은 坪城의 池內에 있는 康氏 세거지에 있다. 상량한 후에 신령이 도와서 재앙이 사라지고, 봄과 가을 제사에 향기로운 제물을 올리고, 여름과 겨울 시와 예를 익혀 거문고 소리와 글 읽는 소리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37
鏡陽精舍重建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鏡陽精舍를 重建하고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坪城의 池內는 康氏의 세거지인데, 처음 池內의 동쪽 지금 臨鏡堂이 있는 곳에 거주하다가 5대조의 묘역이 조성된 후로 池內의 북쪽 지금 鏡陽精舍가 있는 곳으로 옮겨서 거주하였고, 거주하기에 이롭지 못하다고 하여 池內의 서쪽으로출처 : 유교넷 -
326238
雪窓讀書說 18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독서의 요체는 마음을 밝히는데 있고 마음을 밝히는 것은 거처하는 곳이 조용한 것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혹시 거처하는 곳이 고요하지 않으면 응접하는 것이 어지러워 마음이 흐려지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의리의 정밀함을 궁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이런 곳에서도 세상이출처 : 유교넷 -
326239
顔子實紀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명나라 南山 潘府가 지은 孔子通紀를 읽고, 그 중 顔子 부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26240
書琴譜 22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주자가 쓴 琴銘을 琴圖의 왼쪽에 써 놓았는데, 그 의미를 잊지 않고 또 거문고를 타면서 거문고의 의취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41
又書琴論後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伯牙가 바닷가로 가서 거문고를 익혔던 것은 일체의 세속적 맛을 없애기 위해서이고, 주자가 지은 무이구곡의 둘째 시와 셋째 시는 色慾을 끊고 속세의 비루한 마음을 끊는 뜻이 있다고 하였다. 옛날 사람이 거문고에 대해 논한 말을 기록하고, 주자와 백아의 일을 기록하여 학출처 : 유교넷 -
326242
康氏得姓本原錄 2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康氏가 姓을 얻게 된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제주도에 있는 강씨들의 初譜에 강씨의 시조는 箕子를 따라 동쪽으로 온 康叔의 둘째 아들로, 기자를 도와 조선을 교화한 공이 있었기 때문에 기자가 강숙의 강자를 따서 강씨를 하사하였다. 아버지의 名이나 字를 따서 賜姓하는 경출처 : 유교넷 -
326243
祭立齋鄭先生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立齋 鄭宗魯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저자가 스승으로 모셨던 입재의 제사에 인물됨과 학문을 칭송하고, 또한 저자가 수학하였던 것을 서술하고 애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44
祭內舅權信天翁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외숙 權思潤(1732~1803)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權思潤은 본관이 安東, 자는 德以, 호는 信天齋이다. 이상정의 문인이며, 효행과 학덕으로 감사의 추천을 받아 여러 참봉과 동몽교관에 천거되었다. 외숙이지만 은혜는 부자지간 같았던 사자와의 정리를 서술하며 애도하였출처 : 유교넷 -
326245
祭同樞姜公(瀗)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姜瀗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이웃 고을에서 열 살 때부터 스승으로 모시면서 句讀에서부터 경전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였다. 공이 상주로 옮기고 영천으로 옮기면서 책을 들고 배우지는 못했지만 돌보아 주시는 은혜는 더욱 깊었다고 하였다. 평소 교육했던 내용과 교출처 : 유교넷 -
326246
祭鄭嘉山(蓍)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嘉山郡守 鄭蓍(1768~1811)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鄭蓍는 本貫이 淸州, 자는 德園, 호는 伯友, 시호는 忠烈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등을 역임하고, 1811년(순조 11) 가산군수가 되었는데, 이해 겨울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가산이 함락당하자 잡혔으나 살출처 : 유교넷 -
326247
祭權大年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權大年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권대년은 여동생의 남편으로서 姻戚이 될 뿐 아니라 知己로서의 정의가 돈독하였다고 하였다. 권대년이 죽고 삼년이 지났으나 지금까지 한 마디 말로 영결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간의 情誼를 서술하며 애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48
祭金鳳天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金翼昊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굳세고 효성스런 자질을 가지고 일찍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원대한 뜻을 세웠고, 덕은 세속의 모범이 될 만하고 재주는 세상에 쓰일 만한데 천명과 時運이 맞지 않아 쓸쓸히 세상을 마친 것을 애통해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49
祭祖考松潭府君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조부 松潭 康錫大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조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한 마디 말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고 한 가지 일도 시행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 애통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26250
祭仲父益睡齋府君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강엄仲父의 제사에 올린 글이다. 사랑은 아버지와 같았고, 의리로는 사제지간의 정분이 있었다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옆에서 모시고 山寺에서 공부하고 과거장을 출입하면서 중부를 따른 것이 몇 해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이 못나서 공의 심정을 체득하거나 공의 가르침을 터득하지는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