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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可隱趙公(學洙)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저자의 장인[外舅]인 豊壤人 可隱 趙學洙(1739∼1823, 字 誨之)를 위한 제문이다. 孝悌를 먼저 가르치고 文藝는 뒤에 가르쳤으며, 문장은 평이하고 절실했으며, 사위인 저자를 만나서는 빨리 돌아가지 말라고 붙들고 만나지 못할 때에는 자주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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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宋敬一文(1804)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勿齋 宋相天을 위한 제문으로, 효성을 다해 어버이를 섬기고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을 단속했으며, 六經에 침잠하여 남김없이 궁구하였다고 추모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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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姑叔(永龜)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고모부 金永龜를 위한 제문으로,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개의치 않고 봉양에 힘쓰다가 늙은 부모와 약하고 어린 처자식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일을 안타까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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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姑端人洪氏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저자의 장모[外姑]인 洪氏를 위한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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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女金氏婦壙誌(1822)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저자의 맏딸은 1803년에 태어나서 20세에 宣城人 士人 金樂義에게 시집갔다가 그해 12월에 죽었다. 저자는 이 소식을 듣고 병들어 누웠다가 억지로 몸을 추스려 일어나서, 평소 효성이 지극하고 女事를 잘 익혔으며, 어머니가 죽은(1819년) 뒤에는 어머니 역할을 훌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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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考贈通訓大夫司僕寺正延谷府君遺事略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저자의 할아버지인 延谷 權聖翊(1735~1821, 字 文瑞)의 일대기를 기록하고자 한 것으로 완결을 짓지 못하고 1783년까지의 일과 약간의 언행만 기록하였다. 권성익은 부친 權重斗(1715~1766)와 모친 載寧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외할아버지 李植이 豹徵이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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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朴遠寧, 李秉秀, 朴漢汲, 權玉相, 朴箕寧, 金商運, 金龍在, 朴九寧, 朴漢光, 金樂烋, 金璣在 등 11인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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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金宅壽, 趙述周, 女壻金商雨, 季父涵溪翁, 從父弟絅模 등 5인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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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辭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宋洪直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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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아들 素軒 權人夏(1805~1889)가 지었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작자 소개에 나와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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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聞韶人 西山 金興洛(1826∼1899)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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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並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眞城人 響山 李晩燾(1842∼1910)가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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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증손 權相大의 청탁을 받고 宣城人 石矼 金㙽(1850~1925)이 쓴 발문이다. 詞章과 科擧를 위해 내달리는 풍조 속에서 외물에 내달리지 않고 本質을 잃지 않은 敦本自修의 군자로서, 延谷 權聖翊의 가학을 바탕으로 기본을 다지고, 損齋 南漢朝의 문하에서 견문을 넓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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識(19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택모玄孫 權廷燮이 쓴 識로, 만수재집 2책을權聖翊의 延谷集과 함께 石版으로 간행하게 된 경위를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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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구원기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곡구원기(谷口園記) 谷口園 鄭象觀의 문집. 木活字本, 跋: 鄭東範(1928), 10卷 5冊: 四周雙邊, 半郭 21.0×15.7㎝, 有界, 10行 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0.0×19.7㎝. 조선 후기의 학자인 谷口園 鄭象觀의 문집으로 총 10권 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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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雨晴敬次大人韻, 歸雲, 本生大人壽席韻(幷小序), 南郭姜侍讀丈(世白)共賦適小會, 藍田使君朴(光錫)入山拈韻, 尹尙書(光顔)謫關北, 次皓隣韻(三首), 鳥嶺龍湫, 寒碧樓用李東嶽韻, 義湖, 島潭, 石門, 過劒湖, 靑華滯雨拈唐人韻, 曲損齋先生殯, 古詩答姜啓好(世誾)感興(幷小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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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百弗庵崔先生改葬時輓, 剛齋處士李公(承延)輓, 小行哭損齋先生中月, 蒷簹老輓, 昇平老輓二十二排用少陵律,崔姊兄淸彦(湜)輓, 臺瑞南丈(必錫)輓,斗洞山人黃公(龍漢)輓(幷小序), 竹下老李公仲章輓, 友巖亭蔡公君尙輓, 輓蔡穉祥, 送臨池子金穉行入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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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儒生請樊巖蔡文康公復官擬疏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번암 채제공의 관직을 회복시켜 주기를 청하는 영남 유생들을 대표해 쓴 상소문이다. 채제공은 숙종 46년에 태어나 1735년(영조 11)에 16세로 향시에 급제하고, 1743년(영조 19) 24세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갔다. 영조의 탕평책 덕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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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生庭大人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생부인 立齋 鄭宗魯에게 올리는 편지이다. 평소 이삼일 만 옆에서 모시지 않아도 눈물이 나고 그리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는데, 곁을 떠나 있은 지 이미 한 달여가 되어가니 그리운 마음 간절하다고 했다. 국가에서 과거를 통한 인재발탁을 중시해왔고 지금 어진 임금이 재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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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生庭大人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杜陵 李濟兼(1683∼1743)의 문집을 편찬하는 일에 관해 생부인 立齋 鄭宗魯에게 아뢴 편지이다. 자주 가서 글을 편찬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編次를 통일하여 산정하는 것이 일의 수고로움을 드는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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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諱漢朝)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스승인 損齋 南漢朝(1744∼1809)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한조는 저자에게 외조부이자 스승이 된다. 평소 충신열사들의 비장하고 원한에 찬 기록들을 읽기를 좋아했는데, 근래는 더욱 그러하다고 했다. 이어서 사마천의 문장은 대부분 발분한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서, 특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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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損齋南先生 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일찍이 사마천의 글을 읽은 소감을 말하면서 문왕과 주공으로부터 시작하여 공자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문장에서 뛰어난 인물들의 성취는 모두 곤경 가운데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이어 7~8년 사이에 자신의 마음 속에 항상 평온하지 않고 격동하는 바가 있었는데, 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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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10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스승인 남한조가 보내온 편지에서 자신이 옛 사람의 글을 읽음에 平實한 것을 취하지 않고 사마천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 王道와 覇道의 구분을 들어 꾸짖은 데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며 보낸 편지이다. 천고 이래 문장을 논하는 이들은 반드시 六經을 숭상하였지만, 육경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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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1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근래 주고받은 편지 가운데서 자신이 기이한 것을 추구하여 평실한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한 스승의 질책에 대해 자신 역시 경전과 역사를 읽었기에 去就의 구분에서 미혹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사마천의 기록이 覇者들의 영웅담에 치우쳐 있다고 배척한 데 대해 사마천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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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1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앞의 편지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사마천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스승과의 의견 차이에 대해 사마천을 옹호하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내용이다. 사마천의 역사서 기록을 통한 업적은 성인 문하의 사람들처럼 가는 길이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에 이르는 것이고 수 백 가지 생각을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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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1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자신은 우울함에 빠져 날이 갈수록 정기가 소진되어 가는데, 이것은 醫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성인의 도덕에 관한 말로써 자신을 수양하기를 큰 군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지 못하고 평소에 우울함에 빠져 意氣를 상실함으로써 사물이 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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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1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상대와 자신의 아버지가 약속한 仙峽에의 유람계획은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될 것임을 말하고, 몇 사람이 거기에 참여할 것인지를 묻고, 자신은 예전 같은 활력이 없어서 함께 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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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損齋南先生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仙峽에서의 유람을 마치고 곧 도포로 갈아입고 강 위에서 성대한 모임을 가졌는데 揖讓의 예를 갖추고 글을 읽으니 돌아가신 스승의 유풍을 보는 듯했다고 했다. 경천대 강벽에는 가을의 풍경이 역력하고 남은 흥으로 배를 저어 소요하여 하늘이 내린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음을 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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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損齋南先生 1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강가에 나아가 소요하고 돌아와 독서하곤 하는 근일의 일상을 전하는 편지이다. 근래 다소 마음의 편해져서 강에서 소요하고 道南書院의 道正祠에 알묘한 후 祭器들을 둘러보고 옛 사적을 살피며 옛 처사의 遺址인 臺 위에서 擎天碑의 비문을 읽곤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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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損齋南先生 1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사마천의 史記는 기이하고 위대한 행적 중에 平易한 이치를 담고 있음은 상대도 이미 말한 바 있는데, 자신이 史記의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기이한 것을 추구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어째서 인지를 물었다. 이어서 문왕의 彖傳과 공자의 十翼이 모두 법도를 지키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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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黙軒李公(萬運) 2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默軒 李萬運(1736∼1820)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의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에 대해 말하고,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고 했다. 이만운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廣州이고 자는 元春, 호는 默軒이다. 생원시를 거쳐 1777년(정조 1) 증광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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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黙軒李公 2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1년이 되도록 쇄소응대의 예조차 빠뜨리고 있는 죄송한 마음을 전한 후, 자신은 어려서부터 어리석고 자라서는 더욱 흐리멍덩하게 된데다 평소의 행동 역시 격정적이어서 지금에 이르도록 이룬 바가 없음을 말하고, 예전 마음 내키는 대로 내실없는 이야기를 떠들어 손위 사람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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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黙軒李公 2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지난 겨울 문에서 전송하던 때의 감회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에 대한 기대와 염려를 버리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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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黙軒李公 2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한여름 중의 안부를 물은 후 상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지 수년이 되었음을 말했다. 이어서 평소의 客氣가 性命을 기르는 데 폐가되며 안으로 돈후하고 공경스러움이 없어서 밖으로 손윗사람을 공손하게 모시지 못했음에도 자신의 그러한 병폐를 문제 삼지 않고 향상될 가능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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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黙軒李公 2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북두와 같은 덕으로 우리 지역을 비춰 주는 상대의 인품을 칭찬한 후 자신은 온 산천이 눈으로 덮인 골짜기에 물러나와 음풍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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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龜窩金公(㙆) 27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龜窩 金㙆(1739∼1816)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 스승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니 문하에서 내쳐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이 예전에는 중국의 夏殷周 삼대에 관해 관심을 기울였지만, 근래에는 우리 선인들의 글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金㙆의 본관은 의성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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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葛川金公(熙周) 2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葛川 金熙周(1760∼1830)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며 지내고 있는데 병으로 고생한 지 1년이 되어가기에 문을 닫고 컴컴한 방에 누워서 다시는 세간의 일에 간여하지 않고 있다는 안부를 전했다. 이어서 근래 서울에 康熙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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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葛川金公 28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자신은 이미 젊은 날의 총명함을 다 소진하여 예전처럼 고문의 기이한 기록에 관심을 두기에 부족하지만, 오직 「皇極篇」말미의 律呂를 통해 사물을 조화롭게 펴는 작용은 옛 성인이 남긴 뜻이어서 다시 구하여 읽어보려고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이어서 전 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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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葛川金公 29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고모의 삼년상을 끝냈음을 알리고 불효의 한을 이야기 했다. 이어 상대가 자신을 내치지 않고 늘 가르침과 경계를 주었는데, 당시에 가르침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후회가 된다고 했다. 이어 근래 주역을 읽은 소회를 이야기하면서 주역의 世道의 消長과 升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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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誠齋南公(漢皜)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誠齋 南漢皜(1760~1821)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자신은 겉으로 내돌며 세월을 보내다 이제 와서 집안에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고 했다. 지금 착실히 역량을 기울이려 해도 이 세상에서 첫 번째 가는 사람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평소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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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誠齋南公 1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이전 보내준 편지에 답을 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이 어른들의 염려와 관심으로 감히 더 커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스승과 어른들이 베풀어준 은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性理書는 잠깐이라도 책상에 두고 보노라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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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誠齋南公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한 겨울의 안부를 물은 후 지난번 愼可(李秉遠, 1774∼1840)가 穉行과 약속하여 왔기에 黃嶽에 올라 눈 쌓인 봉우리에서 밤을 세워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대의 집을 가리키며 돌아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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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誠齋南公 2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스승의 遺集을 편찬하는 일이 成本을 얻게 된데 이른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자신이 맡아서 보고 있는 부분도 이미 1책으로 끝이 났음을 말했다. 이어서 본래 문하생들 모두 선유정에 모여서 함께 校勘을 보기로 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자고 했다. 따라서 스승의 가르침대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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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誠齋南公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가뭄이 심한 시기의 안부를 물은 후 상대의 학문이 더욱 깊어짐에 우러러 보는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고 했다. 이어서 季周의 근래 공부의 성취가 어떠한지를 물었다. 그는 타고난 재능과 본성이 뛰어나니 그것은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또한 돌아가신 스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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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誠齋南公 3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스승의 遺集에 대한 校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卷第 역시 두서가 있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어서 季周의 학업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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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誠齋南公 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보내준 편지를 읽고서 슬픔의 눈물이 흐르고 갑자기 5월의 시기가 닥쳐옴에 그리움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며, 이러한 때에 일 처리에 물음을 드릴 겨를이 없다고 했다. 돌아가신 스승의 遺稿는 어르신이 옮겨가는 것에 따라서 덜어내고 남기는 작업을 마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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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誠齋南公 4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보내준 편지의 가르침의 말씀이 어떤 말을 보았기에 이처럼 자신을 칭찬하시는 줄 모르겠다면서, 자신은 허다한 세월을 보내면서 이제 서야 갑자기 옛 사람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칭찬의 말은 생각하건데 자신의 평생의 意氣에 관한 것인 듯한데, 그렇지만 자신은 기백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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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誠齋南公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湖上에서 李秉進과 곡진하게 그에 관한 일을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의 태반이 돌아가신 스승의 遺集 편찬에 관한 일이었다고 하고, 이미 여러 문하생들에게 한 부씩 정서하여 놓을 것을 부탁했는지를 물었다. 仙遊洞稧에 관한 일은 우리들의 게으름으로 인해 뒤로 미루어졌고 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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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誠齋南公 5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올해 초에 喪事가 겪었음을 들었는데 천연두로 인해 조문을 하러 가지 못했음을 말했다. 이어서 금년 봄에 보내준 편지를 받았는데 마음 깊이 비통한 말씀을 받들어 읽을 때 마다 천하의 완악하고 잔인한 사람이라도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 같고, 평소에 당부하신 말씀도 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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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誠齋南公 6 / 기록자료>고도서 / 정상관자신은 근력이 나날이 약해지고 근심으로 마음을 졸이며 집에서 지내는 것이 고통스러워 절제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매일 낮이 되면 열이 나서 의관을 벗는 것으로 절도를 삼는다고 했다. 그러한 까닭에 이미 스스로 整齋嚴肅한 상태에서 수양의 노력을 기울일 길이 없다고출처 : 유교넷


